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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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

영원을 향해 직선으로 흐르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요요의 시간.(300)

 

시간을 이렇게 바라본 사람은 거의 없었지 싶다.

시계제작공의 관점을 빌려 바라본 시간은,

일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요요와 같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깝던 젊은 시절을은

이제 너무 멀어서 흐릿한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

어떻게 그 시간들을 통과해왔는지, 놀라웠다.(299)

 

마치 삶을 오래 살아본 사람처럼,

아니, 삶을 오래 살아낸 사람의 머릿속을 들어가본 것처럼 쓴다.

 

높이 쌓아올린 책더미에서

밑바닥과 가운데 책을 꺼내기 힘들듯

오래전 얘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298)

 

이런 비유도 멋지다.

조금 김훈 스럽기도 하고,

어쨌든 자기만의 관점을 확립하고 있는 듯 하다.

 

대장은 이야기를 몸에다 붙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246)

 

아마도 자신의 희망사항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를 몸에다 붙일 줄 아는 사람.

 

내 심장은 상황과 사랑을 혼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종말을 앞두고 쿵쾅거리는 심장이

그녀에 대한 동정을 사랑으로 변질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은 그런 착각과 변질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218)

 

같이 읽고 있는 소설 '그저 좋은 사람'에서도 알콜리즘이 등장하는데,

이 소설의 '가짜 팔~'도 그렇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같다.

우연의 일치일까?

 

맺힌다는 게 어떤 건지 아십니까?

이것은 온도 차이 때문입니다.

나는 차가운데,

바깥은 차갑지 않아서,

나는 아픈데,

바깥은 하나도 아프질 않아서, 그래서 이렇게 맺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요,

술을 마십니다.(117)

 

알콜중독자의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가짜팔로 하는 포옹이다.

그런데, 그말이 아프다.

 

다들 외로운 거예요, 그렇죠?

외로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다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거겠죠.(41)

 

가장 외로운 사람은 누구일까?

그 극한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는 스타가 된 가수를 도망치게도 하고,

포르노 배우의 이야기도 등장시키는 것 같다.

 

가장 외로운 사람 역시

요요같은 시간이 멀어지고 돌아오는 형식에

낯설어 하면서

당황하고 아파하고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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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살롱 2016-06-0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이 마음에 스며드네요

글샘 2016-06-10 16:07   좋아요 0 | URL
소설에 강해보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약하고 외롭다고 말을 하네요. ^^
반갑습니다.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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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집인데도 황정은의 성향이 가득 담겨있다.

환상 속에서 벌어지는

낮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

그런 것들...

 

다행이다.

세상은 갈수록 격차를 벌여가는데,

이렇게 작아져가고 굳어져가는

어느 순간 모자가 되어버리는 인간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작가가 있어서...

 

모자가 되는 아버지,

오뚝이가 되는 은행원,

파씨나 소문자 m, 대문자 G,

곡도만도 못한 사람들의 눈꺼풀...

 

이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소년이나 다름없다.

 

소년은 아직 아무 것도 아니면서,

장래에도 아무 것도 아닐 가능성이 큰 비애를 안고 사는 존재이므로...

 

체셔라는 이름이나 나중에 발표한 '앨리스씨'에서 보나,

그의 환상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향받은 점이 많다.

그렇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현실을 풍자하고는 있으나,

거기서 비애는 없다.

 

더 작아져가는 사람들의 세계,

더 낮아져서 굳어버리는,

딸랑거리면서 아침이면 일어나지만,

자의에 의해 일어나 창조적 하루를 열어나가기보다는,

오뚝이처럼 어쩔수없이 일어나고 굳어버리는 삶을 사는 존재들에게,

자신들과 비슷한 이야기는 위안이 될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국판인 '무지개 풀'에서도,

이 좁은 방 안에서 풀장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도 재미있다.

 

재미있게 재미없는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재미있어 보이지만 더이상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들은

팔리기는 하지만 식상하다. 보고나면 허무하다.

끝없이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읊조리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세상이 더 낮아지고 있으므로,

더 많은 황정은들의 분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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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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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머릿속은 어떤 서랍들로 가득할까?

이 책에 등장하는 단편들은 참 기발하다.

골똘 생각해 보면 별반 신기로울 것도 없는 것들인데,

이것들은 분명 많이 읽은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발랄한 생각들을 자르지 않고 모아두는 서랍이 열일곱 쯤 달린 책상이 있어서 가능한 일인 듯 싶다.

