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왜, 왜, 한 사람도 살리지 못했나?

왜, 왜, 왜, 우왕좌왕하면서 거짓만 보도하고 국민의 눈을 가리려 했나?

 

유족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

방송 보도통제는 5공 시대를 방불케 한다.

엊그제는 유족의 뒤를 사찰하던 경찰이 발각되기도 했다.

 

그런 정부는 필요 없다.

서울대 교수들과 문재인 의원의 글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차마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천진난만한 학생들, 무고한 시민들이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가족들과 함께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 했다. '나라초상'을 당하여 참으로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오월'이었다.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졸지에 자신의 꿈을 난파당한 어린 영혼들이 저 세상에서나마 평화와 안식을 얻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유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겠지만,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은 이 대재난을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길만이 희생자들에 대한 최선의 애도이고, 또 이 땅에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세월호 침몰에는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하고 오직 돈만을 추구한 '청해진 해운'의 천박한 기업행태와 함께, 감독기관의 부패와 행정 공백,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더 근본적으로 온갖 종류의 '관피아'로 지칭되는 일련의 '연줄관계망'의 구조적 폭력과 이윤, 결과, 속도, 효율성만을 강조해온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의 논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국민을 진정으로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국가'의 부재였다. 승객들과 선박을 돌보지 않고 제일 먼저 탈출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스스로 '재난의 컨트롤 타워(관제탑)'임을 부정한 청와대의 대응과 판박이거니와, 사고 발생 직후 해양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는 이번 참사가 무엇보다도 인재(人災)임을 보여준다.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채 해양경찰이 해군 및 민간잠수사의 활동을 방해하고, '언딘'이라는 일개 민간업체가 구난과 구조 업무를 사실상 이끌었으니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는 직무유기를 넘어 그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였다. 이는 그간 정부 자체가 공공성을 허물면서 '기업 프렌들리'를 외쳐온 '기업국가'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것도 나라인가?' 하는 자조가 국민의 분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고 이후 정부 및 정권의 대응은 분노를 넘어서 정부와 국가에 대한 신뢰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정부는 자신의 무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언론과 국민 여론을 통제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고, 사복경찰을 동원하여 피해자 가족의 동정을 살피고 심지어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등 피해 가족 및 시민들을 부당하게 감시했으며, 비판자들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정부 관리와 여당 의원, 언론사 간부는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은 정부의 부실하고, 무능하며, 무성의한 사태 해결 노력에 대해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보다는 유족 대신 조문객을 위로하는 보여주기식 정치와 행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정부의 구조 행위에 대하여 '살인행위'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의 몫을 과거 정부로 떠넘기며 적폐(積弊)를 운운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간첩 조작 등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사건이 연이었고, 그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시종일관 요구했지만 그러한 국민적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 있었으나 그 경고음을 현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현 정부에 의한 민주주의의 훼손과 비판·감시 기능의 상실이야말로 적폐를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적폐의 온상은 현 정부의 비민주성과 무능, 무책임성이고, 그 정부를 이끌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적폐' 그 자체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으로부터 '기레기' 취급을 받았고, 유가족들은 국내 언론을 불신하고 외국 언론을 상대하였다. 해외 교포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한국 정부와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세계적으로 유수한 신문들에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데 대해 언론인들의 자성과 자기개혁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정부의 언론 통제 철폐와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KBS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정부의 방송 장악 기도, 언론 통제와 권언 유착의 실상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지만 청와대를 비롯하여 관련 기관 어느 곳도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대통령 인수위원회 관여 인물을 방통심의위원장에 내정하는 등 정부의 언론 장악 획책은 지칠 줄을 모른다. 이제 국민들은 언론을 정부의 홍보 대행기구, 선전도구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실상이 그렇다면 국민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 수습의 중심에 언론 통제 철폐와 언론 개혁이 있다.

