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희철)
아 많다 많다 많다 많아
다 이쁜 이쁜 이쁜이다
여보게 저기 저게보여

(신동)
여보 안경 안보여

(강인)
통술집 술통 소주 만병만 주소
다 이신전심이다 뽀뽀뽀
아 좋다좋아 수박이 박수

(희철)
다시 합창합시다

(모두)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이특)
니 가는데는 가니 일요일 스위스
수리수리수 몰랑몰랑몰
아 좋다좋아 수박이 박수
다시 합창합시다

(성민)
어제는 거꾸로 오늘도 거꾸로
모두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어
내일이 와야해 행복의 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가겠지

(모두)
째깍째깍째깍 원투쓰리포파이브식스 고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은혁)
하파타카차자아사바마라다나가

(신동)
십구팔칠육오사삼이일땡

(은혁)
아래서 위로 뒤에서 앞으로

(신동)
모든걸 거꾸로 로꾸거

(신동&은혁)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 남녀노소 짠짠짠
얼씨구 절씨구 빠라빠라빰빰
모든걸 거꾸로 로꾸거

(이특)
나갔다오나 나오다갔나
아들딸이 다컸다 이 딸들아

(성민)
다 같은 별은 별은 같다

(은혁)
자꾸만 꿈만 꾸자

(신동)
장가간 가장 시집간 집시
다 된장국 청국장 된다
아 좋다좋아 수박이 박수
다시 합창합시다

(희철)
어제는 거꾸로 오늘도 거꾸로
모두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어
내일이 와야해 행복의 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가겠지

(모두)
째깍째깍째깍 원투쓰리포파이브식스 고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아 좋다 좋아 수박이 박수
다시 합창합시다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로꾸거 말해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맹이 2007-04-0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퍼갑니다..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 반전과 평화의 미술
박홍규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리뷰를 몇 자 적어 보려고 이 책을 검색하니 사회에서 한 권, 예술에서 한 권이 검색된다.
이 책의 소재는 예술이고, 주제는 사회적인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저자 박홍규는 사건을 중심으로 파고 들기 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파고 들기 좋아하는 사람인 듯 하다.
그가 독특하게 평전 형식의 글을 많이 쓴 것도 그런 성향을 잘 드러낸 것 같아 보인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반전 이미지들에 대한 평가를 내린 것이다. 그 목차는 아래와 같은데...

자크 칼로|전쟁의 비참과 불행
프란시스코 데 고야|나는 보았고, 내 그림은 비명을 지른다
오노레 도미에|권력자에게는 비수 같은 풍자, 가난한 자들에게는 연민과 위로
19세기 반전화|제국주의의 그늘과 치욕
케테 콜비츠|선한 사마리아의 여인, 인류의 어머니
조르주 루오|신앙인이자 고통받는 인간, 화가이자 장인
나치와 반전화|내 조국을 고발한다! 나치와 '퇴폐화가'들
멕시코혁명과 반전화|인류의 양심에 박힌 가시 스페인시민전쟁을 증언한 화가들
제2차세계대전과 반전화|예술을 통한 레지스탕스
20세기 후반 반전과 평화의 미술|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인물들을 중심으로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19세기와 20세기의 각 시대에 비친 반전 작가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는 구성이다.

칼로의 망원 렌즈를 대는 시점과 고야의 줌렌즈를 당기는 시점은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준다.
파시스트 국가같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집단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일은 조국을 사랑하는 자의 의무(25)라고 하는 작가는 알사스 출신의 칼로를 통해 "대부분 독일어를 사용하는 알사스 지방 주민들에게 프랑스어를 강제한 역사의 왜곡"일 따름인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고야의 국가 폭력이란 <거인>에게서 달아나기 바쁜 사람들도 안타깝지만, 전쟁 - 기계로 전락한 얼굴없는 폭력 조직으로서의 국가와 권력에 반대되는 피해자 민중을 클로즈업하는 그림들도 읽어 준다.

3등열차란 그림에서 투박한 손과 거칠고 튼튼한 얼굴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민중의 빈곤을 잘 드러낸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도 인상적이다.

내가 자주 보던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부르주아 승리 찬양에 머묾을 아쉬워한다.

베레시차긴의 <전쟁 예찬>은 해골들의 간단한 삼각구도로 피라미드를 이룬 형태인데 평생을 반전화를 그렸다고 한다. 한국 미술의 반공주의는 다른 장르보다 강해서 친미, 친불적이어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란 저자의 말이 이해가 간다.

