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의 배경은 철거되는 전자상가이고,

발표 연도는 2010년 6월이니,

그의 '슬럼' 속에 살아가다 스러진 그림자들이 어떤 연유에서 발상되었을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2009년 용산,

그 아수라장은 명박스러운 자본주의의 탐욕이 이빨을 드러낸 현장이었다.

대기업이 컨소시움을 이룬 재개발 단지에서

버티고 있던 이들을 과잉진압하다가 일어난 참사...

 

그 그림자 같은 삶들에게 희미하게나마 숨결을 불어 넣어주려는 책이었을 것이다.

 

슬럼이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 지는 거예요.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걸까요.

슬럼, 하고.

슬럼.

슬럼.

슬럼.

이상하죠.

이상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고...(115)

 

이상하고 조금 무서운 세상.

 

슬럼에서 스러진 사람들에게서 그림자는 이탈한다.

그것은 판타지보다는 슬픔에 가깝다.

'백 百'은 '백성'이고 '모든 것'이다.

그 그림자들이 슬럼에서 이탈을 경험한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

 

거기 살아가는 '오무사'라는 전구 가게의 할아버지는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전구를 하나씩 더 넣어 준다.

40개 사면 41개, 100개에는 101개.

그 1개 만큼의 여분.

손상이나 불량을 위한 여분.

 

그들이 '백성'이었나.

 

나는 그걸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대형 마트의 원 플러스 원에서는

이득이란 생각은 들지만 배려라거나 고려라는 생극은 들지 않거든요.

 

실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지

결국엔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있던 것이 부서져서 없어진 것이 아니고,

본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 뿐이죠.(141)

 

마뜨료슈까에 대한 이 이야기는

무엇을 불러오려는 환유일까.

우리의 삶이 그렇다는 것일까,

국가라는 그림자의 허망함이 그러하다는 것일까.

 

국내 작가 중에 태그할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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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산참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가 보군요? 읽어보고 싶네요. 시간이 무서운 것 같아요. 모두 잊어지고 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살아가고 그 일이 또 반복되고....
무서워요. 그런 것들이.

꼭 한번 읽어 볼께요.
 
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작가로 알려진 다나베 세이코씨가

주간문춘에 연재했던 글이라 한다.

이 글들은 3~40년 전에 쓰여진 것인데,

성을 소재로 쓴 글들 치고는 끈적하지 않고 바삭한 느낌이 든다.

 

당연히 신선하지는 않지만 ㅋ

시원시원하게 감추는 부분들을 드러냄으로써

남성 중심으로 인식되는 '성'의식이나 일반인의 편견에 일타를 가한다.

 

쉽게 풀어내기 힘든 이야기에

오사카 사투리나 유머라는 밀가루를 입히고,

그 밀가루를 털어낸 곳에 입히는 지성이라는 튀김옷과,

가모카 아저씨와의 화학 작용을 동반한 세이코의 이야기는,

음담패설이 머금고 있는 수분을

고온에서 튀겨내는 것으로 적절히 빼내고 촉감을 바삭하게 만들었고,

입에서 곱씹어보면 소재가 가진 탄력과 끈기를 과연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요리에 손이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요리 장인이다.(308-9)

 

간추리면 이렇게 평을 해 두었다.

과연 그러하다고 할 부분도 있다.

 

일본과 한국의 성에 대한 의식은 차이가 많이 나는 듯 싶다.

한국에는 간혹 아직도 '순결 교육'이라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강연을 하고

순결 서약이라는 것을 받고 다닌다.

 

순결이란 단어를 옛날 그대로

이성과 관계를 갖지 않다, 성을 비밀스럽게 숨기다란 의미로 쓰는 건 맞지 않다.

현대적 의미는 이성과 어떻게 관계를 가질 것인가,

바람직한 사용법은 무엇인가...아닐까?(279)

 

나도 이런 의견에 동의한다.

결혼 사용법이라는 매뉴얼을 만들고 싶다.

부록으로 '성 사용법'도 만들고.

 

혹시 누군가가 주례를 부탁한다면... 매뉴얼을 주례사로 갈음하고 싶은 것이다.

여자는 텅 비어야 좋다는 둥,

침소 사퇴식 같은 것이 좋다고 말하는 가모카 아저씨의 순진함도 재미있다.

