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식탁

-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



“우리는 매일 독을 먹고 있다!”

우리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는 생활 속 독성물질의 모든 것!

《르몽드》, 《엑스프레스》… 해외 언론이 극찬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문제작


저자가 원하는 것은 특종이 아니라 모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증거다.

-《라크루아》


‘독성사회(毒性社會)’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기업에 ‘몸 파는’ 과학자들,

조작된 연구 결과를 그대로 쓰는 규제 기관


“암, 불임, 기형아 출산도 화학물질 때문이다”

‘체내 화학물질 축적량’과 ‘칵테일 효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일상 속 독성화학물질


아스파르탐

설탕보다 200배나 높은 단맛을 내는 인공 감미료. 설탕의 1/200의 칼로리로도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어 코카콜라 제로 등 다이어트 식품에 주로 쓰인다. 그 외에도 각종 소스, 감자칩, 시리얼, 음료수, 껌, 술 등 6000여 개의 식품과 300개 이상의 의약품에 첨가제로 쓰이고 있다. 뇌 속 화학 작용을 바꿔 뇌종양, 간질 등을 일으킨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제조 기업과 결탁한 규제 기관들의 묵인 속에서 사용 승인되어 현재 전 세계 약 2억 명의 인구가 섭취하고 있다.


PVC

폴리염화비닐. PVC를 가공할 때 유연하게 해 주는 용도로 쓰이는 다이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는 간암과 췌장암을 불러일으키고 생식과 성장에 해를 끼치는 강력한 독성 물질이다. 풍선, 식탁보, 장화, 샤워 커튼, 우비, 의료 수액팩, 혈액팩, 식품 포장 랩 등 물렁물렁하거나 잘 늘어나는 플라스틱 제품에는 DEHP가 들어 있다. 현재 장난감, 인공 젖꼭지, 화장품 등에는 사용이 금지되었으나 그 외에는 여전히 쓰이고 있다.


비스페놀A

플라스틱 제조 원료. CD, 플라스틱 용기, 젖병, 음료수 캔 등에 쓰이는데, 음식과 접촉하면 그 안으로 침투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작용하여 정자 수를 감소시키거나 유방암 등을 일으킨다. 극소량으로도 아주 위험하여 임산부의 경우 태아에게도 영향을 미치는데, 현행 일일섭취허용량 제도로는 그 통제가 어려운 실정이다. 화학 기업에서는 11건의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으나, 독립적인 연구에서는 115건 중 94건, 90% 이상이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DES

디에틸스틸베스트롤. 1938년 영국인 찰스 도즈가 최초로 합성한, 에스트로겐 유사 효과를 갖고 있는 환경 물질이다. DES는 제조하기 쉽고 비용도 싸기 때문에 다방면에 이용되었다. 가축의 생장을 촉진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기에 상업적으로도 그 가치가 뛰어났으며, 폐경기 여성의 안면 홍조와 질염 치료, 젖 분비를 끊으려는 산모, 사춘기 소녀의 여드름 치료, 성장 조절, 심지어 응급 피임약으로도 쓰였다. 하지만 산모가 임신 중에 섭취했을 때 아기들에게 해표지증과 같은 기형을 초래하며, 기형이 없다 하더라도 일정 나이가 되면 질암이나 유방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을 유발한다.


PCB

폴리염화바이페닐. 변압기나 유압 장치에 냉각액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플라스틱, 페인트, 잉크, 종이 등 다양한 제품에 윤활제로 쓰인다. 강력한 잔류성 유기오염물질로 그 처리가 쉽지 않고, 잘못 처리하면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발생한다.


다이옥신

인간이 만들어 낸 물질 중 가장 독성이 강하다. LD50(반수치사량)은 0.02mg/kg. 세계보건기구는 ‘지극히 위험한’ 물질로 분류. 1957년 독일의 빌헬름 샌더만이 최초로 발견. 1976년 7월 16일, ‘세베소 재앙’으로 불리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뒤 ‘세베소의 독’이라고도 불림. 다이옥신 80g을 상수도망에 뿌리면 800만 명의 인구가 사는 도시 하나를 없앨 수 있다. 인간이 다이옥신에 노출되면 온몸에 농포가 올라와 몇 년 동안 지속되거나 평생 사라지지 않는 염소여드름에 걸린다.


