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배꼽 아이세움 배움터 6
과학아이 지음, 이샛별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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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참 잘 붙였다. 과학의 역사보다는 과학의 배꼽이 훨씬 낫고, 이 책은 사적인 통찰보다는 과학의 <발생>내지는 <근원>에서 활동한 과학자들의 이야기기 때문에 <배꼽>이 적절한 표현인 듯 하다.

간혹 과학자들 중에도 인문학적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태생인 포유류의 공통점인 '배꼽'의 기능은 무엇일까?

배꼽에서는 수십 년이 지나도, 꼽꼽한 곱창 냄새가 난다.
이 냄새는 모태에서 영양분이 흘러오던 길이 아직도 막혀있지 않다는 증거다.
그리고, 배꼽은 생명체의 중앙에서 생명체에 흐르는 모든 정기의 중심을 이루는 위치에 자리한다.
그래서 배꼽없는 생명체란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목구멍에 구멍을 뚫어 영양분을 공급하는 처절한 장면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반면, 물속에 가라앉아 느릿느릿 36도의 양수를 즐기며 눈을 지그시 감고 배꼽으로 숨쉬고 배꼽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는 아가의 모습은 철학자의 그것같지 않을까?

과학의 배꼽에서 활동했던 탈레스, 피타고라스, 아낙사고라스 등등의 인물들은 과학자도 철학자도 아닌, 모든 지식에 대한 갈증으로 목말라했던 이들이다.

후손인 우리가 그들을 보니 과학도 같고 철학도 같고 문학도 같은 거지, 그 사람들은 과학이라고 할 것도 전혀 없었던 거다.

초등 고학년 정도라면, 중고등학교에서 배울 과학의 전단계로써 이런 책 한두 권쯤 읽어둠직도 하다.
공부란 것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사실은 인간의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란 사실을 생각하게 하는 것도 중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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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1-23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과학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던데.. 그냥 호기심요^^;; 요즘은 전지로 불을 켜는것 하고픈가봐요^^ 집에 돌아다니는 건저지란 건전지 모으고 있어요^^ 이미 다쓴것도요.. 나중에 조그만한 전구도 사다 주어야겠어요...^^

글샘 2007-01-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구점에 가면 꼬마전구랑 스위치 세트 팔아요. 하나 사다 줘 보세요. ^^

향기로운 2007-01-2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몰랐어요^^;; 과학도구는 어딘가에서 따로 팔겠거니.. 집에서 가깝지 않으면 따로 시간내어라도 다녀와야지 했었는데요..^^ 고맙습니다^^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황대권 지음 / 열림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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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이런 말을 한다. 데모꾼들이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환경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난 그런 사람은 참 속편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쩜 그렇게 사고가 단순명쾌할 수 있을까?
아마 그 사람의 두뇌는 직선으로 생겼을 것이다. 나처럼 오골쪼골한 꼬불랑 곡선이 아니라...

곰곰 살펴 보면, 환경은 자연의 다른 말이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이미 환경을 파괴할 능력이 생기기 전에도 있었던 것 같다. 물질에 대한 과학의 발전으로 오존층에 구멍이 생겼느니, 빙산이 녹아서 바다가 몇 센티미터 상승했다느니 하지만,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분이지, 인간과 자연이 별개가 아니었지 않은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명제처럼 유명한 것도 없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어서 자연에서 얼마나 멀어진 것인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씨는 환경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데모꾼들이 환경에 관심을 둔 예가 되려나?

땅에다 발을 붙이고 사는 일은 행복할 것 같다. 엊그제 타샤 할머니를 보면서 맨발로 흙을 밟고 다니는 것이 참 부러웠다. 많은 날들을 질척거리는 진흙탕에서 생활할 수도 있지만, 맨발로 폭신한 흙을 밟는 일은 아름답지 않은가? 따가운 모래 사장에서 꼬물거리는 세모래가 파도에 쓸려 발가락 사이를 간지르는 느낌은 온 몸의 감각을 살아나 소리치게 하지 않는가 말이다. 유행성 출혈열을 조심하라고 하지만, 좀 널찍한 잔디밭에 가면 비스듬히 앉아 손바닥으로 이마에 챙을 대고 폼잡고 먼 곳을 응시하는 기분도 상쾌하고 말이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지구에 콘크리트를 뒤덮고, 그 위로만 다니는 삶은 질컥거리는 진흙을 밟진 않지만 또 향긋한 풀향기의 매혹을 잊고 사는 일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만나는 아침 이슬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 일이던가. 그렇지만, 막히는 도로에서 하느님과 만나는 일은 정말 도로아미타불이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삶을 살 시간이 없었다...는 말은 오쇼 라즈니쉬의 말이다. 맞다. 바쁘다는 핑계로 얼마나 본질에서 멀어져 말단을 긁적거리며 살고 있는지...

