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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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만으로도 러시아 문학을 가까이 한 사람이란 느낌이 든다.
하루 천 명이 넘고, 이제까지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들락거린 서재의 주인장, 그가 낸 책을 진작에 빌려 두었지만, 조금씩 야금야금 읽다가 오늘 마지막 천정환의 발문까지 다 읽었다. 

로쟈는 스스로의 블로그 이름을 '저공비행'이라고 붙였지만, 그가 <낮음>과 <날기>를 합성한 것이 그의 독서 편력과 서지학적 애정의 깊이 내지는 넓이를 측량하는 마음가짐이리라... 생각한 적이 있다. 낮게 날아야 자세히 볼 수 있고, 걷거나 탈것에 비해 나는 일은 자세함과 동시에 전체적 윤곽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니... 

그의 인문학 서재를 읽기 전에도 그의 글들은 많이 읽었지만, 늘 그의 다양한 관심과 박학다식함에 감탄을 할 뿐이었다. 그의 서재에 있는 글보다 내가 더욱 사랑한 글은 '독서 평설'에 실렸던 그의 글이다. 역시 활자화 된 것이라야 제대로 글의 느낌이 살아 나는 법이다. 그리고... 내 수준은 역시, 고딩의 수준일 것이고... 

스스로 이름붙인 곁다리 인문학자의 곁다리 독서 여정은 멀고도 다양하다.
남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꿈만 꾸는 일처럼 우스운 일도 없다.
그렇지만, 여느 서평집에 비하여 로쟈의 이야기 속에는 '스스로를 느끼지 않고 메마른 인간, 너무 많이 생각하는 인간'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솔직함과 러시아 문학이라는 낯선 이야기들까지 동서 고금과 고전을 망라하는 세계전도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목소리는 잔잔하고 나긋나긋하지만, 간혹은 수업 내용이 졸리기도 하고, 머릿속엔 다른 상념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인문학의 기본은 말(로고스)에 대한 사랑이며 존중이다.(356)
그 유구한 언어적 전승 속에서 거장들의 내면적 고뇌와 사유의 높이가 언어에 의해, 혹은 언어 자체로서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하지만 오역에서 우리는 이러한 '경이'는 커녕(고뇌 대신에) 짜증과(높이 대신에) 장벽만을 경험할 수 있을 따름이다.
 

번역과 오역에 대한 그의 글을 읽으면서 '말'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다.
로쟈의 저공비행에 동승하여 그의 페이퍼들을 읽는 일은 '지적 낭비벽'이 심한 나로서는 많은 책을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며,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정보들을 얻어들을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였다.
그렇지만,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하는 지젝의 이야기들을 비롯한 많은 철학적 언설들에 대하여... 경이보다는 짜증과 장벽을 경험하는 독서 경험을 이 책은 안겨주기도 하는 것이어서, 이 책을 읽는 일은 힘겨운 동승이기도 했다. 

그의 김훈, 김규항, 고종석 이야기는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나도 즐겨 읽는 작가들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아무래도 같은 시대를 살아 왔고, 살고 있는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짜증과 장벽이 덜하기도 했을 것이다. 
김훈을 에세이스트라고 하는 데 나도 동의하고,
김훈의 문체가 아름답고 유장한 패장의 문체라면,
김규항의 문체는 자객의 문체라는 말도 멋지다.

앞으로도 로쟈의 저공 비행은 계속될 것이다.
그의 인문학적 곁다리 걸치기가 나처럼 더 많은 얼치기 독자들에게 세례를 내릴 수 있도록 '독서 평설' 수준의 이야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계속될 것이다. 

자유란 위대한 선물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축복은 아니다.(62)
독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위대한 선물이지만 절대적인 축복은 아니기도 한...
독서에서 비롯된 자유 추구도 마찬가지고... 

글쓰기가 자동사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무엇을 이룬다는 ‘타동사’는 자동사의 극한이며, 자동사의 미래완료형이다.(20)

과연 그럴까? 엄밀하게 나누기는 어렵지만, 자동사적인 삶과 타동사적인 삶 중 인생의 극한까지 다다르는 삶, 미래완료형인 삶은 자동사적인 삶이 아닐까? 돈을 위해, 지위를 위해, 미래를 위해 사는 타동사적인 삶이 오히려 인생의 분편화에 기여하고, 완료될 수 없는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것이 아닐까? 로쟈의 말처럼 즐겁게 읽고, 가르치면서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무엇을 위한 타동사적인 삶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인간’을 이루는 그 무엇이 아닌가?(이건 뭐, 조선일보도 아니고, 한 토막을 가지고 씹어대는 글이란...) 

