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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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개인에게 숱한 생채기의 기억을 남긴다.

그 기억들 중에서 너무도 굵어서 누구나 알 만한 것들도 있고,

한 때의 소란으로 묻혀져가는 것들도 있다.

 

이 책은 프리모 레비가 수용소 안에서 겪은 일들에 대하여,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인간의 조건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써낸 책이다.

그의 마지막 남긴 유서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때 이후, 불확실한 시간에

고통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나의 섬뜩한 이야기가 말해질 때까지

내 안의 심장은 불타리라.(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늙은 뱃사람의 노래 중)

 

트라우마라고 한다.

강력한 외상 후에 남는 정신적 이상 증세.

도대체 그들은 왜 그렇게 잔인하게 유태인을 학대하고 죽였을까.

 

어차피 죽일 것이었는데... 굴욕감을 주고 잔혹행위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희생자는 죽기 이전에 인간 이하로 비하되어야 했다.

죽이는 자가 자신의 죄의 무게를 덜 느끼게끔.

이것이 쓸데없는 폭력의 유일한 유용성이라고...(152)

 

적은 죽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 죽어야 하는 것(145)

 

그 당시의 독일인들은 대부분 비겁하게 나치에 협력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이 장님에 귀머거리, 벙어리였다.

잔혹한 짐승의 핵 주위에 있는 불구의 무리였다.(206)

 

독일 국민 대다수는 정신적 나태함, 근시안적 타산, 어리석음, 국민적 자부심 때문에 히틀러의 '아름다운 말들'을 받아들였다.

바로 그런 독일 국민들 대다수의 책임도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다.(252)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에 독일 청년이 나오는데,

그 청년은 상당히 똑똑하며 올곧은 사고를 가지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독일에도 그렇지 않은 반동주의자가 있을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비극을 되풀이한다.

하물며... 국민에게 그런 비극의 역사를 가르치지도 않는 일본이야 말할 것도 없다.

 

많은 학생들은 언론과 자신의 교사들이 말하는 '내탓'에 대해 진절머리가 난다고 잘라 말하기도 한다.(232)

 

현실 속 인간들은 이런 것이다.

 

이 책은 현실보다 고찰을 더 많이 담고 있으며,

소급적인 과거의 일들보다는 오늘날의 상황에 더 기꺼이 머무른다.

게다가 이 책의 자료들은 자발적으로든 아니든 당시에 죄를 지었던 사람들의 협력으로 형성된

많은 작품들에 의해 확고한 실체를 갖게 되었다.(38)

 

그의 대표작 '이것이 인간인가'에는 당시의 기록으로 가득하다.

이 책은 그 책이 나온 후 변화된 상황을 모두 고려하면서

독자의 서평이나 편지들까지 엮어 펴낸 고찰들이어서 생생한 현실감은 떨어지는 감이 있다.

 

우리 생환자들은 우리의 경험을 잘 이해했으며, 또 남들에게 잘 이해시킬 수 있었던가?

보통 '이해하다'의 의미는 '단순화시키다'란 말과 일치한다.(39)

 

아우슈비츠라는 공포의 공간에서는 나치라는 악과 유대인이라는 피해자만이 등장하는 것 같지만,

그건 지나친 단순화라는 것이다.

독일인 중에서도 간혹 인정을 베푼 경우도 있고, 같은 유대인 포로중에서도 잔인하기 그지없는 자도 있었다.

단순화는 그렇게 많은 부분을 잘라먹는다.

 

내가 아우슈비츠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느냐고?

나의 원칙은 이것이었다.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셋째도 내가 먼저라는 것.

그 다음은 아무것도 없다.

그 다음은 다시 나, 그리고 나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두려움의 포로들, 빅터골란츠)

 

살아남은 자들 역시 어떻게든 죽지 않기 위해 줄을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해되기 어렵다.

레비는 그것을 이렇게 적는다.

 

우리 생존자들은 각자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예외적인 경우이다.

과거를 쫓아버리기 위하여 우리 자신은 이 사실을 잊어버리려 애쓰는 것.(125)

 

독일인들 역시 악을 행한다는 의미보다는, '잘된 노동'에 열중했을 것이다.

 

잘된 노동에 대한 애정은 굉장히 애매모호한 덕목이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로 했던 모든 일을 할 수있는 한 최대로 잘해야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149)

 

 

오늘날의 한국에서 역시,

가라앉은 자들에 대하여, 돌아오지 못한 그들에 대하여, 침묵을 강요하는 현실을 목도한다.

 

어떤 일도 철저히 조사된 바 없고,

모든 일이 철저히 은폐되고 함구된 채로 1년이 흘렀다.

 

가라앉은 진실을 어떻게 밝혀야 하는 것인지,

과연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날이 있기나 할 것인지,

수용소 안의 유대인들이 '그날'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막막하기만 한 현실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자들도 있는데,

1주기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힘든

어떤 이름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작년의 사건과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가슴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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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3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3
파리 리뷰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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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서는 앨리스 먼로, 트루먼 커포티, 커트 보네거트, 어슐리 르귄

줄리언 반스, 잭 케루악, 프리모 레비, 수전 손택

돈 드릴로, 존 치버, 가즈오 이시구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12명이 실려있다.

 

관심있게 먼저 찾아본 작가는 프리모 레비와 커트 보네거트, 가즈오 이시구로였다.

 

작가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하지요.

어떤 작가가 정직한 사람이고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다면,

나쁜 작가가 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명확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옮길 수가 있으니까요.

반대로 할 말이 없는 작가라면, 글이라는 도구가 있다고 해도 그는 이류랍니다.(294)

 

프리모 레비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는 수용소의 삶이었다.

