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 주는 남자와 33인의 화가 - 33인 화가의 그림 이야기
박세당 지음 / 북성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젬마가 도발적인 얼굴을 표지로 써서 돈을 번 책도 그림 읽어주는 여자~ 류였는데, 그의 글을 읽으면서 참 불친절하구나. 제대로 읽어주지 않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은 정말 그림 읽어주는 남자 맞다. 

저자가 그림을 모으기도 하고 보러다니는 데 열심이기도 하다는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그가 치과의사란 직업을 가진, 어쩌면 비전문가라는 데 있다.
전문가들이 자기들만의 언어로 그림을 표현할 때, 나처럼 아마추어는 낯설어서 그림도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순전히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용어들로 설명을 이어간다.
그런 저자가 반복적으로 사용해서 눈을 거슬리게 하는 마티에르...란 용어만 뺀다면 말이다.
(이 용어는 155페이지에 가서야 '질감'이란 설명을 붙여놓는데,
거기까지 가는 동안 나는 그 용어를 대략적으로 머티어리얼, 그러니깐... 뭐 재료나 질료... 이런 거로 때려잡아 읽고 있었다.
뭐, 유사하게 통박을 굴리긴 한 거지만, 못내 씁쓸했다.) 

화가들의 그림을 우선 들이대고,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을 절대로 어렵지 않고,
그러면서도 시원시원하게 이어 간다.
한 장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많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화가의 작품 세계를 명징하게 보여줄 것만 같은 그림 너댓 점으로 충분히 그 화가의 변화를 읽도록 멋진 설명을 붙여 준다.   

전공을 한 분야도 아닌데, 이렇게 깊은 식견을 가진 사람을 한국의 대학들에서는 캐무시한다.
그렇지만, 내 생각엔, 이런 사람들의 설명이 전문가 연하는 사람들의 설명보다 쉽고 간결하면서, 핵심에 금세 다가선다.
그래서, 난 비전문가들이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식의 설명을 좋아하는 편이다.
뭐, 좀 틀리면 어떤가. 예술이란 어차피 감상자의 몫이 더욱 큰 것이니 말이다.

여덟 살 때쯤... 크레파스를 주물럭거리고 놀던 나는, '코발트 블루'라는 색상의 파란 크레용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
그 색감도 색감이지만, 발음도 얼마나 아름답던지... 코발트 블루...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씩 교실이 없어서 무조건 그림그리는 날이 있었던 나에겐, 산에서 그리는 그림들이 대부분 바닷속 그림이었던 적이 있는데, 그건 순전히 코발트 블루의 색감에 그 어린 시세포들이 매료되었던 탓이었으리라.
코발트 블루를 하늘에, 또는 바다에 은은하게 칠하는 일은, 하루를 행복에 들떠 보내는 일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코발트 블루는 닳기도 쉽게 하여, 늘 열 몇 가지 내지 스물 몇 가지 색의 나머지 멀뚱한 크레용들이 시샘을 하곤 했다. 손에 묻지 않도록 얇은 종이로 감싼 크레용의 껍질에 적힌 '코발트 블루'란 발음도 어린 마음에 얼마나 어여뻤던지...
다른 아이들이 많이 쓰는 노란색이나 살색들과 코발트 블루를 바꾼 일도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우연히 이 책의 <최정길> 설명에서 '이 화가는 보석같은 마법의 푸른 물감을 가지고 있다.'는 구절을 만났을 때,
그리고 그의 '모과 사랑, 사춘기, 지중해, 추억의 프라하, 투계, 표정'의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 내 시세포를 사로잡았던 코발트 블루의 재현에 혼자 즐거워 어쩔 줄을 모르고 한참 책을 어루만졌다.  

문득, 그렇게 어린 시절의 한 순간이 스틸컷으로 정지되어 기억에 각인된 화소들이 있는데, 그것이 우연히 어떤 때를 만나 머릿속에 화들짝 떠오르기라도 하는 날이면, 생각이란 것, 마음이란 것, 정신이란 것, 그리고 인간이란 것의 존재와 우연성에 대하여 한참을 생각에 붙들리기도 하는 것인데...  

후와 님의 체호프를 읽는 페이퍼를 읽다가 만나게 된, 중3 시절의 어느 밤이 또 떠올라 한참을 서성거린 시간이 있었다. 

이윤기 님의 별세 소식을 들으면서는, 한창 7차교육과정 업무로 바쁘던 2001년 어느 날, 서울 출장다녀오는 길에 읽었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2'권은 새마을호의 덜컹거림과 함께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귀천의 시인 천상병의 아내, 목순옥 씨가 이틀 전에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좁던 공간 귀천의 정다운 기억이 흑백사진으로 오버랩된다. 기억은 이렇게 한 순간의 색채로 남아있는 것인 모양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전창운의 <순종>에 나오는 소 그림에 매료되었다.
소 한마리는 소가 아니기도 하다. 그 소의 그림은, 나를 바라보는 꾸짖음이자, 나를 잊음이기도 했다.
마땅히 내가 선 이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할 노릇을, 자꾸 어디로 가느냐는... 소를 찾는 그림이기도 하고, 나를 묻는 그림이기도 하다. 

