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전쟁 - 마틴 메이어, 한국 교육을 말하다
마틴 메이어 지음, 조재현 옮김 / 글로세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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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러시아인 박노자가 한국 역사를 통돼지 바비큐 돌리듯 휘저을 때,
네덜란드인, 미국 체류, 러시아 문학 박사, 그리고 한국의 대학 강사를 역임하였고 청심국제중고에서 종교를 가르친다는 (휴=3=3) 마틴 메이어가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파헤쳐 보았다. 

제목이 교육 전쟁으로 붙어있지만, 그리고 한국에서 교육이든 경제든 무엇이든 경쟁적으로 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긴 하지만,
내용이 그리 살벌하지는 않다.  

도대체 한국땅에서 교육은 왜 이렇게 무시무시한 전투태세로 변해가는 것일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 다른 모든 정책들은 부드러워졌다고들 하는데,
교육정책만은 더욱 하드 코어로 변모했다. IMF 여파로 모두들 경제적 동물이 되어버려서인지, 아니면 사회가 돌봐주지 않는 각개 약진의 국가임을 알아차린 부모들의 극성때문인지... 아무튼 학생들만 갈수록 불쌍해져버렸다. 

황우석 파동 이후 나왔다는 '침묵과 열광'이라는 책 제목이 한국의 교육관련 현장을 보여주는 한 방편이 되지않을까 한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는 '광적'이다. 시험 성적에 일희일비하고 서울대 합격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열광한다.
그렇지만, 서울대 가는 학생 뒤에서 그 아이의 분모 역할을 했던 많은 친구들에 대해서는 학교는 침묵한다.
운동장 조회에서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몇몇 아이들에게는 열광의 기회가, 박수를 보내는 일만 12년을 해온 아이들에게는 침묵의 영광이. 

그가 영어 강사였던만큼 영어에 대한 부담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나,
종교 강사이니 윤리적 인간과 철학 교육의 필요성, 성교육을 통한 자연스러운 인간관 정립 등에 대한 이야기들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학교에서 굳이 침묵하고 있는 대목이다. 

한국의 학교는 국영수에 열광한다. 수능 과목인 언수외탐에만 열광하는 것이다.
그 외에 뭘 잘하든 침묵한다. 입학 사정관제로 학생의 재능을 보겠다지만, 그건 성적 좋은 학생들에게 한정된 이야기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0년 전 전교조가 생길 때, 학교에 숨구멍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했다.
그렇지만, 혼돈에게 숨쉬고 보고 듣도록 구멍을 뚫어주었을 때 그만 죽어버렸다는 말처럼,
교육 부조리 같은 것들을 비판하여 정화하는 동안, 그만 학교 교육과 학생들은 말라 죽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가가 바라는 것은 교육의 실패다.
교육이 올바로 이뤄져서, 수능의 목적처럼, 올바른 정보 처리 능력과 충분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른 인간이 주축을 이룬 사회라면 이놈의 국가는 회딱 뒤집어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경쟁력없이 경쟁만 하는 아이들로 만들어서, 나침반도 지도나 방향타도 등대조차 보이지 않는 오리무중 암흑천지 속을 헤매도록 하는 것이 봉사놀이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국가의 재미인지도 모르겠고... 

그의 에필로그 제목이 '위기의 나라, 교육 개혁의 의무'인 점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지만,
현재 정부는 청와대에서 교육과정의 'ㄱ'자도 모르는 자들이 미래형 교육과정을 만들어 당장 내년부터 시행하라고 깝친다.
고등학교는 모든 과목이 선택과목이며, 한 학기에 8과목 이수해야 하기때문에, 학기별로 교사가 이동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1학기 담임과 2학기 담임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는 노릇이고,
국영수 교사 외에는 늘 노마드가 되어 낙타타고 떠돌 생각을 해야 할 모양이다.
1학년부터 선택과목을 할 수 있게 되어있으나... 비참한 현실은 아직 교과서가 개발되지도 않았다. 

교육과정 연구에 10년 정도 발을 담그고 있는 나로서는 완전 미치게도 짜증이 밀려온다.
교육과정 평가원에서도 고민하지 못하는 교육과정이 청와대에서 밀려내려오고,
당장 내년부터 시행할 교육과정의 국어과 과목 명칭을 나는 엊그제서야 처음 들었다.
참 불쌍한 학교다. 투표 한 번 안 했더니 이런 치욕을 당하고 산다. 더러워서... 