많은 분들이 현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보고 그녀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 정권의 복지공약은 어디로 갔는가? 현 정부는 복지는커녕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임을 세월호 참사가 증명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안보가 어디 있을 것이며, 그 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정부로서 자격도 없는 것이 아닌가. 또 현 정부는 대선부정 문제를 비롯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종북으로 몰거나, 전 검찰총장의 실례에서 보듯 개인적 문제를 트집 잡아 인격살인을 통해 비판자를 몰아내는 일 따위를 자행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고 자기교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해 왔다. 정부가 돌아봐야 할 것은 과거의 적폐나 일개 기업의 비리, 한낱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능력과 공약 위반, 그러한 사태를 낳은 자신들의 허물과 국정철학, 그리고 집권 이래 현 정부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훼손해가며 쌓고 있는 적폐들이다. 이번 참사는 근본적인 인적 쇄신 없이 부서 이름 바꾸기 차원의 재난 대응과 말만 번지르르 한 안전대책들로 수습될 문제가 아니다. 담당 부서와 안전대책들이 없어서 눈앞에서 어린 영혼들을 수장시킨 것이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이 뒤늦게 책임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경해체만으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는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진단을 통해서 책임소재를 밝히고, 그에 상응한 개혁을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 전에 이 정부의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 청와대와 권력기관들의 인적쇄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구시대적인 적폐의 근원이 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안보실장, 홍보수석, 그리고 검찰총장의 자리를 쇄신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숨 쉬기도 미안한 4월, 또 미래세대의 교육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제자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운 5월을 보내고 있다. 침몰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위해 대기했던 민간 잠수사들, 진도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 자원봉사자들, 분향소마다 길게 줄을 이어 늘어선 조문객들, 어린 영혼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켜진 촛불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묵묵히 지켜본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앞장서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줄 아는 정부, 의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언론통제가 없는 나라,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부모형제들이 더 이상 슬픔과 분노로 자신의 눈자위가 붉어지지 않는 사회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온 국민의 비탄과 공분을 받들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1. 해경해체 등 조직개편 이전에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정부는 진상 조사의 주체 이전에 조사 대상이니 유가족 대표와 시민 대표가 주도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좌초와 침몰의 원인, 각 단계별 인명구조가 지연되고 실패한 원인, 무책임한 정부 대응을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1. 청와대부터 정부 각 부처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이고 철저한 인적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정부는 그동안 자행한 언론 통제에 대해서 사과하고, 언론 통제 철폐를 약속해야 한다. 또한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1. 세월호 사건의 뿌리는 지난 정권부터 계속된 무분별한 친기업 규제 완화이다. 정부는 제2의 참사를 예고하는 과잉친기업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두는 국정을 운영하여야 한다.

1. 대통령은 이번 사고 대처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최고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이번 참사의 근원적인 수습에 대해서도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위의 요구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다시 국민적 사퇴 요구에 부딪힐 것이다.

2014년 5월 20일

서울대 민주화 교수협의회

 

 

국정철학과 국정기조의 근본을 바꿔야 합니다.

 

국가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이 거듭해서 묻는 질문입니다. 어제 대통령의 담화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시 묻습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국가와 정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무능력과 무책임 때문에 무고한 생명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비극입니다. 이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이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돈이 먼저인 나라에서 사람이 먼저인 나라로 바뀌어야 합니다. 효율과 속도가 먼저인 나라에서 생명과 안전이 먼저인 나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 대통령 스스로가 바뀌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담화가 그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실망만을 안겨주었습니다. 표피적인 대책뿐이었습니다. 희생양으로 삼은 표적에 대한 호통과 징벌만 있었습니다. 비극적 참사에 대한 근원적 성찰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앞뒤가 바뀌었습니다. 지금 바뀌어야 할 것은 바로 대통령의 국정철학입니다. 국정운영 기조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재원배분 기조입니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더불어 사는 따뜻한 공동체의 비전을 많이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에 비친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 비전과 정반대였습니다.지난 대선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던 경제민주화 공약은 이미 후퇴했습니다. 그 대신 정부는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기업주의 돈벌이와 자본의 이윤추구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규제완화 정책 하에서는 철도와 항공도 위험하다는 우려가 높습니다.
모든 규제완화가 선은 아닙니다. 인권 관련 규제, 생명과 안전을 위한 규제, 공정한 시장을 위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오히려 악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국정기조는 생명·안전·공존 등 사람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무시해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인권이 위협받고 인명이 경시되는 위험한 지경에 처했습니다.