그가 수용소를 빼고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인가.

할 말이 없는 작가...라는 말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관통하는 주제를 드러내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으로 보자.

 

전 외출하기, 여행, 말하기, 듣기를 좋아하고 구경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해요.

주의력 과잉장애가 있는지 몰라요.

제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집중하는 거랍니다.(수전 손택, 316)

 

관찰은 모든 작가의 필수품이다.

그러나, 그 역시 소설의 초고는 쉽지 않다.

 

어려운 것은 도입부예요.

언제나 엄청난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시작해요.

니체는 글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이 차가운 호수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말했죠.

삼분의 일쯤 진행되어야 그게 그럭저럭 괜찮은지 아닌지 알 수 있어요.(316)

 

그런 손택에게 소설은 세상을 향한 말하기의 한 형식이었다.

 

사색, 반추, 독자를 향한 직접적 연설은 전적으로 소설 고유의 특성이에요.

소설은 큰 배예요.

저는 제 속에 있는 추방된 에세이스트를 구조할 수 없었어요.

제 속에 있는 에세이스트는 소설가의 일부였을 뿐이에요.

제가 마침내 되었다고 인정한 소설가의 일부 말이에요.(334)

 

소설은 스토리만을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다.

소설을 통하여 에세이와 같은 연설을 더욱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는 형식을 갖추는 셈이다.

그런 속에서 문학은 황홀경마저 담긴 예술인 셈.

 

문학은 황홀경을 주나요?

물론이죠. 음악이나 춤보다는 확실하지 않지만...

문학은 그 정신에 더 많은 것이 담겨있어요. 우린 책에 엄격해야 해요.

저는 다시 읽고싶어지는 책만 읽고 싶어요.(337)

 

인생은 짧다.

그는 암과 백혈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가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만 읽고 싶다'고 말한 데는 인생의 유한함을 느끼는 감회가 짙게 서려있다.

 

이시구로의 '집사'는 독특한 은유다.

'남아있는 날들'의 집사에 대한 설명이 멋지다.

 

하나는 특정한 종류의 정서적 냉랭함이고,

다른 하나는 중대한 정치적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을 상징해요.(445)

 

많은 일을 하면서도, 모든 일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2차적인 관계로 냉랭함을 지켜야 하는 집사의 삶.

이시구로는 그런 현대인의 삶에 대해 꿰뚫는 소설을 쓴 걸까?

이 작품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둘 만 하다.

 

도덕적 판단은 결코 내리지 않아요.

제가 하는 말이라고는

그 인물이 익살맞다거나 쾌활하다거나 따분하다는 정도예요.

등장인물들에게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건 몹시 지루한 일이에요.

전혀 흥미롭지 않아요.

소설가에게는 자신의 미학에 대한 도덕성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469)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윤리나 도덕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뽑아내기 어렵다.

오히려 그 윤리가 무너진 틈새에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서 이야기가 나온다.

장르 소설에 등장하는 그 많은 가난한 사람들, 되는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도덕을 들이대는 건 무의미하다.

소설은 그런 이야기이여서 가치로운 것이기도 하다.

 

어슐리 K 르 귄은 같은 이야기를 '리듬'이라고 한다.

 

이야기에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리듬이 있기를 원해요.

그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의 핵심이죠.

우린 여행 중이에요.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중이죠. 게속 움직여야 해요.

리듬이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더라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바로 그거잖아요.(169)

 

커트 보네거트는 참 유쾌한 사람인데,

그는 '쓸모있는 농담'으로 자기 작품을 요약한다.

 

매사에 너무 심각하게 굴지 마시오.

백지 위에 적힌 검은 흔적 몇 개로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든다면

그게 유용한 농담이 아니고 뭐겠어요.

모든 훌륭한 이야기는 사람들을 반복해서 속아 넘어가게 하는 위대한 농담예요.(121)

 

그에게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거냐고 물으니 유사한 비유를 들이민다.

 

골프와 비슷해요. 전문가가 제 스윙의 결점을 지적해 줄 수 있잖아요.(120)

 

결국 글은 스스로 쓰는 것. 배울 수 있는 것은 결점을 지적해 줄 수 있다는 정도.

그가 들려주는 또 하나의 비결은 머릿속의 독자다.

소설가라면 이런 비결들에서 반짝이는 공감을 격하게 표현하지 싶다.

 

성공한 작가들은 머릿속에 있는 한 명의 독자와 함께 창작을 해요.

그게 예술적 통일성의 비밀이지요.

머릿속에 있는 사람과 뭔가를 만들게 된다면 누구나 통일성을 달성할 수 있어요.(118)

 

작가라면 누구나 칭찬을 듣고 싶어할 것이지만,

반드시 혹평에 도가 튼 편집자를 만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트루먼 커포티의 충고가 도움이 된다.

 

이제는 가장 모욕적인 욕설을 읽고도 맥박이 조금도 빨라지지 않아요.

작가들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 조언은

평론가에게 반박함으로써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마란 것.

또한 머릿속으로 편집자에게 반박하는 편지를 쓰되,

종이 위에는 절대 옮기지 마세요.(81)

 

2013 노벨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를 읽으면서

 글쓰기와 삶에 대한 통찰에서 큰 조언을 들었다.

 

제가 두려운 건 글쓰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게 만드는 이 모든 설레는 느낌을 포기하는 거지요.

