<책탐>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서점에 가면, 누워있는 책과 서있는 책들이 있다.
누워있는 책들은 책의 정면을 보란듯이 드러내고 있어 지나가는 이들의 관심을 끈다.
물론 이들이 베스트셀러나 대기업의 빵때림 광고의 후광을 입은 책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책들이 등장하면 그들도 역시 서가에 서있는 책들로 바뀐다.
그들은 빈약한 책등만 보여주고 있어, 독자들에게는 기껏 제목이나 전달할 뿐, 저자의 이름조차 알리기 어려운 신세가 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독서는 누웠는 책들을 향한 그것이었다.
나의 독서가 '정신 수양'보다는 '직업적 이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독후감을 쓰게하는 일이 많은 직업으로써, 읽지 않고 독후감을 평가하는 일만큼 고역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내겐 값진 책이었다.
서있는 책들에 한없는 사랑을 던지고, 그 책에 꼴딱, 침 삼킬 만큼 소개해주는 쎈쓰~ 가 작렬하는 책을 읽고 더욱 책에 대한 배고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기쁨이다. 

좋은 책을 만나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처한 현실이 다르기때문에 좋은 책의 기준이 일정하진 않지만,
내게 좋은 책이란 적절히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리뷰로 남겨두고 싶은 내용이 있을 법한 주제가 걸려드는 것인데, 김경집의 책탐에서 소개해주는 책들이 그런 것들이어서 고맙고 반갑다. 

영혼의 속도가 삶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책은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속도를 처지지 않게 하는 보석이다.
속도와 풍경을 함께 누리는 그런 삶을 가져다주는 책탐은 그래서 행복하다.(13, 서문

아, 리뷰까지 그가 미리 적어주고 있구나. ^^ 

우리 머리와 가슴 속에 남아있는 불평등과 몰이해가 있으면 모두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내 삶이 저주받은 게 아니라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새삼 확인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없으면 어떤 가치 있는 일도 할 수 없다.(
와리스 디리, 사막의 꽃 리뷰 중) 

프랑수아 모리악의 말처럼 여행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생각의 이동이다.(60, 엘렌그리모의 특별 수업 중) 

일찍이 철학자 존 롤즈가 정의론에서 가장 중요한 도덕적 근거와 목적이 바로 '자존감'이라고 강조한 것이 새삼 떠오른다.(희망의 인문학 중) 

세상엔 지금도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그것들이 모두 남의 일이 아니다.
힘이 정의가 아니고, 정의가 힘이다. 조국 동투르키스탄(신장 자치구)의 자유를 외치는 레비야의 말이다.
(166, 하늘을 흔드는 사람) 

생각이 멈추면 삶도 멈춘다.(299, 생각의 탄생) 

우리가 경이로움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대할 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매혹적인 것들로 빛날 수 있는가를 통찰력있게 보여준다는 첼리스트 요요마의 서평...(320,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 

그가 소개하는 책이면 음악, 미술, 건축을 넘나들면서 마구 사고 싶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이 책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바로 그것이다.
책탐이란 아킬레스 건을 가지신 이들이여!
지름신에게 약점을 잡히신 이들이라면, 부디 이 책에서 지름신에게 사로잡혀 영혼을 팔지 마시기를...
 

남아있는 것이 미래를 알게 하는 법이다.(344, 공간의 상형문자)
아, 그의 책을 읽노라면, 건축같이 문외한인 분야의 책이라도 마구 장바구니에 넣게 된다. 으~~ 그렇지만, 역시 시간이 약이다. 좀 참다 보면 사고싶은 욕구가 눅어지기도 하는 법.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적 풍요, 이미지의 자발적인 부단한 흐름을 향유하는 것이다.
상상력을 가진다는 것은 세계를 전체성 속에서 바라본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의 불행과 몰락이 설명된다.
그는 인생과 자신의 영혼의 심오한 현실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371, 신화와 인생)  