‘우현’으로만 기울어온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서의 ‘평형’도 상실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 잡는 데 명운을 건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입니까? 정상과 비정상은 가치와 철학에 따라 달리 평가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서는 국민들이 공감하는 대한민국의 ‘정상성’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국정철학과 국정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시급한 대한민국의 과제입니다. 시스템과 부처의 문패를 바꾸는 것은 일시적 미봉일 뿐입니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조로 바뀌지 않는 한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사과, 정부조직 개편, ‘관피아 척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해경 해체, 해수부 축소는 포퓰리즘 처방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정부의 작동 시스템에서 드러난 총체적 부실은 외면하면서 하부기관에게 극단적 처방으로 책임을 묻는 건 옳지 못한 일입니다. 해경과 해수부의 권한과 전문성을 위축시킨 장본인은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새누리당 정권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부실의 책임을 물어 징벌적 해체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입니다. 해경과 해수부에 필요한 것은 사안에 따른 엄중문책 이후 전문역량 강화와 조직혁신이지, 해체와 권한 약화가 아닙니다. 해경 해체와 해수부 권한 약화는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해양강국의 비전과도 배치됩니다.

“오래된 적폐”와 “관피아 부패”도 그 시작은 군사정권입니다. 관피아들의 부패구조와 결탁해 이권을 나누면서 장기집권해온 장본인이 새누리당 정권입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아프게 돌아봐야 합니다.
이 정부는 “기업의 탐욕”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규제는 악”이라면서 기업주의 돈벌이와 자본의 이윤추구에 앞장섰던 지난 1년 반 동안의 경제정책 기조를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 가장 안전한 사회는 ‘민주주의’입니다.

“가장 안전한 사회는 가장 민주적인 사회”라는 어느 학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민주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의 안전이 소홀해진다는 것입니다.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지적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사과를 하는 이면에서 심각한 불통과 억압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분노하는 시민의 여론을 겸허히 경청하고 수용하는 것이 대통령과 정부가 갖춰야 할 기본적 예의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비판적 여론에 담긴 세부적 표현까지 꼬투리를 잡아 시민들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몰염치한 일입니다. 분노한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공영방송을 상대로 한 언론탄압과 공작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 틈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후안무치한 인사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정부가 출범한 이래 민주주의와 나라의 기틀을 흔드는 범죄들이 거듭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상이 규명된 일도 없었고 최고책임자가 책임을 진 일도 없었습니다. 책임은 희생양이 된 실무자들의 몫일 뿐이었습니다. 모든 권한을 가진 대통령과 청와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책임과 권한의 극심한 불일치입니다. 비겁과 무책임에 다름 아닙니다. 법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책임의식’이 사라지고 ‘나만 살고 보자’는 나쁜 풍토가 사회 전반에 만연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과 독주를 멈추어야 합니다. 무너진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을 다시 세우는 일에 여야가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야당과 시민사회의 협력을 구해야 합니다.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수용을 해야 합니다.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고의 근본원인을 규명하면서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그 토대 위에서 국가위기관리 및 재난대응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작업에는, 여야는 물론 시민사회까지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 ‘안전사회’ 가시적 실천이 필요합니다.

