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냇물아
최성각 지음 / 녹색평론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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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성각은 소설가란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일이 없고, 그가 쓴 소설집의 이름을 들었어도 아는 바가 없었다.

이 글들을 읽다 보니, 앞으로 그의 소설이 깊어질 법도 하단 생각을 한다.

모든 운동은 서로 통한다.
어느 비꼬인 놈이 '운동할 것이 없으니 환경 운동한다'고 했던가.
운동할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먹고 사는 데 급급했던 70년대만 해도, 그리하여 최소한의 인권을 되찾겠다고 나선 80년대만 해도, 사람이 죽어갈 판인데 자연을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90년대 이후, 과학은 기술의 발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적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고, 미국이란 초강대국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한국처럼 아류 제국주의 국가들도 미국의 본을 받는 데 열심인 게 현실이다.

최성각이 여기 저기 실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64쪽에서 그가 말한다.

민주화 세력들이 싸우던 때를 회고하는 걸 꼬투리 잡으면서, 그때 싸운 것은 외로운 사람을 위하여, 더 좋은 삶을 위하여,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싸운 것임을 말하고, 이 노골적인 토건 국가의 '약한 존재'인 '산천과 갯벌과, 철새들과 늪들'을 개혁이란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개발하려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일은 당연한 일임을 말한다.

내가 별 생각없이 부르기 좋아하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던 징그런 노래를 요즘엔 부르지 않는다. 그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지렁이가 나와서 '사람이 더 징그러워요.'했다는... 그래, 사람은 지렁이보다 더 징그럽다. 옳다. 태안 앞바다에서 죽어간 고래들과 굴들에게 징그러운 사람들은 미안해 해야한다.

찬드라 구릉이란 네팔 여인을 정신병동에 가뒀던 미개국이 있었다. 그 여인은 이주 노동자로 일하러 왔다가 라면을 사먹고 라면값을 잃어버려 경찰서로 갔다가 바로 정신병원으로 직행하여 6년을 갇혀 산다. 네팔사람이라며 버벅거리는 한국어를 했다는 것이 정신병의 근거였다. 풀꽃나라 사람들은 한국이란 미개국을 대표하여 찬드라 구릉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리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미개국.

오늘 정말 정신병 걸린 어린이집 교사 한 명이 5세 여아를 최고기온 영하 1도였던 어느 날 발가벗긴 채 비상구 난간으로 쫓아낸 사진을 외국인이 찍어서 고발한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 취재를 갔더니, 그 미친 계집은 아이가 제 분을 못이겨서 막 옷을 벗었다고 했다. (젠장, 애가 술이라고 취했단 말여?) 나중에 학부모가 따지자 머리를 처박았다. 아, 인간을 돈 버는 수단으로 보는 것들에게 아이를 맡긴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정말 짐승같은 나라다. 그 사진 찍은 외국인이 얼마나 미개국 운운하며 다닐까... 이 인테넷 세상에서 이 아동 학대 사진은 얼마나 전 세계로 떠돌며 미개국의 국위를 선양할 것인가... 핸드볼 잘 하고 축구 잘 한다고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핵 쓰레기장을 핵 폐기장으로, 나중엔 방사성폐기물 관리 시설로, 원전 수거물 센터로 핵심을 빗겨 나가는 것을 '수사법'이라 한다. 미화법의 하나겠다. 쓰레기 소각장은 자원회수시설이라 미화하고, 대량강제감원을 구조조정이란 미화어를 쓰는 것은 국가의 폭력이다. 하긴 이 나라의 '군인과 경찰'은 모든 <정의> 앞에 가면을 쓰고 나오는 폭력배의 모습이다. 부안 핵쓰레기장 시설에서, 상계동 쓰레기 소각장 다이옥신 발생장치 앞에서... 그들은 방패를 갈고, 열심히 찍어 댄다.

