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그림자들 마지막 왕국 시리즈 1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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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번역본으로 읽는 일을 가리켜, 한자 성어로 격화소양(隔靴搔癢)라고 할까.
신을 신고 가려운 곳을 긁는다는 뜻이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번역본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문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줄거리만 읽자니 답답한 경우와도 같을 것이다. 

Was it a cat i saw? 내가 본 게 고양이였어? 이런 문장은 거꾸로 뒤집어 놓아도 똑같은 회문이 되는 건데,
이런 재미를 모르고 앨리스를 읽으면 정말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거다. 

키냐르의 예술관은 <제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다. 낯선 것이고, 그래서 오리혀 신선한 것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그 무엇을 불쑥 나타나게 하는 예술은 부적절한 계에 속한다.
예술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 더러움에 대한 정의 자체는 곧 어떤 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음이다.
바닥 위에 놓인 신발 한 짝은 깨끗하지만, 그것이 식탁보 위의 꽃들과 은그릇, 가지런한 유리잔들 사이에 놓이는 즉시 더러운 것이 된다. (125)
 

그래서 그는 언어를 독창적으로 비틀고 뒤튼다.
라틴어에서 온 프랑스어기에, 마치 한자를 뒤섞어 이야기를 이끄는 모국어와도 비슷할 수 있으리라. 

새벽에는 상상과 현실간의 구분이 없다.(91) 

이런 것들을 그는 사랑하는데, 어린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의식을 가지기 전까지의 <전 인간>, 이런 전재들이 바로 '떠도는 그림자들'의 시기인 것이다. 

희미한 빛 뒤편에 지상의 불확실한 문턱이 있다.(93) 오로라가 하루에 속하는 것은 봄이 한 해에 속하는 것, 즉 아기가 죽음에 속하는 것과도 같다. 

아, 이렇게 떠도는 그림자처럼 희미한 것, 노자에서 말한 '희'와 '미'의 잘 보이지 않는 빛과 잘 들리지 않는 소리의 존재함을 그는 사랑함이다. 

예술은 가장 하찮은 잎사귀다.(112)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가랑잎과 이끼 속에 폐허를 세우는 셈.
 

그래서 그의 예술은 존귀하고 떠받들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재미있게 비트는 말하자면 인터넷 속의 발화들 같은 것.
그러나, 그의 이름처럼, 파스칼의 '팡세'를 본딴, 프랑스 문단에 유행하는 '에스프리'와 같은 그런 것들.
철학과 문학과 운문과 산문의 사이에서 말의 재미와 삶의 의미를 '희미하게 뒤섞는 어떤 것.' 

내부 interieur는 안 unterne에 속하는 모든 것의 비교급.
내밀함  untime은 최상급
그 정도로 내밀한 목소리는 대기 중에서 더이상 전달될 수도 없다(156)
현재 present라는 단어보다
이행 passant 이라는 더 확실한 단어를 선택할 필요.
사라진 것은 도래하는 생멸의 시기에 돌아온다.((199)
 ... 이런 말장난을 못알아듣는 답답함...ㅠㅜ 

극도로 희미한 빛을 지닌 것 모두.(187)
프랑크의 왕 클로비스가 좋아했던 것이라면서 적어둔다.
결국 자기 자신이 좋아했던 것이리라. 

206쪽의 '또 하나의 왕국'은 드디어 소설로 가는 듯한 몽롱함을 비추어주지만, 그러자 곧 이야기는 문을 닫는다. 

역자가 저자를 만나 번역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중에,
작가인 나에게나 번역가인 당신에게 동일한 문제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 우리가 쓰는 문장들이 깊이를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프랑스어로 깊이 감동시켜야 하고, 당신은 누군가를 한국어로 깊이 감동시켜야 합니다.(239)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번역할 때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할 노릇인데... 과연 그의 책을 번역하는 일이 옳은 일일까?

