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자고등학교 3학년 정민경(18), '그 날'

▲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우리에게 영광이자 상처로 남아있다.
▲ 초등학생들이 그린 5·18 관련 그림들.
ⓒ2007 5·18민중항쟁서울기념사업회


그 날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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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7-05-11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늘 너무 감사합니다~

글샘 2007-05-1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딩이 썼다는 글 치곤 참 잘 썼죠. ^^
앤디뽕님, 선생님이시죠? '너무'는 부정적일 때 쓰는 거랍니다. 정말~로 써 주세요^^ 선생님이니깐...
 

음, 배혜경님과 드팀전님 글을 읽고 불현듯, 씁니다.

1. 평안히 잘 지내셨습니까?

ㅡ 마음의 평안은 흐린데, 몸은 잘 지내네요^^
엊저녁의 음주모드로 신경 상태가 좋지 않음... 찌리릭~~~찌, 짓~!@,.@

2. 독서 좋아하시는지요?

ㅡ 홍당무=당근!

3.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ㅡ 제가 잘 하는 거거든요.

4.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ㅡ 많으면 3,40권, 요즘은 일 주일에 한 두권.

5.주로 읽는 책은 어떤 건가요?

ㅡ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국어샘이란 전공상 문학 도서들도 섭렵하려고 하고 있구요. 예술에 대한 관심도 많고 청소년 책들도 많이 보려 합니다. 마음 공부도 좋아하고, 가끔은 고전도 읽어주는 센스를... 주로 읽는 것들은 왼편에 카테고리로 나눠 둔 것들을 참고하시면...
ㅋㅋ 요즘엔 피아노 악보도 읽습니다. 음, 체르니와 부르크뮐러 ㅎㅎㅎ

6. 당신은 책을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ㅡ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주는 종이 뭉치죠.

7.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ㅡ 뉴런이란 신경 세포들에 전류를 많이 흘릴 수 있는 강한 전기적 운동의 하나랄까~

8. 한국은 독서률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ㅡ 선진국에 비해 독서율이 낮다는 것은, 출판 시장의 발달이 뒤처진 것과, 21세기들어 IT같은 유령들이 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청소년 기의 독서 부족은 입시 제도의 기형적 구조 탓도 클 거구요.

*글샘의 깜짝 맞춤법 강의
률(律, 率)은 모음과 자음 'ㄴ' 뒤에서 '율'로 표기합니다.
그래서 독서율이라고 해야 옳겠죠?

9.책을 하나만 추천 하시죠?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금강경... 성경은 아직 제대로 못 읽어서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지어진 모든 것들은 
  꿈같고 환같고 물거품같고 그림자같고
  이슬같고 또한 번갯불같으니
  마땅히 이같이 보아야 하리라...

 10.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ㅡ 내 어리석은 모습을 잘 돌아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을 소개하는 일만으로도 큰 공덕을 쌓는 거라고 했던가요?

11.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ㅡ 그때그때 달라요. ㅋ (미친소 버전~)
     삘이 꽃히면 문학, 동화를 와구와구 읽다가도, 또 역사, 문화 같은 책도 좋아하고 그렇죠.

12.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ㅡ 이런 질문을 만들다니=3=3
      제가 다섯 살때 우리집이 만화방을 했더랬습니다. 제가 지배인을 하느라 한글을 깨쳤다는 전설이...
     만화가 책이 아니라면 왜 만화책이라 했겠습니까! ^^
     좋은 만화가 얼마나 많나요. 초밥왕 시리즈도 요즘 잘 봤고, 대사 각하의 요리사도 재밌구요. 요즘은 김혜린의 북해의 별을 미쳐서 보고 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만화라면 역시 <유리 가면>이랄까요. 학생을 보는 제 눈을 틔워준 그런 책이었습니다.