살다 보면
삶이 뜻대로 되지 않고
앞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머리를 쥐어짜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처음 그 자리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흙탕물을 맑은 유리잔에 한잔 가득 담아서
책상위에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전깃불을 모두 끄고
촛불을 하나 켭니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말은, '나 자신'을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일이다.
결국 '영성 靈性'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를 아무 데도 얽매이게 하지 않고, 순수하고 허탄하게 마음을 일으키는 일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아무 것에도 상을 내지 말 것.
흐르는 물이 여울에서 얽매이지 않듯이,
푸른 산이 녹음을 찐득거리게 잡고 있지 않듯이...

이 책의 마지막 구절,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우친 바대로 사는 것>에 동감이다.

인간이 직선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는 칼럼과, 인간이 만든 인조적 잔디밭의 폐해에 대한 글은 아이들에게도 읽힘직한 글들이다. 이 책의 글들은 짧으면서도 진한 원액이 담긴 허브차같은 깨달음의 순간을 날라다 준다는 점에서 활용할 점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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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1-1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우친 바대로 사는 것"이란 말이 우리 대중에게 가지는 의미는 큰 듯 합니다. 절반은 동감입니다.
하지만 바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일종의 도덕적 의무로서 또는 양심으로서 가지는 책임감이라면 연약한 뿌리를 가진 것이 됩니다.
그래서 큰스님들의 말에 그 뿌리없음을 깨우치면 말 그대로 뿌리없는 곳에 뿌리를 두므로 큰 태풍에도 뿌리뽑힐 일이 없을 것이고 아는대로 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선생님이나 저의 책읽기의 여정이 결국은 하나에서 만날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월요일 뵙겠습니다. 시간과 장소 메세지보내주실꺼죠?

글샘 2007-01-20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그래서 윤리적 교육보다는
물질에 앞서는 '영성'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큰 태풍에도 뿌리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처럼 말이지요...
저는 워낙 책읽기가 좌충우돌 중구난방 되는대로 뵈는대로여서 저랑 만나려면 꽤나 기다리셔야 할 걸요? 그래도 달팽이님은 워낙 인내심이 많으셔서... ㅎㅎㅎ

드팀전 2007-01-2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모꾼들이 환경에 관심을 갖는 것들도 당연합니다.^^ 비판적 자기성찰이 외연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고 분화해나가는 모습이겠지요.
사회적 자아와 존재론적 자아가 배치되거나 어느 한쪽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이견이 많습니다.인간이 고립되어 있다고 전제하지 않는 한 존재를 '탈정치화' 하는 것은 여러 맹점에 빠질 수 가 있지 않겠습니까? 존재의 탈정치화는 현실의 모순들을 내면의 문제로 환원시키거나 또는 부당함에 맞서는 정치적 공간을 축소시키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결과는 나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대학교 때 친구들과 고민하던 문제들이란 생각이드네요.그 넘들도 못본지 무지하게 오래되었는데..보험하는 친구 외엔 자주 연락도 안되고....하여간 월요일 뵙겠습니다.창원에 다녀와야 하는데 시간 내에 갈 수 있을지.아마 될 겁니다. 창원은 10분 늦게 빠져나오면 도착 시간에서는 3-40분 차이도 나더군요....어차피 다들 지향하는 바가 다른 분들이니까 논쟁을 말고...걍 술이나 한 잔하고 놀지요.^^
즐겁게.그리고 우리는 사진 찍지말지요.^^ 찍어 봐야 다들 아저씨 아줌마들이고 ..계속 신비주의로 가는게 부산의 중년 알라디너들(전 중년 아님)에게는 유리할 듯.^^

글샘 2007-01-20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즐겁게 술이나 한잔 합시다.
중년 알라디너들끼리만 찍을게요. ㅋㅋ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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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에 존 그리샴과 로빈 쿡이 있다. 둘다 스릴러 소설을 쓰는 이들인데, 전자는 법과 관련된 소설을, 후자는 의료와 관련된 소설을 쓴다.

그 둘의 공통점을 찾자면 이렇다.

