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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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의 시집은 처음 읽었다.
그의 시를 몇 편 만난 적은 있었지만, 이런 느낌까지는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왠지 시라고 부르기엔 좀 낯선 것들이었다. 

최영미가 욕설 같은 것들을 남발하는 시를 써서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사람도 그런 부류인가 생각했던 선입견은,
빌어먹을... 시를 읽으면서 이해로 바뀌었고, 금세 공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건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읽고서였다.
다른 시들은 그가 독일에 살고 있고, 연구하는 분야가 고고학(고대근동 이라는데, 근동은 어딜까? 터키에 가서 발굴한다는데, 거긴 중동보다 유럽에 가까운 동양이라 근동이라 부를까? 맘에 안 드는 용어다.)이라 그런지, 짧은 고고학에 얽힌 단상들을 적은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한다.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아님, 말 못 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
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오늘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읍을 지나
신시(新市)를 짓는 장군들을 보았어요
나는 그 장군들이 이 지상에 올 때
신시의 해안에 살던
도룡뇽 새끼가 저문 눈을 껌벅거리며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날 바라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면 나는 당신이 바라보던 달걀 프라이였어요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이거 긴 세기의 이야기지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지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구제역 걸렸다고 소를 땅에다가 그냥 묻어버리면,
소의 위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인하여 땅 속에서 폭탄 터지듯 펑펑 터진단다.
그래서 낫으로 소의 위장을 쳐내고 묻어야(아, 정말 빌어먹을, 차가운 나라가 아닌가) 된다고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빌어먹을, 차가운 행위다. 

시에다가 '빌어먹을, 차가운' 같은 용어를 쓰는 것은 좀 낯설다.
하필이면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전국을 휩쓸었던 구제역으로 난리가 아닌데,
텔레비전은 어디서 울궈먹을 거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있을 때,
아덴만으로 이동한 한국군의 용맹은 '빌어먹을, 차가운' 뉴스를 화끈하게 달구려고 난리 법석이었다. 

정말 '빌어먹게 차가운' 1월을 보낸 사람들에게,
'아덴만의 여명'이란 수백 억 짜리 영화까지 만들어 보여주겠다는 정부의 <빌어먹을, 차가운> 작전을 바라보는 일은,
'빌어먹을, 차가운' 놈들이라는 욕이 목구멍을 급기야 탈출해서 방언의 경지에 금세 도달하게 만든다. 

허수경의 이 시집을 내가 구입한 것은, '빌어먹게도 환장하게 이쁜' 빨강이 표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 원 더 비싼 책은 어떨지 몰라고, 천 원 싼 이 책은 아무래도 불안하다.
시집을 읽는 맛 중에 하나는,
시집의 사이즈가 일반 도서보다 길쭘하여 손에 잡기가 좋고,
처음 읽는 시집을 펼쳤을 때, 책갈피와 책갈피 사이의 접착력으로 인한 강한 긴장감이 양 면을 끌어당기듯 펼쳐지지 않으려는 저항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유난히 하얀 표백제처럼 탈색된 종이에,
유난히 작은 글자가 가득 들어앉은 페이지들은 긴장감없이 훌쩍훌쩍 넘어가버려 책을 만지는 손맛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그의 이 시집은 어쩌면 외국 시집을 번안하여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낯선 형식과 낯선 상황들을 많이 만나게 하였는데, 과연 그의 이 시집을 한국 문학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인가를 나는 무척이나 느끼면서 이 시들을 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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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1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시집에 대한 관심이 많더군요. 최근에 시 낭독회도 있는걸로 알고 있구요,,
저는 낯선 용어로 표현되어 있다거나 심오하면서도 철학적인 내용이 시를 멋있게 보이는데
정작 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구요 ^^;;
그래서 아무리 얇은 내용의 시집이더라도 자연스럽게 자주 읽게 되더군요.
글샘이 소개하신 허수경 시인의 시를 처음 읽었는데 상당히 독특하네요.