왜 고전을 읽는가.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궁색한 위선을 드러내는 말.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은 책’ 그래서 다시 읽는 책, 반복해서 읽는 책.(이탈로 칼비노, 26)

모든 독서는 저마다 무언가에 대한 저항 행위(다니엘 페나크, 30)

책 읽기의 즐거움은 쾌락이 아니라 향락.(32)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것이 생활의 기본이 될 때 즐거운 도망이 곧 ‘즐거운 저항’이 될 때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으로 추락하지 않게 될 것(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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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2>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명의 2 : 심장에 남는 사람 명의 2
EBS 명의 제작팀 엮음 / 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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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다.
그러나, 누구나 건강한 삶의 마지막에 맞는 죽음을 기대하지,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맞게 되는 '8월의 크리스마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충격이다.
심지어, 태어나자마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들락거리는 아기들의 경우나 나면서부터 불치에 가까운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기들의 경우, 삶이 과연 축복이기만 한지...  

이 나약한 인간상 앞에 질병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명의... 어떤 의사는 낮은 완치율을 높인 경우도 있고, 노력하긴 하지만 완치율이 한 자리수에 붙박인 경우도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의사들의 공통점은 따스한 사람들이란 것. 질병과 맞서 싸우는 말 그대로 '전문의'로서 환자들을 다독거리며 마음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라는 것. 

고딩들 중 자연반 아이들이 성적이 높으면, 적성에 상관없이 의대에 진학하길 원한다.
먹고 살기가 보장된다고 하지만, 그처럼 고단한 길에 과연 알맞을까 생각해 보면, 어울리지 않는 아이들도 의대로 의대로 달려가는 것이 IMF 이후의 추세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런 책을 들려주고 싶다. 정말 의사들은, 명의들은 자신의 영달 따위는 추구하지 않고, 가족의 안위도 신경쓸 틈 없이 환자들 사이에서 진정한 벗이 되어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명의가 말하는 명의는 이렇다. 

착한 사람이어야죠. 환자한테 항상 따뜻하게 대해줘야죠.(161) 

의사가 가장 위험할 때는 본인이 자만할 때거든요. 항상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의자가 환자보다 단지 열 배 정도의 의학지식을 가진 건 맞지만 의사가 우리 몸과 질병에 대해서 100% 알고 있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의사는 항상 겸손해야 해요.(206) 

돌체 마 푸오코소(부드럽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213) 

대학병원 의사는 진료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 교육과 임상연구에도 힘을 써야 합니다. 연구와 교육에 힘을 쏟지 않으면 우리나라 의술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일종의 의무감이 있어야만 하는 그런 자리이지요.(226) 

명의를 빨려들어갈 듯이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나쁜 짓 안 하고 살아야 겠다는 것.
언제 돌이킬 수 없는 병과 만날 지 모르니, 후회할 짓 하지 말고 살아야겠고,
나쁜 행동을 일삼다보면 병마가 빨리 방문할지도 모를 일. 

결국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만 되는 것이란 생각을 끝도 없이 하게 된다.

의사를 꿈꾸는 제자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 이 책을 서평단 도서로 받았으니...
아직 본격적으로 판매가 되진 않을 수도 있겠는데,
다음 쇄를 찍는다면 편집자가 몇 가지 고려해 주었으면 하는 것들...

여러 사람이 나누어 집필하긴 했지만, 어떤 파트에서는 가명을 쓰고, 어떤 곳에서는 000으로 표기하고, 다른 곳에서는 K씨, L씨(355) 등으로 표기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 심지어 53쪽에서 가명으로 나왔던 사람이 56쪽에서 실명이 거론되는 경우도 있어, 편집자의 세심함이 좀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실명이 거론된다 해도 그분의 삶에 큰 치욕이 되는 것은 아닌 부분이지만, 그래도 감추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당사자로서는 당황스런 일일 수도 있다.) 