중언부언하자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않은 좋은 책'들을 부지런히 찾아 권해주는 데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은 <그 책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고전에 속할 만한 것들>이란 점이다.
물론 작가가 권해준 책들 외에도 이 책에 더 어울리는 책들도 많이 있겠지만, 일단 이 정도의 작업으로도 김경집이란 이름이 의도한 작업에는 큰 느낌표! 하나 찍은 것 같다.
앞으로 느낌표를 !!, !!! 자꾸 찍어 주기를 바란다.
척박한 이 땅의 독서 환경에 이렇게 섬세한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오래 울려퍼지는 일은 건조한 마음의 여울터에 보습 효과를 줄 수 있는, 그리하여 마음의 움직임을 관조하고,
마시고 잊어버리는 슬픈 대화에서 나누고 권하는 건설적이고 상생적인 대화로 귀결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따지기 몇 개  

<내가 리뷰를 쓰면서 이렇게 한 낱말에 천착한 것은 처음이다. ㅠㅜ>
혹시 편집자나 저자가 읽게 된다면 다음 쇄에서는 고쳐지길 바란다. 철학 하시는 이라면 나의 시비가 정확한 언어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일이라 여기실 것이다. 아니면 말고...  

------- 이 책엔 '반증'이 상당히 여러 번 나온다. 그 쓰임이 정확한지 살펴 보자.
             (이거 뭐, 언어영역 비문학 수업도 아니고... )

23쪽. 우리가 흔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은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통증의 부위가 바로 눈이라는 반증이다. 

24쪽. 나보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들을 보고서야 내 삶에 위안을 얻는 건 그만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73쪽. 미국 페가수스 문학상이나 프랑스의 페미나 문학상을 받은 것이 그 반증이다.

85쪽. <교양>이란 책이 많이 팔린 현상. 이런 현상은 교양이나 인문학이 점차 여유있고 넉넉한 삶을 향유하는 소수의 엘리트, 그것도 상당히 격조를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관심의 대상일 뿐 보통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관심 밖의 학문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전의 낱말 뜻>---------------(daum 국어 사전) 
 증명 [證明] 어떤 사항이나 판단 따위에 대하여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서 밝힘.
 
반증 [反證] 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아니함을 그에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함.  
                    또는 그런 증거
 
방증 [傍證]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는 않지만, 주변의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에 도움을 주는 증거.  
 
증거 [證據] 어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 
23쪽 : <증거>로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저도 깊이 생각해 본 것이 아니므로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 달아 주세요~~)
24쪽 : 나보다 못한 이를 보고 위안을 얻는다.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수양>을 통하여 '힘'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부족하므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역시 <증거>가 좋을 듯...
73쪽 : 상받은 걸로 미루어 보아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니 <방증>이 나을 듯.
85쪽 : 인문학이 여유있는 사람들에게나 관심있지, 보통 사람들에게는 관심없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187쪽. 심연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심연은 깊은 연못...이고, 심연에 잠기다... 처럼 쓰는 말이다. '심오하게' 정도가 좋은 말일 듯. 

255쪽. 수표를 건낼 때의 느낌은... 건네다...가 활용하면 건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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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09-12-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도둑질은 못속이는 법이라는 말이... 벌서 다 보셨네요. 전 아직 피와 천둥의 역사 읽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프간과 이란 그리고 이라크가 겹쳐보이네요. 저도 빨리 피치를 내야겠습니다.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한 시간되세요.

글샘 2009-12-29 00:28   좋아요 0 | URL
직업병이죠. ^^ 쌩~님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길...

바보나무 2010-01-0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김경집입니다. 저의 부족한 책을 넉넉하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날카로운 지적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새삼 고맙습니다. '심연'은 오타였고, 나머지 지적하신 것들은 저의 무지와 불찰입니다. 이메일 주소를 몰라서 이렇게 댓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혹여 저의 책이 재판에 들어가면 반드시 고쳐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샘 2010-01-02 21:01   좋아요 0 | URL
아, 반갑습니다. 참 좋은 책 고맙게 읽었습니다.
반증에 대해서는 저도 얼핏 생각한 것이라, 다시 곰곰 생각해 봐 주시길...
 
