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에 한 편 정도 올리겠다고는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습니다. ^^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마기 님의 시도 좋아지고, 시에 빠져드시는데,
이 특강이 지향하는 바를 제대로 드러내기에는 지금 제목이 나을 것 같아서입니다. 

세상에 시는 지천으로 깔려있습니다만,
뱀을 보고 '길다'고 한 것도 시라고 합니다.
오늘 태풍이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지나갔습니다.
저더러 시 쓰라면, '쎄다~'정도 썼을까요? ㅎㅎㅎ 

오늘은 신경림의 '갈대'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파스칼이 그랬다지요. '팡세'란 수상록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구요.
은유법이 쓰였죠? 오늘은 갈대로 시작해서 은유의 바다에 풍덩 빠져보겠습니다.
일단, 신경림의 그 유명한 '갈대'를 읽어 보겠습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갈대> 

제가 이 시를 처음 대한 건, 대학 1학년 멍청하던 시절인데요.
같은 과 여학생 하나가, 수업 시간에 갑자기 이 시를 내 앞에 쑥 들이 밀데요.
그러면서, 읽어봐~ 이러는 겁니다.
멍청했던 저는 멍청하게 읽고는, 멍청하게 돌려줬다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열아홉 살 여린 나이에, 시쓰겠다던 내 친구는 '갈대'를 읽으면서 얼마나 짜릿한 전율을 느꼈을까!
그 반면, 멍청했던 나에게 시는 뭐, 시험에 나오는 시나 몇 편 알던 그런 거였습니다. 

그러다, 스무 남은 살이나 되어 혼자 자취하던 날이었는데 말이죠.
어쩌다 혼자 집에와서 비스듬히 누워 신경림 시집을 읽다가, 갈대를 떡하니 만났는데,
정말, 숨이 헉, 막히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 이란 대목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데요.
그 때가 1989년 전교조가 결성되어 해직이 시작되던 서슬 퍼렇던 시절이었던 정도만 기억이 나네요. 

시험지 말미에 여백이 좀 남거나 하면, 시를 한 편씩 옮겨 주기도 하는데요.
이 시가 단골입니다.
이런 여학생도 있었어요.
시험 마치고, 새초롬한 눈으로 와서는
선생님이 이 시 치셨냐고... 근데, 왜? 이랬더니,
시험치다가 이 시 읽고 눈물이 나서 시험을 망쳤대요.
아이고... 그래서, 내가 미안하구나... 했더니, 아니오, 좋은 시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갑디다. 

그런 게 시 감상인 건가봅니다.
마음을 퉁, 치는 울림이 있는 시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 신경림의 '갈대'를 꼽습니다.
이 시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시어들도 간결하고, 단정하며, 쉽습니다. 반복되기 때문에 어려울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시를 읽어가면서,
이 시에 대해서, 더이상 설명은 군더더기에 불과할 것이기에, 다시 읽어보시는 걸로 설명을 대신하겠습니다.
암튼, 산다는 일은, 그런 거예요.
째콤이고, ㅋㅋ
피투성,의 존재구요.
그렇지만, 시를 쓰시는 마기님이나, 시를 소개하고 풀이하는 일에 재미붙인 저나 <기투>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답니다.
갈대지만, '생각하는 갈대'가 되자구요.
파스칼의 팡세 첨에 이렇습니다. '인간은 나약한 갈대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라구요.
나약한 갈대는 '피투성'의 갈대고, 생각하는 갈대는 '기투'의 갈대인 거죠.(피투성에 대해 모르시는 분은, 10강을 들어 보시길...) 

조용히 울던 갈대,
온몸이 흔들리는 갈대,
누가 흔드는지 생각하는 갈대,
제 울음이 흔드는 것도 몰랐던 갈대,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던 갈대,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젠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갈대...

인 화자를 만나게 됩니다.  

<존재의 이유>라는 노래도 있었는데, 뭐, 그 노래 가사야 별 거 아니지만,
인간 존재가 뭐 이유가 있나요?
피투성,의 존재인 걸요. ^^
기억 나십니까? 우연히 던져진 존재, 피투성의 존재.
의미가 없게 살아가는 게 당연한 존재죠. 

도대체 사는 게 뭔가.
새삼스럽게 이 나이에 그런 고민을 떠올릴 것까지야 없는 거 아니냐?며 반문할지 몰라두요.
어떤 나이와 상관없이, 공자님 말씀처럼 지천명이든, 이순이든, 그 고민은 떠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도대체, 삶이란 어떤 것일까?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있는 것.

아, 삶에 대한 비유로 얼마나 처절하면서 간결한 문장인지요.
이 문장을 나직하고, 조용하게 읊조려 보세요.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있는 거...라구요.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팡세에서도 하고, 갈대에서도 하고 그런 걸까요?
그것은 시대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답니다.
20세기라는 시대는 자본주의와 함께 열립니다.
서양의 자본주의는 후발 국가들의 시기와 질투에 휘말려, 세계대전의 연기속에 휩싸이는데요.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독일, 이탈리아입니다. 통일이 늦게 된 나라들이죠.
그런데 세계대전에서 죽어나간 군인들은 어른이 아니라 청소년들이었대요. 청소년의 전쟁.
자본주의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 존재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이런 시대를 까놓고 말한 것이 니체입니다. 

형이상학자들은 신이 있네, 없네 다투는데,
솔까말, 신이 있으면, 이런 자본주의와 세계전쟁의 꼬락서니는 뭐냐?
시대의 분석에 따라 그는 <신은 죽었다>는 말을 합니다. 신이 있고 없고를 따지는 게 아니라 말이죠.
인간은 '바보'지 '죄인'은 아닌데, 성직자들은 '죄인'으로 만들거든요.
그래서 니체는 '위버-멘쉬'(일본에서 초인으로 번역)가 되려면,
'낙타'같은 수동적 태도를 버리고, '사자'같은 용맹함을 가져야 된다고 했답니다. 

낙타 하니깐, 하이데거의 <피투성>이 떠오르시나요?
사자 하니깐, 당연히 <기투>가 떠오르셔야죠? ^^ 훌륭한 수강생들이니 말입니다. 

니체 : 신은 죽었다
신 : 니체 너 죽었다!
청소 아줌마 : 니들 둘 다 죽었다... 

니체가 좋아할 법한 개그죠.
근데, 니체가 낙타보다도, 사자보다도 좋아한 게 있대요. 바로 '어린 아이'랍니다.
엄숙하고 장엄한 삶보다는,
어린아이처럼, 고정되지 않는 <변신>의 명수로 사는 것 말입니다.
초인,은 위인이 된 사람이 아니라,
고정된 <인간형>을 뛰어넘는 존재라고 하더라구요.
(오늘은 너무 딱딱한가요? 이제 한계점 도달인가봐~ ㅋㅋ 제목만 유쾌한~으로 바꿨어~ㅋㅋ)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그의 책도 그런 의미랍니다. 

다음엔 고정희의 시 한 편 읽어 보시죠.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이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또 나오죠. 갈대~
근데, 상한 갈대라네요. 상태가 좀 더 나빠졌쓰~ ㅋ 
상한 영혼들에게 이 연사! 두 번이나 외칩니다!
충분히 흔들리자고...
고통을 거부하지 말고, 고통에게로 가자고...
뿌리 깊다면,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을 거란 믿음을 갖고, 흔들리며 살자고
 

갈대도 못 되어, 개구리밥에 불과한 부평초일지라도,
고통과 살 맞대고 살자고...
삶은 끝없이 피투성으로 점철된 존재인데,
뭐, 화려한 도시를 찾아 헤매지 말고,
이 세상 어디에서든, 최선을 다해 살아 보자고...
어차피 외로운 거, 굳세게 가자고... 

아무리 막아도 바람은 불고,
갈대는 울고 있지만,
영원한 눈물도 영원한 비탄도 없노라고...
상한 갈대, 그대여.
하늘 아래선 캄캄한 밤에 너를 향한 손 하나 오고 있노라고... 

읽다 보면, 비슷한 주제들을 다룬 시들이 참 많습니다.

