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 빈처 올 에이지 클래식
현진건 지음 / 보물창고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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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의 수탈에 대한 증오심을 교과서에서 학습했다.

빨갱이에 대한 두려움과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띤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함께.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다만 일제 강점기 잔혹한 수탈에 대한 것이었지,

민중의 삶이 얼마나 고된 것이었는지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교과서에 '빈처'가 수록되었었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운수 좋은 날', '고향',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은 외우도록 읽었다.

 

이번 기회에 현진건의 소설들을 찬찬히 읽어 보니,

1920년대, 빈궁 문학의 대표자로 그를 꼽는 이유를 알겠다.

그의 주인공들은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처럼 방황하는 유약한 지식인이기도 하고,

'희생화', '불'처럼 사회 구조의 모순에 의하여 빛바래어가는 봉건 시대의 여성이기도 하고,

'운수 좋은 날', '고향'처럼 온갖 고난을 안 겪어본 일이 없는 하층 민중이기도 하다.

 

그 모든 관점에서 공통된 것은,

수탈로 인한 궁핍이 지나치게 삶을 억압한다는 것인데,

그 주제보다는 리얼한 표현으로 인하여 삶의 비루함이 뚝뚝 묻어나는 데 현진건의 탁월함이 있다.

 

'까막잡기'나 'B사감과 러브레터'는 청춘기의 뛰는 가슴을 표현하고 있고,

'할머니의 죽음'이나 '사립정신병원장'은 인생 자체의 부조리함,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이란 것에 대하여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현진건을 다시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그의 말결의 아름다움이다.

궁핍한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는 문장이 '카프' 계열의 건조한 생경함과는 전혀 다른 아롱거림으로 가득하다.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빈처)

 

가난을 밥먹듯이 겪어야 하던 시절에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었던 작가는 앞서나간 사람이었을 거다.

 

Love is blind.

But, our love has eyes!

이러고 사랑하던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자, 누이는 병이 드는데...

아아, 사랑.

아 사랑의 불아!

네가 부드럽고 따뜻한 듯하므로 철없는 청춘들은 그의 연하고 부드러운 심장에 너를 보배만 여겨 강징난다.

잔인한 너는 그만 그 심장에다 불을 붙인다.

돌기둥같은 불길이 종작없이 오른다.

옥기도 타 버리고 홍안도 타 버리고 금심도 타 버리고 수장도 타 버린다.

방 안에 켰던 촛불 홀연히 꺼지거늘 웬일인가 살펴보니 초가 벌써 다 탔더라.

양협이 젖던 눈물 갑자기 마르거늘 무슨 연유 묻쟀더니 숨이 벌서 끊겼더라.(희생화)

 

가사체로 읊조린 구절들은 읽는이의 마음에 물기를 잔뜩 뿌린다.

 

청춘들의 들뜬 마음을 드러낸 까막잡기(눈가리는 놀이)에서

'생각에 젖은 처녀의 눈동자 같은 밤' 같은 표현은 참 아롱거리는 말이다.

 

어린 나이에 시집살이의 고단함에 지긋지긋함해하던 순이가 시냇가에 와서 본 장면은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다.

 

안개에 묻힌 올망졸망한 산과 등성이는 아직도 몽롱한 꿈길을 헤매는 듯,

엊그제 농부를 기뻐 뛰게 한 큰비의 덕택으로 논이란 논엔 물이 질번질번한데 흰 안개와 어우러지니 마치 수은이 엉킨 것 같고,

벌써 옮겨 놓은 모들은 파릇파릇하게 졸음 오는 눈을 비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저 혼자 깨었다는 듯이 시내는 쫄쫄 소리를 치며 흘러간다.

과연 가까이 앉아서 들여다보니 새맑은 그 얼굴은 잠 하나 없는 눈동자와 같다.

순이는 퐁 하며 바가지를 넣었다.

생채기 난 데를 메우려는 듯이 사방에서 모여든 물이,

바가지 들어갔던 자리를 둥글게 에워싸며 한동안 야료를 치다가, 그리 중상은 아니라고 안심한 것같이

너르게너르게 둘레를 그리며 물러나갔다.

한 동이를 여다 놓고 또 한 동이를 이러 왔을 제,

그가 벌써부터 잡으려고 애쓰던 송사리 몇 마리가 겁없이 동실동실 떠다니는 걸 보았다.

욜랑욜랑하는 그 모양이 퍽 얄미웠다.(불)

 

현진건의 문체를 공부해보는 일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문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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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12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 예전에 본 작품들이어서 새롭네요.
운수 좋은 날, 이 반어법의 제목이 멋졌어요. ㅋ

글샘 2012-04-13 11:35   좋아요 0 | URL
저도 몇 번은 읽은 거였는데, 현진건 문체가 참 맛깔스러워요. ㅎㅎ
 
달려라, 탁샘 - 탁동철 선생과 아이들의 산골 학교 이야기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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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참 오래 읽었다.