박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하자마자 UAE에 수출한 원자로 설치 행사 참석을 위해 출국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사회’로 가겠다는 의지가 진정으로 있는 것인지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안전 전문가들은 세월호 이후 위험성이 가장 높은 재난으로 원전 사고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안전’을 이야기하려면 세월호 이상의 위험을 안고 있는 노후 원전 가동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원전 선진국인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원전에서 ‘안전 신화’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07년과 2012년에 이미 설계수명을 다한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고리원전 1호기는 잦은 고장이 있음에도 무리하게 연장 가동 중입니다. 월성원전 1호기는 연장가동을 위한 평가 중에 있습니다. 이 원전들의 위험 반경 안에 수백만 국민이 살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설계수명을 넘어 가동한 노후 원전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무모한 도박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에 하나 재난이 발생한다면 엄청난 국가적 재앙이 될 것입니다. 원전 수출이 중요한 때가 아닙니다. 설계수명을 다한 노후 원전의 가동중단이 우선입니다.

 

- 지도자의 선택이 명운을 가릅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바뀌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국정운영 시스템과 기조뿐만 아니라 국정철학과 리더십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과 무고한 희생자들의 비극 앞에서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지도자 한 사람의 선택이 국가 전체의 명운을 가릅니다. 불통과 독선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호’는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은 더 이상 거기에 머물지 않고 참여와 심판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2014. 5. 20.

문 재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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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비가 사랑한 나무

 

새로운 인문학 공부법을 제시한 나무인문학자 강판권. 나무를 통해 중국의 고전을 새롭게 읽어내며 수학樹學이라는 자신만의 학문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조선 선비들의 삶에 다가갔다. 나무를 통해 수양한 성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 최진규, 발로  찾은 우리 명의

 

'우리나라 명의와 전통의학' 1권. 토종약초 전문가 최진규의 <발로 찾은 우리 명의>. 명의만큼이나 명의인 저자는 전국을 샅샅이 돌면서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는 민간 비방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그렇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들의 의술을 기록해 내놓았다.

 

 

 

 

 

 

 

 

 

 

 

 

 

 

 

3. 최진규, 우리 명의와 의료직설

 

우리 조상은 아무리 하찮은 병에 걸렸더라도 무심하게 지나가지 않았고, 또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 약재의 성질과 효과를 확인한 다음 사용했다. 그런 경험 의술은 대를 이어서 전해져 왔고, 아직도 가늘게나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오늘날 우리는 민간의사라 부른다.

이 민간의사란 말 속에는 초라함이 담겨 있고 외로움이 담겨 있고 무식이 담겨 있지만, 그들은 오직 인술이라는 한 가지 일념으로 수십 년을 정진했고 이제는 어떤 병이 눈앞에 닥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들 민간의사를 서양의사 못지않게 소중하게 대접해야 할 때이다. 이들이 생활 속에서 체험하고 몸으로 체험한 의술은 이제 우리 바탕이 될 것이고 대대로 물려줄 유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정혜윤, 그의 슬픔과 기쁨

 

황현산 (문학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

: 정혜윤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 듣기는 많이 하고 말은 적게 했다. 슬픔과 분노와 절망의 참담한 고뇌가 희망의 빛으로 바뀔 때까지 오래 듣고 진솔하게 적었다. 이 기록이 우리 시대의 가장 귀중한 서사인 이유는 거대한 벽 앞에서 죽음을 넘나든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사랑하고 연대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모든 미덕에 열린 사람이 되었다. 부조리한 사태의 처절한 비극 속에서 이루어 낸 이 변화는 우리 시대의 가장 진정한 변혁에 속한다. 정혜윤은 듣고 쓰는 그 자신에게서 우선 일어난 깊은 변화를 통해 이 변혁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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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비밀섬 탐험대 우리들 시리즈 4
소다 오사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문재인이 세월호는 5.18과 같다는 말을 했다.

난 처음에 좀 오버하는 유추란 생각을 얼핏 했다.

그러다가, 이 둘 사이의 묘한 '유사성'들이 차곡차곡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았다.