구병규의 도원의 꿈도 멋지다. 화면 분할과 색감이 끝내준다.

  

 

고칠 곳 몇 군데... 

14쪽, 15쪽에선 '첫느낌'으로 등장하는 그림은, 다음 페이지에서 '첫경험'으로 제목이 뒤바뀌어 있다. 내 느낌은... 글쎄, 첫경험 쪽이다. ^^ 

 

63쪽. 정선의 <금강전>도 이래... <금강전도>가 맞다. 

115. 김기림의 시 '아침바다와 나비'... 내가 아는 시는 '바다와 나비'다. 

219. 작렬하는 태양... 작열과 작렬은 구별해 써야 한다. 태양은 뻥 터짐이 아니니깐, 작열이 맞다.

작열 : 불이 이글이글 타오름 ... 예) 태양이 작열하다.
작렬 : 포탄 따위가 터져서 쫙 퍼짐... 예) 웃음이 작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묵으로 가르치기 -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핀켈 교수의 새로운 교육법
도널드 L. 핀켈 지음, 문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알묘조장이란 말이 있다.
揠苗助長(알묘조장)[揠:뽑을 알, 苗:싹 묘, 助:도울 조, 長:길 장] 성공을 도와준다는 것이 싹을 뽑아올려 자라게 해서 결과적으로 망치는 일. 

한국의 교육이란 것이 이런 것 아닐까?
성공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해! 이러면서 비교육적인 일을 자행하는 일, 그걸 교육이란 이름으로 덧칠한 역사.
그래서 과외를 하는 것이고,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촌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을 용인했던 것이다.
어른들의 가치관을 내세우면서 그대로 따라하라는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에 따른 가르침. 

서태지가, 됐어, 됐어 이제그런 가르침은 됐어~하고 소리지른 게 벌써 17년이나 지났는데, 매일아침 7시 30분까지 우릴 이 좁은 교실에 몰아 넣는... 어른들은 그대로를 넘어서, 아이들을 지옥으로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여고괴담과 고사 같은 영화도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내가 초중고대원까지 18년 반을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인상적인 수업은 딱 한 강좌 들었다.
대학원에서 깐깐하다고 소문난 교수님 강의였는데, 괜히 공부하고 싶단 생각에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국어학 강좌를 신청했다.
첫시간 갔더니 학부에서 갓 올라온 20대 중반의 남학생 하나, 여학생 둘, 그리고 노땅 나 하나... 이랬다.
교사 원생들은 절대로 신청하지 않는 강의인데 신청한 나를 교수님도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듯...
뭐, 첫 시간 오리엔테이션 시간부터 빡셀 것으로 느껴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강의만큼 나를 단련시킨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매 시간 자료를 요약해서 발표해야 하고, 따로 제시한 과제도 레포트로 작성해서 내야 했는데,
내가 그 강의를 유독 인상깊게 여기는 것은, 그 교수님이 내 글을 참 좋아해 주셨다는 데 요인이 있다.
그 교수님이 공저자로 펴낸 책에 리뷰를 올리기도 했는데, 딱 내 글을 보시더니 정선생 글이 참 맛있다는 평을 해 주셨던 거다.
학부에서 갓 올라온 어린 원생들이야, 경험이 부족하니 교수님이 던져주는 과제를 버거워하기 바빴지만,
직장인인 나야 15년 이상의 경력자였으니 과제를 하는 일도 수월했다.
결국, 그 강의는 교수님과 나의 대화시간 비슷하게 흘렀고, 논문도 교수님 강의의 한 꼭지를 참고하여 쓰게 되었다.
불행히도... 그 교수님이 젊은 나이에 작고하셨다는 풍문을 술자리에서 듣고 말았지만, 세상은 그런 것이니 유감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교수님이 불현듯 그리워 눈물이 다 나려 한다.
고인이 되었단 소리 들었을 때야 뜨악해서 별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대학원의 한 강좌로 만난 인연이 이렇게 교수님 강의를 들은 지 7년이 지나서 눈물을 빼는 일도 있다.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는 법이다. 

이 책의 요점은, 교사나 교수는 지적인 쇼를 하기 쉬운 직업인데, 아무리 명강의라 할지라도 학생에게 바로 교육의 효과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핀켈 교수가 집착한 듀이와 삐아제에게서 '경험'을 통한 학습, 그리고 '인간 지능에 대한 신뢰'가 만든 것이 '마우스 셧'이란 도구로 가르치기,를 이 책의 제목으로 삼게 한 것이다. Teaching with your mouth shut! 