공허함을 없애줄 뭔가를 찾게 되는... 그렇게 되는 게 두려워요. (54)

 

소설가의 일은

소설가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설가가 일한다는 것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과 상관관계가 밀접하다 볼 수 있는데,

누구나 일하기를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올 것이고, 그것에 대비하는 생각도 가져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소설가들 중 성공한 사람들의 글을 읽노라면,

모두들 참 열심히 노력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어려운 시기의 두려움을 꿋꿋이 참아 이겨낸 사람들이고,

자신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나름의 비결을 개발해 내는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인터뷰를 읽는 일만으로도,

인생 공부이자 문학 공부가 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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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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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중한 경험...

 

한국에서는 구하기 귀한 로이스 초콜릿을 선물받아 냉장고에 넣어 두고는,

괜스레 하루 한두 차례 냉장고 문을 열면서 스무 개의 직사각형 조각이 하나씩 스러짐을 아쉬워하듯...

야금야금 읽었거늘,

어쩌다 보니 2권을 전에 읽었고, 이제 1권을 다 읽었다.

 

소설도 아닌 이런 인터뷰집을 아쉬워하며 읽게 되기도 참 드문 경험이다.

책을 읽는 순간들마다 이런 책이 번역되어 나왔음을

그런 나라에 살고 있음을 가슴 벅차하는 경험을 한다.

비록 그 나라가 참 징그럽게 더러운 현실일지라도...

 

2권은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파묵,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매큐언, 필립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마르케스, 헤밍웨이, 포크너와 포스터가 실려있다.

내가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유명한 마르케스와 헤밍웨이, 쿤데라 순이었는데,

읽고 나서 인상적인 사람들은 달다.

필립 로스와 레이먼드 카버 같은 사람들의 인터뷰도 기억에 진하게 남는다.

 

2. 쓴다는 일

 

올해 우리반에 들어온 아이 중 한 명이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선발집단인데도 입학할 때 성적이 3등일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공부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방황하다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는데...

정작 그 아이의 글을 읽어볼 만큼, 아니 그 아이가 선뜻 내게 원고를 뵈줄 만큼 아직 래포 형성이 된 건 아니다.

갑갑한 어른의 시선으로는, 그 아이가 일단 공부에 매진하고, 나중에 글쓰기를 하면 어떠냐고 떠봤더니,

이제까지 어른들은 다들 먹고 사는 이야길 하면서 공부하라고 했단다.

쩝~ 나도 맨날 소설을 읽고 문학을 강의하는 주제에, 글쓰기를 택하겠다는 아이를 전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다니...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 아이가 밥벌이가 가능한 곳에 가서 천천히 생각했으면... 하는 생각이 지울 수 없다.

공부를 힘들지 않게 해낼 수 있는 능력도 하나의 큰 능력 아닌가 말이다.

올해는 그 아이랑 재미있게 지내는 게 과제다.

그렇지만, 쓴다는 일에 대하여 읽으면서, 그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삶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이 삶이 아니던가.

 

3. 소설과 삶의 거리, 스토리와 도덕 사이...

 

흔히 소설의 스토리를 두고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둥, 청소년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둥 하는 소리를 한다.

참으로 허무맹랑하다. 삶이란 것이 도덕과 한치의 겹칩도 없이 부조리한 것이거늘, 소수의 권력자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윤리적이라는 둥 하는 소리를 소설에 갖다 대는 것은 가소롭다.

 

글쓰기는 정교한 가면을 씀으로써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 행위로 바꾸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당신의 도덕적인 성품에는 낯선 특질을,

당신이란 존재를 통해 빨아올리는 매우 고된 정신적인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작가는 사람들이 뭘 보여주길 원하고 뭘 숨기고 싶어하는지

방향을 정해주는 보통 인간의 본능을 따른 여유가 없답니다.(필립 로스, 249)

 

난 필립의 소설을 한 편도 읽은 것이 없지만, 그의 이야기엔 전적으로 공감했다.

나도 리뷰를 쓰면서 윤리적 측면이나 상식의 측면에서 비평을 가하기도 하지만,

사실 개인적인 삶의 부조리함을 생각해 본다면, 문학 작품에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 일 자체가 무용하다.

 

인류 전체의 선을 위해 사람들이 하는 척하는 일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오류라곤 없는 이론가들의 체계적인 효율성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제 관심은 사람들이 정말로 하는 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입니다.(로스, 259)

 

페미니즘 소설이라 욕하고 누구는 저급한 소설이라 욕하지만,

그런 욕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소설이란 현실의 개연성을 취하는 허구임을 잊은 꼰대에 불과할 따름이다.

원래 윤리, 도덕을 외치는 자들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거기 편승해 개떼처럼 짖어대는 몰지각한 지성과 언론 등이 처참한 게 인간의 한계이고...

 

소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독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을 바꿀 뿐입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깊고 독특한 기쁨이며,

성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는 신비로운 인간 활동입니다.(로스, 279)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도 너무 편향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신비로움을 굳이 외면하고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에 쏠려있었던 것을 보면...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걸 혐오하는 것이야말로

서정시적인 재능과 소설적 재능을 구별해주는 것이다.(쿤데라, 286)

 

그렇다. 서정시는 자신의 이야기를 감춰가면서 한다.

소설적 재능이란 자신의 이야기조차도 전혀 아닌 것처럼 꾸밀 수 있는 재능이다.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서술자를 내세우는 것이 소설가의 재능인 셈.

쿤데라의 소설이 온갖 이야기의 잡탕처럼 혼잡스러 보이는 것은, 실존이 그래서라고 한다.

인간의 삶은 온갖 상황이 번잡스러이 널부러진 혼잡 그 자체가 아닌가 말이다.

 

브로흐가 '소설적 지식'이라 부르는 그 특정 대상이란 바로 실존입니다.