IMF이전 우리 국민의 환경 의식은, 환경 문제를 자기 삶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50% 이상이었으나, 2000년에는 5%로 줄었다.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생존만이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는 정부의 개발을 저지할 건강성을 잃는다... <시민의 신문> 오성규 차장(271)

이제 새로운 정부는 오로지 효율만을 이야기한다. 무조건 경제 발전, 개발만을 이야기한다. 그 안에는 인간도 환경도 없다. 지금 당장 이득이 되는 것이라면 눈을 까뒤집고 다 한다. 무섭다.

그나마 성성적적하게 깨어있는 최성각같은 이가 거위에게 등을 맡겨두고, 거위의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마음으로 서늘한 글을 던져 주기에, 그 그늘에서 가끔 환경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여 고맙다.

태안 앞바다에 수천 톤의 원유를 뒤집어 엎은 것이 어언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백만에 이르는 이들이 기름을 퍼내고 닦아내지만, 기름을 뒤집어쓴 갯벌이 살아남는 일은 얼마나 멀고 멀 것인지... 죽어 나오는 바닷가재와 돌고래와 바닷새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다.

그럼에도 반성할 줄 모르고, 공동 과실이라서 다행이라는 삼성의 지랄같은 작태에 분노가 끓지만, 온갖 특검이 난무해도 성공한 쿠데타, 사기꾼이나 돈놀이 등은 <무죄 방면>한다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관습법에 따라 휠체어를 타고 큰 돈을 환원(이 말이 도무지 무엇을 어찌한다는 것인지를 한국이란 나라에선 누구도 모르지만...)하시어 큰 복을 받으실 것임이 불보듯 번하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부끄럽다.

그럼에도 내 자식이 잘 먹고 잘 살기만을 바랄 일인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너나 잘 먹고 잘 사세요' 의 금자씨 철학을 가르칠 일인가? 깊이 고민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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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1-3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할 것 없어서 환경운동한다'는 말하는 주체의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읽힙니다.전통적인 우파 개발론자들의 '운동'에 대한 혐오로 읽히는것이 우선입니다.그들은 80년대 운동하던 놈들 다 환경운동한다 라고 들 말하지요.
그런데...이렇게 이야기하면 비비꼬인 놈이 될 듯도 하지만 '환경운동의 탈정치화' 라는 측면에서 보면 '주류환경운동'에는 또한 '탈정치화'의 한계가 분명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수구정당도,좌파진보정당도 '환경'을 공약 사항에 집어넣고 있습니다.또한 어떤 정치 지평을 갖던지 '환경'담론에는 딴지를 걸지 않지요.

결국 '환경운동'이 '정치적 옳바름'을 의미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군요.

언젠가 페이퍼에도 썻듯이 불행하게도 나치도 환경운동에 열심이었습니다.환경과 정치가 괴리를 빚어내면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에코파시즘'이라고 하더군요.

많은 이들이 이미 노력하고 있듯이 '환경'과 '정치'가 어떤 지점에서 관계 맺는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노장철학에 바탕을 둔 전통사회적인 환경론은 어떤면에서 상당히 급진적이면서도 또한 토대를 넗히기 어려운 한계가 있어서 -현실적입장에서-'탈정치적'담론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저 개인적으로 '환경'을 환경대로 이야기하고 '정치'를 정치대로 이야기하는 방식의 소통방식 대해 고민합니다.

물의 흐름들을 한가닥으로 모아내기...환경운동도 그런 소통문제를 고려해야 할때겠지요.

대중적인 신자유주의 최고비판자는 삼성과의 대타협을 대안이라고 말하고...태안에서 돌을 닦는 사람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더 많은 쓰레기와 욕망의 배설물들을 뿜어낼 겁니다.

이렇듯 조약돌의 무늬처럼 하나가 되어 있는 복잡한 가치들이 어떻게 분리되고 또 어떻게 종합시켜야 하는지 늘 고민입니다.