주변에는 내가 모든 일을 중지하고 자살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할 만한,
쾌활함으로 가장된 어떤 소음도 없었다.
행복이 솟아올랐다.
나는 책을 읽었다.
행복에 휩싸였다.
나는 여름 내내 책을 읽었다.
여름 내내 행복에 휩싸였다.(96)
 

그의 마음과 정신의 흐름을 모두 따라잡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가 읽고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이 난삽하게 뒤섞인 이런 글들에 찬사를 보내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문학계에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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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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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열 두 사람 이야기의 결론은 이거다.
대한민국은 한 번도 민주주의 국가였던 적이 없다.
민주주의를 국가가 나서서 실천하려 했던 적이 없다.(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조차도)
그래서 다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지금, 민주주의가 한 방에 훅~ 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숭례문이 불탈 때, 국가의 초석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 해, 여름을 불태웠던 촛불 집회의 발랄함도 이제 갓 취임했을 뿐인 머저리를 탄핵할 순 없었다.
용산에서 참사가 일어나고,
급기야 전임 대통령의 의문사에 이어,
군함이 바다에 퐁당 빠졌을 때도,
쉬쉬하며 비밀을 유지하기에 급급했을 뿐, 국가는 국민을 '의문' 속에서 회오리치게 방임했다. 
그 사이에 대운하는 취소되었으며, 4대강을 개발할 뿐이고,
국가의 온갖 재정은 압박받으면서 보이지 않는 강바닥으로 온갖 재정이 녹아들고 있었고,
깡패 경찰은 국민의 눈과 입을 막았으며,
방송 장악으로 국민의 귀마저 틀어 막았다. 

민주주의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박정희의 피를 먹은 전두환은 광주의 학살극을 벌이고,
광주의 영혼은 다시 전두환을 잡았지만, 민주주의 해본적이 없는 정치권은 아직도 '야당의 존재'마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토록 치열했던 토론들이 무성했던 인터넷 대화들도,
몇 방의 처치로 금세 잦아드는 것이 현실 정치임에랴... 

민주주의를 체계적으로 가르친 적이 없는 학교.
민주주의를 배워본 적이 없는 교사들.
권력의 억압에서 본때를 배운 386들은 아직도 민주주의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학교는 교사들도 억압자이고, 학부모들도 억압자이다.
아니, 학생들 스스로가 스스로의 미래를 억압하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기여하는 셈인 것이다.
길거리로 나서지 않고 스펙을 관리하는 학생을 길러낸 자본주의는 참으로 위대한 것인지... 

진중권의 이야기는 쿨하면서 재미있고, 좀 가볍고,
한홍구의 역사 얘기는 간결하게 정리 쌈박하면서도 묵직하다.
도정일의 입론은 충분히 도입의 역할을 하고 있다.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알고도 대처하지 않거나 못할 때,
틀린 방식으로 대처했을 때,
너무 늦게 대처했을 때... 사회는 실패한다.(제레드 다이아몬드) 

한국의 민주주의가 실패한 원인을 비유적으로 잘 짚고 있다.
박원순의 이야기는 참 긍정적으로 보이면서도 막연하고
오연호의 과거 이야기는 자꾸 나를 슬프게 만든다.
정희진의 이야기는 뭔가 생각을 툭,툭 끊어지게 만들지만, 곱씹어볼 과제를 자꾸 던져주는 강의였고,
홍성욱의 하이브리드는 미래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잔소리한다.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사실 이 책에서 배울 것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식'이기보다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마인드를 바꾸기 위해 이런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이지, 의지를 다지려고 읽기에는 늘 목마른 강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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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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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다리를 못 써서,
또 암에 걸려서, 재발해서...
세상에 그렇게 불공평한 육체를 타고 나서... 

그래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겐지...
장영희가 남긴 글들을 모아 지은 책 제목치곤, 참 장영희 스럽다. 

그렇게 남들보다 불편한 몸으로 불편한 마음이었을 그였지만,
어쩜 이렇게 밝고 환한 마음 가득 들어있는 글을 썼던 것인지...
아니, 그의 마음속 깊은 어둠이 너무도 깊었기에... 글만은 이렇게 빤질해 졌는지도 모르겠다. 

늘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
천상 선생인 그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좋은 구절들을 많이 적어 준다.
그러나, 좋은 선생은,
자신이 학문에 늘 배고파야 하고, 스스로 자만하지 말고 어리석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가 좋은 선생이었기에 스티브 잡스의 저 말이 그토록 가슴에 새겨졌으리라고...

감동을 많이 하면 치매가 없어진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 화이트는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a man)에 대해 쓰는 것"이 글을 잘 쓰는 비결이라고 한다.
그렇다. 장영희의 글을 보면, 일반론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늘 주변의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거기서 시작해서 어떤 작품이 거론된다.
그렇지만, 그의 상념이 깊은 철학적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인류에 던지는 메시지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 떠난 장영희 선생. 
이제 떠나 다시 만날 수 없는 글이기에,
그의 짧은 수필도, 그가 간략히 남긴 영문학 해설도 마음을 후비며 파고 든다. 