 

도종환, 이계삼, 이상석 선생 같은 이가,

교육은 이런 일을 해야하지 않는가?

이런 당위론을 이야기할 때는,

나는 달팽이집 안에 들어앉은 채,

이런 의견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이고, 이건 또 너무 감상적이고, 이건 또 상당히 도발적이고,

이러고 평가를 내리면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재단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

 

길을 오래 걷다보면 발바닥에 굳은살이 배겨서 감각이 둔해지지만 걷는 데는 도움이 된다.

망치질이나 특별한 도구를 사용하는 일에서도 오래 숙련되노라면 굳은살이 배기고 감각이 둔해지면서 작업에 도움을 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 역시 그렇다.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새살이 아려서 몹시 힘들었다.

아이들과 다투면 주말 내내 몸살을 앓았고,

우리반 아이들이 너무 의견이 많고 시끄러우면 나의 잘못된 교육관 탓을 하며 엉뚱하게 술을 마셨다.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삐딱선을 탄 아이를 만나면 미운 마음이 막 들었고,

내가 좋다고 졸졸 따르는 아이들은 이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곤 했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이 살아있어서 너무 이뻤고,

아이들은 서로 발표를 하려고 했고, 글쓴 거 하나 읽고 칭찬 듣고도 세상을 얻은 듯 해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오래오래 편지를 보내왔고,

지금도 가끔 그때 토욜 저녁에 학교 운동장에서 야영하면서

내 팔베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헤던 이야기를 하는 '소설창작반' 아이들도 있다.

 

야영하던 밤, 엄마가 없어서 '어머니의 손'을 못써온 아이 손바닥을 때린 일을 알려줘 나를 부끄럽게 했던 아이,

일요일이면 키는 나보다 더 큰 여학생 둘이 총각 선생님 자취방에 쳐들어와서 볶음밥 해달라고 조르던 아이들,

고등학교 입학해야하는데 등록금이 없다고 통장에서 27만원 빼줬더니,

그길로 날라서 아직 연락이 없는 아이.

알콜중독 아버지한테 매일 맞다가 머리가 굵어 집나가서 중국집 배달한다던 녀석,

엄마 없이 이모집에 사는데 감기로 결석했다고 아이들이랑 병문안갔더니 스승의 날 담배한갑이랑 불티나라이터 연습장에 둘둘싸서 선물이라고 들고온 아이...

 

아이, 아이, 아이들...

그래. 이 글을 읽으면서 끝도 없이 많은 아이들이 계속 떠올라서,

글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던 건가보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내가 탁샘처럼 다정하고 자상하게 친절하고 지혜롭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

스스로 몹시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의 결에 굳은살이 배긴 것 같다.

경력있는 교사랍시고, 수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고,

내 맘대로 아이들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작은 신'의 권력을 맘껏 누린 모양.

 

학생부 선생이라고 학교를 뺑뺑이 돌면서

담배 피우는 넘, 돈놀이 하는 넘, 수업 땡땡이 치는 넘, 친구 돈 삥뜯는 넘... 잡아다 패고,

형사처럼 조서 꾸며서 심사해서 처벌하고...

또 무슨 연구학교 한다고 이런저런 연구자료 뒤져서 몇마디 적어놓고는 보고서랍시고 떠들어대고,

별 쓸데 없는 공문서 응대한다고 끙끙거리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보내면서 아이들 자습시킨 교사...

그 부끄러운 시간들이,

잊혀진 줄 알았던 지나간 시간들이,

깨어진 듯, 가느다란 균열 사이로 솔솔 피어올랐던 모양이다.

 

탁샘, 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부처로 보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여기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면,

교사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는 반성을 한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 삼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상장을 못 받는 아이들을 향해 위로를 보내고,

과자를 못 사먹는 아이들에게도 동정의 마음을 내고,

아이들이 자기 의견을 내는 걸 보고 기뻐하고,

자기 의견을 못내는 걸 보고 화가 일어나는...

그런 마음을 배우자.

 

내 마음에 아이들을 가진자와 못가진자, 나은자와 낮은자로 가르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항상 상하쌍회향(위아래를 모두 보는) 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살며,

내가 안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르고 모르는 사람끼리 같이 헤매며 알아내는 과정은 아름다울 수 있겠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의 미운 말도 이쁘게 들어줄 줄 아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기를...