1. 평범한, 그렇지만 똑똑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은 보통 커플로 이루어지며, 지극히 평범하다.
2. 평범한 그들에게 우연히 검은 그림자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3. 그들은 평범하기 때문에, 그 실마리에 크게 관심갖지 않지만, 그들은 똑똑해서 의심을 갖고 있다.
4. 우연한 기회에 그들은 사건에 본격적으로 연관된다.
5. 실체를 알 수 없는 '악마'는 엄청난 권력, 금력, 폭력, 행정력을 동반하여 평범한 그들을 억압한다.
6.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듯한 '악마'에게 주인공들은 큰 상처를 입고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7. 그러나, 아주 우연한 계기로 '악마'의 본질을 직시하고, 정의의 사도를 만나 악마를 퇴치한다.
8.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하면서 ending...

한학수 PD는 딱 이 주인공이다. 애인은 등장하지 않지만, CP인 최승호와 조연출 김보슬이 커플로 활약한다.
그는 87학번답게 길바닥에서 데모하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을 것이고, 학생회 활동을 했으면 주사파의 영향도 좀 받았던 순박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좀 똑똑해서 언론사 시험에 합격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겠지만, 그저 그런 일에 재미를 붙인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어느 날 제보자가 나타나고... 소설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 소설은 스릴러 소설이고, 추리 소설이어서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염려는 없다. 국민들이 이 소설의 결말을 이미 다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밤을 새워 이 소설 아닌 소설을(소설보다 정말 재미있다.) 읽으면서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다. 그 예감은 이 소설의 속편이 등장할 가능성에 대한 것이란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국가 권력과, 금전력과, 인맥 관계 등은 스릴러 소설이 등장하기 아주 적합한 환경이다. 삶 그 자체가 온통 스릴러다. 운전하는 모든 사람들이 스릴러 속의 인물이고, 붉은 악마로 변할 수 있는 파시스트 애국자의 피로 들끓는 나라다.

황우석이 연구는 안 하고 빨간 넥타이에 번드레한 헤어 스탈로 꼴깝을 떨 적에, 언론들은 왜 그가 사기꾼임을 몰랐을까? 매판 언론은 돈냄새만 맡을 뿐, 구린내에는 선택적 코막힘이라도 걸리는 걸까?

나는 황우석이 쌩쑈를 하고 서울대, 엠비씨가 조사를 하고 검찰로 사건이 넘어갈 때, 아니 그 전부터 황우석이란 인물의 쇼맨십에서 그가 진실한 사람도, 과학자의 양심을 걸 사람도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줄기세포로 난치병을 고친다는 그의 말은 황탄하기도 그지없는 상식이었던 것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한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이 IT 강국이었기에 과학자들의 기여로 한피디가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과학도들의 상식적인 문제 제기는 권력을 이기는 들풀이 되었던 것이다. 감자캐는 익명의 제보자, 어나니무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이런 이들이 한국의 힘이고 미래다. 황우석들의 권력자는 적이요, 악마일 따름이고.

한국 사회에선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일들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노무현의 청와대도, 황우석도, 조선일보도 반성문 제출하지 않고 쌩까고 있는 현실에서,
황우석이가 다시 연구를 재개하고 있다는 말에, 난치병 환자들이 또다시 상처입을가 두렵다.

아, 자기를 버리고, 공을 버리고, 이름을 버리라는 큰 공부를 하지 않은 자들이 '지식 권력'을 지니게 되면 그 일이 얼마나 재앙으로 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지식 산업 사회에서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비루한 지식 권력의 추악함이 '功'과 '명예'에 가려질 확률이 훨씬 크다는 사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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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s678 2007-01-18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황우석 박사가 연구재개했다는 뉴스추척 보면서 전 "저 사람 할 일이 저거밖에 없을 텐데, 할 수 있으면 연구 시작해야지."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는 걸까요? 명예욕에 휘둘리거나 정치적 권력게임에 끼어들지 않고 황우석이 순수한 학자로 돌아가 준다면 좋겠어요.