아까 신경림의 갈대를 다루다가, 은유법을 잠시 이야기했습니다.
중학교때, 배우잖아요. 왜. 
비유법에는 직유와 은유가 있다.
직유는 ~~처럼, ~~같이, 이런 거고, 은유는 A는 B다.
그러고 꼭, 들어주는 비유의 예는 '내마음은 호수다.'  

그런데,  이렇게 배운 성인들에게 물어봅시다.
내 마음은 호수다. 내마음과 호수 사이에 뭔가 유사점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뭐냐구요~

읽으시는 지금, 답해보세요.
호수와 내 마음의 유사점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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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답이 아닙니다.
내 마음은 호수~란 비유의 뜻은 그 뒤를 다 읽어봐야 합니다.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어떤가요?  
호수와 내 마음의 유사점이 뭐죠?
거부하지 않음이잖아요.
내 마음은 호수예요.
언제나, 언제까지나... 당신의 마음만 내키시면,
마음을 내서 노저어 오시기만 한다면,
나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가득해서,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겠어요~
이런 사랑의 표현이죠.  

듣고 나니,
비유법을 잘못배우신 거 같지 않나요? ㅎㅎ 

비유는 '유사성'에 근거하여 빗대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잘 드는 예로, '사랑은 피자'도 있는데요.
사랑은 피자와 뭐가 유사한가요?
피자 위의 토핑은 먹기 싫은 거 골라 내버리면 피자가 아니잖아요.
그건, 피자 도우지~
먹기 싫은 토핑도 같이 먹어야 맛이 나듯이, 사랑도 입맛에 맞는 상황만 즐긴다면, 그건 진실한 사랑이 아니겠죠?
그런 비유라면, 사랑은 피자다!
좀 괜찮지 않나 자뻑에 빠져 듭니다. 

비유를 쓰는 이유는 말입니다. '사랑'이나 '내 마음'과 같은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기 위한 거예요.
애절하지만, 비유가 없어서 시적이지 않은 가사 한 번 보실래요? 

그 사람 날 웃게 한 사람/ 그 사람 날 울게 한 사람/그 사람 따뜻한 입술로 내게 /내 심장을 찾아준 사람
그 사랑 지울 수 없는데 /그 사랑 잊을 수 없는데/그 사람 내 숨 같은 사람/그런 사람이 떠나가네요.
그 사람아 사랑아 아픈 가슴아/아무것도 모른 사람아. /사랑했고 또 사랑해서/보낼 수 밖에 없는 사람아.. 내 사랑아
내 가슴 너덜 거린데도/그 추억 날을 세워 찔러도/그 사람 흘릴 눈물이/나를 더욱더 아프게 하네요
그 사람아 사랑아 아픈 가슴아/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아/눈물 대신 슬픔 대신/나를 잊고 행복하게 살아줘...내 사랑아
우리삶이 다해서 우리 두눈 감을때 그때 한번 기억해...
그 사람아 사랑아 아픈 가슴아/아무것도 모른 사람아. /사랑했고 또 사랑해서/보낼 수 밖에 없는 사람아..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내 사랑아 

요즘 엄청 인기인 '탁구왕 김제빵~'인가 하는 드라마에 나온다던가? 뭐, 이승철 노래라는데... 인기라네요.

노래 가사에서 비유를 써서 추상을 구체화하긴 어렵죠. 직설적일 수밖에요.
근데, 다음 시 한번 읽어 봅시다.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이성복, 꽃피는 시절>

저는 이 시를 첨 읽고, 이별하는 상황을 떠올렸답니다.
위에 나온 '제빵왕~' 주제가보다 훨씬 가슴 먹먹하게 하는 이별가 아닌가요? 

1연 : 당신은 멀리 있어요.
2연 : 자꾸 당신이 고개를 들어요.
3연 : 내 안의 당신은 나를 벗어나려 하지만 
4연 : 내게서 당신이 떠나면 내 몸 다 찢어져요.
5연 : 온몸이 당신과의 이별을 아파해요.
6연 : 어떻게 당신을 보낼까요.
7연 : 당신을 어떻게 보낼까요...

뭐, 하는 이야기는 이런 건데요. 

나는 울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5연)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7연) 

히야~ 다들 이별이야 몇 번 씩 해 보셨잖아요.
이렇게, 울다가 웃다가 토할 지경이 되고, 벌컥벌컥 물 마시고 길길이 날뛸 지경,
다들 경험해 보셨잖아요?
어, 다들 왜 그래요.
이 구절 읽고 술 마신 다음 날 떠올린 사람들처럼?
그건 아니잖아요. 그런 건 이별이 아니잖아요. 그냥, 퇴근이지. ㅋㅋ (개콘을 안보신 분은, 먼저 보시고 읽으셔얄 듯 ㅠㅜ)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아, 얼마나 애절한 이별의 메시지인지요.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을 보셨나요? 제목은 꽃피는 시절~이랍니다.
꽃피는 시절에 이별을 한 걸까요?
이 시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나는 <나무>로 변신을 하겠습니다.
나는 뻣뻣한 나무입니다.
내 안에서 봄이 오면, 꽃이 피어나려 움트고 있겠지요. 

다시 1연 : 겨울에도 나는 꽃이 올 것을 알아요.
2연 : 봄이면 당신은 당연히 올 거예요.
3연 : 내 안에 너 있다~
4연 : 꽃이 피려면 내 몸으 갈라지는 고통을 겪어야 해요.
5연 : 희고 고운 꽃이 잎잎이 피어날 거예요.
6연 : 그러나, 어떻게 꽃잎을 떨굴까요? 미치겠네~
7연 : 내게 매달린 조그만 꽃잎과 어떻게 이별할까~ 

꽃이 피었다 떨어지는 것을.
나무에서 꽃이 솟아나고, 이별하는 것을,
남녀간의 이별의 상황과 유사한 점들을 추출해서,
<이별>이란 추상을 <낙화>란 구체로 비유한 것!
이런 것이 비유의 짜릿한 전율이 아닐까 합니다. 
저 짜릿한 거 참 좋아하네요. ^^ 

신영복 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보통 우리더러 집을 그리라고 시키면, 지붕부터 그리잖아요. 지붕 아래 집 그리고, 창문 그리는 순서.
근데, 목수가 그림그리는 걸 봤더니, 주춧돌부터 그리더래요.
그 다음 기둥, 창문, 지붕은 맨 나중이라죠.
지붕부터 짓는 집은 없는 거죠.
그런 게 삶에서 우러난 지혜이자 삶의 연륜, 곧 나이테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립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경험을 통하여 얻은 묘한 이치나 요령,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제 제가 쓴 리뷰에서 <매직>의 순간을 이야기했는데요.
사노라면, 매직의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고, <미립>이 나는 프로가 되기도 하는 거겠지요.
제 리뷰에 쓴대로, 꿈꾀꼴깡끼끈꾼이 되려고 너무 심하게는 아니고,
미립이 날 때까지 <기투>하는 일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 옆에서 22년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방학인데도 이제 수능 99일 전인 아이들의 공부를 보노라면,
불쌍하단 생각이 들어요.
이제 미립이 나서 좀 잔인해질 때도 되었는데 말입니다. 

원래 새싹은 광합성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엽록소가 없답니다. 
근데, 우리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부터 광합성하라고 후려잡는 거나 아닌지...
알묘조장,이란 말이 있습니다.
장자,엔가 나오는데,
싹이 자라게 하라고 시켰더니,
밤새 모든 싹을 쏘옥~쏙 잡아당겨서, 키를 크게 해 놨더래요.
담날, 싹들은 모두 죽어버렸죠.

 

방학인데, 자녀분들은 모두 잘 자라고 있을까요?
혹시 알묘조장하시는 부모님들은 안 계실까요? 

유럽에 가면, 곳곳에 '로댕'의 작품으로 '깔레의 시민들'이란 동상들이 있습니다.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가진 깔레의 시민들을 기리기 위한 것인데요. 

태풍도 지나갔고, 다시 열기가 올라봤자, 이제 가을에 점령당한 여름은 맥을 못 춥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생각해보는 동영상 2편 넣으면서, 오늘은 문을 닫을게요.

 

 

비도 내리고, 기분도 꿀꿀한데,
쐬주 한 잔 하지 마시고, 엔딩 포엠 한 편 읽어 보세요.