13.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ㅡ 문학과 소비문학의 차이는 '생산성'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 속에서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적 여행을 통한 간접 체험'이 문학의 생산성이라면, 영화보고 나오면서 본전 생각 나듯이, 책을 읽고 나서 '읽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소비문학이라 할 수도 있겠죠. 술 마시고 나면 다음날 늘 '광란의 밤'에 대해 후회하듯이... 소비를 후회할 수도 있겠죠. 알콜 중독이 되면 치료가 필요하듯, 소비문학에 너무 빠진 아이들에게 독서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4.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ㅡ 책을 종이 뭉치라고 한다면, 여러 권 써 보았네요.
1. 내 이름으로 만든 '석사학위 논문' - 고등학생의 맞춤법 오류 분석과  지도방법 연구...
2. 연구학교 보고서나 교육계획서 같은 공식적인 책들의 저작에 관여한 일이 많고요^^ 교지도 몇 권...
3. 아내와 아들에게 100페이지짜리 <자작나무>란 책을 써서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 뿐이네요^^

15.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 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ㅡ 석사 논문은 워낙 졸속적으로 마무리해서 민망했고,
연구학교 보고서, 세미나 자료, 교지 등을 마지막 탈고해서 인쇄소로 파일을 넘기고 나면 속이 씨~언 하죠.
자작 나무는 백 일 동안 글을 쓰고 한 건데, 선물 받을 아들과 아내 표정을 생각하니 흐뭇했습니다.

16.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ㅡ 틱낫한 스님(이 분 책은 거의 다 읽었음), 하워드 진(이 분 책은 거의 다 도서관에 사 두었음;;), 노자와 장자(저자라고 하긴 좀 뭐하지만...), 크리스티앙 자크, 이오덕, 파울로 프레이리... 등

17.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ㅡ 스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하선생님^^  올곧게 살게요. 노장님, 늘 웃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크선생, 재밌수, 고이오덕 선생님, 갈매나무처럼 정갈한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파씨, 늘 은행저금식 교육을 실천하는 모자라는 교사지만 보이지 않는 교육과정을 중시하는 저로서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18.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ㅡ 요즘 알라딘에서 안 놀다 보니, 어느 분들이 하셨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같은 도시에 사는 알라디너들을 불러 볼게요...
배혜경님은 벌써 하셨고, 향기로운님과 드팀전님도 하셨고,
바람돌이님은 하셨으려나?
석란1님, 달팽이님, 해콩님, 느티나무님, 이유님~~ 아무 이유없습니다.
그냥 불러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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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5-1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요즘엔 피아노 악보도 읽습니다. 음, 체르니와 부르크뮐러 ㅎㅎㅎ'.. 정말 멋지신분이세요^^* 어릴때 만화방 지배인이셨군요^^;; 전 세살때부터 만화방에 출입했던 비행소녀(3살짜리)였어요^^ 덕분에 여섯살땐 12컷 만화도 그리고요..^^;; 저도 유리가면 좋아하는데..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고하네요..^^ 그리고... 와~ 가족을 위해 책을 쓰셨다니 존경합니다^^ 저는 할머니가 되어서 손주들을 위해서 동화책 쓰고싶었어요^^* 작가님들에게 한마디도 잼있게 읽었습니다^^

무스탕 2007-05-1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김혜린의 북해의 별을 미쳐서 보고 있습니다. => 초 강추!!
와락~~ 무지막지하게 반갑습니다 (초면에 실례인줄 압니다만... 제가 혜린님하면 거의 정신이 가출하는 상태라서요.. ^^;;) 혹시 김혜린님의 다른 작품을 안보셨다면 나머지 작품들도 꼭 보시라 적극 권하는 바입니다. 북해의 별을 능가하는 멋진 작품들입니다.

3. 아내와 아들에게 100페이지짜리 <자작나무>란 책을 써서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 정말 멋지세요!! 가족분들께서 평생을 두고 기뻐하실 선물이네요 ^^

마지막으로... 반갑습니다 :)

비로그인 2007-05-1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벌써 했어요..^^

프레이야 2007-05-14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보를 읽으시는 글샘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금강경을 담아갑니다. 그나저나 달팽이님! 아무 이유없이 언능
받아주세요^^