글샘 2011-02-11 17:32   좋아요 0 | URL
뭐, 독일에서 수십 년만에 왔는지는 몰라도,
이 시집은 분명 한국어로 적혀 있는데, 어딘가 낯설고 만만하지 않고,
정감이 확 가거나 마음이 휩싸이는 그런 시집이 아니더군요.
그렇다고, 저 시처럼 빌어먹을,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아니구요.
키는 크고, 맨날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는 텁석부리 게르만인의 언어처럼 들려서... 좀 멀리 느껴졌습니다.

sslmo 2011-02-11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마지막 구절의 주어를 이렇게 뒤로 빼실 것까지야...
마지막 구절이 가장 독일어식 표현 같은걸요~^^

글샘 2011-02-11 17:33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주어가 저기까지 가서 꼭 '나는'이 들어갔어야 했는지...
제가봐도 이상한 문장이 맨날 보이는 일이 갈수록 많아집니다. ㅋㅋ
 

얼마 전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개지순이가 집들이를 가서는 돈은 안 들이고
시를 읊어준다고 분위기를 잡았던 적이 있었어.
그때 읽었던 시가 이 시란다. 최영미의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니까, 선운사엘 갔겠지?
거기서 뭔가를 보고 뭔가를 생각했겠지? 그걸 살펴 보자.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1연에서 꽃이 피는데 한참 걸리다가 지는 건 순간적이란 이야기를 한다.
4연에서 같은 구절인데, 꽃이 지는 건 쉬운데 잊는 건 한참이란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깐, 꽃의 피고 짐을 인간의 <만남>과 <이별>과 빗대어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 
그러니깐, 꽃은 '자연물'이면서 '임'의 상징이 되겠구나. 

잊는 일은 참 힘들잖아. 그런데, 쉽게 안 잊히니깐,
2연에서 쉽게 잊고 싶다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3연에서 그대를 자꾸 부르고,
4연에서 잊는 건... 영영... 한참만에 잊게 된다는 건...
영영... 잊을 수 없다는 말의 반어적 표현이 되겠다.  

마치 김소월이 '먼 훗날'에서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던 표현이,
실제로 잊을 수 있었다는 게 아니라, 영영 잊을 수 없다는 말의 반어적 표현을 통한 강조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지. 
이 시의 주제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하는 마음>이 되겠지. 

최영미 시인은 1994년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발표해서 갑자기 유명해 졌어.
한 해 동안 50만 부 이상을 판 시집은 거의 없거든.
1980년대까지의 시들은 참 비장하고, 장엄하게 폼잡는 걸 최고로 여겼는데,
1990년대부터는 가볍고 경쾌하게 비트는 시들이 나오기 시작했어.
음악에서도 서태지라든가 랩을 부르는 가수들이 마구 치고 나오던 시기야.
내용보다는 경쾌한 리듬 같은 것 말이지. 은지원 같은 애들이 당시 인기인이었단다.
그런데, 시도 통일을 노래하고, 민중을 노래하던,
그래서 고난을 이겨내고 의지를 가지자던 시들은 신세대의 취향에 맞지 않게 된 건지 몰라. 

세계적으로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해서 특정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이 생겨났지.
최영미 시인은 그렇게 유명해졌던 사람이란다.
고작 서른 살 살았던 주제에, 이 사람이 1961년생이니 1994년이면 33세밖에 안 됐잖아.
그러면 삶에 대한 통찰과 의지를 보여줘야하는 시인이 되기엔 젊은데,
벌써 <잔치는 끝났다>고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외친거지.
구경꾼들은 '이거 뭐야? 도대체 뭐라고 떠드는지 한번 보자.' 이런 호기심도 많았을지 모르겠다. 

암튼 그의 이별 노래를 한 편 봤으니, 대표적인 이별 노래를 한번 읽어 보자.
이형기의 <낙화>도 참 유명한 작품이야.
20년 정도 전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시란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 

이 시에서도 꽃이 지는 것을 '이별'에 빗대고 있지.
인생과 자연을 이렇게 빗대놓고 보면, 멋진 유사점들이 도출된단다.
이런 것을 관조라고 하고, 비유의 방법을 쓴다고 하지. 

내가 이 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이란다.
하롱하롱~~을 입 속에 넣고 가만히 읊어보면 참 아름다운 마음이 되는 것 같거든.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도 읽어 보면 운율이 참 잘 멋있어 보이지.  

