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소금인형
앤서니 드 멜로 지음, 문은실 옮김 / 보누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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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오랜만에 봄을 느끼기 위해서 걸어서 출근하다.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지만, 걷는 길가엔 꽃망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고, 못보던 사이 열렬히 자란 새싹들이 푸른 빛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웃으며 새새거리는 등굣길 학생들도 이쁘기만 했지만, 출근 차들이 내뿜는 매연은 반갑지 않았다.

걸어서 다니다 보면 운전할 때 못보는 것들이 많이 보인다. 골목에는 아이들이 왠지 수상하게 서성거리고(아마도 모닝 담배라도 한 대 나눠 피울 듯이), 오늘 아침엔 무슨 책인가를 읽으며 혼자서 크큭 거리고 웃는 아줌마도 보았다.(무슨 책인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너무 혼자 좋아해서 그냥 지나쳤다.) 노년의 부부가 손잡고 어딘가로 가는 모습도 보았다. 개나리는 이미 만개했도, 벚꽃도 화안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늘의 벚꽃 나무도 겨울눈이 이제 거의 터져가고 있었고, 공기는 적당하게 차가웠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대기가 기어이 오전에 봄비를 살풋 뿌려대긴 했지만, 덕택에 우리 학교에서 젤로 예쁜 박태기 나무는 그 붉은 자태를 점점 내비치고 있다. 박태기 환하게 피어난 장면을 벌써 세 번째 보게 된다. 한 번만 더 보면 이 학교도 이별일세.

나는 지금 어디만큼 가고 있는가... 이런 부제를 단 '바다로 간 소금 인형'이란 책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태교, 각국의 민담, 힌두교와 수피즘, 고금의 이야기들을 집단 짬뽕으로 엮고 작가의 의견도 제맘대로 곁들인 퓨전 이야기 책이다.

바다를 처음 본 소금 인형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바다가 말했다. "들어와서 직접 확인해 보려무나."
소금인형은 바닷물을 헤쳐 나가며... 점점 녹아 갈 수록... 마지막 알갱이가 녹는 순간, 소금 인형은 경이감 속에서 외쳤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겠어."

나는 부처고 하느님이고 예수님이다. 나는 모든 것이다. 하하하~ 이렇게 말하면 또 쪼다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주려고만 한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
이것이 시간이다.

무엇이 당신을 가로막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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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3-27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자신에게 주려하지 않으면
또 만들지 않는 것이
시간이다..
난, 쪼다다..ㅎㅎ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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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적 재능이 탁월한 편은 전혀 아니고, 문학적 감수성이 강렬한 쪽은 더더욱 아니고, 소설을 줄창 살펴가면서 읽는 것도 전혀 아니다. 그렇지만,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유명짜한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어낼 수 없어서 읽어야만 하는 필요성이 생겼고, 알라딘에서 비비댄 후로는 이런저런 리뷰들을 읽다가 너무도 맛깔스런 리뷰에 매혹되어 소설을 읽는 일도 흔하게 되었다.

이 소설도 드팀전님의 리뷰를 읽었던 것 같은데(요즘엔 내 기억력을 도통 믿을 수가 없음 ㅋㅋ) 정말 오랜만에 맛깔스런 소설 한 편에 매혹되어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읽고 만 것 같다.

마지막 장까지 넘기다가 아직 한 열 장 남았는데, 거기서 해설이 툭 튀어 나왔을 때의 심사란... 왜 그리 해설이 밉살스러워 보이던지... 아직도 부용각 언저리에 휘감기는 광목 자락의 바람 가득 받은 흰빛을 해설피 쳐다보고 싶었건만...

이현수란 작가의 다른 글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정말 짠한 이야기들을 푸짐한 말의 밭에서 모락모락 피워올린 수작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맛보았던 쫄깃쫄깃한 겨울 꼬막맛과도 같은 말뽄새가 이 작품이 한 권의 장편인데도 대하소설이 아님을 아쉬워하게 하는 맛이 있다. 정말 이 책이 열 권짜리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혼불처럼 열 권은 지겨운 소설도 있건만...

조선의 기생은 무엇이었을까? 기생은 여느 술집 작부와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기생의 세계는 술집 작부의 음淫을 뛰어넘는 락樂이 있었던 것 같다. 낙이불음이라고... 즐기지만 음란하진 않은...

그리고 기생들의 세계에선 춤기생, 소리기생 같은 예인의 전통을 갖추고 있다. 그저 얼굴만 예쁜 꽃기생도 있는 모양이지만, 기생의 원류는 아닐 것이다.

