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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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해 1층 집으로 이사를 간 여자가 있었다.

 

거실에서 줄넘기 연습을 해도 된다고 그녀가 말하자 아이는 물었다.

"지렁이랑 달팽이들이 시끄러워하지 않을까?"(22)

 

법원에서 아이를 빼앗기고 양배추만 먹는 엄마를 본 아이,

 

그러다 엄마 토끼 되겠다.

온 몸이 초록색 되겠어.

그런데 왜 토끼는 초록색이 되지 않는다니?

풀만 먹는데,

그거야, 토끼는 당근도 먹으니까.(155)

 

이런 아이를 잃고, 여자는 언어를 잃는다.

이 소설은 '언어'가 가진 오묘함을 섬세하게 찾아보는 이야기이다.

전체적인 줄거리와 상관없이,

희랍어 선생은 시각을 잃어 가고,

주인공 여자는 언어를 잃는다.

그 두 가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섬세한 표현의 도구인데,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얼마나 아무 생각없이 쓰고 있는 것인지...

 

셀 수 없는 혀와 펜 들로

수천 년 동안 너덜너덜해진 언어.

그녀 자신의 혀와 펜으로 평생 동안 너덜너덜 하게 만든 언어.

하나의 문장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늙은 심장이 느껴졌다.

누덕누덕 기워진, 바싹 마른, 무표정한 심장.

그럴수록 더 힘껏 단어들을 움켜쥐었다.

한 순간 손아귀가 헐거워졌다.

무딘 파편들이 발등에 떨어졌다.

팽팽하게 맞물려 돌던 톱니바퀴가 멈췄다.

끈덕지게 마모된 한 자리가 살점처럼, 숟가락으로 떠낸 두부처럼 움푹 떨어져 나갔다.(165)

 

그래서 그는 지나간 언어 '희랍어'를 배우러 간다.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서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51)

 

말소리가 울리는 것에 깜짝 놀란 나이가 있었다.

그렇게 남들과 나 사이에 언어가 끼이는 일이 서먹한 시절.

아주 가파르고 거센 억양을 쓰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친구가 없었다.

아니,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문학을 가르치다 언어를 놓쳐버린 그녀처럼,

나 역시 문학의 언어는 나의 말이 아닌 셈이다.

 

가장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녀를 이해한다는 그의 말이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담담하게 알았다.(55)

 

이해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

 

아름다운 사물들은 믿으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은 꿈을 꾸는 상태에 있는 거라고 플라톤은 생각했고,

그걸 누구에게든 설득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오히려 꿈에서 깨어난 상태에 있다고 믿었습니다.(93)

 

희랍어와 플라톤을 통해,

이데아적인 세계와

현실 세계의 이해 불가능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참한 소설이다.

명쾌한 세상과

흐릿한 세상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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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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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나뭇잎이 너한테 손을 흔들고 바위가 미소 짓고 강물이 안부를 묻잖아.

저곳에는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어.

슬픔도 없고,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어.

저기 사람들은 전부 죽었고 평등해.

그곳은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314)

 

주인공이 죽은 뒤 7일동안의 이야기이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뒷부분으로 가면서 점점 그 연관관계가 드러난다.

결국 저세상에서도 빈부의 격차,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차이는 남는다는 것이 씁쓸하다.

그렇지만, 그곳에서도 원한은 건너가지 않는다 한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두 사람의 원한은 생사의 경계를 넘지 않았다.

원한은 저지당한 채 그 떠나간 세계에 남았다.(199)

 

기찻간에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주워 기르는 아버지 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그 아버지는 저승에 가서도 친절하고 성실한 일꾼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그 아버지 같은 사람 덕에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감정에 푹 젖은 수건이라면,

나와 그 아가씨는 수건의 양쪽 끝을 잡고 그 안의 감정을 다 짜낼 때까지

힘껏 비트는 사람들 같았다.(105)

 

주워온 아들 때문에 좋은 결혼 상대도 놓치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괴롭힌 것으로 여긴 아들.

 

가난이 사랑을 얼마나 비트는지도 슬프게 드러나고,

현대 중국의 발전상 뒤에 남겨진

온갖 먹거리를 둘러싼 풍자도 들어있다.

 

사람들은 유쾌하게 먹고 마시면서

떠나온 세계의 중금속 쌀이나 멜라민 분유, 쓰레기 만두, 가짜 달걀,

피혁 우유, 화학 첨가제 훠궈, 대변 처우더우푸, 수단홍, 저질 식용유 등을 신나게 비난했다.

"중국에서 딱 두군데 음식만 안전해."

"어딘데?"

"여기가 한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중난하이.(공산당 중앙과 국무원 및 고위관리의 집단 거주지)"(217)

 

시작 부분은 좀 지루한데,

일단 스토리가 물살을 타고 나면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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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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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이야기들은 짠하다.

