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나무 1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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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이 너무 티난다.

원제는 시캐모어 나무의 열... sycamore row 인데, 그편이 훨씬 함축적이다.

시캐모어 나무들이 줄지어 선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왜 이 부자는 시캐모어 나무에 목매달아 죽었는가...

그걸, 대놓고, 속죄나무...라고 제목을 붙이니,

아, 속죄한다고 죽었구나...

이런 거다.

제목이 스포일러인 셈이다.

 

무지 부자인 백인 남자가,

시캐모어 나무에 매달린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장례 방식과 유서까지... 유산 분배 변호사 지정까지 착착 되어있는데,

놀랍게도, 두 자녀가 아닌 돌보미 흑인 여자에게 수천만 달러의 90%를 주라고 했다.

나머지 5%는 교회에, 또 5%는 실종된 동생에게...

 

결국 이 두꺼운 소설 총 820페이지의 600페이지가 넘도록,

본격적인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걸로 보아,

이 소설은 흑백 갈등의 재판이 일어날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타임 투 킬'과도 유사한 주제이다.

타임 투 킬이 훨씬 본격적인 갈등이라면, 여기서의 갈등은 한 세대 건넌 차원이다.

 

흑백의 갈등이 배경으로 물러서긴 했으나,

그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존 그리샴의 소설이 편안한 이유는,

주인공들이 선인이고, 선한 사람들은 심하게 고통받지 않는다.

유쾌하게 문제가 진행되고 이끌려나가다가 해결된다.

악인들은 쉽사리 무능하고 우스꽝스럽게 무너진다.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지만, 소설 속에서나마 픽션의 힘으로 평범한 선이 이겨서 좋다.

 

"칼 리 헤일리 사건(주인공 변호사 제이크가 맡아 이긴 흑인 소송)은 인종문제였지만,

  이 사건은 돈 문제예요."

"미시시피에서는 모든 사건이 인종 문제야."(1권, 164)

 

건물주면서 전직 변호사인 루시엔.

난 그가 술꾼이란 점도, 슬슬 농담을 던지며 레티의 딸과 일하는 점도 다 좋았다.

결국 그가 한 건 한다.

 

레티 랭이 죽어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상속을 변하게 하는 재주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도 계속 흥미를 끌게 하는데,

800페이지는 좀 심했다. ^^

 

이 소설에서 '생선 파일'이란 말이 등장했다.

<한쪽 구석에 처박아두고 쳐다보지도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고 해서 생겨난 사건 파일>을 일컫는다.

살다보면, 그런 업무들이 있다. 훌륭한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생선파일을 몇 개 쌓아두고 있다.

좀 있으면 냄새를 진동할게 뻔한...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을 배제시키는 참여재판 '배심원 제도'는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변호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법정, 그리고 배심원 앞이야.

물론 경쟁은 치열하지, 위험도 크고.

온갖 꼼수가 난무하는 것도 사실이야.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되어있잖아.

매번 배심원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마다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기분이야.(2권, 353)

 

나도 법조계로 들어갔을지도 모를 희망을 가졌던 시절도 있었다.

과연 그 아드레날린을 즐길 수 있었을까?

내가 즐기는 분야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멋쟁이 아트리 판사는 형평법에 따라 법원을 운영하는데,

아트리 판사처럼 명쾌한 판사가 아니었다면,

이 소설의 운명은 사뭇 달라졌으리라.

 

"다음에도 자네가 이길 거야.

왜냐하면 이겨야 하니까.

내가 앤실의 비디오를 채택한 이유가 바로 그걸세.

그것이 옳은 일, 정당한 일이었으니가."(2권, 414)

 

법원에서 옳은 일, 정당한 일이 승리하는 세계...

진정 그 세계는 픽션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먼먼 옛날 바라본 시캐모어 줄선 나무들이

오늘 바라본 나무 하나의 사진에 오버랩 되듯,

비극의 역사는 반추되고 반복되는 듯 하지만,

정의는 그 속에서 하나하나 진실을 밝혀나가기 마련이라는,

사필귀정을 외치는 소설이다.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노라니... 더 비참함이 대비되어 두드러지게 슬프다.

대법원에서는 끊임없이 뒷걸음질치는 판결을 내리고,

차벽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가진자들의 권력과,

그 앞에서 울부짖는 유족과 경찰간의 갈등으로 비화하는 더러운 언론과,

힘없는 헌법 아래서 살아가는 가엾는 사람들이 비쳐서...