글샘 2007-05-1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 님... 님의 12컷 만화를 잘 모셔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만화방은 절대로 비행장소가 아닙니다. (지배인의 경험상...) 제가 쓴 건 책이라기 보담도, 일기나 편지 비스무레한 거였어요^^ 그래도 책으로 주는 맛이 있더라구요.
무스탕님... 김혜린 광팬이시군요. ㅋㅋ 저도 참 좋아합니다. 다른 작품은 잘 몰라요~~ 저도 반갑습니다. 여름이라 무스탕 입고 계시긴 덥겠네요^^ 냉무스탕으로 좀 바꾸시죠. ㅋㅋ
아, 이유님... 이미 하셨군요. 제가 워낙 요즘 남의 뻬빠를 안 읽고 살아서리...
배혜경님... 존경까지야... ㅋㅋ 음, 요즘 악보 읽는 눈이 많이 높아졌어요. 왕초보는 뗀 듯... 금강경은 한번 읽어 보시죠. 복 받는답니다. ㅎㅎ

홍수맘 2007-05-16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금강경>은 우리 옆지기도 한때 읽어 본다고 하더니만 결국 포기한 걸고 알고 있답니다. ㅋㅋㅋ

몽당연필 2007-05-2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방을 하셨다구요. 친구들한테 인기짱이었겠네요. ^^

글샘 2007-05-22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금강경은 쉽지 않은데, 조 위에 있는 책은 잘 풀어 줘서 전혀 어렵지 않답니다. 함 도전해 보시죠~
몽당연필님... 친구들이 책을 모를 때여서... -_-;;
 

겨드랑이 the armpit;the axilla

인중 the philtrum (인중을 모르는 사람은..음..코와 입술 사이에 움푹 패인 그 곳)

송곳니

a dogtooth;a canine tooth;a cuspid

어금니

a molar (tooth);a back tooth;a cheek tooth;a grinder

콧구멍

the nostrils;the naris

목젖

『해부』 the uvula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Adam's apple이라는 말은 결후(結喉), 후골(喉骨)이라고 나와있다.

쇄골(鎖骨)

『해부』 the collarbone;the clavicle

복사뼈

『해부』 the anklebone;the talus[astragalus](거골);the malleolus

장딴지

『해부』 the calf (of the leg)

발톱
a toenail(사람의);a claw(짐승의);a talon(맹금의);a hoof(마소의)
귓불
an earlobe;an earlap;a lobe
뒤꿈치
the heel
손금
the lines in the palm of one´s hand
귓구멍
an earhole;auditory meatus[canal];the opening of an ear
눈동자(―瞳子)
the pupil (of the eye);the apple of the eye
뒤통수
the occiput;the occipital region;the back of the head
이마
the forehead;the brow
손금
the lines in the palm of one´s hand
쌍꺼풀(雙―)
a double eyelid
 
영어공부하기 좋은 사전 발견...
다음...의 꼬마 사전을 설치하니 단어에 커서만 올려 놔도 뜻이 보인다. 세상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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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구석구석을 다니다보면 만나게 되는 역사의 흔적이 있다. 4.3학살사건이다. 1948년 4월3일에 시작된 군인과 경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사건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관광지, 제주도 곳곳이 비극의 공간이었던 4.3학살의 현장이다. 녹색순례 길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9일간이지만 직접 발품을 팔아 제주도 중산간을 비롯한 여러 곳을 살펴보는 일정이라 4.3학살현장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순례단 중에서 20-30대의 젊은층은 4.3이라는 역사에 대해 막연하거나 모르는 경우도 있어서 새롭게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계기도 되었다. 녹색순례 7일째, 본격적으로 4.3학살의 현장을 살펴보았다. 유사이래 제주도 최대의 비극이자 아픔의 현장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전4.3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제주사람 강태권씨가 생생한 안내를 해주었다.  

▲ 제주는 마을 중심에 정자목(팽나무)을 심고, 집 앞에 난을, 집 뒤편에는 대나무를 심어 키움. 영남동 등 사라진 마을 집터와 마을 중심은 이를 통해 알 수 있음. 영남동 마을을 외롭게 지키는 정자목과, 마을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


순례단이 아침에 만난 4.3학살의 현장은 서귀포시 인덕면 광평리였다.  제주에서 행정구역상 가장 높은 해발 고도에 위치한 마을이다. 4.3 사건 때 한림읍, 안덕면, 대정읍 등의 지역주민들이 이곳을 거쳐 한라산으로 피신하였다. 토벌대들도 이곳을 거쳐 진압에 나섰다. 광평리가 왜 주요 길목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곳의 지형을 알아야 한다. 서귀포 동쪽 지역의 지형은 초원과 같은 형태이지만 서귀포 서부지역은 완전한 밀림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이 주요 길목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곳 광평리도 4.3의 아픈 기억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 광평리, 이곳을 통해 한림, 대정, 안덕 주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숨어 들어갔다.


