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한국 시나리오 선집 - 제19권 2001년도 선정 작품
영화진흥위원회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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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99년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어서 지난 토욜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왔다.

일요일, 가족들이 모두 감기에 걸려 비몽사몽 잠을 자는 와중에 비디오를 빌려다 보듯이 시나리오를 끼고 앉았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다 읽었다.

2001년 시나리오 선집에는 고양이를 부탁해, 고추말리기, 꽃섬, 라이방, 번지점프를 하다, 봄날은 간다, 소름, 수취인불명, 와이키키브라더스, 킬러들의 수다, 파이란의 11편이 실려 있다.

내가 본 영화는 번지점프와 봄날, 수취인 불명, 파이란의 네 편인데, 읽었더라도 정말 실감났다.

영화를 봤으면 본 대로 장면들이 떠올라서 재미있었고, 안 본 것은 안 본 대로 상상력을 동원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평범한 아니 중간 이하의 처녀들의 심심한 나날들을 예민하게 캐치한 영화, 그야말로 고양이같은 감각을 지닌 글이었다.

고추말리기는 부득부득 옥상에서 고추를 말리는 할머니의 모습과 퉁퉁한 영화인의 솔직한 일상 이야기.

꽃섬은 아기낳은 여고생, 설암에 걸린 가수, 피아노를 사려 매춘을 하려는 여자들을 통해 독창적인 캐릭터를 창조한다.

라이방은 택시 기사들의 요모양 요꼴로 사는 인생들을 앵글에 담지만, 그늘을 찾아 베트남으로 떠나는 영화.

번지 점프는 이은주의 죽음을 예견한듯한 영화로 유명하다. 러브스토리와 환생을 재미있는 입담과 장치들로 떠받치는 시나리오.

봄날은 간다...는 이혼녀 은수를 향한 상우의 마음을 잘 나타내는 영화다. 은수가 피곤하면 자고, 집 정리 안 하고 대충 사는 모습은 여느 남자들의 그것과 같다. 여성들이라고 집 정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난 그 시선이 좋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는 순수함과 버스와 여자는 잡는 게 아니란 할머니의 말은 그렇게 삶을 관통하는 각각의 진실이다.

소름은 미스터리물.

수취인 불명은 김기덕스런 시나리오. 미군기지 옆의 평택에서 벌어지는 혼혈과 총을 갖고 놀다 애꾸가 된 은옥, 개 백정인 개눈, 제임스의 등장까지, 이 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어주는 끔찍한 영화다. 나는 가방끈 긴 인간들의 눈보다 가방끈 짧은 김기덕의 시선이 열라 좋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한때 음악에 빠졌던 청춘들이 나이트 밴드로 겨우 입에 풀칠하는 궁상맞은 삶들이 펼쳐진다. 그 중에 인희랑 이름의 여인과 성우의 애틋한 사랑은 친구에 나오는 레인보우를 떠올리게 한다.

킬러들의 수다... 이 글, 꽤 재밌다. 정말 수다스런 킬러들. 이런 글을 애들이 읽으면 정말 킬러란 직업 재밌고 세상에 죽일놈 많은데 꼭 필요하고, 돈도 많이 번다고 착각할는지도 모르겠다.

파이란은 양아치 강재를 위장결혼한 파이란을 통해 인간으로 만든다는 영화다. 파이란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것일까...

상상력이 필요한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시대에 덜떨어진 희곡보다는 시나리오를 읽히는 일이 훨씬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 이번 겨울 방학은 시나리오에 중독돼서 다른 빌려다 놓은 책을 못 읽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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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강풀 순정만화 5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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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겨울은 수영이를 만나고 싶은 서른 살 짜리 아저씨 마음이 되어 매주 두 번의 업데이트되는 날을 기다리곤 했다.

강풀의 순정 만화를 읽고 있으면, 세상의 아무 것도 중요한 일이 없어지는 그런 사랑의 마법을 실감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우리가 매일 벌이고 다니는 현상에 알아채는 통찰력을 부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마치 수영이가 사준 목도리를 매고 있는 숙이를 발견하곤, '어, 같은 거네?'하고 알아채듯이.

번지 점프...란 영화에서 남자애가 마법이라면서 새끼손가락 펴고 물건 쥐는 습관을 가르쳐 주고는 그 동작이 통찰되는 과정처럼...