 

아이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말에 반응해서 움직여야 하고, '감동'으로 움직여야 함을 잊지 말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아무 것도 아닌 한쪽으로 잡아끄는 것 또한 폭력임을 잊지 말고,

경험없는 아이들은 뭘 봐도 놀라운 눈빛으로 반짝이듯, 자꾸자꾸 놀라고 허둥대며 오늘 하루를 만나길 바란다.

 

싸우려 해도 싸움이 되지 않는 아이, 싸움없는 세상, 바보 이반의 나라, 평화... 이런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이들은 사탕 하나에도 감동할 줄 아는 존재임을 늘 잊지 말고,

어른이 지어 올리는 백 개의 탑은 추상임을, 지 혼자 알아냈다고 뻐기는 하나가 초라해도 진짜임을 알게 하고,

내게 필요없는 걸 주는 건 죄이며, 내게 필요한 걸 줘야 진짜 주는 것임을 배우게 되기를...

 

이 책의 리뷰는 도무지 평가를 내리는 글로 지을 수 없어서,

몇 줄 참회의 글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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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7: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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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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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나를 물들이다 - 법정 스님과 행복한 동행을 한 사람들
변택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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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1일 오후 1시 51분.

때 아니게 길상사 범종이 울렸다.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는 말씀을 담아.

 

법정 스님 뜨신 지 두 해가 지났다.

스님 가시고, 말로 지은 업을 덮으신다고 절판을 선언하셨는데,

그런데, 또 다른 말업들을 지어내는 이들이 있다.

스님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어 찾아 보게는 되지만,

스님의 깊은 뜻을 놓치는 것 같아, 자꾸 아쉬운 마음이 든다.

 

건축가 승효상은 나무에 결이 있고 바람이나 물에 결이 있듯이 땅에도 결이 있다고 했다.

하물며 사람에게 결이 없겠는가. 사람 결은 뭘까?

목숨을 주고받으며 만드는 숨결이다.


법정 스님은 만남은 눈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듣고 보니 만남은 낱 목숨이 온 목숨으로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의 결은 숨결이고, 만남은 눈뜸이다.

낱 목숨이 만나 온 목숨으로 통해야 만남이고, 사람의 경험이다.

말은 쉽지만, 곱씹어보면 어려운 말이다.


사람들이 가진 거 가운데 무엇보다도 시간이 소중해요.

저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한 번도 보지 않았어요.

일평생 시간을 잘못 쓴 일이 없어요.


그리고 시시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해요.

시시한 사람 취급을 받으면 속상하잖아요.

시시한 생각을 하면 시시한 사람인 거예요.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시시한 생각을 할 수가 있겠어요.

성공이 거저 오지 않아요.

잘 가꾼 벼를 거둬들이는 농부는 부지런히 피땀을 흘렸기 때문에 알곡을 거둬들이죠.


박청수 교무 “제가 라다크에 학교를 짓고 나서 힘이 빠져가지고, ‘스님, 힘이 하나도 없어요.’ 했더니 스님은 ‘큰일 했어요. 큰일’ 그러셔요. 제가 ‘그러면 뭐 해요, 힘이 하나도 없는데요. 제 내면이 바닷가 갯벌 같아졌어요.’ 그랬더니 ‘아휴, 그래야 해요. 큰일을 하고 나서도 힘이 남아서 쩡쩡하면 겸손해지기 어려워요. 그리고 그 일도 공이 되지 않지요.’ 하고 위로하셨다.”

 

이 인생이든 저 인생이든 살아볼 만 하잖아요.

선택한 만큼 맹렬히 살면 되지.

남들 눈치보면서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지요.

얼마나 소중한 삶인데 낭비하면 되겠습니까?

 

철저하게 살아온 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삶 역시 치열하다.

짧은 글이지만 많은 공부가 된다.


사람과 가장 가깝고 잘 통하는 동물이 말이라면서 말에게 미소를 보내면 말과 친해질 수 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물었더니 사람은 표정을 봐야 알아차리지만, 말들은 바이브레이션, 진동으로 느끼니까 우리보다 더 빨리 알아차려서 금방 친해질 수 있대요.

 

삶에 대하여, 그리고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다보면, 동물 역시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살다 보면 울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나 다른 이 눈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실컷 울 곳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건축가 김중업은 집 어느 구석에는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며, 집을 지을 때 꼭 울음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울음.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울기란 쉽지 않다.

세상에, 혼자 실컷 울 곳을 만들기 역시 쉽지 않은 일.


네게 주어진 해가 몇몇 해 지나고 몇몇 날 지났는데, 그래, 저는 네 세상 어디쯤 와 있느냐?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내 세상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늘 조고각하,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봐야 할 노릇이다.


오도자불입 悟道者不入 깨친 자는 들어오지 말라.

공부 목적은 쓰기 위함이다.