녹색순례 구간마다 4.3 사건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순례 3일째 지나간 성산일출봉 옆 너른바위를 관치기라 부른다. 4.3 사건 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학살을 당했고, 그래서 무수한 관을 그곳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성산 일출봉 옆 너른바위(일명 관치기). 이곳은 4.3 사건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이곳 성산읍에서 무수한 관을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순례 4일째 지난 성읍민속마을 바로 아래인 표선면 가시리의 지미왓 인근의 새가름마을도 그러한 곳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새가름마을은 가시천 동쪽에 형성되어 신설동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320년 전 오씨가 중심이 되어 만든 마을이다. 20여 가구에 100여명이 조, 메일, 콩 등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던 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15일 마을 전체를 군인들이 불질러 없애고 주민들을 표선국민학교에 수용시켰다. 그중 마을 주민 17명이 속칭 버들못 근처에서 처형당하는 등 마을 주민 25명 4.3사건으로 희생당했다. 49년 2월 가시리 현재 마을사무소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돌아와서 새로이 마을을 일으켰다. 새가름에도 2가구가 들어와 옛마을에 생기를 회복하려고 노력했으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마을을 떠나면서, 새가름 마을은 영원히 사라졌다. 가시리에 인접한 동백마을 신흥리는 더 큰 피해가 있었다. 4.3학살 때 마을 주민 140여명이 사망하였다.

▲ 4.3 사건 당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학살당해 마을의 흔적만 남고 사람이 살지 않은 남제주군 표선면 새가름


순례 6일째, 한라산 남쪽을 관통하는 산록도로 근처에도 곳곳이 4.3의 피해현장이다. 탐라대학교와도 그리 멀지 않은 서귀포시 영남마을이 대표적이다. 화전마을이었던 영남마을은 메밀, 조, 콩, 밭벼 등을 심어서 먹고사는, 법 없이도 살아가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일제 때부터 애국심도 뛰어나 1918년 마을 주민들이 법정사항일운동에 참여하여 6명이 구속되었고 이중 김두삼(당시 25세)은 옥사하였으며, 후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마을도 4.3학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48년 11월 20일 마을주민 60명 가량이 군인에게 학살당했다. 한집안 14명이 몰살을 당하기도 했고,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도 18명이 죽었다. 4.3은 양민학살이었기 때문에 노인과 부녀자, 심지어 어린이도 많은 피해를 당했다. 인구비례로 가장 피해가 큰 마을이었던 영남동은 법정 지명만 남은 채, 행정으로는 이미 그 의미가 사라졌다. 이곳도 사라져버린 마을이 된 것이다. 이외에도 4.3의 현장은 제주도 전역에 널려 있다. 관광객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제주공항도 정방폭포도 학살의 현장이었다.

▲ 서귀포시 영남동 마을, 4.3 이전 마을 사람들이 우물로 사용하던 자리. 이제는 연못으로 변해버렸다.


5.10단선을 반대해서 일어난 4.3 학살의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는 4.3이 일어난 48년 4월에서 약 6개월이 더 지난 그해 초겨울부터다. 1948년 11월 15일부터 이듬해 1949년 3월까지 중산간지대 마을은 초토화 되었다. 전체 4.3사건의 사망자 중 약 80%가 이 시기에 죽었으며, 70여 개 중산간 마을 중 성읍, 애월읍 정도가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4.3학살은 제주도민들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제주의 정체성속에 한의 정서로 뚜렷하게 남아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속으로 흐르는 정서가 더 뚜렷한지도 모른다. 곳자왈 아래 숨골을 따라 흐르는 지하수처럼 제주의 가슴에 잊혀질 수 없는 정서가 되었다. 4.3의 가장 큰 상처는 저항할 능력이 없는 무고한 양민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점이다. 대부분의 제주도 사람들에게 4.3은 비슷하게 인식된다. 국가에 의해서 그것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군인과 경찰에 의해서 참혹하게 학살당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육지에서는 이념의 잣대로 다르게 해석할지 몰라도, 적어도 제주도에선 4.3에 대한 1차적인 사건의 규정은 끝났다. 4.3은 이념의 대립이 빚은 결과가 아니다. 육지에서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지만, 적어도 제주에서 4.3은 군인과 경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한 무자비하게 진행된 양민학살이었다. 죽어간 자들의 죄라고는 중산간지대의 마을에 살았다는 단 한가지 그 이유뿐이다.