세상은 여기 나오는 띠동갑들의 사랑이야기처럼 수월하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고 있다.

인생의 진실은 오히려 숙이와 하경의 이야기나 붕어빵과 목도리의 이야기처럼 얽혀 있기 쉽다.

그렇지만, 얼키고 설킨 삶에도 겨울은 가고, 봄은 오는 것. 그래서 벚꽃잎이 꽃비가 되어 흩날리는 마음을 느끼면 따스한 캔커피의 온기가 되살아 나기도 하는 것이다.

아내와 아들 녀석은 동반 감기에 걸려서 콜콜 자고 있는데, 혼자서 순정 만화를 보다가 두어 번 울었다.
십사 년 전에, 이맘 때였을 것이다. 애기가 감기가 걸려서 코에 딱지가 가득 붙어 입으로 색색거리며 숨쉬는데 그게 애처로와서 같이 누웠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른 적이 있었다.

이제 아들 녀석을 나만큼 쑥 자라버렸지만, 열여덟 수영이의 발그레한 볼을 보는 내 마음은 아직도 소년이었다.

강풀의 만화는 역시 인터넷으로 봐야 제격이다.
이런 따스한 이야기를 돈을 12,000원이나 내고, 그것도 두 권을 보려면 그 곱으로 돈을 내고 이 만화를 본다는 건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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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의 속살 -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시인 50인이 보여주는 풍경들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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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속살거리는 모국어들을 마냥 부려쓰고 싶어하는 시인들의 시를 좋아하는 고종석의 편견이 가득한 책.

한국일보에 실은 글이라는데, 상당히 어렵다. 한국일보를 읽는 사람들은 죄다 문학가인 것인지...

고종석은 한 마디로 자유주의자다.

민족을 앞세우거나, 패거리 문화를 들썩거리는 걸 몹시도 싫어한다.

그리고 고종석은 개인주의자다.

민중문화 같은 걸 증오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신동엽이나 김수영, 고은 같은 사람들을 쓸 때 항상 비판의 칼날을 벼려서 꼬나 보지만, 그래서 아예 박노해 따위는 관심도 없지만... 모국어의 속살을 들여다보려는 시인이 왜 김선우같은 사람의 시는 또 말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뇌구조 분석을 하려 든다면...

고종석의 뇌 안에는 '레드 콤플렉스'라는 커다란 덩어리가 대뇌 피질을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양이나 부르주아들의 취향에 경도되어있는 덩어리가 하나씩 레드콤플렉스 좌우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고.

시를 쓰기도 어렵지만, 시를 읽어내기도 어렵다.

물론 고종석을 통해서 새로이 만난 좋은 시인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고종석을 싫어하기로 완전히 마음먹었다.

시를 통해 우리말의 속살을 들여다 보기에는 그의 편견이 너무도 그악스러운 수구꼴통들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에 말이다.

그렇지만, 그의 책에서 주워모은 몇 조각의 비늘들을 부정할 순 없다.

연탄 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 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 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 반성 100 전문/ 김영승

슬픔보다다 노여움보다도 먼저 지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네 그리움이다. - 그대가 나를 문문히 보는구나. 이성부

세컨드는, 이번, 이 아니라 늘 다음, 인/ 언제나 나중, 인 홍길동 같은 서자, 인 변방, 인/ 부적합, 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 나는야 세컨드 1, 김경미

백석이 북쪽에 남음으로써, 한국사는 '정치적으로도 올발랐던 미당'을 가질 기회를 잃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푸른 밤, 나희덕

화자들은 왜 아플까?... 화자의 (영혼의) 살갗에 통점이 너무 많아서... 이게 제일 그럴 듯하다.
왜 고통이 몸 밖으로 나가면/ 한낱 고물 집하장이 되어버리는 걸까? -김혜순

인간의 몸은 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겨우겨우 견뎌내거나 버텨낸다. 슬프게도. - 이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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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파울로 프레이리 외 지음, 프락시스 옮김 / 아침이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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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원 제목은 ‘We make the road by walking.’이었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정도면 멋진 제목이다.

