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깨달음
조정래.홍세화.정혜신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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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을 찍는 일도 찍히는 일도 낯설어한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 아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인화하고 싶어하는 아내의 욕망을 채워주려 열심히 찍어대기도 했지만,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나니, 그 일도 시들하다.

아들 녀석은 기가 막히게 아내와 비슷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앨범 보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나도 어깨 너머로 같이 보노라면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사실 내 사진은 별로 없다. 사진에는 소리와 문맥을 잃고 그 찰나의 빛만이 남아있지만, 그 사진을 기억하는 우리 추억의 뇌 구조에는 그 당시의 냄새도, 소리도, 빗방울 떨어지는 분위기와 사람들간의 왁작한 분위기까지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날은 떠올리는 것은 그래서 단편적이고, 그러면서도 알싸한 아카시아꽃 냄새와 라일락 냄새가 한줄금 눈물과 함께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엊그제 연말 모임을 고깃집에서 가졌는데, 그 가게에 '고기의 육질을 좋게 했습니다.'하는 프래카드를 보고 '교육의 질을...'이라고 착각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했더니, 주인 아줌마가 한참을 허리를 펴지 못하고 웃어댔다. 시각이 자동화하는 세상은 이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좀 이상한 점이 많다. 인물과 사상사에서 이런 책을 찍어낸 것도 수상하다.
대표 작가로 조정래를 들어서 '조정래 외'라고 해 두고는,
표지에는 조정래, 장회익, 홍세화, 박홍규, 김진애, 고종석, 손석춘, 정혜신, 박노자 순으로 이름을 실어 두었다. 그러고는 실제 차례에서는 정혜신, 박노자, 고종석, 손석춘, 조정래, 장회익, 박홍규, 김진애, 홍세화의 순으로 실었다. 아, 인물과 사상사란 출판사에서 사람을 이렇게 취급하나 싶어서 실망이 컸다.
표지에 실린 이름은 맨 처음의 두 사람을 빼고는 연령순으로 실은 것이다. 장회익 교수에 비해 조정래가 상업성이 강하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어찌 그리 군대의 계급 순서대로(43년생, 38, 47, 52, 53, 59, 60, 63, 73년 생의 순이다. 세상 참 무섭다. 이름만 치면 생년이 튀어나오는 세상이니...) 이름을 배열할 생각을 했을까. 보통 이런 글의 저자는 가나다 순으로 하든지, 수록 순서대로 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내가 재미있게 읽은 글은 정혜신, 손석춘, 조정래, 박홍규의 글이다. 홍세화 선생은 좀 성의없게 쓴 듯하고, 고종석과 김진애는 암튼 좀 싫다. 그리고 <젊은 날의 깨달음>을 저술할 정도의 연배라면 앞의 세 분 정도가 아닐까 한다. 유명인이라지만, 73년 생에게 젊은 날의 깨달음이란 좀 생뚱맞고 잔인한 요구가 아닐까? 아직 한참 젊은데 말이다.

박홍규의 서문에 <저 도도한 패거리 문화가 만드는 억압과 불평등, 무사상과 무실천의 야만을 당당하게 갈아 엎어라. 자기 생각을 굽히거나 말과 행동이 다르게 사는 자를 스승은 커녕 벗으로도 삼지 말라. 젊은 벗이여, 굽히지 말라.>는 말을 실으신 것은 두고 두고 새기고 싶다. 내가 나이롱 대학원생 생활을 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정혜신의 글은 참 재미있다. 자기 젊은 날은 정신과 의사라는 인식의 베이스캠프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도 사범대학과 교사 생활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거부당한 사람들은 강렬하게 몰입한다. 그러나 병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몰입과 집중은 삶을 뒤틀리게 한다...는 이야기가 귀에 쟁쟁하다. 나의 읽기도 뭐, 이런 거 아닐까. 삶을 뒤틀리게 할는지도 모르는...

