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자의 사법활극 - 소송전문기자 주진우가 알려주는 소송에서 살아남는 법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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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다.

그러면 누군가 다른 기관이 국정원의 잘잘못을 판결해야하는데,

셀프 판결을 해서 <아무 문제 없음>을 결론짓는다.

 

국가라는 괴물(리바이어던)이

<절대 권력을 가진 착취 집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이었다면,

이 나라는 조선에서부터 세계 최초의 민증을 만들면서부터 체계적 착취가 정착된 곳이 아닌가 싶다.

한국어의 '높임말 구조' 역시 계급 사회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소송전문기자 주진우, 그는 숱한 재판 앞에서도 꿋꿋했다.

그리고 결국 감옥에 가지도 않았다.

그의 괘씸죄는 가카를 디스한 '나는 꼼수다'보다도,

박모 씨 일가의 살인 사건에 의혹을 표시한 보도 때문이라는데...

 

집안 싸움을 나병 환자들을 해결사로 동원해 끝낸다.

놀라운 일이었다.

창조 조폭 경제였다.(30)

 

대충 살펴본 박씨 일가의 살인 사건은

셜록 홈즈나 김전일이 팀으로 덤벼도 해결되기 힘든 사건일 듯 싶다.

지문도 없고, 증거도 없는데

피해자는 잔인하게 살해되었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그 옆에서 목매달아 '자살당했다'.

어, '자살당하기'는 새로운 창조적 트렌드가 될라나~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재판 과정 자체가 고문과 가해의 연속.

그것을 되풀이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

무죄판결이 나와도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언론.

무죄를 받는다고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146)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말처럼,

평범한 이에게 소송은, 그것도 치사하게 질질끄는 정치적 소송은 피를 말리는 일이다.

요즘 말로 <암 걸리게 하는> 일인 것이다.

 

검사는 심플하게 설명한다.

논리적으로 머리를 탁 때리게 정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변호사는 법리를 읊으며 중언부언하기 쉽다.(242)

 

그러니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주 기자가 이 책을 쓴 취지다.

 

정치 개입은 맞으나 선거 개입은 아니라는

선거 기간에 하면 위법 행위지만

선거 기간 전부터 해왔다면 죄가 아니라는 판결문(273)

 

그 이범균 판사님께, 자자손손, 길이길이 이름이 남으라고 봉축의 말을 바치고 있다.

 

사법부의 균형을 내팽개친 정치검사들의 행태를 읽노라면,

정말 암 걸릴 듯 싶다.

 

그러니 주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꿋꿋하게,

암 걸리지 말고 셀프로 이 암흑기를 헤쳐나가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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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방울새 1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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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을 주고 소설을 사는 일은 흔치 않은데,

눈먼 상품권이 좀 생긴 고로,

도나 타트의 소설로 유명하다고 광고를 때린,

특히 98.5%에 눈이 멀어 책을 샀다.

 

그리고 읽으면서 힘들었다.

활자 중독인 내가 힘들어 하는 책들이 간혹 있는데,

소설을 이렇게 읽다가 지치기도 흔한 일이 아니다.

명실상부, 명불허전이라고...

유명한 소설들은 나름의 개성적 인물을 창조하고, 환상적 배경 속에서 사건이 전개되며,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 소설에 있는 것은... 글쎄. 없다.

유명세만 있다.

 

여러 해 동안 호비 아저씨의 체인질링에 감탄했고

일부 작업을 돕기도 해놓고,

..

우리 가게에는 미술관에 전시해도 될 수준이지만 복원할 수 없을 만큼 손상되거나 부서진 가구들이 종종 들어왔다.

이 우아하고 낡은 잔해들을 굶어 죽어가는 어린아이나 학대당한 고양이처럼 여기면서

슬퍼하는 호비 아저씨로는 살릴 수 있는 부분(여기는 꼭대기 장식 한 쌍, 저기는 섬세하고 둥글게 깎인 다리 한 세트)을

살려서 목수와 가구장이로서의 재능으로 다시 조립해서 아름답고 젊은

프랑켄슈타인을 만드는 것이 의무와 마찬가지였고,

결과물은 영 기이할 때도 있었지만 진품이 만들어진 시대의 아주 충실한 모델일 때고 있어서

진품과 구별이 안 가기도 했다.(2권 36)

 

스토리가 지나치게 지루하고,

아마도 그가 존경해 마지않을 미국 소설의 선구자들-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 을 본딴 것인지,

하류 계층의 뒤섞인 외국어와 욕설들의 삶에 대하여 지나치게 상세하게 적는 일에 진이 빠졌다.