미국의 지역학교 활동가 <호튼>과 브라질의 교육학자 <프레이리>의 교육과 사회 변화를 위한 대화는 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나에게 큰 깨우침과 부끄러움을 한꺼번에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프레이리와 호튼은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통점을 갖는다. 그래서 이런 대화를 펼치게 된 것이다. 프레이리는 글에서나 대화에서나 호튼에 비해 이론적이지만, 호튼은 일화 중심의 소박한 편이고, 프레이리가 대학의 연구와 정부 관료로서 프로그램 운영을 한 반면, 호튼은 철저하게 지역학교에서만 활동했다. 프레이리는 정치적 영향으로 여러 나라를 떠도는 반면 호튼은 미국의 남부지방에서 뿌리박고 살고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지식은 사회적 경험으로부터 성장하며 사회적 경험을 반영한다’는 의식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출생지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국가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즉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공통점이 많은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 공통점은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들의 세력화를 위한 참여교육의 역사와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란 결과를 낳게 된다.

옮긴이 praxis는 비판적 교육학을 공부하는 모임이다. 프락시스는 ‘실천’을 일컫는 말인데, 이름에 걸맞게 실천적인 프레이리의 대화를 멋지게 번역해 내고 있다.

그들의 대화에서 얻은 한 가지만 말하라면 이것을 들 수 있다. 평생 학교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결코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는 없다. 네가 얻고자 하는 답은 바로 삶의 현장, 사람들 속에 있는 것.(315) 공부란 어디에서도 답을 얻을 수 없지만, 무엇에서든 답을 얻을 수도 있다. 솥을 아홉 번 옮기고 도가 튼 구정 선사 이야기처럼...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서 진리를 배울 수 있다. 학교가 그 유일한 기관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대화에서 학교란 진리를 외면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되고 만다.

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노라면, 독서에 관한 이야기, 학교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자유분방하게 실려 있다.

독서는 책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그 텍스트를 다시 쓰는 일. 이는 창조적이며 동시에 미적인 활동. 책을 읽는 행위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프, 46)

선생님들의 바보 같은 질문 때문에 바보가 되기보다는 혼자 책읽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는 일.(호, 47)

글쓰기와 책읽기의 의미를 학생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은 쉽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일이다. 독서 역시 하나의 연구라는 것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생들에게 이 창조의 순간을 맛볼 수 있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공부는 사랑과 비슷... 사랑에 시간표는 있을 수 없다... 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비극적인 병 중 하나는 마음의 관료화.(프, 58)

그리고 그들이 평생을 바쳤던 교육 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은 앞으로 살아갈 나의 앞길을 가늠하는 데 등댓불을 비쳐 준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실천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채찍질하지 않으면 말은 자꾸 두려워하게 마련이니까...

헌신하면 가능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호, 77)

처음 가졌던 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꿈이 새로운 꿈이나 비전으로 확장되는 것.(프, 80)

교사는 가르쳐야 하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83) 훌륭한 교사란 늘 놀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나쁜 일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없어지는 것.(91)

그렇다. 변화를 인생의 목표로 삼았더라도, 헌신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비전은 바뀌며, 훌륭한 교사의 섬세한 촉수를 내려서는 안 된다.

대담하게 행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급진적인 도전이 있어야... 도전할 만한 것이 눈에 보이고, 자신들을 위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서고, 목표를 향해 가야 할 길을 볼 수 있다면 민중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변화가 국가 단위에서 일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작은 희망과 모험의 보따리를 움켜쥐고 일을 하고 있는 것. (호, 123)

정치적 결단이 개입된 교육은 결코 자발성을 이끌어 낼 수 없다.(프 124)

교육이 보편적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메리, 피터, 존과 같은 구체적인 존재. 교육자는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교육자는 정치적으로 명확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프, 132)

중립성에 대한 이야기는 하워드 진 교수의 의견처럼, 중립이란 하나의 정치 수사라는 것을 명백히 한다.