벤젠

클로르벤젠 또는 모노클로르벤젠. 벤젠은 원래 콜타르의 부산물이다. 합성 접착제와 염료 제작에 용매로 사용되었고 금속의 얼룩을 빼기 위한 용매, 합성 고무, 플라스틱, 폭약, 농약 제조 시 중간재, 휘발유 첨가제로 쓰이기도 했다. 간, 신장, 폐, 그리고 무엇보다 지방조직에 축적된다. 증기로 흡입하면 200ppm(930mg/㎥) 노출 시 안구와 호흡기가 자극된다. 대량 노출 시에는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반수 상태, 신체 조정 능력 상실, 중추신경계 퇴화, 의식 혼란 등 급성 신경계 질환을 동반한다.


DDT

1939년 스위스의 폴 뮐러가 발견. 제초제의 성분으로 쓰였던 내분비계 교란 물질.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벼룩을 없애기 위해 수천 명에 달하는 군인, 난민, 포로에게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떤 해충이라도 박멸할 수 있는 ‘기적의 살충제’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특히 말라리아를 죽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LD50은 113mg/kg(쥐의 경우)밖에 되지 않지만 장기간 노출되었을 때 내분비 계통을 교란시켜 암을 유발하고, 특히 아이를 낳기 전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기형아 출산이나 불임 및 난임이 발생할 수 있다.


▸추천의 말


아는 것이 힘이다. 소비자가 자신의 식탁을 점령해야 한다!

《르몽드》


농약에서부터 식품첨가제까지 우리 일상에 만연한 독성화학물질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기업들의 압력과 조작을 폭로한다.

《엑스프레스》


저자가 원하는 것은 특종이 아니라 모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증거다.

《라크루아》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본질은 위험 물질들을 열거하는 데에 있지 않다. 화학물질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단서를 흐리는 화학 기업들의 조작을 파헤치기 위해 추리소설 기법을 도입한다.

《주르날뒤디망슈》


철저하고 정밀한 데이터와 수치로 보는 충격적인 현실!

《레쟁록큅티블》



▸지은이 소개

마리 모니크 로뱅 Marie-Monique Robin

언론인, 다큐멘터리 제작자.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했고, 프랑스 공영 채널 중 하나인 France3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1989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1995년에는 프랑스의 권위 있는 언론인상 알베르 롱드르 상을 받았고,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누비며 다수의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를 제작하여 국제무대에서 서른 차례 상을 받았다. 오랜 기간의 취재를 거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현재 그것을 다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그녀가 다룬 문제로는 인권, 에이즈 예방, 매 맞는 아내, 아동 성폭력 퇴치 운동의 부작용 등이 있으며, 2004년부터는 생물다양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장기 도둑: 장기 매매에 대한 집중 취재』, 『식스센스, 과학과 파라노말』, 『20세기 명사진 100』, 『21세기 명사진 100』, 『죽음의 기병대, 에콜 프랑세즈』 등이 있다.



옮긴이 소개

권지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불과를 나온 뒤 파리통역번역대학원(ESIT) 번역부 특별 과정을 졸업했다.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장벽』, 『르몽드 세계사』, 『2033 미래 세계사』,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서구의 종말, 세상의 탄생』, 『검열에 관한 검은 책』 등이 있다.







▶ 『죽음의 식탁』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하나,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알라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와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은 2014년 05월 08일(목)~2014년 05월 18일(일) (10일간) 입니다.

셋, 총 추첨 인원은 10명입니다. 

, 발표일은 2014년 05월 20일 (화) 오후에 공개됩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2014.05.23 (금)~06.03 (화) 11일간입니다. 
        
마지막, 당첨자 분들은 서평을 작성 한 후『죽음의 식탁』서평 발표 페이지에

개인블로그/알라딘 블로그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서평단 지원자가 모집 인원에 미달할 시,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일부 인원만 선정할 수 있습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작성하지 않을 시에 다음 서평 모집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판미동을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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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기쁨 1 - 음악의 요소들 음악의 기쁨 1
롤랑 마뉘엘 지음, 이세진 옮김 / 북노마드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1권에서 30번의 대담을 통하여 음악이 줄 수 있는 예술적 기쁨의 요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음악의 기쁨은 어디있는 거죠?

언제나 양 극단 사이에 있죠.