가르치는 일을 주로 입으로 나불대며 지식을 읊는 것으로 여기는데, 거기다 입을 다물라는 도구를 붙였으니, 한 문장에 모순된 두 주장을 담은 <역설>로 보여지지만, 책을 읽노라면, 결코 그 주장이 역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한국 교육의 맹점은 학교교육이 '잘못된 평가 방식'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고,
그 잘못된 평가 방식이 모든 학생을 '줄세우기'에 치우쳐, 불필요한 부가적 학습이 과잉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누구나 알지만, 손을 대는 일은 쉽지 않다. 

학교 현장에서, '자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것은 등록금 자율화나 학생 선발, 수업의 양 같은 것을 자율로 한다는 데 있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입학사정관제의 미래가 자율화와 맞물려야 하는 것인데도, 그런 철학적 기초를 이해한 입학사정관이 얼마나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단적으로, 모든 학생을 입학사정관제로 입학시킬 요량이 아니라면, 수능과 내신, 논술 등 평가에 학교 교육과정이 얽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 활동을 할 수도 있고, 분명히 학교에는 이런저런 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독서를 하고, 그 독서 내용을 토대로 토론과 글쓰기를 하고,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에 의견을 공유하는 선생님들도 세상에는 많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물론 <입시 지상주의>가 대세인데, 그런 활동들이 <입시에 지극히 도움>이 되었다는 논문이 나오기 전에는 그런 것들에 초점 맞추기 어렵겠지만, 변화는 언제나 밑에서 일어나야 하는 법이다. 

핀켈 교수는 <일리아드>같은 유명한 고전을 통하여 학생들이 독서, 토론, 작문, 편지쓰기 활동 등을 자발적으로 <세미나>형식으로 이끌어 내는 방식을 제시한다. 교사나 교수가 굳이 입을 열어 설명하는 일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책은 교사의 설명 없이도 교육적 기능을 발휘한다.(73) 

이 한 마디가 이 책의 가치를 90%는 제시한다. 나머지는 그 좋은 책을 설명하지 않고, 어떻게 교육적으로 활동하도록 학생들을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학생들의 세미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교사는 '권력'을 행사하지 않지만, '권위'를 얻게 된다는 말은 충격적이다.
그렇지만, 교사는 분명히 권력을 행사한다. 수업 방식을 결정하거나 수업 내용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침묵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훨씬 '권위'를 얻는 말이 되어 인상적인 교육이 이뤄진다는 것. 

관심, interest이란 단어는 라틴어의 '사이 +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사이에 있다, 곧 욕구와 충족 사이에 관심이 있다는 것.
문제를 해결하려면 평소 습관을 바꾸고 행동 양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114)
글 속에 파묻혀있어 드러나지 않지만, 관심과 변화, 삶에서 놓치기 쉬운 덕목이 아닌가 싶어 남겨 둔다.
그래서 루소는 '현재의 관심이 배움의 가장 큰 동기이자 끝까지 이끌어줄 유일한 동기'라는 말이 유의미한 것이다. 

지도 교사는 사전에 충분히 자료를 검토하고 섭렵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게 지도자료를 제시하고, 침묵하면, 나머지는 학생들이 길을 찾아 간다.
그 길에서 지도자는 평가 제시도 하고, 편지를 통하여 정의적 충동질로 강화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빨간 펜을 들고 학생의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150)
학생들도 내가 얼마나 시간과 공을 들여서 보고서를 읽는지 잘 안다.
편지를 통해 내가 자기 글을 진지하게 읽는다고 여겼다. 다음 번 보고선 더욱 진지해진다.
아, 성의없는 코멘트가 학습 의욕을 북돋우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다.  

글쓰기는 발견과 소통의 길로 이어진다고 가르친다.(159)
발견의 길에서는 진지한 질문에서 출발해서 질문을 마음 깊이 새긴 후 교재로 돌아와 형식과 문체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쓰면서 생각을 발전 시킨다. 발견의 길의 최종 목적지는 논제를 찾는 것, 곧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는 배움의 최종 결과물이자 결과물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공동 탐구와 집단 탐구 과정으로 글쓰기를 쓰게 하여, 서로 돌려보기 위해 글을 씀으로써 결과를 공유하게 되었다.  

수업을 글쓰기 모임으로 운영하면 '조용한 학생'도 더이상 '이류 시민'으로 머물지 않게 된다.(166)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 사회과학 세미나를 통해 배운 것이 더 많은 나로서도, 지금의 토론 능력이나 리뷰 작성의 틀 같은 생각은 모두 대학의 친구와 선배들에게서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발견과 소통을 통해 이류시민에서 '대자적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런 것을 고려하면서 성숙하게 대화하게 되는 자아 말이다. 