중립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중립성은 현체제에 찬동한다는 것을 감추는 교묘한 말, 중립성은 비도덕적인 행동.(호, 134) 사람들이 체제 안에 있다면 체제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일보다는 사회 변혁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136)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사이에서도 중립적이란 말이 통할까? 절대 불가능하다. 이런 관계에서의 중립성이란 지배집단을 위한 봉사를 의미할 뿐. “나는 지배집단 편이오”라는 말 대신에 “나는 중립적이오.”라고 말하는 것.(프, 136)

스스로를 중립적이라고 우기면서 우리더러 중립적이지 않으니까 선동가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중립적이지 않다. 자신들이 현상 유지의 지지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호, 235) 스스로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데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프)

그리고 지도자의 품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꿈을 번역해 내는 지도자. 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지도자. 아, 체 게바라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도자에게는 겸손이 중요하다. 만약 지도자가 민중들의 기대에 부응해 카리스마를 갖게 되었다면, 그 지도자는 민중의 열정과 꿈을 번역해 내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 꿈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프, 145)

교육은 인간의 존재와 호기심과 관련된 영속적인 과정(154)

호튼 선생님의 교육자의 개입 방법은, ‘해법을 제시하지 마라.’와 ‘정직하라’이다. 첫번째는 ‘나는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답을 알고 있더라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해답을 말하게 되면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답을 말해주어야 하기 때문.’(163)

전문가의 지식을 이용하는 것과 그 전문가가 사람들이 해야할 일을 직접 말해 주는 것은 다르다.(167)

호튼의 하이랜더에서는 늘 두 가지를 따라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완전한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176)

교육자라면 단지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기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강요할 권리가 없다고 해서, 침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개입할 의무가 있는 것.(프, 178) 전통은 좋은 것을 선별해서 지켜야 하는 것.

때리지 않는 것... 자신이 잔인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잔인한 사람... 신체적 학대에 대한 사고 방식의 반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야...(호, 181)

스스로 교육과정을 조직하고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일은 그만큼 사람들을 성장시킨다. 자신이 기대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그만큼 더욱 요원해진다.(프, 188)

질문은 사람들의 생각을 돕는다. 잘 따라와준다면 질문을 통해 상황을 진전시킬 수도 있고 생각을 전달할 수도 있다. 성장하도록 도우면서도 의존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질문은 생각을 전달하는 데 정말 좋은 방법.(호, 190) 어떤 권위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했기에 자신의 생각이 되는 과정.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과정. 말을 목마르게 해서 스스로 물을 마시게 하는 것.

교사는 자신만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발들을 위해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임무. 교사가 제대로 하지 않고 서툴고 무능하다면, 그래서 아이들의 지적 능력을 계발하지 못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면 <교사의 권위>를 손상시킨다. 또 교사의 권위와 아이들의 자유를 조화시키는 문제도 있다. 교사라면 학생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237)

이런 교육적인 테제들을 읽고 있노라면 나의 과거는 언제나 어두운 쪽, 가진자들의 쪽, 민중의 반대쪽에서 억압의 기제에 동참하는 인간으로서의 교사 역할이었다는 자격지심이 가득해 진다.

박사도 모르는 게 있는 법. 나도 풀 이름, 생선 이름 모른다. 어떤 도회인이 산에서 길을 잃고 아이에게 길을 물었더니 계속 모른단다. ‘넌 정말 아는 게 없구나.’라고 했더니, ‘그래도 저는 길을 잃진 않아요.’ 하더란다.

노동자이건 대학생이건 학생 입장이 되면 스스로 지배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프, 204) 그들 자신이 답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호) 학생들은 교사는 권위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프)

교육자가 어디에서 활동하든 가장 어려운 일은 교육이 진지하고 엄격하며 체계적인 하나의 일관된 과정 속에서 행복과 기쁨을 만들어 내는 일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은 위대한 모험. 행복과 기쁨.(프호, 217)

공부는 자유로운 일이 아니어서 어렵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도 아니다. 공부는 엄격하고 무미건조하고 고된 일, 그러나 고됨 속에서도 행복이 솟아오른다. 어느 순간 공부의 성과 때문에 생복해 지는데 이는 진지함과 엄격함으로부터 나온 것(프, 218) 좋은 학교는 공부를 하면서도 놀이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곳.

교육자로서의 확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차별하지 앟는 것이 중요. 비전을 가지고,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들에게는 더 큰 어려움이 될 뿐.(프, 240)

프레이리의 ‘비판적 낙관주의자’란 말이 맘에 들어 온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신념이 들리는 듯한 말이 아닌가. 비판적 낙관주의자.