과거의 잘못에 목매달고 속죄하는 넘 하나 없는, 더러운 현실에 치가 떨리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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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6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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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에 나온 시집이다.

1952년생이 1981년이었으면, 서른이었겠다.

그 시절엔,

유럽의 68혁명 시기, 금지를 금지하라던 그 시기의 열풍이

이 차가운 반도에도 잠시 몰아쳤을 것이다.

그 무렵,

서울 법대를 다니다가 독일의 슈바벤 골목을 방황하던 전혜린의 그림자가

이 시집에는 남아있는 듯 하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 세'가 묻어있는 듯도 하고...

 

이 시집의 첫 시.

<일찌기 나는>의 뒷부분을 참 좋아하던 대학 친구가 있었다.

시를 쓰던 그 친구는,

이 시를 필사하여 들고다니며 감탄하며 읊곤 했다.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일찌기 나는, 부분)

 

나도 멋도 모르고 멋지다고 그래 주었다.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니... 캬~

 

그 아이는 그 뒤의 시도 좋아했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개 같은 가을이, 부분)

 

내가 대학을 다니던 그 시절은, 개 같은 시절이었지만(지금도 그건 여전한 나라지만)

매독처럼 지독한 심리적 충격을 동반한 가을은

사람이 살아가야 할 날을 아득하게 만든다.

아직 살아가야 할 날들이 얼마나 아득한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스물 무렵에

나도 강물이 바다가 되는 상상을 한 적 있었다.

이제 바다 언저리에 다 와 가는 모양이지만, 가을은 여전히 개 같고 매독 같다 해도 다르지 않다.

 

이 도회의 더러운 지붕 위에서

여자들과 사내들은

서로의 무덤을 베고 누워

내일이면 후줄근해질 과거를

열심히 빨아 널고 있습니다.(여자들과 사내들, 부분)

 

20대의 사랑은, '언제나 벼락처럼 왔다가, 정전처럼 끊겨지고, 갑작스런 배고픔으로 찾아오는 이별'과도 같은 것이다.

망막이 막막해지도록 눈물도 나고,

외로움이 허연 뇌수를 바래는 시간들로 바람을 맞는다.

내일이면 후줄근해질 과거일 뿐인

오늘의 연애를

서로 죽지 않을 듯이 열심히 빨아대는 것으로

젊은 시절의 여자들과 사내들은,

그런 열기로 가득한 나이로 그린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삼십세)

 

요즘에야 인간 백세 시대가 거짓말이 아니지만, 그 당시엔 60대면 삶이 마무리지어졌다.

서른 살이 가진 의미는 그런 것 아니었을까?

어떻게 살아야할지 아직 모르겠는데, 이제 꺾어지는 느낌이 들 때.

온 몸의 구석구석에서 죽음이 신호탄이 반짝이며 제 자리를 노릴 때,

세상은 그야말로 뻔뻔스럽게도 더럽게 흐르건만,

그래서 김광규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마냥

젊음의 신선함을 잃어버린 소시민들의 서른 살.

 

그래서 그는 행복한 일상과 항복의 나이로 서른을 읽었고,

철판 깔고 사는 나이라 부끄러움을 생각하는 서른을 느낀다.

 

가장 높은 산맥을 뛰어넘는

키 큰 바람, 바람의 거인(시인 이성복에게, 부분)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던 이성복의 '그날'처럼,

세상은 썩어들어가 시취가 진동하는데도,

아무도 아프지 않아하는 뻔뻔스러운 철판같은 세상을 보며,

그 '항복'에 아파하던 마음으로 이성복에게 시를 썼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내 청춘의 영원한, 전문)

 

청춘은 언제나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노스탤지어에 대한 향수로 가득한 나이다.

특히나 유신 시대에 20대를 살았던 젊음이야,

그것도 독문학을 배운 젊은 여성에게,

세상은 정신 분열로 가는 고샅길에 불과한 것이었을는지도...

 

꿈의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돼지처럼 살찐 권태 속에 뒹굴며

언제나 내가 돌고 있는 이 원심점,

때때로 튕겨져 나갔다가 다시

튕겨져 들어와 돌고 있는 원심점,

<그것은 슬픔> (청계천 엘레지, 부분)

 

아픔의 시대는

끊임없이 당겨져오는 원심력의 중심인

구심점에 놓인 '슬픔'

 

어째서 내 존재를 알리는 데에는

이 울음의 기호밖에 없을까요?