도를 닦는답시고 학생에 안주하지 말고, 하루빨리 공부 마치고 나가 세상을 위해 일하라.

 

부처님이 우리한테 진정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깨달음이 아니죠.

세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 사는 일이 진짜 불교 모습이에요.

치열한 삶이죠.

 

도를 닦네 하면서 절간에 안주하는 일을 경계한다. 맞다.


스님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선한 눈매를 가지고 기다리고... 사랑은 따뜻한 눈길, 그리고 끝없는 관심!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마디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삶의 의미는 찾아도 찾아도 끝없는 미로와 같다.

여러 인생을 만나노라니 그런 이야기들을 숱하게 만나게 된다.

광주 이후...

사는 일이 참 힘든 거구나.

산다는 게 뭘까 되돌아 보게 되더군요.

세상 일이 내 뜻과는 상관없이, 강요하는 질서나 가치에 의해 나란 존재는 그저 끌려갈 뿐이구나.


인연은 시간이란 체에 걸러진다...

오래 가슴에 담길 말이다.

인연은 오래오래 체로 걸러진다.

시간이란 체 속에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부모자식 인연도 부모자식이기에 앞서 사람과 사람 만남이다.

인연은 시간이란 체에 걸러진다.

시간 체 속에 사람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길고 짧음이 있다.


시니컬하게, 정수리를 내리치는 한 말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말해야 한다.

 

말씀 끝에 영가 천도 이야기를 꺼냈더니,

‘보살님은 그런 데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촌동생에게 들려준 이야기.

 

어머니가 말리는데도 고집을 세우고 미국서 파리로 건너간 레오 버스카글리아.

끼니를 굶다 못해 어머니에게 ‘굶어 죽어가요, 아들.’ 전보를 쳤다.

어머니의 답신. ‘굶어라, 엄마.’

 

징징거리면 본전도 못 찾는다.


좋은 일을 생각하고 말하면 그 날은 좋은 날

불쾌한 일을 생각하고 말하면 그 날은 나쁜 날

좋은 날과 나쁜 날은 오로지 내 생각과 말에 달린 거.


당연하지만, 사람에게 마음이 전부다.

좋은 날과 나쁜 날 역시...

법정 스님이 들려주시는 꽃 소식이 반갑고 이뻐서 옮겨 둔다.

 

매화는 반만 피었을 때 운치가 있고,

벚꽃은 남김없이 활짝 피어나야 여한이 없다.

복사꽃은 멀리서 봐야 제대로 누릴 수 있고,

배꽃은 가까이서 볼 때 그 맑음과 뚜렷함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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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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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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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4: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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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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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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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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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1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컬하게, 정수리를 내리치는 한 말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말해야 한다." - 이 말이 마음에 와 박히네요. 제가 생각한 뜻이 맞는지 모르겠는데요...
자기가 지금 무슨 짓(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끝까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답답하겠죠? 그런데 그게 제 자신일 때가 있더라고요. ㅋ


글샘 2012-04-10 14:37   좋아요 0 | URL
님이 생각하신 뜻 맞아요. ㅎㅎㅎ

아무 생각없이,
말을 해야되겠다고 생각해서 뜬금없는 말을 뱉을 때가 있거든요.

언제나,
너의 주인은 네가 되어라~ 이런 가르침인 듯 싶어서 적어둔 겁니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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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성석제의 글을 좋아한다.

성석제의 소설들에서 드러나는 인생의 단면들은,

비루하지만 유쾌하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의 성석제 평가에 대하여 '쫌 더 주지'하는 비평을 달기도 했는데...

 

내가 성석제를 높이 치는 이유는 무수히 많으며,

그것은 위트, 쫄깃거리는 말의 맛, 서사를 이끌어가는 사건과 배경과 인물의 탄력성과 생동감,

이런 것들을 2박3일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이고,

내가 그렇게 성석제를 좋아함에도, 가끔 그의 글에서 왠지 모를 이물감을 느껴,

마치 나는 생선 가시도 잘 씹어 먹는다고 오만하게 굴다 칵, 하고 잔가시를 뱉어내야 하는 순간처럼,

성석제의 글에서 뭔가 별점을 깎아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점이 들러붙은 때가 있는 것인데,

천명관을 읽으면서, 곰곰 생각했더니,

그건, 성석제의 글들이 늘 '있는 집 자손'의 입장에서 쓰여진 '비루한 자들'의 이야기였던 데

그 시점의 아니꼬움이 얽혀있던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인데,

난 또 그걸 적고 있을 뿐이고...