글샘 2007-01-1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우석이 진정한 연구자라면, 후배들에게 그짓을 해선 안되는거 아닐까 해요.
계속 없는 핑계 만들어 대면서, 아이들까지 언론 앞에 죽 세우고... 입원하고, 도망가고... 쌩쑈만 했잖아요. 완전 구속수사 감인데... 그 사람이 소, 돼지 등 다루는 손재주 좋다는 건 여럿이 인정하나 보더라구요. 그럼, 소나 잡아야지, 엉뚱하게 사람을 잡는다거나 유전자 조작소를 만들어 놓는다거나 하면 안 되죠. 무엇보다, 과학자가 과학을 거짓말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이현주 지음 / 삼인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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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장자를 읽는다. 이현주 목사의 장자 산책을 옛날 책으로 읽을 때는 좀 짜증났더랬는데(너무 구판이어서) 이번 책은 산뜻하게 예쁘다. 요즘 책들이 쓸데없이 두껍고 종이 질이 좋으며 비싸다는 비판적 기사가 엊그제 난 적도 있지만, 이런 고전들은 좀 두툼한 종이로 만들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고전이니까...

이번 읽기에서는 <장>별로 생각을 모아 가며 읽으려고 노력했다.

1장. 소요유. 소요한다는 말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빈둥거리며 느릿느릿 다닌다는 말이고, '놀 유游'자도 특정한 목적없이 즐기며 마음 편하게 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생 짧은 데 그리 아둥바둥 살 필요 있나, 젊어 노세... 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을 <옳음>에 얽매고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건 아닐세~하는 장자 영감의 눙치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은 '이용 가치'가 아닌 '존재 가치'로 봐야 한다. 교육을 '인적 자원' 관리라고 보는 정부는 나쁜 정부다. 나를 버리고, 공을 버리고 이름을 버려라. 이런 말은 금강경에서도 숱하게 만난 말이 아닌가.
우리의 성모님, 어디에서 죽어가는 당신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 아, 이런 말들이 이아무개 님의 글로 읽는 고전의 맛이다. 무하유의 고향을 말하면서, 피폐해지는 인간 존재를 사랑하는 하나님, 성모님, 하눌님,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는 기쁨. 나는 행복하다.

2장. 양생주. 양생은 말 그대로, 웰빙이다. 그런데, 우린 너무 육체의 웰빙에 얽매인다. 텔레비전에 무슨 비타민 어쩌고 하는 것들은 몽땅 육신의 양생만을 추구한다. 물질의 양생은 결국 웰빙보다는 부유함을 추구하게 된다. 지나쳐도, 결핍되어도 병이 되는 것이 바로 비타민이다. 중도, 중정, 중용을 지키는 것, 그것이 양생이다. 웰빙은 결코 돈이 많아 '잘사는 rich' 경지가 아닌 것이다.
야생의 새는 아무리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도 새장에 갇히려 하지 않는다. 인간도 야생의 새가 되어 '육신의 웰빙', '물질의 웰빙'이란 감옥에 갇히지 말고 먼 하늘을 날아야 할 거다.

3장. 제물론. 온 세상이 잡다구레한 물질로 가득하다. 일 주일도 되기 전에 재활용되지 않는 재활용 쓰레기들은 가득 생산된다. 부끄럽다. 사물을 가지런히 하라... 세상을 가지런히 하라... 그 근본과 가지끝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 물과 자신을 떼어 놓지 않을 수 있으련만...
자기를 잃는 일, 그것을 상아 喪我, 또는 좌망 坐忘이라 한다. 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지. 곧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얽매이지 말고 마음을 내는 것.
근본을 알고 끝을 아는 사람은 '덕'이 뿌리요, '다스림'은 가지 끝임을 안다.
흐르는 물에 있으면서 젖지 않는 달의 경지, 빛을 옴기면서 빛에 물들지 않는 허공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초연한 참여를 읽는다. '物'에 젖지 않는 경지를 만난다. 모든 '물'은 저를 있게 한 <하나>를 모신다. 하나님, 한울님, 예수그리스도...