안 뜨려는 배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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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인 조르바가 자주 떠올랐다. 

세상, 뭐, 별거 있어?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지. 이런 심보로 가득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팔리 모왓이 삘이 꽂혀 사들인 <그녀>는 떠오르려 하지 않고 달리려 하지 않는 범선이다.  

기계화의 세상에서 범선을 사들이고 사서 고생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답답하다. 

그렇지만,
내가 경매에 대한 사무친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은 세 살 되던 해부터였다.
그해 어느 하릴없는 오후 아버지는 소일거리로 경매장에 갔다가 엉겁결에 꿀벌 서른 통과 온갖 양봉 장비를 받아 들고 왔다.
사들인 것들을 어찌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양봉가가 되었고, 그로부터 2년 동안 나는 거의 비스킷에 꿀만 먹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행운의 여신이 우리한테 미소를 지었다.
벌들이 부저병인지 뭔지하는 것으로 다 죽어 버리면서 우리는 정상 생활 비슷한 것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9)

이렇게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시종 톡톡튀는 재치있는 문체가 돋보이는 책이다. 

그의 배 이름인 '패션 플라워호'도 독특하다.
패션이란 '열정'이기도 하지만 '수난'이기도 하니까.
그가 사들인 '그녀'는 인간의 본원적 삶에 대한 희구이기도 하면서, 곧장 수난으로 직행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었음을 배의 이름을 통하여 보여준다. 

작가가 사랑해 마지않는 뉴펀들랜드의 삶이란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아파트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온갖 '수난'의 현장으로 보이는 야생의 싱싱함이 번득이는 삶을 보여주는 글이고, 그 땅을 떠나느니 차라리 뜨지 않겠다는 배의 의지를 통해 작가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책이다.  

그러나, 재치있는 문체보다는 좌충우돌 엉망진창 중구난방 되는대로 달려나가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읽는 이의 마음을 힘들게 야생의 바닷속으로 몰아넣는 횡포를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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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2-27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제가 지름신을 자제하고 있어서 글샘님 리뷰를 거의 안 읽으니까 댓글도 못 남겼어요. 즐건 클스마스 되셨는지 묻는 건 뻘줌하고 그래도 잘 지내시죠?^^

글샘 2009-12-28 20:26   좋아요 0 | URL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방학이라 보충수업만 오전에 하면 오후엔 책읽을 시간 제법 있지요. ^^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은 '밥벌이'란 용어를 썼다. 밥을 먹기 위해 벌어야 한다는 뜻이니, 거기에 벌써 일이란 것의 하찮음과 소중함이 다 들어있다 하겠다. 밥벌이란 말 자체가 담고 있는 뉘앙스가 구차함이고, 지겨움일텐데, 그에게 밥벌이가 기쁘냐 슬프냐라고 묻는다면, 글쎄, 아마 담배 한 대 붙이면서 씩 웃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보통의 지적처럼, 아이들의 동화에 등장하는 직업은 아주 뻔한 것들 뿐이다.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이나 빵집 아저씨 같은...
그러나, 그것을 한꺼풀 벗기고 생각해 보면 빵집 아저씨도 맨날 밀가루 식빵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온갖 재료를 반죽하여 온갖 모양과 맛의 빵과 과자를 연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빵을 위해서 농부부터 물류 담당자, 수출입 담당자, 중간 가공자들이 끼어들어야 하며, 빵이 생산된 이후에도 판매자, 배달자, 등등... 끝없는 일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 일들을 보통을 따라 붙어 관찰한다.
그런데, 이 책에 흑백으로 불친절하게 인쇄된 수많은 사진들은 마치 토익 시험 리스닝 테스트 10번까지 등장하는 무미건조한 사진처럼 보인다.
보통이 말하는 일의 무미건조함과 분편화된 소외감을 드러내려는 것이었다면 또 그렇게 많은 사진들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인데, 보통도 밥벌이의 지겨움을 좀 이해하는 사람인 것인지... 

