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어떻게들 지내시고 계신지요.
수박 화채라도 시원하게 해 드시고, 마룻바닥에 누워서 더위를 잊으시기 바랍니다.

시작은 마기 님을 위한 시 특강이었지만, 점차 슬쩍 들여다 보시는 분의 수가 늘어서 요즘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
뭐, 어떤 분은 더 잘 할 수 있느냐?
헐, 뭘 바라세요? ㅋ
어떤 분은 책으로 내면 좋겠다.
저는 책 내기 전에 사망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그냥 냅두시고, ㅎㅎㅎ
너무 기대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떠드는 말조각들은 제가 22년동안 수업하면서 교실에서 툭툭 내던졌던 말들을
모아모아모아서 적는 것일 뿐이니까요. 뭐, 깊이보다는 넓이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기 님,
마기 님은 좋은 시로 청강생들을 더욱 많이 모아오시기 바래요. ^^
이 글을 저 혼자 썼다면, 몇 사람이 보다 말았을지도 모르는데요.
아무래도 마기 님을 위한 시 특강...이라고 하니,
얘들 뭐야? 이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을 거 같네요. ㅎㅎㅎ
근데, 마기 님 시가 계속 붙어 나오니깐, 어디까지 가나 보자...
이런 심보로 보고들 있을 거 같은데요.
마기 님이 계속 좋은 시를 붙여 주셔서, 시 특강 횟수가 계속 늘어나기를 저도 소망합니다.
음, 어떤 시를 골라서 손질을 해서
양념을 하고,
조리도 하고,
또 어떤 접시에 얼마만한 크기로 세팅을 하고,
테이블보는 어떤 걸로 깔아서
식욕을 돋우는 게 나을까?
를 많이 고민하지 않고 썼던 거였는데, 횟수가 늘다 보니,
제가 가진 레시피는 한계가 있고, 첨 맘먹었던대로
일반적으로 해석하기 좀 어려운 시들을 골라서
제 나름의 풀이를 붙여보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낮에 뜨는 반달 님, ^^
이제 낮에 뜬다고 안 보이는 줄 알지 마시고, 고개 내밀고 보세요~~
오늘은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를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를 한번 낭송해 보시죠.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전에 한번 보신 시인가요?
처음 보신 분들도 많으시죠?
느낌이 어떻습니까?
뭔가 좀 있어 보이죠? 그런데... 그 뭔가가 과연 뭔지, ㅋㅋ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거 같습니다. 신부처럼... 베일을 쓰고.
시를 그냥 분위기가 좋아서 낭송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은 감상법입니다.
그게 오히려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시를 꼭꼭 입에 넣고 씹듯이, 딱딱한 부분은 한참을 입에 넣고 불린 뒤에 쪽쪽 빨아먹을 수도 있겠지요.
저는 제가 해석하는 방식으로 읽어드리는 거니깐, 편하게... 편하게... 릴랙스...가 목적입니다.
이 시는 우선 제목이 멋집니다.
꽃을 위한 서시, 캬,
우리 나라 시 중에 젤 유명하고, 젤 멋진 시가 뭐겠어요?
여기서 다른 시 대면 안 되죠? 윤동주의 <서시>라고 해야죠. ^^
윤동주가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며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음을 부끄리며 쓴 시.
그 시집의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란 시집이고, 그 처음에 올린 시가 바로 <서시>입니다.
서시의 뜻은 시집의 <서론>격인 시란 뜻인데요.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권두시입니다.
꽃을 위한 서시니깐, 이 시를 누구한테 바친다구요? 네, 꽃입니다.
그런데, 똑, 잘라서 마지막에 뭐라고 했나요?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라고 했습니다.
이 시는 꽃에게 바친 시인데, 그 꽃을 한 단어로 뭐라고 비유했다구요?
네. 신부.
아, 신부...
마기 님은 어떤 신부셨나요?
지금은 애기들 기르시느라 좀 삭았겠지만, ㅋㅋ 한창시절의 신부...
신부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콩닥거리지 않습니까?
사실 결혼식은 신부를 위한 거잖아요. 엄청난 가격과 엄청난 부피를 자랑하는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비하면,
양복이든 턱시도든... 신랑이란 참, 들러리가 따로 필요 없다니깐요.^^
이 시는 꽃을 위한 서시, 이면서, 신부를 위한 서시입니다.
아,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아내도 아니고(음, 아내 하니깐 느낌이 팍 삭죠. 한 순간에 ㅍㅎㅎㅎ) 신,부.
신부는 말 그대로 결혼식의 꽃입니다.
환하게 웃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날의 꽃.