어머니 화가 케테 콜비츠나 칼로, 고야 등이 <판화>에 매이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E이 비싸 부자들만이 소유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없던 인쇄 상태가 나쁘던 당시로서는 유화에 비해 판화가 훨씬 유리했던 것이란다. 이 책의 표지화인 '독일 어린이들이 굶고 있다.'는 참전 아들 피터의 죽음을 겪고 그린 그림들이다.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림으로나마 아이들을 억세게 감싸안은 어머니들의 의지를 그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 루오는 굵은 붓선에서 넘쳐나는 감성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중 <올바른 사람은 백단나무처럼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기를 풍긴다>는 말은 인상적이다.

반전화라면 피카소를 뺄 수 없는데, 외면적 감각을 부정하고 내면적 지성을 강조하는 그림들로 유명하다. 게르니카는 너무도 유명하고 <한반도의 학살>은 관념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샤갈의 <전쟁>은 전쟁조차도 평화로워보여 삶과 죽음의 몽환적 표현은 사람들을 위무해 주며,
르네 마그리트의 <기억>은 관통상을 입은 비너스를 그려 전쟁의 충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 전쟁은 각종 보도에서도 소외되었듯 반전 미술에서도 소외된 조용한 아침의 전쟁이었으나,
베트남 전쟁은 각종 매체를 타게 된다. 미라이 학살 그림 위에 And babies?(그럼 아기들은요?) 하는 기자의 질문에 And babies.(아기들도 죽였어요.)하는 군인의 대답이 붙은 그림 한 장은 가슴을 콱 막는다.

핵폭탄이 전쟁 억지력이라는 억지스런 주장은 이제 우습고, 자기들의 수만 발의 핵폭탄은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이라크와 북한의 조그만 움직임은 악의 축이 되는 미친나라 미국의 광기는 전쟁을 전자게임화하여 양심을 잠들게 하고 있다.

반전의 이미지를 읽는 일은 <모든 전쟁은 나쁘다>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다. 미국은 군대를 살인자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주장은 이것이다.

<가장 정당한 전쟁보다 부당한 평화가 훨씬 낫다>는 것.

일본어에서 <양키->라는 외래어가 있다. 가타카나로 쓰는데, 이건 양키 미국인을 뜻하는 게 아니다. 못된 놈, 나쁜 놈, 양아치란 의미로 양키-를 쓴다. 핵폭탄을 맞았으니 그런 용례가 나올 법도 하다. 양키는 고홈이 아니라 지구를 떠나야 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
로테 퀸 지음, 조경수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발칙하다. 통쾌하다. 속이 시원하다... 그러나... 마음은 답답하다. 답이 없어서...

스스로 교사이면서도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면 어떤 담임과 교과 교사를 만나느냐가 1년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 책은 가볍지만은 않은 무게가 실려있다.

교사도 인간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가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는 실수가 여럿 있다.
수업 시간에 잘못된 지식을 전달할 수도 있고, 아이를 오해해서 야단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오류를 저지르거나 늘 아이를 야단치기만 한다면, 교사는 더이상 신뢰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교사는 비판의 대상이다. 그 이유는 너무 많은 오류를 너무 오랫동안 저질러 왔기 때문이다.

수업의 질은 갈수록 떨어진다.
변화하는 입시 제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수능에 없는 교과목도 교사가 있어서 가르치거나 배정해서 자습을 해야 한다. 선택과목을 고를 수는 더더군다나 없다. 아이들이 보충수업을 싫어하는 이유는 보충수업 시간에 와서 열정적으로 수업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는 빈도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학생의 진로를 함께 고민해 주고 모색할 만한 능력과 마인드를 가진 교사도 많이 부족하다. 각종 상담 연수를 받거나 진로에 대한 사례를 공부할 여건도 부족하지만, 선생님을 상담 상대로 생각하는 아이들을 만나기는 가물에 콩나기 아닐까.

열린 교육의 광풍이 한국 교육을 뒤집어 놓은 후에도 한국의 교육 성과는 2003년 PISA(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에서 문제해결력, 읽기, 수학, 과학에서 조사대상국가 41개 국가 중 각각 1,2,3,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수학에 대한 흥미도 동기등 질적 능력에서는 38위의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이 책은 독일이 그 시험에서 20, 21위를 해서 충격을 먹고 있는데 어떤 엄마가 쓴 책이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이런 책 쓸 시간에 열심히 아이들과 문제를 풀고 있을 것이다.