보통 회의, 라고 하면, 엄격한 절차적 구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회의는 절차보다는 발견과 소통에서 나오는 것인데 말이다.  

경험을 제공하고 생각을 불러 일으켜라!(287)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함축한 말이다. 교수는 말로 인기를 끌 것이 아니라, 유의미하다고 생각된 경험을 조직하에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생각을 불러 일으켜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의 교수법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교육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건설적인 과정(296)이라고 듀이가 말한 것이 1916년이라고 한다.
세계대전 이후의 진보주의 교육이 경험을 중시하게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에 집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미래 교육을 내다보게 하는 이론적 토대로서 듀이와 삐아제의 이야기들은 한국적 토양에서 상당히 유의미하다.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50% 이상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
그렇지만, 경쟁만 있고 경쟁력은 없는 교육. 

한국의 교육이 붕괴되는 것은, 내부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이기 쉽다.
이미 한국의 교육을 거부한 사람들이 자식들을 외부로 내보내고 있지만,
외국 학교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의 학교들은 스르르 사상누각의 붕괴를 보여줄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내년부터 자율형 공립고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철학적 토대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찾아보면 있긴 할 것이다.
철학적 논의가 제도적 실험으로 이어지도록 움직이는 사람이 될 것인가, 현실에 안주하며 개인적 영달을 꿈꿀 것인가...
요즘 화두 하나 붙안고 잠을 못 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찬샘 2012-08-04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의토론논술 연수를 듣고 있습니다. 강사님이 이 책을 추천해주시네요. 읽고 저를 단련시켜 볼 작정입니다.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 원재훈 시인이 만난 우리시대 작가 21인의 행복론
원재훈 지음 / 예담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현종, 성석제, 은희경, 윤대녕, 공지영, 김연수, 신경숙, 윤후명, 조정권, 정호승, 김형경, 김용택, 도종환, 문태준, 박상우, 전경린, 조경란, 구효서, 이순원, 김선우, 김인숙 

책 써서 돈 벌기가 무진장 어렵다고 한다.
한국 문학계에서 세 사람이 90%를 먹는다고 하는데, 그 세 사람은 공씨, 이씨, 황씨란다.
공지영은 이 책에서 다뤄졌고, 이외수와 황석영은 다루지 않았다. 어쩌면 다행인 셈이다.
뒤의 두 사람을 이 책에서 다룬 사람들과 비교해 보자면 글쎄, 하는 측면도 있을지 몰라서.
그런데, 뭐, 접촉을 하려다가 실패했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더 다뤄줬으면 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동안 충분히 행복했다. 

제목도 참 아름답다.
책 사이즈도 내가 딱 좋아하는 황금비율이다. 두께도 톡톡하니 읽는 동안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결핍감을 급격히 느낄 만큼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단지, 편집자의 무신경과 급하게 출판하게 된 사정이 있었는지, 뒷부분의 편집이 눈에 많이 거슬리긴 했지만... 

우리의 삶을 견디게 하기 위해 예술이 존재한다.
이런 문장을 맨 앞에 놓아두고 인터뷰가 시작된다. 첫 인터뷰이인 정현종이 니체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시인은 자기 삶을 견디며, 남의 삶 견디게 하는 존재"란 말은 날카롭게 마음 한 켠을 베이게 한다.
마치 프린터에 복사지 넣다가 슬쩍 베이는 손가락처럼, 단어들이 마음 한켠을 서늘하게 긋는다.
그런 존재라서,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같은 시를 썼을까?  
"흐르고 변하는 것과 아프고 아픈 것"들을 자기 몸으로 느끼는 존재들.
랭보처럼 "난 내 자신이 시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또한 조금도 내 탓은 아니다.
난 생각한다, 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것. 사람들이 날 생각한다, 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나는 타인이다."
이런 아픔 하나 가슴에 묻고 살아야, 견디며 살아야, 거기서 시가 나올 법하기도 하다.
이렇게 첫 인터뷰부터 쓰고 읽는 일의 행복에 가슴 먹먹하게 하는 아름다운 책이다. 

성석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살청 殺靑'이란 말을 설명한다.
전에 알라딘에도 오가던 이름이었는데, 대나무의 푸른 기운을 없애는 일을 의미한다. 대의 푸른빛을 빼는 일은 곧 '역사서, 기록이나 서적'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의 녹색을 덖으면서 빼내는 데서도 쓰인단다.
성석제를 칭찬하면서 '살청'의 세계를 거쳤을텐데도, 그의 글들은 푸르게 빛나고 있다는 치사를 보내고 있다.
이런 비유를 읽는 일은 눈을 시리게 하는 즐거움에 떨리게 한다. 좀 오버하는 리뷰라도 할 수 없다. 진짜 떨리니깐... 

