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아끼는 신념 속에서 살아가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만, 국민이 판단해서 행해 나가는 방법이 그릇되었고 할 때 그것은 한 지도자의 아집과 독선으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은 사회를 끝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게 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건대 지극히 제한된 자유 속에서 울분을 감추며 그것을 인내로 이겨나가는 습성을 익혀왔고, 따라서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들의 마음 속에는 이제 조그만 자유나마 감사하며 일제시대, 6.25 당시와 비교하여 획득해야 할 자유를 포기해 버리는 피압박 민족의 설움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 인내를, 그 무언의 호소를 각하께서는 소리없는 지지로 착각하셨고 14년여의 권위를 유지해 온 힘이 되신 것입니다. 획득해야 할 자유에도 한계가 있지만 제한해야 할 자유에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주위를 돌아보아야 하고, 보이지 않는 압력에 끌려 투표장으로 가는 국민의 발걸음에서 과연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사회는 어둠의 짙은 그림자가 뒤덮이고 학원은 병들어 교수는 학생에게 양심과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치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아직도 계속되는 학원사태가 일부 몰지각한 학생의 선동이라 생각하십니까? 각하께서는 아직도 현사회의 각 분야에서 어떤 희생도 불사하고 과감히 투쟁의 대열에 서서 소리높이 외쳐대는 절규가 일부 분수를 모르는 사회인사의 망언이라 생각하십니까? 


부패와 부조리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이지만 그래도 순수한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양심적인 입장에서 반항이나마 할 수 있는 곳이 대학입니다. 대학인은 사회와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근본문제를 알고 있으며, 그러기에 현실의 제 문제에 민감히 반응하여 자신의 양심의 결정에 의한 행동을 서슴없이 행해 나갑니다. 그것은 자신의 희생을 애국애족적 견지에서 받아들여 만족해할 수 있는, 즉 대학인이 가지는 국가의 비젼에 대한 사명의식에 기인하는 부담없는 순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학생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려 하시지 않고 왜 그들의 순수한 애국을 외면만 하는 겁니까? 이렇게 죽음을 불사하고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행동하는 저도 시국을 판단할 줄 모르는 몰지각한 학생일까요? 저는 저의 생명을 그렇게 값없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게 몰지각한 행동으로 생명을 버릴만큼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죽음 앞에 선 인간이 하고자 하는 말에는 고려해야할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선 보다 순수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대통령 각하, 
위대한 지도자는 또 민족의 영도자는 국민의 열망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존경으로 비롯되는 것이지 결코 강요와 복종으로 점철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민심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각하 혼자만이 이 시국과 이 나라를 이끌어갈 유일한 존재이며 이 조국의 안녕과 민족 번영을 위해 각하만이 중차대한 사명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오류를 버리시지 못하는 겁니까? 우리 국민은 누구나 밝고밝은 내일의 비젼을 갈망하고 우리 국민은 누구나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사회의 이유있는 저항을 각하의 독선 속에 파묻어 버리시려는 것입니까? 


헌법 전문에 나타나 있듯이 우리 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이어 받았고 그래서 용납할 수 없는 불의에 항거하며 어떤 희생도 불굴의 의지로 대항해 나갈 줄 아는 슬기와 용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느껴야 할 기본적인 양심이 무엇이고,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정의가 무엇이며 민족이 획득해야 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우리 국민은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 각하, 
위대한 지도자의 진정한 용기는 영광의 퇴진을 위한 숭고한 결단에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진정한 안보는 국민총화에서 비롯되고 국민총화는 지도자와 국민사이에 불신과 압박이 없을 때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불신이 뜻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간 개인에게 이유없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무엇을 뜻한단 말입니까? 
각하의 숭고한 결단 하나로 사회의 안녕을 가져오고 학원의 평화가 유지되며 진실로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리 민족에게 국민총화의 계기를 마련해 주며 단결된 힘으로 뭉친 안보태세의 만전이 기해지리라 믿는 바입니다. 
길이 민족의 가슴 속에 각하가 이룩해 놓은 업적과 더불어 참된 지도자로 새겨질 것이며 욕망을 초월한 초인간적인 슬기를 역사는 높이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역사의 방향을 잘못 인식한 위정자는 산 경험이 말해 주듯이 언젠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 위에 하나의 오점을 남긴 채 불명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저 민족의 들리지 않는 피맺힌 절규가 무엇을 뜻하며 간절한 무언의 호소가 무엇을 바라는가를 왜 각하는 모르시는 것입니까? 
죽음으로써 바라옵나니, 이 조국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바라옵나니, 국민된 양심으로서 진실로 엎드려 바라옵나니, 더 이상의 혼란이 오지 않도록 숭고한 결단을 내려 주시길 바라옵니다. 
이땅에 영원한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갈망하는 우리 민족의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떠한 압력에도 끝없는 투쟁을 계속하여 싸워 이겨 나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각하의 안녕과 건강을 축원합니다. 