글샘 2008-01-30 15:26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저도 쓰레기 분리 배출하면서 늘...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만, 그렇다고 쓰레기를 안만들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이율배반적 생태를 생각하죠.
이 조그만 나라도 이렇게 복잡한데... 그런 걸 한 가지 논리로 풀어낼 수는 없는 거겠죠.
그 사회의 타협점과 지향점에 대해 공감하고, 그런 걸 교육하는 것이 필요한데요. 이 사회는 국가가 <제시하는> 그런 지점이 없지요. 무조건 각자 잘 벌어서 잘 살아라. 이러니 교육하기도 힘들고요. 쉽지 않은 문제지만, 놓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혜덕화 2008-01-3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성각이란 이름을 읽는 순간, 아, 그 엽편 소설 작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인 줄 알았더니, 님의 리뷰를 읽으니 같은 사람이군요.
그에게서 잎사귀처럼 짧은 소설의 매력을 한껏 느끼며 그의 글을 읽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환경운동과 정치에 대한 논의는 잘 모르겠고, 드팀전님의 댓글도 제겐 너무 어렵지만, <그냥 불편한대로 살기>가 제겐 환경운동의 하나일 뿐입니다.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꾸는 단계가 발전이 아닌가 싶어, 인간만을 위한 편리함은 조금씩 덜어내며 살아야지, 생각할 뿐입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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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경제학자이다. 그렇지만 장하준은 여느 소설가 못지않은 필력을 가지고 있다. 더더군다나 이 책은 영국에서 영어로 발간된 책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자랑스런 한국인은 이럴 때 쓰는 말 아닐까?

잘 사는 나라들은 개발도상국가에게 <자유 무역>을 들이댄다.
그걸 저자는 여섯 살 난 아들 진규에게 공장가서 일하라 시키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물론 진규가 지금 당장 가서 일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일에 비하여 '돈'이 된다. 지금 당장은.
그렇지만, 아이를 차근차근 공부시켜 일꾼을 만든다면 지금 버는 돈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데... 남의 돈으로 부자가 된 나라들은 개발도상국을 진규처럼 <한창 자라는 청소년>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개도국들은 이미 다 자란 <난쟁이>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러기가 더 쉽다.

신자유주의 광풍은 교육 시장에까지 밀어 닥치고, 인수위원장이란 할머니 한마리가 지껄인 '사견'에 이 땅의 '공교육(사실, 별로 공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지만)'에 일파만파를 불러 일으킨다.
미국도 앞장서지 않는 FTA를 국회에서 빨리 비준해야 한다고 발광들이고, 또 혼란스런 틈을 타서 유럽과의 자유무역을 준비하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교도'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곤경에 빠진 이들을 구하기는 커녕 이용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쁜 사람들로 쓰인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하는 한 남자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는 사건이 등장한다. 이교도지만 착한 사마리아인도 있다는 것인데, 이 책에선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님을 명백히 하려는 강한 의지로 나쁜 사마리아인이란 강조점을 찍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역사를 통해 모든 부자 나라들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 보조금, 규제 정책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그렇게 <사다리 올라가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들이 이제 개도국에게 <신자유주의>의 자유 무역을 들이대는 일은 정말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유' 무역 정책은 역설적으로 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개도국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120)임을 그는 분명히 보여준다.

'평평한 경기장'에서 '자유'로이 경쟁하자는 아름다운 조건에 왜 저자는 반대하는가. 특히 불평등이 심화되는 분야가 <특허를 비롯한 다양한 지적 소유권의 보호를 강화하는 무역 관력 지적소유권 협정>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에서 발간되는 저서와 한국에서 발단되는 저서, 아주 작은 못사는 나라에서 발간되는 저서가 가진 '포스'가 같지 않음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고, 이수근과 최홍만의 '자유 경쟁'임에랴.

잘사는 나라에서 보자면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느린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화도 변화한다. 조선의 팔자 걸음이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경제 개발의 파시즘 아래서 '빨리빨리' 민족으로 그 문화를 바꾼 사례도 있지 않은가. 문화는 그 나라의 경제적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경제적 성과가 문화를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몇몇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한 나라의 경제적 성공이나 실패를 문화의 측면에서 설명하지만, 이것은 가능하지도 유용한 일도 아니다.(306)

못사는 나라들은 게을러서 산업이 낙후된 것이 아니다. 잘 사는 나라들이 결코 그들의 산업이 발전되도록 도와주지도 이끌어주지도 않는 것이 그 이유이고, 잘사는 나라들은 사다리를 걷어찬 후에 올라오라고, 그러려면 프리 트레이드를 해야 한다고 썩은 동앗줄을 드리운다.