자살률 세계 1위의 영광스런 나라.
만족도 뒤에서 1위, 일하는 시간 1위의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나라.
더 열심히 일해서 독일의 1400시간을 두 배 이상 앞질러야 쓰겄다. 지금 2400시간 밖에 안 되니깐,
매일 1시간 반씩 더 일해야 독일의 두 배가 넘지.
국민이야 제 알아서 사는 거니깐, 오이씨디 국가 들의 1/5 정도의 재정으로도 충분히 복지를 누리고도 남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국민 여러분, 지발 좀 낳으셔요. 정신을 차리셔요... 이렇게 지껄이는 훌륭한 나라. 

이제 한국의 교육 전쟁은 저절로 해소될 것이다.
전쟁을 치를 전투원을 생산하지 않는 현실에서 교육 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불필요한 노력이다. 

나도 외국 아이들이 밀려들어와 그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영어나 베트남어라도 공부해야할지 모르겠다. 

좋은 교육에 대하여 많은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운 책.
그렇지만, 내가 교장이 된다면... 꼭 다시 꼼꼼히 따져볼 필요들이 많은 의견이 가득 풍부하게 실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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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들뢰즈가 만들었다는 노마드라는 말이 21세기 초를 장악했다.
21세기를 시작한 것은 밀레니엄이라는 시끄러운 상업적 축제가 아니었다.
2001.9.11의 무서운 사건이 20세기 인간의 바벨탑에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면서 21세기는 시작되었다.
20세기의 양차 대전 이후 한국, 베트남, 중동, 이라크, 동유럽 내전 등으로 hot war가 끊이지 않았던 것에 비하자면,
21세기 벽두의 검은 연기는 <악의 축> 미국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뭐, 자작극설이 돌기도 하지만) 미국에 대한 도전이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여전히 원리는 무시된 시대임은 변함이 없다. 

자크 아탈리의 이 책은 무척이나 장황하다는 느낌을 준다.
노마드의 철학적 탐색에 치우쳤던 앞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통시적 썰을 풀기 시작하는데, 세계사에 나오는 온갖 이동성을 모두 끌어 모았다.
농경부족 외의 이동들을 모두 노마드적 사건들로 엮어들이는 것은 좀 억지스럽기도 하고 재미없는 면도 있다. 

이렇게 두꺼운 책 말고, 100페이지 안쪽으로 되는 가벼운 책이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많이 드는 책.
그나마 자크 아탈리의 작업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처음에 한 페이지 분량으로, 다음에 몇 페이지 분량으로 요약한 것을 앞세우고 자세한 설명을 뒤에 덧붙였다는 점. 

그는 길에 있다. 집을 떠나지 않은 채로.
그는 집에 있다. 길에서 떠나지 않은 채로.(일본의 공안) 

미래의 인간은 10억 이상의 인구가 정주민의 삶을 버리고 유목민의 삶을 택할 것이라고 자크 아탈리는 예측한다.
인터넷 세상도 곧 집을 떠나지 않은 채로 소통하는 길이나 마찬가지고,
길에서도 집을 콘트롤할 수 있는 세상은 이미 도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약속이란 것이 필요없는, 실시간 문자와 통화의 세상. 모든 인간은 유목민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장, 종교, 민주주의가 제국과 국가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하였지만,
또 나름의 이익에 따라 국가는 재편되면서 강화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고,
시장과 종교도 국가라는 틀을 심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도 있어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프라노마드와 정착민, 그리고 하이퍼노마드란 개념도 조금 진부하고 작위적이다.
정착민의 삶 자체가 현대화되면서 불안정해졌는데, 과연 하이퍼노마드라는 개념이 지칭하는 바가 명확할 수 있을 것인지...
조금 안쓰러운 개념이다. 

노마드는 좋아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들은 사라져버리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노마드가 된 것이다.(토인비) 

미래의 노마드적 삶에 토인비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래의 삶에서 생존전략은 당연히 노마드의 그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김문수가 들으면 좋아할 말일까? 철새 정치인이란 말 대신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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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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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나온 이 책이 나를 이끈 것은 책 제목도, 주제도 아닌... 저자의 이름 석 자였다. 