곽재구, 새벽편지, 입니다.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제 닉넴이 '글샘'입니다. ^^ 
국어 선생님이라 글 샘이구요.
글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길 바라는 글 샘이구요.
글 잘 쓰고싶은 샘이 많아서 글 샘이랍니다. ^^ 

오늘도, 어딘가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지 않나요? 

아름다운 밤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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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11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풍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추를 지나니 엄마말씀대로 찬바람이 나긴 나는군요~~
세상만사 다 때가 있는거죠~
아무리 힘들었더라도 지나고 보니 다 꽃피는 시절이 되는듯 싶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낭만이 있었지..이러면서요

글샘 2010-08-11 21:47   좋아요 0 | URL
꽃피는 시절, 그런 의미가 담겨 있겠지요.
청춘의 이별을 꽃피는 것과 비유한 것은 참 절창입니다.

울창 2010-08-1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강 제목을 바꾸신 것. 이 특강이 오래오래 계속될 것 같은 좋은 느낌을 받습니다.
마기님은 살짝 서운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고정희의 시는 언제 읽어도 울컥, 합니다.
상하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겠습니까
너도 나도 우리 모두 다 조금쯤은 맛이 가 있지만
그래도 서로 마주잡을 손이 있으니...


비로그인 2010-08-11 22:17   좋아요 0 | URL
살짝이 아니라 많이 서운하죠.ㅋ
하지만 한편 맘이 편합니다.
시 숙제의 부담이 덜해졌으니까요.

글샘 2010-08-12 10:10   좋아요 0 | URL
마기님, 많이 서운하셨어요? ^^
이렇게 롱런할 거라고 생각도 안해서 붙였던 이름이니깐, 이제 당분간 이렇게 갈게요.

오래오래 계속될 지는... 제 능력에 기대를 걸어 보겠습니다.
상한 영혼... 이런 시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죠.

시 숙제의 부담 없이도 잘만 쓰시더구만요. ^^

비로그인 2010-08-12 12:07   좋아요 0 | URL
어제는 시를 써봤지만...당장 오늘아침부터는 뭔가 달라졌어요.
나를 위한 시 특강에 숙제를 한다는...그 특별한 상황이 사라지니까...시상이 전혀 떠오르지가 않네요.
푸히히~~

글샘 2010-08-12 20:09   좋아요 0 | URL
꼭 숙제는 아니라도 답시는 계속 써 주셨으면 해요. ^^

sslmo 2010-08-1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아침이네요~^^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들은 라디오에서 이승철 노래가 나왔었는데,
여기서 또 보게 되네요~
(헐~컴 스피커가 안 되는 걸 어찌 알고...)

시 특강 제목이 바뀌었네요?
그렇다고 앞으로 마기님의 답시를 볼 수 없게 되는 건 아니겠죠?

글샘님의 특강이 오래오래 계속 된다는 건 해피한 일이지만,
마기님 식의 특강 해석도 전 좋았거든요~^^
(네,저 마기 선녀의 나무꾼 맞습니다여~)

글샘 2010-08-12 10:11   좋아요 0 | URL
오래오래 계속 되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컥, 합니다. ^^

페크pek0501 2010-08-1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강의가 계속되도록 저도 한 표 찍겠습니다.ㅋ
제목은 어떤 게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많아서, 길어서 다 읽어 보진 않았지만 종종 찾아와 시 강의를 읽곤 했어요.
시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 강의는 계속되어야지요.
마기님의 시도 하고 다른 시인들의 시도 하고...
이럴 때 저도 시를 쓸 줄 알면 좋은데 ㅋㅋ
그냥 전 팬으로 남겠습니다.

글샘 2010-08-12 20:09   좋아요 0 | URL
너무 길었군요. 안 그래도 길이를 줄여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오래 가려면 짧게 가야하는데... 쓰다보면 생각이 막 엮어서... 꼬여요.
계속 가도 좋을까요???
 
진심의 탐닉 -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 김혜리가 만난 사람 2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지승호의 인터뷰가 사회정치적 함의를 품은 인터뷰이들을 만나거나 감독들만을 집중조명하여 만나는 것들이었다면,
시네 21의 김혜리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폭의 한정이 없다.
유시민같은 정치가부터 고현정같은 탤런트, 정재승은 물리학자, 장한나는 첼리스트, 김제동이나 김미화같은 의식있는 개그맨 등, 그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삶의 고단함과 함께, 치열한 삶에서 묻어나는 재미가 살아 울린다. 

김훈이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썼지만,
그 지겨움 안에서 김훈은 '프로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자기 일을 즐긴다'는 생각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무한도전의 김태호 피디나 신경민 앵커 등,
소위 방송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법한 사람들과의 인터뷰 안에서,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의 전문적 소양을 집어낼 만한 질문들을 편안하게 이끌어 내고,
인터뷰이들의 담담한 이야기 속에서 나는 '프로 근성'을 찾아 읽는 재미를 느낀다. 

이 책의 각 인터뷰는 단속적인 것이어서, 요즘처럼 책읽기 쉽지 않은 계절에 딱 어울리는 독서 캐릭터다.
고현정을 읽다가 정우성과 김혜자, 정두홍, 하정우 등의 연예인을 몰아 읽을 수도 있고,
김연수, 김경주 같은 문학을 최규석의 만화와 엮어 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단어는 <매직>이다.
천안함에서 발견된 북한산 불후의 파란 색 매직 말고, 마법적인 매직.
정성일 감독이 어려서 후진 국산 영화를 보다가 이만희 감독의 '삼포가는 길'을 보고 <매직>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하는 구절에서 등장한 용어인데, 무슨 일이든 그런 면이 있다.
붓글씨를 쓰는 순간에도 어느 순간, 자신의 필력이 확 두드러지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고,
줄넘기 이단뛰기를 두세 번도 하기 어렵던 팔다리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일이 십번을 할 수 있는 매직의 순간을 경험하게 마련이다.
독서에서도 마찬가지고, 운동도 그렇고, 음악 연주도 그렇다.
그 매직의 순간을 맛보려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 책은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행복한 독서를 만나는 일인 것이다.
스물 두 편의 인터뷰를 읽노라면, 품질이 균질하지 않은 일은 당연한 일일 것인데, 그러나... 작가의 능력보다는 톡톡튀는 새콤한 인터뷰이들의 이력서가 이미 그 <매직>의 순간을 들려주기를 약속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이다.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기억의 총합이다. 

이런 경구가 있다고 한다.
정재승처럼 <뇌>가 인식하고 있는 그 전류의 흐름이 사실은 존재의 본질일는지 모른다.
내가 만난 사람들.
사랑했던 사람들, 애증이 얽혔던 사람들... 과연 그들에게 나는 최선을 다하였던지...
이 책에선 나보다 훨씬 최선을 다해 초점을 맞추기 위하여 볼록렌즈를 치열하게 한 점에 맞추는 순간들에 땀흘린 기억들을 술술 풀어 주고 있다. 그래서 김혜리 기자가 고맙다.
그들의 초점 맞추기 작업들을 김기자를 통하여 만나는 일은 황홀한 매직의 순간을 함께, 할수 있는 행복이니깐. 

김명민이란 멋진 배우가 '배우의 배'자는 사람인 변에 아닐 비자를 써서,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사람만이 배우가 될 수 있다는 이런 철학.
그런 이야기를 듣는 일은 인생의 매직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관심>을 가지는 일이라고 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지금에 관심을 가지고, 매직의 순간까지 초점맞추기, 땀흘리기를 부정하지 않고 매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이토록 힘들어하는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이다.
내가 날마다 짜증내며 서있는 교단은, 수만 명의 임용고사 준비생들이 합격의 기쁨을 누리기를 꿈꾸는 꿈이 자리다.
그걸 안다면, 힘들다고 짜증내며 살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이야기 속에서...
한국 시 비평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가 시를 자꾸 2차 담론으로 번역하려고 한다는 거.
한용운의 문장 스탈은 기억이 안 나고 님의 침묵의 '님'은 은유다...
지금도 시 비평의 대부분은 시인이 하고 있는 말이 뭔지 산문으로 옮겨놓는 것.
이 경향이 초래하는 문제는 메시지가 별것 없거나 전달이 잘 되지 않는 시는 곧장 '소통의지가 없는 시'로 규정한다는 것.
이런 구절이 있다.
나의 시 특강이 달려가야 할 바가 무엇일지... 생각할 포인트를 주는 구절이다.
모든 시에 열려있는 특강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한때 유행했던 말 중, 쌍기역으로 시작하는 인생의 포인트가 있었다.