호튼은 평생을 걸어온 길을 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룬 것이 크지만, 아직도 그들이 갈 길은 요원함을 안다. 그렇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낙관한다. 강철같은 의지로...

(호튼, 270) 하룻밤 사이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할 가치도 없는 일. 어려운 일일수록 시간이 걸리낟. 그 일을 부여잡고 오랫동안 씨름해야 이룰 수 있다. (프, 273) 학교 체제가 변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천하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자유에 대한 신념을 갖기 위해서는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 없이 자유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른 한편, 자유가 필요없을 때까지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유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또한 자유를 얻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274)

혁명은 토지소유 관계, 선거 제도 등 혁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은 바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학교는 저절로 바뀌지 않았다. 사회변화는 역사적인 것이지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276)

진보적이라 함은 중요한 결단을 내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혁명을 지켜나가는 일.
민중들과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
민중의 다양한 신념들을 존중하는 것.
민중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
민중의 언어에서 출발하는 것.
민중이 가진 지식의 주순을 인식하는 일.

이것이 바로 혁명의 과정(프, 280)

당신은 종교인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저는 종교인이 아니라 신앙인이에요. 제게는 이 상태가 정말 편합니다.(프, 303)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사고가 특정한 것에 붙잡혀 갇혀버리면 안 된다. 굳어버리면 안 된다.

나도 배웠다. 나도 종교인은 아니지만 신앙인이라고 하리라.

노자,

민중에게 가서 민중에게 배우라.
민중과 함께 살고, 민중을 사랑하라.

민중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고
민중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라.
그러나 최고의 지도자는

모든 일이 끝나고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 힘으로 이 일을 해냈다.’고
민중 스스로 말하게 할 수 있는 자일지니...

민중 교육의 깃발이 오른 것도 어언 이십 년이 지났다. 전교조는 이제 학교에서 우뚝 서 있지만 아직도 색깔 공세에 밀리고 있으며 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의 민중 교육을 위한 발걸음도 우리가 걸어감으로써 길을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인터넷에서 노무현을 싸잡아 욕하고, 전교조를 비난하고, 386 세대를 비웃더라도, 그들이 이룬 역사의 진보는 한국 사회에서 명확한 발전의 발걸음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20년 전에 비운의 운명을 마감한 박종철 학형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보의 발걸음에 부끄럽지 않도록 손을 모으고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

오랜만에 밑줄을 그으면서 노트를 하면서 책을 읽었다. 미국 민중사처럼 비참한 장면들이 많지 않고 희망을 노래하는 글들을 읽는 일은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새해 벽두, 선생님들께 권하고픈 반가운 책을 만나 고맙고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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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10 -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10
이현세 그림, 유경원. 권민정 글, 한국역사연구회 감수 / 녹색지팡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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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권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광복을 다루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피폐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데 실패하고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드라마나 만화는 항상 '구체적인 인물'을 창조하여 진실성을 담아내야 하는데, 마지막권에서는 욕심이 앞서 창의성이 좀 처진 것 아닌가 싶다.

엄지가 증조부를 만나려 하는 것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한국의 식민지 시대 이후로는 역사 자체가 <반쪽 역사>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지지 않나 싶다.

마지막 부분에서 국민들의 선호도를 조사한 표에서 그 신뢰도를 따지기 어렵지만도, 여운형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한 것을 실은 것은 참으로 보기 드문 책이 아닐까 한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국가가 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랄까? 그 아래 김구와 이승만을 찍은 사진은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흑백사진으로 보인다. 군무장관의 적임자로 김일성을 든 데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의 실상을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료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도 들려 주지 않는다. 다만 그 사료를 해석하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른 이야기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 완성된 한국사 바로보기의 열 권이 고전이 되어 자라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한국 현대사 바로보기> 열 권의 그 비참하고도 피비린내 나는 새로운 역사서를 기대한다.

역사서는 백지였다.

원래 역사서에 기록된 것은 없었다.
사람의 삶의 자취가 하나하나 기록되던 것이 역사서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힘겹게나마 가르치고 있는 책.

아이들이 보기에 참으로 좋은 책을 만났다. 초등 고학년 이상은 반드시 읽힐 책. 학급 문고로도 중고생용으로도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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