서울시 공무원을 3% 퇴출시킨다고 한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잔인한 일이다.
공무원이 더이상 철밥통이 아닌 시대가 불현듯 오고 말았다. 학교에선 누구를 내 쫓나?
나이 많은 교사? 그가 따스한 인품의 소유자인데도?
인기 없는 교사? 그가 정말 생활 지도에 열과 성을 다하는 생활지도부장일는지 모르는데도?
수업이 안 되는 교사? 그의 지적 능력이 세계 수준일 지도 모르는데도?
비주요과목 교사? 국어 선생보다 훨씬 좋은 체육 선생은 수두룩하다.
불평 분자 교사? 그의 불평들이 귀에 거슬리지만 쓴 약이 될는지 모르는데도?

교사를 줄을 세우고 잘라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버팅길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교육부는 어느 날 교육 공무원을 잘라내야 할 시점에서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세상에 좋은 교사를 내 놓아라! 그것이 교육의 미래다.
정부는 젊은 교사들이 세상에 충분히 많이 나와서 아이들과 호흡할 수 있도록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모든 교사들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야 한다.
복지부동하는 교사를 만드는 것은 그런 제도의 탓이 크다.
남들 월급 많을 때 참고 견뎠더니 돌아오는 것은 욕됨 뿐이란 말은 이제 먹혀들지 않는다.
어느 날 나도 길거리에 나앉은 교사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  그것이 우리 교육의 미래를 여는 일이라면...
뭘 하든 먹고 살 힘은 내게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너무 겁이 많고 변화가 적다.
담임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고, 수업 적게 하고 싶어하는 교사가 너무도 많고, 보충수업에만 용심을 내는 교사들이 너무도 많고, 아이들을 싫어하는 교사가 너무너무도 많고, 수업이 지루한 교사가 너무도 많고, 그저 월급을 타러 학교에 오는 교사들이 너무도 많다.

학교에 20대 선생님이 20%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0대 선생님도 30% 정도 있어야 한다.
40대 선생님은 부장 정도 하면서 2,30대 선생님들과 팀을 잘 맞출 수 있어야 한다.
50대 선생님은 10%로도 충분하다. 지혜를 모아 학교를 잘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40대 교사인데도 우리 학교에서 하위 20%안에 든다. 미칠 노릇이 아닌가?
내가 학년 부장을 한다면... 우리 학년에서 막내 바로 위의 나이 정도 될까?
이곳이 한국 교육의 미래가 없는 지점이다.
20년 전부터 그대로 늙어가고 있는 한국의 교육.
더이상 창의성도 재기 발랄함도 기대할 수 없는 곳.

그러나 오늘도 우리 아이는 학교로 갔고, 나도 수업을 간다.
돌틈에서도 민들레가 피듯이, 옥상의 민들레꽃을 찾을 수 있으려나...

이 좋은 책의 치명적 오류는, 맨 뒤에 덧붙인 몇 사람 한국인 독자의 논점이 완전히 개판인 점에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4-02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몽당연필 2007-04-06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입학한 큰아이 선생님도 나이가 젤루 많으시더군요. 최하 50대...
좀 젊은 선생님을 기대했건만...ㅠㅠ
그나저나 한국인 독자가 뭐라고 덧붙였길래...그 내용이 무척 궁금한데요.

글샘 2007-04-07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학교가 미래를 담기엔, 공적인 기반이 너무도 부실합니다. 한국의 학교는 사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기관으로 이미 변질된 것 같애요. 그래도 아직은 학교에 의지하는 부분이 크니깐 어쩔 수 없기도 하죠. 힘내라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몽당연필님... 초등 1,2학년 담임 교사가 나이가 많으신 것은 좋을 수도 있지만, 수업이 적다는 이유로 선호하는 것은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도입니다. 아, 한국인 독자가 뭐라고 덧붙인 게 문제가 아니라, 독자들의 성향이 보수적인 자들이어서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확하게 적지 못해 죄송합니다.^^
 

대전시내의 어느 만원버스...



막 버스에 올라탄 할머니가
몹시 힘든 표정으로 자리를 찾는다.

할머니 바로 옆 두자리중에
통로쪽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할머니...여기 앉으세요." 하며 자리를 양보하자

그 할머니...
"애구...고마워 젊은이...근데 대학생인가..? "

"예.. "

"어디 다니지? "

"예..충남대요. "

"좋은데 다니네..국립대라지 ?..."

