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행지이성...

길은 가면 생긴다는 말인데,

장자에서 이 말은,

혼자가는 길이 아니다.

독재자가 민중을 짓밟고 가는 길이 아니다.

 

비록 현실이 가난하여 도토리가 7알 뿐일지라도,

원숭이에게 물어서 원숭이의 뜻에 따라준다면 그것이 삶의 길이라는 이야기요,

 

대붕이 날고자 해도,

바다가 움직일 정도로 큰 바람이 불어야 난다는 이야기처럼,

큰 뜻을 펼치려 해도 '타자'에 기대지 않고서는 독불장군(혼자서 대장놀이 할수 없다)이라는 것.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탱크로 밀고 나가는 '길'이나 다를 바 없다.

그 길 앞에서 우산 하나 들고 가로막는 용기가 필요하다.

 

http://blog.naver.com/hope6111/9015627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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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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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음악은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난 살아가는 데 그런 거 필요 없다.(92)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살아온 아버지.

어른이 되어 바라본 아버지는 점점 왜소해 지고,

그러다 앓아 눕고 죽어 간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93)

 

아니 에르노가 청년을 소개하자

아버지는 자신의 정원, 혼자 힘으로 지은 차고 등을 보여준다.

 

이 청년이 자신의 가치도 인정해 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그저 예의 바르기만 바랐지만,

가장 얻기 힘든 것이었다.(106)

 

그에게 아버지란 무심한 사람이었고,

어머니와 나눌 수 있던 정신적 공유라고는 전혀 없는,

그저 생활을 위해 사는 남자일 뿐이었나보다.

 

아마 그의 '한 여자'는 훨씬 공감과 정감의 유대가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름의 정리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굳이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펼 필요가 있을까?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127)

 

아~ 씁쓸하다.

'아빠는 왜 있지?'하는 초딩의 시처럼,

외롭다.

 

마지막에 그가 몇 년 전 가르친 제자를 마트에서 만나

무의미한 몇 마디를 나누고,

제자에게 '또 봐요'라고 인사를 했지만,

제자는 뒷손님의 물건을 계산하고 있더라는 에피소드를 적는다.

 

그에게 잊혀진 아버지는 그런 관계였다는 이야길까...

무의미한 교사-학생 관계였던 그들처럼,

한때 잠시 이어졌던 아버지-딸의 관계인 듯이...

 

감동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더라도,

무심으로 일관하는 이야기는... 솔직한 표현이라는 것을 장점으로 꼽아줘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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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들 창비세계문학 2
리처드 라이트 지음, 김영희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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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책.

이 책을 읽으면서 연도를 찾아 보니 1940년 출간이고,

까뮈의 '이방인'이 1942년이다.

 

범죄와 우리의 이성이 갖는 부조리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같다.

아니, 오히려 까뮈의 소설이 일반적인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것이라면,

이 책의 주제는 '흑인의 인권'에 대한 것이어서 더욱 통렬하다.

 

주인공의 이름은 '비거 Bigger'다.

소설의 원제는 Native son이다.

정관사나 부정관사가 붙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

'토박이'로 태어난 아이... 지만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흑인'의 슬픈 역사를 상징하는 제목이리라.

같은 네이티브 선이라 해도 '백인'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을,

흑인이라는 이유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

 

이름만 '더 큰' 아이지만, 그는 자라면서 점점 작아진다.

실존 자체가 제 앞에 놓인 인생에 비감한 감정으로 휩싸일 수밖에 없는 삶이 과연 삶일까?

 

이야기는 무척이나 박진감 넘친다.

범죄 소설이나 추리소설이 아니다.

평범하게 좀 불량한 흑인 소년이 유독 인자한 백인 가정에 운전수로 취직한다.

그리고 그날 당장 살인을 저지르고 엽기적인 사체 유기, 그리고 협박과 연쇄 살인에 휘말린다.

 

여느 소설의 범죄자들은 나쁜 넘들이어서,

그 악마들을 잡으러 가는 형사나 경찰의 편에서 악을 처단할 때까지 조마조마한 맘으로 읽게 된다면,

이 소설은 너무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연속에 당황스러워할 뿐이다.

 

비거는 자신의 앞에 놓인 운명에 황망해 하지만, 상식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리처드 라이트는 이런 흑인들의 운명을 향해 횃불을 들어 비쳐준다.

너희는 범죄를 쉬이 저지르고, 저질스럽게 살아가며,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그러나, 너희의 그런 부족함들은 제도의 부조리에서 온 것이지 온전히 너희의 책임인 것은 아니라고.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인간이 아니고 그 '창조'의 그림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죽여버렸다.