이 시에서는 <역설법>을 공부해 보자.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이 두 구절을 보자.
이별이 축복이래. 좀 웃기잖아.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지.
만남이 '축복'이고, 이별은 '불행'이고 뭐, 이래야 어울리잖아.
청춘이 '죽는' 것은 불행한 일인데, '꽃답게'란 어휘랑 어울리지 않거든.
나의 청춘이 비참하게 죽어야 또 어울리고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모순되는 시어들의 결합이 더 큰 강조의 효과를 드러낼 수도 있단다.
이 시를 읽어보면, 이별하는 과정에서 <성숙>을 배우게 되고,
그것은 자연에서 <낙화>를 통해 <결실>이 이뤄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관조적으로 바라본 거지. 
이런 것을 '역설'이라고 한다고 여러 번 설명했지만, 다시 저 구절들을 읽어 보렴.

옛날에 노래 가사에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라는 노래가 있었단다.
꼭 고통을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힘든 일을 겪으면서 병이 생기고 만다면 힘든 일을 회피해야 하겠지만,
그 고난을 통해서 영혼이 성숙되는 일이라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해>야겠지? 

고려 가요 '가시리'나 김소월의 '진달래 꽃'과 같이 이별의 정조가 강한 노래지만,
그 속에서 성숙하는 영혼을 발견한 통찰력이 이 시를 명작으로 만든 것 같다.
물론, 시라면 읽는 데 매끄러운 발음, 편안한 끊어읽기도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말이야. 

똑같은 역설을 말하는 시가 하나 더 있어서 소개할게.
서정주의 <견우의 노래>란 시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서정주, 견우의 노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석날이 있으려면 일단 <이별>이 전제조건이지.
이별하지 않으면 만남이 의미가 없잖아.
1년간 그렇게 간절히 바라만 보다가 1년에 단 한 번 만나게 되는 기막힌 운명.
그들의 이야기를 차용해서 시를 쓰고 있단다. 
1연은 역시 '역설'임을 알 수 있겠지?

'물살, 바람, 은핫물' 같은 것은 사랑의 장애물들이다.
전에 이 전설의 교훈이 <사랑에 빠지더라도 하는 일에 게을러지지 말자> 뭐, 이런 거랬잖아.
그러니깐, 이 시에서도 마지막에
나는 암소를 열심히 먹이고,
그대는 비단을 짜세~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단다. 

맨날 사랑한다고 발렌타인 데인 초콜릿만 사고 있으면,
소는 누가 키울거야, 소는~~~  

이러다가 견우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지게 된 거니깐 말이야. 
'견우와 직녀' 설화를 차용하여 사랑의 참된 의미를 제시하려고 한 시라고 볼 수 있단다.
이별이 곧 슬픔만이 아니다.
이별은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이다.
이런 역설적 표현을 통해 성숙한 사랑의 모습을 형상화하려고 한 것이지.

세상 만사가 <새옹지마>라는 이야기가 있잖아.
좋은 일에는 반드시 불행도 숨어 따라오게 되어 있고,
슬픈 일이라 해도 또 역시 행운도 붙어 다니게 되어 있는 것.
좋은 일이라고 그저 헤헤거리는 놈도 바보가 되고,
슬픈 일이라고 그저 머리 처박고 울고만 있는 놈도 바보라는 이야기겠다. 

변방의 노인네가 말이 한 필 있었는데, 어느 날 도망을 가버렸어.
그래서 사람들이 'That's too bad.'하고 위안을 했더니, 'Not so bad.' 이랬다는 거잖아.
근데 그 말이 암말을 하나 데리고 와서 엄청 경사가 났다는군.
(유목 민족에게 말이 하나 늘었다는 건, 농경 민족이라면 땅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지.)
또 동네 사람들이 'That's so good.'이렇게 부러워 했더니, 'Not so good.'이런 거지. 

요즘 말로 하면,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이나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정도 되려나? ㅋ
근데 아들이 새로 온 암말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졌고, 또 할배는 '뭐, 나쁘기만 하겠냐?' 이랬다지.
지 아들 다리가 병신이 됐는데... 좀 웃긴 남자지.
근데 전쟁이 나서 동네 아들들을 다 나가서 죽었는데 그 아들은 장애인 판정을 받아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도 되었다는 뭐, 그런 게 <새옹지마>잖아. 

민우가 이적지 해온 고등학교 생활이 무척 훌륭했다면, 그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닐 수 있다고 돌아 보고,
거꾸로 불만스러웠다면, 그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긍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그런 이야기겠지. 

그런 <통찰력 insight>을 가지는 일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단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하고, <관조>를 잘 얻어내는 사람이기도 할 거야.
민우도 그런 멋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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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2-10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최영미 시인을 별로 안좋아하시는군요.