참치라는 저주받은 생물은 부레가 없기 때문에 가차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해류 위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쉴 수가 없다. 그랬다간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죽고 말테니까... 

물류 편에서 참치잡이 배를 탄 보통이 관찰한 기록이다. 아, 보통의 매력은 이런 것인데, 이 책에선 이런 매력이 상대적으로 적다. 아쉬움이 컸다.

어쩌면 비스킷을 구우며 오후를 보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상근직 직원 5천 명이 그 별것 아닌 일을 하는 회사가 았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사람도 많을 것이다.(84) 

비스킷 공장을 관찰하던 그는 이런 상념에 휩싸인다.
동쪽으로 흘러가던 구름이 헤이스의 유나이티드 비스킷 본사 건물 위에 낮게 걸려있는 음울한 날이면, 그 결과로 얻은 삶이 얼마나 의미있게 느껴지는지 묻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86)
역시 보통의 글맛은 이런 관찰의 눈에서 나온다. 

현대인의 '일'을 바라보던 보통의 상념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까지 넘어든다.
그녀는 노란 빛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다. 그 표정을 보면 그녀의 생각이 어디 먼 곳에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내원은 젊고 아름답다. 금살은 섬세하게 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왠지 가슴 뭉클한 연약함과 불안한 분위기가 돌봐주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욕망을 자극한다. (92)
93쪽의 사진에 정말 호퍼의 그림 한 컷 같은 여인이 컴터를 보며 멍하니 작업에 빠져있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냐 하느 문제에 관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124)
아쉽게도 이런 것들이 사람들이 직업을 얻기 전에 가지는 착각이다.
직업 상담을 하는 이는 많은 이들이,
자신은 어떤 잘못이나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직관을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진정한 '소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아 괴로워한다. 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 꿈이 없다고 나무라는 어른들이 생각해 볼 말이다.

상담사는 다수가 지나친 약속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140)
창작 지도 교사가 탐욕이나 감정 때문에 학생들 모두가 언젠가는 가치 있는 문학을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 교사는 상담사와 마찬가지로 이런 유혹들 속에서 허우적댄다. 아쉬운 직업이다. 

예술이란 중요하지만 무시되어온 방향으로 우리 생각을 밀어붙이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른다. (210) 동시에 그림은 우리 정신의 잊고 있던 측면들과 신비하게 결함된다.
예술가의 영감은 우리의 마음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도록 의도한다.  

신문을 본다는 것은 소라고둥을 귀에 대고 인류의 고함에 압도당할 각오를 하는 것.(263)
온갖 잡동사니 뉴스들을 마구 싣는 신문에 대한 그의 눈은 역시 상큼하다.  

어떤 회사 사장과 이야기를 20분 가량 진행하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는 오랫동안 지구를 돌아다니며 냉방이나 난방이 조절된 공기를 마시고 회의를 주재하는 동안 그의 인격이 텅 비어벼렸을 거라고. 그는 아무 할 일 없이 방에 혼자 있어본 지 10년이 넘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그 연민을 느낄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여기던 사람에게 그는 권태가 연민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284) 

그의 항공 산업과 관련된 글에선 '별'이 자주 등장한다. 역시 애스트로...는 별...이니깐.
우리는 가끔 별들을 쳐다보지만, 기본적으로 또 도전적으로 땅에 묶여 있는 피조물(348)이란 통찰은 영화 '아바타'의 상상력을 떠오르게 한다. 

보통의 <일>에 대한 통찰은 결국 클라이막스에 다다른다.
우리의 하찮음과 약함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너무 잘 알려져 있고 너무 지루해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과제가 넓게 보면 분명히 말이 안 되는 것임에도 확고한 결의와 진지함으로 그 과제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과장하고자 하는 충동은 지적인 오류이기는커녕 사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악당 세포 몇 개만 거치면 바로 종말에 이르는 존재임을 잊어버리는 것. (366) 

매일 하찮은 일들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들에 지나치게 냉소적이기도 하고, 간혹 지나치게 진지하기도 하다.
<일>에 대한 기쁨과 슬픔을 거치면서 그가 얻어낸 일의 가치는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일 자체는 기쁨도 슬픔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이 책에 담긴 무미건조한 사진처럼 일에는 이렇다할 표정이 없다는 것.
그렇지만 매일 그 일에 몰두할 수 있어야, 밥벌이가 가능하므로, 우리는 거기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 그런 것임을 간혹 생각해 보는 일도 괜찮을 것이라는 것.
뭐, 간혹 생각하지 않는 삶도 또한 그럭저럭 괜찮을 것이라는 것.

