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동심원 5
신형건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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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김, 신형건

미처
내가 그걸 왜 몰랐을까?
추운 겨울날
몸을 움츠리고 종종걸음 치다가
문득, 너랑 마주쳤을 때
반가운 말보다 먼저
네 입에서 피어나던
하얀 입김!
그래, 네 가슴은 따뜻하구나.
참 따뜻하구나. 

동시집인데 소재가 아이들의 사랑 이야기다.
어른들처럼 아이들은 결혼을 염두에 둔다거나 하면서 사귀지 않는다.
작년에 읽은 '이금이의 첫사랑'처럼 요즘 아이들이 물질적인 가치를 앞세우면서 사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의 사랑은 '우정과 사랑 사이'쯤에 놓인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들 마음 속에 물결지는 일렁임 역시 가치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좋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을 거침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연애 시집이 식상한 문구들의 나열이기 쉽다.
그럴 때, 이런 시집 한 권 선물한다면... 글쎄, 훨씬 효과가 좋을 듯 싶다. 

사랑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지 말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현하기도 좋은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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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천재 클레멘타인 동화 보물창고 26
사라 페니패커 지음, 최지현 옮김, 말라 프레이지 그림 / 보물창고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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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목이 The talanted ~이다. 탤런트를 가진 클레멘타인. 근데, 예능 천재~란 제목은 좀 거리가 있어 뵌다.
요즘 안 그래도 방송에서 '예능'이란 말을 우습게 사용해서 마음에 안들었는데 말이다. 

옛날 중학교 영어책에
Everyone can do something well...이란 단원이 있었다.
이 책의 이야기도 그런 것이다. 

한 가지씩의 장기 자랑을 준비하는 와중에, 클레멘타인은 장기가 없어서 고민이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들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공연 중에서
선생님은 클레멘타인이 '연출'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질서를 잡아주고, 온갖 도움을 다 베풀어야 하는 공연의 마법사, 연출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것을 발견해준 선생님께 감사드려야 할 노릇이다.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재능이 발휘될 기회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기소침하게 되기 마련이며,
누군가가 그 재능을 알아봐 준 사람은 스타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으면서 자신감을 가지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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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지수 : 332030점 

마이리뷰: 1993편  

 1300점만 더 있으면, 서재지수 333330점이고
리뷰 7편만 더 쓰면(금방 올렸으니 6편) 리뷰 2000편이고
즐찾 4분만 더 늘면 즐찾 666명이고 
방문자 1145명만 더 오면, 200000 방문이다. 

10년 정도 끄적거린 분량의 글이 제법 된다.
얼마 전 알라딘이 접속 불가이던 때가 며칠 있었을 때,
저 글들이 휙~ 사라지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뭐, 별로 아쉬운 마음도 없었다.
아마, 나는 다음 날 다시 다른 리뷰를 올리는 걸로 '마이리뷰 1편'을 만들 것 같다.
그치만, 가끔씩 내가 쓴 리뷰를 참고로 하는 일이 있는데, 그걸 못하면 조금은 아쉬울 수도 있겠다. 

나에게 알라딘은... 읽은 것들을 정리해두는 독서기록장의 역할을 톡톡이 하는 셈인데,
독서기록장을 잃어버렸다고 '암'에라도 걸린 것처럼 우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독서기록장을 잃어버렸다면, 새로 사는 편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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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1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5-03 17:54   좋아요 0 | URL
호연지기라기보다는... 제 글이 시답잖단 걸 아는 거죠. ㅎㅎ

순오기 2010-05-01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쿨하군요!^^

글샘 2010-05-03 17:55   좋아요 0 | URL
걱정 안 하고 쿨하게 살자는 게 제 요즘 신조입니다.

pjy 2010-05-0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O COOL~ 글쵸,새로 하면 되는거죠~~했으나
UP AND LEAVE~~ 는 쉽지 않더군요,구관이 명관이라고^^;

글샘 2010-05-03 17:55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딘밖에 안 써봐서... 다른 데는 낯설구요. 아무래도 알라딘 말고는 리뷰 올리기가 만만찮아서...