그날 찍는 수십 장의 결혼식 사진은 사실은 신부를 위한 거라구욧! 야외촬영은 또 말해 뭐한답니까? ㅠㅜ
그 신부를 사랑하는 화자는 신부를 꽃, 같대요. 맛이 좀 갔죠?
자, 요기까지... 읽고 나서,
이 시의 첫 구절을 읽으시면, 허걱, 하실 겁니다.
아깐 안 보였던 구절이 바로보이죠. ㅍㅎㅎ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캬, 요즘 유행이 짐승아닙니까? '내 귀의 캔디'를 속삭이는 백지영 뒤로 보여주는 짐승돌의 식스팩!!!@_@
꺅, 짐승 중에서도 위험한 짐승.
드디어 첫날밤이 시작되는군요.
오늘의 꽃, 신부와 '시방 위험한 짐승'의 한판 승부.
자, 19금은 요기까지.
19금을 오빠 방에서 본 여동생이 긴장하면서 그 페이지를 넘겼더니, 뭐가 나왔게요?
20토.
이제 수능 모드로 돌입합니다. 수능 120일 전이니까요. 좀 경건하게 ㅋㅋ
여기서 '위험한 짐승'은 '윤리적'으로 위험한 짐승이 아닙니다. 이 위험한 짐승은,
지적으로 불완전한 인식을 가진 인간,을 뜻하는 말이에요.
갑자기 재미없어졌죠?
자, 정말 알고 싶은 신부, 오늘의 주인공 꽃, 그의 베일을 걷고 싶지만,
<존재>의 본질을 알고자 하는 순간, 그 <존재>는 알 수 없는 존재로 되어버리고 만답니다.
제가 아내와 결혼할 때요.
원래는 제 친구들 중에 여자라곤 어머니밖에 모르는 두 녀석에게 미팅을 제가 주선했거든요.
그랬는데 카이스트 있던 한 녀석이 펑크를 낸 거예요. 토요일인데 못올라오겠단 거죠.
그래서 제가 대타로 미팅을 했는데, 그 중의 한 여인이 지금 저랑 살고 있습니다. ^^
처음엔, 얼굴과 이름과 직업 정도만 알았죠. 그러니깐, 그 아가씨가 아는 아가씨가 된 거죠.
그런데, 그날 새벽 1시까지 놀다가 택시로 집앞까지 바래다 드리고(이때부터 흑심이 있었던 건 아니구요. 매너남 ㅋ)
왔는데, 잠자리에서도 계속 얼굴이 얼른거리는 거예요. 전번도 못 땄는데...ㅠㅜ
그래서 다음날 아내가 근무하는 아산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해서 아내를 바꿔달라고 했죠.
그래서 그날 오후에 또 만났습니다. 아, 둘이 만나니깐 얼마나 좋던지요. ^^
근데, 그날 딱, 만나니까...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묻고 또 묻고... 그게 사랑인 모양입니다. 알고 싶어요...가 무한대로 나올 수 있는 거.
듣고 또 들어도, 또 묻고 묻는 거... 그래서 아내랑 일주일에 두세번 만나면서 급 친해졌죠.
그런데, 만나고 만날수록 정말 궁금한 건 계속 생기더라구요.
이런 이야기를 이 글의 화자는 하고 싶은 거랍니다.
인간의 <존재>의 본질은 알고자 하면 끝도없이 알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거요.
나는 쟤 알아~ 라고 하지만, 그 사람과 친해지면 질수록, 정말 아는 건 없는 거잖아요.
심지어,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 하고 뻐기지만, 정말 곤란에 빠지면 정신과 가서 '제가 누구래요?' 이렇게 묻게 되는 거구요.
나를 알려고 절간에 들어가서 '스님, 제가 누군지 알고 싶어 왔습니다.' 이렇게 물으면,
큰 스님은 '너를 가져오너라, 네가 누군지 가르쳐 주마.' 이러실 걸요?
'위험한 나'는 너를 정말 알고 싶어 해요.
그런데, 내 손이 닿으면, 너는 까무룩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요.
그리고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피었다 지는 꽃.
그 아름다운 꽃은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집니다. 그 예쁜 것들의 한 송이 한 송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지만,
아, 그것들은 그 아이들의 특색을 깨닫기도 전에 져버리고 맙니다.
이 맘 보드라운 아저씨는 눈물이 나요.
그 아름다운 하나하나의 존재들을 인식도 하기 전에, 져버리고 마니까요.
그래서 이 <이름없음 無名, 무명>의 존재들을 기리기 위해서
나는 불을 밝히고 한밤내내 웁니다. 아, 어떡하면 너희 존재를 내가 알아챌 수 있겠니~~
이렇게 우는 사람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지요.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요.