4. 인간세. 엊그제 한 수학자가 법관을 석궁으로 쏘아 죽이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법관이 대학측의 손을 두 번이나 들어줘서 한 수학자의 생을 망쳐놓았다.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법관을 수학자가 처벌해 버렸다. 마치 일본의 추리소설 줄거리 같다. 인간에게 '지식'과 '이름'은 흉기다.
우리의 교묘한 언술과 몸짓, 그 깊은 곳에 숨어있는 명예와 이익을 향한 탐심,을 백일하에 드러내어 마음을 닦고, 텅 비게 하기 위해 <장자는 유가를 비판>한다.
수학자처럼 석궁을 쏘고 싶은 일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독재자나 살인마, 사소하게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이들에게도 석궁의 욕망은 들끓지 않는가. 그렇지만, 장자는 툭 던지는 말로 마음의 팽팽한 줄을 툭, 끊는다. 물론 석궁은 발사되지 않겠지.
서로 해치고, 당하는 세상을 사는 법 : 거울의 마음, 배웅도 마중도 하지 앟으며, 응하되 간직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물을 이기면서 상하지 않는다. 아상을 버리고, 공명심을 버리라... 무아, 무공, 무명... 결국 마음을 다스시는(심재 心齋) 길. 뜻을 한 곳에 모으고,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감각에 얽매이지 말고 氣로 들어라.
세속을 떠날 것 아니고, 세속 한가운데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삶. 아멘, 소리가 나게 만드는 아무개님의 글. 연못의 더러움에 뿌리내리되, 오히려 아름다운 연못으로 피어야 하는 인간 세상.
사마귀는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호랑이 조련사는 상대에 맞는 수단을 쓰지 못했고, 마부는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다가 망신하고 몸을 버린다. 하, 살기 어렵다. 인간 세상은...
다른 누구에게 "쓸모"가 되려고 안달하지 말고, 하늘이 준 생존의 길을 좇는 참사람이 <신인의 나무>가 되어 오래 견딜 수 있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비정한 세상. 그 신인은 천수를 누려 가늘고 길게 삶을 다하는 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자재한 삶을 논한다. 지리소는 병신이다. 그렇지만 그는 전쟁에 끌려나가 죽지도 않았고, 그의 열 식구를 너끈히 먹여 살렸다. 인간들아, 인간아, 글샘아, 누가 병신이냐?

5. 덕충부. 덕이 가득하면, 덕이 가득 차야 겉으로 드러난다. 덕은 껍데기에 있지 않다.
장자는 <공부>를 감각과 인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세속의 굴레를 벗은 자유인으로 세속 한복판을 당당하고 의연하게 걷는 길을 찾는 것, 으로 본다.
무위당 선생님 꿈을 꾼 이아무개 씨. 곧장 들어가... 문자로는 안 돼... 문자에 빠지지 말어... 마음을 잡어... 마음을 항복시키라고...
못생겼는데, 왜 사람이 끓느냐... 애태타를 바라 보라.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남들을 제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꾀하지 않고, 깎아내리지 않고, 잃지 않고, 사고 팔지 않는 하늘처럼 사는 사람에겐 주변이 끓는다.

6. 대종사. 큰 꼭대기가 되는 스승님. 그를 지인, 신인, 성인이라 한다. 거울처럼, 하늘처럼... 물처럼...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도에 더 가까운 이가 마땅히 스승이어야 하거늘, 나로 하여금 바라건대 자네 뒤를 따르게 하라...(이 책은 가끔 이런 말들과 게송, 싯구들로 가슴을 따스하게 한다.)

7. 응제왕. 제왕에게 응답함. 어떤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인가. 다시 소요유를 반복한다. 무기, 무공, 무명...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공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 그 이름, 하느님 아버지일 따름.
마지막의 혼돈의 죽음은 인간의 '함 爲'이 얼마나 작은지 본다.

장자를 읽는 일은, 장기판에서 움직이는 말을 <훈수두는 눈>으로 보는 일이요,
싸움판에서 흥분한 두 사람에게 <심판>을 서는 일이며,
야단치는 시에미와 당하는 며느리 사이에서 말리는 <시누>의 눈을 갖는 일이다.

얄밉게도 세상에서 조금 비스듬하게 서 있으면서도, 그 자리가 세상 바라보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란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너 죽을래?'하면서 쫓아오며 시비거는 사람에게 아큐정전의 '아큐'는 <정신적 승리법>으로 대응한다.
실컷 밟힌 후에 '난 똥이야, 넌 똥을 밟은 거야. 재수 없게도...'하는.

아큐는 어리석지만, 장자의 이야기도 시비에 맞대응하지 않고, <정신적 승리>를 바라본다.

장자더러 아큐라고 하면, 글쎄, 꿈속에서 나비였더랬는데, 이제 그 나비가 나냐, 아큐냐?하고 웃으려나?