페크pek0501 2010-05-02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제 블로그의 화면이 영원히 사라지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를 느낀 적이 있어요. 끔찍합니다.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따로 글을 저장해 두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노트북에 글을 쓰고 난 뒤에 저장 실패로 글을 날린 적이 있는데, 새로 똑같이 쓰는 게 쉽지 않아
쓰다가 포기한 적이 있어요. 우리의 기억력이란 그렇게 형편없죠.
방문자 추가를 위해 자주 들러야겠군요.
혹시 제가 2십만명째로 들어오게 되면 꼭 댓글을 남겨 드리지요. 행운으로 알고서요...

글샘 2010-05-03 17:56   좋아요 0 | URL
네. 이십 만 명째로 들어와서 잡아 주세요. ㅎㅎ
이제 581명 남았네요.

페크pek0501 2010-05-04 15:52   좋아요 0 | URL
지금 제가 199801명째로 들어왔어요. 오늘277명째 방문으로 되어 있고요. 다음에 또 들어오면 어떻게 될지... ㅋ

글샘 2010-05-05 00:07   좋아요 0 | URL
ㅎㅎ 140분 남았네요. 뭐, 누군가는 200000번째 방문을 하시겠죠. ^^
너무 신경쓰지 마셈. 혹시나 잡으실 수 있으면 몰라도...

페크pek0501 2010-05-06 10:26   좋아요 0 | URL
제가 오늘 70번째로, 또 200002명째로 들어왔슴다. 예상보다 성적?이 좋은데요. 근접한 숫자...ㅋ
 
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이명 동인이란다.
이 책의 말미에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란 글을 로맹 가리의 이름으로 붙여두었다. 
독특한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즈마님이 항정살 2인분과 삼겹살 2인분을 착취해 드신 어느 소설가의 소설이 떠올랐다.
어쩌면 몽몽이의 어머니이신 그 소설가님은 에밀 아자르를 읽고 '나쁜 피'나 '열세 살'을 쓰기로 작정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어에서 '아무개'를 한자로 '모모'씨라고 하는데,
아랍인 출신인 모하메드의 이름이 '모모'다. 블라블라~~ 아무개씨처럼 들린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와는 달리, 이 책의 주인공 모모는 밑바닥 인생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창녀인 어머니와 그 창녀인 어머니를 죽이고 정신병원으로 간 아버지가 있고, 
그래서 모모는 로자 아줌마로 불리우는 몹시 아프고 늙어서 곧 죽어버릴 여성이랑 사는데, 사실 그는 여장남자다. 

모모의 인생은 그래서 꼬일대로 꼬이는 조건이라고는 모조리 수합하고 있는 것인데,
결국 애비는 돌아오지만 오지 않으니만 못하고, 로자가 죽자 로자의 시신과 함께 누워있던 모모를 사람들이 발견한다. 

문체는 몹시 경쾌하고 시니컬하지만, 삶 자체가 워낙 비장하기 그지없어서 웃을 수만은 없다. 슬프다. 그렇지만, 얼마나 슬프냐~ 이렇게 독자를 몰고가지 않아 소설은 재미있다. 이런 게 좋은 소설 아닐까 싶다. 세상은 이토록 슬픈데, 슬프지? 슬프지?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러고 있으면, 그런 글은 읽기 싫은 법이다.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우습고 경쾌하고 가볍게, 삶을 터치하는 문체. 맘에 든다. 

빅토르 위고의 '불쌍한 사람들'(레 미제라불)의 '빌어먹을 생'이 여기 펼쳐져 있다. 

나딘 아줌마의 녹음실 설정은 참 인상적이다. 세상에 뒤로 돌려보고 싶은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나온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상황은 얼마나 신기한지... 강풀 작가의 미심썰에 등장하는 10초를 되돌리는 남자가 떠오른다. 타이밍...에서는 되돌리는 남자가 실패하지만, 어게인...에서는 성공한다. 되돌리는 장면의 미학과 거기서 얻게 되는 슬픔의 페이소스란... 

276. 하나의 자로 모든 것을 잴 수는 없지 않은가... 