그의 백과사전적이란 단어는,

실존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모든 장치와 모든 형태의 지식을 함께 모아 놓은 것입니다.(289)

 

소설은 결국 인간을 드러내기 위해, 모든 형태의 지식을 혼잡스럽게 모을 수밖에 없다는 데서,

그의 소설의 난삽함이 설명된다.

이 책을 읽으면, 밀란 쿤데라의 그 혼잡성이 용서되면서, 그가 급 사랑스러지고, 읽고싶어진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들은 모든 책의 제목이 혼잡하다.

 

제 소설 중 어떤 것에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우스운 사랑들'로 이름 붙여도 무방합니다.

그제목들은 저를 사로잡고, 정읳고, 한편으로는 불행히도 저를 제한하는 몇 개의 주제들을 반영하거든요.

이 주제를 넘어서서는 다른 아무것도 말하거나 쓸 게 없습니다.(306)

 

그렇다.

현실도 그러하다.

4월 16일을 열흘 앞둔 오늘도,

한국 정부 앞에 국민이란 이름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고,

농담이자 헛소리를 언론이라 떠들고,

정말 우스운 사랑들로 세상은 혼잡하다.

 

레이먼드 카버의 이야기는,

그의 960페이지짜리 평전을 훑어보고 싶게 만든다.

 

한 단편에 스무 가지나 서른 가지의 다른 수정본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332)

 

평범한 삶을 영위해온 작가들은 '명성'에 대하여 겸손하다. 그러나 그는 솔직하다.

 

명성은 - 아니면 새로 발견한 저에 대한 관심과 흥미라고 해야할지 -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신감이 필요할 때 자신감을 강화시켜 주었지요.(342)

 

그에게 소설의 가치란 이러하다.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지 지속적으로 오래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은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348)

 

실패한 혁명의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은 굳이 부정해 왔으나,

소설의 힘은 역시 이야기의 강렬함이고 즐거움이지, 도덕이나 정의와는 차별되는 것이다.

 

문학과 목수 일은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은 반면,

일은 엄청나게 많이 고되게 해야 하지요.

10%의 영감과 90%의 노력을 필요로 한답니다.(369, 마르케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첫 단락입니다.

여기서 주제와 스타일, 어조가 정해집니다.

그래서 단편을 쓰는 것이 더욱 어렵지요.

단편을 쓸 때마다 작가는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마르케스, 377)

 

대부분의 작가들이 시작을 어렵다고 말한다.

글은 그냥 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번 시작을 실패해서, 개념이 잡히기 시작해야 써나가는 어떤 것이므로.

 

헤밍웨이의 문체가 건조하듯, 그의 인터뷰도 건조 그자체다.

 

신문기사를 쓰는 것은 젊은 작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고,

적당한 때에 신문사를 벗어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406)

 

적당한... 이라니, ㅋ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눈으로 읽히길 바라는 것이지

어떤 설명이나 논문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414)

 

글쓰기 기법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바삭거리게 대답한다.

어떻게 글쓰는지 이야기하는 일은 부적당하다는 일갈이다.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왜 그런것으로 골머리를 앓나요.

일어난 일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재현이 아니라 창작을 통해 살아있는 어떤 것보다 더 진실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요.(428)

 

살아가는 사회에 따라 모순을 느끼는 밀도는 다르다.

식민지 시대, 독재와 온갖 부조리를 겪은 사람들과

비교적 자유를 만끽한 국가의 사람들은 다른 질문과 대답을 한다.

배부른 소리면서도, 예술이란 그런 것에 더 가깝다. 자유에 더욱 가까운...

 

영화 대본이 글쓰기를 망칠 수 있나요.

일류 작가라면 어떤 무엇도 그의 글에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만일 일류 작가가 아니라면 그 어떤 것으로도 그가 좋은 글을 쓰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윌리엄 포크너, 441)

 

이것이 정답이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음악가가 되지 않았고,

의대를 나오지 않은 허준이 명의가 되었듯,

어떤 것도 훌륭한 작가를 망칠 수 없고, 무명의 얼뜨기를 작가로 만드는 왕도 역시 없는 법이다.

 

포크너는 돈 키호테를 워낙 많이 읽었단다.

 

그래서 저는 친구를 만나 잠깐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 장면이나 한 인물에 집중해서 읽습니다.(458)

 

고전은 그런 것이다.

마치 판소리가 스토리의 한 장면을 편집하여 '판'을 짜듯이,

고전은 완독보다는 부분부분 읽으면서도 정독을 통해 재미를 주는 책들이다.

 

세상의 고통은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의 사람들에 의해 야기됩니다.(464)

 

삶에 대한 포크너의 통찰이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불멸은 언제나 살아 움직여

불멸인 어떤 것을 남겨 놓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항상 움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466)

 

그의 '내가 누워 죽어갈 때'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쓰고 있다.

그가 죽어도 그 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시선은 죽지 않을 것이다.

 

야구 경기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려주었고(158, 폴 오스터)

 

나 역시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해 난감하게 자랐다.

오스터에게 야구 경기가 그런 것이듯,

나에게는 술자리가 그러했고, 책 이야기가 그러했다.

80년대의 세미나 문화와 뒤풀이 문화가 나를 가르친 것이 팔할이다.

그리하여 리뷰쓰는 일이 나의 소통의 힘이 된 원천이기도 한 것이다.

 

진리를 찾아 나설 때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비하라,

진리를 찾는 것은 어려우며, 그것을 찾았을 때 당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오스터, 163)

 

소설을 통해, 예술을 통해 당혹함을 느끼는 일은 진리에 가깝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일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덕에서 벼락에 맞아 죽은 바로 곁의 친구...