글샘 2011-02-10 22:44   좋아요 0 | URL
좋다가도요...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 있다면...
이런 표현에 도달하면, 저는 시가 아니란 생각이 확 들거든요.
 

한 20년 전에 '접시꽃 당신'이란 영화가 나온 적이 있었다.
도종환 시인의 아내가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게 되는데,
그 애절한 남편의 마음을 시로 쓴 것이 유명해져서 영화화 되었던 거란다.
그 유명한 시 '접시꽃 당신'을 한번 읽어 보렴.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짖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어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을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접시꽃 당신)

 

접시꽃은 예전에 시골의 마을 입구(동구)나 집앞에 많이 심었던 흔한 꽃이다.
크기가 접시만 하대서 접시꽃인데,
수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꽃이란다.
아주 화려하거나 아름답기보다는, 함께 어울려서 자기 존재를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모습이 든든한 그런 꽃이지.

죽음은 누구나 받아들이도록 정해진 일이지만,
젊은 나이에 뜻밖의 죽음을 맞게 되는 일은 참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한용운도 '이별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면 사랑이 깨진다'고 님의 침묵에서 노래했듯이,
죽음을 아프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을 했던 것 같구나.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물론 죽어가는 이에게 장기 기증을 하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인간이 산다는 것은
주는 기쁨, 사랑의 기쁨을 배운다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면,
뿌듯이 주고 가자는 화자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시에서 몇 번이나 '남은 날은 짧지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아쉬운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시란다.
우리도 매일매일이 무의미하게 돌아오는 날들 같지만,
사실은 영원히 다시 살 수는 없는 날들임을 생각해 보면,
하루를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제 아내가 죽어 옥수수밭 옆에 묻고 돌아오면서 쓴 슬픈 시를 한편 읽어 보자. 

견우 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게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하필이면 아내를 묻던 날이 음력 7월 7일, 칠석날이었는지, 그 무렵이었는지...
아내를 묻고 오는데,
살았을 때 제대로 된 옷 한 벌 멋지게 입혀본 적 없는데,
죽고 나서 '수의(壽衣)'를 해 입힌 게 돌아보니 참 부끄럽단다. 

아내가 손수 만든 옷들일랑은 이웃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묻고 돌아오는 남편이 허한 가슴이란... 
앞부분에서는 그런 허전한 가슴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뒷부분에서는 그런 힘겨운 마음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보이기도 한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지금은 비록 이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흙이 된 당신과, 훗날 바람이 되어 떠도는 나의 넋이
다시 만날 것임을, 윤회의 미래를 믿게 된다는 이야기겠다. 

내 남아 밭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그저 슬퍼하고만 있어서는 안 되고,
밭갈고 씨 뿌리며 땀흘리는 삶을 살아야,
그렇게 나름대로 노력하며 옳바르게 살아야,
한 해 한 번이라도 당신의 넋과 만나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임을 생각한다. 

아내도 참 검소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아내와 만나게 된다하더라도, 내가 부끄럽게 산다면 얼마나 스스로 바보같겠니.
그래서 재회의 희망과 삶의 의지를 일깨워 보는 것이겠다.
슬픔을 절제하고 담담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어서 더욱 슬픔을 깊게 느낄 수 있다 

 

도종환 시인은 교육 민주화 운동을 위해 헌신한 분으로도 유명하단다.
학교도 원래 아주 권위주의적인 교장을 위시하여,
교사들도 지극히 어깨에 힘주던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던 거지.
그러다가 1987년 사회의 민주화를 거치면서 교육도 많이 민주화된 거라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은 물론 공부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런 현실까지 교사들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었던 것 같고,
-그런 것은 지극히 정치적인 일이라서 아직 바꿀 부분이 많다.-
교사와 교사간, 교사와 학생간의 소통이 예전에 비하면 많이 자연스러워 졌을 게다. 

이런 힘든 운동에 참여하면서,
힘을 모으자는 의미로 지은 시가 '담쟁이'가 아닐까 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

담쟁이 넝쿨(또는 덩굴)은 조그마한 보잘것 없어 보이는 식물이지만,
참 끈질긴 놈이다.
어지간히 가물어도 말라죽지 않고,
겨우내 추운 바람 맞으며 담벼락에 말라죽은 것처럼 붙어있다가도,
봄이 되면 빠알간 새싹을 내밀곤 한다. 

