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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9-15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서재가 시상이 가득하네요

글샘 2010-09-16 12:38   좋아요 0 | URL
가을이잖아요. ㅎㅎㅎ

pjy 2010-09-16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비인가봐요~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글쌤님의 가을을 훔치네요^^

글샘 2010-09-17 23:03   좋아요 0 | URL
제 가을 좀 훔쳐 가세요. ㅎㅎㅎ
 
떠나든, 머물든 -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특별한 은퇴 이야기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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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로 유명해진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가벼운 수필집.
이 책이 던져주는 이야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60은 은퇴할 나이긴 하지만, 결코 늙지 않은 나이라는 것.
또 하나는, 그 나이에도 뭔가 치열하게 할 일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사람의 신체 연령은 120살 정도까지 살 수 있다고 하는데, 현재로도 영안실에서 만나는 초상집들이 80을 훌쩍 넘기는 걸로 보아, 나 정도의 세대는 평균 100살 까지는 살게 될 것도 같다.
아, 문제는 오래 사는 데 있지 않다.
정말 문제는 늙어서 볼품없는 외모와, 근력없는 육신과, 형편없는 재정으로 은퇴후 40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수 만세가 아니라 '장수 폐인'을 양산하는 미래 사회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베르나르는 유럽에서 시작해서 비단길을 걸었고,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삶의 비의를 깨닫게 되고, 그 길을 걷는 프로젝트를 만든다.
혼자서 사는 것이 삶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것이 삶이고,
그 함께가 젊은이와 함께임에 더 의미가 있고,
그 젊은이가 완전 골때리는 상황에 놓인 문제아라면, '문턱'을 넘어 걷는 일이 의미있을 거라는 그의 생각이 신선하다. 
사회의 '문턱'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손길... 의미있는 일이고, 은퇴 후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낡은 방식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게 분명하다면, 다른 방식을 실험한다고 무슨 위험이 있겠는가?"(168)
그래, 이런 것이 용기다.

나도 나의 은퇴 후를 생각해 본다. 일이 있어야 하겠다는 데는 공감이 가지만, 선뜻 어떤 일을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올리비에처럼 은퇴 후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게 될는지도 보장할 수 없는 노릇이고. 

"세상에 흔적을 남기기 바란다면, 그 세상과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시몬느 드 보봐르)
이런 말을 인용하면서 올리비에는 <인생은 60에 시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더 적은 돈을 가지고 더 잘 사는 방법으로 해결"해야하는 것이 은퇴 후의 삶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여행을 떠날 때는 뒤돌아보면 안된다"(95)고 말하면서 넉 달 코스의 길을 떠난다. 

"영웅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하지 않는다."(158)
"고정관념에 맞서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은 마치 시시포스의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일과 같다. 정상에 도착하자 마자 바위는 다시 떨어진다."(182)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영웅의 앞에는, 언제나 고정관념으로 무장한 관료들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 고정관념에 맞서는 시시포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일을 하겠다는 신념>과 <용기>다.
그 신념과 용기를 가진 것이 혼자라면 외롭겠지만, <연대>를 통하여 고정관념에 맞선다면 바위를 치는 계란의 허무함은 아닐 것이다. 

삶이란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좋은 소식이 계속 이어지는 것...(191)
이런 마음으로 은퇴 후를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치열한 삶을 산 사람이다.
살다와 사람과 삶은 같은 어근의 다른 활용형에 불과하다.
'사람'이란 존재가 날마다 '사는' 행위가 쌓이고 쌓여 결과물로서의 '삶'이 완성되는 법. 

"혼자 헤쳐나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른도 그런데 하물며 청소년은 어떻겠는가?"(217)
이런 생각을 하는 노년.
"노년이란, 노년을 제외한 모든 것과 비슷하다. 잘 늙으려면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214)  
"계획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어버린 것"(199)

은퇴 후, 그 치열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삶을 읽으면서, 삶을 다시 생각한다.
걷는 일처럼 자신과 만나기 좋은 일은 없다.
은퇴 후도 여느 삶과 마찬가지로 계획이 필요하고, 그 계획의 실천은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처럼 청소년들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걷기 좋은 길이 <문턱>에서부터 좌절하는 청소년들과 먼 길을 걷는 일 아닐까? 