그에게 청취자들의 각기 다른 사연들은 힘을 주었다.

 

저 혼자 기이한 경험을 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뻤지요.

바깥 세상은 광란의 도가니였어요.(168)

 

모든 인간의 삶은 기이하다.

누군가는 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부모가 없이 자라나고,

누군가는 부모가 있어도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사랑하지 못해 고독한 인간도 있지만,

사랑함으로 인해 더욱 고독한 인간도 있다.

세상은 광란의 도가니임을 알면, 삶이 지옥만은 아니다.

삶이 그런 것임을 알면,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함께 걷게 된다.

 

청취자 사연 프로젝트는,

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우리 모두는 강렬한 내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격렬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고,

여러 가지로 기억할 만한 경험을 겪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170)

 

그의 빵굽는 타자기 아래서 모든 사람은 귀하다.

 

노동계급의 지적 수준을 얕보는 경향이 있는데,

제 경험에 기초해 보면 노동자 대부분은 지배하는 사람들만큼 똑똑합니다.

단지 그들만큼 야심차지 않을 뿐이에요.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너무나 재미있어요.(175)

 

그의 이야기는 이론은 아니지만 강하다.

 

인생은 너무도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지요.

결국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할까요.

어린아이가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178)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명쾌하다.

왜 쓰는지 핑계대지 않고, 지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므로... 쓰게 된다는 것이다.

 

빨간 책방... 에서 인상적이었던 이언 매큐언 역시 소설의 힘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이야기가 우아하거나 조밀한 것을 찬탄하지 않아요.

말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길 바라며,

곧바로 사건 그 자체로 이끌어 가주길 바라지요.

그리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합니다.(227)

 

이야기를 지루하게 이끄는 작자들이 읽어볼 글이다.

 

에코는 중세에 끌린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왜 사랑하게 되는거죠?

제가 보기에 중세는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시대였고

그 시대의 비옥한 토양에서 르네상스가 출현했죠.

혼란스럽고 활기찬 변화의 시대였죠.(29)

 

남들과 같이 보면, 활기를 읽기는 힘들다.

 

역사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 시대와의 유사성을 깊이 있게 찾아내는 것.(30)

 

스스로를 구식이라고 일컫는 움베르토 에코의 저력이 느껴진다.

번역에 대하여도 에코는 관심 많다.

 

번역을 위해서는

그의 세계가 갖는 혼, 그것의 호흡, 정확한 속도를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48)

 

아마 고전을 읽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

고전의 시대가 갖는 혼과 호흡, 작품의 의의를...

 

텍스트가 작가보다 더 똑똑해요.

텍스트는 작가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생각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번역가는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옮기면서 새로운 생각들을 발견해서 알려줄 수 있지요.(49)

 

이쯤되면 번역은 새로운 창작을 넘어 새로운 작품이 되는 셈인가.

 

세밀화가를 그린 오르한 파묵은 역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작법을 이야기한다.

 

소설가는 본질적으로 개미처럼 끈기있고 천천히 장거리를 나아가는 사람이에요.

소설가는 악마적이고 낭만적인 비전때문이 아니라, 끈기때문에 인상적이지요.(74)

 

터키는 내가 몰랐던 악마적 민족주의에 휩싸여 있기도 한 모양이다.

 

우리는 그렇게도 국제적이지 못한 민족주의를 최고로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95)

 

하루키에 대해서는 별로 감명깊지 못했으나,

인터뷰어의 이 말은 매력적이다.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인 재즈와 마라톤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스무 살은 젊어보였다.

아니면 마치 마흔 일곱 먹은 소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110)

 

어쩌면 ㅋ 그에 대한 디스일 수도 있으나, 그렇게 마니아인 사람은 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잃어버리고 찾아다니고 발견하기,

그러고 나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인 실망이 기다리고 있지요.(129)

 

부지런히 쓰는 작가인 하루키의 소설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나는 저 '실망'에 실망했던 모양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모색과 발견에 대하여 열광하기는 쉽지만, 그 실망에 애착을 주기엔 내 삶이 너무 뜨거웠나보다.

돌출된 덩어리, 단카이 시대의 하루키는 그렇게 나와 비슷하여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불길이 잦아든 지점에서,

첫 작품은 작가에게 검은색이다.

불이 타오르고 남은 그을림의 흔적이니까.

그러나 시인은 계속 불을 찾아 나설 것이지만,

소설가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체력이나 건강과 같은...(김연수, 머리말에서)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이 책을 읽고 실소를 머금었다.

그 책은 이 책에 의한, 이 책에 대한 오마주이자,

이 책의 나란히 쓰기에 불과하였음을 느끼게 되어서다.

 

이 책은 여느 리뷰집보다도 더 독서의 열망을 부추긴다.

그리고 여느 작가의 평전보다도 더 작가에 대하여 궁금하게 여기도록 한다.

파리 리뷰... 그들의 지난했던 작업의 결과,

나는 이렇게 행복한 독서에 푹 빠질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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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고유명사로 산다는 것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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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생과 89년생 연예인들의 사소한 말다툼이 생중계되고,

거기 잇따른 패러디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대부분 직장 상사가

어디서 반마리니?(이건 치킨 반마리로 패러디된 게 더 웃긴다.)

부장님, 저 맘에 안 들죠... 류로 흐르거나,

군대에서 병장님, 저 맘에 안 들죠... 등으로 해학을 분출해 냈다.