강호동의 스타킹을 가끔 보는데, 재미있는 재주꾼들이 나오면 패널들이 한번씩 따라한다. 대부분 실패하지만 간혹 성공하는 경우가 있어 재미를 더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심하게 위험한 경우 붉은 경고문이 뜬다.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이런 것을 장하준은 '집에서 해볼 필요'라고 이야기한다. 사다리를 걷어찬 넘들을 부러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집에서 자꾸 해 봐야 스타킹에 나간다는 것.

물론 브라질, 인도, 차이나, 러시아의 브릭스 그룹처럼 맹렬하게 달려오는 국가들이 있지만, 저자의 시나리오를 보면 그들도 사다리를 걷어채이는 일에 처하게 될 거라고 한다.

개도국에게는 <기울어진 경기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태도를 바꿀까? 저자는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결론을 짓는다. 설득하기 어려운 이데올로그까지도 케인즈처럼 <사실이 바뀌면 생각을 바꾸는> 일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큰 이익을 얻어서가 아니라 가장 쉬운 일이어서 저질렀던 일들은, 균형잡힌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할 때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임을 그는 기대한다는 것이다.

아, 민족이니 뭐니 하는 걸 웃기게 생각하려 하다가도, 이런 멋진 사람과 같은 민족이고 같은 나라 사람이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이라는데 행복할 때도 있다. 월드컵 축구공 만드는 파키스탄의 어린이 노동을 비판하다가도, 축구는 재미있게 보는 것처럼...

장하준, 그의 글은 쉬우면서도 명쾌하고 쌈박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단단하다. 그가 영어로 글을 쓰는 이유를 알겠다. 고맙습니다. 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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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1-2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하준 교수의 '신자유주의비판'에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그렇다면 글샘님은 그의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삼성이 뉴스를 수놓고 있고 금산분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라..좀 그렇긴 하지만.

글샘 2008-01-30 01:32   좋아요 0 | URL
박통의 경제 개발이 '성공'한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죠.
그 부작용으로 재벌이 이만큼이나 횡포를 부리게 된 거구요.
한국의 독특한 경제 양식인 재벌과 사회적으로 대타협을 벌여 나갈 수 있을는지는... 글쎄, 좀 회의적이죠.
재벌이란 문어는 식탐만 있을 뿐, 양식은 없는 넘이고,
정치가란 넘들도 국익이란 이름으로 가진 자의 단기적 이익만을 귀히 여기는 세상이라...
IMF 이후로 '인간'이란 존재의 가치가 갈수록 무시되고 있는데, 재벌을 사회적으로 제약하거나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일은 멀고도 먼 일로 생각합니다.

혜덕화 2008-01-2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모르고 사는 것이 너무 많구나, 새삼 느끼면서.....

글샘 2008-01-30 01:33   좋아요 0 | URL
저도 경제학 같은 분야는 워낙 밑바닥이라죠. ^^ 공부하는 맘으로 읽는 거죠. 그래도 장하준 선생은 워낙 비유와 사례 제시가 출중하여... 읽는 이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바람돌이 2008-01-30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하준씨 책이 요즘 진짜 많이 나오던데 한번쯤은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네요.

글샘 2008-01-30 15:30   좋아요 0 | URL
이책은 부분부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글 참 잘 쓰더군요.

2008-01-30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30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8-12-2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ㅎㅎ
허접한 이벤트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네요.ㅎㅎ
글샘님께서 추천해 주신 시비돌이님의 리뷰가 2007년 10월 8일 작성된 것으로
애초에 정했던 2008년 1월 1일~12월 30일까지 작성된 리뷰를 대상으로 한다는 규정에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송구스럽지만, 다른 리뷰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
 
글쓰기의 전략 - Reading & Writing
정희모.이재성 지음 / 들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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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한창 '논술'이 화두였다. 입시에서 논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처럼 쌩쑈를 해댔다. 그 쌩쑈의 맨 앞자리에 선 이들은 조중동.