 

5.18은 이 땅에서 아직도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아직도 5.18 광주는 '사태'고 '저항'이었다. 그래서 어떤 권력자들은 그 운동 기념식에 불참함으로써 웅변한다.

5.18은 '폭동'이었다고... 그래서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폭도들의 노래는 부를 수 없다고... (한심한 것들...)

조직적인 시민 운동이라기보다는, 부당한 국가의 폭력 사태에 대한 치열한 민중의 저항이었던 것이다.

5.18이라는 국가의 폭압에 의하여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나,

국가는 아직도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5.18은 조직적으로 언론 통제를 받아, 외신을 통해 또는 외국의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에 알려지기도 했고,

그 피해자가 유가족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오랜 세월 사회 개혁의 거름이 되었다.

 

세월호 '사태'는 점차 '저항'의 양상으로 흐른다.

국가의 무능을 넘어서 '방관', '조작, 은폐'를 지나 '억압'으로 치닫는다.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건져냈어야 할 사람들, 그리고 잘못한 사람들에 대한 투명한 조사와 처벌이 신속히 이어졌어야 함에도,

아직도 '재난 콘트롤 타워'가 어디인지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국가적 재난에 대하여 대통령은 제대로 사과한 적 없이 국무회이 석상에 앉아서? 절에도 안 가던 사람이 개국이래 첨으로 부처님 오신날 법회에 참석하여 묘하게? 사과 멘트를 툭, 던지더니, 이제 아예 대놓고 선전 포고격인 '담화'(계엄령 시대에나 나붙던 쪼가리)를 하겠다 하니, 참 한숨이 난다.

세월호가 언제 무엇과 부딪친 것인지 해경의 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과적과 과속으로 인한 것이라는데 해경의 비호를 받아 입을 맞춘 선원들만 '살인죄' 운운할 뿐,

조직적으로 언론 통제를 받아, 재외 국민들이나 신문에 규탄 광고를 실을 수 있을 뿐이다.

 

신문과 방송은 이미 청와대의 '악어의 눈물'을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다.

가엾은 공주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총에 부모를 잃은 사람이라 노인들의 애정이 각별하다.

이번 사건은 가족을 잃은 유족뿐만 아니라, 자식가진 부모, 언제든 위험에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로 남아, '국가를 믿지 말고 각개 약진' 할 삶을 두려워해야 할 노릇이다.

5.18처럼 사회 개혁의 거름이 될지, 폭압으로 인해 와해될는지 두고봐야 할 노릇이고...

 

이 소년 소설은 '우리들' 시리즈의 4권으로,

일본어 제목은 보쿠라노 미나미노 시마 센소~다.

                     우리들의 남쪽 섬 전쟁.

일본의 남쪽 섬이라 하면 당연히 아름다운 자연을 미군에게 앗긴 오키나와를 뜻한다.

이 소설은 환경 파괴를 막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일본의 오키나와 인근 섬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기도 하는 소설이다.

 

한국에는 가장 아름다운 섬, 제주도가 있다.

뭍과는 사뭇 다른 풍광과 지질이 신비롭다. 거기 역시 해군기지로 몸살을 앓는다.

한국의 해군기지라면, 제주에 있을 이유가 없잖은가?

인천이나 동해 같은 곳에 있어야지. 제주에 짓는 해군 기지라면, 응당 오키나와와 연결되는 미국의 그것이리라.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면 여기 찾아오는 의미가 없어지잖아.(46)

 

문제 제기는 참 단순하다.

이야기도 '7일 전쟁'이나 '위험한 아르바이트'에 비하면 단순하다.

 

그렇지만, 소년들에게 '가만히 시키는 대로 하기'만을 가르쳐서는 '살아가는 힘'이 나올 리 없다.

이렇게 소년들을 부추기는 소설이야말로, 더 많이 나올 필요가 있다.

 

어른들의 갑갑한 세상에 저항하면서,

자기들의 목소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임을 보여주는 소설들이...

 

우린 소년 십자군이거든요.