1975년 4월 10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 
김 상 진

 

 

애비를 이어받아 딸년도 국가를 농단하고 있다...

(농단 : 이익이나 권리를 교묘한 수단으로 독점함)

 

이 글은 4월 8일 2차인혁당사건 사형 판결을 다음날인 9일 집행하고나서,

그 다음날 쓴 글이다. 그리고...

4월 11일 김상진 열사는 할복 자살을 한다.

 

이후 서울대에서는 십여년 간 비분강개로 자살한 학생이 숱하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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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6-11-04 14:19   좋아요 0 | URL
이 사태는 <박근혜가 몸통인 게이트>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것이므로 박근혜를 조사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순실이가 무당으로써 영험을 발휘했다해도, 권력남용은 박근혜의 몫이지요.

오늘도 나 불쌍해~ 이런 어리광을 부리던데,

신발짝 하나 던지는 기자놈 한 명 못 가진 등신같은 나라에 살고 있음이 통한스럽습니다.

2016-11-04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6-11-04 19:09   좋아요 0 | URL
오늘 새누리당 잘못했다고 거짓말 쇼 하는거 보니까, 정말 인간 못될것들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역사 교과서를 가짜로 뜯어고치려는 이유가 있죠.

그 부정부패의 핵심이 박정희이고, 거기서 길든 검찰이 지금 썩은 것이고,

종교 역시 부패의 온상이 된 것이고, 그러니 저런 무당들이 굿판을 벌이는 것이겠죠.

세월호의 죽음을 생각하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기억해 두어야죠. 박근혜 옆에서 해해거리며 이득을 얻던 자들...

그들의 말로가 좋아서는 안되는 것이 정의라 생각합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지승호 지음 / 오픈하우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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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리더는 지시하는 사람, 미래의 리더는 질문하는 사람(피터 드러커, 126)

 

예전에는 생명이 없는 사물까지도 영을 부여했는데,

요즘은 영혼을 가진 생명까지도 사물화한다.

그래서 계속 질문해야 한다.(아도르노, 66)

 

바둑에 가장 좋은 수는 없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적절한 수가 있듯

인터뷰에서도 가장 좋은 대응은 있을 수 없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대응만 있을 뿐.(71)

 

저는 상식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데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

도대체 왜 이런 문제를 풀지 않고

계속 이렇게 끌고 가느냐고 질문하는 사람.

결국 인터뷰는 사람, 나아가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일.(72)

 

동양 사회는 '질문하지 않는 사회'였다.

유교적 수직 질서가 너무 오래 침윤된 곳이어서일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질문'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본은 질문에 있다.

 

왜 박근혜는 범죄를 저질러도 수사하지 않는가?

왜 최순실은 범죄자인데 검찰이 에스코트 하는가?

도대체 이 나라에 희망은 있는가?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반성했다.

이제 28년째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앞으로 10년은 더 가르쳐야 하는데, 나는 얼마나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나?

질문을 던지고 대답할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얼마나 혼자서 답을 던져 주었던가...

 

안다는 것과 깨달음의 차이는

그것이 아픔을 동반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

앎에 있어 아픔을 느낀다면 그건 깨달은 것.(공지영)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

그동안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이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진정 무엇을 원하느냐,

너는 진정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산도르 마라이, 열정'에서, 14)

 

교사로 살아온 날들이 깊어갈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전 생애를 살고 나서야,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고 할 수 있었는지 말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남은 시기도 잘 살아 내야 하며, 철학이 필요하다고.

 

지승호는 자기 목소리를 죽이는 대신,

인터뷰하는 사람의 말을 가감없이 살리려 노력한다.