1000배의 손실을 상정하면서 10의 이득을 얻겠다고 새만금을 메꾸고 있다. 정말 쌩쑈가 아니라 질알발광이다. 그 현장에 가보면 큰 글자로 건설의 역군이 있다. 현대 건설.

이번 대운하의 <돈 소통>의 현장에 설 것들은 어떤 넘들일까?

모든 이슈의 초점에는 <돈>이 있다. 돈 되는 곳에선 대학 교수들도 연예인들처럼 계좌 번호를 들이 민다. 이즈음 한창 호황을 누리던 책들이 <글쓰기> 책들이었다. 뼛속까지...의 나탈리나, 스티븐 킹의 글쓰기 안내서들에 감동을 받았던 것에 비하면, 결론적으로 쓰기를 권하는 책들을 읽고는 전혀 쓸 맛이 나지 않는 것이 단점이랄까.

정희모의 이 책을 처음 읽을 땐, 좀 신선했다.

꽤 괜찮은 글을 몇 편 들이밀면서
(김민웅, 컬럼부스여, 달걀 값 물어내라.
이진경, 선물에 대한 명상,
장영희, 하필이면,
황대권, 군화와 고무신의 차이)
이렇게 신선하게 글쓰는 건 어때?하는 방식은 제법 괜찮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지나면서, 별로 괜찮은 글을 발견하지 못한 듯... 재미없고 딱딱한 글들을 들이대면서 분석하고, 써 보라고 한다. 과연 이 책을 읽고 논술이 쉬워진 고교생이나, 논술 지도에 큰 도움을 받은 교사나, 레포트 작성이 재미있어진 대학생이 있을까?

자기의 글이 매력적이지 않으면서, 글쓰기에 대하여 설명문을 쓰는 일은 요리 못하는 사람이 쓴 요리책만큼이나 매력적이지 못하다.

경제학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다양한 비유와 역설과 반어를 뒤섞어 쓰는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비하면, 글쓰기를 강조한 작가의 글은, 글쎄, 꽝!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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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인간 - 오에 겐자부로 만년의 사색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고즈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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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글을 읽는 일은 격정적인 파고를 느끼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다. 격렬하게 부서지는 파도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배 한켠에서 고요하게 젓대라도 불고 있는 듯한, 우키요에의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세상은 험난하고, 추악한 일로 가득하다.
오에 겐자부로가 다루는 이야기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팔레스타인부터 일본의 전쟁에 대한 적극성이나 국가주의를 향한 교육기본법 같은 것들, 그리고 아들 히카리에 대한 것까지 평탄하지 않은 세상의 울렁거림이 느껴지는 일들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접하는 오에의 말투는 결코 격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것이 나이에서 우러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원 제목은 '츠타에루 고토바' 플러스...이다. '전하는 말' 플러스란 이야긴데, 츠타에루 고토바는 아사히신문에 실었던 글들이고 플러스는 여기저기서 한 강연을 실은 것이다. 이런 것을 '회복하는 인간'이란 제목으로 '오에 겐자부로 만년의 사색'이란 부제를 붙여 파는 것은 얄팍한 사기란 생각도 든다. 왜 '오에 겐자부로 칼럼 모음' 이렇게 솔직할 수 없는 것인지... 하긴 그랬다면 나도 안 샀을는지 모르지.