조선 시대는 꽉막힌 유교의 시대였다. 안채와 사랑채는 분리되었고, 아내란 존재는 정지용이 향수에서 노래한 것처럼 쳐다봐도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일꾼 내지는 자식 생산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대부들은 울타리 밖에서 '여성'을 찾았고, 거기엔 대화가 되고 문학적 소양을 갖춘 여성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저 섹스 파트너로 기생이 존재했다면 그들이 굳이 예인의 소양을 갖출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 소설의 뛰어난 점은 여럿이지만, 우선 그 푸짐한 말맛에 있다.

기생은 흥을 먹고 태에 사는 법... 처럼 멋진 말들을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왼갖 비유가 달착지근허니 귀에 앵겨붙는다. 이 작가, 시 써도 꽤 괜찮겠다.

채란의 죽음을 보고 '한 사랑에 목맨 기생이 치러야 할 대가라고 고쳐 생각해 봐도 풀잎에 벤 것처럼 마음이 쓰라린' 사람.이라는 둥

오마담을 안타까이 바라보는 타박네의 말, 삼베와 명주를 모아쥐고 한 시간만 비벼 보아라. 거친 삼베야 아무 상처가 없지만 보드라운 명주는 글세 올이 나가거나 실밥이 터지고 만단다...

사랑은 가루비누랑 똑같은 거다. 거품만 요란했지 오래 쓰도 못 허고, 생각없이 그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마 살 속의 기름기만 쭉 빼묵고 도망가는 것도 글코, 그 물이 담긴 대야를 홱 비아뿌만 뽀그르르 몇 방울의 거품이 올라오다가 금세 꺼져뿌는 기 똑 닮었다... 캬, 가루비누...

요시로는 아고 어른이고 철딱서니가 없어놔서 큰일이라카이. 말세가 따로 있나, 어른없는 시상이 말세지...

행패부린 손님을 보고는, '괜찮다. 왜냐면 나는 기생이니께... 내가 손님에게 멱살이 잡혀 마당에 내동댕이쳐진 것도 잊고, 니가 받고 싶지 않은 손님을 대신 받은 일도 잊어버려라. 넌 그걸 수모로 생각하고 내게 대드는 모양이다만, 그건 수모가 아니야. 기생인 인생이 심심할까봐 덤으로 열리는 이벤트라고 생각하렴.' ㅋㅋ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행패 부리는 학부형에게, 교사 인생 심심할까봐 덤으로 열리는 이벤트라고... 그러고 보니 나도 이벤트 참 많이 겪었네..

그리고 묘사도 돋보인다.

처음에는 목을 씻느라 깔깔하던 소리가 곧 자기 자리를 찾는다. 다른 기생의 청아한 소리가 먼저 소리에 얹힌다. 한번 꺾어올리고 두번 문지르다 떨어지는 두 소리가 하나로 합쳐지고, 소리를 밟고 선 미스 주의 몸이 움찔 곡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다. 싸목싸목 소리를 따라 흐르던 몸이 대청 그늘 속으로 스며들고 흰 한삼 자락의 한 끝이 허공을 베어물면 세로로 면이 갈라지고 손끝으로 쳐서 띄운 다른 자락은 중동에 쏠린 힘으로 바람을 머금어 팽팽하게 펴진다. 면이 모였다가 흩어지면 선이 되고 힘을 주어 후리면 날개를 펼친 새 한마리 후드득 날아 오르는 형상이 된다. 엇나가게 내지른 두 자락의 한삼, 팽팽한 기운으로 잡아당기면 끝면만 탈싹 무너지다 어니새 하나의 꽃이 되어 난분분 떨어진다. 후리고 꽂고 치고 빠지는 손길을 바라보던 미스민의 어깨가 저도 모르게 들썩인다.

바람에 한껏 배를 부풀린 무명이 하늘로 치솟아올르 때 사향내가 코를 덮치고 이어 여자의 굿불이 보였지. 손긑이 저릿한 게 숨이 쉬어지질 않았어. 또다른 무명이 바람에 펄럭 하늘로 솟구칠 땐 쪽을 찐 옆얼굴이 보이더군... 무명 뒤로 여자의 실루엣이 어른어른 비치는데도 볼 수가 없으니 입이 타더군...누가 저 무명들을 확 걷어줬으면 좋겠어... 늘어진 무명천 밑으로 꽃 자수가 놓인 비단 고무신이 왔다갔다하는 게 보였거든...