내가 싫어하는 부류가 그런 뷰류인 모양이다.

인물에대하여 묘사하는 것도, 사건이 박진감 넘치는 것도 아닌,

떠벌이는 소설...

 

호비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소설을 썼더라면...

그 세계에 천착했더라면...

이런 아쉬움을 놓을 수 없었다.

 

간혹 철학적 언술들을 툭툭 던지는데,

바람둥이에 노름쟁이인 아버지에게서 얻은 교훈치고는 좀 과하게 고상하다.

 

패턴이라는 것을 아주 깊이 파고들면 빛이었던 것, 혹은 우리가 빛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무너뜨릴 만큼 암울한 공허함에 닿을 뿐.(2권 377.)

 

특히 마지막 페이지에서 수필집처럼 늘어놓는 문장들은,

소설의 인물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여서 감동을 받기에는 지친다.

 

우리는 어떤 그림을 일주일 동안 보고 나서 평생 떠올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그림을 잠깐 보고 평생 생각할 수도 있다.(390)

 

이런 명제에서 이 소설은 잉태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그림에 대한 의미 부여가,

가엾은 소년 시오와 골드핀치의 동일화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피파의 입맞춤의 맛 - 달곰씁쓸하고 낯선 맛 - 은 흔들흔들 버스를 타고 졸면서 돌아오는 내내,

슬픔과 사랑스러움과 함께 녹아들어서

반짝이는 아픔이 되어 바람이 휩쓰는 도시 높이, 나를 연처럼 날렸다.

내 머리는 비구름 속에 내 마음은 하늘에 있었다.(213)

 

반짝이는 사탕처럼 달콤한 문장들을 만날 수도 있었지만,

완독률 98%를 자랑하려면

좀더 박차를 가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표지에 적힌 미사여구만 보고 사지 말 책.

 

우리의 정신을 자극하고 심장을 두드리는 아름다운 소설...

뛰어난 스토리 텔링으로 완성시킨 흥미롭고 조화로운 작품...

뻥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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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8-18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전 그 완독률 광고문구에 걸려서 완독했습니다 ㅠ ㅠ 세상에 풀리처상이 어떻게 주어진 걸까요. 끝까지 길기만 하고 형편없는 소설이에요.

글샘 2015-08-20 15:25   좋아요 0 | URL
형편없는... ㅋㅋ
저도 완독률에 헛웃음만 나더군요.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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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세월 참 빠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걸 보면, 나이가 먹었단 이야기다.

 

1954년 출생.

일상의 폭력에 대해 투쟁하고 정의와 자유의 가치를 추구한 언론인으로 살다.

반파시즘 투쟁으로 인해 그는 반대파의 암살 위험에 시달리느라 32년간 같이 산 아내와 결혼도 못 한다.

40대 후반, 노후 보장 차원에서 <밀레니엄> 10부작을 기획하여 3부까지 출간하던 중,

2004년 책의 출간 6개월 전 심장마비로 사망.

 

그의 이력은 이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스웨덴이라 하면 사회적 합의로 복지가 잘 되어 있다고 착각하지만,

몇 년 전 바로 옆의 노르웨이에서 테러가 일어났듯,

우익이나 파시스트의 폭력적 발언 역시 수위가 높은 나라인 모양이다.

 

이 책의 소문이야 익히 들었으나, 너무 두꺼운 탓인지,

바삐 사느라 장르소설 손에 잡을 일이 흔하지 않았던 탓인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지난 번 이보영의 부추김에 넘어갔다고 보면 된다.

 

우선 스웨덴은 지명을 아는 곳이 거의 없다. 수도가 스톡홀름이라는 정도.

사람 이름 역시 영어나 불어, 독어권에 비하여 낯설다.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밀레니엄>이란 잡지사의 언론인이다. 아주 래디컬한 비판적 지식인이다.

어제 본 영화 <암살>처럼 속시원하다.

 

터무니없는 투기로 수백만 크로나를 날린 은행 이사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 되었다.

사욕을 위해 유령 회사들을 만들어 놓은 기업체 CEO는 감방에 들어가야 했다.