올리비에는 '나는 걷는다'의 수익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지만, 나는 로또라도 사야하는 걸까? 아니면 '나도 걷는다'를 써야하는 걸까? 시급한 건 자금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의 구상이 문제가 아닐까?
한국처럼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나라에서 <문턱>을 넘도록 도와주는 단체가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일 일인데...
고정관념을 가진 자들과 맞설 일에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고정관념부터 깨울 일이 우선이다.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지침이 되어 주는 활기찬 책이다.
다만, 나처럼 소파홀릭이면서 먼길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만 바라 보는 사람들에겐, 당의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읽어야 한다. 잠시만 달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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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도서] 있잖아요 미안해요
이미연 외 지음 / 수선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수선재라는 명상 센터가 있다고 한다.
修善齋 정도 되겠다. 선을 닦는 집 정도. 

삶에는 온갖 고개를 넘어야 하게 마련이고,
간혹 물길도 건너야 하는데, 거기에는 징검다리나 외나무 다리도 없는 경우도 흔하다.
먼 길에 발 뒤꿈치가 벗겨져서 진물에 쓰라리기도 하고,
따가운 햇살만 뒷목을 내려쪼일 때, 가도가도 황톳길의 먼지는 숨막히게 힘들게도 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잦고, 왠지 온갖 궂은 날씨는 겹치기만 하는 것인지... 

그렇지만, 삶의 길을 걸어가는 길에 길동무 하나 있으면 훨씬 힘들지 않을 것이다.
손을 잡고 가기도 하고, 말동무도 되고,
그리고 비라도 내리면...
비가 내릴 때, 가장 좋은 벗은 함께 그 비를 맞는 벗이라고 했다.
동병상련의 여행길. 

그 여행길에서 힘겨운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도반이 들어온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갈등이 꼬여버린 마음을 풀게 되었고,
다시 그것을 표현하고, 서로 위안의 손길을 나누는 자리. 

이 책은 그런 자리다.
가난과 불행의 씨앗을 던져준 자신의 인생에게,
그동안 괴롭혔지만, 자신을 살게 해 줘서 고맙다는 화해의 손길 내미는 자리.
물론, 화해의 앞에 불화가 놓임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화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자리를 만난 이들의 글에서는 숨결이 부드럽다. 

화병이 걸리면,
숨을 들이쉴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산소가 나오기는 하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질식의 상태.
숨쉬는 일이 삶에 가장 기적적인 일임을, 명상을 통해 되돌아보게하는 이웃들이 이야기. 

연탄길, 아니 101가지 이야기 류를 좋아하는 이라면 권해줄 법한 책이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인간이고,
자기 이야기를 들으면 소설 한 권은 너끈히 나올 거라고, 불행을 붙안고 스스로 고행을 자초하는 이들에게,
명상의 기회를 닿게 해주는 인연이 될 법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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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마음 - 시인 문태준 첫 산문집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문체 Style란 것이 있다.
누구든 글을 쓰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
둥근 사람이 있고, 뾰중한 사람이 있고, 날카로운 사람이 있고, 시니컬한 사람도 있다.
물론 둥글면서도 날카로운 글맛을 느낄 수도 있고,
뾰족하게 찌르면서도 다사로운 정맛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
시종일관 시니컬로 내지르는 글도 있지만,
세상 모든 어려움 다 품고 갈 법한 느릿하고 세심한 문체를 만나 정말 천천히 읽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가재미의 시인 문태준.
그의 산문집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 마음은 몹시 분주했다.
아이들의 수능 원서를 작성하게 해야 했고, 대입 정원의 60%나 되는 수시모집에 지원해 보려는 아이들과 상담을 시작했는데, 대입 상담은 아이들의 상상과 학부모의 욕망과 담임의 현실 사이에서 삼각형이 그려지는 것을 뻔히 보고있는 일에 불과하다.
서로 다른 극점을 향해서 달리는 상상과, 욕망과, 현실은... 결국 슬프게 끝이 나게 마련인데...
객관적인 관점을 가진 것은 교사 뿐이지만, 실제 현실 속에 살 것은 학생과 학부모이기에, 그들의 욕망을 이길 수 없는 일이다.
분주한 마음 속에서, 느릿한 문태준의 글을 읽을 시간을 가끔 내는 일은,
명절 전날 다들 음식 준비로 바쁜 가운데, 조용히 목욕탕이라도 가는 기분이었다. 

불교방송 pd로 일하는 그는 일 속에서 조용하게 삶을 관조하는 습관이 든 시인이다.
일과 시가 하나로 묶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방송 일이란 것도 얼마나 분초를 다투는 일일지 생각해 보면,
바쁠 수록 느리게 가라~는 말이라도 던질 것 같은 느림보 마음,에 가서 눈이 머물면... 그의 마음이 읽힐 것 같기도 하다. 

김천에서 살아 어린 시절의 고향은 시골인 그가 간직하고 있는 추억을 풀어낼 때, 그의 글은 가장 속도가 난다. 

