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망창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 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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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0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1-30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어메이징 허~가 절묘하죠. ㅋㅋ 인간의 맘이란 게 그렇단 말이죠. 제가 보려고 하는 거나 보고, 보기 싫은 건 절대 안 보는... 그런 걸 잘 이용하는 게 권력이란 말이지요. 음...

깍두기 2007-01-3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글샘님이 쓰신 글을 아무 문제 없이 읽고 있는 나......
다 읽고 영어 예문을 읽어보고, 다시 읽고 나서야 글자배열이 틀렸단 걸 알았으니.

글샘 2007-01-3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 예문도 술술 읽히죠? 신기해요...^^
 

망해가는 회사 8개를 인수해 살려낸 경험이 있다.
처음 그 회사를 보았을 때 공통점은 사원들이 편하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나 회사나 너무 편하면 곧 망한다.

- 이종화 레이크우드CC 사장

이건 아주 쉬운 진리다.
그런데, 실천이 정말 어렵다.
혁신, 혁신 하는데, 혁신하기 아주 쉬운 방법,
편한 사람들을 잘라내는 것이다.
아마도, 윗사람들 많이 잘릴 것이다.
내 눈엔 편하게 지내는 사람들 참 많이 보이는데... 왜 혁신하는 사람들 눈엔 안 보이나 모르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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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1-3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의무적으로 하라는 혁신연수 원격으로 듣고 있는데, 리더가 변해야한다는 말이 참 수시로 나오더라구요. ㅎㅎㅎ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벗에게 보낸 편지 참 우리 고전 6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 돌베개 / 200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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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루쉰의 편지에서 오늘을 박지원의 편지까지...
루쉰과 박지원은 좀 비슷한 면도 있는데, 이거 남의 사생활 엿보기에 맛을 들였다.

박지원의 글들을 읽노라면 그 스케일이 장엄함에 깜짝, 놀라게 된다.
국가의 경륜을 한줌 모래알 같이 여겨 비웃던 허생의 그릇의 크기나,
통곡할 만한 자리를 알아볼 줄 아는 시원스런 사람의 면모를 보기 쉽다.

그렇지만 사적인 편지에서, 박지원은 자상하고 따사로운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역시 제목이다.
박지원의 숱한 편지글을 읽고서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를 뽑아낼 줄 아는 탁견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눈엔 '무람없다, 무상무도하다, 장차 어쩌려고 그러느냐?'하는 잔소리가 가장 인상적이다.
큰 스승은 놓치는 것이 없이 자잘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아버지인 하느님께서는 무엇 하나 잊고 깜빡 하시는 일이 없으시다.
박지원의 사람됨이 크고 넉넉하다고 하나, 이런 잔소리에서 그이의 인간성이 오롯이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이 편지들은 안의 현감, 면천 군수를 지낼 때의 글들이다.
자잘한 나랏일로 바쁜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참으로 섬세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박희병 선생의 글인데 왜 한문 풀이가 없을꼬 했더니, 뒷부분에 역시 원문을 붙여 두었다.

이 책의 백미는 역시 해제의 1문단이다.