노량진의 그 부산함과 맹하게 목적을 상실한 하루들이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鷺梁津은 노량나루이다.

해오라기들이 다리를 이루듯 많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강 다리를 건너

중심지 성안에 편입되기 위해 몰려있는 해오라기떼처럼도 읽힌다.

 

김애란의 단편들이 그리고 있는 젊음들은

젊어서 어설프고 젊어서 한심한 모습들인데

젊어서 매력적이고 젊어서 싱그러운 보통 소설들에 비해 너무 현실적이다.

비가 오면 침수가 되는 '도도한 집'의 피아노라든지,

침이 고이게 만드는 자극이 되는 '후배'와 사는 자취방.

 

학원생이거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이쪽 나루터에 해오라기떼처럼 몰려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칼은

긴 세월

날이 하도 갈려 반짝임을 잃었찌만 그것은 닳고 닳아 종내에는 내부로 딱딱해진 빛 같았다.(153)

 

김치에선 알싸한 사이다 맛이 났다.

내 컴컴한 아가리 속으로 김치와 함께 들어오는 어머니의 손가락 맛이랄까.

살맛은 미지근하니 담담했다.

식칼이 배추 몸뚱이를 베고 지나갈 때 전해지는 그 서걱하는 질감과

싱그러운 소리가 나는 참 좋았다.((155)

 

어머니의 몸뚱이에선,

계절의 끝자락, 가판에서 조용히 썩어가는 과일의 달콤하고 졸린 냄새가 났다.

세계는 고요하고 몸은 녹진녹진했다.(178)

 

이런 묘사들은 정겨우면서

언어를 통해 머릿속 경험의 세계를 들쑤셔 깨우는 느낌이 들어 좋다.

 

나보다 키가 작은 언니.

멀어져가는 신림.

그곳의 마른 나무, 건물, 간판, 불면, 청춘,

겨울이 내 뒤에 있다. 몰랐지만 늘 그랬을 거다.(204)

 

신림 2동과 9동의 차이,

고시원을 전전하는 언니를 바라보는,

이름믄 새로운 숲, 가난한 신림들...

신록처럼 푸르른 이름이지만, 겨울이 그 뒤에 서늘하게 서있다.

늘 그랬을 거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올라가본 마을이 있다.

그곳은 켜켜이 쌓인 지붕과 골목으로 인해

내부로 깊은 주름이 나있던 동네였다.(215)

 

그렇다.

대도시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주름같은 골목,

켜켜이 쌓인 지붕과 골목들이 보인다.

 

김애란의 소설들은

정겹고, 사랑스러우면서, 짠하다.

마치 고향의 맛, 같다.

집밥의 초라함 속에서 익숙해진 맛깔스럼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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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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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송혜교 영화로도 유명한 책인데,

마침 아이들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일부분을 읽은 참에

전체 소설을 읽었다.

 

아름이의 투병과 방송 이야기를 중심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체를 읽다 보니 

이 소설의 문체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는 자식이 되고 싶다던 아름이의 말 외에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된 구절들이 많다.

 

시인과 소설가는 스타일이 조금 다른 거 같다.

시인은 자기 내면을 끝없이 들여파는

삽질의 대가 같고

소설가는 남들의 삶을 끝없이 관찰하는

관찰의 대가인 듯...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거나

남들의 삶을 들이 파는 거나

비슷해 보이지만,

시인의 공사가 개인적인 반면

소설가의 공사는 정치적이 되기 쉽다.. 정도?

 

김애란은 그러니깐,

남들의 이야기를 쓰는데

개인의 관점이 마구 틈입하는

뭐, 그런 소설인데

언어가 참 예쁘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143)

 

가을 추, 물결 파, 가을 물결...

'예쁘구나, 너 예쁜 단어였구나...'

그런데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보내는 눈빛을 추파라고 하다니

하고많은 말 중에 왜?

'가을 다음엔 바로 겨울이니까.'

불모와 가사의 계절이 코앞이니까.

가을이야말로 추파가 다급해 지는 시절이라고...

나는 오래전 추라를 추파라 부르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가만 웃었다.

아, 만권의 책을 읽어도,

천수의 삶을 누려도,

인간이 끝끝내 멈출 수 없는 것이 추파겠구나.(196)

 

현미경으로 찍은 눈 결정 모양도 봤어요?

그럼.

나는 그게 참 이상했는데.

뭐가?

뭐하러 그렇게 아름답나.(287)

 

그런 뒤 물뱀처럼 허리를 꺾어 어디론가 재빠르게 달아난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324)

 

이름도 아름다운 열일곱의 여든살 아름이의 죽음을 어떻게 그릴까 했는데,

물뱀처럼 허리를 꺾어 재빠르게 달아나는 형상을 보여준다.