 

이태임이나 예원이 얼마나 인지도 높은 연예인인지는 모르겠으나(내가 모르는 걸로 보아 아주 출세한 부류는 아님. ㅋ)

그들의 대화야 사소한 사생활이고,

세 살 차이면 뭐 얼마나 선후배도 아니지만,

그것을 들은 한국인들은 자기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하관계로 인식했을 수 있다.

그러니 그런 패러디가 해학을 넘어 통쾌함으로 지속되는 효과를 유발했을 게다.

 

최진석의 '노자 인문학'은 여느 '노자 강의'와 다르다.

그래서 그의 '노자 인문학'의 가치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강의'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듯 하다.

강의와 책은 다르다.

 

우선 강의는 강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고,

어조의 강세나 액센트, 동작 같은 것이 청자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책에서는 챕터 하나에 어떤 비중의 이야기를 담을 것인지를 균질하게 분배하지 않으면

독자는 쉬 피로해지기 쉽다.

이 책은 초반에 너무 지루한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은 감이 든다.

물론 강의와 책의 간격을 고려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느 노자 강의는 '이전의 주석', 곧 '왕필'이나 '도올'이나 등등을 인용해가면서

노자의 한문 구절을 풀이하고, 그것의 의미를 현대인의 삶과 연결짓는 일에 몰두하는 식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의 장점은,

노자라는 책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다소 장황할 정도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높이 여겨지는 '공자'의 생각과 노자를 대비하면서, 노자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노자의 구절 풀이보다는,

노자의 핵심 구절을 통하여 현대인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식이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의견이 생각하는 방향은 아주 좋다.

노자라는 책을 '양생'을 돕는 웰빙-자기계발서로 전락시키지도 않았고,

무위자연...의 단순한 '명사'로 한정시키지도 않았다.

노자의 핵심 구절인 '도'를 논어의 첫 글자 '학'과 대비시켜

공자의 사상이 '본질주의적'이고 '핵심적 과제'에 몰입하는데 상반되는 사상으로서 노자의 입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도'는 주어진 본질의 목적어로서의 삶보다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동사의 형식임을 놓치지 않는다.

 

'반말'한다고 짜증내고 '눈깔'을 깔라고 윽박지르는 웃사람이나,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하고 웃사람을 무시하는 아랫사람이나,

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현실에서 숱하게 투영되는 삶의 고정된 틀들을 느끼는 네티즌들이나,

고참, 선배, 상사는 '이러이러하다'는 '본질주의적' 사고에 대하 비판과 풍자를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노자'라는 캐릭터가, 텍스트가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는 강의를 책으로 접하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책을 만들 때, 열 개의 챕터가 좀더 명확한 주제를 드러내며 달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현재 가진 고귀함이 낮은것, 천한것을 기초로 이뤄졌음을 끊임없이 자각하고자 합니다.

통치를 잘하고 싶다면 이 세계가 대립면의 긴장으로 서 있다는 점,

반대되는 것들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철저히 자각하라고 주문합니다.(204)

 

이 책은 노자를 통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지 않는다.

통치 철학으로 시작된 노자임을 명확히 하고 있고,

생활 속에서도 '위 아래'의 관계를 생각할 때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사고하게 한다.

 

본질론자나 실체론자가 말하는 '관계'란 실체끼리의 관계를 말하는 것.

반면 불교나 주역, 노자의 관계는,

존재하는 '그것 자체'가 관계로 되어있음을 뜻해요.(157)

 

아랫사람이 '반말'을 하면

그가 나와의 관계를 무시하는 듯 느껴지고,

윗사람이 잔소리하면 그가 나를 '맘에 안 들어' 하는 것으로 여기는 세상.

그것이 우리 사는 세상이다.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모두 혼재하는 곳이 세상인데, 불필요할 정도로 성리학적 질서는 수직 질서를 강조했던 듯.

 

우리는 지나치게 '보고' '지혜롭'고자 하고, '뛰어나'고자 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스스로를 자학한다.

그래서 노자에서는 지혜로운자를 높이지도 말고, <눈을 위하지 말고 배를 위하라>고 했다.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해 주면, 많은 부분이 저절로 다스려지지라는 것은,

춘추전국 시대 당시만의 과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무위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치부하는데,

노자의 무위는 수단이거나 과정 혹은 태도의 방식입니다.

그런 태도를 통해서 도달하고 싶은 곳이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이루어진 지경, 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지경'이라 말합니다.(254)

 

그렇다면 현대 한국에 '노자'의 가치는?

 

노자가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본다면

이곳은 가치 기준이 대단히 분명한 사회로구나.

가치 기준이 획일화되어 있구나. 할 것이다.

사람의 가치와 이유가 스스로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판단 기준이 자신이 아닌 자신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284)

 

이 책은 별로 책을 많이 접하지 않은 직장인이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도록 서술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친절하게 쓰여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나처럼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사람이 느릿느릿 읽기에는 제법이지만,

노자를 읽어야 할 사람은, 사실 제 인생을 다스리는 고민으로 충만한 젊은 넋들이 아닐까?

작가가 좀더 정진하여 고딩이나 대딩 수준에 맞는 책을 써주면 어떨까?

 

신의 시대가 아닌 '사람의 시대'임을 공언한 '공자'와 '노자'는 선각자였다.

그런 선각자들의 외침을 듣는 우리는,

말을 듣고 귀를 열고,

진실을 보고 눈을 열어야 할 일인데...

눈을 감고도 느끼는 황홀을 겪어야 할 일인데...

 

무에서 유가 나온다는 기존의 입장을 '무와 유'로 병치시키는 등

다른 책들과는 상당히 새로운 입장의 풀이를 하는 작가의

사유의 깊이를 곱씹을 만한 좋은 책이다.

