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 시공 청소년 문학 11
마르야레나 렘브케 지음, 김영진 옮김 / 시공사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 

열 다섯 딸과 아버지는 핀란드 북쪽에 있다는 함메르페스트로 여행을 떠난다.
여느 여행기와는 다르게, 이 이야기의 여행은 짜릿한 사건도 아찔한 결말도 없이 진행된다.
인생이 모두 그렇듯이, 그저 흘러가듯 여행을 하고 생각을 한다.
간혹 자동차가 속을 썩이는 일도 생기지만, 뭐 그렇다고 인생이 종치는 건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때는, 함메르페스트에 가면 얼마나 신기한 일이 벌어지길래??? 하면서 종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읽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 책 제목을 보니,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 이다.
가는 도중, 목적지를 향하여 한 걸음씩 가는 도중에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아버지와 딸이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하는 거였는데,
내 시선은 언제나 의도적이고 가식적인 형식을 찾는 거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한다. 

열다섯 살 짜리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애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걸요! 

이렇게 평가절하하는 딸과, 

열다섯 살은 그냥 열다섯 살인거야. 
하나도 흠잡을 거 없는 나이지.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아니, 내 생각에 열다섯은 정말 멋진 나이야. 

이렇게 멋지게 봐줄 수 있는 아버지의 여행. 

핀란드라는 나라가 현재 보여주는 교육력 1위라는 지표에 다들 군침을 삼키지만,
대한민국과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나라로 출발하여,
세계 노동 시간 1위, 세계 학습 시간 1위를 차지하는 현재가 비교되어 슬픈 나라. 

누구나 악기를 연주할 줄 알던 시기가 있었다.
한국도 전통적 농악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사물놀이나 농악도 전문인이 하는 게 되어버렸다. 

"전 음악적 재능이 없어요.'"
"하, 요 꼬마 아가씨, 말하는 것 좀 보라지! 음악적 재능이 없다.
너 김나지움에 다니는구나, 그렇지?" 

아, 학교가 애들 조진다고 생각하는 건, 교육력 1위인 핀란드도 마찬가지구나. 휴=3=3 ㅋㅋ 

"함메르페스트는 아주 아름다운 곳인가 봐요."
"꿈처럼 아름답겠지! 하지만 꿈은 너무 가까이 가서 보면 안 돼."
 

아, 적당한 데서 잘 돌아선 자리.
어린 시절 누구나 어렵더라는 이야기.
그리고 가고 싶던 함메르페스트와
꿈처럼 아름다운 그곳에 갈 필요가 없이, 지금 이만치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그런 것. 

그런 것들을 아버지와 딸은 여행을 통해 배우고 느낀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 부딪치면서 닳아야 하는 모양이다.
깍듯하게 인사하는 사이로서는, 닳을 것이 없으니깐.
그렇지만 공유하는 부분도 없을 테니깐.
인생은 그런 것이란 걸 아빠와 딸이, 아니면 엄마와 아들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풀어 보라는 충고를 남기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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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6-25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처럼 나의 아들,딸과도 정감가는 이야기 나누면서 멋진 기차여행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
공부에 시달리고, 일에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삼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면 가는 여행.
많이 할 수록 좋겠죠?

글샘 2010-06-25 15:37   좋아요 0 | URL
정말 우리나라 아이들 너무 불쌍하지 않나요? ㅠㅜ 학교에 있으면서 아이들 보면 안쓰러워 죽겠습니다.
맨날 괴롭히는 선생이 아닌가 해서...
그렇다고 해결책도 없구요.

비로그인 2010-06-2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 부딫치면서 닳아야 하는 거로군요!
그냥 역지사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 난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는 것도 이제야 간신히 터득했구마는...ㅠㅠ

글샘 2010-06-25 18:49   좋아요 0 | URL
아직 아이가 중딩 정도 되시나부죠. ^^
고딩쯤 되면, 어른으로 대접해 줘야죠.
애들 입장 생각해 볼 게 아니라, 한 인간의 삶으로 인정해 줘야되는... 그런 의미인 거 같습니다.