말도 예쁘고,

소설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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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여울 황금알 시인선 127
이수익 지음 / 황금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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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종말단계 고고도 미사일방어’라고도 한다. 사드는 포물선으로 날아오다 목표물을 향해 낙하하는 단계(종말단계)의 적 탄도미사일을 고도 40~150km에서 요격하는 미사일 체계다. (daum 백과사전)

 

1년 뒤면 대통령 선거인데,

이렇게도 가만가만

발자국 소리도 내지않고 저런 말도 안 되는 무기를 사들여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종말단계'의 요격체계인데,

왜 저걸 한국에 배치한다는 이야기일까?

그냥 팔아치운다고 떠민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민중은 개, 돼지...라고 표현한 무슨 교육부 관료가 잘한 건 하나 없지만,

과연 그 사람을 혼내는 일이 '싸드' 배치보다 중요한 것일까?

싸드는 박유천 화장실 사건만도 못한 일일까?

그런데 왜 대구 의원님들은

대통령이 추진하신 그 소중한 싸드를 거절하는 것일까, 싸가지 없게...

 

가만히 있어라...

소리가 늘 들려왔다.

환청처럼.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만히 있었고,

중고등학교 때도 몽둥이 아래서 가만히...

군대에서도 가만히...

침묵의 굴종이 '정서'가 되었다. 비겁하게도...

 

캄캄한 눈이 진흙바닥에 파묻혀 생사 분간조차 하지 못하는

이 참혹한 시절

어디쯤 봄은 서성대며

잔뜩 풀이 죽어 나서기를 거부하는가

 

그렇지만 오라, 봄이여 전면에 나서서 크게 한 번

피투성이 싸움에서 이기는 자만이 초록의 잎을 피울 것이니,

그대는 못숨 걸고 불온한 지배세력을 향하여 뜨겁게 울부짖음으로써

저항하라 끝까지

투쟁하라 최후를 사수하라

싸움은 지는 법도 예견하나니, 설령 봄이여 가혹하게

처참하게 패배할지라도 다시 한 번 늠름하게 설욕의

고통을 견뎌내자는 것이므로

담담히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자(입춘 부근, 부분)

 

이 시는 어떤 사건 이후에 쓴 시일까.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런 시들은 유신 시대

암흑 속에서도 쓰여졌으나,

아직도 유효한 것을 보면,

세상이 참 슬프다.

여울이 흐르기나 하는 걸까...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나의 열망

나의 자존

그런 긍지

시간의 밥풀되어 헛되게 풀어지고 흩어지는 것을

멍청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때의 목마름,

그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때때로 미친 듯이

세월의 문턱에다 대고 불 지르고 싶다.

위험한 방화범이 되고 싶다. 반역의 칼날이

되고 싶다. 불화의 언덕 위에

나를 세워다오.(둘레, 부분)

 

세월과 불화하고 싶은 마음...

자존과 긍지가 흩어진 자의 비탄...

이런 것이 두드러진 시집은 아닌데,

굳이 내 시선은 그런 것들을 찾아 읽는다.

 

어쩌면 옛날 같은, 이 세상 끝 이야기

 

사람이 하나 없어도 좋을, 짐승이 하나 없어도 좋을, 이런 날들 속에

돌멩이처럼 굳건하게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돌멩이처럼, 부분)

 

나 하나만 스러지는 문제가 아니라,

멸망 이후를 상상하기도 한다.

위화의 '제7일'을 읽으면서,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부조리를 마음으로 줍는다.

어쩔 수 없음 앞에서,

존재는 떨다가, 상상하는 힘마저 놓치지는 않아야겠다고 마음 먹는 것이다.

 

책들이 사라졌다

사물과 사물 간의 거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고독을 씹는 자의 한숨 소리 거칠다

눈에 보이는 것들 시계를 가린채

하염없이 둥둥, 떠내려간다

내가 버린 책들 하얗게 거리를 헤매며 떠돌아 다니는

불우한 지금, 알 수 없는 벽들 사이에서

소름 끼치게 그리워지는

그들 이름은

누구?(사라지는 책들, 전문)

 

책은

사물과 사물 간을 연결하는

사람과 사람 간을 연결하는 그리움이라는 실로 짠 거미줄 같은 것이었나보다.

이제

알 수 없는 별들 사이에서

그리움으로 떠올리는 그들...

 

책을 읽지 않고

이미지를 소화하는 시대,

볼 것도 없는 페이스 북을 넘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세월,

세월은 넘어지고 빠지고 구조되지 못했으나,

비명도 없이 잠긴 세월 위에

더께가 앉듯 비열하게 흐르는 세월들...

 

이수익의 시집에서

서늘한 <결빙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던 것인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의 혹한을 막아주는 등허리를 더듬고 싶었는데,

시리게 아픈 시대의 비명을 읽게 된다.

 

아픈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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