신대철의 '무인도를 위하여'와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를 극구 칭찬한다. 읽어볼 만한 책들이다.
http://cafe.daum.net/gilo2000/CnFe/2419 (신대철의 시)

은희경 편에서 듣기 어려운 퇴고에 대한 이야길 듣는다.
"저는 초고를 쓰고 많이 고치는 편이에요. 예를 들자면 '술이 취하면 그가 그립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 상투적이잖아요. 그래서 '술취했을 때나 그가 그립다'고 고치면 조금 낫죠. 다른 소설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초고는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요. 초고는 너무나 상투적이니까. 그걸 놓고 고치고 또 고치고 그래서 겨우 한 편 만들어 내는 거죠." 이런 게 작가의 살결이다.
소설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도 좋다.
"이 복잡하고 미묘한 삶을 살아내려면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좋은 소설이 필요하다. 좋은 소설은 어쩌면 직접 정보가 제공할 수 없는 자기 자신안에 있는 능력을 일깨워주기도 하니까." 소설 읽기는 그렇게 필요하다. 

이 책의 표제, 나는 오직~은 윤대녕과의 인터뷰에서 나온다. 글쓰고 책읽는 동안에만 행복한 인생.
왠지 그가 눈물겹게 이해될 것만 같은 이 감정은 오늘 밤, 좀 오버하는 심장이 뛰고 있어서인지... 근데, 책읽을 때도 계속 그랬다. 윤대녕이 절간에서 '응무소주 이생기심'에 붙달려서 마음을 내어 중이 되려다가 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읽고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는 대목에선, 물음표에 붙잡혔다. 어린 시절 읽은 그 책에서 나는 쉬지 않는 나그네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기막힌 서사가 있다.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
정말 애정을 가지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자세히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게 사랑인지도
..."
존재의 '오늘'에 닥친 '서사(이야기)'를 쓰는 것. 이것이 작가라는 말.
그래서 김형경은 <공감은 타인에게 이르는 가장 선한 길>이락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연수와 인터뷰하다가 인터뷰어는 술을 마시면서, 김연수의 글을 벽돌과 떨켜에 빗댄다.
어쩜, 인터뷰 내용을 술 속에 다 타서 마셔버리고, 엉뚱한 비유를 들이댄 건지도 모르겠고. ㅎㅎㅎ(작가, 뜨끔하실거야.)
벽돌. 지적이고 유려한 문장들... 차곡차곡 쌓여 담이 되고 집이 되는 벽돌...
떨켜, 신록과 녹음이 지나고 일상과 상상의 모든 공간, 고통과 치욕의 삶을 살아내다 순간, 떨켜가 생기면서 서서히 그 빛을 드러내는 화려한 종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벽돌처럼 차곡차곡 살고, 한 순간, 떨켜를 만들에 세상과 작별해야 하는 존재란 비유로 읽는 나도, 취한다... 글에... 

윤후명에서는 '존구자명 存久自明'이란 성어를 들이댄다. 맹자에 나오는 '오래되면 스스로 밝아진다'는 말.
나도 붓글씨를 배우면서 느꼈다. 많이 써서 실력이 부쩍 늘지 않아도 배운 지 오래되면 눈이 밝아져서 좋은 글이 보이게 마련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은 법이다.
진짜와 가짜 도자기를 구별하는 법에 김상옥 선생이 '골동품을 오래 지켜보면 된다'고 했단다.
결국 싫증이 나는 것과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싫증이 나는 것은 가짜일 공산이 크다. 아무리 지켜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 진짜이다.

결국 진짜와 가짜는 <시간성>이 밝혀주는 것이다. 아~ 세상엔 왜 이렇게 시간이 밝혀주는 것들이 많은 것인지...
살고 볼 이유는 거기 있는 것 같다. 살아봐야,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하고 알게 될 것들... 

시를 쓰기 전에 에너지를 충전했다가,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몰아서 쓴다는 작가 조정권.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시 산정묘지 중)
시인에게 언어란 문둥병자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 같은 것, 이란 릴케의 말을 빌려 시인은 자리를 뜬다.
기대고 의지할 거라곤 지팡이 하나뿐인 천상 외톨이 문둥병자와,
자신의 존재를 표현할 거라곤 한 마디 말 뿐인 시인의 처지의 유사성을 부른 릴케도 그렇고, 이런 말을 가슴에 품고 사는 시인도 그렇고... 짠한 사람들이다.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의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되리<정호승, 눈부처>

외로움은 상대적이지만, 고독은 절대적이라는 정호승의 말은 고독하다.
열심히 살면 드러나는 충실한 삶의 거시기가 시가 된다는 말은 또 외롭다.
정호승의 첫 키스 이야기는 쓸쓸하고, 운주사의 부처들은 절대적으로 고독하다.  
우리 대신 절대적 고독 앞에서 쓸쓸해하고, 외로움 곁에서 온몸을 떠는 존재들인 시인들의 숨결이 파르르 떨린다. 