살기 위해 그는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으며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398)

 

까뮈의 '이방인'처럼 여기서도 목사님이 그를 전도하려 한다.

아... 밀양의 교회 집사들 처럼... 왜 그악스런 종교인들은

약자들 옆에 똥파리들처럼 득시글거리는 것인지...

 

어떤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나?

모릅니다. 이런 건 아니겠죠.

자신이 바라는 게 뭔지 대강은 알 것 아닌가.

글쎄요, 만일 행복하다면, 안 될 줄 뻔히 아는 일을 하고 싶어 맨날 안달하진 않겠지요.

왜 맨날 그랬나.

어쩔 수 없었어요. 만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면, 그런대로 잘 살았을지도 모르죠.(497)

 

난쏘공의 70년대를 읽는 듯도 하고,

21세기의 천명관의 글들을 읽는 듯도 하다.

행복을 꿈꿀 수 없다면, 안될 줄 뻔히 아는 일들에 엮이며 살 수밖에 없게 되는 이야기는 흔하고 흔하다.

몸을 파는 수만의 여성들에게 묻는다면, 같은 답을 하지 않을까?

몸을 파는 수천의 조폭들에게 묻는다면, 역시 그렇지 않을까?

아니, 우리반에서 자퇴를 고민하는 아이에게 묻는다면...

 

단지 일이십 명의 흑인이 노예가 되었다면

불의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흑인 노예는 전국적으로 수십만에 달했습니다.

만일 이런 사태가 이삼년 계속되었다면 부당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이백년이 넘게 계속되었습니다.

긴 세월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가해진 불의한

더이상 불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에 하나의 기정사실이 되어버립니다.(549)

 

아, 난쏘공에서 아버지의 노비 문서가 떠오른다.

이름조차... 김불이... 무언가를 강하게 부정하는 '아니 불'

그렇지만 난쟁이로 살다 굴뚝에서 쏘아올린 작은 공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역사.

이 땅에서 '토박이'로 태어났건만,

흙수저 네이티브 선은 흑인과 다를 바 없이 살게 된다.

삶에 기정사실이 되어버리는 비참한 삶에 좌절하는 이들 앞에 '윤리'라는 잣대는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모든 희망이 반란 음모이며,

모든 시선이 위협입니다.

피고인의 생존 자체가 반국가 범죄입니다.(562)

 

작가는 이런 변론을 마련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범죄를 구성한 것이다.

 

사랑은 안정된 관계, 경험의 공유, 충실, 헌신, 신뢰에서 자라납니다.

비거나 베시한테는 이런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564)

 

천명관의 '칠면조와 육체 노동자'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결혼의 실패, 폭력, 별거, 좌절은,

안정된 사랑의 경험이 전무했던 삶과 무관하지만은 않다.

그런이들 앞에 놓인 '자기 앞의 생'이란...

그리고 그들에게 '윤리'나 '도덕' 같은 '본질적 언설'이란 얼마나 우스운 것이냐.

사랑할 수 없는 '실존' 앞에서 공자왈 맹자왈은 강아지의 왈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비거 토머스가 흑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백인일 수도 있으며

이 세상 어디에나 문자 그대로 수백만의 비거가 있었다.

비거라는 인물을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된 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대한 진흙탕 같은 삶을 인식하게 되었다.(작가 서문, 617)

 

비거는 '자기 앞의 생'의 또다른 모모다.

그 이름은 모든 '소수자'의 환유이며, 비록 그 숫자는 다수이지만 권력에서 소외된 자들의 대표다.

 

3부에 가서는 너무 작가의 목소리가 강하게 반복되어 지루하기도 하지만,

중심 주장이 워낙 강해서 소설의 힘이 세다.

 

박진감 넘치고 핍진하기 이를 데 없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개츠비'나 '호밀밭'같은 백인들의 소설이 가진 느슨함이

마치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초기 미국이 만들어낸 '아메리카노'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진짜다.

흑인의 피부색처럼 '진한 에스프레소'다.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않은 사람이 '아메리카노 조아조아조아'하고 외치는 건,

글쎄, 십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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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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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마태우스로 활동하는 서민의 서평집.

 

서평들을 세 파트로 나누었는데,

그 갈래가 제법 멋지다.

 

1장 사회 - 무지에서 살아남기

2장 일상 - 편견에서 살아남기

3장 학문 - 오해에서 살아남기

 

이 제목들을 다시 조합해 보면,

편견으로 가득하고, 무지를 조장하며, 오해로 점철된 사회에서 책을 읽는다는 일은 어떤 의미인지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글들이다.