꿈끼깡끈꼴꾀꾼...들이 그것이다.
꿈(희망)을 가지고,
끼(재능)를 기르며,
깡(근성)을 닦고,
끈(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꼴(모습)에 책임을 지고,
꾀(지혜)를 닦음에 게으르지 말고,
꾼(전문가)이 되라는 말. 

김혜리 기자의 이 책에서는 꿈끼깡끈꼴꾀꾼들이 가득가득하여, 행복한 독서가 될 것을 보장해 준다.
이 더운 여름, 스물 두 명의 꿈끼깡끈꼴꾀꾼들과 무더위를 식히는 일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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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11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그냥 다 읽은 것 같아요 ㅋㅋ
<매직>을 경험해야 할 텐데
매직펜만 손에 쥐고 있으니...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도 울림이 크네요.
글샘님의 시 강의는 시는 물론이고
시 아닌 것도 시로 보게 만드시는데요 뭐(예를 들자면 스카치테이프 ㅋㅋ)^^

글샘 2010-08-11 07:44   좋아요 0 | URL
나쁜 리뷰란 소리네요. 책을 읽고싶어지게 만들지 못하는... ㅎㅎㅎ
스카치테이프만 기억하는 공부 안 하는 학생인 건 아니시죠? ^^
제 시 강의는 어찌 흘러가다 보니, 아직은 유명한 시, 아름답고 읽히고 싶은 시를 고르고 있습니다만, 글쎄요, 제 의지는 앞으로 100회 200회까지 롱런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관성에 의해 굴러가선 안 되고, 뭔가 사유가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도, <매직>이 오겠죠?

sslmo 2010-08-1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그 매직이란 거...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Runner's high랑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싶어요~

전 제가 지금 하는 일이랑 관련하여서는 그 '매직'의 순간을 경험한 거 같은데,
그 매직의 순간은 잠깐이더군요.

그래서 또 다른 매직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때는 준비되었을 때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운도 남지 않을 정도로 너무 후딱 지나가는 그런 거 말고,
추억하며 되새김질 할 수 있을 정도로...나중에,천천히~!

글샘 2010-08-11 13:35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하산하세요! ^^
매직의 순간이란 게 짜릿한 순간적 감정이 아니라, 프로가 자기 일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꾼'으로서 만나게 되는 진정한 환희가 아닐까 합니다.
근데... 인생 자체가 준비된 연후에 되는 게 뭐가 있던가요? ㅎㅎㅎ
나중은 없습니다! 되새김질은 노령연금받으면서 요양병원 가서 같이 해요. ^^
지금 하시는 일에서 더 고양된 매직의 순간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뭣도 모르면서 말만 번지르르한...)

sslmo 2010-08-11 15:18   좋아요 0 | URL
매직의 순간 다음은요~
아깐 얘기할 수 없었지만...고상한 표현으로 하산이고 곤두박질이겠죠,ㅋ~.

옛날 생각 나서,페이퍼 하나 만들었어요.
트랙백으로 걸려다가...샘한테 반항한다고 할까봐 무서버서~=3=3=3

글샘 2010-08-11 17:10   좋아요 0 | URL
트랙백 걸어주세요. 안 그러면 안 보겠습니다. ㅎㅎ

sslmo 2010-08-12 09:38   좋아요 0 | URL
혹,즐찾 등록은 해 놓으셨겠죠?
(트랙백 글이 안 보인다던가 하진 않겠죠?^^)
실은 어제 하산 하라는 말에 울컥해서 옛 페이퍼를 찾아 올리긴 했는데...
샘만 읽으심 블라인드 처리 해버릴려구 했었거든요.
헐~하룻밤 사이에 추천들 하신 거 보고...어쩌지 하고 있어요~

글샘 2010-08-12 10:18   좋아요 0 | URL
ㅎㅎ 하산하란 말에 울컥할 정도로 소녀이신 거? ^^

뭘, 어쩌지...예요. 그냥 냅두는 거죠.

아직도 그런 감성이 살아있으신 걸 보면, 달인이 되려면 엄청 멀었네요.^^
칭찬이고 격려인 거 아시죠?

2010-08-12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린
박연서 지음 / 한국문연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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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랑 약속이 있어서 버스타고 가는 길에 읽으려고 집어든 시집이었다. 

시집을 버스간에서나 서점에 서서 읽는 일은 기분좋은 일이다.
시집에 담긴 시어들은 작가가 적어도 며칠 밤을 삭이고 되새겨 뱉어낸 말들인 것들이 많아서,
그런 시 표현들을 만나면, 숨을 쉬기가 가쁘다.  

문간방 노인
가래 끓는 소리 그믐을 반죽한다.<달동네, 부분> 

이런 표현은 곰삭은 젓갈 냄새가 난다. 

너 없는
마당을 홀로 서성인다. 

유령처럼 서있는 고요 <불면, 전문> 

잠들지 못한 시인의 서성임이 오롯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이는 불면의 밤을 펜대 끄적이며 머리 쥐어 뜯었겠지만, 읽는 사람은 편안하게 그 불면을 즐긴다. 

너는
잔바람소리에도 새벽잠을 설친다. <벼락, 부분> 

이런 구절은 시인의 불면을 잘 보여준다. 잔바람소리도 깨우는 새벽잠을 가진 사람.
예민하겠다.   

숲이 마른 기침을 시작한다 

담쟁이 넝쿨 뻗는 소리 차츰 가늘어진다 

비좁던 길이 갑자기 헐렁해진다 <가을, 부분>

불볕을 기어오르던
수세미  덩굴
빨래 줄에 목 감은 채 시들어가고
내 안에 어스름 스미는 저녁  <빈집의 저물녘, 부분> 

소리없이 어둑발 내리는
텅 빈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다
네 그림자 <11월, 부분> 

사방이 축축하게 어둠의 그늘로 덮이면
너는 밤바다의 심해어
불협화음의 장단에 맞춰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지느러미를 꿈틀대기 시작한다 <11월의 바람>

나이가 드는 시인은 차츰 가늘어지는 자신의 팔다리를 보는 듯, 세월을 본다.
빡빡하던 삶이 갑자기 헐렁해지는 자신의 삶의 세월을...  

시어들이 간혹 외따로 노는 구절도 있고, 심심한 시도 간혹 보이지만,
오랜 세월 심해어처럼 어둠 속에서 예민한 촉수를 움직여 시를 써온 필력은 펄떡이며 살아 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드는 시인들은, 나이에 맞는 소재를 풀어쓸 때 가장 푸근하다.
그의 <설날>은 가장 눈에 마춤한 시다. 

재래시장
좌판대에서 마른 고사리를 샀다
원산지 : 조선
가느다란 줄기를 한 움큼씩 묶은 것이
물동이 받침대 같기도
아니
태극문양 닮았다 

인터넷 창에
빈창자 틀어쥐고 야반도주해
막막한 길로 팔려간다며...
클릭!
화면은 할당된 시간만 잠시 주춤거릴 뿐
자명고 한 번 두들기지 못한다
난파선에 매달려있는 북조선 여자들 

설날 아침
차례 상
삼색나물로 올라와
맛깔스럽게 놓여 있는 고사리나물
위에
화면 속
그 검은 꽃잎들이 자꾸 얼룩얼룩 겹쳐 보인다
이상하다
갑자기
망막이 흐릿해지고
웅크린 침묵이 비만으로 신음을 한다 <설날, 전문> 

그의 <콩>도 나이든 이들만이 쓸 수 있는 고향 냄새로 가득하다.
고향 냄새로 가득한 추억을 반추하는 나이의 <생인손>이 아릿하게 눈에 밟힌다. 