 

섹스란 상대를 필요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함께한 상대를 배제하고서는 아무리 자랑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223)

 

이런 담론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성매매가 가장 공공연히 쉽게 일어나는 나라의 사람들이,

가장 답답한 성 의식을 가지고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유명한 일본 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겐지는 어린아이였던 무라사키노우에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성적 감정을 포함한 애정을 쏟아 부었다.(79)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 아닐까?

괴테의 시 '미뇽'에서도 그렇고,

변태 엽기 소설로 회자되는 '롤리타' 역시 그러한 남성 중심의 사고가 반영된 소설이다.

 

남자의 성욕은 한순간 발산하면 그것으로 끝이 나지만,

여자의 그것은 느리고 느긋하고 지긋하고 길고 천천히 피어난다.

남편을 두고, 아이를 낳아 키워 세상에 내보내는 그 모든 행위가 성욕인 것이다.(37)

 

이런 이야기는 옛날 가정 교과서에서도 다루었음직한 이야기다.

다만, 남자들은 그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는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남성의 성은 순간적 쾌락과 가까이 있지만,

여성의 성은 아무래도 임신, 출산, 육아의 기나긴 여정과 관련이 있으니...

 

청마 유치환이 부산에서 어느 여고 교장을 할 때

'겨레의 밭'이라는 시를 썼다.

그 여고 교정에는 지금도 그 비석이 서있다.

 

 

어찌 들으면 여성은 모성에서만 가치가 있으며,

그것을 자각하고 자랑스레 여기자는 말 같다.

 

인근 여고의 교훈은 <겨레의 참된 어머니가 되자>이다.

시대착오적인 교훈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살 것이다.

 

여성은 부속적인 성이 아니다.

독립된 인간이어야 하고, 그렇게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 문화는 더 환한 쪽에서 열려야한다.

나의 의견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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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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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추락하는 동화 속의 앨리스.

 

거기서 연상된 것일까?

이 소설 속에서는 한없는 추락의 상황만이 좌절스레 이어진다.

씨발스러운 상황에 등장하는 씨발년의 씨발스러움...

이런 말들로 이어지는 소설은 어두운데,

말투는 한없이 경쾌하고 통통튀는데,

 

무슨 장자도 아닌데,

내편이 있고, 외편이 있고, 잡편 대신에 ㅋ 다시 외편이 있다.

 

다시 한번 그대가 옳다.

그대와 나의 이야기는 언제고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천천히 올 것이고 그대와 나는 고통스러울 것이다.(162)

 

장편소설이라 하기엔 얇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복숭아술로 유명한 마을의 이야기처럼,

아이들을 잡아먹는 동화속 마을이 바로 이 세상이 아닌가?

언제고 끝날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 야만스런 세상은 아래로 아래로 계속 추락하고 있다.

그동안 그 비극은 천천히, 계속, 고통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당신 자체가 내 인생에 얼마나 엿같은 좌절감을 주었는지...

당신은 몰라...(137)

 

그녀는 그럴 때가 있고

그럴 땐 멈추지 않는다.

그럴 때 그녀는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가 된다.

달군 강철처럼 뜨겁고 강해져 주변의 온도마저 바꾼다.

씨발됨이다.(40)

 

누군가는 황정은의 언술들이 불편할 것이다.

씨발됨의 상황에 살아보지 못한

순한 세상의 사람들은 그 씨발됨을 씨발됨이라 표현하는 것 자체에 불쾌할지 모른다.

 

작가는 오히려 이런 것을 전하려는 것 아닐까?

당신들이 불쾌하게 여기더라도,

어쩌랴~ 세상이 그러한 것을...

 

씨발, 이라고 자꾸 들으면 씨발,이 된다는 거.(35)

 

그렇다.

세상은 그렇게 씨발스럽고

씨발됨의 연속이다.

 

열아홉의 나이에 하청에 하청을 하다가 스크린도어에 끼이게 되고,

오늘 일어난 붕괴사고에서도 하청이 죽어간다.

씨발, 하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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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나만의 꿈과 마주하라 - 진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강다현 지음 / 글라이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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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서 올해부터 자유학기제가 전면 도입되었다고 한다.

본질은 그대로인데 말단에서 뭘 바꾸면 혼란만 더해진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한국 교육의 본질적 모순은 뭘까?

4년제 대학을 나오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사이의 월급 차가 가장 크다.

그래서 4년제 대학의 입시 문제가 심각한데,

더 문제인 것은 그 대학들의 80% 이상이 사립대라는 것.

국가에서 통제할 수 없이 입시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것을 안다.