221. 1기에서 4까지로 나눈다... 4(기)가 빠졌고, 

254. 영상을 바라보며 손을 움직이되면... 손을 움직이 되면 

265. 5밀리미터의 얇은 봉합사가 두 번이나 나오는데... 5밀리미터면... 과연 얇은 걸까? 

267. 미국 학회지에 개제돼... 잡지에 싣는 일을 '게재'한다고 한다. 

270. 전치태반의 설명... 전치태반 태반 자궁 출구에 근접해 있거나... 전치태반 태반 자궁 출구에 근접해 있거나... 이런 게 아닐지... 

358. 수염 모발 세포의 유전자 발현에서... 수염 모발 세포의 유전자 발현에서 차이가... 이렇지 않을지... 

사소한 맞춤법은 고치면 되겠고, 잘못된 용어는 바꾸면 되겠는데,
아래 봉합사와 아래 두 개의 설명은 문맥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지, 내가 설명하긴 어려운 부분들이라 마립간님같은 동종의 업계에 종사하는 이의 충고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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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공간>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역사의 공간 - 소수성, 타자성, 외부성의 사건적 사유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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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에필로그가 인상적이다.
'도그빌'이라는 영화와 여수 출입국 사무소 화재 사건을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가슴아프게 읽었다.

도그빌이란 영화를 봤을 때, 천재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답답함이 화면에서 가득 느껴지는 영화.
개같은 마을의 개같은 인간들. 이어지는 착취와 인간적 모멸감...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바로 <시간성>임을 이진경은 천착하고 있고 그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궤적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의 단편들은 <시간성>이 상이하면 상이한 '공간성'을 이룬다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하여 다양한 화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옴니버스식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한편 한편이 재미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하여 산만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한국에서 핍박받는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이진경은 한국과 동남아의 '시간적 거리'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 시간적 거리는 <근대> <민족> <국가> <역사>등의 용어가 사용될 때 항상 은밀히 끼어든다. 

그렇지만 그 은밀함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며 편파적이어서,
이쪽 시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호의적이고,
저쪽 시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폭력적이다.
일본의 근대가 그들에게는 문명을 주었지만, 조선에게는 절망을 선사한 것과 같이... 

어떤 점의 미분 계수를 결정하는 것은 그 점을 둘러싼 이웃 관계, 그 점을 포함한 채 구부러지는 선의 양상(37) 

이런 글맛이 이진경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미분 계수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명쾌한 설명도 없을 수 있지만, 미분 계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고사성어도 아닌 그런 용어들이 주는 절망감이 글에서 배어나는 것은 그의 글이 가진 단점이 된다. 

'시간'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서로 다른 리듬의 시간 속에 사는 사람들 간에 거리감과 동경과 무시와 멸시가 공존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공간'이다. 

'아마존의 눈물'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거기 나오는 이들은 벌거벗고 살면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지만, 그들은 턱에 특이한 기구를 매달기도 하고 고추에 나뭇잎을 걸치고 다니기도 한다.
그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것. 

랑시에르(76)의 '치안'을 들고나오기도 하는데, 말할 수 없는 자로 하여금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게 하는 것. 이런 것을 그는 '치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의 공간은 틈새를 노리고 치안의 부조리를 <말한다>. 그리고 <말해야 정치>가 된다. 한국 사회의 2010년은 과연 말할 수 있는 공간인가? 정치가 부재한, '동혁이 형(개그콘서트의 등장인물)'의 <샤우팅>이 가능한 공간일까? 어느 날부터 동혁이 형이 편집당하는 그런 사회는 아닌 것인가? 

외부자, 소수자, 그들과 내부자, 다수자들의 시간적 리듬의 차이가 엮어내는 공간적 비틀림은 80년대 그 뜨거웠던 논쟁을 불러왔던 <사회구성체론>의 NL, PD, ND 논쟁과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 가장 큰 모순이 무엇이고,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논의하던 청년 이진경은 이제 시야를 넓혀 다시 <무엇인가를 하려면>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 엮인 글들은 그의 고민들이 흘러간 궤적을 마치 셔터를 열어둔 카메라의 필름에 각인된 불빛의 흐름처럼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아무래도 산만한 느낌...  