 

성석제의 '이치도 이야기'나 '조동관 약전' 같은 소설의 서사적 완성도에 비하여,

그리고 소설을 이끌어가는 탄력성이나 인물의 형상화의 탁월함에 대하여,

또, 대화체와 서술체를 적절히 활용하여 독자를 상황에 완전히 매료되도록 하는 꼬드김에 대하여,

이 소설은 천명관 소설의 결정판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성석제의 시시껍질한 '밥벌이의 구차함' 류의 소설들에 비하면,

천명관 소설의 처절함은 더 높이 사줄 법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천명관의 <고래>, <고령화 가족>에 비하여 <나의 삼촌~>은 더 장편이어서 행복하다.

일단, 두툼한 780 페이지의 책을 곁에 두고 첫 장을 펼치는 기대감은,

처음 열 페이지 정도를 읽어도 그 행복감을 배가시키는 흥분감을 사라지지 않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

 

비록 그것이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 주진 못하더라도, 그리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자신의 불행이 단지 부당하고 외롭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요?(앞날개, 작가의 말)

 

천명관의 이야기들은 '실패자'들의 이야기다.

처절하게 징그럽게 삶의 틀은 지옥도에 가깝다.

성석제 류의 '온실 속의 화초'가 바라본 관점에 비하여 더 현실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치열하다.

그만큼, 천명관의 인물들은 슬프다. 비루하다. 가엾고 천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마치 내 이야기처럼,

내 이웃의 이야기처럼 읽으면서 충분히 의미 있는 '동병상련'과 '카타르시스'의 체험을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아득한 그리움 같은 거였다.
그리고 뱃속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오래된 슬픔 같은 거였다.

또한 따뜻하지만 만질 수 없는 안타까움 같은 거였다.(1-141)

 

중국집 배달부가 된 삼촌이 마 사장을 업고 가며 느낀 감정의 한 대목이다.

현실 속에서 잃어버리고 사는 것, 결핍을 가지고 사는 것들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이런 것에 대한 결핍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 법이다.

버림받은 인생으로 자란 삼촌, 그에게 모정이란 것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경험해보고 싶은,

그런 슬픈 것이었나보다.

 

난 중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냐.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냐. 생긴 건 여자지만 남자의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더이상 젊지도 않지만 늙은이는 아냐. 그게 바로 지금의 내 인생인데, 그럼 도대체 난 뭐지?(1-143)

 

이런 마사장의 독백은, 어쩌면 천명관 자신의 돌아봄이고,

어쩌면 독자에게 들이미는 자의식과의 대면식일 수도 있다.

그럼 도대체 난, 지금의 내 인생은, 뭐지?

 

삼촌이 문중의 힘으로 홍콩 오디션 비용을 모색할 때, 나온 구절,

 

쌍절곤을 양손에 쥐고 앞으로 힘차게 달려가다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공중에서 세 바퀴 반을 돌때,

그때, 나는 보았다!

저 높은 곳에서 별처럼 빛나는 그의 꿈과 그 꿈에 둘러싸인 오롯한 영혼을!(1-223)

 

아, 이렇게 꿈이 있을 때, 인간은 별처럼 빛날 수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을 통해 가장 삼촌이 빛났던 적은 이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꿈과 자신감이 있을 때, 자신의 꿈을 펼쳐보이고 싶을 때,

그 영혼이 빛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많은 부분을 삼청 교육대를 증언하는 데 쓰고 있다.

다른 부분은 재미로 쓰고, 상상으로 쓰고 있는 부분이 대부분이고,

(사실 대부분의 무협 조폭 저질 소설이 상상의 소산이지만...)

삼청 교육대에 대한 부분에 대하여는 상당한 연구가 돋보이는데,

심한 부분은 이거 뭐 소설인가, 사회과학 탐구선가 싶은 대목이 드러난 정도로... 생경한 부분까지 있다.

그건, 소설의 단점이라기보다, 흠결로 잡히더라도, 결코 빼고 싶지 않은 작가의 고집으로 보인다.

 

교관들은... 한 명의 교육생을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왜 그랬냐고?

이에 대한 대답은 오로지 하나였다. 그래도 됐으니까.

그래도 되면 그러는 게 인간이니까.

 

1940년 4월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소련의 비밀 경찰은 스몰렌스크 카틴 숲에서

폴란드군 장교와 지식인, 예술가와 성직자 등 2만2천 명을 살해해 암매장했다.

2차대전 기간 중 나치는 유태인 5백만명을 학살했다.

1948년 제주도에선 군경토벌대에 의하여 6년 여에 걸쳐 양민 3만 여명이 살해당했다.(이래서 여자가 많은 섬...ㅠㅜ)

1975년 캄보디아에선 크메르루즈당의 지도자 폴포트가 전 국민의 30%되는 200만명을 감금 학살했다.

1992년 발칸반도에서 세르비아계에 의해 보스니아계 주민 25만명이 학살되었다.