 

진실을 본다는 것은,

말하는 것과도 다르고, 읽는 것과도 다르다.

학생운동을 했던 혁명가들도

기실 자신의 삶을 혁명하지 못하고 허덕거림과 같다.

 

입맞춤에서 진실을 찾는

이런 시가 '시론'을 대신하듯

노자의 81장을 대신하는 것은,

장황한 해설서가 아니라

핵심을 짚어주는 안내서일 수 있듯...

최진석의 용맹정진과 건필을 빈다.

 

 

 

詩論, 입맞춤 / 이화은

 

여자는 키스할 때마다 그것이 이 生의 마지막 입맞춤인 듯

눈을 꼭 감고, 애인의 입 속으로 죽음처럼 미끄러져 들어간다는데

 

남자는 군데군데 눈을 떠

속눈썹의 떨림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며

풍경의 변화와 춤추는 체온의 곡선까지 꼼꼼히 체크한다고 하니

 

누가 시인일까

 

독자는 여자 편에 설 것이고

시인은 당연히 남자 편에 설 것이다

몰입의 바닥에는 시가 없다

불타는 장작을 뒤집어 불길의 이면을 읽어야 하는 남자여

불쌍한 시인이여

 

키스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은 시인이거든

그대 당장 독자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하리

그러나 시인의 발바닥은 완전 연소의 재 한 줌도 함부로 밟지 않는다

 

- 《현대시학》2008.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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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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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에 한창 팟캐스트를 들으며 출퇴근할 때 'ebs 고전읽기'를 들으며 다녔다.

그런데, 이유도 없이 그 프로그램이 폐지되어 그냥 쇼팽을 들으면서 출퇴근을 한다.

빨간책방도 두어 번 들어 보았지만 별반 흥미를 가지기 힘들었는데,

ebs에는 전문 인력이 여러 명 달라붙어서 심도있는 설명을 듣게 되는 학습으로 여겨진데 비하여

빨.책은 그들의 책 수다라고 여겨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들의 수다가 7편의 소설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일곱 편의 소설 중 나는 6편을 읽었던데,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것들도 있어

내가 쓴 리뷰를 다시 뒤적거릴 지경이니, 읽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암튼 일곱 편의 이야기가 일정한 분량인 것이 아니라,

그 분량을 일별하여도 1,7편이 가장 많고,

그리고 다음이 3,4편, 2,5,6편은 분량이 적은 편이다.

1,7편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와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에 대한 수다이다.

 

우선 나는 <속죄>를 읽지 않아 맨 뒤로 제쳐두고 읽었는데,

하루키에 대해서는 내 선입관이 있어서인지, 여기저기서 그가 '삼류 연애소설가'라는 이야기를 들어선지,

그들의 칭찬이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의 환상 문학에 대하여는 일본과 한국의 신세대가 반응한 문학이라 볼 수도 있는데,

그의 수필, 잡문들은 좀 시답잖은 것들도 많은 편이라 여기고 있다.

 

하루키와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세상과의 접점이

뭐랄까 대지에 까치발로 서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중력에 대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태도라고 할까요.

하루키는 딱 까치발을 하고 있는 느낌이고 그런 게 저한테는 굉장히 매혹적이에요.(277)

 

그래. 하루키의 특징은 현실에서 그만큼 떨어져 있는데, 또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은,

그런 작가라는 말이렷다.

 

그릇을 빚어서 텍스트를 담는 게 아니라

그물을 짜서 텍스트를 담아내는 방식이라 볼 수 있는데,

저는 하루키가 이걸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287)

 

<색채~>를 읽어본 나로서는 전적으로 공감할 수 없다.

그의 <노르웨이의 숲>이나 <태엽감는 새> 등을 보아도,

그의 직조가 그릇이나 그물에 비유되는 치밀함으로 설명되기는 힘들 듯 싶다.

뭐, 둘이서 쿵짝을 맞춰 수다떠니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지만서도...

 

그물에는 '벼리'라는 것이 있다.

그물을 드리워두고 가장 가에 위치한 '벼리'를 좍 잡아당기면 홀태질이 되어 그물이 고기를 가두게 되는 선이다.

그들의 수다에 따르면,

많은 물고기들을 투망 안에 가둔 다음에 한방에 '벼리'를 좍 잡아당겨 거두어 들이는 작품으로는 <속죄>가 있는 듯.

 

우리가 소설을 읽고 이하하려고 하는 의미는,

작가가 일어나지 않은 일 또는 일어날 수도 있었을 일에 대해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든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해석해서 새로운 평행우주를 만드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316)

 

하루키의 이야기들은 벼리로 좍 훑을 수 있는 그물보다는,

흥미로운 이야기 토막들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속성에 있지 않을까?

그의 <색채가 없는>을 그물이라고 하기엔 그 그물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이름에서 빨강, 파랑, 흰색과 검은색, 회색과 녹색이 들어있고, 주인공이 '창작'인 쓰쿠루 인 것도 지나치다.

 

이언매큐언 소설은 이전에 여러 권 읽었고, 속죄는 가지고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미뤄두고 있다가

이번에 읽고 배신감 비슷한 걸 느꼈어요.

내 친구들은 이렇게 좋은 소설이 있으면 진작 이야기해줄 것이지 나만 빼놓고 다 읽었더라구요.

왜 이제까지 이걸 안 읽고 있었는지 마구 자책하고 후회했어요.

 

저 역시 우연히도 김작가님과 똑같이 네 권을 읽었는데,

단연 이 소설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훌륭하고, 감히 위대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속죄>는 수학적으로 플롯을 조직한 소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동감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만약 아직 이 소설을 안 읽은 분이 있다면

여기서 이 책을 덮고 무조건 <속죄>부터 읽으시라고 권합니다.