한쪽에는 자연의 모사, 다시말해 물리적이고 맹목적인 흉내내기가,

다른 한쪽에는 자연에 대한 망각, 다시말해 음악을 설계도 한장으로 전락시키는 철저한 추상화가 ...(24)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이 책의 출간연도가 1947년이라는 것이다.

프랑스는 안 그래도 워낙 자국 중심주의가 강한 나라인데다가,

세계대전 직후다보니 독일 음악과 대조되는 측면들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시는 멜로디의 기저를 파고들고

멜로디는 말 속에 녹아내리는 것 같죠.

슈베르트의 기적은 음악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모차르트의 기적에 화답했지요.

그 요소란, 강렬하면서도 내밀한 감정이 응축되었다가 짧은 순간 터져나올 때의 전율이죠.(22)

 

주된 해설가 롤랑 마뉘엘은 짖궂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그가 가장 잘 쓰는 용어가 '내밀한' 이란 단어인데,

그러게, 음악을 표현하는 말로는 '내밀한 감정'의 느낌 이상이 있을까?

 

플루트는 관악기에서 소프라노에 해당하죠.

관악기들이 함께 연주될 때 가장 높은 음역대를 담당합니다.

화려하고 급속한 악구, 트릴, 아르페지오, 바르게 반복되는 음표들을 특히 잘 소화해내지만

아주 잔잔하게 노래할 줄도 아는 소프라노랍니다.

고음은 화려하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하죠.

중음 영역은 부드러운 표현력이 넘치고요.

가장 낮은 음들은 부드러우면서도 깊이 뚫고 들어가는 맛이 있습니다.(40)

 

틈틈이 플루트를 배운 지 1년 되었는데, 이런 부분을 읽으면 격한 공감을 느낀다.

이제 겨우 고음을 내는 정도지만, 새소리처럼 부드러운 소리를 내보내는 악기를 들고 있으면

이 탁한 세상에서도 잠시 시름을 이길만 하다.

 

클라리넷의 음색은 부드럽고 순해요.

오보에의 음색은 비음이 섞인 듯 예리하죠.(44)

 

이 책을 읽으면서, 소리를 모르거나 낯선 악기들도 만나게 된다.

또는 전혀 모르는 음악의 제목을 접할 때도 많다.

그런데, 뜻밖에 그런 것들을 찾기는 쉬웠다.

휴대폰으로 금세 검색할 수 있고, 자세한 음향까지 제공되는 걸 보고, 무심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피아노를 '피아노포르테'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 연유도 알게 되었다.

 

하프시코드로는 콘트라스트 효과밖에 얻지 못하니까요.

그들은 여리게도 세게도 칠 수 있는 알기를 요구했습니다. 그게 바로 이탈리아어로 피아노와 포르테죠.(127)

 

이게 참 흥미롭다니가요. 기능이 기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구가 기능을 만든단 말이죠.(129)

 

음악의 발전은 악기의 발전과 긴한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이야기다.

아니, 필요해서 악기를 발전시킨다기보다, 악기의 발전이 음악의 발전을 리드한단다.

 

박자와 리듬의 싸움에서 뭐가 가장 인상적인가요?

뭔가 들쑤시는 듯한 강박관념이랄까?

규칙성에 대한 강박관념이죠. 늘 똑같게, 등시적으로 장단을 쳐주지만 그건 오로지 솔리스트가 자유롭게 노는 리듬.

거의 즉흥적인 그 리듬을 돋보이게 하려고 존재하죠.

박자는 우리에게 리듬의 존재를 계시해 주고 우리는 그 둘의 관계를 만끽하는 겁니다.(156)

 

규칙적인 박자 사이에서 나름의 리듬감을 느끼며 노는 것이 음악이다.

롤랑 마뉘엘의 설명은 재미있고도 간명하다.

 

삶의 리듬이 빠르다는 표현이 왜 틀렸는지를 깨닫기 바랍니다.

연주 속도가 어떻게 되든 음가들 간의 관계는 변하지 않아요.

바로 이 음가들 간의 관계가 리듬입니다.

속도는 템포죠.

그러니까 우리는 템포를 빠르게 당겨 살아가고 있는 거지. 리듬을 빠르게 한 게 아니에요.(149)

 

우리는 너무 삶의 속도가 빠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리듬이 빠르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일반인은 쉽게 사용하는 말도 전문가의 귀에는 금세 들어오는 모양이다.

 

민요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다.