<민족> <역사> <진보> 등이 어떻게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의식을 점령하며 분할하는지, 어떻게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게 되는지 그 은밀한 비밀을 공부하고 싶은 이라면 추천할 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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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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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의 작가 김려령. 완득이란 단 한 작품으로 너무도 강렬한 자기만의 각인을 새겨버린 작가의 작품이라 관심이 갔지만, 리뷰에 올라오는 청소년 자살이란 문제는 이 책을 한동안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작년, 학생 부장을 맡아 몸으로 때우고 있던 어느 날, 학교에서 한 학생이 투신하였고, 그 날 이후로 2009년의 내 시간은 블랙홀로 휘말려 들고 말았다. 학부모는 온갖 시비를 걸어 학교를 피곤하게 하였고, 결국 결론은 더러운 합의금 요구로 귀결되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이라든가 애잔함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결국 아이가 스스로 삶을 접게 한 그 지겨움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를 깊게 생각하게 한 1년이었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스스로 삶을 저버린다는 것은, 사회에서 그 개인을 포용하지 못했다는 증명이기도 한 것이다. 스스로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존재하였음을 증명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랄까. 

청소년 자살이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
그것은 이 나라의 청소년들이 살고있는 모습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자살률이 그닥 높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다 들 지경이다. 

'공교육'이라고는 없는 나라. 차라리 독재 정권 시절에는 '권력의 이데올로기'라는 공교육이라도 학교에서 시행되었지만, 독재 정권의 공교육이 쫓겨나간 빈자리에는 <신분 상승>을 위한 욕망만이 들어앉았고, 그것은 곧 공교육의 이름을 버린 것이었다. 

공교육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사교육은 '개인의 영달'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으며, 아이들의 온몸을 내던지는 저항도 '개인의 영달' 앞에서는 실패한 자의 허랑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천지는,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는 허망하게 세상을 버린다.
얼핏 천지를 왕따의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왕따 소설이 아니다.
화연이도 천지를 왕따시키기만 한 아이는 아니었고, 화연이 역시 시대가 왕따시킨 개인에 불과했다. 

사고로 죽은 천지의 아버지도 사회에서 소외당한 인물이고, 마트의 두부 판촉원인 천지엄마도 소외계층이다.  

천지가 실패 속에 용서의 메시지를 남기는 것으로 퍼즐 조각 맞추기는 점차 완성되는데, 비극적인 소재를 마치 스릴러 읽듯 긴장감넘치게 만드는 것이 김려령의 필력이겠지만, 실패 속에 남긴 천지의 메시지는 왠지 천지를 천지답지 못하게 만든 느낌이 들었다. 

천지는 중학교 1학년일 뿐이지만, 세상의 온갖 고뇌를 혼자서 안고 사는 듯한 아이다. 아직 초경도 맞지 않은 어린 몸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러 성상을 거친 노인의 그것과 같다. 천지에게 얽히고 설킨 어린 시절의 악재들은 천지가 어디에도 풀어내지 못하는 '옹이'를 만들게 만들었고, 결국 천지가 즐겨 하던 실뜨개질과 반대로 풀리지 않는 매듭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가득한 삶. 결국 실패(왜 자꾸 실꾸러미인 실패가 失敗로 읽히는 것인지)에 유서를 다섯 장이나 남기고 세상을 버리는 천지의 삶. 

우발적으로 일어난 듯한 아이들의 죽음 저 편에는 이렇게 풀리지 않는 매듭들과, 풀려고 하면 할수록 꼬이는 실꾸러미들이 결국 인생은 자신이 뜨개질하는 죽음으로 가는 승차장처럼 느끼게 만드는 다종다양한 사건들의 집합체가 반영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사회처럼 우아한 거짓말로 넘쳐나는 곳이 또 있을까? 

지금, 봄방학 중이지만 나는 학교에 나와서 아이들 '자습 감독'을 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순전히 자율적인 학습인 셈이어서 20명 가량의 학생이 자습을 하고, 나는 시간에 맞춰 청소도 시키고, 공부 시작도 시키는 좀 단순한 감독인 셈이지만, 다른 학교들은 3학년 담임들이 모두 나와서 '자율적이지 않은 자율학습'을 '감독'하고 있다. 아직 3월 1일자 발령이 나지도 않은 담임들로 말이다. 미친 짓이다.  교사도 쉬어야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다. 