장자같은 남자라면, 이런 허풍쟁이라면, 같이 대폿집에서 푸지게 막걸리 한잔 걸쳐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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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1-1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 자리는 달팽이도 참석하겠습니다.
근데 제가 좀 느려서 늦더라도 기다려주실거죠?ㅎㅎ

글샘 2007-01-17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이 다 올라오셨을 무렵이면, 꽃나무 가지마다 복사꽃 요염하게 피었겠습니다. 하하하
 

지난 주말, 소한 추위가 기승을 부려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 알라디너들은 후끈 달아오른 논쟁을 펼쳤다. 눈이 아파서 다 읽어 보진 않았지만, 스스로 X라고 이름붙인 사람이 정군님을 콕 찍어서 매도한 페이퍼는 좀 낯뜨거웠다. 중복 서평의 문제는 양심의 문제도 아니고, 사소한 제도의 맹점에 대한 논의라고 생각하지만, 그 글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읽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왜 리뷰를 올리는지도...

왜냐 하면, 그 X의 (이렇게 쓰니 똑 욕같지만, 그이의 닉넴이 그거였으니...) 이야기 중에 이렇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뭐, 이런 구절을 읽고는, 리뷰를 올리기 위해 읽는 것인가?하는 의문을 남겼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왜 읽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좋은 계기였다. 기분은 별로 안 좋았지만...

난 책을 읽으면, 더 정확하게 말해서 종이로 된 책갈피를 넘기고 앉아 있으면 행복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둘째로, 나는 아이들 앞에서 쇼를 하는(별로 재미는 없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지식을 나름대로의 양념과 버무려서 보여주고 들려줘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무미건조하게 수업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열심히 읽는다. 그리고 아이들 독후감을 읽으려면, 내가 우선 읽어 둬야 독후감의 평가가 가능하다는 이유도 크다.
셋째로, 책 많이 읽는 내가 좋아졌다. 그래서 부지런히 읽게 된 것 같다. 남들은 건강을 위해 등산도 하고, 헬스도 다니고 한다지만, 나는 내 운명대로 살기로 했다. 다만 살은 좀 빼야겠다. 혈압이 관리를 필요로 하므로.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나, 그래서 글을 읽고 간단한 메모를 남겨 리뷰 개수를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 이 달의 마이리뷰에 뽑혀 5만원의 적립금을 받기도 했고(이적지 3번 받았다.2003년,04년, 05년에 1번, 작년엔 못 받았다.ㅠㅠ), 달인인지 뭔지가 돼서 10만원의 적립금을 받은 적도 있다. 심심치 않게 '신청합니다'를 복사해 붙인 덕에 일 년에 몇 권 씩은 서평 작성을 위한 도서를 기증받기도 하며, 간혹 적립금을 눌러 보면, 몇십 원씩의 thanks to가 쌓여 있기도 하다.
아, 간혹은 매주 5000원씩 주는 적립금(30명인가 준다던데)도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마이리뷰에 뽑히거나 해서 적립금 받은 것과 혼자 보기 아까운 책(만델라 자서전같은...)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이벤트'를 열어서 책을 선물해 준 적도 몇 번 있었던 것 같다.(나는 낯을 가려서 여러 분들의 서재로 나들이를 잘 다니지 않고 주로 내가 필요한 페이퍼를 남기거나 리뷰를 적는데 그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이벤트에서 선물을 드리는 분들도 평소에 내 리뷰를 잘 읽어 주시는 분들이기도 했다.)

몇 년 전에, 한 달에 열 권 이상의 리뷰를 쓰면 얼만가를 적립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내가 바빠서 도저히 한 달에 열 권을 읽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적립금을 바라고 리뷰를 쓸 수는 없었고, 요즘도 저런 수치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본이 위주인 사회에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 들어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방학이 되면 좀 어려운 철학이나 고전들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평소에는 틈틈이 읽기 좋은 소설이나,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이야기 책(잭 캔필드 같은...)들에서 이야기를 뽑아 복사해 두곤 하는 편이다.

고전이나 역사서같은 책을 읽을 때는 메모를 해 가면서 공부하는 자세로 읽기도 하지만,
보통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서, 또는 침대에 콕 쳐박혀서 책을 읽으며,
학교에서는 독서대에 책을 끼워두고 넘겨가면서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남과 달랐는데, 나를 따라서 독서대를 갖다 두고 책 안 읽는 분들도 많아졌다. ㅋㅋ)

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명제나, 놀이의 동물 같은 이야기들은 인간과 다른 생물을 구분하는 특징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동물은 인간 외에도 많고, 기술이나 놀이를 아는 동물도 많지 않은가.

