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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달래는 순서 ㅣ 창비시선 296
김경미 지음 / 창비 / 2008년 12월
평점 :
눈매가 시원스런 이 아줌씨 눈가엔, 살풋 나잇살 넘어선 '기운'이 느껴진다.
김형경을 사진으로 만났을 때와 같다. 그게 뭔지... 나는 모른다.
토란잎이나, 연잎은 종이 한장 차이란다.
갈매기나 기러기도 거기서 거기란다.
포도잼과 요오드팅크도 섞어도 그만이고,
머리 자르는 거나 쑥부쟁이 꽃 하나 꺽는 거나,
바다나, 강이나, 기차나... 이렇게 흐르던 생각이,
마지막에서 두번째 연,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순서란 없다
견딘다 (고통을 달래는 순서... 17쪽, 부분)
아, 이렇게 끝난다.
이 책을 사면서... 고통을 달래는 순서를 알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넌센스 퀴즈를 들으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사춘기 소녀처럼, 그런 마음이었는지도...
내 마음 한켠에 어둑하니 들앉은 그것이 고통이란 이름인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횡설수설...하더니... 견딘다...로 끝나는 시라고는... 하~~~ 입김 난다.
그래.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순서란 없다.
냉면 사발의 달걀을 면보다 먼저 먹냐 마냐는 먹는 사람 지맘이다. 달걀 싫음 안먹음 그만이고.
군부대 구내 식당에서 만난 군인들을 보고,
야채색 전쟁옷의 머리 짧은 남자들을 구경한다
창밖 라일락꽃잎처럼 그들도 다 합해 한사람같다 (98, 종군기, 부분)
아, 군인 아닌 사람이 군인을 보면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래, 라일락꽃잎이나 수국꽃잎보면, 그들이 다 합해져 하나처럼 보이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반은 밉고 그렇지...
해지는 저녁이면 한쪽 어깨에서
크고 작은 못들이 가만히 빠져나간다
액자처럼 몸 기울어 물받이통 내려가는 물처럼
버려지는 것들
언제나 조금씩 기운 것들이 나를 지킨다(조금씩 이상한 일들 3, 부분)
허전한 마음을,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버린 내 가슴에 건배라도 하고 싶은 그 시각.
술시(저녁 7-9시)가 되면 왜 남자들이 술집으로 몰려드는지... 왜 물받이통 내려가는 물처럼 쿨컥쿨컥 맥줏잔을 들어대는 것인지를... 조금은 이상하지만, 이해할 줄 아는 시각이 아닐까.
생각도 늦고 시계도 늦었다 강의하러 뛰듯 걸으며 '시창작가는길' 답장한다는 게 낡은 휴대폰 자음 하나 덩달아 뒤로 늦춰지면서 '시창자까는길'...로(조금씩 이상한 일들 2, 부분)
그런 날이 있다. 마음만 바쁜데, 시간은 많은 것 같으면서 계속 어딘가 늦게 도착하는데,
꿈만 같이 나는 바쁜데, 세상은 굼실~~ 느릿,
다가왔다 스쳐지나가버리는 그런 날이...
대학 때 친구 수정이가 이딴 생각들을 맨날 메모하곤 했는데...
시창작이나 시창자까는 길이나... 헛헛한 웃음뒤로 입맛이 쓰다.
쓴맛은 왜 목구멍 앞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거냐고...
새 도마를 샀다. 토끼무늬들이 피크닉을 가고 있다
도마일 뿐이지만 내 음식 밑에서 언제고
그들의 신발과 피크닉 가방이 나뒹군다
라일락 무늬 나무받침에 뜨거운 냄비 얹다가
라일락꽃 비명에 냄비를 놓친 적도 있다
문 열린 것들과 닫힌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어간다.
자운영꽃잎의 물방울들 나에게 더 잘 전해지듯이
나 그대에게 더 잘 전해지지 않듯이(화상, 전문)
아, 섬세하다 섬세하다 해도, 이렇게 섬세한 마음이라니... 어찌 상처받지 않고 살랴.
자운영 꽃잎이나 라일락꽃처럼 작고 섬세한 것들이 그미에겐 더 잘 전해지고,
또, 그의 마음은 세상에 잘 전해지지 않은 마음이라니...