▲ 서귀포시 영남동 마을 사람들이 학살당한 장소 전경


순례단이 오후에 방문한 곳은 동광육거리다. 여섯갈래의 길이 교차하는 제주 서부의 길목이자 교통의 요지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지나가는 곳이다.  지방도를 비롯한 주요도로가 지나는 곳이라 파출소도 있고, 주요소와 식당, 식료품점 등이 있다. 이곳에 4.3학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작은 공동묘지가. 그때 학살당한 주민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가족들이 그 한이라도 풀기 위해 시체가 없는 묘소를 조성한 한 것이다. 4.3학살의 희생자들의 영혼을 쉬게 하는 헛묘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807번지-4에 자리 잡고 있다. 동광리 헛묘는 7기는(2기는 합장묘) 동광리 출신 임문숙일가 9명의 영혼을 수습한 묘지다. 헛묘는 시신을 찾지 못하였을 때, 생전에 입던 옷이나 유품 등을 넣어 만든 분묘이다.



▲ 동광리 마을 초입에 만들어진 4.3 유적지 ‘헛묘’에는 당시 처형당한 동광리 주민 임문숙씨 일가 9명의 영혼을 수습한 7기(2기는 합장묘)의 묘가 있다.  


동광리는 초토화작전이 전개되던 48년 11월 21일 국방경비대 제 9연대에 의해 온 마을이 불태워졌다. 군인들은 마을에 들어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폭도로 간주하여 학살을 자행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근 큰널궤로 피신했다. 하지만 이곳도 발각되어 또 다시 도주하였으나, 눈에 남긴 발자국때문에 한라산 영실기암 인근에서 볼레오름에 체포되었으며, 서귀포의 수용소에 옮겨져 49년 1월 22일 정방폭포에서 학살되었다. 그 때 동광리 주민들도 40여명 학살되었다. 유족들은 군인들이 무서워 시신을 수습할 엄두를 못내다가 몇 년후에야 비로소 정방폭포에서 죽은 영혼을 달래고 이곳 동광리 초입에 헛묘를 조성한 것이다. 억울한 원혼을 위로하는 듯 헛묘의 비석과 봉분 주변에는 보라색 고깔제비꽃이 피어 있었다. 순례단은  동광리일대의 4.3유적지 곳곳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4.3이 제주의 마을공동체와 주민들을 삶을 얼마나 모질게 유린했는가를 생생히 확인했다. 동광리 비극의 정점인 큰널궤라는 굴속으로 직접 기어들어가, 주민들이 군인들의 학살을 피해서 어둠속에서 숨죽였던 현장을 체험하였다.  

▲ 4.3 당시 마을 사람들이 토벌대의 학살을 피해 피난 생활을 했다는 동광리에서 서북쪽으로 2.5km 정도 떨어진 도너리 오름 근처에 위치해있는 큰넓궤(궤:작은 천연동굴).



▲ 4.3 당시의 피난민들의 고난을 체험하기 위해 동광 큰넓궤로 들어서는 순례단원들.




▲ 겨우 사람 하나가 지나기도 힘든 비좁은 동굴 내부에서 순례단은 피난민들이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힘들었을 당시 상황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다.


4.3의 현장은 이제 역사의 현장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인 재평가도 진행 중이며, 정부에 의한 명예회복도 진행 중이다. 제주4.3사건특별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 4.3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2008년에는 정부가 지원하고 제주도청이 주관하여 4.3평화공원이 조성된다. 6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들여, 죽어간 양민의 영령을 위로하고 4.3학살의 역사적 의미를 인권의 차원에서 정립하자는 취지다.