바로 옆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은데, 바쁘다는 핑계로 다들 외면하고 살잖아요. 슬프게도.
그래서 울던 이 화자는,
밤늦게 어떤 앎의 문을 두드립니다.
돌개바람처럼 탑을 흔들기도 하지만, 탑의 본질을 알 수는 없죠.
그렇지만, 그 정성이 돌에 스며들면 그 탑의 돌이 의미있는 존재, 금이 될는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어린 왕자에서 생 텍쥐베리가 그러잖아요.
길들이면,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구요.
자, 이 시를 다시 읽어볼까요?
이 시는 사실은 꽃,을 위한 시도 아니고, 신부를 위한 시도 아닙니다.
이런 시를 <철학시>라고 한대요.
헐~ 철학은 또 뭐람... 금속 공학이면 몰라도...
철학은 생각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인데요,
철학, 종교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 중의 가장 기본이,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이라고 하네요.
그 <존재의 본질>을 새침떼기이며, 말해주지 않고 배시시 웃기만 하는 <신부>에 비유하는 시입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너는 이름도 없이/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탑을 흔들다가/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뭔가 좀 아시겠다구요?
그럼 저 좀 가르쳐 주세요~~ 플리즈~~~ㅠㅜ
이런 시 중에 또 유명한 게 있습니다. 하는 짓은 비슷하니깐, 그냥 한번 읽어 보세요.
신동집의 <오렌지>라는 시입니다.
오렌지 - 신동집 -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거죽엔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이렇게 알려고 하는 순간부터, '위험한 상태'가 된다.
정말 상대는 의문 덩어리가 된다는 걸 생각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좀 복잡하겠지요?
그렇지만, 노력하면,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기도 해요. 잘은 아직 몰라두요.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박남수, 새, 부분>
박남수의 <새>에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새'를 소유하고 싶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포수가,
그만 새의 순수를 겨냥하여 빵! 하죠.
그러나, 새의 순수, 새의 본질, 새의 진정한 모습을 알기 전에,
포수의 한덩이 납,이란 방법은, 도구는, 모두 존재의 본질을 상하게 하고 만다는...

좀더 유명한 김춘수의 <꽃>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 시는 워낙 유명하고, 주제도 쉽게 드러나니깐, 설명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겝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싶다. <김춘수, 꽃>
이 시는 어렵지 않죠?
근데, 이 시를 뒤에 놓은 이유는 말이죠.
어려운 시를 읽고 나면, 쉬운 시가 더 깊이 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랍니다.
아까 꽃을 위한 서시에서 <무명>이란 말이 나왔거든요. 기억 나시나요? 이름 없음.
그토록 아름다운 꽃들에게 이름도 없이 스러지게 해서, 기억하지 못해 미안해~ 이런 거였잖아요.
삶도 마찬가지일걸요?
우리 모두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저 거기 있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 따름이란 겁니다.
제 글을 읽고 누군가가 '재밌어요~~' 이렇게 댓글 달아 주면, 재밌는 줄 알고 막 또 하잖아요. ㅋㅋ
이름을 불러주면, 그렇게 신이 나는 거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거죠. 그게 바로 <명명>의 힘이랍니다.
명상록으로 유명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마르코만 인들과 싸울 때 용맹스런 사자들을 데리고 갔대요.
마구 달려오는 사자를 본 마르코만 인들이 장군에게 물었답니다. 저 괴수가 뭐냐고.
그랬더니, '저것은 개다. 로마의 개다.'이랬대요. 결과는 뻔하죠?
로마의 개를 몽둥이로 다 때려 잡았다는 거 아닙니까.
명명의 힘은 그렇게 크죠. 이름을 불러주는 일. 상대를 알아주는 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요. 칭찬은 '빈말'과 완전 다르잖아요.
정말 그 사람의 장점을 들추어 칭찬해 주는 일. 얼마나 사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휴 =3=3 교사들이 제일 못하는 게 이거예요. 꼬집기는 도가 텄는데 말입니다. ㅎㅎㅎ
조지훈의 <민들레 꽃>이란 시가 있습니다.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距離)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 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조지훈, 민들레 꽃>
마음이 한없이 외로울 때,
아, 내 존재는 도대체 이게 뭐야~~~>? 아, 짱나~~~ 이런 날,
까닭없이 마음이 외로운 날이 있죠.
그런 날, 지금은 이별했는지, 사별했는지 내 곁에 없는 그대가 생각나고.
그대는 민들레 꽃 안에서,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엔 저바다 보다 먼 아득한 거리가 있지만,
그대는 조용히 나를 찾아오지요.