 

그는 대학 교수이자 여러 권의 책을 낸 지식인이다.

이런 서평집들의 한계가 알량한 <중립>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인데,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는 말처럼,

이 미쳐돌아가는 기차같은 현실에서 '중립'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쪽의 주장만 줄곧 외치는 애꾸눈에 귀머거리 언론을 앞에 두고

언론의 공정성을 말하는 것이 헛소리인 것이나 같다.

뒤집어진 배에서 승객을 구하기 위해 5백 명이 넘는 구조대가 급파되었다고 거짓을 나부대는 앵무새에게

중립이라고 칭찬하는 것처럼...

 

'집나간 책'이란 제목이 팔리기 좋은 제목은 아닌 듯 싶다.

그렇지만 '서민'이란 이름이 이미 하나의 '환유'가 되어버린 듯.

'환유'란 어떤 말을 들으면 어떤 속성이 떠오르도록 자동화되어버린 걸 일컫는데,

서민의 서평은 재미있고, 반어가 그득하며, 결코 중립의 거짓을 뒤집어쓰지 않는다는 것.

 

아픈 사람의 편에 가까이 가는 것이 '중립'이라고 말한 외국인 교황에게 사람들이 감동하듯,

이 땅에서는 '중립'을 '빨갱이'처럼 여긴다.

그냥 권력자들의 소리에 귀먹은 듯, 눈 먼 듯 살아야 한다는 듯이...

 

특목고 해체를 주장하고

교사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사직을 안 하는 풍토가 잘못되었다고

통렬히 지적하는 보수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235)

 

이 나라가 워낙 독특한 나라니 그렇지,

교수나 교사들은 원래 보수적인 가치를 전수하는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다.

건전한 보수와 보수를 참칭하는 노론-친일-권력자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역사의 한계다.

 

인정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인정받기 위한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167)

 

이 말은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는 책에서 인용한 구절인데,

이 사회가 인정이 부족한 사회가 되어버렸음을 원인으로 하여,

인정받기 위한 행동하기가 체화되었음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말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공포는 인정받지 못함 = 죽음의 등식이 성립하는 현대사에서 왔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 최대의 선을 실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라,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163)

 

삼국지에서 왕들이 부모보다 두려워했던 것은

다리가 하나 없는 존재들(십상시, 내시들)이라고 했던 말이 등장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다는데,

이 땅의 민주주의는 씨앗만 뿌려졌을 뿐,

떡잎이 누렇게 찌들어가는 것 같다.

싹수가 노랗다...는 말처럼...

 

인물보다 체제가 말하는 사회가 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인지, 물갈이가 필요할 것인지,

더 살아 보아야 할 노릇이다.

 

서민의 책은 재미있다.

그리고 누구나 읽기 쉬운 책들을 많이 소개한다.

그렇지만 세상의 흐름이 혼탁해 지는 것을 꼬집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미녀 아내와 사는 일에 만족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의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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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서재 - 정여울 감성 산문집, 개정판
정여울 지음, 이승원.정여울 사진 / 천년의상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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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의 책 소개에서 '무조건적인 환대'라는 개념이 나온다.

 

새로온 사람, 타자, 손님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무한한 돌발성, 침입에 대해 완전한 개방,

여기에 '그렇다'고 해야 한다.

각종 포비아(혐오증)가 난무하는 시대,

우리는 무한한 타자성이 나를 침범할 가능성에 준비되어 있지 않을 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227)

 

어렵다.

유목의 세계까지도 어찌어찌 이해하겠는데,

그 다음 세계는 무조건적인 환대,

준비되어 있지 않을 준비라니...

 

그런데,

어느 수인의 편지에 대한 정여울의 답은 간명하지만 절대적으로 옳다.

 

당신의 인생을 바꿀 책은 없지만,

절실한 물음이 있다면,

그 순간 인생은 이미 바뀌기 시작했고,

그 심정으로 책을 찾는다면, 큰 스승을 얻을 수 있다고...

 

꿈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도,

꿈이 무참히 깨져버린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218)

 

그것이 '자기 앞의 생'이다.

 

'난 널 사랑해'의 방점은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사랑해'니까,

두려워말고, 기쁘게 놓아주자.

내 인생을 실컷 살자.

마침내 더 큰 사랑이 시작될 것이다.(170)

 

돈 안 되는 인문학.

그걸 공부하는 사람은 용기를 가져야 한단다.

 

그래.

기쁘게 실컷 읽자.

그리고 용기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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