보통의 책에서 간혹 등장하는 '대한민국'은 '삼성'이기도 했고, 특이한 철탑에 관련된 사진 도감이기도 했다.
간혹 망가진 비행기로 등장하기도... 이렇게 세계는 좁아지기도 했고,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은 혼합되기도 한다.
보통의 책에서 만나는 한국은,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의 <일>은 더욱 낯선 곳에서 벌어지기도 할 노릇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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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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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腸に毛が生えている理由
신조니 케가 하에테 이루 와케...
심장에 털이 나있는 이유,.. 이것이 이 책의 원제목이다.
그런데, 한국판을 내면서 <문화 편력기>란 제목으로 바뀌었다. 

그의 전작 <미식견문록>과 운을 맞춘다면 문화 편력기가 좋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칼럼'들을 긁어 모아 편집해낸 책이란 느낌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은 일본어 제목 쪽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처음이지만,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나의 독서 습관에 비추어 보자면, 이런 작가쪽으로는 전작주의자가 되기 쉬울 것 같다.
지금 가장 읽고 싶은 책이 '대단한 책'이고, 그 다음이 '프라하의 소녀시대'와 '미식견문록' 같은 책들이다. 

왜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들은 빨리 죽어버리는 걸까? 미인박명일까? 
그에 대하여 조금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 순간, 그가 이미 3년 전에 타계한 인물임을 알게되는 일은 슬픈 일이다. 

이 책에 나온 글들은 가볍다.
칼럼을 모아 만드는 이런 책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요네하라 마리처럼 타계한 인물의 책은 어쩔 수 없이 읽게 된다. 불현듯 왈칵 오주석의 책이 그립다.  

문학이 오래된, 혹은 보편적인 진실을 늘 새로운 방법으로 전달하려 하는 것이라면, 신문은 늘 새로운 진실을 오래된 방법으로 전달하려 한다...는 방식으로 세상을 비틀어 보는 것이 요네하라 마리의 글에서 빛나는 면이다. 

어린 시절 벽장 속에 있던 빙실의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무언가를 태워서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빙하가 녹아 해수면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역시 빙실이라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고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할 따름이다... 이렇게 뒤집는 글은, 앞에 나왔던 단어 하나하나들이 이 구절을 위하여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면 그의 글을 원문으로 읽고프단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럴 시간에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은 욕심이 더 크지만... 

가축화되면... 야수는 70% 가량 뇌의 무게가 줄어든다. 그런데 자칼의 뇌는 본래부터 가볍기때문에 개의 조상이 될 수 없다. 늑대는 개보다 큰 뇌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개가 늑대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몸의 안전이나 나날의 먹을거리 등 근원적이고 절실한 문제를 자기의 지능과 체력을 다 동원하여 있는 힘껏 살아가고 있는 야생 동물 쪽이, 그 모든 것을 사람에게 맡겨서 머리도 몸도 쓰지 않는 가축보다 뇌가 발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 이런 이야기에서 그것은 사람에게도 해당한다. 과보호로 유순해진 사람보다 홀로 독립하여 자력으로 사는 사람이 머리를 더 쓰기 마련이고, 그만큼 머리도 좋아질 것이다.... 아, 이렇게 발상을 연관시키고 전환하는 그의 머릿속엔 도대체 무엇이 들었던 건지...  

제목에 해당하는 글, 심장에 털이 나있는 이유...란 제목이 궁금하여 읽어보니, 별 재미없는 러시아 번역에 관한 글이다. 그러다가, 번역자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으니, 대충 해두고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그래서 털이 나있다는 것이다.  

