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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평점 :
책을 훔친 소녀... 정도가 좀더 리젤에게 잘 어울리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을 한다.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란 말이 밟힌 탓일까?
전쟁 이야기는 슬프고 아프고 괴롭고 징허고 화나게 하고 혐오스럽게 한다.
인간 이야기에 아프다가, 인간에게 화나고, 결국 인간에 대한 혐오를 버릴 수 없게 한다.
그래서... 마커스 주삭은 화자를 인간으로 하지 않았다.
화자는 죽음의 신이다. 그가 분명히 낫 같은 건 들고 있지 않다고 했거늘,
통속한 표지엔 통속한 낫을 그려 놓았다. 사신이 삐질 일이다.
전쟁통엔 온통 자우멘슈와 자우케를, 아르슐로흐들로 가득하다.
말만 욕이 아니라, 욕지기 나는 사건들이 일상이 되어버리는 게 전쟁이다.
목소리 없는 인간, 자기 구멍으로 돌아가는 유대인 쥐.(319) 막스를 그리는 리젤의 눈이 해맑기 그지없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막스의 어깨였다.
리젤은 좁다란 틈을 통해 천천히, 힘겹게, 손을 들이밀었다.
마침내 손이 닿았다. 옷은 서늘했다. 막스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그의 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어깨가 약간씩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리젤은 한동안 지켜보았다. 이윽고 앉아서 등을 뒤로 기댔다.
졸린 공기가 리젤을 따라온 것 같았다.
연습을 하던 단어들이 층계 옆의 벽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깔쭉깔쭉하고, 유치하고, 달콤했다.
단어들은 숨은 유대인과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소녀가 잠든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숨을 쉬었다.
독일인과 유대인의 허파.
벽 옆에 '굽어보는 사람'이 만족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리젤 메밍거 발치에 놓인 아름다운 갈망 같았다.(347)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원서로 읽으면 얼마나 감동적일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누리지 못할 호사스런 사치겠지만...
보통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그릴 때, 작가들은 아이들 시선을 빌리기도 한다.
그러면 현실은 조금 굴절되고, 서술자의 힘을 빌려 세상을 좀더 용감하게 그릴 수도 있게 된다.
그런데 작가는 어른들의 추악한 세상을,
아이들의 비루한 삶을 통해서 드러나게 하는데,
그 서술자를 죽음의 신의 입장에서 표출시키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결국... 죽음의 입장에서 인간들의 짓거리는 추악한 것도, 미진한 것도 없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거기서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