▲ 4.3 사건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동광리 마을 사람들의 서글픈 사연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세운 비


4.3에 대한 기록과 자료가 온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최고인 나라답게 4.3에 관한 현장과 주민들의 아픔을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 절실하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누구라도 인터넷으로 4.3사건의 전말과 학살의 현장, 관련 유적, 기념추모시설과 추모비, 관련자의 증언 등을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3평화공원이 중심이 되어서 추진해야 할 일들이다. 항쟁과 폭동이라는 시각도 존재하는 현실이만, 분명한 사실의 기록은 어떤 논리와 이유에서도 미룰 수 없다. 그것을 방해하거나, 저지하는 것은 죽어간 제주양민들에 대한 또 한번의 역사적 학살이자, 4.3의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다. 이것은 민족에게 역사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 4.3 사건 당시 토벌대 주둔소로 쓰였던 돌성이 있는 녹하지 오름(알 오름)을 오르는 순례단.

▲ 녹하지 오름(알 오름)에 올라 순례단에게 4.3 사건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설명해주는 강태권(제주도민)씨


해방과 건국의 과정에서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대결과 아픔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무수한 양민들이 사라져갔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제주도 4.3학살의 피해자들이다. 해방 이후 역사는 여전히 뜨거운 논란이다. 하지만 4.3사건처럼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 학살이 집단으로 자행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정부는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를 냉정히 기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역사의 기록을 위해 청춘을 바친 제주사람 강태권씨  

20년 가까운 세월을 4.3의 아픔과 상처를 두 눈으로 응시한 제주사람이 있다. 작년까지 제주4.3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강태권씨다. 대학 졸업 이후 88년부터 지금까지 4.3의 학살과 피해 현장을 찾아서 답사하며 증언을 채록하고 현장을 기록하였다. 강씨는 중산간을 비롯하여 제주도 전역을 다니면서 피해자들이나 목격자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확인하고 학살의 현장을 발굴하는 연구활동을 전개하였다. 강전연구원은 4.3사건이 제주도 전역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웬만한 중산간 마을은 죄다 다녀본 셈이라한다. 88년에 제주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주4.3학살에 대한 역사적 진실 규명과 재평가에 대한 요구가 모아지면서, 제주 4.3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교사, 향토역사연구자 등이 중심되어 연구소가 운영되었다고 한다. 국민의정부 이전까지 어려운 재정 상황 속에도 제주의 한을 끌어안고 역사적 기록으로 후대에게 정확히 남기자는 의지와 소신들이 연구소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제주 사람 누구에게나 피해갈 수 없는 4.3에 대한 현장의 발굴과 기록이라는 어려운 일들을 지난 20년 묵묵히 수행했고 그 대표적 일꾼 중 한 사람이 강태권 전연구원이다.  

▲ 4.3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청춘을 바친 강태권씨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가장 어려웠을 때가 언제냐는 물음에 “처음에는 말문을 열지 않았다.가슴의 응어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언젠가 중산간 마을에서 한 촌로를 만난자리에서 ‘알랑, 뭣헐띠’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그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면서 사연을 전해 주었다. 이 말은 제주방언으로 ‘당신이 알아서 뭐하겠느냐?’라는 의미로 달리 표현하면,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 강연구원은 “그 말이 바로 4.3살을 직접 겪은 분들의 응어리이자 맺힌 한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태권씨는 지금도 제주의 4.3현장을 방문하거나 답사하는 이들과 함께 4.3역사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43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책이나 자료를 넘어 직접 현장을 발굴하고 피해자들과 만나서 기록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기에 그와 4.3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은 4.3의 실체를 단박에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강태권씨는 “4.3은 학살의 역사이자. 공권력의 무자비한 주민학살에 대한 항쟁의 역사였다. 역사적 재평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4.3이 온전히 평가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4.3은 통일이 되어야 온전히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4.3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이야기 했다. 4.3학살은 한국전쟁 다음으로 우리 현대사에 새겨진 가장 큰 상처다. 강태권씨는 그 역사를 그 어떤 학자보다 정면으로 끌어안고 20대에서 40대까지 이어왔다. 역사에 대해 후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 아팠던 역사를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역사를 알리기 위해 제주도 전역을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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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5-06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은 평화를 이야기할 수 없는 나라가 아닐까...
아니, 그래서 더욱 평화를 진지하게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꼬마요정 2007-05-0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사회엔 청산 못한 가슴 아픈 학살들이 너무 많아요.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정부가 저지른 4.3 제주양민학살사건은 확실히 재조명 되어야 해요.. 그래도 요즘 친일파재산 몰수 등 시도는 하고 있지만, 정권 바뀌면 또 어떻게 될런지... 에휴