이 시에서 '벽'은 말 그대로 벽이다. 가로막힌 벽. 장애물.
높은 벽을 보면 좌절감, 절망감이 생기겠지?
그렇지만, 담쟁이는 혼자가 아니라서 그걸 넘는 힘이 난대.
그걸 연대의식, 연대감이라고 하지. 

연대하는 방식은, <서두르지 않고, 꼭 여럿이 손을 잡고> 가는 거란다.
혼자서 열심히, 성실히 살려고 해도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진 않는다.
친구와 동지가 옆에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지 

담쟁이 잎이 저 절망스런 벽을 넘는 방식.
거기서 화자는 인생의 멋진 면을 발견하고 있구나. 관조.
담쟁이의 생태에서 인생의 묘미를 발견하는 관저적 시선. 

주제는 <연대를 통해 절망을 극복해가는 담쟁이의 놀라운 생명력>이 되겠지.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다고 하지.
그건 친구가 있고, 형제가 있어야 한다는 좁은 의미는 아니란다.
넓게 본다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힘을 합치는 것이 삶의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걸로도 볼 수 있겠지.
내일은 졸업날이라 좀 한가하지?
보람찬 하루를 잘 계획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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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2-1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담쟁이 시 참 좋아했습니다.
앞 구절 읽을때 왠지 힘을 줘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요.
이제 수험생 아버지가 되셨네요.
화이팅입니다^*^

글샘 2011-02-10 19:08   좋아요 0 | URL
감동적이지요. ^^
벽을 넘는 담쟁이. 그걸 볼 줄 아는 시인의 눈.
수험생 아버지는 뭘 해야 할까요? ㅋㅋ
 

시 중엔 사랑시도 많고 순간의 예리한 포착이 재미있는 시들도 많다.
그렇지만, 시험에는 되도록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작품들을 제시하도록 구상하다 보니까,
자꾸 비판적 시각이 들어간 시들이나
문제 상황의 부정적 현실이 강조된 시들, 그리고 희망을 노래한 시들을 주로 설명하게 된다.
오늘은 기분 전환 겸, 사랑 노래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우선 김남주의 <사랑 1>을 읽어 보자.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김남주, 사랑 1>

어떤 면에서는 인간은 지구를 망치는 말종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사랑은 위대하기도 하다.
그래서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도 하고,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인간미>라는 말은 인간의 아름다운 측면이 진하게 드러났을 때 쓰는 말이다.  

  

단테가 쓴 <신곡>에 보면, 단테는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한다.
<인간미>라는 어휘는 '천국'에 속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연옥'이 천국으로 가기 전의 공간이니 거기 있을 수도 있겠고... 

봄을 기다림... 희망이겠다. 희망은 오로지 사랑에서만 나오는 것이라고 했고,
희생... 오로지 사랑만이 희생할 수 있다고 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다.
이 말은 그만큼 '지금 - 여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겠구나.
now-here... 하이픈 하나만 옮기면, no-where가 된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인생과, '어디에도 없는' 삶.
오늘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고 성리학의 아버지 '주자(주희)'가 말했다. 

현실과 오늘이 중요하지만, 그것은 미래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미래를 위하여 사랑의 씨앗을 뿌릴 줄 아는 존재인 것이 인간의 긍정적 면이 되겠다.
마지막 연에서 '가실'은 수확이다.
인간은 공동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존재이므로, 수확의 결실을 '나눌 줄' 안다. 

이 시의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은 아니다. '사랑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 사고에 가깝겠다.
평이한 시어를 쓰고는 있지만, 인간이 지닌 사랑의 가치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다음은 엄청 유명한 시를 한 편 보자.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 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김동명, 내 마음은>


은유 설명할 때 잠시 등장했던 시 되시겠다.
은유는 '유사성'에 기초한다고 몇 번 이야기했지? 유사성을 찾는 것이 잘 읽는 비법이다.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을 어떤 사물에 비유한다.
그리고 2~4행에서 '그 이유는요~' 이러고 설명하는 것이다. 