살구꽃을 배경으로 찍은 어머니의 흑백사진 먼지 낀 액자 속에서 할 말이 있는 듯 웃으신다, 해마다 날을 잡아 장판을 손수하신 어머니, 아궁이에 불을 지펴 습기 찬 온돌 구석구석을 말리고, 초배를 한 다음 그 위에 손질한 부대종이를 바란다, 사각 꼭짓점에는 자신의 길을 치장하기라도 하는 듯, 꽃모양을 예쁘게 오려붙여 종이가 팽팽해지면, 솜털 숭숭한 날바닥을 생콩 갈은 것으로 문지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집안은 온통 콩 비린내로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대개 여름 우기가 끝난 추석 전에 치르던 연례행사, 아침저녁 톡 쏘는 바람살 차츰 배대해지는 사색이 영역을 넓혀 갈 때 통액을 포식한 방바닥은 반들반들 질이 나기 시작하고 구정물 속 찌꺼기는 부패를 서두른다 

고목나무에
꽃망울 맺히는 그런 터는 아니래도
넓은 앞마당과
소나무 우거진 뒷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닮은 울타리 없는 우리 집
비바람이 거세질 때마다
장독대에 정한수 한 사발 떠 놓고 엎드려
격렬하게 출렁이던 얇은 어깨
짓누른
그 무게의 눈금 밟으며
캄캄한 울음
노자 삼아 먼 길 가시더니
휘몰아치는 폭풍우,
뙤약볕 가려주는 든든한 고향집
처마 밑
늘 그자리에서 생인손인 듯 바라본다 <콩, 전문>

충주댐 밑에 수몰되어버린 우리 할아버지 댁.
아버지의 그 고향 마을의 가득한 물구덩이를 내려다보면,
나는 늘 생인손이 아린 느낌이,
애리는 마음이 심장 옆 어느 구석에서 울컥, 밀려오곤 했는데,
그의 생인손을 만나니 다시 울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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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08-0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를 기다리며 시를 읽는 남자라 '쪼콤'멋진걸요~^^
페이퍼 중간까지 읽다가 제 식대로 느끼고 싶어,
장바구니에 담고 스크롤을 그냥 내렸어요~

글샘 2010-08-05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쪼콤, ㅋ

yamoo 2010-08-06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저는 시집을 완독한게 한권도 없군요~ 집에 있는 책들 중에도 시집은 한 권도 없습니다..저에게 아직은 시의 세상은 저멀리 있나 봅니다..ㅎㅎ
 

덥기는 한데, 이제 확실히 늦더위임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더위 속에 가을이 들어와 앉은 걸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제 아무리 용맹한 척 하는 장수라도, 슬그머니 숨어드는 복병을 다 알아챌 수는 없는 법이죠.
여름은 그렇게 가고, 또 가을은 그렇게 오고 할 거예요. 

요즘 마기 님의 시를 보니깐, 마음 속에서 불이 확 일어났다, 잦았다 하기도 하구요.
어느 순간, 환한 불이 확, 켜지기도 하고, 깜깜한 암흑 칠흑의 어둠이 오기도 하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 거 같네요. 

시 속에 담겨있는 언어들이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고 계시니 말입니다. 
사람들이 시를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그런 면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데 말이죠.
마기 님의 시 속에선 구체적인 '인물, 사건, 배경'이 묘사되어있지 않거든요. 

다만 한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이, 연속 장면으로 플레이되지 않고, 스틸 컷으로,
한 장면으로 캡처되어 보여지는 것이 시의 형식이기 때문에, 마기님의 마음 속에 또는 주변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모두 아는 사람 아니고는, 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오늘은 배경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시들을 몇 편 골랐습니다.
사실 시를 읽는 데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뭘 말하고자 하는 거지?
이럴 때, 유사한 경험이나 배경지식이 있다면, 훨씬 시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겠지요. 
시를 읽을 때, 독자가 완성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인이 보여준 한 장의 필름, 한 조각의 '스틸 컷'을 들고,
앞 뒤에 구체적 배경, 인물간의 관계, 사건을 상상해서 집어넣어 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방법이랍니다.^^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불러 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 낼 수 없는 <누가 울고 간다, 문태준>

문태준의 시는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기막힌 재주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경험은 스틸 컷처럼 단편적일 수밖에 없겠는데요,
영화의 플래시 백 장면처럼, 여러 장의 스틸 컷이 플래시 터지는 순간처럼 조합을 이뤄서 엉성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그 시를 읽는 독자들은 그 스틸 컷들 사이의 빈 공간에 자신의 경험을 집어 넣어, 나름의 해석을 하곤 하죠. 

이 시는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에 실린 시 입니다.
제목이 울죠. 누가 울고 간다.
울긴 누가 울었겠어요. 화자가 울고 있죠.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고 있습니다. 자기가 울면서, 누가 우네~ 이런 거.
우는 자기는 밉잖아요. 쓰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랬을 겁니다. 누가 울고 간다. ^^ 

이 시의 2연에는 '외따롭고, 머츰하다'는 낯선 말이 나옵니다.
외따롭다는 '외롭다'와 '따로따로 떨어져있어 외롭다' 이런 생각들이 함축된 좋은 시어죠.
머츰하다는... 눈이나 비가 그쳐 뜸하다는 뜻이라고 사전에 실려있는데요, 여기서는 생각이 멈칫, 거리면서 진행이 잘 안 되는 상황인 것 같기도 하구요. 좀 멍청하게 멍~때리고 있는 장면인 거 같기도 해요. 

살바도르 달리의 '창가에서'란 그림을 위에 덧붙였습니다.
저 여성은 제법 오래 창가에 서있는 거 같네요. 오른쪽 무릎을 살짝 구부린 걸로 봐서 말이죠.
뭔 생각에 젖어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 여성의 마음이 '외따롭고 머츰할' 것 같아서 고른 그림입니다. 

화자 옆으로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가 '와서 울고, 와서 울고 갑니다.'
그 새를 보고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는데, 이름도 못불러 본 사이', 울고 가버렸습니다. 
새가 울었는데, 그 새의 울음이,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게 여리게... 피아니시모로...
가느단 울음이 이어지네요.
새의 울음인지, 화자의 울음인지, 낮게, 여리고, 그리고 길게... 울음이 납니다.
귓속에서 이명처럼 울리는 울음. 그 소리를 꺼내어 펼치면, 추억이 떠오르겠지요.
추억 속에는 '그렇게 울다 떠난 사람' 하나쯤, 간직되어 있겠지요.
그 울음이 펼쳐져서 가슴속에 붉게 번지고 스며들어,
이제는 끄집어낼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린 거네요. 

번짐.
저는 이 단어가 참 좋습니다.
얼룩,에 비하면 얼마나 투명한 단어인지요.
번져가는 모습도 좋구요. 한때 담배 연기가 공기 중으로 번져가는 모습이 좋아서 담배를 배웠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체력이 고갈돼서 담배를 입에 대지도 않지만 말이죠. ^^
그림을 그릴 때면, 투명한 물통을 씁니다. 믹싱보울인데요. ^^
거기 원색의 물감이 꼬불랑거리면서 번져가는 모습을 보면 조금 흥분돼요. (ㅋㅋ 글샘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다. 저 이상한 사람 맞습니다. ㅎㅎㅎ)

시를 읽는 일은, 시어를 음미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런 시 하나 가슴에 품어 두고, 추억에도 젖어보고, 그 빈칸 속에 자기를 은근히 밀어넣어도 보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화자의 배경지식과 독자의 배경지식은 다르지만,
어딘가에서 접점이 있을 것이고, 그 접점에서 유사 체험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거겠지요.  
이런 배경지식을 어려운 말로 스키마(schema), 또는 셰마라고 합니다. ^^ 잘난 체~

배경 지식, 나왔으니 야한 이야기 하나 할게요. ^^
어떤 바람둥이 남편이 너무 미운 아내는 돈을 들여서 한 달 식량과 함께 남편을 무인도에 떨궈 뒀더랍니다.
한 달 뒤에 무인도엘 갔더니, 그 남편이 어떤 동물에게 뭔갈 먹이고 있더래요.
뭔가, 감이 오시나요?
바로, 곰에게 쑥과 마늘을 먹이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이 이야기를 외국인에게 들려준다면, 이해가 가지 않겠죠?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단군신화라는 배경 지식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에서 시작하는 유머니깐 말입니다. 