그대와 내가 말했던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가 나의 존재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이런 시입니다.
존재의 외로움은 근원적인 거구요.
본질적인 거겠지요. 어차피 '너 날 수 있어?' 이렇게 묻는다면,
'응, 나는 너 일수 있어...'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되겠습니까?
만일, 있다면, 정말 아껴주셔야죠.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ㅎㅎㅎ
그렇지만요. 또 우리는,
서로는,
영원히 단 하나의 세포도 공유할 수 없는 남남인 것이랍니다.
서로의 본질을 알지 못해 눈물짓는 것보다는,
민들레꽃처럼 한 순간이라도 서로 위로해 주는 존재가 되면 그것도 성공한 존재들 아닐까요?
아, 얼마만한 위로이랴!
이렇게 말입니다.
또 정공채의 <간이역>을 잠시 보죠.
우리는 서로의 존재들에게 <목적지>는 될 수 없을 거예요.
나의 목적지는 <나의 완성>일텐데요.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 완성을 어떻게 꿈이나 꾸겠습니까?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 하다 그리 되어버리는 것'이 인생인데 말이죠.
그나마, 서로가 잊혀진 얼굴들 사이에서 간혹 스쳐지나간 것으로 기억되는 <간이역>으로 남는 것도 뭐, 괜찮겠지요. ^^
꿈도 슬림하게... ㅎㅎ
피어나는 꽃은 아무래도 간이역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道程)에 꽃이 피어 있었던가
잠깐 멈추어서
그때 펼 것을, 설계(設計)
찬란한 그 햇빛을......
오랜 동안 걸어온 뒤에
돌아다 보면
비뚤어진 포도(鋪道)에
아득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그 꽃은 지고
지금 그 꽃에 미련은 오래 머물지만
져버린 꽃은 다시 피지 않는 걸.
여숙(旅宿)에서
서로 즐긴 사랑의 수표처럼
기억의 언덕 위에 잠간 섰다가
흘러가 버린 바람이었는걸......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에 작은
간이역 하나가 있었던가
간이역 하나가
꽃과 같이 있었던가.
<존재의 본질> 하면, 또 제가 잘 써먹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봉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정말 이쁜 만화거든요. ^^
일부러 일본어로 적었는데요.
센과 치히로는 한자로 한 글자 차이에요.
센은 음으로, 치히로는 뜻으로 읽은 거죠. 번데기 앞의 주름잡기...
부모님이랑 즐겁게 지내던 치히로는 이상한 할망구를 만나게 되고, 거기서 '네 이름은 너무 거창하구나.' 이런 명령에 뒷글자를 잃고 '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런 센은 맨날 목욕탕 때밀이를 하죠.
목욕탕을 들락거리는 괴물들은 모두 '가오나시(얼굴없는)'들이구요.
존재의 본질을 망각한 존재들은 모두 센이 되어서 무의미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답니다.
친구로 나오는 하쿠가 그러죠. <네 이름을 잊어서는 안돼!>
너는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센이 아니야.
너는 행복했던 때의 너, 치히로란 너의 본질을 찾아 가야해~~ 이런 외침 아닐까...하구요.
자, 오늘은 좀 어려운 시를 다루고 나니, 저도 정신이 좀 멍~ 한데요.
전에 말랑한 시만 다뤘더니 세실님이 '연애 박사'라고 놀리더라구요. ^^
그래서 좀 아는 체 해봤는데, 이거 구석구석 틀린 부분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철학 같은 건 저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암튼, 제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이야기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
센과 치히로 이야기 하면, 수업 시간에 아이들도 진지하게 듣거든요.
김춘수, 신동집, 또는 박남수의 <새> 같은 시가 나오면 아이들이 울상이 되어버리는데,
그때 <센또 치히로노 카미카쿠시> 이야기 해주면 또 헤헤거린답니다.
학생들은 맨날 조삼모사 수법을 써야 한다구요. ^^
앞에서 어려운 거 확 풀고, 뒤에서 쉬운 거 가르쳐 주고... ^^
그래서, 오늘의 수업 기법은 <조삼모사>였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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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없습니다.
8분 가량 되는데,
화면없는 백지를 보면서, 도대체 나는 누구세요? 하고 잠시 멍때리시기 바랍니다.
강의할 게 없으면, 제가 잘 써먹는 수법이에요.
칠판에, '너는 누구냐?'이렇게 쓰고,
저는 멍~~~ 때리고 있죠. ㅎㅎㅎ
몹시 덥습니다. 건강 또 건강하시고...
오늘 밤에도 행복한 꿈 많이들 꾸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