1연. 내 마음은? 호수입니다.
그 이유는요~ : 그대가 노저어 오기만 하면 그대 배 앞에서 옥같이 부서지는 호수예요.
                     그러니깐, 내 마음은 당신의 접근을 전혀 꺼리지 않는 존재란 거죠.
2연. 내 마음은? 촛불입니다.
그 이유는요~ :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촛불이에요.
                     그러니깐,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할 거예요. 
3연. 내 마음은? 나그네입니다. 
그 이유는요~ : 그대 피리소리를 들으며 밤새 귀를 기울이고 싶어서요.
                     그러니깐,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존재거든요.
4연. 내 마음은? 낙엽입니다.
그 이유는요~ : 잠시 당신 곁에 머물고 싶을 뿐이거든요. 
                     그러니깐,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지만요.
                     저를 싫어하신다면, 저는 나그네같이 고요히 사라질 거예요. 

이렇게 오로지 주기만하는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다.
좀 징그러울 정도로 사랑이 강하게 표현되어 있지.
전에 이 시를 통해 '패러디'하는 시험을 냈더니, 어떤 넘이
'내 마음은 연필이요. 내 안에 흑심 있소.' 이렇게 적었더라.
참 멋진 유사성을 발견했지?
패러디에서는 이렇게 언어유희도 필요하니 말이야.

이렇게 말하는 투를 '하오체'라고 그래. 조금 높인 말투가 되겠지.
이 시의 주제는 <사랑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덧없음>도 들어 있단다.
사랑은 오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기도 하는 것이거든.
인간의 마음은 자주 변하는 것이니 말이야.

다음엔 '그 여자네 집'의 시인 김용택의 '들국'을 읽어 보자.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 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뭔 헛짓이다요
저런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져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헌다여, 뭔 소용이다요. <김용택, 들국> 

'들국'은 들국화를 이르는 말이야.
이 시에서는 '뭐헌다요?'나 '뭔 소용이다요?' 같은 표현이 반복되고 있어.
헤아려 보니 9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그 뜻은 '소용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소용없다는 그런 것이다.
내 마음은 <마른 지푸라기> 같고,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어둠 천지>이다.
이 가을이 다 지나도록 서리밭에 하얗게 피어있는 <들국>이다. 

앞에서 김동명이 <내 마음은요~>하고 비유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강렬하지 않니?
당신이 없어서 내 마음은 쓸모없는 지푸라기 같고,
덜덜 떨리는 서리 같고, 세상은 온통 어둠 천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리가 내리는데도 아직 지지 않고 피어있는 <들국>처럼 당신을 기다린다.

병신 바보 천치같이 보이지만, 화자의 순정은 얼마나 열렬한 것이냐.
그리움과 푸념으로 가득한 이 시는 '임에 대한 그리움과 한없는 기다림'을 강렬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자연을 세세하게 관찰한 화자의 생활이 잘 담긴 좋은 시로 보인다. 

지난 1월 22일 박완서 선생님이 타계하셨다.
국어 교과서에서 '그 여자네 집'으로 친숙한 소설가였는데...
사람은 한 번 오면 한 번 가게 마련이지만, 아쉽다.
선생님 덕분에 익숙한 시, 그 여자네 집을 아련한 마음으로 한번 읽으며 마치자.
설명은 필요 없겠지?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언듯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여하고 싶은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은 집
참새 떼가 지저귀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 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 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각,을,하,면…… <김용택, 그 여자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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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1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 며칠간 수업에 활용할 요량으로 <철학 우화> 서른 편을 타이핑했다.
다 치고 보니 65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타이핑하다 보면 글을 차근차근 읽게 되어 좋다는 느낌이 든다.
안 그래도 철학 우화인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즐기면서 타이핑하곤 했다. 

김혜리의 이 책은 참 진도가 안 나가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이 지극히 매력적인 사람들이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맛깔스럽기 그지없었고,
<씨네 21>이란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인 만큼 영화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는데,
영화보다 사람이 전면에 부상됨을 어찌할 수 없어 그렇기도 했다.
한 사람 읽고 몇 번을 곱씹고, 또 한 사람 읽고... 그랬다. 