자, 그럼 좀더 야한 걸로~(요새 글샘이 19금에 재미붙였어요. ㅎㅎ) 
전에 어디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는데,
언제 지울지 모릅니다.
a 모양의 테이프, 무삭제판 전격 공개...
이런 글이 있는 겁니다.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클릭을 했는데, 벙 쩠어요. 
이런 게 떴기 때문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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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죠.
우리가 언제부턴가 O 모 양의 테이프, B 모 양의 테이프... 이런 데 익숙해져 있다 보니
A자만 보고도 누굴까? 이런 생각이 파박 떠오르는 거져. ㅎㅎ

문태준의 다른 시 한 편 보죠.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
빈손이다
하루를 만지작 만지작 하였다
두 눈을 살며시 또 떠보았다
빈손이로다
완고한 비석 옆을 지나가 보았다
무른 나는 金剛이라는 말을 모른다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어디로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앉던 그들은 <문태준, 그맘때에는> 

제목이 '그맘때에는'입니다.
그맘때, 화자의 마음 속에선 언제나 그맘때, 면 떠오르는 심상이 있는 거죠.
양철나무꾼님,
나무꾼님에게 그맘때는 어떤 계절이죠?
마기님, 마기님에게 그맘때... 하면 누가 생각날까요? 
갑자기 물어서 당황하셨죠. ㅋㅋ 수강생 놀려먹는 거 재밌습니다. ㅎㅎㅎ 무료니깐 많이 놀려야지.
pjy님, 혹시 백지영 아니시죠?  내 귀의 사탕먹는... ㅋ

이 시의 시적 화자, 서정적 자아라고도 하는 그 이에게 '그맘때'에는 이런 생각이 납니다.
그맘때는 '잠자리가 날고, 잠자리가 사라지는' 그런 시절이에요.
벼가 차츰 익어갈 늦여름 무렵이면 파란 논둑 사이로 밀잠자리, 고추잠자리들이
어지럽게 하늘을 수놓고는 했더랬는데요. 

그럴 무렵, 화자는 어떤 비석 옆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비석은 돌로 만들죠. 오래오래 단단하게 거기 버티고 있으라구요.
그 단단한 화강암 재료의 비석을 쓸어보면서, 아, 넌 참 단단하구나.
나는 물러터진 인간인데,
나약하고 보잘것 없어서,
금세 스러질 인간인데...
화강암의 석재가 풍기는 단단함이 손 끝에서 사라지기도 전인데,
내 손을 애처로이 바라봅니다.
빈 손입니다. 텅 빈 인생이죠.
그렇게 하루가, 보잘것없는 하루가 지나갑니다. 빈 손인채로...

화자는 마음이 여려서,
금강, 이란 말을 싫어하나봅니다.
뭐, 영원한 사랑,
끝없는 사랑, 언제까지나... 이런 단단해 보이는 말들,
화자하고는 인연이 아닌 거 같죠? 
그런 말들을 쉽게도 쓰는 사람들 보면, 금강석처럼 마음도 단단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안 그런데 말이죠. 

그러면서, 자신을 바라봅니다.
후두둑 후두둑하면서 풀잎에 내려앉고 떠오르는 어지러운 비상을 즐기던 잠자리들,
그들이 어느 순간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린 걸까요?
여름의 우르릉거리는 우렛소리를 따라 간 것일까요?
온 세상에 잠자리가 가득할 것만 같던,
영원히 잠자리들의 세상일 것만 같던 그 들판에서, 

그맘때가 오면요. 잠자리들이 사르르 스러지듯,
영원히 불멸의 몸일 것 같던 나도, 그대도,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이 아닌 거죠.
자, 이쯤에서 손바닥 한 번 봐 주세요. ^^
빈 손.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이야기를 조금 넣으니깐, 어떤가요?
이거 뭐야? 이러던 데서, 아, 얘도 나랑 똑같은 애구나~ 이런 동감이 밀려 옵니까? 
잠자리떼를 보면서, 비석 하나를 만나면서,
관찰한 것이 마음 속으로 와락, 달겨드는 때,
관조의 순간입니다.
시인들은 이렇게 예민해요.
민감하고, 온 몸이 감수성이어서
촉촉하게 젖어있습니다. 개구리 표피처럼요.
그러다가 익숙하지 않은 낯선 향기가 끼쳐오기라도 하면,
표피에서 산소를 잡아채듯, 낚아채는 거죠.

시를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 이 강의의 목표예요.
시는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편이라도 진심으로 공감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할 거란 생각을 합니다. 

얇은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란이 깎은머리
薄紗고깔에 감추오고

두볼에 흐르는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臺에 黃燭불이 말없이 녹는밤에
오동닢 닢새 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하늘 한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듯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는 별빛이라

휘여저 감기우고 다시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合掌이냥 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三更인데
얇은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조지훈, 僧舞> 

뭐, 교과서에도 실려서 다들 알고 있는 조지훈의 승무입니다.
조삼모사. 기억 나시죠? 낯선 시 읽었으면, 디저트로 익숙한 시 하나쯤 읽어도 무방하겠죠.^^ 

익숙한 시인데, 고딩들에게 이 시를 이해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 시하기 전에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답니다. 애들이 다들 긴가민가 하고 듣는데, 사실은 지어낸 이야기에요. 

화자는 30대 중반쯤의 신문 기자쯤 됩니다.
절간에 어떤 스님과 승무에 대한 취잿거리를 만들 일이 있어서 절에 하루 묵습니다.
초저녁에 개울에 나가 땀을 식히고 있는데,
조용조용한 걸음의 한 비구니를 만나죠. 
눈에 띄게 예쁜 얼굴이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도 마음 속에 계속 비구니의 표정이 남아있습니다.
무슨 사연으로 스님이 되었을까... 

그러다 밤이 이슥해서 부처님께 바치는 공양으로 '승무'가 펼쳐집니다.
미리 약속이 되어 이 기자는 줌렌즈로 당겨가면서 승무를 촬영하곤 하는데요.
아,
승무를 준비하는 스님이 아까 그 비구니인 거예요.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왜인지... 

얇은 비단으로 하이얀 고깔을 접어 쓴 모습,
뷰파인더로 보인 그 모습은 한 장의 나비였어요.
아, 중력의 지배에 개의치않고,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 이용해 나풀거리며 공기 속의 계단을 찾아가는 나비 말이죠. 

스님의 두 뺨으로 불빛이 비치는데, 왠지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그 눈물은 여승의 눈물인지, 뷰파인더를 바라보고 끔쩍이는 기자의 눈물인지, 분간도 안 가지만요.
텅 빈 무대에 노란 촛불 둘이 말없이 녹고 있습니다.
고요,
원시적인 고요함이 지배하고 있어요.
아주 정적이죠.
뷰파인더 안에서 간혹 한들 흔들리는 촛불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정지한 상태 같습니다. 

오동잎 잎새에 달빛이 비친 배경으로, 드디어,
승무가 시작됩니다.
긴 한삼자락을 휘감아 하늘을 가리웁니다.
어쩌면 나비처럼 중력감이 느껴지지 않는 동작이에요.
이제 뷰파인더에 스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아름다운 알록달록 의상에
화려한 손동작이 아름다웁게 가득 찼습니다. 

그러다, 작가는 찍었어요.
새초롬하게 내민 외씨같은 버선발 한 쪽. 

여승은 동작을 줄이고, 천천히 슬로우 슬로우... 데드 슬로우로...
여리게 여리게 피아니시모로...
먼 하늘 한개 별빛을 응시합니다. 

작가는 다시 비구니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요.
아~ 그러다 보고 말았어요.
그 이쁜 복사꽃 두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 맺힌 것을...
찰칵찰칵찰칵, 연속 사진으로 그 방울을 잡아내려 계속 찍습니다.

세상사에 시달린 한 가냘픈 인생이,
어쩌다 머리를 밀고, 번뇌를 별빛으로 보내는 승무를 추고 있는 것이냐!
아, 인생의 사닥다리는 어디에서 끊어져있는지 알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데, 다시 동작은 이어집니다.
나어린 여승의 동작치고는 무척이나 유연하고 장엄해요.
그래서 그 동작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합장이라도 해야할 듯 한 느낌이랄까?
시간은 점점 흐르고 밤이 깊어 귀뚜라미 소리도 어디선가 들리는데요. 

다시 스님의 모습으로 가득한 뷰파인더 안에는,
한 마리 나비로 정지한 여승의 모습이 잡힙니다. 