영화 <어톤먼트>도 책을 읽은 다음에 보시는 게 좋겠죠.(22)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마구 읽고 싶어진다.

 

이 소설은 '간극'에 관한 소설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즉 의식과 무의식의 간극, 현실과 상상 사이의 간극이라는 거예요.

상상을 현실로 착각한 여자아이가 빚어낸 비극이라는 의미에서,

혹은 둘 사이의 계급적 간극, 자아와 타자 사이의 간극,

혹은 개인과 사회, 보는것과 아는것 사이의 간극,

이런 숱한 간극들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오해, 후회, 죄책감 같은 것들을 다루는...(34)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60)

 

소설가와 작품속 화자가 일으키는 반전의 연속,

그리고 마지막 두 페이지를 남겨둘 때까지 이 소설은 완성되지 않으며,

단 두 줄로, 그물망에서 '벼리'를 잡아당기듯 한방에 독자에게 쇼크를 주는 소설.

그렇다면 그들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할 만 하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할 만 하단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역사보다 위대하고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역사가 못하는 중요한 일을 소설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이 보여주어 감동적(70)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으면 그런 면을 느낄 수 있듯이,

이 소설 역시 재미와 세상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인 듯.

 

밀란 쿤데라는 길지 않은데, 짧지만 역시 많은 이야기가 담긴다.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 같은,

에세이와 소설이 뒤섞여 있는 게 쿤데라 스탈이기도 하죠.(81)

 

쿤데라야 말로 끝없이 읽어도 새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글이니 더할 나위 없다.

 

저는 권태와 허무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자 운동을 하는 게 인간의 삶이라 생각합니다.

그중 더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행동하겠죠.

권태가 두려운 사람을 일을 저지르고,

허무가 두려운 사람은 모범적으로 행동하려는 거예요.

작고 반복적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맞닥띠리는 건 권태예요.

반대로 일회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허무죠.(97)

 

<참을 수 없는~>을 읽을 때 이런 개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주인공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뭐, 그 소설은 꼭 그들의 연애를 읽는 소설만도 아니니... 적합한 독법이 있을 수도 없지만...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우연을 받아들일 힘이 없어요.

우연은 찾아내는 사람이 발견하는 것이고

찾아내서 의미를 붙이는 사람이 그것을 운명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수많은 우연이 있죠.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조립해서 우연으로 운명을 만들고 필연으로 만드는가 자체가

매우 중요한 삶의 태도일 거예요.

그것이 자기 인생을 꾸리는 방식이니까요.(99)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서는 그닥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설레발이 많다.

 

작가의 예술적 구상에는 작품 속 인물의 특징을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독자들이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것까지 포함된다.(197)

 

<호밀밭>의 후속편을 썼다가 법정에서 판매금지를 당한 '60년 후'에 대한 판결은 멋지다.

 

<파이 이야기>는 상당히 관념적인 소설인데 이렇게 읽어주면 도움이 된다.

 

나는 종이가 모자랄 걸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먼저 떨어진 것은 펜이었다.

아, 이 문장 정말 좋아요.(214)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일기를 쓰는 인간의 행위라니.

이 불가해한 이야기들 속에서 구조를 찾아내는 눈도 날카롭다.

 

한쪽에는 '파이'가 있고 한쪽에는 '100장'이 있는데,

이쪽은 카오스이고 이쪽은 코스모스라는 거예요.

혼란에서 질서를 읽어내려고 하는 것이 종교라고 할 수 있죠.

의미를 파악할 수 없거나 어려운 것에 대해서 의미를 발견하려 노력하는 종교의 성격과

이 소설의 작법이 사실상 같다고 봐요.(217)

 

'파이'는 무리수인데, 그것을 100장의 질서 안으로 넣으려는 이야기로 분석한다.

 

이것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라고 했어요.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거든요.(230)

 

영화든 소설이든 단일한 해답이 없다고 인정할 때 텍스트가 더 풍부해진다고 봐요.

사실 삶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나요?(233)

 

그렇지만... 나는 그런 편을 선호하지 않는다.

열린 결말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여 그 세계를 고민하기보다는,

완결된 세상, 또는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

비극이더라도, 어떻게든 결말을 보는 세상을 읽고 싶어 문학을 접하게 된다.

 

<조르바>에 대해서도 칭찬과 비판이 오간다.

 

조르바라는 캐릭터를 지나치게 숭상하는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253)

 

이건 문학과 현실을 몰각한 착각에서 드러나는 것 아닌가 싶다.

문학은 허구의 세계다. 조르바는 인간의 본성을 통렬하게 드러내는 장치이지,

정말 그런 막돼먹은 조르바를 칭찬하는 소설로 읽으면 곤란하지 않을까?

우리는 얼마나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면서 교양있는 체 살아가고 있느냐,

또는 교양을 조금만 무시하면 세상은 뜻밖에 재미있을 수도 있잖으냐, 이렇게 읽어도 좋을 듯~

 

 

어쨌든,

책 안 읽기로 소문난 한국사회에서

이렇게라도 책을 읽기 권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좋다.

다만, 이런 개인적인 또는 기업에서 추진하는 것보다는,

ebs처럼 큰 예산을 가진 공영방송에서 진행한다면 훨씬 질높은 수다를 기대하게 됨은 당연지사이거늘,

온갖 잡놈들의 종편은 활성화하면서  그 좋은 '고전읽기'를 폐지한 무지한들에게 저주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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