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에 간 예수, 영화관에 간 부처 - 한 문화 신학자의 종교 가로지르기
김승철 지음 / 시공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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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참 잘도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기독교와 불교의 관점을 연구한 신학자가 쓴 문화 칼럼이다. 단순한 미술과 영화 뿐만이 아니라, 문학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진 작가의 글이다. 이 책은 재미나게 폭 빠져서 읽기는 좀 어렵다. 어쨌든 주제가 신학이고, 우리의 삶과 연관된 궁극적 질문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적합한 용도를 찾는다면, 잠을 부르는 것이라고 느꼈다. 정말 많이 졸면서 읽었다.

욕망이 길을 만들어 놓았구나. / 끝없어라, 끝없어라. / 나로부터 갈래갈래 뻗어나갔다가 / 내 등뒤에 어느새 와 있는 이 길은.(황지우 시)

이런 우리의 욕망에서 시작하여, 이국 땅 터키에서 한국 여인을 만나고, 헤어지며 쓴 마종기의 시.

... 근처를 빙빙 도는 터키인 남편에게 눈치 보여, 황망히 떠날 준비를 한다. 잘 사세요. - 네 안녕히 가세요. 터키 땅에까지 와서도 우리들의 인사는 안녕히 어디로 가라는 것이구나... 혼자뿐이라고? 바보! 혼자... 문득 부진한 갈대밭이 된 에페소의 성 밖으로 가는 비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내가 좋아하는 쓸쓸한 하느님.

고독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얼더듬다,

이 몸은 보리나무요, 마음은 맑은 거울이다. 때때로 갈고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는 神秀와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맑은 거울도 대가 아니다. 본래 아무 것도 없거늘 어디에 먼지가 낄 것인가. 라는 慧能의 선종을 드러내 비추기도 하고

무염시태(죄 없는 잉태), 평생 동정, 몽소승천(죽어 하늘로 올라감)하신 마리아의 상징성에서 기독교의 공경심을 보여 주기도 한다. 성모 마리아는 흠숭지례(欽崇)의 대상이 아닌 상경지례(上敬)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성모 마리아의 렛잇비, 존레넌의 '이매진 노 릴리젼'과 바흐의 커피 칸타타까지 재미난 이야기꾼인 동시에,

내 바라건대 벚꽃나무 아래서 죽고 싶어, 음력 이월 어느날 만월 무렵에./

속세의 마음이 없는 몸에도 저절로 가을의 정취가 느껴져 온다. 도요새가 날아오르는 물가의 가을 저녁에.

같은 사이교의 와카와

종소리 스러져 벚꽃향기 울리는 저녁이어라./
죽지도 않은 여행길의 마지막 저무는 가을./
백골 될 것을 마음 속에 바람이 스미는 이몸./
흰색을 많이 쓰는 화가가 겨울 해변에 서 있다.

같은 바쇼(芭蕉)의 하이쿠들도 이 작가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한다. 무엇보다도 적절한 삽화들이 작가의 의도를 절반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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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왕자 - 책 읽는 가족 2 책읽는 가족 2
강숙인 지음, 한병호 그림 / 푸른책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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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주를 사랑한다.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경주에서 자전거를 타는 놀이다. 그러다 보면 '유아독존'이 된 느낌이다. 경주의 평야를 즐기고, 경주의 옛 황룡사터와 논 한 가운데 멋적게 선 탑을 보면서 타는 자전거의 맛이란, 여느 자전거 여행에 비길 수 없다.

신라라는 나라는 '역사'로서 보다는 '전설'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라다. 그것은 그만치 신라의 역사는 잊혀진 것이란 이야기겠다. 패배한 나라의 역사는 그만큼 추악하게 덧칠되는 것이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느니, 이차돈이 순교하면서 우윳빛 피가 하늘로 솟구쳤다느니, 우리가 아는 신라의 단편들은 '설화 속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견훤이 쳐들어 왔을 때 신라 임금은 포석정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는 추악한 모멸의 역사는 누가 유포 시켰든 간에 신라는 고개숙인 나라로 만들 뿐이다.

강숙인 선생님은 이 묻혀있는 신라 이야기를, 거기서도 산정무한(정비석)에 나오는 마의 태자 이야기를 어린이 역사 소설로 잘 써 주셨다. 주류가 아닌 세계도 주류와 마찬가지로 중요함을 역설하는 소설이라 하겠다.

어린이들의 전기집에는 원효, 김유신 정도의 신라 사람을 꼽는다. 그러나 신라의 본질 -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을 죽이고 패권을 잡은, 그래서 결국 당나라에 고구려 땅을 다 빼앗기는 신라-를 그 아픈 역사를 기억해 주는 역사책은 없다. 고작 일연 스님의 삼국 유사의 설화들 속에서 깨어진 수막새 모냥으로 신라의 조각은 흐릿하게 남아 있다.

호젓한 임해전지와 안압지, 월궁터의 첨성대와 석빙고 주변의 쓸쓸함이 보문단지의 화려함에 주도권을 뺏긴지 오래된 고도, 경주를 역사 소설 속에서 오롯이 살려준 고마운 이야기 책이다. 삼국유사 속의 이야기와 향가들이 잘 녹아들어 있어 아이들(고학년)에게 꼭 권할 만한 책이다. 어른들도 삼국유사를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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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바로쓰기 1 오늘의 사상신서 131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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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오덕 선생님의 책이라면 거의 다 사본 셈이 된다. 팬이라면 왕 팬 정도 될 것이다.
선생님은 꼿꼿한 선비 정신을 가진 시골 선생님의 전형으로, 메모와 기록의 정신이 투철하신 분이다. 그의 교육 일기나 참교육 이야기들을 보면, 여간만한 기록 정신으로는 나올 수 없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비판적 이야기만 수록된 게 아니라 혜안을 배울 수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서의 길을 걷다가, 관리자(교장)이 되었으나 뭐 뾰족하게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는 이야기는 읽은 지 십여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생각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은 어린이 사랑 주의자다.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멋내기 좋아하는 말하기에 오염되는 것을 싫어하셨다. 어린이는 어린이 답게 어린이 말을 쓰게 장려하는 글쓰기와 문학이 필요하다고 늘 역설하신다. 선생님에게서 배운 아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참으로 상큼하고 신선하다. 비록 너무 촌티가 나서 상품성은 아주 떨어지지만, 시골에 가서야 맛볼 수있는 채소의 신선함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오염되기 이전의 벌렛자국 숭숭 난 콩이파리 같은 것.

