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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 예찬 - 고요함의 멋과 싱거움의 맛, '담백한' 중국 문화와 사상의 매혹 ㅣ 산책자 에쎄 시리즈 5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최애리 옮김 / 산책자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난 참 맛없는 남자다.
화끈한 맛도 없고, 독하고 매운 맛도 없고 뚝심도 없다.
맛도 없을 뿐더러, 그런 맵싸한 맛을 싫어한다.
밋밋한 내게 딱 어울리는 맛이라면, 글쎄 담백한 맛이라고나 할까.
달콤하면서도 입에 짝 달라붙은 화끈함을 가진 맛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아니면 알싸하게 혀끝을 톡 쏘는 감칠맛 같은 것을 좋아할 것이다.
스포츠가 가만 보면 화끈함과 중독성의 맛을 지닌 것 같은데, 나랑 스포츠는 궁합이 안 맞다.
화끈하고 한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인 스포츠의 맛보다는,
나는 아무래도 밋밋하고,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나도 모르는 제멋대로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 굵직한 남성의 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앞뒤 가리지 않고 추진력있게 일을 밀어붙이는 사람에게는 정보다 거리를 먼저 두게 되고,
지나치게 나긋나긋한 남성의 이미지도 친근해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라면, 그저 무릇 뚝배기마냥 잘 끓지도 않고, 끓어도 한참을 기다렸다 끓고, 또 그닥 뜨겁지도 않은
그렇지만, 그 안에 든 거라고는, 딱, 제사상의 '탕'과 같은 밍숭맹숭한 맛을 좋아한다.
월드컵 열기로 온 광장이 뜨거울 때, 나는 뭔가 허전했고, 괜히 효순미선에게 미안한 맘 가득했으며,
촛불 집회에 머릿속으로는 가득채우면서도, 왠지 불안감이 들어서는 자리에 나를 버릴 수 없었고,
대학 시절 학생 운동의 가열참 속에 자신을 버리는 친구들 속에서도 나는 스스로를 동그마니 외톨이로 만들고 말았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중국> 학자다.
내 느낌으로는 중국의 건축, 음식 등보다는 조선의 그것이 훨씬 담백함의 맛이 가득하다고 볼 수 있는데,
또 중국의 자기나 그림에 비해 조선의 그것이 수천만배는 더 여백의 미를 즐기고 그윽한 맛이 가득하다고 볼 수 있는데,
차라리 중국보담은 일본의 음식, 그림이 더 담백하다고 보겠고,
뭐, 차이나나 조선이나 제팬이나 차이를 못느끼는 그들에게는 도에서 개 정도의 차이로 보일 수 있겠다.
어떤 맛이 두드러지면 다른 맛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으며,
모든 음은 울려나는 순간 다른 음을 배제하기 마련이다.
모든 결정은 부정이다.
형체없고 소리없는 것은, 무엇과도 소통할 수 있으며 어디에나 퍼질 수 있다.
진정한 조화는 모든 차별화의 이전 단계에만 존재한다. (70)
마치 노자의 한 구절처럼 존재와 부정이 함께하는 역설을 듣는 듯하다.
담 淡의 기초는 그저 엷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내적인 강인함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이다.(150)
아, 이런 글을 읽음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다니,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다.
부산 사람들이 전부 부산 갈매기를 부르면서 흥청거릴 때, 나는 혼자서 멀뚱거리며 쳐다보게 되는 그 속내가 무엇인지를...
내 흐리멍텅한 성향이 가지는 '힘'이 무언지를 슬며시 느끼는 기회를 주는 책을 만나 혼자서 반갑다.
담은 감지할 수 있는 것의 마지막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초입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그것은 감지할 수 있게끔 드러나는 즉시 그 초월적인 조화로움으로 돌아간다. ...
담은 사물들이 차별화되지 않는 것 속으로 돌아갈 때, 사물들이 그 변별적 특성들을 잃어버리고 차이를 흡수하며 혼돈을 향할 때 비로소 그것들에 대해 말한다. 담은 측량할 수 없는 성질이자, 그래서 필연적으로 덧없으며... 일체의 체계적 모색을 피하며, 손을 잡아 붙들 수도 없다...(96)
나는 그 희미한 부분을 좋아한다.
또렷한 햇살보다는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희,와 미의 사이에서 존재하는 애매한 곳을 사랑한다.
나란 인간이 희미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똑 부러지게 결론을 내리는 인간은 정나미가 없어보여 괜히 거리를 둔다. 다 인간이 티미한 탓이다.
예스런 담백함에는 진정한 맛이 들어있다.
대제사의 탕에 간을 맞출 필요가 어디 있으리요.(106)
무미건조한 것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표면적인 담담함이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가장자리나 중심이나 모두 무미건조하다면 말할 가치가 있을까?
같은 맛 안에서 중심과 가장자리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131)
최고의 맛은 중심에 있으니, 그 맛은 다함이 없다.
담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깥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안의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개안을 제공할 것(201)
이런 것이 이 책을 권하는 손을 꼽고도 남을 이유들이다.
김용택 선생의 이런 시가 담 淡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