 

(울며 절뚝 불며 절뚝

이 거리 한 세상을 저어 가나니

가야지,

그리고 나의 사랑은 떨어야지) (부질없는 물음, 부분)

 

1980년대 시집,

그 시대의 사랑은,

눈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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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3 1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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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몸 건강과 마음 건강을 위한 책을 만드는 판미동 입니다.

출간 예정 도서 <들어봐요 호오포노포노>의 가장 빠른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판미동이 소개하는 호오포노포노 세 번째 이야기, 호오포노포노의 명언

“호오포노포노는 믿는 게 아니야. 매 순간 체험하는 것이지.”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4월 16일 ~ 4월 23일 (당첨자 발표 : 4월 24일)

 

2. 모집인원 : 10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스크랩하세요.(필수)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 링크(http://goo.gl/forms/hqzZFnxWj4)에 당첨자 정보를 적어주세요


4. 당첨되신 분은 꼭 지켜주세요.

-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을 바꾸는 기적의 한 마디

“지금 당신은 어떤 생각,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하와이언의 문제해결법 호오포노포노는 ‘사랑해요. 미안해요. 용서해 줘요. 고마워요.’라는 말로 지금 여기의 진정한 나를 찾으라고 말한다. 『들어봐요 호오포노포노』는 이처럼 호오포노포노의 말에 담긴 특별한 치유의 힘, 정화의 힘, 변화의 힘을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조명한다. 짧고 간단한 말은 언제 어디서든 호오포노포노를 실천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다. 


이 책은 일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호오포노포노의 말’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데, 이는 사소한 일에도 호오포노포노의 힘을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대 하와이언들의 지혜를 따르면, 오늘의 말 한 마디가 삶을 변화시킬 힘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에는 친구와 사이가 멀어졌을 때, 스마트폰에 중독되었을 때, 시간에 쫓길 때, 가족이 아플 때 등 현대인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호오포노포노의 말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일화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책 속으로


◎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오늘 당신이 자신으로 있고자 했을 때 당신의 눈에 보였던 그것이 바로 당신이 지금 봐야 할 것이에요. 그것이 우리가 지금 힘써야 할 일이에요. (83쪽)


◎ 언제나 내려놓을 기회는 있다


기억은 악인이 아닙니다. 기억은 나쁜 것이 아니지요. 기억이 우리를 지탱해 준 적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을 그대로 방치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자신을 잃게 됩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입니다. (…) 기억을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현재의식인 자신뿐입니다. 내가 시작하지 않으면 누구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128~129쪽)


◎ 정화하지 않는다면 과거를 끝맺을 수 없다


‘힘들어서 더는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당신의 생각조차 ‘자, 내려놓을 기회야.’ 하고 우니히피리가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진짜 적은 ‘생각’입니다. 당신에게는 독이지요. 우리는 모두 ‘생각 중독자’입니다. 이 지구는 재활센터,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206~207쪽)


◎ 나는 지금 신의 눈앞에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 보고 듣는 모든 정보는 지난날의 내가 축적해 온 기억을 전부 정화하고 내려놓게 하려고 나타난 신성한 존재들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였던 일은 ‘나’라는 존재를 되찾기 위해 신성한 존재가 마련해 준 소중한 만남으로 다가옵니다. ‘알로하’, 즉 ‘나는 지금 신의 눈앞에 있습니다.’라는 고백의 효과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222쪽)



타이라 아이린 지음ㅣ이하레아카라 휴 렌 감수ㅣ김남미 옮김ㅣ224쪽 ㅣ 12,000원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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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창비시선 387
문태준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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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의 이번 시집 안쪽에

"우리는 가볍게 웃었다'

이렇게 적어 두었다.

 

삶이 가벼워졌다.

굳이 의미를 찾기 힘들단 이야긴지도 모르겠다.

고통스럽다고, 힘들다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징징대는 것보다 나아 보인다.

 

  백화(百花)가 지는 날 마애불을 보고 왔습니다 마애불은

밝은 곳과 어둔 곳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눈두덩과 눈, 콧

부리와 볼, 입술과 인중, 목과 턱선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안면의 윤곽이 얇은 미소처럼 넓적하게 퍼져 돌 위에 흐릿

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도객들은 그 마애불에 곡

식을 바치고 몇번이고 거듭 절을 올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깊은 밤에 홀로 누워 있을 때 마애불이 떠올랐습니다 내 이

마와 눈두덩과 양 볼과 입가에 떠올랐습니다 내 어느 반석

에 마애불이 있는지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온데간

데없이 다만 내 위로 무엇인가 희미하게 쓸려 흘러가는 것

이었습니다 (如是, 전문)

 

여시...는 '여시아문'의 앞부분일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부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할 때 쓰는 클리셰인데,

'여시'는 그런 의미를 넌지시 던져준다.