이 책을 처음 빌린 것이 방학 전이었으니, 12월 말쯤 처음 읽은 꼭지가 마지막의 <박완서>였다.
그걸 다 까먹고 있다가 20번 구본창을 읽고 나서, 이제 에필로그가 나오겠지, 했는데,
거기 고 박완서 선생 이야기가 있었다.
순간 좀 당황스러웠다.
1월 22일 타계하시곤 박완서란 작가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다시 짠한 마음이 들었다.
박완서는 내게 참 '짠한 사람'이다.
박완서라면 왠지, 자살한 행복 전도사를 아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을 <외톨이>로 추억했다.
그러나 그 외톨이의 추억은 그들에게 상처만을 남긴 것은 아니었다. 거기서 상상의 샘물을 길어 올리기도 하고, 그 시절에 떠올린 사색의 바다는 평생 삶의 버팀목이 되거나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주기도 했다. 

내가 버렸다고 마음먹었다 치더라도 그건 그냥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고,
어느 순간 죽어도 아무 남을 게 없으리라던 외로움들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저가 될 것이다.(77, 김진)
 

송강호가 '봉준호' 영화를 논하면서 직지!를 보여준다. 

국가나 사회가 당신들을 지켜줄 것 같아요? 천만에요. 운이 좋아야 해요.(112)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을 생각해 보면, 이것 이상의 감독평은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이병헌같이 큰 배우도 고민을 털어 놓는다. 

<아스팔트 내 고향>이란 작품에서 감독이 "넌 이게 데뷔작이자 은퇴작이야. 끝나면 방송국 근처 얼씬거리지 마라.
대체 왜 연기자가 되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단다. 욕먹는 게 고돼서 촬영장 나가는 것에 가위가 눌릴 지경이었다고.(145) 힘든 일을 이겨내지 않으면 실패자란 기억으로 견디기 힘든 삶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말조심할 일이다. ^^

김병욱 감독의 이야기 속에서 "사회적으로 무거운 지위와 책임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놀랄 만큼 황폐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때가 많잖아요. 사람들이 모두 속고 있는 거죠. 그들은 설마 나처럼 무책임하거다 미숙하지 않겠지 믿는 사람들의 피라미드인 거예요.(135)" 이런 말이 나오는데, 참으로 세상을 깊이 꿰뚫어본 사람의 하이킥이다. 

연기인 나문희는 <사람은 그냥 다 지나가는 거 같아. 그러니까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아무리 누군가를 마음에 둬도보기 힘들 때가 있고... 다 이렇게 지나가는 거구나 해요.(377)> 이런 도통한 소리를 서슴없이 한다. 것도 엄청 밝은 모습으로... 

이탈리아 감독 에르마노 올미는 "카메라 뒤에 서는 일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카메라가 나 대신 당신에게 키스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302)란 고백을 했다고 한다.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해서 우러나는 철학은 누구에게서든 배울 것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책 디자이너 정병규는 "인간을 혼자 있을 수 있도록 한다"는 책의 미덕을 꼽는다. 가난해서 문학을 선망하던 시대. 김우창 이야기를 해서 김우창을 읽도록 만들었던 그가 "나는 도서관을 싫어해요... 도서관이란 책의 존재감이나 물질성은 보지 않고 내용에 실려 있는 기호만 보관하는 곳이거든요. 새 책이 오면 겉표지를 벗겨 신간 안내판에 압핀으로 꽂아놓고... 합법적으로 책을 학대하는 곳이니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도서관은 적이죠." 이런 말을 할 때, 나도 완전 동의하는 마음이었다. 요즘 책들은 작가 소개나 작품 소개를 책날개 안쪽에 많이들 하는데, 도서관 책들은 표지를 날려버려서 그 소중한 자료를 잃어버리게 된다. 왜 사서들은 표지를 날리라고 배우는 걸까?(세실님, 왜 그런 거요?) 

나도 한때 자작나무는 아니지만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즐겨 듣곤 했다. 그의 프로는 '별밤'처럼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던 느낌이 아직 남아있는데, "사람들은 음악 평론을 한다면서 독후감을 써요.... 평론가는 되지 말고 될 수도 없다. 가이드가 되자고 마음 먹었죠." 보통 평론가라고 하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가려가며 평하는데 사실 그런 사람보다는 음반을 사는 사람은 알고 싶어하는 것이 다르다. 가이드, 큐레이터가 평론가보다 좋다는 그의 이야기에 십분 동감이다.  

김혜수와의 인터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특히 뒷모습 이야기가. "<타짜>에 정마담 뒷모습이 많이 나오지만 그녀는 고니에게만 자기의 모든 뒷모습을 보여줬어요. 정말 사랑한 거죠.(224)" 자신이 기투하고 있는 분야에서 이런 느낌을 받아야만 진짜,라고 볼 수 있을 거다. 타자는 외로운 사람들, 서로 속고 속이는 사람들이어서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긴데, 거기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란... 더 큰 감동을 준다. 