연암 박지원은 한국 문학사상 굴지의 대문호다. 그는 특히 산문을 잘 썼는데, 글 솜씨가 워낙 빼어나 그의 산문은 마치 잘 빚은 항아리처럼 물샐틈없이 삼엄한 완정미를 보여준다. 연암의 글은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반어적이고, 때로는 통렬하고 풍자적이며, 때로는 몹시 처연하고, 때로는 능청스러우며 심원하고, 때로는 근엄하고, 때로는 예리한 통찰력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하고, 때로는 논리적이고 심오하며, 때로는 몹시 논쟁적이고, 때로는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사람의 글인 양 담담하고 명상적이며, 때로는 깊은 연민이 담겨 있고, 때로는 몹시 슬프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 다양한 면모의 기저부에는 세상 안팎에 대한 놀라운 반성력과 자기 응시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창조적인 형식과 의장 속에 깊은 사상을 담지해 내고 있으며, 사회와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 더 나아가 나라와 인민에 대한 선비로서의 경세적 책임감을 견결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 박희병 선생님을 읽는 일은 그래서 즐겁다. 이런 글을 만날 수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빅지원은 박희병 선생님 손에 와서 비로소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 요즘 우리 사회의 세태는 경박에 경박을 더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세태에 영합하여 일각에서는 연암을 마치 개그맨처럼 만들어 놓고 있기도 하다...(고미숙, 뜨끔하겠다.ㅋ) 연암의 글쓰기에서 그 고심처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고 사려 깊게 음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연암의 조박이나 해타에 대해 환호작약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 듯 하다. ... 적어도 연암의 산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득하기 위해서는 연암 정도의, 혹은 연암과 방불한 사유와 고심, 인문적 교양과 식견을 갖출 필요가 있을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 연암을 말한다는 건,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초등학생(이 말이 좀 심하다면 중고등학생으로 고쳐도 상관없다. - 이런 글은 나나 쓰는 심한 욕설 비슷한건데, 야, 박희병 선생님 화 많이 나셨구나. ㅠㅠ) 이 박사 과정의 대학원생을 평하고 운위하는 꼴이 되기 쉽다. 아무리, 말을 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고, 그래서 제 보고 싶은 대로 보면 그만이라고 강변할지라도, 적어도 학문하는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이건 연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 때, 이 서간집을 만나 번역에 힘을 쓰신 것이다.
박희병 선생을 만나 박지원이 물만난 고기가 되어 거듭 출간되는 일에 혼자서 환호작약하는 경향이 있다. -,.-;;  나야, 뭐 초등학생 수준에서 박사과정 대학원생 평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니... ^^ 그래서 난 더이상 학위에 마음을 두지 않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박희병 선생님께 혼나기 싫어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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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3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박희병 선생의 연암글에 대한 평가가 매력적이네요...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글샘 2007-01-30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편지글은 그저 그렇지요. 편지니까요. 소소하고 사소하고... 오죽하면 고추장 단지...까지. 근데 박희병 선생님이 들입다 까는 사람들, 초등..운운 하면서... 정말 싫습니다. 학문하는 자리에 온갖 퓨전 잡탕을 끌고 들어와서는 재미없는 책을 비싼 값에 제작해 내는 사람들이잖아요.

프레이야 2007-01-30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부터 우선 마음을 끕니다.
스승은 놓치는 것이 없는, 자잘한 사람... 작은 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서
큰것을 바라기 어렵다고 들리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작은 것에 얼마나 충실한가
자문합니다. 연암의 글은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를 읽었습니다. 다시
읽어보고 싶고, 이 책도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

글샘 2007-01-30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업 시간에 문제집에 나온 글을 가르치다가 간혹 박지원의 글을 수십 번 읽는 일이 있는데요, 읽을수록 오묘한 맛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박지원을 전면적으로 읽으려 해도 역시 어려워요. 정민 선생님이나 박희병 선생님같은 전문가들의 책을 읽으면 가깝게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이 책은 참 다정다감한 박지원을 느낄 수 있어 좋아요.^^
 
루쉰의 편지
루쉰 외 지음, 리우푸친 엮음, 임지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루쉰의 편지글에서 느껴지는 그의 인품이나 정치적 소견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지만, 사실 이 책은 루쉰이 그의 제자이자 아내가 된 쉬광핑과 주고 받은 편지들을 옮긴 것이다.

그 앞뒤 상황을 엮어주기 위해 엮은이 리우푸친이 해설을 곁들인다. 리우푸친의 해설에서 남의 연애담을 엿보는 이의 재미있어 죽는 마음이 고대로 드러난다.

루쉰의 글들을 읽으면 엄정한 시대에 꼿꼿하게 대적하는 한 지식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는데, 생각 밖으로 이 편지들에서는 다정다감한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되어 참 반가웠다.

쉬광핑은 그의 수업을 맨 앞자리에서 들을 정도의 열성을 가진 여학생이었는데, 민국 14년(1925년) 3월 11일 루쉰 선생님께... 하는 편지를 보낸다. ... 매주 수요일이면 10시부터 1시까지, 일주일에 거의 한 번 뿐인 선생님의 강의 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맨 앞줄에 앉아서 때로는 당돌하고 거침없는 질문을 즐기던 바로 그 조그마한 학생...이 이 편지를 보냄으로써 두 사람은 뗄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얽히게 된다.

쉬광핑이 학내 문제로 곤란을 겪을 때는 위로의 편지를 보내 주었고, 졸업 후 두 사람이 떨어져 살게 되면서는 편지를 쉽게 주고 받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며 낱낱의 삶의 자투리들을 편지로 전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두 사람의 편지는 연애 편지이면서도 진지한 시국 토론과 사건에 대한 분석이 곁들여져있고, 때로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의논을 편지글 안에 녹여두고 있다.