 

그이의 시를 읽으면,

삶이 납죽 엎드린 가자미 같다가도,

슬몃슬몃 헤엄치면서 한 세상을 풍미하는 삶의 의미를 툭, 느끼는 순간을

엿보기라도 하는 듯,

그런 말들이 윤곽으로 남은 미소처럼 느껴진다.

이와 같이...

 

가자미가 나이들어 가나 보다.

'노자'와 비슷해지는 걸 보면...

노자가 제일 좋은 '정치/통치/사랑'은 물과 같은 것이라 했다.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흐르고

더러운 것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사랑도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다.

 

병원 흰 외벽 아래 나무 의자가 몇 개 앉아 있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의자도 있고 목발을 짚은 의자도 있다

얼굴이 얼금얼금 얽은 의자는 늦게 와 앉아 있다

조용한 시간도 의자에 앉는다

물뿌리개에선 밝은 볕이 쏟아진다

물뿌리개에선 밝은 볕이 계속 쏟아진다

앉을 데가 마땅치 않아 한켠에 슬그머니 쪼그려 앉아본다(병원 흰 외벽 아래, 전문)

 

매일 시간이 없다고 허덕이던 사람도

병원엘 가면 바쁘다는 소릴 못한다.

시간이 남는 곳이 병원이다.

자기가 아파서 가도 지루할 정도로 대기해야 하고,

병문안 가면 삶의 허망함에 바쁘다는 말 하기 싫고,

장례식장이라도 가면 문상은 잠시고 햇볕을 쬘 시간이 나는 법이다.

의자에 앉는 붕대, 목발, 얽음뱅이, 그리고 시간...

쪼그려 앉아도 쏟아져 내리는 밝은 볕...

평소에 우러르지 못하던 것들을... 병원에 가서야 쏟아지는 밝은 볕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이여...

 

무엇을 할까

북쪽에

끝에 섰으니

 

12월에 무엇을 할까

긴 투병기 같은

마른 덩굴을 거두어들이는 일 외에

 

꺽인 풀

왜소한 그늘

흩어진 빛

가는 유랑민

 

그러나

새로이 받아든 동그란 씨앗

대지의 자서전(12월의 일, 전문)

 

한 해와 한 해 사이...

'야누스'같은 시간이라 '야뉴어리 January' 라 불렀다던 그 때.

북쪽의 겨울 같고,

끝 간은 시간인데

<새로이 받아든 동그란 씨앗, 대지의 자서전>을 들고 선 사람.

 

인간은 유한해서,

씨앗 하나 대지에 떨구고,

자서전을 마감하는 건가...

 

  그대여, 하얀 눈뭉치를 창가 접시 위에 올려놓고 눈뭉치

가 물이 되어 드러눕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뭉치는 하얗게 몸을 부수었습니다 스스로 부수면서 반

쯤 허물어진 얼굴을 들어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내게 웅얼웅얼 뭐라 말을 했으나 풀어져버렸습니다 나를

가엾게 바라보던 눈초리도 이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한접시 물로 돌아간 그대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이제 내겐

의지할 곳이 아무 데도 없습니다 눈뭉치이며 물의 유골인

나와도 이제 헤어지려 합니다 (조춘 早春, 전문)

 

이른 봄,

눈사람이 녹는다.

녹아서 풀어져 버리고 눈초리도 스러진다.

스스로 지금 눈뭉치이며

장차 물의 유골일 자신을 인식하는 이른 봄.

 

그리하여

아침마다 새로운 정신으로 깨어나려 한다.

 

시간은 꼭 같은 개수의 과일을 나누어주시네

햇볕, 입술 같은 꽃, 바람 같은 새, 밥, 풀잎 같은 잠을

 

나는 매일 아침 샘에 가 한통의 물을 길어오네

물의 평화와 물의 음악과 물의 미소와 물의 맑음을

 

내 앞에는 오늘 내가 고를 수 있는 물건들이 있네

갈림길과 건널목, 1월 혹은 3월 혹은 9월 혹은 눈송이, 첫번째, 분수와 광장, 거울

그리고 당신

 

당신이라는 만남

당신이라는 귀

당신이라는 열쇠(아침을 기리는 노래, 전문)

 

아침에 일어나

또 나에게 주어진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내게 나누어진 과일을 즐기라네.