 

조개가 진주를 품듯이

서민들은 자기들의 노래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죠.

멜로디적인 요소는 학문적 음악에서 빌려왔다든가

작업의 리듬, 노동의 추임새, 일하는 이들의 의성어나 의태어에서 빌려왔을 겁니다.

이 요소가 조개가 받아들인 이물질 같은 역할을 했고

그 이물질을 귀한 분비물이 감싸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겠죠.(183)

 

하다못해 축구를 해도, '출격, 침몰, 낭자군...' 이런 전투 용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한국의 표현에 비하자면,

참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다.

다 적어 두자면 한도 없을 판이다.

문화의 힘일 수도 있겠고, 삶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 모양새일 수도 있다.

 

차이콥스키에겐 조형적인 상상력이 있어요.

차이콥스키가 쓴 교향악들도 늘 춤을 부르는 것처럼,

혹은 춤에 화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니까요.

여기에 뿌리깊은 환상 취향, 악기의 음색에 대한 탁월한 이해까지 갖추었죠.(211)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부러웠다.

 

어쩌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면서도,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그러면서 내용이 전문적인 내용으로 가득한데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일반인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풀어 설명하면서도, 횡설수설이 거의 없고 초점을 놓치지 않는 줄기를 유지하고 있다.

 

충분히 독서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면서도,

충분히 지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좋은 책이다.

 

 

다만, 한자를 병기하는데 한자에 약한 요즘 편집자들의 실수가 두드러지게 눈에 보인다.

좀더 작은 데서도 관심을 보여주었더라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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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9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부미 2015-01-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먼저 찾아서 봤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다 읽고난 지금도...

이 책의 제목은 뭘 함축한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김형경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유익하고 심리 분석에 유용하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어린 시절의 기억 내지 추억을 안고 어른의 삶을 산다.

제 삶을 어떻게도 통제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의 환경은 모질게도 기억에 남아 있다.

 

방어 기제라는 말도 있고, 트라우마라는 말도 있다.

노이로제라는 말도 있고, 좀더 진행된 정신질환이라는 말도 있다.

 

어린 시절과 관련된 상처를 되씹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것이 치료의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고,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소독 안된 손톱으로 긁으면 부스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상처는 긁어내서 염증을 제거해야 비로소 새살이 건강하게 생성될 수도 있으리라.

 

한국의 여러 민요 아리랑 중 가장 토속적이고 버전이 많은 정선 아라리를 녹여 넣은 부분은 멋지다.

그리고 상상과 상징 속의 정선 아라리의 절절한 사연과,

실제 아우라지 강가의 뙤약볕 내리쬐는 멋대가리 없는 풍경을 맛본 사람이라면,

현실과 진실의 사이가 얼마나 막막한 간격을 가진 것인지를 깨달으리라.

 

이 소설 속 삶의 양식 내지는 삶을 대하는 태도는,

한 개인의 것, 또는 소설가의 상상 속의 자세일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일반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랑은 첫사랑.

 

이런 농담 반, 역설 반인 표현이 있듯이,

모든 순간의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는 외설이고, 어떤 심정에서는 예술이다.

외설을 넘보지 않는 사랑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지만, 외설만이 목적인 매춘을 사랑이라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삽짝을 흔들면 나온다던 사람, 울타릴 부셔도 왜 아니 나와...(54)

 

정선 아라리의 이 대목이 난 가장 애린다.

삽짝을 흔들면,

신호를 보내면 나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했건만,

울타리가 부셔질 정도로 오래 흔들어도, 그는 나오지 않는다.

그 또는 그녀는 아무래도 나올 사정이 아닌것 같다.

부모가 허락하지 않는 연인이거나, 아니면 혼외의 애인이거나 그런 사정이겠지만,

기다림의 애절함을 어쩜 저렇게 표현할 수 있나 모르겠다.

 

허섭하기 그지없는 주저리주저리의 정선 아라리에 담긴 저런 능청스러움들이 난 참 사랑스럽다.

 

일상은 자주 허위과장 광고인 듯 했고,

우리네 삶은 통째로 농담에 가까운 것이 틀림없었다.(62)

 

인혜가 어떤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면서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조감'하듯 삶을 바라봐선 연애가 잘 안 되는 법이다.

연애는 뭐가 뭔지 모르지만, 심장에 아릿한 전기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선지 인혜의 애인과 나누는 정사는 무척 힘든다.