비로그인 2010-06-27 02:31   좋아요 0 | URL
아녜요. 초딩 5,3,1학년이예요.
요즘 애들 빠르잖아요^^

아이들에게만이 아니라...모든 소통의 관계를 그냥 그 정도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고 있었나봐요.
머리랑 가슴에 기름칠이 필요해~~~ㅠㅠ

글샘 2010-06-27 14:53   좋아요 0 | URL
오, 5,3,1로 줄줄이 사탕이군요. ^^
세 초딩의 엄마라...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ㅎㅎ
저는 초딩들 선생 하라면, 정말 ㅠㅜ orz입니다.
 
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삐걱거리는 소리처럼 시작된 바이얼린 독주는,
잔잔한 쾌활함으로 점점 커지다가,
가슴 가득 전율할 만한 소음으로 귀가 찢어져라 비통의 갈등을 연주하더니,
한 순간,
뚝.
끊어져 버렸다. 

이것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였다면,
'일곱 번째 파도'는
통속한 음악을 한 곡, 뭐 적당한 춤곡이나 아니면 캐논 형식의 익숙한 피아노 협주 정도랄까.
통속한 해피 엔딩은,
워낙 익숙해온 '주제부'를 '재현'했을 따름이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전편이 프렐류드부터 프롤로그 인터메조, 그리고 클라이막스와 수직의 하강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로 강렬한 기억이라면,
후편은 단조로운 연속극의 한 회를 관람한 정도의 평이한 기억이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엇갈리는 인생 역정이 무한정 지향없이 진동하는 발산의 그래프를 그리다가, 점차 한 지점을 향해 수렴해가는 느낌을 읽는 맛은 그런대로 달콤하다.
커피 맛으로 치자면, 전편이 에스프레소의 고농축 커피라면, 후편은 별다방에서 나온 병에 담긴 브렌드 커피 정도.  

스포일러가 되어 감상을 망칠 생각은 없으니, 줄거리는 생략!

좋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하지만이 아니라, 좋아요! 

이 한 줄을 놓고, 스무 줄은 해석을 붙이는 이런 기호학적 취미가 이 책의 또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처음의 좋아요는 단호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진술이에요. 그 뒤의 쉼표는 다음 진술을 위한 부가장치고요.
그 다음에 나오는 '하지만'은 유보를 예고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는 괄호는 글쓰기상의 형식적인 기교, 
그 다음의 점 여섯 개는 비밀에 싸인 생각의 갈래들. 이제 충분한 고뇌를 거쳤으니 괄호를 닫아 말줄임표에 담긴 혼란을 꼭꼭 싸매두는군요.
그러고 나서는 내면의 혼돈 속에서도 외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인 마침표.
그럼에도 그 다음에 불쑥 고집스럽게 나타나는 '아니에요'는 겉보기에는 단호한 진술이지만 뒤이어 또다시 나오는 쉼표는 앞의 진술이 뭔가 다른 말로 보완되리라는 걸 암시해요.
그 뒤에 나오는 '하지만이 아니라'는 더는 고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요.
그동안 어떤 회의도 발설되지 않았지만 사실은 온갖 회의가 드러났는데,
이제 그 모든 회의가 밀려나요.
그리고 종국엔 과감한 '좋아요'가 고집스러운 느낌표와 함께 나오죠.
다시 한번 종합하면, "좋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하지만이 아니라, 좋아요!"는 당신의 흔들리는 마음이 보여주는 화려한 론도예요! 
공개리에(요기서 잘못된 말! '리'는 '-속에'란 뜻으로, 비밀리에는 돼도, 공개리에는 좀 어색) 행해진 당신의 의사 결정 과정이 들려주는 매혹적인 돌림노래예요!(93) 

행복이 있을 만한 곳의 약도와 그걸 찾아내는 법이 담긴 안내서는 없어요.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가장 빨리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곳에서 행복을 찾는 거예요.(303)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아헤매는 인간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는데,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천으로 깔린 '행복'의 세잎클로버를 놓치고서 추구하는 네잎클로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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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6-24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면의 묘한 심리를 기막히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은요^*^
근데 글샘님 참 다양한 책 읽으시네용.
그리구 리뷰 첫 글 음악적 표현 굿이예요.

