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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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우스갯소리로서의 유머가 아니라, 풍자로서의 죠크가 가까운 용어다. 유머러스하게 하는 농담이 결코 아닌 것이다. 줄거리는 별 거 아닌데, 참 절절히도 적어 놓았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소설에서 섬세하고 자세한 것이 싫다. 그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더욱. 프라하의 봄을 지낸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구석구석 배어 있는 몰개성적이고 획일화된 시선들로부터의 고통은, 우리 사회의 독재 시대의 유물과도 어쩜 그렇게 유사한 것일까. 그래서 고통이 고스란히 밀려 들어와 아프면서 이런 류의 작품을 읽기 싫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지리도 가난해서 모지라진 인생들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극적인 작품보다는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도 해피엔딩의 작품들에 매료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힘겹고 가난하던 고난의 시절에 남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임진 왜란의 고난 뒤에 임진록이란 호쾌한 작품(사명대사가 왜왕에게 항복을 받는 것으로 그려짐)을 써 냈고, 병자호란의 비극 뒤에는 유충렬전(주전파의 강경함을 비판하고 주화파의 합리적임을 역설한 소설)을 그려냈던 지혜를 가졌던 조상들이었다.

가난하기 그지없고, 비참하고 끝도 없던 1800년 정조의 죽음 이후 비극적 시기에는 세도정치와 함께, 삼정의 문란으로 우리 백성들은 '못살겠다 홍경래' 같은 궁지에 몰려 있으면서도, 해학적인 흥부가, 해피엔딩 심청전, 자유연애 춘향전, 기지 넘치는 약자 토끼전과 같은 이야기들을 즐겼던 것이다.

명쾌한 논리 아니면 사람 취급 받지 못했던 우스웠던 시절에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우습게 살아온 나로서는 밀란 쿤데라의 <농담> 속에서의 좌절과 인간에 대한 믿음의 붕괴, 참 사랑을 희구하지만 헛됨을 깨닫을 수 밖에 없는 시대를 동감하며 가슴 저림으로 즐겁게 읽을 수 없었다. 농담처럼 비아냥거린 한 마디가, 인생을 바꾼 것 같지만, 그것은 시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 속의 한 개체로서의 인간의 나약하고 무력한 삶은 조명한 것으로 읽을 것이다.

그는 결국 파괴된 인간의 마음을 붙인 곳으로 민속적 음악이라거나 종교라거나 그런 곳으로 귀결 지은 것도 불만 중의 하나이다. 애초에 우리가 온 곳도 없으며, 돌아갈 곳도 없기 때문이다. 결말을 위한 도정이 너무 지루한 것이 괴로울 따름이다. 하하, 우리 인생이 이러한 것일까. 결국은 허망한 것으로 결말지을 것인데도, 고통스럽게 하루 하루 살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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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이유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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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도 이유가 있을까. 아무 이유 없이, 긍정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희망이 아닐까.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막연히 희망에도 어떤 논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제인구달 - 그녀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환경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에 제인구달만큼 환경과 동물 사랑에 앞장서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대단한 정열로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온 밀림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많은 어려움에도 부닥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정치적인 갈등 사이에서의 수난, 결국은 세계를 향해 동물 사랑의 메시지를 던지는 수호자의 자리를 자임하고 나섰다.

나는 오늘도 미역국을 두 번 먹었다. 그 미역국에는 소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가에 다녀 오는 길인데, 초상집 술상 위에도 돼지고기 수육이 올라 있어서 술안주로 맛있게 먹고 왔다. 그리고 지금 내 무릎 위에는 귀여운 강아지가 한 마리 졸고 있다.

이론상으로야 제인 구달처럼 인간만이 고통을 겪고 사랑을 나누며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짐승이 아니란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아주 합리적이다. reasonable한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것만이 이유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자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동물을 잡아 먹으면 그것은 합리적이고, 인간이 개고기나 소고기를 먹으면 그것은 잔인하다는 말인가. 그러면 인간도 배고프면 아무 것이나 - 침팬지처럼 미운 놈의 새끼를 대가리부터 아사삭 부셔 먹으란 말인가.

서양 사람들은 리즈너블 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자기들의 이야기가 옳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옳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 고통받는 짐승들이 지구 상에 수두룩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평화롭지 못하게 대우 받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의 동물사랑을 읽으면서, 계속 서구인의 오만함, 배부른 자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뭔가를 탐험하는 이야기들의 시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환경은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인간이 중심에 서야 한다. 짐승을 살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그도 인정하지 않는가.

그의 침팬지와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내 눈에는 배고픈 자의 그것 같지는 않아서 존경하는 한 편으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내 무릎 위의 강아지는 지금도 코- 하고 잘 자고 있다. 이 녀석을 솥에 넣고 삶은 상상은 나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고기 먹는다고 하찮은 존재로 폄하하는 것은 긍정할 수 없다.

