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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밤이면 그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고
자신의 재능도, 이 세상에서의 자기 자리도, 자신의 본모습까지도 박탈당한 남자의 역할에 갇힌,
결점만 줄줄이 모아놓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혐오스러운 남자의 역할에 여전히 갇힌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아침마다 그는 몇 시간씩 침대에 숨어 있곤 했는데,
그런 역할에서 숨는다기보다는 단순히 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살에 대한 게 전부였지만, 그것을 흉내내지는 않았다.
죽고 싶어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살고 싶은 남자였으니까.(15)
파리 리뷰의 '작가론' 등에서 만났는데,
실제 작품을 접한 일은 거의 없는 듯...
나이가 들면,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것들이
불완전해지고 불가능해지는 것을 인정해야 하게 되는 법이다.
그럴 때, 주인공은 자살을 고민한다.
재능이 빛나던 사람에게서 그 빛이 사라질 때
어떤 마음일까...
한 순간만 하세요.
순간을 연기하세요.
어떻게 될지는 중요치 않아요.
그런 걱정은 접어 두세요.
그저, 순간으로만 인식하세요.
순간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뭐든 해낼 수 있으니까요.(44)
연기자들의 절망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책이었다.
성적인 스토리가 꼬이는 부분은 별로 재미없었고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고 읽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이들면서
삶의 격정들이 스러질 때,
자살을 고민하여야 하는 사람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