글샘 2010-06-24 14:36   좋아요 0 | URL
이런 책도 가끔 읽어 주어야죠. 마음의 밭에 물 좀 뿌리고... ^^
다양한 책을 알라딘에서 구경하다 보면, 읽고 싶게 되더라구요.
지금 풋내기 사서의 도서관 일기, 쉿, 조용히!도 읽고 있습니다. ^^ 세실님을 생각하면서요.
굿,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철도 없이 마냥 좋아라하는...)

세실 2010-06-24 16:49   좋아요 0 | URL
쉿! 조용히! 재밌죠. 저도 읽었습니다^*^
생생한 경험담을 보여주었죠.

글샘 2010-06-24 17:36   좋아요 0 | URL
네 재밌습니다. 한국의 사서는 또 다를 거 같애요. ^^ 책 한 권 내시죠. ㅎㅎ 한국의 사서

비로그인 2010-06-2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이구~~
아직 저에겐 배송 전이라구요~~~~~ㅠㅠ

걍 보조맞춰 읽으면 어때서~~~~ㅋㅋ

글샘 2010-06-24 14:38   좋아요 0 | URL
쏘~~~리
보조맞춰 읽자고 말씀이라도 하시지 그러셨어요. ^^
선수들이 후편은 별로라고 그랬는데요. 저는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워낙 전편이 짜릿해서... 밍밍해 보이는 대비효과는 있지만... 오늘 배송될테니... 즐겁게 읽고,
좋은 리뷰를 남겨 주셈~ 부탁해요!!!

비로그인 2010-06-24 14:56   좋아요 0 | URL
난 내가 젤 먼저 읽게될 줄 알았다구요~~ㅠ
다락님이랑도 좀 더 있다가 읽으신다 해놓구선...

글샘 2010-06-24 15:05   좋아요 0 | URL
사나이 굳은 마음 때때로 변하는 거라서...

전호인 2010-06-24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시와 일곱번째.....
이제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슬금슬금 기어들어오고 있습니다.

글샘 2010-06-24 17:31   좋아요 0 | URL
그런 걸 뽐뿌질이라 하죠. ^^ 지름신이 강림하실까요? ㅎㅎ

건조기후 2010-06-24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개리에(요기서 잘못된 말! '리'는 '-속에'란 뜻으로, 비밀리에는 돼도, 공개리에는 좀 어색) <- 글샘님의 이 문장도 새벽 세시 식의 해석으로 풀어내자면 한 페이지는 족히 넘어갈 것 같네요.ㅎㅎㅎㅎㅎ

글샘 2010-06-24 17:34   좋아요 0 | URL
저는 한 페이지는 못 씁니다. ^^
맞춤법 교정으로 석사논문을 쓴 여파로, 이상한 문장이나 틀린 맞춤법이 눈에 들어와 난독증이 걸린답니다.

건조기후 2010-06-24 23:49   좋아요 0 | URL
아 제 말은; 저 문장을 놓고 (다른 사람이) 글샘님의 심리를 '심층분석'해도 꽤 흥미롭게 나올 거라는 얘기였어요.^^ 위에 발췌해놓신 내용처럼요.ㅎ

글샘 2010-06-25 08:42   좋아요 0 | URL
아, 제 한 마디를 두고 한 페이지를 누가 쓴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데요. ^^
건조기후님이 건조하게 한번 해 보세요.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박민규의 오랜만의 장편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박민규를 기대하고 읽었는데, 뭐, 박민규가 꼰대가 된 느낌이다. 