뭐니 그건?

뭐, 그런 게 있어요. 나쁜 놈들을 혼내 주는 조직이죠.(61)

 

십자군은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조직'이 아니었다.

오히려 종교를 이유로 '나쁜 짓'을 한 조직이었지 않나?

기독교도들이 원래 자기들 땅이었다고 전해지는 옛 땅을 찾으려고 이슬람 세계를 파괴한 것이 십자군 전쟁이다.

순전히 자기들 입장에서 기술한 것인데, 이렇게 쓰이는 걸 보니 씁쓸하다.

 

 

틀린 표기와 모호한 문맥...

 

142. 아니오... '아니요'를 써야할 자리에 아니오를 썼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맞춤법인데, '예스/노'의 경우 '예/아니요'로 써야 한다. '아니오'는 문장의 끝에서 '그것은 정답이 아니오.'처럼 쓰인다.

 

214. 흡혈박쥐라니... 야에야마 큰박쥐는 나무 열매만 안 먹는데... 나무 열매만 먹는데..라고 해야 옳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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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학교가 뭐길래! - 이상석 선생과 아이들의 공고 생활기
이상석 글, 박재동 그림 / 양철북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고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목표 실종'이다.

공고에 들어올 때, 공장에 취직하러 오는 아이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고 보면,

공고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오는 하위급 실업계 고교로 자리매김된다.

 

수업 시간에도 맥이 빠져있고,

무엇보다 가장 큰 결함은, 가정이 가난한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개념을 갖지 못하다 보니 중학교에서 형편없는 성적으로 공고로 진학하게 되는 것.

예전처럼 공고를 졸업하면 공장에 가서 먹고살 길을 찾던 시절만 해도,

중학교 내신 40% 정도 학생들이 모였던 시절만 해도, 물리 또는 기술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던 때도 있었다더라만,

요즘엔 마지못해 등교해서 온갖 갈등에 시달리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쳐야 할지... 학교에서는 목적이 없다.

기술인을 양성할 것도 아니면서 아직도 '전국 기능 대회'에 출전하고,

아이들은 거의 아무 공부도 하지 않은 상태로 전문대학에 진학한다.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한 해법을 은근히 제시하는 책이다.

 

이상석 선생님은 50이 넘어 공고로 간다.

그런 지긋한 나이의 남교사에게도 아이들은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함께 돌볼 수 있는 부모가 없다는 데 큰 어려움이 있고,

말만 전문계(실업계는 실업자를 연상시킨다고?)인 학교의 전문교과 교사들과 일반교과 교사들은 소통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쓰는 글들은 눈물겹다.

이 책을 읽으면, 이상석 선생과 아이들의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일들만 그득했고,

졸업 후에도 쏘주잔깨나 나누는 듬직한 제자들로 그득할 것처럼 보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함이 내 눈엔 훤히 보인다.

 

전문계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참 적다.

원래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법이지만,

일반계 아이들과는 수업 시간에도, 상담 시간에도 제한적이나마 이야기가 가능한 반면,

학교 자체를 오지 않아도 그만으로 여기는 아이들을 보듬어 안는 일은 교사로서는 언감생심... 불가능에 가까울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은 교사의 본마음은 원래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특히, 자본이 판을치는 이 시대.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버림받았듯,

'자본'의 쓰임에 필요치 않는 존재는 한낱 벌레 취급을 받는 곳이 아닌지,

정말 고귀한 인간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비참한 하루하루를 맞이하도록 세상이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지...

 

기계의 부품처럼 쓰임이 있을 때만 뽑아다 쓰는 전문계 아이들...

진급 같은 것은 꿈도 꾸기 힘든 아이들...

그 털끝보다도 가치없는 지식 나부랭이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가

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돈으로 인간을 평가하게 되는 사회가

아이들을 얼마나 힘겹게 만드는지,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물음표만 그득하고, 도무지 해법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다스한 온기를 한 명씩 한 명씩 전해주는 사람을 보았다.