조정래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찰지고 달콤한 말들을 이현수에게서 얻게 되어 흐뭇하다. 그의 소설을 읽는 기분은 마치 기방으로 가는 한 편의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랄까...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접해도 금세 익숙해지고 마는 환상의 세계를 보여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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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27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찰지고 들쩍지근하게 엉켜드는 말들, 소리내어 읽으면 감칠맛도 나더군요. ^^

글샘 2007-03-27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참 재밌죠? 말도 정말 찰지구요. 리뷰 같은 거 오랜만에 쓰는 거 같네요. 이제 책도 슬슬 읽어얄텐데... 학기초에 감각을 잃어버리니... 그래도 피아노는 열심히 다니고 있답니다.^^ 일주일이 한 두어번 빼먹기도 하지만 ㅎㅎㅎ
 
지리산 흙피리소년 한태주 창작연주집 - 하늘연못
한태주 연주 / 미디어신나라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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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이라는 타이틀로 직접 작곡하고
연주한 오카리나(흙피리) 음반을 처음으로 낸
열여섯살의 풋풋한 소년.

흙피리 연주자인 그는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다.

그를 빼어난 연주자와 작곡가로 키운 것은
혹독한 연습이나 비싼 수강료가 아니라
노는 대로,느낌을 갖는 대로 허락한 자연이었다.
만약 태주가 제도교육에 얽매였다면
그의 소리는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냥 열여섯 소년에 불과했을 것이다.

태주는 최근 '하늘연못'이란 타이틀로
흙피리(일명 오카리나)연주음반을 출시했다.
이 음반에 담긴 10곡은 태주가 지난 2년 동안
숲과 바람,물소리에 취해 만든 창작곡이다.

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 cafe.daum.net/daum1000

요즘 이 카페에서 좋은 음악들을 잘 듣고 있다.

한태주란 열 여섯 살 아이가 배운 적도 없은 오카리나를 연주한다.

과연 학교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봄이 되면 꽃은 자연스레 꽃망울을 영글게 하고, 제 생식기를 활짝 펼칠 줄 알건만...

인간만이 옷으로 부끄럼을 가리고... 분별을 가르치는 교육이야말로 지구를 망치는 원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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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3-2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특별한 명분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학교 다니면서 여러가지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제도권 교육에 대해 회의적이에요.
예전에 한태주 소년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참 부럽더군요. 단순히 자연에 산다는 것보다도 그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게 정말 부러웠어요.

그리고 마지막 줄의 글을 보면서 생각난게... <깨어나십시오>라는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 인도의 어느 지역에 간 선교사 부인들이 사람들에게 옷이라는 걸 입히고 부끄럼이란 개념을 집어넣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구절요...읽으면서 얼마나 공감을 했던지...
많이 흐린 날인데 좋은 음악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요.

글샘 2007-03-2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교육에 대해 회의적이기도 합니다만,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에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는 순간들을 볼 수 있어서 교직은 아름답고 고마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많은 시간 불행하지만, 간혹 행복한 순간들을 마주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곤 하죠. 지식보다는... 즐거운 순간,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들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틱낫한에서 촘스키까지 - 더 실용적이고 창조적인 삶의 전망 61장
존 스페이드.제이 월재스퍼 지음, 원재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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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아주아주 좋아하는 두 사람을 제목으로 붙여 둔 이 책은, 적어도 제목의 상술에선 성공했다. 이 책을 내가 사진 않았어도, 적어도 도서관에 신청해 둘 정도로는 성공했으니...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책의 제목이 저렇단 거지, 원래의 제목은 visionaries다. 비저너리라니...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란 뜻 정도겠지?

이 지구에 아직도 비전이 있을까? 희망이 있을까? 나는 절망하고 있고, 좌절하고 있고, 인간이란 종에 대해서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인종에게 희망은 없다는 쪽이다.

그렇지만... 사과 나무는 한 그루쯤 심고 싶다. 결국 헛된 상상만이 아니라 직접 땅에 무언가를 일구는 일이 희망일 것이다. 오늘도 사과 한 그루 심는 심정으로 살아 가란 뜻으로 이 책을 읽는다.

그렇지만... 심하다. 이건 지극히 미국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득하니 적어 두고는 그 속에서 희망을 찾으라고 하는데... 차라리 지승호의 인터뷰를 읽는 편이 백 배 낫다.(시비돌이님, 고마워 눈물이 나시죠?ㅋㅋ)

작가가 인터뷰한 사람들이 시시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궤적을 읽어내기엔 이야기가 너무 짧아 배울 것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영감의 세계를 더듬어 가며 희망을 찾는 작업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가 지구별에게 끼친 해악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아있는 <희망>에 대한 61편의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되어 점점 좁아지는 지구, 과학 기술이 시장 경제와 합체하여 이룩한 미국이란 거대 군산복합체의 소비주의 경제에 물들어가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인류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들을 더듬는 일은 재미는 없지만 의미는 있다.