고기를 먹고도 옳게 살 수 있고, 고기를 안 먹고도 옳게 살 수 없는 인간이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젊은이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심어 주고, 환경의 소중함을 길러 주는 것은 보람찬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인도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는 그것보다 우선되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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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벅꾸벅 클래식 앗, 이건 예술이야! 83
공윤조 지음, 최수연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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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에프엠 음악을 틀고 운전을 하고 다니지만, 사실 어떤 음악이 누구 음악인지, 금세 알아듣기는 어렵다.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더니, 클래식 코리아라는 재미있는 음악 감상 사이트도 만났다. 앗, 시리즈에 예술 분야도 있는 줄은 몰랐는데, 우연히 만난 이 책은 가볍지만 정말 반가웠다. 고등학교 이후로 듣지 못했던 여러 음악가들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정말 반가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바흐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6번, 관현악 모음곡 4곡, 바이올린 협주곡 2곡,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마태 수난곡
모차르트 : 교향곡 40번, 41번 주피터,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돈 죠반니, 코지판투테(여자는 다 그런 것), 마술피리, 피아노 협주곡 20, 21번, 엘비라 마디간, 26번, 대관식, 피아노 소나타 11번 터키행진곡, 피아노(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에 의한 변주곡-반짝반짝 작은 별, 레퀴엠
베토벤 : 교향곡 3번, 5번, 6번, 7번, 9번,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14번 월광, 서곡 에그몬트, 가곡 그대를 사랑해, 아델라이데
헨델 : 메시아,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하이든 :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사계, 교향곡45번 고별, 94번 놀람, 100번 군대, 101번 시계
슈베르트 : 교향곡 8번 미완성,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피아노 5중주 송어, 3대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겨울 나그네, 백조의 노래, 가곡 들장미, 마왕, 송어, 물 위에서
멘델스존 : 헤브리덴(핑갈의 동굴) 서곡, 한여름 밤의 꿈,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
베를리오즈 : 환상교향곡

C장조 : 분방하고 강력한 느낌, 빨간색, 라벨의 볼레로
D장조 : 씩씩하고 밝은 느낌, 노란색,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E플랫 장조 : 검푸른 빛이 도는 회색, 휴머니즘과 관련된 엄격한 색상, 베토벤의 영웅교향곡
E장조 : 아상향에 대한 확신, 정겨움, 상승감, 찬란한 사파이어, 푸른빛이 도는 흰색, 비발디의 봄
F장조 : 목가적인 야외의 정격, 전원 교향곡, 녹색, 인간의 다양한 의지를 담은 진한 빨간색
G장조 : 오렌지빛으로 묘사되는 낙천적이고 따뜻한 느낌, 풍성황 황금빛,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과 4번
A장조 : 화려하면서도 때론 슬픈, 녹색, 장미빛, 베토벤 교향곡 7번
B플랫 장조 : 행복과 자신감, 금속성의 색깔, 욕망과 열정의 KEY, 슈만의 교향곡 1번 봄.

이 정도면 이 책도 예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음악에 한 층 가까운 기분이고, 왠지 삭막한 세상에 혼자 풍요를 누리고 있는 듯한 사치를 누려 보는 즐거운 시간을 제공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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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고로야, 고마워
오타니 준코 지음, 오타니 에이지 사진, 구혜영 옮김 / 오늘의책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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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 불만족'을 읽어 보면, 팔다리 없이 산다는 것이, 그리고 정상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실히 드러나 있다. 물론 오토가 짐승이었다면 태어나자마자 정글에 버려저 죽었으리라. 그것이 생태계의 섭리니까. 팔다리도 없는 것이 우리 종족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으니 죽여버리는 것이 입을 하나 더 덜어내는 자연의 명확한 정답일 것이다.

다이고로도 마찬가지이다. 오른쪽 팔만 반 정도 남았을 뿐, 300그램의 무게로 사흘도 살기 어렵던 작은 원숭이, 다이고로. 그러나, 인간은 그를 다섯째 아들(참고로, 일본의 다이고로란 다섯째 아들이란 뜻)로 길러서 2년 넘게 삶을 제공했다. 그렇지만, 그 원숭이를 그런 기형으로 낳게 된 것은 누구의 탓일까. 환경오염의 탓일까. 원폭으로 세계를 뒤흔든 미국의 탓일까. 인간의 삶과 죽음만 소중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 보여주는 다이고로를 많은 어린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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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Day Book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블루 데이 북 The Blue Day Book 시리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지음, 신현림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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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그는 참으로 위트가 넘치는 작가다. 그 사진들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걸 보면.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까 하고 서평을 랜덤으로 읽어 보았다. 사람들은 대략, 아주 웃기고 재미있어서 생활에 활력을 주었다는 편과, 이런 책을 만들고 사는 것은 정말 가치없는 일이라는 편도 소수지만 있었다.

난 이 책을 만든 작가는 뭔가를 안다고 생각한다. 우선, 사람들이 책 읽기 싫어한다는 걸 안다. 둘째, 사람들은 동물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셋째, 사람들은 누구나 우울하다는 걸 안다. 이런 것을 알면 다음 단계의 작업은, 동물과 간단한 읽기 재료를 활용해서 재미난 책을 쓴다는 일만 남았는데, 이 글의 작가는 그걸 해냈을 뿐이다.

동물들이 정말 우울하고, 피곤하고, 지루하고, 긴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표정을 지었을 뿐이겠지. 그러나 그것이 작가의 위트로 생명력을 얻은 것이다. 우리 삶은 자연 속의 일부이다.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할 일이다. 자연은 재밌거나 쾌활할 수 만은 없다. 그저 스스로 있을 뿐인 것이 自然 아니던가.

이런 얘기가 있다. 제주도 신혼여행 간 경상도 부부가 서울 부부를 봤다.
서울 부부 : '저기, 저 달 참 밝지?'하고 신부가 하자 신랑이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어깨를 포근히 감싸 준다.
경상도 부부 : 똑같이 했더니, 신랑 왈, '와, 저 달이 니보고 머라 카드나?'

자연스럼을 자연으로 보지 못하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지나치게 설치면, 神의 꾸짖음이 들릴 것이다. 인간만 살려고 강을 막고, 길을 뚫고, 불을 밝히고 하다가 멸망하게 되면, 들릴 법한 신의 일갈. '와, 인간들아, 내가 느그보고 머라 카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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