 

마치 인문학 열풍처럼 단지 도구로 전락한 듯 합니다.

질문을 잘해서 성공하자, 성공한 이들은 위대한 기록자였다...(28)

 

인문학도 성공 도구로 팔려나가듯,

질문의 기법도 성공 도구로 남아서는 안 된다.

지승호의 인터뷰는 다른 이들과 다른 궤적을 밟는다.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맥락에 놓인 사람을 끈질기게 찾아다니는 힘, 그것이 지승호의 힘이다.

마치 이상호 기자가 세월호 현장에서 밤을 새울 때,

손석희 사장 역시 세월호 뉴스를 보내고 있었으며,

어제 최순실을 보호하는 검찰 앞에서 '세월호 7시간 동안 무얼 했느냐? 유가족에게 한 마디 해 달라.'며 절규하는 이상호 기자와 JTBC 뉴스룸의 '시월의 마지막 밤'은 우리에게 제대로 된 질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10월의 마지막 밤이 담고 있는 추억은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올해의 10월의 마지막밤은 공통의 기억으로 남게될 것만 같다. 오늘은 많은 일을 조정해왔던 숨겨진 주인공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날이다. 온통 무장한 그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는 변호사를 통해 의혹을 모두 부정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던져진 갈증과 참담함, 혼돈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가 물었던 '왜'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같다"(2016. 10. 31 손석희 앵커 브리핑)

 

인터뷰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13)

 

결국 지승호의 인터뷰가 가진 힘은 그의 태도가 건전한 방향으로 궤적을 남기고 있다는 데 있다.

 

대화에 미니멀리즘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부산식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면 그게 딱 지승호.(18, 우석훈)

 

깊숙한 심리 상담이어서도 안 되고, 엄정한 취조여서도 안 된다.

그 외줄타기를 통해 상대를 침범하지 않은 채

그를 이해하는 요긴한 구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법(김혜리, 57)

 

자신은 아는 것이 부족하다는 듯,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들이 삽입되어 있지만,

어쩌면 지승호 스스로도 정확히 깨닫지 못한 어떤 지점에,

이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80년대를 살아온 한 남자의 의식이

그의 궤적에 방향성을 설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부와 권력이 특정한 방법으로 분배되고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하워드 진, 102)

 

그렇다.

인터뷰에서 '사람'만을 읽으면 그건 마치 점과 같다.

방향성이 없는 것이다.

그 점에 방향성이 생길 때, 그 벡터에서 에너지가 생기고,

에너지의 파동으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인터뷰는 이 유아론과의 싸움입니다.

사이에서 본다는 것은

내 것만이 아닌 내 것이 아닌 것과의 관계를 따지기 때문입니다.(196)

 

여느 인터뷰하는 이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자기 입맛에 맞게 내용을 버무리는 것인데,

지승호는 방향성을 설정한 자기 목소리에 인터뷰내용을 버무리지 않는다.

다만, 자기 방향에 맞게 인터뷰할 사람을 계속 찾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능력이고 힘이겠다.

 

나꼼수가 세계를 풍미할 때 '닥치고 정치'를 내놓았고,

이제 손석희를 인터뷰하면 되는 셈인가? ㅎㅎ

그런데 그는 손석희를 분, 초 단위로 만날 수 있었다는 후문만 잠시 남겼다.

 

이론은 칫솔과 같다.

없으면 빌려써야겠지만,

남의 것을 쓰면 뭔가 찜찜하다.(241)

 

그는 자신의 이론을 이 책에서 피력하지 않았다.

다른 많은 사람들의 명언을 옮긴 부분도 무척이나 많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칫솔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칫솔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그가 하는 인터뷰들이 모여서 그의 칫솔을 이룰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물 위에 쓰는 것.

그냥 흘러가 버린다.

돌 위에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남는다.

그래서 지금 영화를 찍어야 한다.(영화감독 허우 샤오시엔)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돌 위가 아니라 역사 위에 글을 새기는 것입니다.(179)

 

세상은 덧없이 흘러간다.

기록하는 자만이 무언가를 남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는 학자도,

세상을 자신의 필터로 재구성하는 문학자도,

영상으로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감독도 아니지만,

자신의 지향점의 언저리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흔들림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무언가를 남기고

앞으로 꾸준히 밀고나가는 사람이다.