 

이 책이 개인적인 체험담을 넘어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작가가 학교에서 교육 개혁을 말하면서도,

교육의 주체로 학생부장을 맡는다든지, 그렇게 교사들과 호흡한 경험들도 적혀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으려나...

자기와 뜻이 맞는 몇 사람과 아이들과 소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학교라는 시스템에서 개인의 자리보다는, 그래서 혁신학교들처럼

관리자나 부장들의 협력으로 아이들을 살리는 구조를 이뤄나가는 모습을

특히 교육의 소외지역인 전문계에서 이뤄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만 가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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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rosa 2014-05-20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시내 일반고도 공고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
읽는 내내 스무살짜리 울 아들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아빠 치킨 집 닭 배달하다 다리 다쳐서 깁스하고 다녔던 아이,
경제적 문제로 위장 이혼한 부모를 가진 아이,
알바비 90여만원으로 사는 아이.
말이 알바지 그냥 일반 직장 생활과 같은 시간을 근무하는데도,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더군요.
더 슬픈 건 그 아이 버는 돈이 울 아들 재수학원비 수준이라는 거겠지요.
좋은 부모라는 게 걍 우리 아이 하나 잘 돌보는 걸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다만 넘 우울해서 기분 전환하려고 선택한 책이었는데
서문을 보다 또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글샘 2014-05-21 08:21   좋아요 0 | URL
좋은 부모라는 게 우리 아이 하나 잘 살도록 재산을 물려주면 끝나는 게 아니겠죠.
우리 아이의 아이도 행복할 수 있는 국가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지금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아서 지금 부모들이 제자식만 돌보는 것이지만,
좀 더 넓게 세상을 봐야하지 싶습니다.
멀리 봐야하구요.
 

카네이션 한 송이 가슴에 꽂고

아이들의 노래 들으며 웃어야 할 날... 비극적인 날이다...

 

 

[세월호 참극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
선 언 문


2014년 4월 16일을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수백의 어린 영혼과 함께 대한민국이 침몰한 날, 국민의 억장이 무너지고 학교가 내려앉은 이 날을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꽃다운 생명이 스러져가는데도 구명조끼를 입혀주며 서로 “사랑한다”고 다독이는 아이들 앞에서 가슴은 갈가리 찢겼고,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하다”며 울부짖는 친구들 앞에서 우리 어른들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자율학습 보충수업에서 잠시 벗어나 3박4일의 짧디 짧은 행복을 꿈꾼 수학여행이 삶의 마지막 여정이 되고 말았을 때, 이 땅의 교육도 죽었습니다. 선실 벽과 유리창을 할퀴고 두드리다 피멍 들고 부러진 가녀린 손가락들이 모두의 가슴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아이들을 이대로 가슴에 묻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묻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국민들이 묻고 있습니다. “도대체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이들을 가슴에 묻을 수 없습니다. 제2 제3의 수많은 세월호들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꽃다운 목숨을 위협하고, 누군가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 몇 푼을 위해 망설임 없이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비정한 자본, 이를 조장하고 비호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있는 한, 또 다른 희생자들이 세월호 희생자의 이름과 얼굴, 소중한 기억들을 밀쳐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발뺌과 속임수로 자리보전에 연연하는 공직자들, 남이야 어찌 되든 제 자리부터 챙기고 보는 지도자들이 활개 치는 한, 권력에 빌붙어 정권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언론이 국민들의 귀를 사로잡는 한, 순박한 영혼들만 뒤에 남아 얼싸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참극이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안내방송을 믿고 대기하라”고 한 말이 결국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는 사실 앞에서, 많은 교사들이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교사라도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보지만, 속절없이 죽어간 제자들을 앞에 두고 차마 그런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의심스러우면 되물어야 한다고, 부당한 지시에는 복종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점수를 올리려면 의심하지 말고 정답만 외우라고 몰아세우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다는 핑계로 정답만 생각하라고 윽박질러서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스스로 판단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못해서 사진 속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아이들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을 때, 대통령께서는 공직자들에게 문책 위협을 하신 것 말고 무엇을 했습니까. 수명을 다한 낡은 유람선이 꽃다운 생명을 가득 태우고 기우뚱거리며 죽음의 바다를 항해할 때, 탐욕스런 자본가들이 승객의 안전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화물 적재량을 속이기 위해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었을 때,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대통령이 직접 끝장토론에 나와 ‘규제완화’를 역설할 때, 자본가들이 만세를 부르며 안전규제부터 내팽개치리라는 것을 몰랐단 말입니까. 대통령이 자본가들을 위해 비정규직 봇물을 열어젖힐 때, 자본가들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선장과 선원들마저 비정규직으로 갈아치우리라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까.