 

저는 애착이 없어요.

물질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집착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가를 알기 때문에...(93)

 

정신과엘 찾아간 세진은 상담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자신이 비어있음을 발견한다.

아버지의 과도한 사랑에 기뻐하지 못하던 경험.

그래. 어린 시절의 과도한 기대는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크라잉 포 헬프를 하지 않는 영혼.

처음에는 그걸 할 대상이 없었겠고,

다음에는 버릇이 되어 그런 말을 입밖에 내지 못했고..."(109)

"둑가지 차서 찰랑거리는데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112)

 

차면 비워야 한다. 그런데 지혜롭게 비울 줄 모르는 어린 시절이 상처가 되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임을 모르는 자들과 사는 이발사는,

대숲이 없었다면 속이 터져 죽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인간에게는 대숲이 필요한 법이다.

대숲을 만드는 지혜가 인생을 살린다.

 

어린 시절부터 '애 늙은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이런 축에 속할게다.

 

"맞아요. 제게는 나를 먼저 챙기는 감각이 없는 것 같아요."

"없는 게 아니라 발달되지 않은 거죠. 싹부터 잘라버렸으니까."(115)

 

이런 사람들에게는 과도한 슈퍼에고가 지배하고 있을지 모른다.

일상적으로 리비도의 에너지를 억눌러왔던 것이 습관화된 것이니.

공부는 잘 했을 수도 있고, 시험도 잘 보고 사회적으로 괜찮은 지위를 획득하는 데는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부정적인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흥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할 게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정확하게 우리 사회의 평균적 가치관을 반영한다는 게 인혜의 생각이었다.(179)

 

그렇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 가 등장한 요즘의 재혼 풍속도도 그렇고,

옥탑방 고양이, 과속 스캔들...이 등장한 이후, 동거나 혼전 순결 내지 속도 위반은 더이상 감추고 쉬쉬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물론 드라마 속 설정은 늘 과장되어 있지만,

그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비판의식과 사기꾼을 잘 알아맞히는 능력,

그걸 직관과 통찰력이라 생각했는데..."

'가슴에 쌓인 게 많은 사람', '방어 의식'이 하나의 뿌리일 거라는 점...(197)

 

애늙은이로 자란 사람들이 통찰력이 있다.

그건 당연하다. 남의 눈치를 본 것일수도 있고,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길러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산 사람들을 점집에서는 쌓인 게 많다고 표현할 수 있고,

프로이트식 심리학에서는 방어 의식이 발달했다 볼 수도 있다는 거다.

 

김형경의 장점은 이런 것이다.

한 편의 책을 읽으면 좀체 통합해서 볼 수가 없는 것들을,

이리저리 얽어 엮으면서 어느 순간 꽉 조여지는 퍼즐을 맞춰넣는 희열을 맛보게 하는 것.

물론, 그 희열의 실체는 금세 아무 것도 아닌 게 될지라도...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대하는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많은 사람이니까..."

"아무 것도 아닌 말에 너무 많이 상처받았어요..."

"그게 콤플렉스예요. 아무 것도 아닌 말에 상처받는 거. 옷이 얇아 춥겠구나... 그러면

생각이 자라나죠. 가난해서 옷이 없다... 그렇게 상처가 되는..."(199)

 

심리학을 배우면서 '저거 나다' 라고 하는 사람은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전쟁과 가난, 온갖 사고와 재난이 종합선물세트로 주어진 현대 한국사를 생각할 때,

한국에서 콤플렉스 없는 사람이 누구 하나 있을 것인가 생각하면,

융처럼 그것을 개인적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문제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제 무의식 속에는

엄마의 자기중심성과 모성 부족에 대한 분노가 있었던 건가요?(214)

 

모성은 돌봄이고, 베풂이다.

가난한 사회에서 엄마가 있다고 해도 모성 부족을 느끼는 것은 흔한 일일지 모른다.

가난하면서도 부조리한 사회는 그래서 본인도 모르게 분노를 한켠에 심고 기르는 일인지도...

 

"이렇게 해서 상처가 치유되나요?"

'아니죠.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을 만큼만 위험 수위를 낮추어 보자는 거죠.

인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5%. 근데 5%만 달라져도 살기가 한결 수월하죠."(231)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나무에서도 상처는 옹이로 남는다.

다만 상처를 이겨낸 자국만이 훈장처럼 기억된다.