그렇다고 세상이 이렇게 획획 속도를 내며 돌아가는데, 문태준이라고 마음이 널뛰기에서 편할 수가 있겠는가?
그 마음을 지키려고 남들보더 더 노력했을 따름일 것이다.
정약용의 수오재기를 옮기는 것으로도 그의 마음 씀씀이가 읽힌다.

   
  오직 나만은 지켜야 한다. 내 밭을 지고 달아날 자가 없으니 밭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정원의 여러 가지 꽃나무와 과일 나무들 역시 그 뿌리를 땅 속에 깊이 박고 있으니 뽑아갈 자가 없다. 내 책을 훔쳐 없앨 자도 없다. 성현의 경전이 이 세상에 퍼져 물이나 불처럼 흔한데, 누가 능히 없앨 수 가 있겠는가. 내 옷이나 양식을 훔쳐서 나를 궁색하게 하겠는가. 천하에 있는 실이 모두 내가 입을 옷이며, 천하에 잇는 곡식이 모두 내가 먹을 양식이다. 도둑이 비록 훔쳐 간대야 한두 개에 지나지 않을 테니,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없앨 수 있으랴. 그러니 천하 만물은 모두 지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오직 '나'라는 것만은 잘 달아나서, 드나드는 데 일정한 법칙이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다가도, 잠시 살피지 않으면 어디든지 못 가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꾀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앙이 겁을 주어도 떠나간다.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만 들어도 떠나가며, 눈썹이 새까맣고 이가 하얀 미인의 요염한 모습만 보아도 떠나간다. 한번 가면 돌아올 줄을 몰라서, 붙잡아 만류할 수가 없다. 그러니 천하에 '나'보다 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은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매고 빗장과 자물쇠로 잠가서 나를 굳게 지켜야 하지 않으리오.(53)   
   

자신을 지키려고 매 순간 노력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중심으로부터 멀리 달아나 버리는 것이 자신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 중심을 지키려고 끝없이 마음을 벼리는 것이다. 
그래서 곁에 두고 사랑했던 것들이 '사군자' 같은 것인데, 그의 '한난을 바라보는 시간'은 한 편의 시다.(109) 

   
  한난잎은 나아가되 곧장 나아가지 않고 구부러지며 나아갑니다.
한난잎은 등이 휜 사람 같고, 하늘로 나아가는 언덕 같고,
발등 같고, 살짝 오므린 손 같고, 서글서글한 눈빛 같고,
기울어진 외벽 같고, 먼 바다로 날아갔다 돌아오는 갈매기의 선회 같고,
바다가 들어오는 해변같고, 초승달 같습니다.
한난잎은 둥글게 휩니다. 배척이 없습니다.
그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이 한난잎의 모습입니다.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은 은애 恩愛의 모습입니다.
한난잎은 공손하고 고요하고 깨끗합니다.
무턱대고 나서지 않아 요사스럽지도 않습니다.
곡 曲이 한난잎의 본성이지만
그렇다고 구부러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지러워지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한난잎은 살처럼 물렁하지만 뼈처럼 단단합니다.
휘되 부러지지 않습니다.
무고집의 고집이 한난잎의 심성입니다.
그 심성으로 한난잎은 直 직을 완성합니다. 
 
   

자신을 지켜야 하되, 한난잎을 바라보듯, 둥글면서도 곧은 '외유내강'을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하다. 

성철스님의 당부 다섯 가지.
손에는 일을 줄이고,
몸에는 소유를 줄이고,
입에는 말을 줄이고,
대화에는 시비를 줄이고,
위에는 밥을 줄여라

참 줄이기 어려운 것들을, 욕심내기 좋은 것들을 다섯 가지나 늘어 놓았구나... 

무사시귀인 無事是貴人
일을 벌이지 않고 사는 사람이 귀한 사람.
나서지 않고, 물러나 앉고, 잘난 체하지 않고, 겸손하라는...
석수화향 심강무성 石壽花香 深江無聲
돌처럼 흔들림 없고 꽃처럼 향기로우며, 깊은 강처럼 한결같이 소리없이 살아가는 경지
강은 곧바로 깊어지지 않는 법. 물이 쌓이고 쌓일 때 깊어지는 것.

