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 - 가슴을 도려내는 듯 아름다운 우리 문장 43
장하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 글들도 흔히 보인다.
그것이 이 책의 청신한 의도를 구태의연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단점이기도 하다.
저자의 연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2008년 작고) 연세 드신 분이니만큼 옛문장에 대한 애착이 크셨을 것이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에, 낭독하고 암송하기 좋았던 글들을 사랑하였으리라.
옛날 30년 전에 교과서 안 바뀌던 시절엔, 선생님들이 문장들을 외워서 수업하곤 하지 않았던가.
간혹 상춘곡을 외우라는 황당한 요구는 본고사 세대도 아닌 나를 짜증나게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글이란 것이 읽어서 느끼는 것과, 입말로 외워서 좋은 것이 있다.
입말로 외워서 매끄러운 느낌을 얻는 글들은, 피땀흘린 퇴고의 결과라 볼 수 있겠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알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32)
얼핏, 이 글은 요즘 적은 글로 보이지마는, 1920년대 후반의 식민지 시대의 이효석이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적은 글이다. 요즘도 저런 이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마는...
47쪽의 윤오영의 '행화'은 가슴 아릿하게 만드는 글이다. 그렇게도 활짝 잘 웃던 기생 행화가 어느 날 훌쩍 목숨을 놓아버리게 된 사연을 알지도 못하면서...
65쪽의 정비석, 산정무한 마무리는 아무리 읽어도 절창이다.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 싣고 각축을 다투다가 한 웅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100쪽. 김진섭의 백설부도 아름답다.
백설이 경쾌한 윤무를 가지고 공중에서 편편히 지상에 내려올 때, 이 순치할 수 없는 고공 무용이 원거리에 뻗친 과감한 분란은, 이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의 처연한 심사를 가지게까지 하는데, 대체 이 흰 생명들은 이렇게 수많이 모여서 어디로 가려는 것인고?
백낙천은 시를 지으면, 자기 집에서 심부름하는 무식한 노파에게 자기가 지은 시를 읽어주고, 그 시가 어려워서 모르겠다고 하면, 다시 쉽고 재미있다고 할 때까지 고치고 다듬고 퇴고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단다. 재미있는 대목이다. 기억하고 싶다.
평범한 표현 속에 비범한 내용을 담으라는 쇼펜하우어의 말도 같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재미있게, 재미있는 것을 깊게...
수업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197쪽의 4C 구성도 유사한데,
Clue 단서 실마리, 화제
Consideration 고찰 연구, 심화
Comparison 비교 다른 각도, 시점
Consent 동의 설득, 찬동
글쓰는 일이나, 수업이나...
처음엔 글쓰거나 가르칠 꼬투리를 잡고, 그 내용을 깊이 연구심화하여 모으며, 다른 각도와 시점의 생각을 접합하여, 다른 이의 의사를 이끄는 것이 아닌가 싶다.
칼럼니스트 김성우 님의 '떠나가는 배'를 한번 구해 읽고 싶다.
'스승과 제자'에서
중학교 입학 첫날, 아버지가 미싱으로 만들어준 사제 모자를 썼다가, 담임에게 죄없는 구타를 당한 대목은, 종이 호랑이인 권위주의에의 어기찬 항변이라 하니...
우리말로 이루어진 문장 중에 이보다 뛰어난 것이 얼마나 많으랴마는, 지나간 옛사랑의 그림자를 모은 것으로 이 책도 고인의 가던 길을 잘 보여주는 글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옛 말투에 얽매이는 모습은... 권해주고 싶은 책에서는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