제법 사랑과 인생과 행복에 대해서, 뭐, 제법 음악과 미술과, 시도 소설도 아닌,

끊어지게 줄바꾸는 투의
또,
뭐, 추리소설도 아니지만,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어 직조되는 구성을 가진 소설을 한 편 썼다..  

그의 이야기들에는 참 동감을 하며 읽었다.
그러나, 뭐랄까. 소설이라고 하기엔, 이 책은 지나치게 에세이 스럽다.
그야말로, 중수필로서의 에세이 말이다.

박민규 표 ‘사랑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야.
기적이란 그런 거야.
아니, 아니에요... 하지 않는 사이.
환한 오전이었는데, 불 꺼진 밤의, 회전목마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
전... 너무 못생겼어요...는 사랑, 인생, 행복론을 모두 뒤엎는 것.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요... 믿지 않겠지만 말이야... 인간은 매우 이상한 거야.
인간은 기대를 걸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포기를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다.
신의 기대대로 살 순 업다 해도, 그래서 인간은 끝까지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동물이다.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한은, 말이다.

인생론

왜들 다들 이렇게 불행한 거죠
그게 인간이야.
인간이 너무 많아.
시시해요. 인간들... 왜 인간은 그냥 스스로의 삶을 살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타인의 약점을 에워싸고 공격하는 것인가.
인생이 그런 거면 어떡하나... 평생을 숭어인 줄 알았는데 실은 송어라면...
‘저도 여태 숭어로 알고 있었어요.’라고 말해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다....
어둠이 집인 인간
바로 저나 요한 선배와 같은 인간인 것입니다.

행복론

인간은 대부분 자기와 자신일 뿐.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지.
하지만 좀처럼 자아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 하고.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것.
무슨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걸까.

그리고 그의 교육론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지식을 왜 배우는 걸까?
불필요한 지식은 가르치면서도 왜, 정작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왜, 이별을 겪거나 극복한 개인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는가.
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교육은 시키지 않는 것인가.
왜 고통의 구조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는가.
남을 이기라고 말하기 전에 왜, 자신을 이기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왜 정작 모두가 듣고 살아야 할 말의 예절에는 소홀한 것인가.
왜 협력을 가르치지 않고 경쟁을 가르치는가
왜, 비교 평가를 하는 것이며 너는 몇 점이냐 너는 몇 등이냐를 외치게 하는 것인가.
왜, 너는 무엇을 입었고 너는 어디를 나왔고 너는 어디를 다니고 있는가를 그토록 추궁하는가.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고, 왜 그토록 못을 박는가.
그냥 모두를 내버려두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냥 모두가 그 뒤를 쫓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러워할수록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누구이며, 보이지 않는 선두에서 하멜른의 피리를 부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박민규를 읽다 보면, 뭐 딴지 일보 총수 김어준이나 세상이 뭐 이러냐는 항변으로 일관하는 시점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못생긴 여자가 걸어야 하는 길은 얼마나 험한가.
아니, 크게 보면, 한국에서 여자가 살아야 하는 길은 얼마나 더러운가...
이런 시선을 과감하게 던지는 그는 결코 좀스럽지 않다. 

미녀를 바라보는 세상의 남자들은
마치 킹콩과 같은 존재.
시키지 않아도 빌딩을 오르고, 가질 수 없어도 자신의 전부를 바친다. 

뭐, 나도 마찬가지 시선을 가지고 있음을 숨길 수 없다.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 앞에서와 평범한 외모의 여성 앞에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킹콩처럼 무모하진 않더라도 말이다.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그리고
숱한 팝의 가사들을
똑 미술에서 오브제 만들듯 엮은 이야기는
그의 신선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곰삭지 않은 생경한 맛이 너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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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24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삭지 않은 생경한 맛...
실제로 만나면 더 그래요.ㅋㅋ
작가를 만나기 전에는 저도 이 책이 별로였는데, 강연회에서 발견한 그의 모습이 예전에 읽은 그 책의 이미지를 살짝 바꿔주더군요.
엉뚱하고 순진하고, 하지만 문제를 지적할 때는 예리한.
ㅎㅎ저랑 같은 또래라는 게, 음미 기죽어!