서경식의 글에서 묻어나는 가슴 저린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왠지 모를 저릿한 통쾌함이랄까 이런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저, 너무도 삶이 힘들어 일본 또는 유럽의 미술관들을 돌면서 만난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인데, 그의 그림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공포를 이기는 힘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무섭지?
그렇지만, 너보다 더 세상이 무서웠던 사람들도 많단다.
그리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야.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있거든...
이렇게 공포에 젖은 눈으로 더 두려운 21세기를 바라보는 독자를 다독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할 듯하다. 

벤 샨의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129)은 항의 운동의 성화란 제목이 붙어 있다.
이민자로서 무정부주의자였기때문에 <제화공장 회계 담당과 경비원이 총에 맞아 죽고 현금 1만 6천 달러가 강탈당한> 사건에 대하여 '병역 기피는 비겁하다고 생각지 않느냐'는 등의 재판 끝에 1927년 처형을 당한다. 

아,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미국의 세례를 제대로 받은 어떤 나라가 떠오른다.
정당에 가입하지도 않고서 후원금을 냈다는 '죄'를 저질렀는데,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성큼성큼 <해직>을 거론하는 어떤 나라 말이다. 후원금을 2만원 낸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많이 내 봤자 몇십 만원인데, 그걸로 교단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업인에게 <해직>이라는 사형선고를 마구 남발하는 이런 것이 국가라면, 정말 국민을 포기하고 싶다. 죄에 따른 '벌'은 법정에서 판결이 나고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여도 될 노릇이거늘, 일단 직위해제부터 시켜 두고, 빨리 파면, 또는 해임을 시키겠다는 것은 교사를 국가의 시녀로 전락시키겠다는 폭력적 사고의 일단을 보여주는 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더럽다. 사는 일이 더럽다.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를 보면서, 알라딘에서 이 그림을 쓰시는 분이 생각나 빙긋 웃었다.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도 보인다.




루오가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술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면 나에 대해 말하지 말아 달라.
나를 혁명이나 반항의 횃불처럼 그렇게 중요시하지 말아 달라.
내가 한 일은 하찮으니까. 그것은 밤의 절규, 낙오자의 오열, 목멘 웃음이다.
세상에서는 날마다 나보다 가치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일 때문에 수없이 죽어가고 있다.(46)

멋지다. 

죠지 그로스의 '매장식 - 오스카르 파니짜에게 바친다'를 보고 있자니,
온통 가식과 거짓으로 가득한 대한민국의 현대가 비친다.
서울 광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페스티벌은 환장하게 현란하기 그지없는데,
오로지 소비로 가는 길, 처먹고 퍼마시는 길로는 광장이 열려있지만, 
비판으로 가는 길에는 완전 '좁은 문'이 설치되어 있어 광장은 꽉 막히고 만다.
주구장창 부어라 마시자... 하는 환락의 도시에 곧 퍼부어질 '월드컵 응원의 세례'는 다시 소비로 가는 일방 통행로가 되어 광장에 붉은 대열을 퍼뜨릴 것이다.  

그림은 곧 작가의 세계관을 표상하는 것이고,
그림 속에 담긴 세계는 곧 작가와 독자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인 것이다.
그림 속의 세계와 화가가 별천지에 있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아도,
우리가 사는 부조리한 세계가 그림 안에 오롯이 담겨 있어 그림읽는 일은 슬프고 가슴 아린 일이다.
특히 서경식처럼 아픔을 온몸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애린 정도가 더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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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무섭지?
그렇지만, 너보다 더 세상이 무서웠던 사람들도 많단다.
그리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야.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있거든...

아~~~멋있다!

글샘님 때문에 맨날 지름신이랑 싸워서 지고나면...
멋지게 들어차는 책장은 배불러 좋지만...
주인의 머릿속도 배불러야 되는데...ㅠㅠ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김소진 문학전집 2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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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제목으로 딴 소설집이다.
김소진은 1963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문과 졸업하였다.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쥐잡기'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로 재직했으며, 제4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1997년 34세의 나이에 생을 마쳤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고아떤 뺑덕어멈>, <자전거 도둑>과 장편소설 <장석조네 사람들> 등이 있다.<알라딘 소개 참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 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사회 문제도 소설 속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전쟁 포로 출신 아버지의 비실거리는 모습과,
덕택에 강해질대로 강해진 어머니 철원댁의 모습.
학생 운동을 하다 화상을 입기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소설을 이룬다. 