릴케가 '명성은 새로운 이름의 주위로 모려드는 온갖 오해의 총칭'이라 했다는데,
그런 오해를 즐기다 보면,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일과 소유와 말과 시비와 밥그릇 싸움의 중심에서 이전투구하고 있는 자신을 보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처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처 주는
그런 사람이 될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이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 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처다 보면
반짝이는 그 맑음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이성선, 사랑하는 별 하나, 전문)

이성선의 이런 시를 통해 비추이는 그의 마음 한 켠을 들여다 보면,
완강한 삶의 고집과 함께 흔들대는 외로움이 평화 속에서 매 순간 흔들리는 모습도 보인다.
고집스런 뺨 서쪽으로 언뜻 저녁 노을지는 햇빛이 비추이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듯 말이다.
사랑하는 별 하나, 그것을 갖고 있는 <자신>을 또한 발견하는 것이 그의 문장이 평화로운 이유이지만,
사랑하는 별 하나, 그것은 누구도 가지기 힘든 것임을 그 역시 알기에, 부처님의 이야기들 속에서 진리를 찾아 헤맨다. 

쓰다듬는 것 속에서 '열애'를 발견하는 그의 하루하루는 느릿해 보이지만
그 느림은 결코 게으름에 가까운 것은 아니다.
매 순간 살아서 시어를 조탁하고 선택하는 고심을 하는 그의 하루하루는 느림보지만 치열하다.
치열한 삶은 매 순간 쓰다듬는 속에서 뜨거운 사람을 만난다.
타샤 투더를 두고 그린 박라연의 시를 소개한 것도 그런 의도였을 것.
박라연의 <빛의 사서함>이란 말도 참 내가 좋아하는 말인데,
사서함은 우체국 한켠에 빌려둔 우편함인데, 거기에 빛을 보내려는 환한 마음이 이쁘기 그지없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수십만 평의
자연을
밥벌이시키며 구십이 저무는 타샤 튜더
그녀는 이 세상을 벌면서
저 세상도 벌고 있었다는 것

너무 늦게 알아봤어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을 경계 없이 드나드는
심부름꾼인 양 그녀
저절로 조금씩 자연으로 바뀌어져서
장례도 필요 없다는 걸

우리는 생의 편이지만
생은
죽음의 편이라는 걸 (안경이 없어서, 박라연)


책을 다 읽고도,
마음에 잔잔한 울림이 남았을 때, 나는 제목 차례를 다시 들춰보는 습관이 있다.
제목들을 다시 고요하게 들여다 보면서, 나는 글쓴이의 마음 씀씀이를 들여다 보는 것인데,
이 책의 제목들에서 낚아 올린 언어들, 내 눈에 들어온 어족들을 적어 둔다.
그것이 가재미의 납작한 눈에 비추인 세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느린
아름다운
시원하고 푸른
새롭게 기다리는
가을 과일이 익는 속도
따뜻한
움직이고 흘러가는
소리를 내지 않는
봄비처럼 통통한
한 생각 청정한
따뜻한 화로 같은
쓰다듬는
차츰, 조용히, 차근차근하게
강보처럼 감싸던
빛바랜
누나는 나를 업고
상여가 지나가는
걸음의 속도
당일과 공일
더듬대고 어슬렁거리고 깡마르게
작은 

제목에서 걷어올린 이런 말들을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일요일 아침, 마음은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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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9-1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별하나'가 가슴으로 다가오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굿모닝 글샘님^*^

글샘 2010-09-16 12:38   좋아요 0 | URL
사랑하는 별하나... 좋아요. 그쵸?
 
돈키호테를 꿈꿔라 - 글로벌 대학의 리더, 박철 총장이 전하는 열정과 도전의 메시지
박철 지음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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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학협의회 모임에 한국외대 총장 박철씨가 초청되어 온 적이 있다.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품이 듣기 좋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의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깜짝 놀란 것은, 그가 돈키호테를 완역했다는 것이다.
보통 총장 같은 일에 나서기 좋아하는 교수라면, 연구에서 부실하기 쉽다는 것이 나의 편견이었는데,
특히 한국같은 풍토에서 번역에, 그것도 자기가 전공한 언어의 대표적 고전을 번역한 데 대한 자부심은 충분히 인정할 만한 것이었다. 

돈키호테는 정신나간 사람이다.
그러면, 왜 작가 세르반테스는 그런 정신나간 작자의 이야기를 쓴 걸까?
이런 궁금한 이야기들이 책에 등장한다.
절대 왕정의 시대. 문학이라고는 되도 않은 기사들의 꿈같은 로맨스 뿐이던 시대. 종교가 인간을 억압하던 시대.
그는 인간이 계급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돈키호테를 창조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돈키호테를 부분적으로나 읽은 나로서는 산초 판사가 나중에 섬의 영주가 되어 현명한 재판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고,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돈키호테란 작품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외대 총장으로서, 글로벌 사회에 걸맞는 인재를 기르자...는 류의 이야기는 좀 식상한 것이기도 했지만,
돈키호테의 완역자라는 그의 무게에 휩쓸려 이 책을 다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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