글샘 2010-06-24 14:42   좋아요 0 | URL
뭐, 기죽을 것 까지야... 뭔가를 잘하는 사람은 또 뭔가를 못한답니다. ^^
엉뚱하고 순진하고, 하지만 예리한... 사람은
소심하고 띠방하고, 하지만 웅숭깊은... 사람일 수도 있지요.
 
미치도록 행복한 순간 1000
조근형 지음, 장윤미(쓰바) 그림, 문서빈 사진 / 걷는나무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다가, 과연 난 어떨 때 행복한지 간혹 생각해 보았다.
갈수록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거나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나이가 들면 몸에서 사라진다는 갈색 지방처럼, 나날이 늘어난다는 백색 지방처럼,
그래서 체온 보전은 안 돼서 춥기는 춥고, 갈수록 옆구리 살만 비져나오는 나이듦. 슬프다. 

이 책은 행복이란 '적어보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고, '행복함을 상상함'에서 느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스로 행복을 낚으려고 찾아나서지 않고, 사냥꾼의 눈으로 헌팅에 혈안이 되어있지 않은 이에게 멍청하게 잡힐 행복은 없다는 것. 

운전하다보면 우연히 내가 가려는 차선의 앞차들이 슬슬 비키는 날이 있는가 하면,
왕초보, 성질 더러운 넘들이 내 옆에서 마구잡이로 끼어드는 날도 있는 법.
확률로 치면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이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되고 싶은 직업이다.
그런데도, 갈수록 내가 하는 일이 힘들고, 힘겨운 상황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여기서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다.
이럴 때, 하늘을 보면서, 또는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한 순간들의 기록을 읽는 일도 의미가 있겠다. 

이 책은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고, 또 제법 날씨도 쌀쌀해서 간혹 비맞은 팔에 소름이 도돌도돌 돋아났을 때,
제법 큰 머그잔에 가득 담은 향 좋은 허브티라도 한 잔 들고 앉은 스토브 앞처럼, 기분좋은 뽀송함을 전해주는 책이다.
물론 삶에 행복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순간들을
지금, 여기서 일어난 일들,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들을 적어두는 일은 그래서 충분히 행복으로 가는 비단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임을 보여준다. 

221. 개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앉아'와 '가만 있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평생 배우지 못한다.
그들은 바빠와 급해를 입에 달고 정신없이 달려간다.
가끔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나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살펴보라. 매트 와인스타인 외, '우리는 개보다 행복할까' 

261. 인생은 선택이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이다. 

424.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부모는 정말로 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439. 커피를 맛있게 끓이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한 사람을 위해 끓이면 맛이 더 좋아집니다. 영화<카모메 식당> 

491. 인생의 승패는 좋은 카드를 잡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손에 잡고 있는 카드를 잘 쓰는 데 달려있다. 

591.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623. 내가 먹고 싶은 메뉴 두 개 시켜서 남자 친구랑 나눠먹기!(우, 이거 여자분들 주특기셨군요. ㅎㅎㅎ) 

630. 세상을 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기적이란 없다고 믿고 사는 것과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으며 사는 것.
나는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아인슈타인 

817. 비극적으로 살려면 비교만 하라!
즐겁게 살려면 비유를 하라!
지금 저를 어떤 라이벌 피디와 비교하면 둘 중 한 사람은 화가 나겠지만,
대신 '그분은 장미ㅡ, 나는 프리지아'[ 이렇게 비유를 해주면 둘 다 행복하지 않을까요
따지는 삶은 곤혹스럽죠. 다지는 삶을 살아야죠. 

847. 욕조에 누워 멍때리기.(모든 걸 잊는 순간이 필요해요.) 