악덕 집주인은 죄인 공시대에 거꾸로 매달아 놔야 했다.(96)

 

죄인이 떵떵거리며 세상을 호령하고 사는 세상에, 이런 언론인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엠비시의 이상호 기자가 정부의 탄압을 받듯, 그도 재판에서 지고 벌금을 물고 파산지경에 이르며 감옥도 간다.

그 와중에 그에게 접근한 대부호 방예르 가의 주문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실종된 손녀딸 하리에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것.

그리하면 그를 엿먹인 한스에리크 베네르스트룀을 망치겠다는 것.

 

나는 자네에게 그의 목을 쟁반 위에 담아다 줄 수 있어.

수수께끼를 풀게.

그럼 나는 법정에서 망신당한 자네를 올해의 기자로 만들어 주지.(171)

 

찌질한 한국의 막장 드라마들에 늘 등장하는 대부호(한국에선 재벌이란 더러운 이름으로 불린다.)처럼

헨리크 방예르의 한 마디는 불안불안한 소설의 뒷배가 되어 준다.

너무 주인공이 당하기만 하는 소설은 매력이 적다.

왜 안 그래도 불공평한 세상 살기 힘든데 내돈 써 가면서 불안감을 읽어야 하나.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조마조마하면서도 속시원한 소설이다.

 

미카엘의 파트너 리스베트는 불운한 삶을 경험한 여자다.

 

그녀는 질질 짜고 있어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을 아주 어린 나이부터 깨달았다.

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호소해봤자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라는 사실도 터득했다.

하여 그녀는 피요하다가 생각되는 방법을 이용하여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곤 했다.(2권 173)

 

그래서 그녀는 해킹의 도사가 된다.

그녀는 사회적으로는 대인관계 기피가 심하고, 세상을 믿지 못하는 심사를 갖고 있지만,

뛰어난 기억력과 해킹 실력으로, 또 멋진 골프채 휘드르는 실력으로 미카엘과 한 쌍이 된다.

사건 해결 후, 미카엘에게 사랑을 느끼는 낯선 감정에 직면한 리스베트 살란데르.

 

그녀는 결심했다.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그를 봐야 했고 자신의 느낌을 말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선물을 사서 미카엘의 아파트로 가는 중,

<밀레니엄>의 파트너 에리카와 다정하게 걸어가는 그를 만난다.

 

정말 넌 바보야.

형편없는 계집애라고.

그리고 발길을 돌려 자신의 눈부신 아파트로 향했다.

신센스담 구역을 지날 때는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선물(엘비스)은 쓰레기통 속에 던졌다.(2권 329)

 

아직 어린 나이의 리스베트에게 다가온 '사랑'이라는 감정.

2부에서는 어떻게 발전할지...

아~ 1부를 읽었을 뿐인데,

작가의 요절이 아쉬워지기 시작한다.

 

리스베트에게 황동규의 시 한 편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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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27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보영씨책을 읽고 도대체 어떤책이길래?싶어 빌려왔어요
글샘님도 요절을 아쉬워하시는군요?
기대감이 큽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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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는 공대로 유명하다.

한양대에서 '문화 혼융의 시 읽기'라는 강의로 알려진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여기 나오는 노래들은 좀 나이든 축에 드는 이들이 들었을 법한 노래들이어서,

오히려 대학생 - 공대생 보다는 성인들이 읽으면 좋겠다 싶다.

 

좋은 시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학생 시절 교과서에 실려서, 문제집에서 만나서 억지로 공부해야 했던 시들이기도 하지만,

또는 그 시들이 그저 문제를 풀기 위해 만난 시가 아닌,

인생 살이의 길모퉁이에서 울컥, 하는 감정으로 읽게 되는 시를 풀고 있다.

 

시에서 서사가 부족하면 소설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흔한 정서를 부추기려고 유행가 가사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한층 시를 풍부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물론 시는 특정한 방식으로만 읽혀서는 안 된다.

풀이하는 사람이 시를 쓴 사람보다 오버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살면서 '시'를 시험 문제에서만 만나게 되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 시 속에서 삶의 애환을 만날 수 있음을 도란도란 들려주는 이 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시집을 만나게 하는 도우미가 된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설명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울부짖듯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강의 시간에 실제로 이 시 구절 뒤에 욕설 하나를 슬쩍 붙여서 읽어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보아도 이 시의 초점은 가난한 노동자의 따스한 마음에 가 닿기보다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 이 현실을 향한 것으로 보아야...(26)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란 부제를 단 이 시의 마지막은 울분이다.