1994년 4월부터 3개월간 르완다에선 후투족이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을 무차별 살해했다. 모두 80만명.

 

왜 그랬냐고?

그래도 됐으니까.

그래도 되면 그러는 게 인간이니까.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니까.

과거에도 그랬으며 앞으로 또 그럴 테니까.

그렇다.

그렇게 대학살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그래서 그저 살아있는 동안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 가해자가 될지, 패해자가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1-310)

 

삼청교육대에서 죽음을 앞둔 정기자는 죽기 전에 마누라와 딸애 얼굴 한번 보는 게 소원인데,

그것 역시 사치라고 느껴진다고 했다.

이소룡식 사고를 하는 삼촌 왈,

 

나보다 더 힘도 세고 덩치도 큰 놈이 싸움을 걸어오면 그 적에게 감사하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그놈이 내 자존심을 건드려준 덕분에 그놈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난 지금 우리가 아주 힘도 세고 덩치도 큰 놈한테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 교육을 마치고 보란듯이 걸어서 나가면 그게 바로 그놈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거잖아요.(1-333)

 

삼촌은 그러면서 정기자의 붉은 엑스표 옷을 입는 무모함도 보이지만,

이런 오기가 부조리한 삶에 대한 천명관의 대처법일 수도 있다.

삶은 원래 부조리하다.

그리고 때론 큰 놈이 싸움을 걸어오면 우리는 코피터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울지 말고 쫄지 말고, 감사하라고...

자존심을 건드릴 땐, 보란 듯이 걸어나가서 본때를 보여주자고!

약한자의 자존심은 이런 거여야 한다고...

 

시위 현장에서 여자친구를 구해낸 후, 벅차다면서 울고 있는 경희를 보면서 서술자는 이런 생각을 내뱉는다.

 

그녀가 운 것은 우리가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거대한 물줄기 앞에 서 있는 개인의 왜소함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의 생은 그것이 무엇이 됐든 우리가 감당하기에 늘 너무 벅차리라는 것을.

그래서 또 눈물이 나고 그 눈물이 마를 즈음에야 겨우 우리가 애초에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2-023)

 

비슷한 이야기를 깡패 토끼의 입을 거쳐 말하면 이렇게 된다.

 

니들이 아직 세상을 덜 살아서 잘 모르겠지만 인생은 니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길어.(2-138)

 

경희의 면회를 이야기하면서 '도처철조망 개유검문소'부터 시작해서,

난해한 사랑... 에 대한 이야기를 넣는다.

황동규의 태평가를 소설 속에 우겨 넣은 느낌인데...

이런 소설 별로다. ㅋ

 

태평가(太平歌)

                 
                    -황동규


  
말을 들어보니

우리는 약소민족이라드군

낮에는 문 잠그고 연탄불 쬐고

유신안약(有信眼藥)을 넣고

에세이를 읽는다는군

 


몸 한구석에 감출 수 없는 고민을 지니고
병장 이하의 계급으로 돌아다녀 보라

김해에서 화천까지

방한복(防寒服) 외피(外皮)에 수통을 달고

도처철조망(到處鐵條網)

개유검문소(皆有檢問所)

  

그건 난해한 사랑이다

난해한 사랑이다

전피수갑(全皮手匣) 낀 손을 내밀면

언제부터인가

눈보다 더 차가운 눈이 내리고 있다

 

왜 자기 말로 이야길 못하고, 남의 시를 끌어들인담, 시시하게...

이러고 있었는데...

경희의 한 마디에 뒤통수를 얻어맞는다.

 

나를 억압하지 않았던 건 너뿐인 것 같아.(2-080)

 

아, 난해한 사랑... 난해한 사랑... 이런 느낌이었을까?

유신 시대의 '역사적 사명'과 '전피수갑'의 사랑이 껴안았던 난해한 사랑... 그 억압이,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똑같이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하였던 것인지...

사랑이란 이름으로 억압하는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사랑이란 이름앞에 일어나는 숱한 폭력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의 독자는 인생과 사랑이란 축의 흐름을 따라 읽게 되는데,

마 사장과 원정을 통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좀 통속적인 반면, 경희의 그것은 일면 실존주의 그늘이 비치기도 한다.

 

아무 것도 추억할 게 없는 인생만큼 불행한 인생은 없거든.(2-111)

내가 살아보니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외로움이더라. 그건 암이나 전쟁보다도 더 끔찍한 거야.(2-151)

 

인간이 두려워하는 게 이런 거 아닐까? 늙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니 말이다.

그런데, 외로운 죽음을 맞게 되니, 마 사장의 심정은 절절할 것이다.

그런 죽음도 세상엔 흔하디 흔하다.

그래서 원정에 대한 삼촌의 사랑에 이렇게 훈수를 둔다.