926. 어리석은 이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대해 그러하듯 낚시를 조롱하지만,
이 철학적인 오락처럼 정념을 가라앉게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927. 아마추어와 프로의 유일한 차이는 인내심이다.
프로가 되는 건 간단하다. 정말 어려운 건, 계속 프로로 있는 거지. 

이 책의 그림을 맡은 팀은 '쓰바'다. 음, 깨는 팀 이름이다, ^^ 근데, 그림이 내가 좋아하는 '마루코' 풍이어서 이쁘다. 쓰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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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22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또케 오또케~~~~~
특히 이 문구!
491. 인생의 승패는 좋은 카드를 잡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손에 잡고 있는 카드를 잘 쓰는 데 달려있다.....
읽는 데 막 전율이~~~


글샘 2010-06-23 14:47   좋아요 0 | URL
참 멋진 말은 많지 않나요? ^^
그 멋진 말들이 책에 있으니 안 읽을 수 없고,
또 멋진 말만큼 삶은 멋지지 않으니... 좌절할 수밖에 없구요. ^^

비로그인 2010-06-23 15:14   좋아요 0 | URL
좌절하지 마세요.
살면서 이렇게 좋은 글귀는 아무때나 가슴에 박히는게 아니니까요.
적절할 때 나에게 와 준 멋진 말들이 고마울 뿐인거져^^

글샘 2010-06-23 15:48   좋아요 0 | URL
그래요. 마기님은 장미... 저는 송엽국... ㅎㅎㅎ(송일국 아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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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소설이다.
전체가 메일로 이루어진 소설.
우연히 잘못 받은 메일이 이루어준 인연.
그리고 급격히 서로에게 가까워졌지만, 이뤄지기엔 조금 먼 인연. 

원제목은 'gut gegen Nordwind'이다. 
북풍에 맞서는 게 좋다... 뭐 이런 썰렁한 제목인데,
독일어판 표지는 우습고, 문학동네 표지도 썰렁하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제목 참 잘 붙였단 생각이 든다. 

새벽 세 시, 이 시각까지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외로운 심사를 충분히 헤아릴 듯 하다.
경비를 서는 사람이든, 공부를 하는 사람이든. 사랑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이든.
게다가, '바람'이란 단어가 주는 미묘한 뉘앙스란...
저렇게 속옷차림으로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턱을 괴고 앉은 그림보다는,
30대 유부녀의 '바람'이 질풍노도와 같이 밀려들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온다. 

과연 에미와 레오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싶지 않기도 하고,
일견 뻔하기도 하고,
둘이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둘의 뜨거운 만남과, 블라인드 키스와, 더 깊숙한 만남까지 상상하는 대뇌 피질의 작용에 이끌려 두어 시간만에 마지막 장의 허무까지 접수하고 만다. 

잘 쓴 소설이다.
이십 대의 풋사랑에 비하면, 삼십 대의 간절한 사랑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랑은 첫사랑인 것.
결혼해서 두 아이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에미에게,
레오의 편지들은 N번째 첫사랑을 가져다 줄 정도로 짜릿한 것이었다. 

이 작품이 성공해서 두번째 작품, 일곱번째 파도...도 나왔다고 하던데, 도서관에 오늘 그 책이 들어온 것도 봤지만, 일단, 미뤄두기로 했다.  

새벽 세 시를 좀더 아련하게 느끼고 싶어서.
새벽 세 시, 그 시각까지 깨어있는 영혼들의 신선함에 애정을 쏟아주고 싶어서...
그 시각에 북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커튼자락 휘날리며 살랑살랑 불어올 북풍에 마음 설렐 젊은 마음, 가끔은 흔들리는 마음들의 자유를 위해서... 