홍세화는 <인간성을 어느 시대나 그 자체로 가능성이고 희망이며 배수진>이라고 한다. 인간을 가리켜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하기도 하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도 한다는데, 전자는 물질적으로 경제란 유일신을 볼 때 그렇고, 후자는 인간으로서의 품위, 존엄을 향유하고자 하는 존재로서의 욕구를 생각할 때 그렇다.

고종석은 민족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분쟁들의 강력한 갈등원은 민족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의 양 날개에서 시작한다고. 한국 기독교의 종교적 열정도 기복, 불관용의 과도함이 문제라는 진단은 수긍할 만 하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으려 한다면 인종주의가 나쁘다는 것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자적 발언까지는 동의한다 치더라도, 스스로를 '소극적 영어 공용론자'라고 하는 것은, 개인주의를 말하면서 공용어론을 주장함은 자가당착이며, 영어를 쓰는 자, 가진 자로서의 오만에 불과한 무식한 발언이란 생각이 든다. 영어에 투자하는 돈은 졸라 많지만 현실적으로 실패한 영어 교육의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손석춘 논설위원은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소년 시절의 깨달음이 언론의 진보를 향한 발걸음을 떼게 했다.

조정래의 "인생이란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의 연극"이란 명제는 당연한 것이면서도 신선하다. 그의 삶이 정말 치열한 것이었기에 공감이 간다. 미련스러운 노력 말고 우리 인생을 책임질 수 있고, 빛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그의 말은 쉽게 무너지는 내 멱살을 잡에 일으킨다.

박노자는 한국과 러시아가 전지전능한 체제의 수레바퀴에 깔린 개인의 절망과 무력함이 무엇인지 몸으로 아는 공통점을 가진 사회라고 진단한다. 소련 붕괴로 미국, 외국이 만병통치약이란 생각에 빠진 그에게 한국의 경험은 <자유의 가면 뒤에 숨겨진 자본주의의 진면목을 직시>하게 만들어준 것이었단다. 완전한 자유가 실재하지 않아도 자유를 향해가는 <경계 벗어나기>의 경험을 준 한국 이야기는 한국이 낯설게 한다.

장회익은 '삶은 의문투성이인데, 실제로는 물음을 별로 던지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생명과 지구본'에 대한 이야기는 '돈오'와 '점수'를 생각하게 한다. 낱생명은 온생명 속에서 존속함을 찾아야 한다고.

다시 박홍규 교수의 이야기.
대학의 교수 사회란 일종의 사교클럽으로 사교성만이 교수를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이자 교수가 되는 첩경이다. 신규 교수를 뽑는 기준이 어리고 복종적이고 실력은 없고 진보적이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학문도 친일 친독재적이며, 치부를 감추고 폭로하는 자를 죽이기에 급급한 것이란다.
대학의 좌우명은 스승을 능멸한 비도덕의 엄금! 체제와 권위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비도덕적 능멸로 평가하여 그 삶을 절멸한 것이 20세기 한국의 비극이었다고 하는 말에는 한국 현대사를 점철한 비극에 원류를 보는 듯하여 가슴이 절절했다.
양심적 학문의 소수에 대한 관용이란 인권의 최소 미덕을 학벌 패거리를 본질로 하는 우리 학계가 인정하지 못하는 면을 비판한다.

김진애는 워커홀릭이고, 정치권에도 들어가다 실패했지만, 그의 미덕은 <건축은 자연에 대한 죄악, 되도록 죄를 덜 짓는 건축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나 <당신의 전공 분야에 쏟아지는 과장된 세례에 간단히 넘어가지 마라. 당신의 철학을 세워라>하는 이야기처럼 간혹 배울 것이 있다는 점이다.
멀티 인간, 실용 인간, 여자 인간, 진행형, 진화하는 인간으로서 강한 인간 김진애는 지나치게 가진자의 면모가 싫증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런 책에 자주 등장하게 한다.