짧은 삶을 살면서도 많은 작품을 남긴 셈인데, 그의 자전거 도둑은 현대 사회의 단절감과 소통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제법 멋진 소설이었다. 

이 작품집에서 인상적인 작품은 '쥐잡기'였다.
포로였을 때 환상인지 실상인지 쥐와 연관되어 목숨을 연명하신 아버지와, 현실 속에서 만난 쥐의 이야기는 인간의 삶과 더께져서 실감나게 그려진다. 
마지막 부분, 임신한 쥐가 거의 미동도 않다가 한순간에 재빠른 동작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의 소설이 가진 묘미를 잘 보여준다.
"왠지 느꺼운 감정이 밀려오면서 저만치서 채 시작되지도 않은 겨울의 출구가 보이는 듯했다. 그쪽은 맨발이었다." 
아, 겨울에도 출구가 있는 것이구나. 그러나 그쪽은 또 맨발이어서 춥기는 여전한 것이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춘하 돌아오다, 고아떤 뺑덕어멈... 등의 소설에서도 그의 서사 진행 능력은 뛰어나다.
어쩌면, 아버지 세대의 삶이었지만 분단동이로 태어난 사람들의 슬픔을 잘 형상화할 수 있는 훌륭한 작가였는데, 그의 요절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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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전집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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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화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마해송 선생의 글이다.
마해송 선생의 아들로 유명한 마종기의 시가 전집으로 묶였다.
도쿄에서 태어나 연대의대, 서울대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로 재직중이다.
지금도 추잡하기 짝이없는 이 한반도의 남쪽이 1960년대엔 얼마나 가증스러웠으랴...
그 당시 잡히는 것 하나 없는 살림에 해외로 빠져나가버린 사람들의 삶이 간혹 부럽기도 하다.
요즘처럼 추악한 인간들의 득세가 치를 떨게 하는 시기엔 더욱.
그러나... 얼마전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막연하게 바라는 행복은 그것을 제외한 요소들을 곰곰 따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듯, 이 더러운 땅을 벗어난 이들의 삶 또한 비루한 나날의 연속이었으며, 오히려 고향땅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향수병에 시달렸을 수밖에 없는 노릇임을 이 시집은 생각나게 해 준다. 

물론, 서경석처럼 디아스포라로서의 처절한 비극의 사북자리에 선 인물은 아니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조국의 총성과 최루탄 가스의 비린 냄새는 늘 그의 마음을 들쑤셔 놓았으리라. 

샤워를 끝내고 플로리다산 오렌지주스에 스크램블드 에그, 초록빛의 신년도 쉐보레로 출근하고 ,환자를 보고, 정맥주사를 주고, 세미나에 나가 주절대고, 시집 안 간 간호사가 눈짓으로 조르면 피임약 처방이나 써주고, 저녁에는 잭 베니의 암듬을 듣고 골프 중계를 보고, 그러나 아무리 주접을 떨어야 엽전은 엽전이다. ... 사우스 코리언은 사우스 코리언이다... 내가 흥분파가 아닌 것은 너도 알지, 그래서 아예 의과를 택한 것도 너는 알지. 그러나... 서울발 간첩 침투 소식은 나를 흥분시킨다. 흥분하다가 지지리도 못난 이씨 조선을 원망한다. 원망하다가 세계 지도를 물그러미 새겨보고 체념한다. 체념하다가 내가 갑자기 강대한 청년이 되는 틀림없는 생시에 꿈을 꾼다.
딴 나라에 삼사 년 살다 보니까/ 조용한 게 무척 좋다. /새벽 두시 반 술집을 나서면/ 친구도 나라도 아무 것도 없다./ 초저녁에 잠든 아기와 아내를/ 새벽녘에 돌아와 보면/ 문득 가여워진다. / 허나 살아있는 자의 가여움은/ 백 번을 당해도 허영인 것을. 요즈음은 모든 게 멀리 보인다.(편지 2 - 동규에게, 부분)  