잠이 들기엔 많이 늦은 시각이고, 일어나기엔 너무 이른 시각.
발을 담그고 보니 빼기엔 적절하지 않은 시각이고, 새로 시작하기엔 뭔가 이물감이 드는 그런 시각.
새벽 세시가 주는 뉘앙스는,
인생에서 30대나 40대의 어정쩡한 시기와 조응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오늘 새벽 세 시에 축구를 한다고 하니,
잠을 자기도 어정쩡하고, 일어나기도 어정쩡한 기분. 이런 것이 새벽 세 시를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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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22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시에 대한 글샘님의 정의와 묘사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네요.
저도 이 책 읽고 <일곱번째 파도>를 바로 빌리려 했는데
누군가 벌써 빌려갔더군요.
좋은 소설에 좋은 리뷰네요^^

글샘 2010-06-22 22:07   좋아요 0 | URL
혹시 독일어 전공하셨나요??? 괜히... 무질...에서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
저는 일곱번째...는 나중에 보려고 남겨 두었습니다.
좀 우울한 날 읽어보려구요. ^^
과도한 칭찬이십니다. ㅎㅎ

비로그인 2010-06-22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후와님의 리뷰보고 바로 구입했던 책인데, 아직 손을 못 대었어요.
음~~새벽 세 시까지 이걸 읽어볼까?

글샘 2010-06-22 22:08   좋아요 0 | URL
음~~ 새벽 세 시에 갑자기 저에게 메일 쓰시기 없기예요. ^^

글샘 2010-06-23 12:37   좋아요 0 | URL
뭐, 메일 보낼 거도 없이 여기 댓글로 다시면 되겠군여. ㅎㅎ

비로그인 2010-06-24 00:17   좋아요 0 | URL
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일곱번째 파도' 주문해 버렸는데....

글샘 2010-06-24 08:06   좋아요 0 | URL
저도 어쩔 수가 없이...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 왔답니다. 뭐, 언제 읽을지는 아직 미정이지만요.

전호인 2010-06-2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친구가 상세히 이야기 해줘서 읽지는 않았어도 기억이 새롭네요.
지금은 책의 내용만큼이나 괜히 우울해요.

글샘 2010-06-22 22:31   좋아요 0 | URL
괜히 우울하시면... 포도주라도 한 잔 드시고 푹 주무세요. ^^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이니까요.

세실 2010-06-2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많이 설레였습니다.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에미에게는 레오가 첫사랑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동정심과 사랑은 엄연히 다르잖아요.
일곱번째 파도...많은 우여곡절 끝에 둘은 만나게 됩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는것 처럼요.
아 오늘은 책의 느낌 다시 떠올리면서 새벽 3시까지 기다리는 것도 괜찮겠네요.
새벽 3시, 바람이 불겠죠?


글샘 2010-06-23 12:37   좋아요 0 | URL
새벽 세 시, 16강 진출은 했지만, 별로 바람은 없던걸요. ^^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사춘기가 됐던 거 같애요. 대학 시절 쯤으로 유치한 마음이었죠. ㅎㅎ
깨고 나니 꿈입디다만...

건조기후 2010-06-23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곱번째 파도를 읽지 않는 데 성공했지요.ㅎㅎ
볼까말까 진짜 무지 갈등에 빠졌었는데ㅋ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아요. 아련함은 아련함으로 완성되어야 해요. 아하하.

글샘 2010-06-23 12: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련함의 끝은 아련함이어야 하는 것. 만나고 나면, 꽝! ㅋㅋ

다락방 2010-06-23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곱번째 파도를 읽으시는건 말씀하신 것 처럼 좀 미뤄두셔도 될 것 같아요. 새벽 세시의 아련함은 새벽 세시의 먹먹함은 그 자체로 완벽하니까요. 이 소설은 저의 패이버릿이죠. 제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에요. 제 방 책장에도 있고, 사무실 책장에도 한권 더 꽂혀있지요.
:)

글샘 2010-06-23 12:39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좀 미뤄두려구요.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관심'의 의미가 생생하게 형상화되는 걸 느꼈습니다.
어쩜 그렇게 단어 하나하나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이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