이 책은 읽을 거리가 있다면 있고, 허섭하다면 허섭한 책이다. 만원을 투자하기엔 아깝고, 빌려는 볼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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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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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성장소설에 비하면 2권의 이리오모테 섬생활이 나는 훨씬 재미있었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적이긴하지만 소설의 재미를 이끌어내긴 힘들다. 인생의 진실성이란 극한 상황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섬에서는 텔레비전도 전기도 없는 생활이 이어지지만, 전교생 다섯 명의 학교와 베니건스를 연상시키는 베니라는 자유인, 그리고 끝도없이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이웃들이 있었다. 물론 거기도 땅을 사고 파는 개발업자도 있었고, 자본가의 개 노릇을 하는 경찰들도 있었지만, 초절정 구제불능 운동권 고수 아버지와 덩달아 기둥에 몸을 매다는 어머니도 있어서 섬생활의 어려움들은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이 소설의 통쾌함은 아버지와 어머니, 베니가 잡혀가지 않고 자유롭게 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도시의 서점 순례나 돈많은 외갓집도 조금 좋긴 하지만, 전교생 다섯 명의 수업과 싱싱함이 묻어나는 누나 요코의 모습이 사람사는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사우스에서는 깡패따윈 없었다.

내가 1권을 읽으면서 기대했던 바대로, 남쪽을 사랑하는(南愛子) 미나미 선생님의 편지가 배달되었는데, 정말 미나미 선생님은 멋진 분이셨다. …지로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부디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손해보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서로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쁜 일에 협력해서는 아무 의미도 없겠지…. 나는 제자에게 이런 멋진 말을 써보지 못한 부끄러운 교사였기 때문에 깊은 반성을 했다.

아버지가 운동권에 대해 내뱉는 일갈은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다. “나는 당신 같은 운동꾼들에게는 더 이상 어떤 공감도 느낄 수가 없어. 좌익 운동이 슬슬 힘이 빠지니까 그 활로로서 찾아낸 게 환경이고 인권이지. 즉 운동을 위한 운동이란 거요. 포스트 냉전 이후 미국이 필사적으로 적을 찾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야.” 우리 문학에서 이런 말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아버지가 개발 반대 투쟁을 앞두고 지로에게 해준 말은 삶의 방향을 이끄는 등대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오쿠다 씨는 이치로 씨를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 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한 사람. 싸우는 사람 중의 한 사람. 개인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어떤 명목으로도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꿋꿋하게 버티는 것이 운동에서 얼마나 중요하던가. 힘빠질 일이 아니다. 그저 한 사람으로서 운동의 자리에 서야 하는 것이다.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란 책에서 ‘해방되기 전, 마지막 전사가 되어도 혁명가가 될 것인가?’하는 대목을 읽고 고민했던 대학 시절이 있었다. 결국 누구나 마지막 전사일 수 있고, 한 사람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버지는 ‘한 개인’으로 당당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분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영원한 위험 인물이지만, 이미 아버지도 혁명 같은 건 믿지 않는다. <권력자가 벌레보다 싫고, 국가가 하라는 대로는 죽어도 하기 싫은 한 개인>일 따름이다.

내가 배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나, 너, 우리, 우리 나라, 대한 민국>으로 시작했고, 어린시절부터 ‘우리’는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항상 내 옆에는 너와 우리의 눈이 가득했고, ‘우리’를 벗어나는 일은 큰 죄악인 것처럼 여겼던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를 생각하게 해주기 위해 남쪽으로 튄 ‘이치로 씨’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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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2-2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오모테 섬으로 글샘님과 함께! 개인 만세!

글샘 2006-12-2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제 흘러간 마음을 잘 보관해 주세요. ^^
이리오모테 섬에 수학여행이라도 다녀온 느낌입니다. 아련한 추억처럼... 정말 개인 만세입니다!!