라일락 무늬 받침에 냄비가 비명을 지르고 화상을 입는... 그 마음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아린 것이 마음이 입는 화상이라니...
비천과 험담 그치지 않는 입을 만났다
찻집 화장실에 가서 입을 몇번이고 헹궜다
다 헹구고 거울 속 입안을 들여다보니 혀가 두개였다(무언가를 듣는 밤, 부분)
아, 다른 이의 험담을 듣고도 귀를 씻지 않고 입을 헹구다니,
온 몸의 세포가 여리고도 여리구나. 그 여린 세포로 세상을 '견딘다'니...
읽는 내 혀가 다 아리다.
혹시, 내 혀는 몇 개냐? ㅠㅜ
누군가가 머리에 박은
10센티짜리 대못을 꽂은 채 떠도는
고양이 뉴스...
나는 확실히
사람과 잘 안 맞아 어떻게 사람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죽은 척하는 순간
고양이가 내 두 손을 지목한다(그날의 배경, 부분)
나도 어디선가 저 프로그램 본 일 있다. 어느 무지막지한 넘이 못박는 총으로 고양이를 쏘았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그는 종일 앓았던 모양이다. 내 맘이 다 아리다.
관상에서 제일 나쁜 건 불위에 올려진 물 없는
주전자 형상이라지 않는가
바닥 확인하고 싶으면 가끔 울어보라 한다(인간론, 부분)
아, 눈물 마른 사람은 불위의 물없는 주전자인가.
64개의 '괘' 중에 가장 나쁜 것이 바로 물과 불이 가야할 곳으로 가지 못하는 '미제'다.
미제는 '건널 수 없음'이고 '미치지 못함'이다.
해결할 수 없음이고 답이 없음이다. 오로지 문제만 가득한 것이 미제의 괘다.
수승화강이 길한 원리다.
하늘이 아래 있고, 땅이 위에 있어서 땅은 내려오려 하고, 하늘은 오르려 하는 것이 세상의 원리란다.
그런데, 머리 꼭대기는 물로 활활 타는데, 발밑은 냉랭한 찬바닥이다.
그러면, 온기가 돌지 않는다. 심장은 뜨거워서 고혈압으로 뒷골은 땡기고,
차가운 물은 절대 위로 오르지 못한다.
서로 설렁설렁 엉성하게 통하는 것을 소통이라 했거늘...
수승 화강... 차가운 물기운이 머리로 올라야, 이성은 차갑게... 된다.
화...를 내면 머리가 불이 난다. 뜨거운 기운은 아래로 아래로,... 그래서 손발이 따뜻한 이가 길한 것이다.
재수없게도 '물없는 불위의 주전자'를 떠올리면서 어떤 넘 생각을 했다. 욕이 나왔다.
그넘 인상이 딱 그렇다. 주는 것 없이 미운 넘.
의사의 처방은 항상 속을 따뜻이 하라는 것이다
전기담요를 먹을까요/ 달걀 비린내 나는 뜨건 백열들이라도 먹을까요/ 장미무늬 양초와 끓어넘치는 주전자를 함께 먹거나/ 홧홧한 박하나 겨자를 얹으면 좀더 빠를까요/ 손 닿지 않는 그 안을 어찌 뜨겁게 달굴까요
차라리 개미를 믿지. 개미 지나간 길의 온기를 믿지/ 사람이건 꽃이건 비단견직물처럼 매끄러워/ 미덥지 않았다
책상이나 서랍만이 더러 눈물보여주었다.
저녁 불빛들로 들판의 겨울 한낮들 덥혀질 때마다
실은 얼마나 따뜻하고 싶었는지
끝내 말할 수 없었다(해명, 전문)
그는 속이 시리다. 그래서 속이 타고, 상한다.
실은 얼마나 따뜻하고 싶었는지... 아,
말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이란...
그의 이유모를 슬픔들을 읽다가, 고개도 주억이다가 만난, 마지막 산문 한 편은...
그의 전 시집 제목 같다.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그의 슬픔은 왠지 금세 조각날 것같은 사금파리같다.
그래서 김형경이 같이 떠오르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