내가 대학 시절 과외하러 갈 때 놓쳐서 가슴이 아팠던 63-1번 버스 이야기를 문소리가 한다.
맨날 버스를 타고 언제나 창밖만 보고 있으니까, 늘 똑같은 거리를 뭘 그리 열심히 보냐? 고 묻더란다.
"똑같지 않아."라는 문소리의 대답이 오래 남는다. 남들에겐 똑같아 보이는 세상을 똑같지 않게 보는 이.
그의 마음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그 다른 만큼 예민해서 상처도 많고 피곤도 더할 것이다. 그의 상처가 보이는 듯 하여 나도 아프다. 

아내는 빨간 색 계통의 옷, 화려한 꽃무늬 들어간 옷을 아주 선호하는데, 그래서 난 결혼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빨강에 대하여 일가견이 생긴 느낌이다.
정구호란 디자이너가 빨강의 까다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이해가 갔다. 완전 아내 덕이다. ^^
"까딱하면 천해 보이고 잘하면 고급스러운, 천의 얼굴을 가진 색이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지는 위험한 색입니다." 고상한 빨강, 톡톡튀는 빨강을 구사하기란 참 쉽지 않은 노릇임을 조금씩 알 것 같다. 

강금실 편에서 놀란 것은 그녀가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문법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는 구절로 보이지만,) 지금을 항상 종말과 같이, 지금을 내가 죽는 시점과 일치시켜서 받아 들이면 여유가 생길 것이라는 종교적인 관점이 그녀가 이야기하니 조금 신선한 느낌도 들었다. 

다시 나문희 씨 이야기. 

   
 

딸들이 음악을 해서 그런가봐.
우선 연주자가 작곡가의 작품을 표현하려면 10개쯤으로 쪼개보잖아요.
연기자도 마찬가지예요.
한 인물을 표현하려면 적어도 그 사람의 10가지 성격은 쪼개보는 작업이 필요해요.
그리고 어디에 힘을 주고 호흡을 어떻게 갈까를 연주처럼 생각해야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옆에서 나도 음악 레슨을 들었는데... 재미있었어요.
세상은 눈만 크게 뜨면 얼마든지 배울 게 있어. 그렇지? 

 
   
  
갑자기 반말로 묻는 나문희 씨의 질문이 마치 내게 돌아온 느낌이다.
눈이 작은 나도 눈을 크게 뜨고, 열 명의 성격을 연주하고 싶다.
새 학기를 앞두고, 나도 연기자가 되어 멋진 연기를 펼칠 마음에 간혹 들뜨곤 한다.  
 
김혜리가 인터뷰에 앞서 적은 글들은 참으로 간결하게 그 사람을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서 거기서 가리고 뽑은 질문만을 던졌는지,
그리고 인터뷰이의 성격을 열 가지가 아니라 쉰 가지쯤 상상해 보고 거기서 <프롤로그>를 뽑아 올렸는지를 상상하면, 베틀 앞에 앉은 수공예의 달인을 만나는 느낌이 책장을 통해 전해진다. 
 
매 인터뷰의 앞에 가로 1, 세로 1.5 센티미터 정도의 사진이 붙어있다.
주로 손을 찍은 것인데 신선하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손에서 성격이 드러난다는 숨은 웅변으로도 보인다.
결국 박완서에 가서는 '손'에 대한 질문까지도 한다.  
 
나는 내 손을 사랑한다.  
내 손은 어려서부터 희고 여성스러운 것이었는데(한자로 쓰면 백수다.) 
세밀한 작업에 어울리는 내 손을 위해 해준 게 없어 좀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전에 피아노를 손에게 가르쳤던 적도 있긴 하지만... 요즘엔 구박덩어리다.
그런 관심 때문인지, 손에 대한 사진이 매 인터뷰마다 실려있는 작은 사진들이 오히려 정겹고 반가웠다. 
사람은 취향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을 살면서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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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2-0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정말 여러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가봐요

글샘 2011-02-10 19:09   좋아요 0 | URL
이책 재밌습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 보세요.
글쓰실 모티프를 잡기 좋을 거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