사람은 달라지기 힘들다. 그래서 좋은 친구나 가족이 곁에 있어야 한다.

 

무언가 아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을 받았구나(242)

 

한국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은 대부분 '아이가 원하지 않는 방식'이다.

아이들의 삶의 자양분이 되어주면 그뿐이어야 하는데,

마치 아이가 공부를 잘 하고, 진학을 잘 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듯 구는 어른들이 많다.

다 상처를 주는 일이다.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그것을 이겨내는 훈장을 단 아이들은 그나마 추억으로 돌리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어른들이 많이 반성해야한다.

 

"누가 감히 나를"이 아니고 "누가 나 같은 걸"...(하, 26)

 

자기 존중감이 이렇게 약한 사람도 세상에 많다.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좋고 외모도 빠지지 않는 아이들 중에도,

이런 콤플렉스를 가진 아이들이 뜻밖에 많다.

그러니 공부에서, 머리에서, 외모에서 빠지는 아이들은... 어쩌랴...

 

스콧 펙의 '거짓의 사람들'에서 귀신들림의 원인을 외로움이라고 진단했을 때,

면담자는 거기에 적개심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그 모든 말들의 해답이 지금 내 눈앞에 환하게 펼쳐져 있는 셈이었다.(59)

 

외로움이든 적개심이든,

감정으로 치면 '슬픔'에서 아주 강한 자극인 감정들이다.

이런 부정적 감정들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 '한'이 된다.

귀신들림이든, 정신병이든,

한이 되도록 오래 억누르면 안 된다.

 

무당이 푸닥거리를 하듯,

그 한을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강도로 풀어주는 일,

해원굿은 그만큼 중요하다.

누구나 상처를 받고, 외로움을 겪고, 적개심을 느끼지만,

적절하게 풀어지면 한으로 남진 않을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중층 구조를 가진,

얼마나 왜곡된 곡면들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저런 책으로 이해한단 말인가.(198)

 

이 소설의 한계를 스스로 잘 깨닫고 있다.

아무리 많은 심리학 서적을 참고하여 읊더라도,

인간 심리의 모든 '기울기'를 순간포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엄마는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간섭과 지배,

잘못에 대한 지적, 엄격한 도덕의 강요, 그런 식이었어요.

엄마는 그것을 엄격한 교육이라 생각하며 평생 그런 태도를 견지해 왔어요.(256)

 

프로이트가 지적한 '빅토리아 시대의 부모'라는 말처럼,

도덕적으로 엄격하고

규범에 완고한 부모가

자식에게 상처와 모욕감을 남기게 된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내 마음 속에도 상처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뉴스를 보면,

한눈에 그 상황이 파악이 되는 현실 인식의 시각은 거의 트라우마와 같은 것으로 남았다.

이건 속임수야. 이건 거짓말이야. 이건 눈가림이야.

이런 것이 바로 보인다.

병이다.

 

병맛이란 말이 있다.

'병(신 같은) 맛'이라는 뜻에서 나왔다는데,

'재수없다, 형편없다'는 뜻으로 쓴다.

 

요즘 세상, 참 병맛이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 보았다.

 

아이들 중간고사 감독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곱씹었다.

마음이 자꾸 분노의 게이지를 치솟게 만들 때,

나는 응당, 무언가에 집착하는 바가 없이, 내 마음이 어디서 생기나를 관찰하여야겠다.

가족력으로 혈압도 높은데,

병맛인 세상에 혈압이 오르면, 나만 손해다.

 

분노할 일은 쌓이고 쌓였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할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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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5-02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은 자주 허위과장 광고인 듯 했고, 우리네 삶은 통째로 농담에 가까운 것이 틀림없었다.(62) - 제가 자주 가지는 느낌입니다. 진실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고 잔인하다. 세월호를 보더라도. 남탓일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제가 속한 업계나 제 자신도.

평소 주신 평균 별점보다 낮은 책이네요.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로맹 가리 지음, 이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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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구간별 승차권이 있던 시절,

파리의 철도역에 붙어 있던 푯말이라고 한다.

 

의미심장한 제목에 이끌리고,

로맹가리라는 명성에 붙잡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웃지도 못하고, 덮어버리지도 못하는 야릇한 상황에 직면한다.

 

환갑이 다된 나이에,

젊은 애인과 사랑에 빠진 한 남자.

