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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평점 :
제목을 내가 임의로 바꿔 붙였다. 그렇지만 불어의 문외한인 내겐 이게 더 맞아 보인다.
발자크라는 시대와 장소가 다른 곳의 '문학'이
바느질 소녀라는 전혀 다른 시공의 인물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였으니...
불어 제목을 보면 내 말이 맞을 것 같은데, 영어 제목이 적힌 표지를 보니 '발자크와 어린 중국 바느질소녀'로 되어 있다.
내가 태어날 무렵, 중국의 문화 대혁명은 시작되었고, 내가 초딩 4,5학년 신문에서 4인방이라는 둥 하면서 그 마무리를 보였던 시기인 모양이다.
혁명이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문화를 일궈왔던 자들은 언제나 '가진 자들'이었기에, 그들의 문화의 달콤한 무스 케익을 과감하게 버리려고 했던 것이 문혁이란 돌연변이 현상이 아니었을까...
마치 박지원의 허생이 '먹물'들을 이상향인 섬에서 데리고 나와 버렸듯이...
'먹물'들은 늘 가진자의 편에 서게되는 것이 '문화'의 아이러니다.
문화라는 것이 삶의 모든 양태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서민층, 어렵게 사는 층의 양태도 문화로 표출되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 수가 훨씬 더 많은데, 보통 우리가 지칭하는 문화는 <상류층의 잉여 문화>이기 쉬우니 말이다.
하방 당한 소년들에게는 두 가지 삶의 희망이 있었다.
모차르트조차도 모택동을 위해 복무해야 하던 시대.(그러고 보니 같은 모씨군.)
그들에게 신성처럼 나타난 '발자크'롤 통칭되는 문학가들의 <문자>와,
소년기 마법처럼 그들 앞에 선 바느질 소녀의 <청춘>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두 소년을 휩싸온다.
다이 시지에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아무 희망없이 산골로 들어가 노역과 비루함에 휩싸여 산다는 일이 어떤 일일까...를 생각해 본다.
7,80년대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임을 감추고 위장취업을 하여 노동 해방을 위해 분골쇄신했다.
그야말로 자발적, 사회의 양심적 강요에 의한 타율적 하방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태생적으로 가늘고 하얀 내 손을 가지고 노동자들 틈바구니로 들어가는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노동 운동은 내게 시지프의 바윗덩이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갔던 때가 군생활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행정병으로 근무하긴 했지만,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는 일은 너무도 지긋지긋했다.
정말 하루가 여삼추였다.
다행히 나는 시골에서 신검을 받아 '방위'로 근무할 수 있었기 때문에(사람들이 잘 모르는 일인데, 시골 지역에선 방위병이 많이 필요해서 시력이 조금 나쁜 것으로도 판정이 낮아지는 경험을 내가 했다. 나보다 눈 나쁜 친구들도 다들 현역 갔다 왔는데... 그들은 서울서 신검 받았쥐.) 출퇴근을 할 수 있었고, 저녁이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낮동안 사무실에서 무료하게 각을 잡고 앉아있던 쫄다구 시절이면 정말 뭐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머니에 시들을 적어 다니면서 암기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중심으로, 이육사의 광야,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 유치환의 행복, 윤동주의 서시, 자화상, 이형기의 낙화 같은 시들을 머릿 속으로만 거푸 외워대곤 했다. 조금 지나서 타자 연습을 하게 되었을 때는 시를 외워서 타자기를 두들기기도 했다.
그때 밤 늦게까지 혼자서 읽던 톨스토이며, 도스테옙스키며, 그리스 희곡들, 그때 막 죽은 기형도...도 이젠 줄거리도 희미해 졌지만, 낮동안의 결핍이 밤의 독서에 박차를 가하는 동기가 되곤 했던 것 같다.
발자크를 읽는 일만으로도 삶의 변혁을 꿈꾸게 되던 시대.
아, 박노해라는 이름만으로도, 김지하라는 이름만으로도... '5월'이란 고유명사만으로도 가슴이 아릿하던 변혁의 시대가 나에게도 있었건만...
현대처럼 책 아니고도 인터넷 세상에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검색하는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그 박탈감이 적어서 책의 가치가 평가 절하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다이 시지에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기에 좋도록 사건들이 흥미진진하게 엮여 있어서 읽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그렇지만 바느질 소녀를 도시로 내빼게 만들어버린 '근대'라는 괴물을 대하는 그의 철학을 읽어 내기엔 마무리가 무르단 생각이 든다.
책에 몰두하는 학자도 아니면서 너무 책에 파묻혀 산 것 같다.
이젠 하산을 준비해야겠다. 스스로 하방을 할 노릇이다.
강을 건넌 자만이 뗏목을 버려야 하겠으나, 어차피 뗏목에 너무 매달릴 일은 아닌 일이다.
내 직업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으니, 독서로 거두어들이기 보다는 이젠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더듬어 나가면서 학교에 필요한 일을 온 몸으로 해야할 때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하방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