<농무>에서 농민의 울분을 '꺽정이와 서림이'에게 빗대었다면,

<가난한 사랑 노래>의 울분은 '모르겠는가'에 있다.

그렇다. <가난하다고 해서 모르겠는가, 씨발>

이렇게 읽으면 더 처절하다.

 

모든 기다림은 결국 시간과 변화의 문제다.

'어린왕자' 여우의 말.

기다림이란 오늘 하루를 다른 날과 다르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어제와 늘 같이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 변화되길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153)

 

어린 왕자에 이런 말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읽을 만치 읽었는데도...

황지우부터 김민부, 기형도의 시에서 기다림을 들먹이다가,

자신이 하고픈 말을 살며시 끼운다.

 

기다림은, 오늘 하루를 다르게 만드는 일이라고.

그러니, 투정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살아 내라고.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저녁놀 속에 사라지는 굴뚝 위의 흰 연기와도 같았나니.

(최인호, 겨울 나그네, 243)

 

지나고 보면 아련하게 슬픈 것이 '기쁜 우리 젊은 날'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잡으려 한

순간의 예술이 '시'가 아닐까.

 

저녁놀 속에 사라지는 굴뚝 위의 흰 연기와도 같은 그 날들을...

날마다 다른 의미로 살아 내기 위해서는,

젊은 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하리라.

 

그래서, 이 선생은

학생들 앞에서 시라는 도구를 이렇게 펼쳐내고 있는 것이리.

 

 

 

 

수정할 곳...

41. 노라드 아주머니는 왜 혼자 강을 건너갔단 말인가... 노라드 아주머니는 애초에 온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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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07-2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강의 직접 들으면 너무 좋을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15-07-2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네요^^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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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름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는 이름을 가지고 다른 개를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개들의 의름을 외우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개는 냄새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 상대방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여기 있는 우리도 색다른 종자의 개들과 같아.(85쪽)

 

독서토론대회 도서로 이 책이 선정되었고,

논제는 <집단을 위한 이익은 개인의 이익에 우선한다>이다.

 

아이들이 오늘은 전체적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했다.

 

우선 '눈먼 자들'과 '그들의 도시'가 상징하는 알레고리에 대하여...

그리고 눈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의 존재.

 

국가가 행하는 공익이라는 이름의 <정치>는 사회적인 합의이므로 가변적이라는 것.

거기에는 반드시 '정의'라는 <눈뜬 자들의 개입>이 들어가서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 소설 내에서 물음표가 없는 문장들과,

이름이 없는 존재들의 세상.


이름도 눈뜬 자들에게나 구별의 표식으로 필요하다는 것도 새로운 깨달음이었고,

<모든 이름들 -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에서도

이름 없는 존재들의 미미함에 대하여 등장하듯,

주제의 관심은 이 풍진 세상 한 가운데 있다.

 

차라리 보지 말 것을...

 

차라리 눈 멀어 보지 못한다면 이렇게 속상하지 않았으려나...

이런 일이 흔한 세상이다.

 

뉴스도 보기 싫고,

페이스 북의 소식도 듣기 싫다.

의문의 죽음(유병언이나, 이번 국정원 사태나) 앞에서는

쏜살같이 <물음표 없음>의 확실한 결과가 공표된다.

물음표 없어야 함! 의 억지 주장이 참 가관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랑시에르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로 말하는 것도 이런 것일 게다.

폴리스와 폴리티크...

 

‘치안(police)’과 ‘정치(la politique)’를 구별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치안’이란 쉽게 말해 통치행위 일반을 의미한다.

치안은 어떤 자리나 기능을 분배하거나, 혹은 몫의 분할과 관련된 행위들을 수행한다.

나아가 그런 분배나 분할에 대한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행위가 바로 치안의 기능이다.

그리고 이러한 치안의 기능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랑시에르가 소환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치안의 체제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들,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자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이와 같은 치안의 작동을 교란시키는 행위다.

 

아마 눈먼 자들을 고립시키는 폭주자들의 횡포가 갈수록 추해져서 그럴 것이다.

토론 도중에 <설국 열차> 역시 마찬가지 알레고리라는 이야기도 등장했다.

 

집단 지성은 같은 책을 읽고도 눈 뜨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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