다 좋은데, 그만 사랑이 잘 안 된다.

그 시대엔, 비아그라가 없었던 것.

 

아, 비아그라여,

로맹 가리에게 희망의 길을 줄 것이지...

절망으로 이런 책을 쓰게 만들 것은 무엇인가...

 

지금이라면 약사와 상의하면 될 일을, 이 책에선 참 구구절절이 많은 방식을 활용하는 그를 보여준다.

하긴, 지금이라면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도 구해보고 그러련만,

주인공은 체격 좋은 젊은이에게 돈을 주면서 젊음을 상상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절망이 그를 움직이는 셈일까...

 

늙어가면서 비로소 우리는 늙음을 준비한다.

계절계절이, 단계단계가,

변화를 알리는 표시들이 바로 늙어가는 거였다.

그것에 서서히 익숙해짐은 숙고할 시간을 주고,

준비할 시간을 주고, 채비를 차려 거리를 둘 시간을 주며,

지혜와 평정심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쇠약함을 느낀 적이 없다. 내 감각은 늘 깨어 있었다.(35)

 

참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이렇게 깊은 사색에 들다니...

더 안쓰러운 것은, 사색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은 살아 있다는 저 착각이라니...

그가 고개숙인 남자가 되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을까...

 

나는 내 일상의 기성복, 냉소 속으로 몸을 숨겼다.(45)

 

멋진 말이다. 일상의 기성복 속으로 숨어드는 자신을 이렇게 읽어 내다니...

 

"자크, 나는 두려워요. 당신하고 이렇게 행복한데...

  모르겠어요. 매 시각 위협당하는 기분이에요."

"이봐, 로라. 당신이 행복하다고 해서 삶이 노여워하진 않아.

  인생에 대해서 뭐든지 말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

  삶은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는 거지.

  행복과 불행도 구별할 줄 모르거든.

  삶은 자기 발치도 볼 줄 모른다고."(62)

 

브라질 출신의 젊은 애인과 노인의 대화.

조급해하는 애인을 달래려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우리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묻는데, 삶은 속단하고 재단할 수 없다고 위로한다.

과연 위로가 될는지...

 

어린아이가 지닌 시선은 길가의 낡은 것조차도 새것으로 보이게 한다.

로라와 함께하면서 아들이 어렸을 적에 주었던 기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파리는 처음 같았다.(67)

 

이 아저씨 제대로 사랑에 빠진 셈이다.

사랑을 이렇게 관조할 수 있는 시선은, 젊은이의 그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원숙하다.

그래서... 독자인 나는 더 안타깝다.

아니, 한편으로는 박범신의 '이적요'가 차라리 살갑게 느껴진다.

이 아저씨는 좀, 지나치게 밝히는 편이랄까...

그런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니, 좀 민망한 느낌이다.

 

참 더러운 일이에요.

늙어가는데 여전히 마음이 젊다는 것이요... (224)

 

이 책의 주제는 이것이다.

삶의 허덕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사람들,

그런데 허덕임에서 벗어나고 보니,

밀물처럼 시나브로 밀어닥친 노년에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다.

 

로맹 가리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대선 후보의 '대필 자서전'(ㅋㅋ 한국식 역설이라니) 제목이 떠올랐다.

희망도 절망도 다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뜻이었으리라.

 

로맹 가리 역시, 발기 부전의 곤혹스러움.

이런 걸, 공자 용어로 '불혹'이라고 불렀다고 이권우가 그랬는데,

그에게 절망은 간절함이 되어 소설을 향한 움직임으로 피어났다.

 

나도 내가 느끼는 나는 아직 청춘인데,

초등학교 동창들의 밴드에 들어가보면, 늙수구레한 중년들이 그득하다.

마음은 젊은데...

여전히 젊은데, 늙어간다는 일...

더럽기만 한 일일까?

부끄럽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절망은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리라.

곤혹스러운 나이, 불혹에서야 말이다.

 

불혹의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거시기는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의 은유는 이런 것이라 좀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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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처음이 쉽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전혀 다른 중력장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위도에서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지구의 자전을 받아들인다.

북위 30도 정도에서는 시속 800킬로미터 가량의 속도감을 까먹고 껌딱지처럼 지구에 붙어 사는 것이다.

적도에 사는 사람들은 시속 1000킬로미터를 달린다고 한다.

 

매트릭스란 그런 것이다.

