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의 학창 생활 속에서 오손도손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징그러웠던 과거마저도 추억처럼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결국 나도 교사라는 직업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덜컥 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교사로 살아온 21년. 참 많은 꼴을 당하고 보았다.
선배들이 '초임 시절이 가장 성공적인 교사 생활'을 한다던 말을 들을 때, '쳇, 배부른 소리 하시네~'하면서 속으로 투덜댔다.
내 시간엔 아이들이 떠들고 자기 표현을 막 하지만, 선배 교사들 시간엔 조용히들 있었기 때문이고, 옆의 선생님들 반은 자습 시간에 조용히도 지내는데, 우리반은 늘 난리부르스를 땡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가능성 덩어리>이면서 <엉터리 초보 교사>로 교직을 시작한다.
머릿속의 귀엽고 재치있는 제자들은 현실 속에서 대마왕 왕마녀로 둔갑해 버리고,
교실 속은 날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시끄럽고, 한마디로 엔트로피 법칙이 가장 잘 통하는 공간이란 것을 초보 교사때 실감하면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엉터리 선생때, 멋도 모르고 아이들과 나누었던 편지들(난 21년 전의 편지들을 아직도 창고에 가지고 있다. 간혹 예전 제자들에게 그거 가지고 있단 이야길 하면 엄청 보고 싶어한다. 유치찬란했던 그 아줌마, 아저씨들의 중학생 시절을...), 그리고 운동장 야영을 하면서 운동장에 큰대자로 누워 별을 바라보라고 했던 웃기는 나의 대사들... 소설쓰기반도 맡아서 애들도 써보고 내 소설도 읽어주기도 했던 정말 봉숭아학당같던 시절...
10년쯤 지났을 때, 나는 드디어 베테랑 교사가 되기 시작했다.
내 수업 시간엔 아이들이 떠들지 않기 시작했고, 교과 내용은 큰 예습 없이도 쑥쑥 정리해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수업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학생부 선생이라 맨날 무서운 얼굴로 들락거렸지만, 아이들과 만들었던 문집 몇 권은 아직도 내 교직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꽃이다.
이제 20년이 지난 나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생활지도부장이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아이들과 머리털때문에 싸우고, 학생의 자살 앞에서 망연자실 넋을 잃은 틈바구니로 기어든 브로커들과의 신경전으로 노이로제 생활도 몇 달 했다.
수업은 그야말로 그때그때 생각나는대로 진행하는 것이고, 1년을 가르쳤어도 아이들 이름이 혀끝에서 맴도는 게 아니라, 1년을 가르쳤는데 처음 만나는 것같은 얼굴의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정말 실패한 교직을 밟고 있는데, 두려운 것은 앞으로 남은 20년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이 책은 위안을 준다. 마치 속미인곡의 보조적 화자가 "글란 생각마오"하는 위로를 주듯.
나의 실패는 나만의 실패가 아니었다.
교사들의 식물화 현상(162)이란 낱말을 읽고, 히야, 기막힌 표현이다. 라 생각했다.
교사들은 빨리 공문 처리하기, 꼬투리 잡히지 않을 방식으로 처리하기, 대강 알아서 처리하기, 형식 잘 갖추기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며, 공고한 관료적 행정 구조 속에서 자율성을 발휘하기 보다는 명령, 시달, 침묵, 묵종, 순응 같은 부정적 미덕을 내면화할 가능성이 높다(161)
아, 나는 책 속에 '죽은 영(靈)'으로 활자화된 나의 초상화를 읽으면서 눈물마저 나려고 했던 것이다. 김수영이 살아있는 글자(활자) 속에 죽은 정신을 한탄했듯이, 나도 살아있어 보이는 육신 속의 사령을 눈물겨이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교육> 앞에서 1997년 교육개혁 이후 교사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교사는 성장하는 직업이다.
교학상장,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은 서로 상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의 성장판은 계속 자란다고 한다.(145) 교사의 성장판은 자부심이다.(148)
그렇지만, 현실에서 그 성장판이 망실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영이 되어가면서...
꿈꾸는 자가 행복한 까닭 :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고 그래서 그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갈 이유가 가득하기 때문이다.(26) - 글쎄, 대한민국 교육에 어떤 희망이 담긴 것일까? 이 책은 주로 '욕망' 또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고, 결국 희망찾기에 성공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지만, 앞에서 적은 것처럼, 절망하고 있던 JM 교사에게 역설적인 위안을 줄 수는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학부모들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촛불을 들고 밤에 지친 몸으로 들어가서도 학원 다녀온 자식 간식 챙겨준다는 역설처럼... 아동기로 집중되어가는 교육게임과 서열 경쟁을 통해 평생을 보장받으려는 지난 시대의 생존 전략이 모두 <낡은 환상>에 불과함을 함께 깨닫고 대안을 모색하여야할 필요성이 시급한 때임을 강조해 말한다.(124)
공교육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덕목은 이런 것이다.
생명, 생태, 평화, 인권, 정의, 자유, 관용, 참여, 약자보호, 반차별 등... 정치적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합의하는 가치들.(128)... 그러나... 이런 것들을 배제하는 영 교육과정(null curri)속에는 공교육이 <실패하기>를 희구하는 집단의 입김이 든 것이다.
그것은 교육과정 개발에서부터 적용까지 일관적으로 적용된다.
공교육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답을 찾는 훈련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가르쳐야 함을,
답을 찾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써 보는 일이 꼭 필요한 과정임을.
국가는 알면서 배제한다. 그저 이전 지식의 낡은 틀을 암기하라 강요한다.
그래야, 낙후된 자신들의 '본색'이, '벌거벗은 임금'임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성공한 대안은 없다.
늘 실패한 대안들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움트는 변화의 싹, 암기를 벗어난 사고력을 길러주는 동아리 훈련,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교사들의 힘.
공공의 실험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하고, 그 길이 올바른 길의 하나일 수 있음을 보여줄 때, 교육 개혁은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의 창의적 교양인으로서의 인재를 운운하면서, 경쟁만을 내세워선 안된다.
'존재하려는 용기'를 가르쳐야 하고, 인적 자원으로서의 인간을 넘어선 인간 냄새나는 존재로서의 '휴먼웨어'를 발견하는 학교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사교육의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그리고 대학 입시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는 전문가의 이야기라기보다, 우리 <이웃들의 육성>을 통하여 '인류학적 연구방법'으로 기술되고 있기에 전혀 어렵지 않고, 이물감이 없다.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읽어보길 권할 만한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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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선 외래어표기법을 무시하려는 듯, '엘리뜨, 씨스템, 싸이버, 콘쎕트' 처럼 적고 있다.
뭐, 한국어 발음에 가깝게 적는 것도 좋지만, 엘리뜨...는 좀 아닌 듯. ^^
'버스'를 뻐쓰로 쓰는 등에는 난 찬성인 1인이지만,
암튼 맞춤법에 어긋나게 쓴 데는 뭔지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일러두기를 찾아가 봐도 그런 말은 없다. 음, 다음 판이 나오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일단 의견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