그래서 초딩부터 노란 봉고를 타고 학원을 간다.

초딩부터 수학을 하고 영어를 한다.

아직 우리말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래도 초딩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한다.

거기도 맹점이 있다.

초딩들이 독서 시간에 열심히 읽는 책은 동화나 아동용 도서이다.

이것과 중학생 시절의 문학, 성인용 도서 사이의 간극이 너무도 크다.

 

꿈이 소중하다고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그리고 꿈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달리라고 할 수 있지만,

과연, 무엇을 할까... 그리고 왜 그것을 해야하는지...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아이들에게 꿈도, 독서도, 탐색도 모두 유의미하다.

그러나, 현실이 가혹해지는 한에서는 그것들의 의미는 당연히 쫄아들게 마련이다.

사회적 바탕이 넓어져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논술 시간에 'Freedom Writers'를 보았다.

 

흑인 아이들의 삶에서 꿈도, 독서도,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삶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쓰기와 교실의 마법에 의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차별에 맞서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삶에서 용기가 필요하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학교가 되면 좋겠다.

 

혁신학교라는 것도 있지만,

충분히 무르익지 못한 환경은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기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깨닫고 나면

성장하고 발전하게 마련이다.

다만, 그 꿈을 발견하고 동력을 얻기까지

그 과정은 개개인이 다 다르다.

 

부디 아이들을 죽이지 말고,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만드는 데

이 책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 진다거나...

리딩해서 리더가 되라거나...

이렇게 부자가 되는 일에만 관심을 두는 교육이라면,

그것은 아이들을 죽이는 일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된다.

 

멍~때리기 대회처럼,

아이들은 모두 다르게 성장해야 한다.

멍~때리면서 상상 속에서 공상의 획기적 성장을 경험하는 아이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당연한 말로 가득해서 좀 아쉽다.

외국의 사례나, 성공하는 사례도 많지만,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맞춤한 세상이란,

좀 나긋나긋하고 말랑말랑한 쿠션 있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아이들에게 더 빡세게,

더 열정을 가지라고 채찍질할 용기가 내겐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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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주운 한자
김동돈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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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세대는 학교에서 한자를 배우기 이전에

신문이나 간판에서 한자를 먼저 접했을 것이다.

신문에 실린 이름자 같은 것은 기본 상용 한자와도 무관한 것이어서

아주 드문 벽자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한자를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도 한문 교육을 접한 경험이 있다.

 

시대가 변해서 순한글 신문으로 변했고,

인터넷에서는 한자를 별로 만날 일이 없다.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있는 판국에 한자로 이름 구별할 일은 더더욱 없을 듯 싶다.

 

그렇지만, 우리말의 절반 이상이 한자어에 어원을 두고 있고,

이천 년 동안 우리 양반 문화는 한문을 중심으로 한 쓰기 생활을 해왔다.

과거제 역시 한문으로 문장 짓기가 기본이었다.

 

국문과 학생들조차도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 보면,

한문 자료는 급격히 멀어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문을 알아야 중국어, 일본어와도 통한다는 실용주의자와도 생각이 다르고,

조선일보나 한문급수 시험처럼 줄세우기 교육과도 거리가 멀지만,

한국 문화를 이어받는 국어 과목에서는

반드시 한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한자가 널려있는 주변 환경을 사진으로 찍고

그 한자들을 상세하게 설명한 것이 특징이다.

 

한문에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는 나도 처음 본 글자들도 있지만 (부억 조 자는 이 책에서 첨 봤다.)

글자 풀이도 읽다 보면 재미가 있다.

 

뒷부분으로 가면서 한자어 수준을 넘어 한문 문장도 풀이하고 있는데,

동양 사상과도 깊은 연관을 지어가며 쓰고 있어 좋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춘하추동의 형식을 갖춘 것에 비해

내용이 심화되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 정도인데,

한자 - 한자어 - 한문 - 한문문학 같은 것으로 좀 확산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면,

그리고 각 챕터도 너무 평이한 짜임으로 되어있는 것을

한자어는 허벅지에 써보고 ㅋ

한문은 풀이 순서나 이런 것을 좀 활용해 보고,

한문 문학에 가서 심오한 사상적 배경과 논의를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쨌든,

자신이 공부해오는 바를 이렇게 책으로 묶는 일은 여간 정성으로는 해내기 힘든 것인데,

더 재미있고 깊이있는 책을 낼 수 있는 내공이 있는 작가인 듯 싶다.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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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31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