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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 이미륵의 자전 소설 ㅣ 올 에이지 클래식
이미륵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09년 10월
평점 :
이미륵. 그가 어찌하여 독일까지 건너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독일에 살면서 얼마나 절절한 그리움으로 조선을 생각하며 이런 수필들을 남기게 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글이다.
이 책은 젊은이보다는 인생을 지긋하게 되돌아보게 되는 나이의 중년에게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의 회상이라든지, 농경 사회 특유의 변하지 않는 진한 문화의 흥취는 독한 청국장 냄새를 구수하다고 느낄 정도의 연배는 되어야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이다.
양반집, 대지주의 아이로 자란 이미륵에게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포근한 태내의 추억이었다.
주변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이미륵보다 훨씬 생동감 넘치지만, 결국 그들은 조선의 민중이었고, 이미륵은 고요한 세상의 중심을 매끄럽게 미끄러져 들어가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추억된 고향과 조선은 넉넉하고 아름다운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던 모양이다.
이미륵의 이 글은 머나먼 타국에서 고향잃은 <디아스포라>가 되어 날마다 떠오르는 고향의 초가와 저녁 연기, 조선말과 된장국 냄새...를 적은 것이지만, 그러기에 조선의 어린 시절을 명징한 언어로 살갑게 적어낸 작품이라는 데 그 가치가 있다.
쓰러진 아버지를 침으로 고쳐낸 이의원, 그리고 돈을 밝히던 그의 죽음...(65)을 담담하게 적고있는 그의 글은 옛이야기 들려주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한자도 없고 깊은 뜻을 지닌 문장도 없어, 이런 책들을 읽으면 네가 현명해질 것 같니?"(100)
신식 학교를 다니는 동생에게 누이는 이런 말을 한다. 조선인의 어리석은 자부심과 신문화에 대한 깔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한편 이런 자부심조차 강제로 해체당한 불쌍한 조선의 근대는 더 가엾다.
그의 이 책은 짧은 수필들을 집대성 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어린 시절, 이 나라는 평화로웠다.(143)"는 것이 그의 생각을 요약한 것 같다. 지주의 아들답다. 가출을 결행했던 그가 무기력하게 소작인들의 시골마을로 돌아갔을 때, <이제 나는 소음으리고는 전혀 없는 이 고요한 마을에 다시 돌아온 것>(154)이라고 느낀 것도, 그가 얼마나 양반집 도령이었는지, 세상의 거센 풍파를 감당할 넉넉한 양수 속에서 배냇짓하던 태아에 불과한 사람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드디어 서울 생활을 하면서 근대 의학을 공부하는 이미륵.
"남쪽 새 일본인 구역인 그곳에서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불빛이 반짝거렸고, 북쪽에서는 옛 조선이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삼각산 위에는 칠흑같이 검은 밤하늘이 펼쳐졌고, 오래된 창덕궁은 과거 속으로 침묵하고 있었다."(179)
시골의 책상물림에 비하면, 훨씬 성장한 관찰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역시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
'언제나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238)이란 말은 그의 어린 시절이 드디어 성인기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잠들었던 조선인들이 깨어나는 구절이기도 하다. 실제를 방기하고 사변 중심으로 흘렀던 조선의 풍조는 새시대와의 만남에서 처절하게 깨져버렸던 것의 방증이라고 할까?
그의 글은 3.1운동 이후의 혼란기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데서 마친다.
옮긴이의 글과 연보를 통해 이미륵의 이후 상황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런 글들을 읽으면 나는 꼭 다른 생각이 든다.
현대처럼 '가족'이라고 하면 아내와 자식들...이 우선인 우리들과는 관점이 전혀 다른 시대의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생각 자체가 지나치게 관념적이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
정지용의 시 '향수'와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르고...'는 마치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여러 가지 변주를 울리는 한 사람의 작품인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1연에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듯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던 고향' 이야기로 '어린 시절의 고향'을 마음 가득하게 담아 두고,
2연에선 '가족'의 중심인 '늙으신 아버지'가 등장한다.
3연에서 '어린 시절의 놀이', 그 유년의 추억이 떠오른다. 여기까지 아주 절절하지만,
4연에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등장한다. 그미는 나를 보지도 않는다.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을 주울 뿐.'
마지막 연에서 '하늘에 성근 별을 배경으로 초라한 지붕 아래 더러는 앉고, 더러는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원경'으로 고향에서 마음은 멀어진다.
이런 디아스포라의 노스탤지어에서 차지하는 '아내'의 비중은 어린 시절 친구, 친척에 비하여 하찮고 또 하찮은 것이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래 보인다.
제 마음을 드러내 놓지 않는 것이 남자다움이라 생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절절한 애비의 마음이 드러난 정약용과 김구의 편지글들은 눈물겹게 정겹다.
김구의 '백범일지'도 결국 두 아들에게 남긴 이야기일 뿐이니...
근대 조선의 개항기, '한 남성의 미세사'로 압록강은 흐른다. 그렇지만, 그는 결국 조선의 땅을 밟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눈을 감았다. 인간의 삶은 그렇게 슬프고, 또 그렇게 작은 것이다.
이 책을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제목을 '압록강은 흐르고...'로 번역하는 게 낫지않을까 하는 것이다. '흐른다'로 단정짓기보다는, 이국 땅에서의 작가가 아련한 시선으로 동쪽을 바라보면서 적었을 'Der Yalu fliesst'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읽어 그 의미를 가미한다면... 연결 어미를 붙여 주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