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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돈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뭣이 중헌디?
이런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흔하지만, 또한 흥미롭다.
남자와 여자가 친구처럼 지내지만 그 사이에서 애정이 싹트기도 하고,
권력과 돈은 사랑과 뒤섞여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하디의 그런 또 하나의 이야기.
그들의 애정은 우연히 첫 만남을 가진 이후
거친 성격을 아는 것부터 출발하여
엄하고 단조로운 현실 틈바구니에서 피어나 자란 것이기에,
아주
나중에야 겨우 알게 되는 견고한 애정이었다.
공동의 것을 함께 추구할 때 발생하는 이 우의(친구애)가 남녀 간의 사랑에 더해지는 일은 드물다.
남자와 여자는 일반적으로 노동이 아닌 쾌락을 통해 서로 엮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한 환경이 마련됨으로써 관계가 진전될 때,
이렇게 여러
가지가 뒤섞인 감정은 죽음만큼 강한 유일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그 뜨거운 사랑은 아무리 많은 양의 물로도 끌 수 없고,
홍수로도 삼킬 수
없다.
이것과 비교하면 흔히 애정이라 불리는 정열은 사라지는 수증기만큼 덧없는 것이다.(639)
이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참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영국 남부의 넓은 전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부유한 가문을 대표하고 아름답고 독립적인 여성, 밧세바 에버딘...
이 인물을 멋지게 표현하기 위해 등장하는 배경이 세 명의 남자인데,
이 소설은 좀 도식적이다.
'전형'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으면 '도식'이 되고 만다.
양치기 가브리엘 오크, 그는 신실한 우정의 대명사이고,
부유한 농장주 윌리엄 볼드우드, 그는 청교도적이랄지... 다소 심한 집착을 보이며,
잘생겼지만 난폭한 프랭크 트로이, 그는 나쁜 남자의 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삼장법사가 오공, 팔계, 오정을 데리고 여행하는 '서유기'가
'진리'를 찾기 위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다스리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하던데,
양치기 오크와의 사랑을 맺어주기 위해,
집착의 볼드우드와, 성냄과 난폭의 트로이, 그리고 허영심으로 가득한 밧세바를 놓은 것 같기도 하다.
만나자 마자,
살아있는 동안 한 가지 일은,
반드시 한 가지 일은 할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죽을 때까지 계속 갈망하겠다는 것.(61)
낭만적이긴 한데, 좀 뻔한 대사다.
토마스 하디는 역시 '테스'다.
“가슴 위에 꽂힌 장미를 순진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테스는
그 마약 같은 푸른 연기 뒤에 그녀 일생의 비극적인 재난이 서려 있음을,
그녀의 젊은 인생의 스펙트럼에서 핏빛 붉은 광선이 될 사람이 도사리고 있음을 예측하지 못했다.”
갑갑한 시대를 잘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인물이 오래 가슴에 남게 하는 것도 그렇다.
이 책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은 '제목'의 번역이다.
'매딩 크라우드'를 '성난 군중'으로 번역한 것은 우습다.
프랑스 혁명의 시기라도 배경이라면 몰라도...
속세, 홍진... 이런 말이고,
거기서 멀리... 가 제목이라면, 고답적인 삶... 비슷한 분위기가 풍기는 말을 제목으로 삼을 수 있었으련만...
작품에서 '제목'은 가장 중요하다.
그냥 '오크와 밧세바'가 낫다. 저렇게 주제도 함축하지 못하면서
중심 소재와도 거리가 있는 단어를 제목으로 붙일 바에는...
속세의 일과는 멀리 떨어진 어떤 실험의 순수한 공간에서,
네 사람의 삶이 겪는 이야기인데,
'뒤버빌 가의 테스 : 순수한 여인'이 테스의 원제목임을 볼 때,
하디가 추구하는 바가 어떤 그런 고고하고 순수, 순결한 정신 세계에 놓였다고 생각한다면,
'성난 군중' 운운하는 제목이 얼마나 웃긴지 생각해 볼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