"(머쓱) 예... " ^^;;;

"심성도 착하고 머리도 좋아 ..
공부도 잘했구만.생긴거도 남자답고.."이어 할머니



창가쪽에 앉아 책을 보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학생은 어느 대학다니나 ?..."

"예 ? 저 저요?.... 한국과학기술원이요KAIST....."


그러자 할머니...
"그려...공부 못하면 얼른 기술 배워야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인 2007-03-3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옹 이거 카이스트 일회인가에서 나왔던 대사네요 ^^ㅎ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침 직원회의 시간에 행정실장 왈, 행정실장 모임에서 행정과장과 행정실장의 호칭을 행정실장으로 통일했단다. 그리고 계장으로 부르던 이를 행정과장으로 부르고... 학교도 주임 선생님을 부장 선생님으로 바꾼 것이 제법 되었다. 처음 그 소리를 듣고 내 뇌리를 파팟~~ 스쳤던 생각은 '제길~ 염병하고 있네...' 뭐, 이런 것이었다. 회의가 마치고 다시 든 생각은 그것이 그냥 염병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칭이야 어쨌든 괜찮은 것 같지만, 사실 아다르고 어다른 것이 말 아닌가? 과장은 그저 부서장이란 느낌이 들지만 실장이야 관리자같은 느낌의 포스가 팍팍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영어의 포스는 남을 괴롭힐 수도 있는 힘을 뜻한다. 좋은 의미의 힘은 파워라고 하겠지...

고추장이란 이름을 듣고는 별명 참 희한하네... 하고 말았는데, 추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일리가 있다.
임원진들의 이름은 획일적이다. 무슨 위원장, 회장 이런 거... 요즘은 빠다를 발라서 팀장님...
추장은 상당히 친근하면서도 권위적이지 않은 좋은 이름이다. 그 성씨가 고씨라서 더재미있는 이름이 되었고.

이 책은 <독>과 <론>의 두 부분으로 되었다. 독은 리뷰의 일종이고, 론은 논설의 하나다.
각종 매체에 올렸다고는 해도 한겨레와 프레시안 같은 곳이 대부분이다.

리뷰의 화두들은 역사적으로 참으로 지랄같던 <추상명사>들이다.
자유, 행복, 도덕, 기억, 역사, 사실, 여성, 기술, 화폐, 선물, 사회, 인권, 국가, 혁명... 일반명사로 보이는 것들도 골똘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 부분은 충분히 추상적이다.

사랑, 혁명... 이런 것들만 정말 추상 명사일까? 국가... 이것도 완전히 날조된 환상 속의 악마 아니던가... 화폐에 까지 건너가면 더욱 심하고... 고추장의 전공이 화폐라고 하니, 그 글도 읽고 싶어 진다만, 드팀전님이 요즘 낚시질하는 페이퍼들처럼 읽고는 싶으나 능력 부족이어서...

현대는 충분히 문제적이다. 그렇지만 고추장의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라...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은 정답에서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다른 방향을 발명해 내는 것이 그들 연구 공간의 목적이란다.

자동차를 버리고, 아파트를 버리고... 살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일은 기계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기계에게 부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새롭기도 하지만, 근본에서 출발을 달리하는 좋은 뜻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코뮨을 지향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같이 밥비벼먹는 일이든 화폐를 우습게 보는 일이든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여차하면 코뮨 운운하는 연구자들은 국보법 위반으로 잡아들이기 딱 좋은 사람들 아닐까 싶어서... 아직은 국보법이 거들떠도 보지않는 미약한 단체겠지만, 일이십 년이 지나고, 서울대 출신 미국 유학자 출신 박사들에 맞설 지적 재산권을 운운한다면 국보법이 충분히 덮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홉스가 국가를 리바이어던이란 괴물로 비유했지만, 지금은 지구가 글로벌이란 괴물이 되었다.

쇠파이프를 들고 싸우던 시대도 있었지만, 아직도 죽봉이든 짱돌이든 시위현장에선 이런저런 폭력이 오가기도 하는데, 권력자를 가장 곤란스럽게 하는 것이 운동이 휘드르는 폭력이 아니라, 폭력의 결여라는 말에 섬뜩하다. 문부식의 동의대 사태 반성 같은 것이야말로 권력자들이 두려워하는 자기 반성이 되기도 할 것 같다. 지금 시대의 무기는 화염병을 뛰어넘는 막강 화력이나 대포가 아닌 대중을 엮고 소통시키고 전염시키는 무기여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일견 진보한 논리지만, 현실은 거리가 많이 있어 보인다.