김형경을 읽는 일은 불편하다.
그는 심리학 서적을 워낙 읽어 그런지, 그의 소설은 심리학 도서나 다를 바 없다.
그런 그가, 마흔은 제 2의 성장통을 겪는 시기라는 위안을 던진다. 고맙기 그지 없다.
새천년의 비전가라는 바이런 케이티의 말,
내 생각들을 믿을 때 나는 고통받고, 내 생각들에 의문을 제기할 때 나는 고통받지 않는다.
더 이상 내 괴로움들을 믿지 않는 순간, 그것은 투명의 순간인데, 행복이 시작되고, 삶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된다.
대밭에선 쑥도 곧게 자란다는 겸손한 그의 말 곁에 류시화가 있다. 대나무 처럼 높게 솟은 푸른 류시화가... 

영화 '시'에서 등장한 김용택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옛 선비들은 절경의 자리엔 거처를 짓지 않았어. 좋은 풍경은 가끔 와서 보는 거여.
그것이 좋은 것이지.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절경이 보이는 곳에 저렇게 집을 지으려고 안달이야.
좋은 거소 자주 보면 그저 그래.
아껴서 봐야지.
그리고 우리 그림을 보면 사람이 얼마나 작아.
산수화에 있는 사람은 나무나 풀과 같이 작아.
큰 것은 산과 물이야. 자연에서 사람은 그 정도지.
아, 옛그림과 인간 존재의 유사성을 톺아내는 비유를 들으면 또 짜릿하다. 

시 배달부 도종환.
아침에 휴대전화를 켜기 전에, 컴퓨터 모니터를 켜기 전에 시 한 편을 읽으라는 이문재 시인의 메시지도 향기로운 소리다.

문태준이 휴가 나와서 시집을 분해해서 몸에 숨기고, 한편의 시를 읽고 또 읽는 모습은 천상 시인의 마음을 군대도 누르지 못한 쾌거로 읽힌다.
온 몸에 한 장 한 장 이파리를 매달고 있는 나무에 문태준을 빗댄다. 

인도에서 소녀처럼 살다 온 전경린의 이야기 몇 조각, 신선하다.
살면서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기.
살아가는 동안 항상 의욕을 가지고 있을 것.
돈을 벌 것.
우주와의 합일을 향한 마음가짐.
휴~ 의욕, 도 어렵고, 우주, 도 힘겹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기, 해야할 일, 알기... 돈벌기가 제일 쉽다. ㅠㅜ 

단정하고 예쁘게 내내 앉았다 간 조경란을 떠올리며 '음예'를 생각한다.
작가, 또 예쁜 여자 앞에서 딴전이다. 비유를 들입다 쓰는 부분에선, 작가, 수상해 ㅎㅎㅎ
음예,란 구름이 하늘을 덮어 어둡다,는 말이다.
일본 전통 건축 공간이나 일본의 된장국, 칠기 등도 그 말을 써서 푼다.
그늘도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모습, 즉 중성적인 빛이다. 빛이 어둠을 만나 머무르면서 깊어지는 공간이다. 
조경란의 <혀>라는 책에서(까지 썼는데, 컴터가 다운된다. 아, 자동저장의 아름다움이여... 한 시간 가까이 쓴 글을 날리는 슬픔을 막아주었구나.)사랑에 대한 비유가 멋지게 펼쳐진다. 

사랑은 음악과 같았다.
배우지 않고도 그것에 대한 이해와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며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반응하는,
사랑은 음식과 같았다.
실제로 먹어보지 않고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고 식욕이 느껴지는.
사랑은 음악이고 음식이다.
환희에 찬 아우성이 온뭄으로 느껴지고 밀어닥쳤다 탄식하게 하고 고양되며 격렬하게 하는,
혼란에 빠질 수 있으며 갈망으로 목이 타오르게 하는, 단순하게 시작되어 더 이상 숨죽이고 있을 수 없게 하는,
온몸을 자극시키는 아름답고 관능적인 것,
정신적인 만족감과 육체적인 만족감을 동시에 주는 것. 

내가 무지 좋아하는 김선우를 그도 좋아했다. 질투는 나지 않았다.
시인들과 인터뷰를 할 때도, 그의 시들을 별로 인용하지 않던 작가가, 김선우에 와서는 여섯 편이나 인용했다.
심한 오버다. 그 이유는 딱 하나다. 김선우의 우물같은 눈동자에 빠져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다가 인터뷰한 거 다 까먹고 너스레를 떠는 게지. ㅎㅎ 그렇지만 이해한다. 얼굴도 이쁘고 시도 이쁜 김선우에게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 나도 전에 쓴 리뷰에 이 시를 인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답기 그지 없는 시이므로... 작가도 그래서 이해가 된다.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여,
그대의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아는가?
그대가 꽃피는 오늘이, 나에겐 왜 이다지도 큰 떨림인지, 몸이 아득하게 뜨거운지...
그대는 처음부터 나였다는 듯이...
아, 러브레터도 이런 것이 없다. ^^
이 시는 생명에 대한 찬양이기도 하고... 