 

평화

미소

맑은 음악

 

그리고 당신

내 말을 들어주는 귀

나의 하루를 열어주는 열쇠

그것이 의미라 하네...

 

가자미

납죽 엎드려 보이지만

광활한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한다.

 

오늘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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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7 1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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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문 - 달이 숨는 시간,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7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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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아 미치겠는 일이 너무도 흔하다.

비극적 한국 현대사의 숫자로 된 역사의 아이러니는

그 간결함의 미학이 품고 있는 비극의 크기를 도저히 가늠하기 힘들다.

 

5.18, 4.19, 5.16, 8.15... 이제 4.16

 

마이클 코넬리의 이 소설에서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연일지, 운명일지를 고뇌하게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전문 절도범 캐시 블랙과 파트너 맥스,

맥스의 죽음과 얽힌 의문들은 사건이 전개되면서 인과관계가 드러난다.

비록 현실에서는 밝혀지지 않는 것들 투성이지만 소설에서는 명쾌하게 밝혀지는 구성이어서

힘들 때일수록 장르소설을 읽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상징적인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제목인 '보이드 문(달이 숨는 시간)' 역시 그러하다.

인간의 운명에는 명쾌하게 인과관계가 드러나는 일도 많지만,

캐시의 삶에서처럼 그 인과관계가 거의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레오는 보이드 문 시간에 움직이지 말라고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간에 거길 가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해도 소용 없는 일들이 흔하다.

 

맥스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났다.

캐시는 언제나 그 만남을 서로 잘 어울리는 영혼들의 우연한 마주침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 세상에서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

캐시 자신에게는 결코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일.(146)

 

조디의 엄마이면서 엄마일 수 없는 캐시의 슬픈 삶도,

맥스와 알콩달콩 콩을 볶으며 단란하게 살 수도 있었지 않았나 생각하면 아련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벌새는 왼쪽으로 휙 날아가더니

갑자기 수영장을 향해 급강하했다.

잔잔한 수면 위 30센티미터 지점까지 내려갔다.

거기에서 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더 내려가 수면에 몸을 부딪쳤다.

날개를 정신없이 팔락거렸지만

날기에는 몸이 너무 무거웠다.

물이라는 덫에 걸린 것이다.(274)

 

그렇게 수영장에 둥둥 떠있는 벌새보다 인간이 나은 게 무얼까?

물이라는 덫에 걸린 벌새나

돈이라는 프레임에 걸린 인간이나...

 

마술사 아버지의 아들인 카치는

인간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의 달인이다.

물론, 거기서 '사라지게 하는'은 눈속임이 아니라 '살인'이 되지만...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마술사들은 관객의 눈을 가리고 자유의 여신상도 사라지게 한다.

잠시 후 커튼을 걷으면 사라진 여신상을 확인하며 관객은 환호한다.

자신들의 좌석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구조임을 모르고...

 

카치는 '동시성'을 이야기한다.

 

겉으로는 별개로 보이지만 서로 관련된 일이 시간차를 두고 일어나는 것. 동시성.(404)

 

눈속임은 잠시 가능할 수도 있지만,

영원히 속이는 일은 힘들다.

별개로 보이는 일들도 지나고 나면 연관성이 맺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래서 사막같은 삶이라도 착하게 살아야 한다.

 

사막이 바다가 되는 곳...

 

이야기는 사막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욕망의 도시에서

인간다운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를 만나는 사람도 있다.

엄마 캐시가 딸 조디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며 눈물흘리는 시간은

아무리 팍팍한 세상이라도, 사막이지만은 않다.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 돈을 뿌리고 내려오는 캐시와 조디의 대화.

 

"저 아저씨들 뭐하는 거예요?"

"자기들의 진짜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거야."(448)

 

인간의 진짜 마음은 추하다.

자기 욕심을 위하여 곧 들통날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도 흔히 행한다.

 

사막이 바다가 되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 기다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지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312, 경동맥이 절단된 왼쪽에서 피가 졸졸 흘러나왔다...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한 지점 아닌가? 경동맥인데... 졸졸이라니...

 

361. 침대에서 베갯잇을 집어 들고 베갯잇을 뜯어낸 다음 ... 베갯잇을 벗겨낸 다음...이 좋겠다. 뜯어내는 건 좀 억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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