꼬마요정 2007-05-06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 갈게요~~^^

프레이야 2007-05-0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녹색순례 다녀오셨군요. 우리가 관광으로만 가는 남제주의 곳곳에 피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 잊기가 쉽지요. 전에 가족들이랑 여행갔을 때 밭에 그렇게
누워있던 무덤들을 보았는데 그게 헛묘였지 싶어요. 관치기랑 큰넓궤도 알게
되었네요. 끔찍한 과거입니다. 아니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글과 소중한 정보 보았습니다.

바람돌이 2007-05-0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역사기행갔을때 주제중의 하나가 4.3이었습니다. 우리가 그저 지나가는 제주도의 그 멋진 풍광속 하나 하나에 제주 사람들의 아픔이 스며있다는건 책으로 보는것과는 다른 체험이었습니다. 초기에 이 사건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었던 때와는 다르게 어느정도 알려진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 흘러가는게 아닌가 해서 많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경우가 많은데 제주도 4.3역시 아직 역사속에 묻어버리기엔 너무 이르지요.

해콩 2007-05-0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신건가요? 저도 6월에 민주공원에서 주최하는 4.3항쟁 코스를 밟을 예정입니다. 겨우 1박 2일이지만.... [제주역사기행]을 이영권 선생님의 안내로. 그 전에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 퍼갑니다.
흠... 귀차니즘이 도져서 서재질이 뜸하지만 저는 잘 살고 있답니다.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

글샘 2007-05-1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이 엠 쏘뤼~
이건 제가 다녀와서 쓴 명문이 아니라, 다음에서 퍼온 건데요.
정신없이 올려서 펌글임을 안 밝혔네요. 죄숑함다~~-_-;;v
 
5차원 독서치료
원동연.유혜숙.유동준 지음 / 김영사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국어 공부를 잘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그 질문의 정확한 내면은 "국어 점수를 높게 얻을 수 있을까."이다.

그런데, 수학이나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면 점수를 높일 수 있는 데 반해, 국어는 열심히 한다고 어느 점수 이상을 획득할 수는 없다는 것을 질문자들은 잘 알고 있다.

국어 점수를 높게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어'의 부족이다. 영어도 단어를 많이 알아야 쉽다고 느낄 수 있듯이, 국어 역시 마찬가진 것이다. 책을 무작정 읽는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를 자꾸 유추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읽는 것도 매일 꾸준히 읽어야 효과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의 독서 치료는 책을 읽음으로써 <통찰력을 계발하고 육성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의 5차원이란 심력, 지력, 체력, 자기관리능력, 인관관계능력을 의미하는데, 어느 하나가 부족하면 물이 샌다는 베네딕트 통의 이론을 이야기한다. 그렇다. 단어를 잘 모르고 열심히 읽지도 않고, 정신이 오락에만 가 있으면 물이 샌다.

책을 읽노라면 동일화, 카타르시스, 표출, 통찰, 적용의 ICOIA의 단계를 거쳐 성찰의 능력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속독보다는 매일 차분한 연습을 통하여 지력과 정신력을 함께 기른다는 이론은 십분 동감이 가지만, 5차원 이론이란 것이 같은 말의 반복이 심하여 좋은 책이란 생각을 들게 하지 못한다.

164쪽의 <인간의 비범함이란 비범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독서 활동 내지 독서습관이 유기체적이고 전면적으로 주어졌을 때 생기는 결과>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국어공부 잘 하는 법 내지는 국어 성적 높이는 길은 이것 뿐이라고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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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4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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