이런 책은 많을 수록 좋다. 작가에 대한 공부도 되고, 세상의 구석구석을 읽게도 되고,
작가들이 읽어온, 살아온, 적어온 것들에 대한 다이제스트를 만날 수 있는 압축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실망 시리즈  

책의 내용이 좋아서 오타가 난 곳들을 눈감고 있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무진장 드러나는 오타에 마음이 상했다.
편집자가 와서 다음 쇄에 반영하겠다는 약속을 하면 지울 부분... 옥에 티가 좀 많은 편이어서 아쉽다. 

55쪽.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책의 제목에는 물음표를 붙이는 거 아니야. 꼴통 28호... 그리고 시집의 제목에선 조사 하나도 틀리는 거 아니야, 알통 28호...
 

좀 깨는가? 

234쪽. 독락당 대월루는 조선 선비 이적... 이언적이다. 회재 이언적. 

424쪽. 부축인 모양... 꼬득인 것이다... 부추긴, 꼬드긴... 한 페이지에 2단 콤보 작렬!
꼬드기다...는 원래 연날리기에서 연줄을 잡아젖혀 연이 올라가게 하다의 뜻인데, 그렇게 부추김에도 쓰게 된 말이다. 

429쪽. 수사들을 모두 비버리고... 비워버리고... 황진이에서 한 단락이 떠올랐다... 황진이의 ... 이게 더 자연스럽다. 

444쪽. 죽인다. 444 ㅋㅋ 속의 붉은 잎... 80년대 죽은 혓바닥을 기형도가 입속의 검은 잎이라 했는데, 싱싱한 조경란의 생명력을 넣은 곳이 하필이면 잎 속이냐? ㅎㅎ 입속의...로 고쳐야 한다. 

457쪽. 정신적 만족감... 교곡 3악장... 정신적인, 교향곡...  

462쪽. 록의 나무들... 신록

478쪽. 문학에 대한 관심 조금 있었다... 관심이 또는 관심도  

480쪽. 어름 밑에 물이 흐르다.... 얼음 

485쪽. 다작품... 다음 작품, 땅에 심 화분에 담던... 심든, 담든...  

496쪽. 사임당... 헐~ her...

498쪽. 무언의 격...격려, 신독 身讀... ㅎㅎㅎ 愼獨이 옳다. 몸이 읽는다... 이건 좀 심하다. 

실제로 이것들은 눈에 불을 켜고 찾은 것이 아니고, 뒤편으로 가면서 심해져서 체크해 본 것들이다. 실제론 더 많을 것이다.
애정어린 마음으로 빨간펜을 휘둘러 본 것이니, 편집자들의 마음 상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좋은 책이 이런 작은 무심함으로 폄훼되지 않기를 아울러 바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0-08-2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이제야 글샘님이 저의 서재 댓글에 왜 이 책을 소개하시고 휘리릭 사라졌는지 알 것 같네요.
꼭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슴다.^^

세실 2010-08-29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저 빨간 글자들, 님은 얼마나 거슬렸을까요. ㅋ 좀 심하네요.
근데 제가 저 책을 읽었다면 과연 발견했을까?

마흔이 제2의 성장통을 겪는 시기군요. 그래서 이리 산만한 걸까요?
 
독서일기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수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쉰세 번째 생일 날 이제까지 읽은 책 중 12권을
한 달에 한 권씩 읽어가며 독서일기를 쓴다.
2002년 6월에서 2003년 5월까지.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 일기는 한 달에 한 권을 읽고 쓴 리뷰인 만큼,
폭이 넓고, 링크가 대단하다.
하이퍼 링크 독서의 표본이 되는 책이다.

샤토브리앙, 무덤 저편의 회고록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 하나. 기억이라는 특징은 어리석음과 관련될 때가 많다.
그건 우둔한 영혼의 짐이고, 묵직하게 누르는 짐 보따리로 우둔한 영혼은 더 우둔해진다.
그러나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우정도, 사랑도, 즐거움도, 일도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
천재들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제아무리 사랑으로 가득한 가슴이라도 기억을 못한다면
다정함을 잃은 것이다.
우리라는 존재는 그저 끝없이 흘러가는 현재의 연속적인 순간으로만 남을 것이다.
과거는 없을 것이다
.(94)

타인, 에 대한 브라우닝의 정의
짐승도 그렇게 싫어했던 적은 없다.
그는 그런 고통을 받아 마땅할 만큼 사악할 게 틀림없다.(86)
 

아, 타인.
금강경에서 다룬 아상과 인상이 이런 것이다. 
자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사랑했던 적이 없고, 그는 어떤 고통도 받지 않아야 마땅할 만큼 상냥할 게 틀림없다>고 보지 않겠는가? 타인에 대해서는 악마임에 틀림없다고 볼 것이고.
두려운 시선으로 날카롭게 바라본 타인.