거기 붙어서 살 때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

 

그런데, '여기'서 '저기'로 갈 때,

말하자면, 적도에서 북위 30도로 물체가 이동할 때, '차이'가 발생한다.

그 힘을 '전향력'이라고 하는데, 푸코가 빠리의 팡테옹에서 실험한 것이 작년 수능 국어영역에 출제된 일이 있다.

진자를 정남에서 정북으로 보내면, 그것이 그 미세한 '전향력'의 영향으로

정북에서 미세하고 오른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 진자는 다시 정남보다 미세한 왼쪽으로 돌아오고,

길게 본다면, 진자는 회전하게 된다.

 

사람들이 나이에 따라 알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게 다 매트릭스의 조화다.

예전엔 남자 13세 여자 15세 정도면 결혼해서 애낳고 살았는데, 요즘엔 애들로 취급한다.

 

이 소설 역시 미래형 판타지인데,

나이에 따라 적합한 일을 위원회에서 지정해 준다.

산모도 있고 노동자도 있다.

주인공 꼬마는 기억 보유자로 지정받아, 기억 전달자로부터 '기억'이라는 것을 얻게 된다.

 

이런 사소한 아이디어로 책을 쓴다는 것이 재미있다.

인간이 가진 능력 중 하나인 '연역'의 힘이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 이라는 말인데,

'책'은 인간의 놀이 중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판타지 소설은 '연역'하는 인간의 두뇌가 만드는 가상 현실을 최대한 실현한다.

 

이 책에서 역시 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기억 전달자 뿐이다.

과거 인간의 삶과 인간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기억 전달자'와 '기억 보유자'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뭔지도 모르고 세상의 논리를 받아들인다.

 

임무 해제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심을 가질 필요도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것을 본질로 삼은 주인공 조너스는 '평화로운 마을'의 거짓을 깨닫는다.

 

완벽한 행복에 이르기 위하여

개인의 선택에 따르는 어떠한 종류의 잘못도 없다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위험의 소지를 모두 제거해 버린 곳.(304)

 

어떤 이유로든, 통제의 가지치기는 거짓이다.

아무리 인간의 기억을 지워나가려 해도, 삶의 지혜는 '기억'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것이 책의 힘이니까.

 

'늘 같음 상태'와 예측 생활에서 벗어난 후,

조너스는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신기한 풍경에 압도되었다.(289)

 

지구에 붙은 껌딱지 같은 인간은 전향력을 느낄 수 없다.

늘 같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통제 사회는 그렇게 해서 불평등한 균형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 균형에 해가 되는 존재는 '임무 해제'시키면 그만이다.

 

조너스는 방안에 노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혼란에 빠졌다.

마을에서 노인들은 절대로 노인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곳은 그들이 존경받으며 훌륭한 보살핌을 받는 곳이었다.(210)

 

이 과거의 미래는 이미 현재가 되어버렸다.

상상 속의 미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방안에 노인들은 없다.

훌륭한 보살핌을 받으며 모두 노인병원에서 죽기만을 기다린다.

까뮈의 '이방인'에서 어머니가 죽기 전 남친을 사귀던 그런 곳에서...

 

눈이나 썰매는 어떻게 된 건 가요?

날씨를 통제한 거지. 눈이 내리면 식량들이 잘 자라지 않거든.

교통이 거의 마비 상태에 빠지기도 했단다.

그건 전혀 실용적이지 않았지.

언덕도 마찬가지란다.(143)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은 모두 '통제'하거나 '제거'하는 사회.

 

마을 안의 책들은 마을 생활에 도움을 주는 참고 서적들, 마을 소개서, 규칙을 실어 놓은 규정집... 이었다.

하지만 이 방은

벽이 천장까지 온통 책꽂이로 덮여 있었으며

거기에 책이 가득차 있었다.

책의 종류는 수백 권, 어쩌면 수천 권은 되어 보였고,

반짝거리는 글자로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126)

 

기억 보유자로서 기억 전달자를 처음 만난 장면이 서가였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나는 통제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사상의 자유'를 본다.

아주 저렴한 이름 '해리 포터'가 블링블링한 집안의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보다 나아질 수 있는 곳이며,

질서라는 이름으로 획일화를 강요하는 '빅 브라더' 들에게,

빠큐~를 날려줄 수 있는 '창의성'의 파워를 느낄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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