인간이 가진 가장 독특한 점은 바로 '책읽기'라고 생각한다.
책 읽는 동물은 없지 않은가. 인간 외에... 그리고 책 읽는 행동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은 얼마나 지대한가.
문자와 서적... 인간은 <책읽는 동물>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주변에 책 안 읽는 인간 동물도 많다. ㅋㅋ

리뷰를 올리거나 아니거나, 책을 읽는 일은 이제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간혹 알라딘 사이트가 버벅거릴 때면, 나는 내가 몇 년간 남겨온 글들이 하루 아침에 '찾을 수 없는 문서입니다.'하는 알람으로 화할 수 있음을 생각한다. 내가 남긴 기록들을 스스로 읽으면서 수업에 준비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게 날아간다면 좀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없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일 년에 400권 이상을 읽는 일이 가능한 것은 내가 만화를 읽고 한 권 한 권 리뷰를 쓴 것도 있고(도토리의 집), 1,2권을 나눠서 리뷰를 쓴 소설도 있고(남쪽으로 튀어), 한 권을 읽고 리뷰와 밑줄을 다 올리기도 했기(상뻬의 소설) 때문이겠지만, 여러 권을 읽고 리뷰 한 권만 남긴 적도 물론 많고, 검색되지 않아서 올리지 않은 책들도 간혹 있어서 몇 권이나 읽는지를 수치로 환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특히 문학 수업에는 많은 인생사를 다루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읽고 또 읽는다. 조용한 집에 혼자 앉아 책 읽는 맛도 기가 막히지만,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서(놀토마다 간다.) 서서 낡은 책갈피 내음새를 맡는 재미도 쏠쏠하고, 손가락이 벨 만큼 산뜻한 책들을 서점에서 쪼그리고 앉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답답한 것은 내가 보고 싶은 어린이 책들의 경우 비닐로 포장을 해 둬서 <견본>을 봐야 하는데 그 견본을 몇 번을 가도 못 만나는 경우, 아이 책을 살 수도 없고 참 궁금하고 그렇다.

책 속에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도 진실이지만, 책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도 진실이다.

책 속에 길이 있기도 하지만, 책만 봐서는 결코 길을 찾을 수 없다.

돈오,의 순간을, 진리의 서늘한 손이 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점수의 재미도 그에 못지 않은 것이다. 漸修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마이리뷰의 숫자는 바라보고 있노라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읽은 책의 권수만큼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한 나를 보면 웃기기도 하다.

나는 왜 읽고 쓰는지를 명백히 말할 수는 없다.
읽는 행위에서 재미, 쾌감, 몰입, 감동, 깨달음의 즐거움들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읽는 행간에서 분노, 직시, 정의, 불의, 비열, 좌절, 희망의 쌍곡선을 타고 울렁거리기도 하며,
쓰는 행위에서 커서따라 움직이며 마치 내 생각인 양 기록된 저 점들의 집합이, 결국은 내 생각은 아님을 바라보면 우울하지만, 내가 남긴 기록들을 반추하며 스스로 배울 점이 생기는 지점은 유익하기도 하다.
명백하진 않지만 이런 저런 이유들로 나는 읽고 쓴다.
알라딘에서는 내가 읽은 것들을 같이 읽은 벗들이 있어 교유할 길이 트여있어 좋으며,
간혹 내가 쓴 것들을 읽고 댓글을 남겨 주시는 고마운 벗들이 있어 책읽기의 재미가 배가되기도 한다.

아무튼, 나의 읽기에 알라딘이 '양적으로 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고, 나는 알라딘에 그 점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알라딘 사이트와 알라딘에서 알게된 여러 지인들께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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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01-1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대를 사고 책을 안 읽는 분의 용도는 뭘까요? 얼굴 가리개? 헤헤

잉크냄새 2007-01-1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숫자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네요. 전 뿌듯함을 느낄 숫자는 아니지만 한편한편 쌓여가는게 참 기분이 좋더군요.

프레이야 2007-01-17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따로 담아두지 않아서 어느날 알라딘이 날아가면 제글이 몽땅 한순간에 날아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또 어때요... 뭐 그런 생각이 들어요. ^^

마늘빵 2007-01-1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 리뷰숫자에 허수가 들어있어요. 거의 반은 밑줄긋기거든요. -_- 그거 빼면 쩝... 아직 멀었군요.