당시 중국 사회의 부정적 현실을 '중국 사회는 너무 늙어빠진 탓에 사건의 규모가 크건 작건 그 본질은 모두 추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치 검은 물감이 들어있는 항아리레 아무리 깨끗한 물건을 집어넣는다 해도 모두 검게 물들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니 암만 생각해도 개혁이 아니고는 별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59쪽)'라는 말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을 한국으로 치환하는 상상의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한숨만 나왔다.

그러면서 제자에게 '광핑형, 당신이 지나친 열망을 품지 않길 바랍니다. 열망이 지나치면 실망을 가져오는 법이거든요. 하지만 미래는 분명 나아질 거라는 희망만은 저버리지 않도록 합시다...(98)'라고 하여 희망을 주려고 한다. 이런 것이 사랑의 힘이 아닐까? 부끄러운 선생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그렇지만 때론 사회를 위한 희생에 절망적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 '군중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면 군중은 제사가 끝난 후에 그의 살점을 산산조각 내어 뜯어 먹는다...(126)'는 말은 사회 운동의 허망함과 의지가 강해야 함을 되새기게 한다. 지식인들의 운동이 갖는 한계가 그런 것 아닐까? 제 살점을 뜯어먹을 민중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 체 게바라도 살점이 뜯기기 전에 콩고와 볼리비아로 도망쳤는지도 모르겠다.

군중 뿐 아니라, 사회에서 개혁자와 반개혁자의 위상에 대한 그의 분석도 탁월하다. '반 개혁자가 개혁자를 독살하는 것은 예로부터 결코 늦추어진 적이 없고, 그 악랄한 수단 역시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단지 개혁자들만이 환상에 사로잡힌 채 매번 고통을 당했다. 그래서 중국이 개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니 앞으로는 마땅히 태도와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191)'는 의견을 보면 그가 왜 그렇게 민족의 개조를 위하여 힘을 기울였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런 100년 전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독살당했다는 설이 나돌 정도인 정조 임금의 급서와 백범, 몽양, 장준하 선생에 대한 테러에 대해서도 고통스런 연민이 밀려온다. 이 암울한 역사에...

쉬광핑은 연인으로써 루쉰에게 '당신의 단점이라면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지나친 증오심을 갖기 때문에 절대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또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너무 기대가 커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듭니다. 그러다가 기대에 못 미치면 이내 서글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너무 민감하고 열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270)'라는 평가를 내린다.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런 것들이 지식인 운동의 한계를 노정하는 공통점일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하기도 한다.

루쉰이 교직원 친목회에 가서 교장을 칭송하는 아부파에게 비난을 퍼부은 교직원이 곤란해지는 사건을 겪고, 친목회의 무의미함을 회의하는 장면은 많은 교사들이 친목회에 던지는 의문의 눈초리를 떠올리게도 된다. 왜 친목회는 여행을 가고 술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친목이라면 학기초에 직원들이 새로 오면 환영회를 열어 준다든지, 가신 분들을 초청하여 석별의 정을 나누는 모임이라도 좋지 않을까? 하는...

당시 서양 유학파 교수들은 '고등 인간론'에 경도되어 저급한 인간들의 한계에 치를 떨었던 반면, 루쉰은 평민들의 의식을 일깨우려 부단히 노력했다. 어느 시대나 가진 자들과 지식인들은 '중립'을 내세우면서 민중에게 <자기를 배반하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던 반면, 문제 제기 교육을 외치는 개혁가들은 민중을 깨우치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은 단지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비록 가난하지만 자녀들은 총명하고 지혜롭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고군분투하기로 결심만 한다면 분명 성공할 수 있습니다. 분명 여러분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당신들을 노예로 살도록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당신들이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며 살도록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습니다...(341)'는 말은 어느 시대에도 패배 의식에 젖게 되는 민중들에게 삶의 비료가 되는 말이었을 것이다.

교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의 편지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고뇌들을 읽는 일은 언제나 새롭고 유의미하다. 특히 이 책에서는 유쾌한 그의 연애 편지 사이에서 건질 수 있는 수확들이어서 유쾌하고도 신선한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역시 난 사람은 연애 편지 조차도 예술이다.

17쪽의 편지 겉봉은 분명 루쉰의 필적으로 쉬광핑에게 보낸 것인데, 쉬광핑이 보낸 겉봉투라고 실수를 저질렀다. 귀엽게 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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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9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1-2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책 자체가 애교로 넘칩니다.^^ 루쉰 선생님이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사랑은 그런 거죠.

달팽이 2007-01-29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시절에 읽었던 루쉰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허나 자신을 시대적 걸음의 디딤돌로 사용했던 마음은 느꼈습니다.