시간에 멍든 시간병 환자들. 그들에게 돈 워리, 비 해피를 이야기하는 일은 섣부른 일이기도 하지만, 먹는 일과 노동과 희망은 예술과 엑스터시, 녹색 디자인의 세계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 이런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직 사회주의 당이 없는 미국 땅에서 요원한 손길인 듯도 하지만, 미국에서야말로 적극적인 논의와 의식화가 시작되어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신발 신고 긁어대는 소양격화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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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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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학 시절이 그랬다. 국가라는 괴물이 너무도 혐오스러워 그넘과 싸우다 보면, 어느덧 나 자신이 괴물이 되어버린 가위눌림에서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하는 꿈속같던 시절... 그래서 빨리 졸업하고 안일한 교사 생활을 바랐건만... 왜 내가 발령받자마자 두 달만에 전교조가 생기는 건지...

아직도 학교에서 전교조 교사라는 자리는 승진을 위해 관리자들과 좋게좋게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관리자들과 소닭보듯 또는 때론 갈등하며 지낼 일들이 더 많은 듯 하다. 학교 안의 디아스포라라고나 할는지...

일본 땅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인이 되지 못하고 외국인 취급을 받는 <재일 조선인>들의 이야기들이 요즘 왜 이렇게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서경식의 디아스포라부터 박치기, 우리 학교 같은 영화들... 그리고 오늘 읽은 소설, Go...

땅에 두 발을 단단하게 딛고 설 수 있는 자만이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아버지의 권투 교습은 마치 그렇게 살아오지 못하고 하와이로, 노르웨이로 가버리고 싶다는... 오로지 go, go...하는 막연한 꿈만 존재하는... 그러나 현실의 세계는 아직도 땅을 굳건하게 딛고 서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인 모습을 표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이야기들은 마음 짠하게 하고, 심장 상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하지만... 가네시로 가즈키의 이야기는 가볍다.

그러나, 그의 가벼운 말투는 삶의 무게까지도 가볍게 해 주진 못한다. 눈물 질질 짜던 웃대들의 모습이 싫어서 냉소적으로 그리고 가볍게 생각하려 하겠지만, 결국 그들의 현실은 괴물과 싸우는 괴물의 모습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쿠라이로 형상화된 현대 일본인들과 재일 조선인들 사이엔 상당한 접근도 이루어지고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아직도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부초>로 살아가야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메마른 입 안을 씁쓸하게 만든다. 정지용이 '고향'이란 시에서 그랬듯이... 메마른 입술만 쓰디 쓰다고...

다시 야만의 시대가 한국땅에서 시작되려는지, 국민들의 집회를 경찰(엄밀히 말하면 정부)이 막고 나서겠다고 설친다. 괴물을 대하는 괴물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목전에 도래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 나도 그저 어디론가, 가고 싶다. 야생마처럼 달려서... go, go!!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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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3-25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가볍게 읽히면서도 전혀 가볍지 않은 소설이죠. 가끔 자신이 싸우는 상대와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건 끔직한 경험이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자신에게 보이는게 훨씬 뒤라는게 문제겠죠. 적어도 저의 경우에는요.

드팀전 2007-03-25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재일조선 학교 관련 다큐멘터리가 하나 나왔다더군요.제목이 <우리학교>였던 것 같습니다....아이들과 한 5년 살았다고 하던에...깊이 있는 시각과 애정이 높은 평가를 받는 듯 합니다.영화관에 갈 수 있다면 볼텐데...

몽당연필 2007-03-25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일조선인...제 조카들이 그렇습니다. 아직은 초,중학생인데 조만간 마음의 갈등을 겪겠지요.

글샘 2007-03-25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미 보셨군요.^^ 참 재미있게 쓰긴 했는데 주제가 정말 무거운 거죠. 인간들의 차별에 대한 보고서... 스스로 괴물임을 뒤늦게라도 깨닫게 되는 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드침전님... 작년에 민주 공원에서 할 때 본 적 있는데요, 참 잘 만든 다큐더군요. 그런데 비판적인 시선은 전혀 없던데, 이 소설은 <우리 학교>의 한계도 잘 적고 있는 것 같았어요. 외부인과 내부자의 차이랄까요... 제가 애기 하루 봐 드릴까요? ㅋㅋ
몽당연필님... 아, 그렇군요. <우리 학교>란 다큐를 봤더니 참 갈등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소설에선 더 하구요... 박치기란 영화에서도 재일 조선인들의 갈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석란1 2007-04-03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우리 딸이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들에 푹 빠져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다고 저에게 추천하더군요.

글샘 2007-04-0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란1님도 보세요. 문체가 참 경쾌하고 재미있답니다.^^

turk182s 2007-09-25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교조교사들이 학교내에서 소수인가요? 잘몰라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