 

한씨와 고씨, 그리고 곰과 밈...

백씨와 박씨, 검정...

뭐 난데 없는 이름들은 한밤중에 돈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 이야기인데,

책,책,책,책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부조리극의 주인공들이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벌이는 일들...

고양이를 죽이거나, 알바로 양산을 팔거나,

옹기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가지는 등의 이야기들은...

모두 부조리극에서 끝도없이 들이미는 대화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는 일처럼 부조리한 일이 또 있을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잘 죽고 싶다고 대답한 적도 있다.

장래 희망이 죽는 것이냐고 되묻는 사람에게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잘 죽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을 때만은 여한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름엔 복숭아를 듬뿍 먹고

가을엔 사과를 양껏 먹을 수 있는 정도로 만족하며 살다가

양지바른 곳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64)

 

낙하하다의 주인공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곡성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공무원 공부의 압박에서 자살을 선택한 스물 여섯 살의 청년과,

그 청년에게 사고를 당한 재수없는 공무원의 삶처럼,

삶은 부조리하다.

어떤 설명도 불가능하다.

아니, ~ 한다면 하는 가정도 무의미하다.

 

펭귄맨이었던 배우의 이름이 뭐였더라, 하고 생각한 순간에 깨달았다.

나는 죽고 만 것이다.(35)

사라져 버리기를.

부디.

부디.

대니 드비토.(58)

 

아~ 죽음이란 이런 것일 수 있겠다.

전혀 엉뚱한 것을 생각하는 동안,

자신이 죽어버린 것임을 알게 될 수도...

그렇게 부조리하다는 말 없이도,

삶은 충분히 삶이고, 죽음이듯이...

 

떨어지고 있다.

상승하고 있다.(78)

 

삶의 방향은 하강도 상승도 아니다.

그 방향성은 기준점에 따라 다른 것이며,

관점에 따라, 느끼기에 따라 전혀 다른 언술로 표현할 수 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렇다면 사랑받지 못하도록 태어난 당신도 있다는 의미일까,

그런 당신은 누구고 저런 당신은 누굴까.

어느 쪽이든 정말은 사랑해줄 생각도 씨발 없으면서,(197)

 

어째서 파씨냐고 묻는다면,

파씨니까.

 

그래.

그런 것이다.

말이 부조리인 것이지, 애초에 부조리인 것도 부조리 아닌 것도 없다.

사랑도, 아닌 것도 없다.

짧게 떨어질 뿐. 아니 상승하고 있을 뿐.

 

그는 작가의 말에서 불가능한 희망사항을 적어 두었다.

 

터프한 인간이 되고 싶다.

 

라고 적었다.

부디,

더 터프한 인간이 되어,

부조리한 세계에서, 부조리한 소설들을 써주기 바란다.

 

부조리에 찌든 사람들은,

그나마 부조리한 소설들을 싫어할 수도 있으나,

부조리한 소설에서 조그만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마치 스스로 슬픔의 편에 서서,

세상의 '너'들에게... 슬픔의 위안과 슬픔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힘겨운 함박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보리밭의 봄눈처럼 포근하게 품어주듯,

이야기로 터프한 세상을 터프하게 돌파해 나가기를 빈다.

오래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 주기를 바란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슬픔이 기쁨에게, 부분,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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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신화편 세트 - 전3권 신과 함께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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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편도 재미있다.
이승편이 젤 재미있고, 그 다음이 저승편... 그렇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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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이승편 상.하 세트 - 전2권 신과 함께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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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를 읽으면서 용산을 떠올렸는데,

오늘 보게된 이 책에서 다시 만난다.

 

아, 인간에게 집이란 무엇인가를

판타지를 통해 신랄하게 보여주는 만화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여섯 명이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하, 282)

 

그곳이 용산이다.

 

철거민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지하... 옥탑...

앞 글자만 합치면

지옥이구만, 허허...(하, 87)

 

차사들과 싸우는 가택신들의 이야기는 포근하지만,

눈물겹게 처절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손은 갈고리이고

마음은 하수구라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일하기 힘들어...(상, 194)

 

이승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에게

얻을 수 있는 집들은 지,옥이고,

손은 갈고리이고,

마음은 하수구라는 말은...

어떤 시보다 마음을 울린다.

 

만화에 간혹 그림자들이 가녀리게 보인다.

그림자들이 흐리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면,

삶은 버겁다.

 

이승은 그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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