처음의 나비와는 조금 다른 나비죠.
번뇌를 별빛에 의탁하고 난 후라서 그런 걸까요?
뭔지 모를 애상감에 젖어들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어때요.
조지훈의 승무,가 그림으로, 아니, 사진으로 가득 마음에 들어차셨나요?
이런 시를 그냥,
주제 : 승무를 통한 속세의 번뇌의 종교적 승화
이렇게 외워버리면 재미없잖아요. 

빈 칸을 조금 메워보고,
그러면서 시를 익숙하게 끌어안고 쓰다듬고 그 부드러운 언어의 결을 느끼는 거죠. 
느껴지세요? 매끈거리면서 보들보들한
어쩌면 어린아이 젖살에서 나는 향기라도 맡아질 것 같은 시의 냄새가... 

7,8년 전에 '눈사람'이란 드라마가 있었어요.
공효진이 형부인 조재현을 사랑하는 뭐, 그런 설정이었는데,
노래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한번 들어 보세요~

 

노래 나오기 전에,
첫부분의 공효진 목소리가 왠지 애끊는 느낌이 있죠.
보고싶을 때마다 꺼내보고 싶은 사랑.
사람들에게 막 자랑하고 싶지만, 꺼내면 눈사람처럼 녹아서 사라질까 두려운...
그런 사랑,
이런 설정 하나로도 충분히 시가 될 수 있겠죠. 

하이데거란 철학자가 있어요.
'인간은 의미있는 존재, 순수한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후설의 의견에 맞짱뜬 사람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자신이 선택하지도 만들지도 않은 세계에 자의와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라고 정의해요.
음, 쿨한 형이죠. ^^ 

째콤입니다. ㅎㅎ 아세요? 째콤.
옛날에 인디언 마을에 세 아들이 있는 가족이 있었어요.
큰 아들 달빛 아래서, 둘째 큰 나무 기둥, 막내 째콤.
엄마, 우리 이름은 어떻게 지었어? 이렇게 물었더니,
큰 아들은 달빛 아래서 닷,닷,닷... 사랑을 나눈 결과였구요.
둘째는 큰 나무 기둥에서 닷,닷,닷...(맘마미아 버전이라구요~) 

근데, 막내가 묻죠? 엄마, 째콤은 뭐야?
엄마가 째려봅니다.
뭐긴 뭐야, 임마! 째진 콘돔이지...

으---음!! 다시 하이데거로 돌아갑니다.
인간은 자의와 상관없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이런 것을 한자어로 피투성(被投性)이라고 해요.
피투성이,가 아니라, 피투성!
던져짐을 입은 존재! 피,투,성.

이 피투성은 인간의 기분, 그 중에서도 불안을 통해 자각된대요.
피투성, 세상에 내버려 졌음이 늘 불안을 가져오는 거죠.
예를들면, 일상생활의 어느 순간
왜 나는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
혹은 머지않아 죽을 나에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와 같은 불안을 내포한 물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그때 우리는
왜 나는 여기에 존재하는가라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이 이 세상에 던져졌고, 여기에서 절대로 도망가지 못한다는 피투성을 자각할 수밖에 없구요.
일단 피투성을 자각할 때,
인간은 언젠가 자신이 죽게 될 것이며
이 세상을 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잠자리들이 사라지듯이...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어디로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앉던 그들은  

짜릿하지 않으세요? 난 느끼는데~~ ㅎㅎㅎ
시를 읽는 일은 이렇게 신나고 짜릿한 체험이랍니다.
철학 책을 읽다가, 한 편의 시와 같은 영감을 얻는 오르가즘의 순간. 

오르가즘은 산소의 결핍에서 오는 거라는데요. ^^(갈수록 성인판 시 특강으로 변질되고 있음)
그래서 섹스를 하면 숨을 헐떡거리고, 산소가 결핍되고, 오르가즘을 느낀다는데...
시를 읽으면, 맛있는 섹스보다 더 아름다운 오르가즘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가 산소를 막 먹나봐요. ㅍㅎㅎ

아, 다시 하이데거로...
하이데거 왜 이렇게 잡담 속에 잠깐 튀어나오는 거야? ㅋ
이런 죽음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포착해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시작돼요.
이런 시도를 기투(企投)라고 합니다. 

피투성이 세상에,
피투성의 외로운 불안감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의지.
그걸 언어로 표현한 것이 <기투>라는 것이죠.
뭔가 기획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인데... 

마기님과 제가 요즘 하는 짓이 바로 <기투>입니다.
마기님은 시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고, ㅋ
저는 그 시의 바다를 항해하는 네비게이션을 프로그래밍하고 있죠.
제 네비게이션은 아직 프로그래밍 중이라서 목적지를 콕, 하고 찍으면 정답을 보여주는 수준은 아니지만요.
좀 불안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안심 보험 정도는 될 거라 생각합니다. ^^ 

sk 텔레콤에서 <되고송>을 만들어서 성공한 적이 있었죠.
생각대로 하면 되고~ 하던 노래요.
생각대로 T의 로고를 보면, 그냥 폐곡선이 아니에요. 

한 번 꼬여있죠. 바로 뫼비우스의 띠랍니다.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그곳.
그맘때에 머물러있지 않은 마음을 내는 바로 그곳.
어디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그곳을 지향하는 회사의 경영마인드가 느껴지는 로고예요. 

제가 젤 좋아하는 한 권의 책! 금강경에서 말하는
응무소주 이생기심.
아무데도 마음 붙잡히지말고, 그 마음을 내어라~ 생각대로~~ 티,

    

피투성으로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
이 존재들이 한 번 꼬인 이 도형에 의지하는 그런 것이 바로 <기투>가 되는 것인데요.
오래오래 기투의 작업을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오래된 영화 중에 <시네마 천국>이라고 있잖아요.
거기 보면, 맨 마지막에 토토의 주제가가 나오는데요. 엔니오 모리꼬넨가? 
속세에서 나누는 더러운 장면이라고 신부님들이 잘라냈던 키스신들을 모아서 편집한 화면이 나오잖아요.
그걸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키스는 참으로 아름답다~ 이런 생각을요.
비록 버리려고 잘랐던 모든 것들이지만, 그것들도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인지...
생각을 조금 바꾸면,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의 하루하루는 참으로 조각나서 버려진 존재들처럼 무의미한 '센'에 머물 수도 있지만 말이죠.
그 스틸컷들을 모으고 모아 나가면,
그렇게 하나하나 <찾아 나가다 보면> - 찾을 심 尋 한 자만 붙여 주면요.
센 千이 치히로 千尋가 되는 환상적인 순간을 맛볼 수 있지도 않을까요?

퍼즐조각들이 잘 맞지도 않고, 전체 그림의 윤곽이 보이지도 않아서 불안해하는 인간에게,
뭐, 어떠냐, 이 자슥아~
꼭 죽어 봐야 지옥을 알겠냐?
쪼가리난 필름들도 눈물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곳이 바로 천국이야, 임마!
시네마, 파라디소~ 시네마 천국!!! 

이런 외침을 주는 거나 아닌지... 오늘도 센은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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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8-04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투성(被投性/Geworfenheit) 게보르펜하이트
기분(Stimmung) 슈티뭉
불안(Sorge) 조르게
기투(企投/Entwurf) 엔트부르프

2010-08-04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8-04 20:43   좋아요 0 | URL
보통 사람은 그걸 놓쳐버리고 마는데, 시인은 그 순간을 잡는 거잖아요. ^^
읽어주셔서 제가 고맙죠. ㅎㅎ
조그만 돌멩이를 여섯개의 손으로 꼭 끌어안고 그냥있는... 힘빠진 잠자리를 보셨군요.
스르르 풀려나기 직전의 잠자리를... 뭐, 사람도 그런 거겠죠.

sslmo 2010-08-05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의 그맘 때는 지금이신가 보군요,인디안 섬머라고도 불리우는 요즘.

제 그맘 때도 지금이예요.
오행을 해석하는 여러가지 관점 중에 '중앙土'라는 개념이 있어요.
나머지 木火金水가 중앙토로 가기 위해서 거치는 '토용'이라는 시기가 있는데,
제가 지금 그'토용'인거죠~

중앙토가 되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하는 시기이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려 간과하기 쉽죠.
전 좋은 샘을 만난 덕분에 온몸으로 누리는 행운을 경험하고 있는 거구요.