드팀전 2007-01-1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쓸 일이 없어서 리뷰를 쓰는데...^^ 첨에 그렇게 시작했던 듯 해요.왜 그런 거 있잖아요.어느 날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창고에 있는 딱딱해진 물감을 찾는 다거나...연주가 하고 싶어서 녹이 슨 기타줄을 매만진다거나..
직장생활 하다보니 실제 글을 쓸일이 거의 없더군요.공문쓰는 거 말고는.
그래도 대학다닐때 교수님이 괜찮게 썻다고 학우들 앞에서 읽어주기도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다른 시간에는 이렇게 쓰면 안된다고 읽어준 경우도 있었음.어찌나 쪽팔리던지..) 직장 다니니까 진짜 글쓸일 없데요.그래서 닦아봐야 녹이 사라지지야 않게지만 부식시키지나 말자는 차원에서 ..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그때는 리뷰상이니 이런게 있는지도 몰랐어요.몇 편쓰다 보니까 아마 <자본주의 역사다시읽기>였나 그책으로 처음 리뷰상을 받았습니다....그리고 몇 년 하다보니 그 리뷰상이란게 정말 잘쓴 경우에다가 마케팅 차원의 형평성도 고려하는 거라는 걸 알게되었죠.어떨 때는 '이건 좀 괜찮게 쓴 거 같은데' 이런거는 아무런 소식 없고 대충 찍찍 거린게 상을 받기도 하고 그러더군요.박민규의 <카스테라>같은 거는 대충 찌찍찌찍했는데..
하여간 저를 찾는 분이 그닥 많지도 않고 많으나 적으나 별로 애정도 안보이고 하니까 탱수투가 얼마나 들어왔는지 ..그래봐야 한달에 담배 반갑 살정도 들어오곤 하니까 별로 관심도 없데요.^^ ...알라딘에 별로 기대하는게 없어서 그런지 알라딘 커뮤니티니 무슨 알라딘 마을이니 하는게 실체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구요.또 알라딘 즐찾을 권력이라 생각하는 것도 -겸손의 표현이었겠지만- 웃겼구요...
제가 혼자 신문보고 했으면 못읽었을 책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즐겁습니다.그리고 몇 몇 궁금한 분들도 생겼다는 것도...

2007-01-17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7-01-17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사건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 속의 치심이 솟구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알라딘이라는 사람들의 마음과 환상이 만들어낸 허구적 공간, 수십년 후에는 아니 수백년 후에는 그 흔적도 없어지고 말 공간이지만...(내가 그렇게 알라딘 무병장수하길 바라나??)
그 속에 나의 마음이 생기고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선생님처럼 그간의 나의 책읽기와 리뷰쓰기를 돌아보는 시간도 되었지요..
아마 이 사건의 시작과 끝을 한 점 분노와 감정의 치우침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또는 사랑의 마음으로 지켜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뒤에 남더군요..
그래도 물거품처럼 일어나는 마음과 또 그처럼 흔적없이 사라지는 마음의 이면에
좋은 벗님들의 마음과 만났다는 것이 제겐 더욱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글샘 2007-01-17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어디 가나 따라쟁이들 있잖아요. ㅋㅋ 독서대에 책 걸쳐 두고 보는 게 샘났나 보죠.
잉크냄새님... 리뷰 숫자가 늘어가는 즐거움... 이것도 알라딘의 공헌이 아닐까 합니다.
배혜경님... 맞아요, 저도 정말 그래요. 뭐, 날라가면 어때? 이런 치기. 속으론 엄청 아쉬울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아쉬울 것도 없기도 하구요.
아프락사스님... 밑줄 긋기와 리뷰를 같이 헤아리는 것은 좀 그렇지요? 헤헤 그렇지만 허수라고 할 것 까지야...
드팀전님... 알라딘 마을의 실체는... 이번에 만두님의 20만 힛 이벤트 같은 걸 보면, 분명 있는 거 같애요. 그 마을 주민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 치곤 좀 따스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쓰고 싶은데, 마땅한 공간이 없을 때, 리뷰나 페이퍼라는 형식으로 글을 쓰기 좋은 공간이 알라딘이란 데 저도 동감입니다.
달팽이님... 맞습니다.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가졌다면, 잃은 것은 없겠지요. 이번에 기분이 나쁘셨을 분들은 실명을 거론당하신 분들의 경우일 거구요. 그리고 중복리뷰는 사실 좀 그렇지 않아요? 알라딘에서 책을 사랑하시는 분들을 많이 알게 되어 정말 기쁘죠. 요번엔, 그분들과 술도 한 잔 할 기회가 되어 더 기쁘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