몽당연필 2007-02-2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우리 모임에서도 읽기로 했답니다. ^^

2007-03-08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3-09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당연필님... 모임에서 같이 읽고 이야기도 나누면 색다른 감흥이 있겠군요.
s님... 그렇다고 리뷰를 안쓰시는 건 무효입니다.^^

석란1 2007-06-0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 우리 모임의 커리인지라 금요일밤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와서 밤 11시경부터 .....밤을 꼴딱세웠습니다. 지로의 아버지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죠. 저희 아이가 다니고 있는 방과후 학교는 공동육아협동조합에서 하는 것입니다.조합원의 대부분이 대학시절 가열찬 운동권이었고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로의 아버지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한다고 볼 수있지만 환경이나 인권운동으로 옮아온 운동권의 모습도 많이 보여지고 있지요. 참 많이 공감했고 반성했습니다.

글샘 2007-06-04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읽는 모임이군요^^
가열찬 운동권 출신이나, 헌재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오쿠다 이치로씨처럼 멋진 운동가 보기는 쉽지 않지요.^^
함께 하지 않으면... 결국 '개인'은 없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우리말 나들이 - 쓰면서도 잘 모르는 생활 속
MBC 아나운서국 우리말팀 엮음 / 시대의창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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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나운서국의 우리말 팀에서 만든 책이다. '우리말 나들이'는 spot으로 5시 30분 경에 1분 정도 간단하게 방송하는 일종의 우리말 사랑하고 잘 알고 쓰기 캠페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용이다 보니, 이야기들이 짧고 예를 잘 들어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책들의 단점일 수도 있는, 잘 안 쓰는 말들을 열심히 설명하는 일이 적고,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면서도 정확하게 쓰지 못했던 사례들을 잘 들어 두고 있다.

아쉬움이라면 마지막에 찾아보기를 덧붙였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욕심을 내 보기도 했다.
그만큼 옆에 두고 자주 찾아보고 싶은 책이랄까?

이번 기말고사에 buzzer를 어떻게 쓸까 시험에 냈더니, 감독갔던 샘들이 참 궁금해 한다. 부저가 틀린 표기기 때문이다. 영어샘이 물어보기에, 그걸 영어로 어떻게 읽냐고 했더니 [버저]란다. 그게 답이다.

이 책에서 '누적'과 '축적'의 차이도 배웠다. '누적'은 포개져 여러번 쌓이는 걸 뜻하는 말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쌓이는 경우에 주로 쓰인다. 피로와 불만은 누적되는 것. '축적'은 지식, 경험, 자금 따위를 모아서 쌓는 것으로 의지를 가지고 모으는 경우에 주로 쓰인다. 부가 축적되고 경험이 축적된다.

전기세를 낸다고 많이 쓰는데, '-세'는 국가에서 징수하는 조세에 쓴다. 자동차세, 주민세가 그런 거고, 수고를 끼치거나 사물을 사용, 관람한 대가로 지불하는 것은 요금으로 쓴다. 가스 요금, 전기 요금, 수도 요금.

스라소니가 부스스해서 으스스하다. 시라소니가 부시시해서 으시시하다.라고 많이 쓰는데 앞의 것이 옳다.

그 아이는 천상 여자다. 천상은 틀렸다. 천생이 맞다.

결과가 다르게 되어 억울하게 느껴지는 경우 '엄한' 사람 잡지 마라고 한다. 옳은 표기는 <애먼 사람>이다. 엄한에는 엄격하다는 뜻밖에 없다.

늦장과 늑장, 어떤 것이 옳을까? 복수 표준어라 둘 다 맞다.

야멸차게 떠나간 당신. 야멸차게가 아니라 야멸치게란다.

8.15 해방을 피동적이라고 광복이라고 쓰자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광복은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는데, 조선시대 전제군주를 되돌려오긴 싫다.

동심초라는 노래에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이런 구절이 있는데, 한갓되다의 뜻은 '겨우 하찮은 것밖에 안 되다'란 뜻이다. 헛되다는 뜻이다.

해쓱하다, 핼쓱하다. 뭐가 바른말일까? 핼쑥하다.가 맞다.