제가 샘의 특강을 들으면서,
또 마기님의 시를 읽으면서,
어렵거나 궁금했던 부분들이 이렇게 해결되어서 더 좋은 것도 있구요~^^

글샘 2010-08-05 13:09   좋아요 0 | URL
정답이네요... 항상 '지금'이 그맘때입니다. ^^
지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거구요. 스틸 컷이죠. 스틸 컷! 한 장. 오늘도...

좋은 샘...이라고 칭찬하시면, 자꾸 쓰고 싶어질 거예요. ㅎㅎ

pjy 2010-08-05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장면, 한 컷이 모여서 인생인거죠^^
근데 어쩌다기 멈칫하는거야 그렇다쳐도 너무 사소한 장면마다 퍼드득거리면 과다 에너지소모ㅋㅋ;
그래서 예술가들이 쫌 힘든가? 생각이 듭니다~

마기님은 이런? 오후에 저런 감성이 생긴단말입니까?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글샘 2010-08-07 09: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소한 장면마다 퍼드득거리면... 지치죠.
마기님의 감성, 정말 감탄할 만 해요.^^

울창 2010-08-0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좀 오래 알라딘을 쉬었더니 그동안 특강이 세 개나!!!!
소급해서 읽기는 하지만 출석 도장은 여기다 찍습니다.
좀 불성실한 학생이지만 이런 문제아도 함께 품어가실 거라 믿으면서.
설마... 우등생, 수제자, 범생이들만 제자로 받는 건 아니시죠?
그렇다해도 할 말은 없고,
내치시면 몰래 들어야지 생각합니다.

2. 속에 날개를 감추고 있던 제자를 만나시고,
날개를 끄집어내주시고,
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군요.
마기님이 시를 써본 적이 없다는 말이 혹, 뻥이 아닐까 싶은...
천재일까요? 아님 뛰어난 스승님 때문일까요?

3. 제 서재에 달아주신 댓글에 대한 답을 지금 합니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 나오는 시들을 특강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셨는데...
그게 제 오케이가 필요한 일이겠습니까.
무조건 찬성이지요. 특강이 계속되는 것만 해도 어딘데요.
그 만화책을 읽지 않으시고 특강을 하시면 새로운 해석도 가능하겠군요.
기대하겠습니다.

글샘 2010-08-07 09:3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제자들 중엔 다들 있어요. 제자를 내치면 선생이 아니죠. ㅎㅎㅎ
네. 마기님의 날개를 제가 끄집어냈다면 정말 큰 기쁨입니다. 근데, 저도 뻥이 아닐까... 의심해요. 천재이거나... 뛰어난 스승은 한 게 없는걸요. 뭘~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 나오는 시들은, 생활이 진하게 묻은 거여서... 특강보단 이야기 형식으로 집어넣어야 할텐데... 그 시들은 유념해 뒀다가 특강에서 틈틈이 엮어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한방에 가는 건 재미가 없을 거 같구요. 제 능력도 안 됩니다. ㅎㅎ
더운 여름 잘 나세요~

세실 2010-08-1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내용도 설마 1시간만에 쓰신 거예요? 일필휘지~~~
님은 아무래도 EBS로 가셔야 할듯. ㅎㅎ
승무에 대한 님 나름대로의 설정. 멋집니다. 30대 중반의 신문기자라...

그리고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느낌이 좋아서 몇번 소리내어 읽었는데
대략 맞추었네요. 헤헤~~~

글샘 2010-08-11 01:32   좋아요 0 | URL
요건 두 시간 정도 걸렸을 거 같습니다. ^^
저는 ebs 싫어해요. ㅎㅎ
시가 막막할 땐, 머릿속에 저렇게 드라마를 만들면, 재밌어 지더라구요.

아무래도... 가재미는, 반갑죠?

세실 2010-08-11 19:51   좋아요 0 | URL
당연하죠. 헤헤~~~ 사무실 책꽂이에 두고 생각날때 마다 읽고 있습니다. 누구? ㅎㅎ

글샘 2010-08-11 21:48   좋아요 0 | URL
틈틈이 시집을 펼치는 세실님~ 아름다워요~~
 
독서의 즐거움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에 낚였음을 항상 책을 읽고 나서 깨닫는다. 

그렇지만, 이런 제목을 붙인 책을 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어리석다.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를 읽고나서 후회한 것과 똑같은 후회를 남기는 책이다. 

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수전 와이즈 바우어의 개인사적 의의나 그의 홈스쿨링을 위한 <교양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5권 시리즈>는 가치있는 책이었다. 충분히 그의 의견에 존중을 표할 만도 하다. 

그렇지만... 원제목이 이렇다.
The well-educated Mind : A Guide to the Classical education you never had. 
훌륭하게 교육된 마인드 : 당신이 누리지 못했던 고전 교육 가이드... 

미국에서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책들과 한국에서 일컬어지는 책은 절대로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이런 제목의 책을 '독서의 즐거움'으로 번역해서 나처럼 책에 대한 중독증을 가진 사람을 유혹하는 출판사란... 뭐, 내가 어리석었던 거다. 

학교가 붕괴되고 있다고들 하는데, 학교는 붕괴될수록 좋다.
대신에, 진정한 교육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특히, 대학은 빨리 무너질수록 좋다. 한국의 대학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닌 대학에서는 교수에게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하나도.
대학의 선배와 동료와 후배들에게서 모든 지식과 지혜를 배웠던 80년대였다.
박 모 교수는 텔레비전에 녹화나간다고 수업을 펑크낸 적도 많다. 한심한 작태였다. 

어차피 공부는 학교에서 시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널린 것이 책이고, 그 책을 제대로 커리큘럼을 잡아 읽을 수만 있다면 학교 따위는 필요 없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산업 사회에 가정이 무너지면서 부터였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제대로 독서를 시킬 여유만 있다면, 아이들은 독서를 통해 충분한 지혜와 지식을 익힐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학교라는 제도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고정관념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대안 교육은 실패한 교육으로 보아지기 쉬운 것도 현실이다.
그렇지만... 대안 교육이란 이름이든, 홈 스쿨링이란 이름이든... 충분히 교육적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독서의 단계를 3단계로 나누고, 장르별로 독서법과 권장도서 목록을 제공하였으나, 한국인인 나에게는 도움이 별로 되지 않았다. 어느 나라 독자든, 가르치지 않아도, 처음엔 문법독서를 한다. 그건 낱말과 관용구 등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 다음엔 논리 독서가 일어난다. 문장들이 어떻게 구성되며, 어떤 표현법으로 문장들이 긴밀하게 연결되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마지막엔 수사 단계 독서라고 하는데, 장르에 따라 다양한 질문을 해가며 읽는 것이 이런 방법이다.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제시하고 전개하고 있는지, 더욱 심화된 학습을 해야한다면 어떤 공부를 더 해야할지... 이런 것이다. 

새로운 것도 없다.
다만, 홈스쿨링의 제재로 미국의 모범을 보였을 뿐이다.  

1부에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일의 타당성을 설파하고,
2부에서 소설, 자서전, 역사서, 희곡,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긴 부분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소수의 부분만 필요하다.  

한국에서 고전을 읽는 방식을 제시한 사람들은 드물다.
동양고전강의로는 <신영복> 선생의 <강의>가, 서양고전강의로는 <강유원> 선생의 <인문 고전 강의>가 훌륭하다.
이 두 권의 책으로도 충분히 동양고전과 서양고전의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다만, 이런 책을 읽을 풍토가 조성되기 힘들 뿐.
대학에서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토익공부하고 상식외우고 있다면, 대학을 문닫는 것이 옳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만이 그나마 자유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허크는 이해한다.(143)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그리고 자유를 얻을 수는 없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
좋은 말을 하나 얻었다.
요즘 자유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얻기 힘든 자유에 대하여...
학교라는 부자유, 학습이라는 얽매인 틀과 부자유, 과연 자유로운 학교와 자유로운 학습을 제시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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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0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 : 낚임의 슬픔

글샘 2010-08-01 12:06   좋아요 0 | URL
태그 달기로 특허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