 

"그 여자는 가시가 있는 여자예요. 장미처럼 아름다운데 가시가 있거든요."

"넌 정말 어쩔 수 없는 놈이로구나. 나 같으면 그 가시에 심장이 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을 할 텐데..."(2-152)

 

사랑이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심장이 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후회하지 말고 해야하는...

그래서 삼촌은 고백한다.

 

"사랑합니다."

"뭐?"

"사랑한다고요."

"그래서? 미스터 권은 그 흔한 사랑 말고 나에게 또 뭘 줄 수 있지?"

...

"미스터 권은 정말 바보 같아. 아무 것도 줄 게 없으면 이렇게 으스러지게 안아주기라도 하면 되잖아."(2-156)

 

천명관식 낭만적 사랑론. ^^

그는 리얼리즘 작가이면서, 영락없이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경희는 '후일담'의 영화를 만들어 온다.

후일담에 대한 천명관의 일침...

 

내 눈엔 그렇게 보였어. 부끄러운 척 도도하고 수줍은 척 오만하게.

차라리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그냥 해. 내숭 떨지 말고!

그래도 최소한 넌 뭔가 말을 하고 있잖아.

그리고 누군가 그걸 들어줄 사람도 있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럴 기회도 없어.

다들 그냥 사는 거야. 말도 못하고.

되새길 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이.

그러니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제대로 하란 얘기야. 뻔뻔스럽고 영악하게.(2-326)

 

이소룡의 영화를 서사의 축으로 하여, 이소룡의 언행을 삶의 지침으로 삼는 어리숙한 삼촌을 주인공으로 삼는 소설.

그렇지만, 천명관은 이 소설을 통하여,

가족 제도가 보여주는 한계에 대하여,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진중함에 대한 선호와 그것의 거짓됨을 발랄하게 벗기는 데 대하여,

그리고 왜 한국 사회의 영화에는 조폭의 다치마와리 영화가 판을 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삶과 사랑과 인생은 운명에 의하여 어떻게 조각되는지에 대하여,

좀더 생각하고, 좀더 느껴 보라고,

우리 앞에 삼촌을, 마 사장을, 원정을, 그리고 그 외의 군상들을 형상화하여 둘러세워주는 것이다.

그 타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겠지.

 

This is the love that belives the existance all that exclusive people. (시몬느 베이유)

자신 외의 존재들의 삶... 그를 믿음이... 사랑이라고...

 

 

 

--------------- 시비 몇 개.

 

1-289. 형의 구속으로... 실제로 형은 경찰에 연행된 지 열흘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구속... 되면, 열흘만에 집에 못 온다. ㅠㅜ

 

2-87. 유를 찾아볼 수 없는... 유례...

 

2-142. 막판의 부재자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자... 극적으로 역전... 부재자 투표함은 6시에 개표하고, 일반 투표함은 6시에 봉인을 덮기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2-170. 거짓말을 하면 안 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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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4-09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780P...도전!이라고 외치고 읽어야 할듯한 두께군요.
저는 아직 성석제식의 위트도, 천명관식의 유머도 익숙치가 않아요....

글샘 2012-04-09 15:23   좋아요 0 | URL
근데 워낙 재밌어서 금세 넘어갑니다.

페크pek0501 2012-04-10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 굉장하군요. 뭐가? 글샘님의 독서가요.
그 두꺼운 책을 다 읽고도 잘못 쓴 부분을 잡아내시다니...
혹시 글샘님은 천재? 키득~

"사랑이란 이름으로 억압하는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 본인은 사랑이라고 믿는데,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닌거죠.
올바른 사랑을 하려면 정신적 성숙이 필수인 것 같아요. 지혜도 필요하고요.
삐딱한 사랑은 받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겠죠. 참 어려운 게 사랑인 듯...

글샘 2012-04-10 14:38   좋아요 0 | URL
네, 천재 맞아요. ㅎㅎㅎ
어렸을 때 천재 아닌 아이 없다잖아요.
잘못 쓴 부분 잡아내는 건, 제가 석사논문을 '고등학생의 맞춤법 오류 교정'에 대해서 쓰면서부터 직업병처럼 생긴 습관이에요. ㅠㅜ

사랑이란 이름으로 억압하는 인간의 문제... 이게 '도대체, 사랑' 같은 책이 밝혀야 하는 건데...
한국에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억압의 문제는... 슬프죠. ^^

분다 2012-04-1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다 읽었어요.
마지막 부분에서... 7년이 지나고 만난 그 부분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ㅜㅜ

지적하신 부분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저도 유래로 알고 있었거든요..