대통령은 취임할 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했습니다. 그런데 피가 마르고 숨이 막히는 지난 한 달 동안 이 선서를 지키기 위해 진정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고귀한 생명을 하나라도 건질 수 있었던 사고 초기단계, 그 금쪽같은 시간에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혼선과 무능 그 자체였습니다. 아니 생명을 구하려는 최소한의 책임마저 방기했습니다. 더욱이 일부 고위관료들의 몰상식한 행동과 막말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악화시켰습니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 실종자 가족들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가슴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려는 마음을 국민들은 간절히 바랍니다. 형식적인 사과와 ‘연출된 위로’가 국민의 억장을 무너뜨렸습니다. 부실한 구난 시스템과 함께 가슴이 내려앉은 국민들은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한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 앞에 또 다시 넋을 잃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강압과 통제로 합리적 의심을 봉쇄하여 국민의 분노를 억누를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책무 불이행을 뼈저리게 고백하고 이제라도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발적인 재난이 아닙니다. 국민의 생존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국가 시스템은 더 이상 존속될 수 없습니다. 이윤과 돈벌이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몇 명의 희생양을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진실을 은폐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뼈를 깎는 책임규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무한 권력자가 아니라 무한 책임자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는 대통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사전에 막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탐욕과 무책임이 넘치고 이를 조장하는 사회에 대해 침묵해 왔습니다.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한 해에 수백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수많은 학생들이 차별과 서열화로 절망하고 좌절할 때 이를 바꾸기 위하여 치열하게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좀 더 철저하게 고민하지 못했고, 순응과 체념의 죽임의 교육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탐욕과 불의에 복종하지 않겠습니다. 학생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살림의 교육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와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혁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2014년 5월 15일



김정훈 외 15,85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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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5-16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들 사법처리 된다고 들었는데...
설마 천명이 넘는 선생님들을 다 자르는 건가요?
이게 정말 무슨일인지 하아........

글샘 2014-05-1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명이 아니라... 15,853명인데요...

아무개 2014-05-16 12:46   좋아요 0 | URL
네..ㅜ..ㅜ

transient-guest 2014-05-17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시기에, 더구나 이토록 온갖 불법적인 탄압과 규제가 횡횡하는 시기에 이런 용기를 보여주시네요. 지지한다는 말씀도 그렇고 뭐라 도움이 될 만한게 없습니다만, 옳은 일에 앞장서는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저의 하루를 뒤돌아보게 됩니다. 의로운 분노는 사사로운 그것와는 달리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발점이 되었으면 하네요.

글샘 2014-05-18 23:14   좋아요 0 | URL
말로는 사회를 개조해야하겠다고 말하면서, 다른나라 원전 행사에나 참석하겠다는 황당한 청와대를 보면 날마다 한숨만 날 따름입니다. 의로운 분노를 날마다 명찰도 달지 않은 경찰들이 짓밟네요. 청와대가 빈 동안 경찰들이 얼마나 날뛸는지... 그럴 빌미를 주려고 자리를 비우는 것 같아서... 한숨만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