이중현실은 자신을 지운다.(31)
모렐의 발명 

'도플갱어로서의 서재'를 쓰고 싶어하는 망구엘. 그와 보르헤스의 이야기는 참으로 우연한 신비다.
나 아닌 또 다른 나로서의 <서재>
이런 이중 현실은 자기 자신의 빛깔과 냄새를 점점 퇴색하게 한다.
그러다가 자신을 지워가게 되는 걸까? 시니컬과 냉철함이 담겼다. 이 한 마디에...

괴테, 친화력
샤로테
어떤 일들은... 운명의 지배를 받고, 운명은 아주 고집스럽다.
이성과 미덕, 의무와 모든 신성한 것이 그것을 거스르려 해봐도 부질없는 일이다.
상황은 우리가 아닌 운명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방식으로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건 운명은 제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사실 운명은 우리 자신의 소망과 의도를 이루려 하는데, 그걸 우리가 생각이 모자라서, 거역했던 게 아닌가? 

운명을 탓할 게 아니다.
운명은 소망과 의도를 이루려 달려오고 있는데, 그걸 걷어찬 건, 나?
유쾌한 반성이다. ^^


오이디푸스 역을 맡은 로렌스 올리비에의 연기 비결을 물었더니,
담비를 사냥하는 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요.
북극에서는 소금을 뿌려놓으면, 담비가 와서 그걸 핥아먹는다더군요.
그러면 혀가 얼어 얼음에 찰싹 달라붙는대요.
오이디푸스에서 울부짖을 때 그걸 생각했습니다.
완벽하게 포착해낸 진실의 순간.
이런 비유들은 효과적이고 재미있다. 이런 유사함에 즐거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비유가 유사성에 기초한 것인데,
이런 신기에 가까운 유사성을 만나는 일은, 이야기가 죽지 않는 이유가 된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케네스 그레이엄

나이가 들수록 변화가 일어나는 속도는 빨라진다.
친구들이 사라지고, 풍경이 어질러진다.
친구들이 늘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우주에서 믿을 수 있는 고정불면의 어떤 지점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목소리를, 얼굴을, 이름을 잃고서 그리워하고 싶지 않다.
눈가리개를 하고도 너끈히 돌아다니고 싶다.
말머리나 서론 같은 것 없이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

필로우북, 세이 쇼나곤

즐거운 일들이란, 아직 읽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
또는 상권을 재미있게 읽은 책의 하권을 손에 넣는 것.
하지만 실망스러울 때도 많다.
마르게리트의 독서론 :
우리의 진정한 출생지는 우리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지적인 시선을 던지는 곳이다.
나의 첫 번째 고국은 내 책들이었다. 

오늘 아침에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바라보다가 그 책들은 내 존재를 전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펼쳐서 페이지를 넘기기 때문에 살아나면서도 내가 자신들의 독자라는 걸 모른다. 

독서에 대하여... 잠자리에서도 메모할 정도로 사랑스런 글들에 대하여...
생각할 거리를 툭툭 던져주는 50대의 원숙한 리뷰가 여기 모여있다.
나도 50대가 되면, 이런 리뷰를 한 달에 한 편 쓸 수 있게 될까?
아니 그때까지, 망구엘을 기억이라도 하고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 미의식과 군국주의
오오누키 에미코 지음, 이향철 옮김 / 모멘토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카미카제가 어떻게 문화적 내셔널리즘의 상징이 되었는가를 밝히는 글이다.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 개인 또는 집단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의사 소통이 결여되어 있고 또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해
동일한 하나의 상징이나 의례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얻어내는 경우, 즉 전달의 오인 혹은 부재 상태를 <오인>으로 정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덧없이 피었다 지지만 영원한 고귀함'을 상징하는 사쿠라(벚꽃)의 환상 속에서 스러져간,
근대 일본의 정신, 카미카제 특공대.
세계를 호령할 줄 알았던 일본 정신에 지식인이었다던 젊은이들의 육신은 사쿠라꽃마냥 가벼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고뇌 또한 가벼운 것은 아니었기에,
이런 책들의 증언이 필요한 것이다. 

다 지나간 일이라고 잊혀져도 좋은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과거였다.
스스로 이런 책을 내는 것으로도 건강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면이 된다. 

사쿠라의 가치와, 그것의 악용,
적극적인 오인의 상태를 조장해온 일본에 대한 이야기다. 

다양한 자료가 들어있어 풍부하긴 한데, 자료집으로 치부하기엔 좀 지루하고 분량이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