유래는 .. 유래가 맞지 않아요?
잘못된 예 는 <유례>
유래는..사물이나 일이 생겨나게 되다 - 예>유래를 찾기 힘들다
국어사전에 이렇게...

헷갈리는 우리말이네요..ㅜㅜ

글샘 2012-04-12 10:39   좋아요 0 | URL
참 재밌죠? 억울하게 감옥살이하고 나오는 대목에서 눈물나게 행복해지죠. ^^

유래...는 생긴 이유... 이런 뜻이구요.
유례...는 유사한 사례... 이런 거라서, 뒤의 것이 맞습니다.
이건 편집자들도 잘 틀리는 거 맞아요. 어려운 우리말... ㅎㅎ

석란1 2012-04-1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래]이후에 천명관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성석제도 사랑하지만...
아직 이책 못 읽었네요. 서평읽고 빨리 읽고 싶어졌습니다. 감사~

글샘 2012-04-15 14:57   좋아요 0 | URL
고령화 가족도 재밌더군요. 빨리~ 읽어 보세요~ ^^
 
말하는 까만 돌 일공일삼 77
김혜연 지음, 허구 그림 / 비룡소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한 십오 년 전인가보다.

사는 게 참 힘들었다.

힘든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정답처럼 삶이란 게 주어지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해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나날을 영위해나가는 나를 발견할 때,

어쩔 수 없이 힘들었다.

 

그러던 날,

나에게 힘을 주었던 건 돌멩이 하나였다.

그 돌멩이를 바닷가에서 우연히 주웠는데,

동글납작한 돌멩이를 손바닥에 꼭 쥐고서,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이 돌멩이가 이렇게 동글동글해지기까지...

바윗돌이 쪼개지고, 자갈돌이 서로서로 쏠려다니면서 닳고 닳아 지금까지 이르렀는데,

그렇게 보면, 달님이 변함과 함께 물살의 흐름도 변해 이 자갈돌을 닳고 닳게 만든 것이고,

그 시간과 조수의 흐름이 이 돌멩이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보면,

이 세상, 온 우주와 나를 연결해주는 패스워드로 이 돌멩이가 작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게,

그 돌멩이의 찹찰한 느낌이 내 손바닥을 통해 우주로 뻗어나가는 상상을 했다.

그러고 나면, 나의 가치가 온전한 한 사람으로... 복원되어있다는 느낌을 갖곤 했다.

 

그 돌멩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하고,

책상 서랍에 넣어 두기도 했는데,

학교를 옮기면서 언젠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나의 가치가 복원되었던 그 오롯한 느낌을 잊어버린 지 또 십 년이 다 되었다.

 

소심한 아이 지호는 엄마가 죽고나서 아빠도 말이 없고, 학교에서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된다.

지호는 온갖 사물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상 속에서 위안을 얻는데, 아이들은 그걸 더 놀린다.

지호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 상상력이 떠올랐다. 외로운 아이들은 상상 속에서 힘을 얻나보다. ^^

 

"이 숟가락이랑 밥그릇 같은 것들도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면 알아듣는다고,

동물이건 사람이건 보지 않으려 하고 듣지 않으려 하면 숟가락보다 말귀를 못알아 먹게 되는 거야."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는 동안, 지호는 말하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 온다.

그 돌멩이에게 말을 걸면서 지호는 용기를 얻고,

지호 아버지 역시 잘못은 자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찮은 무생물도 사랑을 주고 눈길을 주면

생명이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스님이 남긴 말은 아빠를 변하게 한다.

어쩌면 이 소설을 쓴 사람은 나랑 비슷한 삶의 궤적을 걸어온 거나 아닌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깜짝 놀라게 하는 구석이 많다.

 

지호 아빠는 지호 엄마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너무 크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살았다.

그걸 되새기기도 무서워하던 아빠에게 까만 돌은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용기를 준다.

그리고, 과거에 매몰되어 있기만 하다면 삶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까만 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중간에 끼어들지도, 자기 생각을 말하지도, 야단을 치지도 않았다.

지호 아빠는 까만 돌이 맘에 들었다.

만일 까만 돌이 중간에 끼어들었다면 가슴 속의 도둑고양이는 다시 마루 밑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고양이는 햇빛 아래 온몸을 드러내고 반듯하게 서 있었다.

얘기를 하고 나니 가슴에서 돌덩이를 내려놓는 것 같았다.

눈가에 따뜻한 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지호는 나중에 까만 돌을 제자리에 돌려 놓는다.

그것은 나비 효과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긍정적으로 돌려놓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잘 있어.

나는 이제 우리 집으로 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지호는 까만 돌을 살살 문지르며 말했다.

까만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지럽다고도, 웃지도 않았다.

지호는 헤어지는 게 섭섭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이별은,

이렇게 쿨해서 더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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