우리글 바로 쓰기는 십오년 전에 단행본을 사 둔 것이 있었는데, 최근에 레포트를 쓰다가 세 권으로 증보판이 나온 것을 고맙게 읽었다. 어린이 사랑, 교육자로서의 성실한 삶, 우리말 사랑에 이오덕 선생님보다 큰 사랑 품으신 분이 어디 흔하랴. 아직도 그 분의 일기에서 아내가 고등어를 놔뒀다가 얼마나 오래 됐는지 상해서 버린다고 담담하게 적은 구절이 기억난다. 어린이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보살님 대하듯 온아한 눈길로 거두신 선생님의 추억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며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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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6-05-06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 샘의 서재를 방문했습니다. 좋은 서평을 읽어가면서 참 뿌듯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 오덕 선생님의 책이 있을 법 하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는데 저처럼 그분의 왕팬이셨군요. 동지를 만난듯 기쁘고 반갑습니다.

글샘 2006-05-0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요.^^
 
뚱보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
이재복 지음 / 지식산업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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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방정환 선생님의 전기를 이렇게 책으로 낼 게 있나? 또 그 어렵던 시기에 어떻게 뚱보가 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아이가 독후감을 써야 되니가, 당연히 내가 읽고 같이 토론해야 되니까. 읽고 나서는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전기문들은 그저 상상 속에서 지어낸 이야기들이 대부분인데, 이 전기에는 방정환의 삶과 문학을 여과없이 드러내 준다는 특징이 있고, 그래서 더 감동적일 수 있겠다.

그의 어린이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소파라는 이름도 일본 사람에게서 빌려 온 것이란 것은 처음 알았고... 색동회 등은 익히 알고 있었다. 우리가 중학교 시절, '어린이 예찬'이란 글이 있었다. 어린이는 정말 순수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영혼이라는 이야기였다.

고난의 일제시대에 어린이 문제에 천착하여 직접 동화를 만들고, 토론회를 개최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민중의 계몽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으로 그의 어린이 사랑이 단순한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항일 투쟁의 일환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의 동화에는 생경한 것들이 많아서 저자도 조금씩 비판을 가해 놓았다. 일제시대의 많은 문필가들이 외국의 투사들을 인용했듯이, 방선생님도 빌헬름 텔 같은 이야기들 소개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읽히기 유익한 책이다. 초등학고 고학년 용. 글을 읽고 나니 그가 뚱뚱한 이유를 알겠다. 아마도 그는 당뇨가 있었을 것이다. 혈압도 높았고, 눈도 나빠졌다는 걸 보면, 당뇨가 심했던 것 같다. 안타까운 젊은 나이에 갔지만, 뭔가를 남긴 사람. 우린 뭘 남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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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 그린비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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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언어학자이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로서 어느 한 분야 치우치지 않는 현대의 행동하는 양심이자 지성의 대표라고 할 것이다. 열흘 정도 쉬는데 읽을 책을 열 권 정도 빌려왔다. 다 보고 끝에 남은 책이 이것이었다. 좀 딱딱하니깐. 역시 딱딱한 책이었지만, 읽는 재미는 있었다. 촘스키는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팔레스타인의 두정부 수립 문제에 관심을 가진 아나키스트였다. 그리고 그는 이십대에 자기의 학문적 기틀을 가진 천재였다.

촘스키와의 대화를 인용한 편지글들을 보면, 촘스키의 인간됨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천성적으로 정직한 사람이다. 유홍준의 정직한 관객이란 책이 있다. 광주 비엔날레의 허접쓰레기같은 설치 미술들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는데, 어떤 촌로가 '에이, 미술 전시회라드만, 볼거 하낫도 없네'했다는 이야기를 인용하며, 우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아는 체 하는지, 미술 감상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님을 꼬집은 말이다.

촘스키의 정직함은, 누구도 포스트 모더니즘을 '자명한 이치를 놀라운 것으로 간주하여 갖가지 어휘로 포장하는' 지식인의 허위의식으로 꼬집는다. 그가 언급한 자는 부르디외라는 사람인데, 이 작자는 조선일보가 너무도 사랑하는 철학(?)자이다. 홍세화의 글을 읽어 보면, 별로 잘난 것도 없는 인종인 모양인데, 극우의 대표자로 잘 인용되는 모양이다.

'나는 다른 어려운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모두들 '임금님 옷은 화려한 비단 옷'이라고 극찬해 마지 않을 때, 내 눈에 비치는 임금님의 벌거벗은 몸뚱어리를 뭐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지...

이 책을 다 읽고 가장 감동적인 면은, 로버트 바스키의 정치한 노력에 있다. 여섯장의 참고문헌과 아홉장의 찾아보기 목록은 그가 얼마나 촘스키의 전기에 천착했던가를 느끼게 한다. 올 여름의 독서 여정의 마무리에서 칼칼한 된장찌개를 맛본 흐뭇함을 안겨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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