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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 - 소통의 기술, 세상을 향해 나를 여는 방법
유정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은 '유정아의 말하기 강의'다. 그런데, 표지에도 책등에도 '서울대'가 90도 회전하여 유정아와 말하기 사이에 개입하고 있다.
이런 걸 '미필적 고의'라고 하나?
사실 이 책의 진짜 제목은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가 맞다.
서울대를 색깔도 살짝 다르게 하여 슬쩍 비틀어서 슬며시 집어넣은 것은...
재수없어~ 보이지 않게 하면서도, 이 책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100% 기여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강의했다는 것도 그렇고, 저자가 서울대 나왔다는 사실을 찾아보고 나서도 그렇다.
(더구나... 뒤편의 정운찬은 뭥미?... 밥맛이다. 품격의 기초인 말하기를 운운하다니... 하긴 돈받아 처먹은 거랑 더러운 거... 밝혀지기 전이긴 했지만... 뭐, 손석희와 조국 선생님은 나도 좋아하지만)
이 책은 '말하기'에 대해서 썩 경쾌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다.
뭐, 말하기 책을 내가 제법 읽어는 봤지만(화용론 쪽의 책들은 지나치게 미국쪽에 기울고, 또 재미도 무척이나 없다.) 그 중에선 좀 나은 편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바쁜 시대에... <진심만한 말하기는 없다>는 밋밋한 말을 듣자고 이 책을 펼치기는 또 그렇지 아니한지...
이 책은 말하기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의식>으로 치우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처럼 아나운서의 경험을 충분히 녹여내는 수필집도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강의로서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책으로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면도 있을 수 있다.
아나운서였던 자신의 경험을 좀더 많이 섞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대화는 결코 즉시 시작되지 않았고, 서두르는 법도 없었다. 아무리 중요한 사안이라도 아무도 질문을 해대지 않았고 답변이 강요되지도 않았다. 생각을 위한 고요는 진정으로 예의 바른 대화의 시작이었다...(42) 인디언 부족 라코타족의 대화법이다. 듣기의 힘을 강조하면서 예를 든 것이다.
술은 마실 줄 아느냐?
술 한 잔에 눈이 촉촉이 젖어들어, 젖은 눈이 아니고는 바라볼 수 없는 이 세상을 그 눈 들어 바라보니 술을 마실 줄 안다고 할 수 있거니와, 그러나 술을 마셔도 나 자신을 놓지 않으매 아가 피아가 되고 피아가 아가 되는 대취 상태로 가지 않사옵니다. 이는 술을 아니 마심과 같은 경지이니 술을 마실 줄 모른다고도 할 수 있겠나이다...(174)
이런 상상을 적은 구절들이 좀더 많았으면... 이 책이 더욱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반신은 누가 쳐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함을 견지하고 상체는 춤을 출 수도 있을 정도의 유연함(72)... 이것이 발성의 기본이다.
나처럼 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하게 되는 말하기 방법이다.
그렇지만, 또 막상 목청으로만 떠들 때도 많다.
소통할 줄 모르는 시대에,
번지르르하게 말이라도 잘하고 싶은 욕구때문에 이 강의가 미어터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소통을 이야기하는 이런 책은 반갑다.
그러면서도, 작가의 생각이 의심스러운 구절들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등장한다.
이라크에서 '화학무기'를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라크의 화학무기 보유와 북한 핵 보유를 <현재의 사실>로 기록하고 있다.(124) 위험한 대목이다.
이 책은 스피치, 대화, 인터뷰의 순서를 따르고 있는데, 그것은 강의 내용상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설명 내용은 특별하게 별다른 것은 없어 보였다. 물론 수업 시간에 이 평범한 내용을 그 나름의 노하우가 깃들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설명하기때문에 수업이 마법적으로 먹혀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덜떨어진 국개의원 한 마리가, 김구라를 물고 늘어졌다.
신성한 국회의 <국정감사> 자리에서, <방송에서 욕하는 김구라를 빼라>고 하는 말은... 글쎄, 국정감사가 뭔지 도대체 모르는 작자가 하는 말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말이면 다 말인줄 알고 지껄이는 '높은 분들' 가득 모인 '국회'같은 곳에서 말 제대로 하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겠다.
세상은 닫혀 있고,
서울대 나왔다고 해도 세상은 닫혀 있고,
그러니 아이들이 온갖 것들에 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이제 김태희처럼 성형 수술까지 하고, 유정아표 '참기름 바른듯 매끈한 말'로 세상에 나올 <서울대 아이들>이 짐짓 무섭게까지 느껴진다.
김창완처럼 수더분하게 서울대나온 표 안 내도 세상이 다 알아주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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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쪽. 오류 하나.
훈민정음 창제 이후 당시 언중의 발음에 기초하여 문헌의 글자 오른쪽에 방점이 찍히게 되었는데... '방점'은 글자의 왼쪽에 찍던 것이었다. 세로쓰기 한글의 강조표시로 쓰이는 방점이나 오른편에 있었던 것이지. 더군다나... 방점은 '당시 언중의 발음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중국의 소리에 가깝게 4성을 표현하려 노력한 것이 방점'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