모모는 늙고 추한, 죽기 직전의 여장 남자, 아주머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그렇다. 어떤 못생긴 어머니도 자식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니, 어떤 자식도 어머니에게는 가장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지 않은가. 외모로, 성적으로, 부의 양이라는 잣대로 사람을 재는 일만큼 허접한 일이 또 있을까?
그렇지만, 그런 것이 인간 세계이니... 모모의 행복이란, 불행과 샴쌍둥이처럼 붙어있는 것이란 말이다. 

늙은 창녀들만 맡아서, 늙고 못생기고 더이상 쓸모없는 창녀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하고 싶어하는 모모.(149)
그들을 보살피고 쳥등하게 대해주는,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울고 있는 버림받은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는 모모에게, 더이상 포주와 경찰은 적대적 개념이 아니다. 창녀도 선악의 어느 선에도 세울 수 없는 단어다. 
창녀도 그저 한 인간일 뿐.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174)
자연은 노인들을 공격하고, 야금야금 파먹어 들어가지만... 

암, 만 아니면 된다는 쾌활함을 가진 아주머니는 어쩌면 두려움을 회피하는 길을 그렇게 택한 건지도 모른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가.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심한 고행은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 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더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296) 

에밀 아자르와 모모의 말들은 로맹 가리가 세상에 던지는 비아냥이자, 올바른 정신이란 무엇인지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일은 어떤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충고로 들린다.

도대체 내가 왜 살아있는지... 자기 앞의 생이 거지같기 그지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오늘 당장 한번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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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5-0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여고때 친구들과 돌려보면서 에밀 아자르를 읽었어요. 회색노우트를 먼저 읽고 자기 앞의 생을 읽었죠.
그때 생각이 나서 우리 딸 보라고 작년에 샀는데 안 보더군요.ㅜㅜ
책도 땡길 때 봐야 하는 거라서 그냥 뒀어요. 간만에 다시 보고 싶어지는 리뷰~ 추천 꾹!

글샘 2010-05-03 17:57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우리 시절에 절절했던 이야기들도 요즘 아이들은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두워진다는 것 창비시선 205
나희덕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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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다는 것...은 시각 視覺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간 時間의 문제이기도 하다. 

날이 어두워지면, 심리적으로 우울해지거나 나약해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어두워진다는 것은 삶의 시간으로 본다면 마흔 고비를 넘어 노화를 향해 가기 시작하는 고비가 될 수도 있다.
마음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나이 듦의 드러남일 수도 있고... 

나희덕의 2001년 시집을 읽으면서,
아, 나희덕이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이렇게 시간의 흐름과 심리적 흐름을 표현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늘 밤 무슨 몰약처럼 밤비가 내려
시들어가는 몸을 씻어내리니
달게 와 닿는 빗방울마다
너무 많은 소리들이 숨쉬고 있다 

내 눈에서 흘러내린 붉은 진물이
낮은 흙 속에 스며들었으니
한 삼일은 눈을 뜨고 있을 수 있겠다.(
몰약처럼 비는 내리고, 부분) 

비가 내리는 걸 두고 시들어가는 몸은 한 삼일 살 힘을 얻는다.
뿌리가 뽑혀, 몇줌 흙을 아직 움켜진 존재가 자꾸만 목이 말라와 화사한 한무더기 꽃을 피운 녀석을 보면서,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弔花인 줄도 모르고...
삶과 죽음의 시간에 대한 그의 상념은 비를 통해 더 어두워진다.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초록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나면
내 마음의 그늘도
꼭 이만하게는 드리워지는 때
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때 

소만 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들을 좀 덮어다오.(소만, 부분) 

한창때가 있고, 그 한창때가 지나면, 그늘과 어둠이 온다.
나희덕이 느끼는 시간의 어둠. 아직 싱그러운데, 그는 어두워진다는 것을 생각한다.
십 년이 지났는데, 나와 동갑인 그는 얼마나 어두워졌는가. 

정말 하룻밤이었을까
그렇게 많은 물방울이 흘러내렸는데도
날개소리 그렇게 오래 들렸는데도 

석순 1밀리미커가 채 자라기도 전에 우리 생은 끝나고
동굴 밖은 지금 몇 세기일까(돌로 된 잎사귀, 부분)
 

그의 삶은 반도 안 살았던 시점에서 벌써, '그리고 동굴 밖으로 걸어나가는 나는 누구?'냐고 묻는다.
석순 1밀리도 채 자라기 전에 끝날 생들 주제에,
그렇게 많은 물방울이 흘러내렸다고 느끼지만 정말 하룻밤같은 짧은 시간인데... 