아, 그의 삶이 여러 곳을 떠돌며 이국 문화를 번역하는 삶이었기에 더 많은 것들을 보았을 수도 있겠지만, 요네하라 마리처럼 보고 생각한 것을 이렇게 상큼한 언어의 당의정 속에 녹여 독자를 현혹하는 매력들 입히는 일도 탁월한 재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칼럼과 대담으로 짜인 다소 산만한 구성이지만, 뭐, 유작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고인이 되어 '미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인간들을 화사하게 비웃는 하늘나라로 가버린 이에게 유사한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09년 겨울, 우울한 날에 요네하라 마리가 내게로 왔다.

----------------

41쪽. 구멍을 파고 묻었습니다...는 구덩이가 더 적합한 번역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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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여사의 좌충우돌 애견애묘기(愛犬愛猫記)
    from 글샘의 샘터 2010-07-04 19:42 
    인간 수컷은 기르지 않는 거?  원래 제목이 이렇게 생겼다.  '기(記)'라는 한문 문체가 있다. 건축물·산수(山水)·서화(書畵) 등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한문 문체인데, 정자를 지으면 정자의 이름을 따서, 서재를 지으면 서재의 이름을 따서 '기'를 짓는다. 에세이 정도가 되겠는데, 자기가 겪은 일에대하여 기념하려고 주제에 따른 자기 소회를 적는 형식이 되겠다.  마리 여사의 이 책은 어떻게 해서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살
 
 
비로그인 2010-01-11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네하라 마리.... 땡깁니다~^^*
요즘 쉬고있어 시간이 나니 가끔 서재 들릅니다. 책 제목만 보는걸루도 버겁네요~
마리... 꼭 만나보고 싶은 작가네요~

글샘 2010-01-12 01:29   좋아요 0 | URL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니, 몇 권 남은 책이라도 읽어야겠구나.
혹시 이 글 보면 주소라도 비밀글로 남겨 주렴.
건축 관련 글이나 책 몇 권 보내 줄까 싶어서...

2010-01-12 0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1-12 22:24   좋아요 0 | URL
으, 나느 진보의 미래, 공무도하 아직 안샀는데... ㅎㅎ 바꿔 보자.
시간 나면 책 부칠게~~~

2010-01-13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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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소재가 아주 특이하다. 

국가는 '공적 기관'이다. 여러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기관이 국가인데, 국가라는 시스템은 공적인 사업을 벌이는 집단이다. 그런 국가가 '사생활'을 가진다는 것을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소재가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시인이었던 작가가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이 좀 익숙하지 않다.  

북한과 통일에 관련된 책을 많이 섭렵했다는 증거로 독서 목록을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작가가 가지고 있는 마인드 안에서 북한과 통일은 살아움직이지 않고 있다. 

더 생생하게 인물들이 살아 튀어나오게 써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북한이 몰락하고 흡수 통일이 일어난다는 설정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북한은 미국과 휴전 상태에 있기때문에, 북한이 몰락한다고 해도 통일 대한민국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생각들이 차가운 겨울날 코트깃을 올려세운 남자들이 입김을 뿌려가며 내뱉는 대사처럼 간결하고 산만하게 흩뿌려지고 응집되어 물방울이 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뒷부분으로 가면서는 한 챕터의 분량이 아포리즘을 일삼는 시인의 그것처럼 짧다. 

자본주의는 못본 척 하는 것... 

이북의 특이한 사회주의가 남조선의 사회 행태를 보면서 이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보고도 못본 체 하는 것... 이런 냉정함이 자본주의의 생리라는 파악은 날카롭다.
한 개의 국가였던 나라가 두 개의 국가로, 또 서로 다른 체제로 살아가고 있으니, 만일에 통일이 갑자기 다가서더라도 <내가 나를 죽이는> 상황이 또다시 벌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이런 표현들은 역시 시인의 관찰력과 신선한 상상력의 소산으로 보인다. 

광고를 보고 기대했던 데는 많이 못미친 아쉬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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