사회와 국가는 그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의 글들은 상당히 어렵기도 하다. 특히 그의 독후감은 철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읽어내기 쉽지 않은 주제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의 논점은 명확하다.

사회와 국가는 그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장애인을 차별하고, 농민을 고사시키며,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비정규직을 대량양산하며, 이주노동자를 가두고 태워죽이고, 새만금의 조개들을 뒤집어지게 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존재 목적이라면... 과연 시민, 국민의 자격을 갖는 것이 인간으로서 정당한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FTA를 체결하지 못하면 지옥이 온다지만, 체결 후 오는 천국은 <전적으로 당신들의 것>이고 90% 이상의 우리들에겐 이러나 저러나 <지옥>만이 강화될 따름인 미래를 볼 때, IMF이후 강화되는 <추방>의 역사와 계층 구조의 분화가 가속되는 체제를 고착시킬 따름인 고급직업, 정보, 의료, 서비스, 교육의 삶과 저급한 그것들의 삶의 투쟁은 글로벌리제이션의 본색을 점차 드러낼 것으로 분석한다.

시골 국도를 운전하다 보면 농민들이 걸을 만한 갓길이 없다. 농번기가 되면 차에 치어 죽는 농부가 숱하게 나오는 것은 다만 갓길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농약음독 자살률이 세계 3위인 것은 그라목손이 폐부종을 일으켜 멀쩡한 정신으로 호흡을 못하게 만드는 제초제인 것처럼 멀쩡한 농부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것이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본모습이었던 거다.

학문의 폐쇄성은 학문의 죽음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 학문은 이미 충분히 미국식으로 폐쇄되었다고 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일제에게서 얻은 한반도에서 미군정이 처음으로 강하게 밀어붙여 강한 반발을 얻었던 <국립종합대학교안>의 실시 목적을 이제서야 한국에서 거두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나는 요즘 협상장에서 웃으며 대화하는 웬디 케틀러와 한국측 협상단의 얼굴이 같은 나라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렇다. 그들은 결국 겉으론 노랗지만 머릿속은 완전한 백인인 바나나 협상단이었던 것이다.

파병에 대해서는 이틀간 연장같은 건 없었지만, 협상은 이틀 연장했다. 철저하게 빼앗아 가야겠다는 거겠지.

악마성은 악한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생각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세상의 모든 파시스트들은 겁쟁이란다. 그런데 그들은 겁쟁이들 속에서 자란다.

조선일보가 왜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길로 몰아넣는지, 왜 젊은이들이 좌파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는지... 요즘 대학생들이 토익과 해외 연수와 공무원 시험에만 몰입되는 <생각하지 않음>의 현상은 파시즘적 FTA, 그리고 악마의 세상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이 고추장의 생각이다.

그는 정말 꼬추장처럼 고추장답게 빨갛다. 빨갱이는 사과가 아니고 간첩이고 국보법의 세례를 받아야 할 대상이겠지. 민주주의의 데모크라시에서 기술자, 전문가의 테크노크라시로 옮아가는 세상.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대선 후보 운운할때 나는 소름이 끼친다. 아무리 정치가들이 전문가가 아니라지만 교수들이 권력과 부에 적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지식 기반 사회라고 할 때, 나는 발전을 생각했더랬는데, 그게 착각이었다.
지식 기반 사회가 교수같은 넘들이 권력과 부에 기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거머쥐고 사회 구조를 재생산해내는 지랄같은 사회가 지식 기반 사회의 본색이었던 것 같다.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은 더이상 아카데믹하지 않다. 그것은 충분히 이미 자본주의적인 것이다. 김태희가 다니면 서울대도 <상표>가 되는 것처럼...


댓글(1) 먼댓글(1)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4:58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
 
 
드팀전 2007-03-31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과 국민의 자격이 부끄럽고 더이상의 가능성도 없어보이지만 ...저는 늘 과연 코뮌이라는 형태가 더 나은 출구를 위한 입구 역할을 할까 질문해보게 됩니다.결국 국민국가의 틀거리 안에서 현실이 움직이고 있는데 말입니다.밉다고 그쪽에서 등돌리는 것이 과연 좌파적일까 (고병권을 좌파지식인이라 본다면) 생각해봅니다.잘은 모르지만 이런 논지가 네그리의 <제국>과 <제국>비판 사이의 경계처럼 보이더군요.
지식인들의 실험이 매력적이기는 한데 과연 그것이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것인지 무수한 이해와 갈등이 충돌하는 장사판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도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