그렇지만 그의 '일래버레이션'이란 글을 읽은 것만으로도 돈 만원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콘서트에서 일생을 통하여 '연마된' 성과를 '일래버레이션'이란 말로 집약했는데... 음악의 나무가 여전히 성장을 계속하면서 무성한 잎들을 피워낸다는 애정어린 말을 하는 것은, 그의 히카리가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에 대한 애착일는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 지식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하는 그에게 스승님이 남긴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 지루하지. 어떤 작가, 시인, 사상가를 정해 놓고 그 사람의 책, 그리고 그 사람에 관한 연구서를 3년 동안 계속해서 읽도록, 자네는 소설가가 될 것이니 전문 연구자게 될 필요는 없네... 그러니가 4년째엔 새로운 테마를 향해 나가도록 하게..." 이런 소리를 듣고, 제자는 바로 실천에 옮기는데... 올 4월부터 열 다섯 번째 3년째에 들어갑니다... 아, 얼마나 사랑스런 제자인가. 보통 작심 3일이라고들 하는데... 3년에 걸친 독서를 열 다섯번이나 새로 시작하는 뚝심이라니... 이렇게 하고서야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나도 3년에 걸쳐 새로 시작하는 집중 독서라면 생각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플러스' 부분에선 아들 히카리가 음악을 통해 세상과 공감하는 이야기들을 열고 있는데... 젊은 여성 카운슬러가 상처입은 어린이들의 '내러티브'에 관심을 쏟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커뮤니케이션이 텔레비전에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시대에 아이들의 내러티브의 방향이 누군가에게 밖으로 향하는 것일 때, 외과 수술에서 오는 스트레스(침습)이 불러온 발육이나 정신적 지체 상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인데... 자기 아이가 고통을 겪어온 이인 만큼 더욱 예민하겠지만, 일반인이지만 교육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아이들로 가득한 현실을 만나는 교사들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볼만한 주제라 생각한다.

나는 솔직히 '칼럼집'을 엮어서 파는 일을 싫어한다.
칼럼이란 것이 일반론보다는 시의적절한 이야기들에 비중을 두기때문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철학을 단편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별을 하나 떼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건강한 생각과, 세상에 대한 애정들은 충분히 읽을 만한 것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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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 참 지랄같단 비관을 자주 한다.
라디오 뉴스를 들으면서 매일 반복되는 정치가들의 정치적 수사학을 들으면서 구역질을 느낄 때...
공개 수배에서 아이들이 실종되었다는 가슴아픈 사연들을 만날 때...
국회의원 공천을 앞두고, 또다시 짐승들이 가득 출연할 것 같은 모습을 만날 때...
교육도 모르는 넘들이 마구 미래의 정책을 발표할 때...

그렇지만, 교실에서 아이들 하나씩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웃음이 난다.
집에 와서도 아들 녀석이 쫑알거리며 빙긋이 웃고 장난치는 얼굴을 만나도 즐겁다.

비록 세상은 지랄같고, 징그럽고, 욕망의 추악함으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만나는 뽀송뽀송 밤송이 머리의 사내 애들과, 장난기 가득한 계집애들의 얼굴을 보면, 사람이 꽃보다 결코 추악하진 않다. 아름답지도 별로 않지만.

크게 보고 좌절하는 날에도, 고개를 옹송거리고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돌아온 집에서 강아지처럼 달려드는 아가들을 볼 때, 사람은 살아갈 힘을 찾는 거겠지.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에선 그런 사건들을 만난다.
다다와 그 동창. 이 올드 보이들은 참 다르다. 그렇지만 그들의 콤비는 그럭저럭 잘 해 나간다.
치와와를 돌보는 이야기에선 가슴 찡한 '인간미'를 읽는다.
콜롬비아 아가씨를 보는 작가의 시선도 따스하다.
징그런 세상을 바라보다가,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 눈동자를 대하는 일처럼 다다 심부름집은 생생하고 똘똘한 소설이다.

도쿄의 소외된 지역 마치다 시를 '마호로'란 '마법의 길'로 둔갑시킨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소외된 사람들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

태안 사람들. 이 보여주는 쓸쓸한 모습보다 분노한 아저씨의 눈빛에서 슬픔을 직접적으로 읽을 수 있듯이.

이 작가 미우라 시온,도 기억해 두자. 왠지 공중 그네처럼 비타민을 한방 줄 것 같은 느낌이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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