내가 보고 싶을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즈막히 소리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정미조의 노래였는데, 나즈막히가 아니라 나지막히가 옳다.

사전에서 살려 쓰고 싶은 말 중에 <꽃등>이란 말이 맘에 든다. '처음'이란 뜻인데, 꽃등으로 돌아간다, 꽃등에 길러준 주인 처럼 쓴단다.

우리말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갈수록 어려운 것이 또 우리말이다. 그래도 요즘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서 틈틈이 공부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나처럼 국어로 먹고 사는 사람 말고라도 우리말로 살지 아니하는 사람 없으니, 이런 책들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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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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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학교에서 배우는 거, 실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야. 공부하는 내용도 그렇고 집단 생활의 규칙 같은 것도 그래. 정해진 통학로로만 다녀야 하다니, 그런 건 명백하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규칙이잖니? 나라에서는 국민을, 어른은 어린애들을 그저 편리하게 관리하겠다는 것 뿐이야.(353)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328)

앞의 것은 주인공 소년 지로의 엄마 이야기고, 뒤의 것은 아빠의 이야기다.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씨는 아나키스트다. 무정부주의를 이 책에선 ‘개인의 완전한 자유를 주장하며 정부 및 그 밖의 모든 권력을 부정하는 주의’라고 정의하고 있다.

21세기, 지구상의 인간을 규정하는 악덕 중의 하나가 <정부>다. 정부는 태어나자마자 신성한 국민의 <의무>를 지워주고, 누리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권리>를 부여한다.

납세, 교육, 국방의 의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가지지 못한 자들이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안다. 세금 포탈하고, 공교육 안 받고, 군대 안 가는 것은 <신의 아들>들이었고, 유리 지갑에서 세금을 신고하기 전에 떼어가고, 공교육이 교육의 다라고 생각하며, 군대를 만땅 채우는 것이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간혹 <사람의 아들>은 조금 특별한 지위를 획득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아들이 어둠의 자식들로 편입되는 것이 요즘의 대세다. 사람의 아들은 결코 신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개천의 미꾸라지는 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어제 본 영화 <우리 학교>에서 재일조선인들이 고통받는 이유도 바로 <정부>에 의한 비협조와 <협박>이었다. 정부가 없다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결코 나쁘지 않다. 일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부시가 대장인 미국 정부는 악의 축이고, 아베를 비롯한 일본 정부는 전쟁광이다.

콜라나 캔커피도 우에하라 집안에선 금지 품목일 정도로 아버지 이치로씨는 의식적으로 <정부>와 <국가>를 부정한다. 콜라와 캔커피는 미국의 음모이며 독이라는 말과 함께.

일본 정부의 국민 연금이나, 경찰, 교사 등의 공무원에 대해서도 ‘체제에 빌붙어 먹는, 국민 세금의 떡고물로 연명하겠다는 근성을 가진 착취자의 가장 악질적인 한 편’이라고 정의하는 이치로씨.

그런 건 각각 자기 책임으로 해 두면 돼!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하는 말은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다.

월급에서 꼬박꼬박 기여금을 수십 만원씩 떼어가지만, 정작 국가에서 보장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 퇴직하는 이들의 연금을 내주기는 하겠지만, 누구도 선뜻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한국의 경우, 정말 국민을 관두는 것이 현명할는지도 모르겠다.

노인 국가 일본의 고민이 같이 들어있는 소설이라고 하겠다.

운동한다는 이들도 비판의 대상이다. “정말 한심한 자들. 이상을 실현하는 것보다 조직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고 있으니, 세상과 점점 더 괴리된다는 것도 모르고 그저 운동을 위한 운동에만 매달린다.”고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운다.

남쪽의 이리오모테 섬은 작가 오쿠다의 <이어도>가 아닐까? 남쪽으로 튄다고 무엇을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구속하는 <정부>의 힘을 벗어나기 위한 버리기로 비친다.