그의 글 속에는 사회적 정치적 관심이 배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삶 속에는 온통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하다.
민중당 하겠다고 생꼴깝을 떨다가 한나라당으로 기어들어간 경기도 어떤 바보보다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그가 추악한 신문에 남긴 글들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말로만 민중을 위하고, 철학을 읊조려봤자 만고 쓰레기다.
정말 한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인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을 그를 보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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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5-25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감동을 많이 하면 치매가 없어지는군요. 기억해야지.
이 책 제목이 참 예뻐서 저도 읽는 중입니다. 겸손해지면서 마음 따뜻해 지네요. 교수님의 선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오늘이 마침 꽃비가 내리는 아침이네요. 축복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샘 2010-05-25 08:46   좋아요 0 | URL
허걱 아침 0629에 달린 댓글이라니~ 감동입니다. ^^
정말 제목이 이쁘고 글도 좋습니다. 꼭 그런 분은 일찍 세상을 뜨시니...
세상 참 공평한건지...
 
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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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을 뜬다.
허걱!
휴~ 여기는 우리집 거실이다.
이렇게 술 마시고 정신없이 뻗었다가, 집에서 고요히 자고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면... 정말 깜놀이다. 

그렇지만, 다음번에도 역시 그 경험을 잊어버리고 음주가무로 빠지게 되고,
또 어느 날, 허걱!
정신이 들어 보면 길을 헤매고 있다.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모를 길... 내지는 출구를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아파트 주차장... 

엘르,란 유명한 패션잡지의 편집장으로 잘 나가던 장은,
어느 날 자동차 시승을 나섰다가 '뇌일혈'로 온몸이 마비되고 만다.
생각을 할 수 있고, 듣기까지 하는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은 오로지 한쪽 눈꺼풀뿐. 

온 몸은 마치 잠수복을 입은 것처럼 갑갑하고 몸을 꼼짝 못하게 조이고 있는데, 머릿속 생각은 멀쩡하다. 

눈꺼풀을 움직여 프랑스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스펠링 순서대로 적혀진 판에 따라 한 글자씩 완성한 책이 잠수복과 나비다.
영화에서는 '잠수종과 나비'로 제목이 붙어있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의 웅변을, 작지만 큰 목소리를 들으면 삶이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삶의 소중함은 꼭 삶의 위기에서 깨닫게 되는 법인 모양.
하루하루 주어지는 소중한 삶의 시간들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지친 사람인 양 어쩔수 없이 살아가는 것이 또한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다. 

살아있는 날까지는 맨정신으로 멀쩡하게 살고싶다.
장처럼 모든 것을 잃고 나서 후회하는 글을 남긴댔자... 슬픈 일이다.
그래서 건강도 지키고 가족도 지켜야 하는 법이고... 

운동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핑계대고 게으르지 말고,
병원갈 시간 내기 어렵다고 건강검진 미루지 말고,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음주모드로 해롱거리지 말 일이다.
머릿속에서는 그래야 함을 알면서도... 또 쉽지 않은 노릇이지만... 

잠수복을 벗고 자유롭게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삶의 하루하루가 소중하지만, 뇌만 살아있는 인간이란...
애정 표현도, 의사 표시도 할 수 없는 가엾은 인간이란... 가벼운 나비의 날갯짓만도 못하리란 것.
그래서 나비로 날아가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가득가득 하고 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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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23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쉽지 않죠?ㅎㅎ
 
엄마 아빠가 헤어지면 - 작은도서관 13 작은도서관 13
정영애 지음, 원유미 그림 / 푸른책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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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좋아지면 결혼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결혼 전에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 수 없기때문에, 특히 한국처럼 남녀가 낯설어하는 환경에서는,
결혼 후 마음이 맞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국의 명절 문화, 한국의 가부장적 사고 방식은 여성에게 결혼은 미친 짓이야!를 외치게 만들기도 한다. 

온갖 육아 스트레스는 여성의 몫으로 돌아가기 쉽고, 남성들의 세계는 또 가정적인 사람을 이상하게 보기도 한다. 

티격태격하다 쿨하게 헤어지는 일이 일상다반사인 나라들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이혼이란 것은 말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 어른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한 10년 전부터, 이금이 작가의 나는 하늘말나리야부터 시작해서, 어른들의 이혼과 아이들의 삶 사이의 방정식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있어왔다. 

아니, 이혼 전과 이혼 후의 득실을 계산하는 부등식 공부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사이나쁜 결혼은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혼할 때, 반드시 아이들 눈높이에서 되돌아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존재란, 삶의 전부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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