 

조금 시간이 여유로워지는 시절이 온다면,

이상호 기자와 인터뷰한 '고발 늬우스'를 만들 수 있게 되기를,

손석희 사장과의 '뉴스룸'과 손석희들...을 읽는 기회를 주기를...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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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는 내가 살게 삶창시선 46
김정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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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전 사장에게 밀양 할매들이 선사한 것은 `짚으로 엮은 생마늘과 마른 쑥 다발/ 제발, 사람이 되어라`... 대안학교 교사이자 시인으로서 삶의 비늘들을 모아 엮은 시집. `카프카에게도 생경한 `일벌레`, 최장시간 노동에 갇힌 돼지`, `빅브라더를 거세하고 싶다`던 그... 작금의 사태는 예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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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2017 리커버 한정판 나무 에디션)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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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스로 글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이 책은 별로 매력 없다.

 

영화에 대한 글도 체계가 없고,

잡다한 산문들 역시 산만하다.

잡지에도 글을 쓰고,

소설도 쓴 모양인데 그것도 그저 그랬고,

특히 진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선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 자수성가했다고 여길는지 모르겠으나,

청소 운운하면서 자기 방 사진을 자랑하는 포즈 역시 고시텔 이야기만큼이나 재미없다.

 

내가 별로라는 걸 인지하는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개인의 선량함이나 역량에 의존하는 방식보다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체계가,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더 빨리 가 닿을 수 있다.

그건 비관이 아니다. 비전이다.(23)

 

라임은 멋진데, 그가 주장하는 바가 책 전체에 일관되진 않은 듯 하다.

역사 공부를 좀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의 진보에 대한 비판은 옳은 부분도 많다.

그러나, 진보가 멍청하거나 진부해서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억압해온 한계 지점이기도 하다.

 

26년이라는 영화가 부족한 것은 물론 감독의 잘못이 크다.

그렇지만 그 영화가 2006년 나온 만화를 2008년 제작하려 했으나,

끈질기게 억압받던 끝에 2012년 대선 직전 개봉했다는 4개월짜리 영화라는 점에서,

광주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너무도 금기에 가깝다는 면에서,

그리고 '화려한 휴가'에 비하여 학살자를 처단하겠다는 주제 면에서,

억압받을 수밖에 없는 영화였음을 잘 알면서 여러 글에 걸쳐서 비난하는 것은

현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점에서 그 역시 반성할 점이 있다.

 

진심이니 상식이니 시민의 힘이니

국민의 명령이니 그저 맹목적으로 뜨겁고 자기만 옳은 정치수사들과

상대를 절대악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정의로운 자들로 가득찬

인터넷 게시판을 폭파시키고 싶다.(100)

 

난 스스로를 냉소적이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쓰는 그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 책에 2008년 광장에서의 폭력을 경험한 기록도 간혹 등장하지만,

2014년 시오니스트들의 폭격에 분노하면서,

그해 봄 수장된 이 나라의 진실에 대해 일말의 언급도 없는 것을 본다면,

아직 사회를 읽는 눈이 여러 면에서 모자라 보인다.

 

말솜씨가 꽤 있는지 방송에도 나가는 모양인데,

김제동이 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지, 그의 언행들이 어떤 면에서 사람들을 껴안는지

더 공부하면 좋겠다.

 

한국의 역사를 공부한다면, 이 책에 쓴 말들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을 터이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고스란히 드러나는 건 닉슨이라는 인간의 불안한 영혼이다.

그는 어느 누구도 믿지 못했다.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친구는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하버드 입학 허가를 받아놓고도 돈이 없어 가지 못했다.

닉슨은 탄핵을 목전에 두고 사임을 결정한다.

그리고 케네디 초상 앞에서,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이상향을 보는데, 내게서는 그들 자신을 보는군요." 하고 내뱉는다.(338)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고

혹시모를 성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청해야 하는 것은

성공담이 아니고 굴복하고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다.(339)

 

닉슨은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으로 탄핵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탄핵이 아니라 사임함이 당연한 짓을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개혁안을 내세우는 범죄자가 권력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검찰은 개똥을 맞으면서도 범죄자에게 수갑도 채우지 않고 에스코트를 완수하였다.

 

어설프게 중립을 논하면서 양시론이나 양비론을 들먹이는 자들은

곡학아세의 나락에 빠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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