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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를 찾아서 ㅣ 창비시선 207
정희성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정희성은 '詩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내 눈에는 '時를 찾아서'로 보인다.
그가 본 시대상, 바뀌어가는, 그래서 또렷한 별빛 하나 향해갈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여 당황스런 마음을
시로 적어본 것들이 많다.
이제 내 시에 쓰인
봄이니 겨울이니 하는 말로
시대 상황을 연상치 마라
내 이미 세월을 잊은 지 오래
세상은 망해가는데
나는 사랑을 시작했네
저 산에도 봄이 오려는지
아아, 수런대는 소리('봄소식' 전문)
민주대 비민주의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대.
독재와 민중의 투쟁으로 세상이 이분되던 시대.
가진자와 못가진자가 극도로 달랐던 시대가 지나고,
민주를 외치던 자도 비루하고 독재자의 편이 되고
못가진자에게 조금 나누어준 콩고물은 못가진자를 분열시키는 약물이 되고...
세상은 망해간다고 그는 썼다.
봄도 없다고, 겨울도 없다고... 시대 상황을 오버해서 연상하지 말라고...
오십 평생 살아오는 동안
삼십년이 넘게 군사독재 속에 지내오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다보니
사람 꼴도 말이 아니고
이제는 내 자신도 미워져서
무엇보다 그것이 괴로워 견딜 수 없다고
신부님 앞에 가서 고백했더니
신부님이 집에 가서 주기도문 열 번을 외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애 같은 마음이 되어
그냥 그대로 했다('첫 고백' 전문)
아, 나도 내 마음이 괴로울 때가 많다.
그렇지만 난 이렇게 몇 자 쓸 뿐, 고백할 데도 없다.
모든 뉴스가 비비 꼬여서 들리고, 사람도 선입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정말 어린애 같은 마음이 되어... 괴로움을 대속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좋겠다.
그냥 그대로 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도 괴로웠을 것이지만.
水急不流月(물이 빨라도 달은 흘러가지 아니하니)...
세월은 물같이 덧없다지만
오늘밤도 달이 떠 물에 어리니('수급불류월', 부분)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달라지지만,
변치않을 손, 그것이 달이다.
누군가는 달에 손가락질하여 치어다보라 하지만,
자꾸 손가락만 보는 내 어리석음.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세상이 달라졌다' 전문)
그가 이 시를 쓰던 시기는 한결 조용해진 때였는지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가진자들이 저항하던 시기에 깨달은 것이 너무도 많았나보다.
잃어버린 10년,
그 기간동안 그들은 똘똘 뭉쳐있었나보다. 무서운 세상이다.
가파른 산길 내려오다가
취한 몸 가누어 치어디보니
아슬타, 벼랑 위 피어있는 진달래
이 봄사 늬는 잃어버린 혁명마냥 눈시울 붉혀
사월은 꽃피어도 쌀쌀하고
삶은 갈수록 쓸쓸하구나.('먼산' 전문)
민요같은 어조로, 삶은 갈수록 쓸쓸하고 날은 쌀쌀하다고 운까지 맞춰 본다.
진달래에 덧붙은 혁명의 정신마저도 쓸쓸하다. 시대가 그렇다.
참대 한줄기
수식어도 사양했다
겨울이여 생각할수록
주어는 외롭고
아아, 외쳐 불러
느낌표가 되어 있다('세한도' 부분)
시대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사람의 마음을 돋운다 하여도,
겨울이라 생각할수록
주어는 외롭고,
늘 외쳐 불러
느낌표가 되어버리는 세한도를 떠올리는 일은 그래서 조금은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