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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강의 - 서양 고전 읽기의 典範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 안티쿠스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겨울에 강유원 선생의 책읽기 강의를 들었다.
네 번의 강좌일 뿐이지만, 선생의 강의에서 얻은 것이 많았다.
우선... 강의하는 방식에 대한 것.
처음엔 농담에서 시작한다.
한참 우스갯소리를 늘어놓다가, 한 꼭지의 주제어를 들이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 시간 중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이 주제어를 각인시키기 위한 시간으로 할애된다.
그 이후에... 이 주제어와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단테의 신곡이란 서사시가 르네상스 초기의 대작이란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대학다닐 때 세계문학전집에서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읽어본 적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신곡은 단테가 지옥, 연옥, 천국의 이야기를 읊은 것...이라고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신곡에 대해서 왜 공부해야 하는지, 도대체 신곡을 왜 고전이라 하는지...
이런 마인드가 전혀 없었기에 신곡을 읽어야겠단 생각을 전혀 할 필요가 없이 마흔을 넘게 살았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것도 가슴을 쿵쿵 뛰게하는 생각들이 대뇌 피질만이 아니라, 온 몸의 세포들을 일깨우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 온 몸이 공부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게 된 것이나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저자가 1997년부터 1998년까지, 1년 반 정도를 한 달에 한 번씩 15회에 걸친 강의를 한 것이 이 책의 모태가 되었다.
우선, 강의 형태가 정말 감동적이다.
그리고 강의 말미의 토론이 짧게 덧붙어있는데, 강의를 하는 이 못지않게 듣는 이들의 이야기도 전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 만약에... 한국에서 단테를 40년 연구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서, 그가 한 달에 한 번 강의를 한다고 치면... 거기 가서 이런 수준의 토의를 벌일 사람이 몇이나 있을 건지... 두려움에 싸여 토론을 읽곤 했다.
신곡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고전을 읽을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정리가 참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클래식'과 '클래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는 로쟈님의 페이퍼로 대신한다. ^^ (1장을 잘 요약해 주셨음)
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MAIN&rsec=MAIN&idxno=9210
강의를 읽어나가면서... 이탈리아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불처럼 일어났다.
전혀 모르던 것처럼, 단테의 신곡은 한 행이 11음절로 이뤄진 정형시란다.
그리고 신곡은 총 100개의 장으로 되어있는데, 지옥이 34장(처음의 서장 1편), 연옥과 천국이 33장씩으로 되어있다고... 10의 제곱인 100이란 완전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란...
그리고 3행이 하나의 덩어리로 되어있다고 하는데...
그 3행들의 각운이 aba bcb cdc... 등으로 반복된다니... 그걸 읽지 못하고 넘어가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이태리어를 전혀 모르는 지금으로선 그 재미를 놓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정형시가 없는 한국에서... 소네트라든지 하이쿠같은 정형시의 맛을 느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일본인의 강의인 만큼, 하이쿠 같은 것과 빗댄 구절이 많은데... 솔직히 부럽다.
13세기-14세기 초에 살았던 단테와 그가 살았던 시기인 중세 말기의 서구 문화,
이런 것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당시의 공용 국제어인 라틴어를 버리고 자기네 이탈리아의 지방어로 작품을 쓴 것은 대단한 시도였다고 한다.
영국의 세익스피어, 독일의 괴테가 있다면, 이탈리아는 단테가 있겠다.
그리고, 중세의 영향을 많이 알아야 하니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세계사의 그늘에 가리운 부분이지만 십자군 전쟁 이후의 아랍 문명의 전파의 영향에 대한 이야기도 간혹 등장한다.
말 그대로 강의이기 때문에 분량이 심하게 많지 않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며,
무엇보다 지난 달의 강의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한 후에 강의를 시작하기 때문에,
나처럼 기억력에 자신이 없는 독자라면 정말 쏙 빠져서 읽기 좋은 책일 수밖에 없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
아직 오지 않은 것의 확증...
이것이 신앙의 본질... 같은 구절이나
소망은 미래의 영광을
확고한 마음으로 기대하는 것... 같은 구절은 재미있는 생각이다.
단테 알리기에리라는 탁월한 정신을, 이마미치 도모노부라는 성실한 학자의 강의로 듣는 일,
그리고 토요일 저녁 3시간을 수십 년간 단테의 신곡 연구에 바쳤다는 학자의 말은... 일본한테 아무리 축구 이겨도 일본이란 나라를 뛰어넘을 수 없음을... 일본의 200년 역사에 빛나는 번역과 서구 문화 공부의 내공을 실감하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일본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망상이 아닐까?
일본은 지금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더 투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삽질만 하고 있는데...
정작, 고전은 교과서에서 빠져버린 것이 아닐까?
정말 고전이라면, 교과서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세계사나 윤리 교과서에서 단편적으로 암기하는 독서가 아니라, 제법 맛을 볼 수 있는 고전에 대한 독서 교육을 반드시 시켜야 미래를 준비하는 무기로서 <클래식>의 힘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복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고전을 그저 '옛날 책'으로 치부하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고전은 한때,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틀로 작용했던 책들이다.
그 당시엔 왜 그런 책들을 쓰고 읽었던지를 생각하는 일은, 곧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일과 유비관계에 놓여있다.
단테의 신곡이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든 당대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힘을 갖고있음을 배우는 것이다.
세상이 '예'를 잃으면, 의인이 등장한다고 했던가...
고전을 통하여 문제해결하는 읽기에 도전하는 삶도 가치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스승이 드문 이 나라가 안쓰럽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열린책들'에서 나온 '신곡'을 함께 읽다가... 뒤로 미뤄두었다.
강유원 선생 말대로 천천히... 읽도록...
그러나,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읽을 수 있는 힘을 이 책을 통하여 얻은 것이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