글샘 2007-01-30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루쉰은 결코 읽기 쉬운 작가는 아니죠. 그 유명하다는 아큐정전도 얼마나 비비꼬아서 적어 두었는지... 이 책에서도 루쉰은 자기를 딛고 후배들이 자라는 것을 바라고 있답니다.
 
진실을 담는 시선, 최민식 - 우리시대 마이스터 3
최민식 지음 / 예문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빌릴 때만해도 최민식의 사진집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최민식의 자서전이었다.
실망한 것이 아니라, 잘 됐다는 심사였다. 최민식의 사진을 보고는 꽤나 리얼리즘 작가인데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문이란 출판사에서 우리 시대 마이스터라고 시리즈물을 찍는 모양인데, 그 1권이 배한성이고 2권이 이현세다. 3권으로 최민식의 자서전이 나온 셈인데...

글을 읽어나가면서 차라리 자서전으로 하지 말고 대담 형식으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최민식 이름 말고, 글을 정리해 낸 사람을 명기하든지... 지난 번 유명짜한 아나운서가 정말 읽을 거리도 없는 책을 번역했다고 베스트 셀러에 올렸다가 dog망신을 당한 적이 있던 사건이 떠올랐다.

분명히 이 글은 80세나 되신 최민식 선생이 쓴 글이 아님이 분명한데, 왜 작가가 최민식으로 나오는 것인지... 아무리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그렇고 그런 대필 작가의 손을 거친다손 치더라도 책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고쳐야 할 병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책을 읽으면서 이런 부차적인 생각에 몰두하느라 본문의 내용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자주 범하는 것이 또한 나의 독서법이니 내 병폐도 그들 못잖다.)

막연하게 일본 유학 중, 헌책방에서 우연히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집 <인간 가족>을 본 것이 최민식을 50년간 <휴먼, 인간>에 집착하게 만든 계기였다. 인생이 180도로 뒤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다. 중요한 것은 그 강렬함이 얼마나 진한 농도였는가가 문제일 뿐.

유신시대 반공 이데올로기에 침윤된 시골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렌즈를 부착한 커다란 카메라를 든 그를 간첩으로 오인하여 신고한 일이 백번을 헤아린다 하니 이 나라의 문화 불모지는 애국이 만든 것이다.
반공 방첩으로 애국하자! 하고 학교마다 붉은 글씨로 써붙였던 그 시절엔 독일어로 국가를 뜻하는 Nation 나치를 떠올리게 한다. 그 안면몰수의 인면수심의 세상.
대학 출강 시절에도 작업복을 입고는 수위실에서 쫓겨나기도 했다니 반공의 시대가 물러가고 드디어 물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온몸으로 느끼셨을 것이다.

그가 인물을 클로즈업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인간의 세상에는 언제나 정의가 모자란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흑백 사진 역시 현실을 왜곡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강렬한 채도를 삭제하고 무채색의 세계로 끌어들이며, 실제 이상으로 명도가 두드러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현실이 변형되는 예술의 한 꼴인 것이다. 그렇지만 최민식은 한결같이 '가난하고 못살아서 얼굴 표정에서 삶의 진실이 뚝뚝 떨어지는 휴먼'들의 사진을 찍어 냈다. 외다리 외팔로 부산 일보를 파는 청년의 얼굴은 가난하지만 삶의 의지로 넘치지 않는가. 그의 흔들리는 옷깃과 조금 흔들린 초점은 삶의 고단함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춥고 배고프고 사람만이 희망이고, 사람만이 온기를 피우고, 사람만이 의지의 대상이던, 사람이 곧 세상의 모두였던 시절, 물질적으로 너무 부족하여 오히려 물질에 휘둘리지 않던 휴먼의 시절. 그 시절을 기록하기 위하여 그는 숱하게도 자갈치 시장을 넘나들었지만, 이젠 번듯한 신식 건물 안으로 자갈치란 이름에도 어울리지 않게 변해버린 세태에 그는 인도와 네팔을 찾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돈의 노예일 뿐인지... 브레송이 사진은 '빛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된 순간을 '결정적 순간'이라고 했다는데, 요즘 인터넷 카페들에는 빛도, 구도도, 감정도 없는 푸짐한 먹을 거리들이 사람들의 미각을 돋우며 물신의 강림을 축복하기 위하여 넘치고 넘치고 또 넘쳐날 따름이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사라지고 풍경이나 각종 먹을 거리들이 대치된 삶의 현장, 잊혀져가는 것에는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겠지만, 그 속에 인간이 들어간다는, 주객전도의 역설이 허허롭기만 함을 보여주는 '스스로 서술하지 않은' 자서전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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