십년 후의 나에게, 라고 시작하는
편지는 그보다 조금 일찍 내게 닿았다 

책갈피 같은 나날 속에서 떠올라
오늘이라는 해변에 다다른 유리병 편지
오래도록 잊고 있었지만
줄곧 이곳을 향해 온 편지... 

누구에게 가 닿을지 알 수 없지만
줄곧 어딘가를 향해 있는 이 길고 긴 편지(
다시, 십년 후의 나에게, 부분) 

그가 십년 전에 쓴 편지를 보면서, 
다시 십년 후까지 생각한다.
아, 그는 지금 이 시를 읽으면서 어떤 느낌일까.
어딘가를 향해 있는 이 길고 긴 길...이 삶의 길인데,
누구에게 가 닿을 지 알 수 없는 먼 길.
지금도 잊고 있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줄곧 어느 곳인가를 향해 가는 걸음걸이... 

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삶은 참으로 통속하고 너절하거늘...
나희덕은 나비같은 언어를 채집하듯 시를 쓰고,
나풀거리며 떨어질 듯 날아가는 시간을 이렇게 잡아 챈다. 

먼 길을 결코 직선으로 날지 않는 나비 같은 시간을... 

피아노가 음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검은빛으로 빨아들인 몇개의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반을 다시 울리기 위해
아이가 뒷문 계단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밖은 반음씩 어두워져갔다
(음계와 계단, 부분) 

이렇게 피아노 건반을 보면서도 반음씩 꺼져가는 어둠을 발견하는 날카로운 시인의 시선.
내게 없은 능력을 책으로 읽는 일은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다. 

6층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아서
앞비탈에 자라는 벽오동을 잘 볼 수 있다
며칠 전만 해도 오동꽃 사이로 벌들이 들락거리더니
벽오동의 풍경은 이미 단물이 많이 빠졌다...
꽃이 마악 떨어져나간 자리에는
...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풍경을 매일 꼭꼭 씹어서 키우고 있다
누구도 꽃을 잃고 완고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놀라운 것은 거칠고 딱딱한 열매도
저토록 환하고 부드러운 금빛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열매 사이로
말벌 몇 마리가 찾아들곤 하는 것도
그 금빛에 이끌려서...
그러나 말벌들은 모르리라...
캄캄한 씨방 속에 갇힌 꿈들이 어떻게 단단해지는가를
내 어금니에 물린 검은 씨가 어떻게 완고해지는가를(벽오동의 上部, 부분)
  

애늙은이가 따로 없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는데, 그 씨가 여물어가는 과정을
또는 완고해져가는 과정을...
그렇지만, 그 완고한 어른들조차
원래는 환하고 부드러운 금빛이었음을...
나비처럼 가벼운 시선으로 그는 관조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벼운 언어로 들려준다.

봄이 가까워질수록
눈은 산꼭대기로 올라간다
햇빛이 시려워 시려워서...
시린 물
흘러내리는 이른봄마다 나는
눈 어두워 알지 못했네
그것이 한 은둔자의 피라는 것을
(눈의 눈, 부분) 

관찰자의 신선하고 날카로운, 시려워 시려워서 눈이 신 것 같은 시인의 시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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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4-2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시에...
더 대단한 감상^^

글샘 2010-05-01 12:40   좋아요 0 | URL
대단한...이 둘이나 겹치니깐, 대가리가 단단하다는 생각이... ㅋ

다크아이즈 2010-04-30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두루말이 시에 크리넥스 해설이네요.
나희덕 시인은 좋겠어요. 이런 눈썰미를 가진 독자가 있으니...

글샘 2010-05-01 12:41   좋아요 0 | URL
글쎄요. 좋아할까요? 뭐, 좋아하라고 쓴 글은 아닌데요...
그냥 저런 게 보일 때가 있잖아요. 시집을 죽 읽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