대학 가면 뭔가 될 것처럼 거짓뿌렁 투성이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몰아대지만, 사실 대학 가면 '동혁이형' 말처럼 '신용 불량자'를 양산할 뿐인 경우가 숱하지 않은가? 정말 대학 등록금 모아서 5천만원 정도 자본으로 조그만 가게나 쇼핑몰을 해보는 것이 오히려 큰 공부가 아닐까? 

금메달이 아니어도 훌륭하다는 입에발린 말과 달리 금메달만 칭송하는 더러운 방송과,
가난한 학생도 배울 기회를 주겠다는 아름다운 말과 달리 초등학생 무상 급식조차 반대하는 더러운 정치가들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그래서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에 대한 슬픈 단상들이 가득한 <우아한 거짓말의 사회> 

그 슬픈 사회를 정말 <쌈빡한 대화>로 읽어내는 것이 김려령의 '우아한 거짓말'이다.
엄마와 딸 사이에 이렇게 시원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가정이라면, 내가 보기엔 천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살의 개연성이 더욱 높은 아이는 화연이 같은 가정과 조건의 아이가 아닐까. 자살하는 학생들의 가정 형편보다는 부모의 무관심이 상관 관계가 높다는 것이 내 심증이기 때문이다. 

만지와 오여사(천지 엄마)의 대화가 통하는 세상이라면, 아마도 자살하는 아이 따위는 없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인데, 김려령씨, 당신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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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23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한'이란 수식어가 듣는 사람을 더 슬프게 하네요. 화이트 라이처럼 서로를 배려하는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의 기능에 방점이 찍힐 텐데, 이건 순전히 거짓말을 분식하는 '우아한'이라는 형용사에 방점이 찍힌 경우네요. 사회를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거짓말을 위한 사회가 되나요 그럼...쩝~

글샘 2010-02-25 16:08   좋아요 0 | URL
전인교육, 공교육... 이런 것들도 모두 우아한 거짓말이 아닌가 해요.
정부가 내세우는 녹색 성장, 친서민적 행보... 이런 것도 마찬가지구요...
 
반칙 선생님
우다가와 유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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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룰을 적용하려 하고, 룰을 지키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사실, 어른들은 룰을 무시하고 심한 경우 우습게까지 보기도 한다.
아이들 눈에 그 표리부동함은 정확하게 말하기 뭣하지만 조금은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마코토는 초딩이다.
공부는 졸라 싫어하고 축구부에서 활동하는 데 목숨을 건다.
교코란 같은 반 여자애를 좋아하는데 교코는 피아노 선수다.
마코토의 형은 사립 중학교에 가려고 열공하고, 마코토는 늘 비교 대상이다. 

이쯤에서 등장하는 '반칙 선생님'
4학년때의 '원칙'만 강조하는 제멋대로 선생님과 비교되게
5학년때의 선생님은 여유가 있고 너그럽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정규 교사가 아닌 비정규직이고, 결국 1년만에 학급이 줄게 되어 잘리고 만다. 

세상사가 그런 것이다.
늘품성 있고 아이들을 사랑할 인성을 갖춘 이들은 교직에 들어오기 어렵게 만든 것이 바로 임용 고사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라야 공무원이 되고 교사가 되는 것이 세상인 것이다. 

젊어서부터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모습보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승진을 위한 스펙을 쌓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담임같은 힘든 일쯤이야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안할수록 좋다. 

이런 어른들의 세상과
낭만이라고는 뭣만큼도 없는 아이들의 팍팍한 삶이 초딩 마코토의 시선으로 잘 잡혀있다. 

초딩 고학년이나 중딩 수준의
공부하기 싫어하고 공차기만 좋아하는 머시매들에게도 읽힐 법한 멋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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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0-02-1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금 이책 손에서 놓았는데,
류에게도 이런 선생님이 생기면 참 좋겠다 싶다가도 ,,요즘, 현실이랑은 너무 동떨어져있어서,,
하지만 아직 초딩인데도 자신의 인생을 고민하는 고녀석의 마음이 참 이뻐보였어요,,,

글샘 2010-02-19 21:28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자기 인생을 좀 고민하며 사는 인생... 너무 어렵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