인생은 바라기와 버리기의 줄타기라는 말이 있다. 뭔가를 누리기 위해 <바라는> 마음과 그 욕심을 <버리고> 존재의 자유를 누리며 살기 위한 치열한 의식의 결투.

미나미 아이코 선생의 이름이 南愛子인 것은 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것 같다.
남쪽을 사랑한다는 이름이 왠지 2편에서 튀어보이는 컨셉트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버지 一郞과 아들 二郞 사이의 관계도 2부를 기대하게 한다.

<바라는 세상>을 <버리고 사는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2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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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12-19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드디어 별셋을 해산 하셨군요...^^

글샘 2006-12-2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별셋보단 글샘이 저도 익숙하네요. ^^

sprout 2007-02-0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샘님도 여기까지는 1편까지 보신 거군요^^ 저도 1편까지 막 보고는 2권 책이 없어 기다리는 중에 이렇게... 오쿠다 히데오, 참 멋있는 작가네요. 2권을 읽고 쓴 글샘님의 리뷰도 기대가 됩니다 ^^

글샘 2007-02-03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 기대되시죠? 2편도 재밌답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걸'이란 단편소설집과 '공중 그네'도 재밌어요. ^^ 어쩌다 보니 제가 팬이 됐네요.
 
아빠가 준 인도
원유진, 원덕재 함께 씀 / 어진소리(민미디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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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모는 조각을 하는 분들이었는데, 유학을 가면서 3세 된 아들을 데리고 갔다.
인도는 못살고, 가난하고, 더럽고, 사람들이 뻔뻔하면서도 느긋한 느끼함이 넘치는 나라다.
쥐와 모기와 뱀과 도마뱀이 득시글거리는 나라이고,
사리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들의 축제가 끊이지 않는 카스트의 나라이다.

나는 아들을 열심히 기른다고 길렀는데, 이 아빠에 비하면 영 아니란 생각이 든다.
옆자리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아이에게 주어야 할 것은 여행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좀 불편하더라도 세상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인데, 안락한 자동차 여행을 통해서 아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었이었을지, 반성해 본다.

이번 겨울엔 둘이서 기차라도 타고 가까운 데 여행이라도 가 볼 일이다.
해운대 역에서 기차를 타고 불국사 역에 내려서 경주를 구경해 보는 것도 재밌겠고, 남산엘 올라 보는 것도 좋겠다. 더 멀리 걸어 가도 될 것이고.

그러면서, 이 아빠처럼 역사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
아들이 자라면서 아빠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직업에서 오는 거부감일 수도 있을 게다.

이 아빠와 아들이 자연스럽게 역사와 지리를 이야기하고, 기분을 나누는 대목은, 비록 아버지가 기록한 것이어서 좀 과장된 부분은 있겠지만, 아이에게 평생 재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 아이들에게는 공부를 시킬 것이 아니라, 평생 재산이 될 마음을 전수해 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다.
공부를 하든 말든, 그것은 마음이 단단해 진 후라야 가능한 것이다.

논개가 국가를 위해 죽었다고 이해하는 것을 뛰어 넘어, 평화를 위해 몸바친 고귀한 정신으로 설명하는 데서 아빠의 내공이 느껴진다. 세계엔 힌두교의 여러 신,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알라 등 신으로 떠받드는 존재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것은 나라마다 말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라는 융통성도 넓은 세상을 다녀 본 이가 얻을 수 있는 지혜였다.

아빠가 아들을 위해 어린 시절 추억을 기록해준 책에 불과하지만, 정말 자식에게 남겨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 곱씹어 보게 하는 책이다. 과연 재산과 학벌을 물려주는 것이 자식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를...

<존재 to be>의 소중함을 가르치지 못하고 <소유 to have>에 집착하는 삶을 살 때, 불행은 보이지 않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아이를 기를 일이다. 그 행복의 근원 없음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소유만으로는 결코 웰빙을 이룰 수 없음을 어려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

월욜엔 아들녀석이랑 <우리 학교>를 보러 가서 이야길 좀 나눠야겠단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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