돌아가신 내 선친의 마지막 하서 - 조국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만도 애국하는 태도라 생각한다고 하신, 또박이 박아쓰신 그 아버지는 외고집인가, 지금도 윤기있는 머리털같이 가난한 아버지.(편지 3, 부분) 

나는 외국에서 나고 자라고/ 고국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다시 외국에 나와 있다./ 내 사춘기의 여름에 남은 기억은/ 총과 창으로 죽은 시체들/ 천, 십만, 백만의 시체가/ 죽어서 썩어서 우물 속에서 끓고/ 장작같이 쌓여서 태워서 탄화하고/ 그래서 내 사춘기는 탄화하고...(그리고 평화한 시대가, 부분) 

이렇게 그는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면서 형극처럼 고향을 떠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고국에서 내 친구가 혼자 소주 한잔 들고 우는 요즈음의 울음이, 오늘밤 내 창문 박에 도달해서 눈바람 소리로 들린다. 조용할 수 없는 이 밤을 깨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리고 아무도 잘못이 없다는 이 커다란 확신의 목소리.(1975년 2월) 

유신 시대의 어두운 울음을 멀리서 슬퍼하던 그런 시다. 

그는 음악을, 무용을 늘 옆에 끼고 살면서도 그 음악 속에서 무용수의 몸짓에서 '조국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불빛처럼 뻗던 자유'를 읽어낸다. 여지없는 디아스포라의 슬픈 인생이다. 

유난히 이쁜 계집애 많던 명륜동 뒷골목을/ 아침이나 저녁이나 비슷하게 끓던 골목, / 팍팍한 그 된장찌개도 먹고 싶다./ 이제 알 듯도 하다. / 돌아가신 선친이 다 던지고 귀국하신 뒤/ 아쉬움 속에서도 즐기시던 당신의 가난을/ 가난 속에서 즐기시던 몇 개의 허영을(몇 개의 허영, 부분) 
아무 데서나 사는 건 아닌 것 같애.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 거야?/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시가 불이야?/ 나한테는 등불이었으니까/ 아빠는 그래도 어두웠잖아./ 등불이 자꾸 꺼졌지. 아바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 등불이 있으니까/ 그래도 멀어서 안 보이는데?/ 등불이 있으니까...(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부분)
 

아, 마해송 선생의 가난한 그렇지만 즐기시던 허영을 생각할 만 하다. 

낚시질하다 / 문득 온 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에 엎드려/ 물고기같이 울었다.(낚시질, 부분) 

자랑스럽게 처음 보는 고국에 감격해 하더니/ 석달만에 너는 풀죽은 배추가 되어 돌아왔지. / 얼굴의 상처보다 마음에 난 상처가 더 컸겠지 데모의 뜻도 모르고 최루탄 연기만 피해다니다가. 데모에 참석하지 않는 놈은 사내도 아니라고. / 자기 나라 말도 제대로 모르는 놈은 바보놈이라고...(외로운 아들, 부분)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까지 조국은 매워서 눈물나는 곳이었던가. 시집살이같은 조국, 한국. 

박꽃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네/ 아버지 방 툇마루에 앉아서 나눈 한 마디/ 얼마나 또 오래 서로 딴생각을 하며/ 박꽃을 보고 꽃의 나머지 이야기를 들었을까/ 이제 들어가 자려무나/ 네 아버지/ 문득 돌아본 아버지는 눈물을 닦고 계셨다.(박꽃, 부분) 

마종기의 시는 결국, 그 혼자만의 시가 아니었던 것이다.
마종기의 시는 마해송이란 아버지와 그 자신, 그리고 그의 가족과 더 넓게 보면 이민 생활에 팍팍한 삶들의 표상이고,
모든 떠돌이 디아스포라의 향수와 슬픔을 대변하는
그리하여 모국어로 쓴 타국의 이야기요,
조국을 그리워하는 이민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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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26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치수 선생의 글에선가요, 마종기 시인이 남산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 뒤에 미국행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접하고 짠했었는데... '디아스포라'라는 표현이 적확하네요...

글샘 2010-05-27 14:48   좋아요 0 | URL
요즘도 이 나라를 확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닌데, 70년대엔 어쨌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