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153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空想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전문) 

내게 오규원은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으로 남아있다.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란 시집에 실렸던 시다.
왕자가 아닌 한 아이.
평범한 아이. 그 아이의 삶이나 왕자같은 삶을 산 아이나... 그게 그거 아닌지...
1995년에 발표된 오규원의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 소리]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며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느낌의 달리 그림을 연상하게 된다.

오후 두시 나비가 한 마리
저공으로 날았다 나비가 울타리를
넘기 전에 새가 한 마리
급히 솟아올랐다 하강하고 잠자리가
네 마리 동서를 천천히 가로질러
갔다 동쪽의 자작나무와 서쪽의
아카시아나무 사이의 이 칠십 평의
우주는 잠시 잔디만 부풀었다
다시 남동쪽의 잔디 위로 메뚜기
한 마리가 펄쩍 뛰고 햇빛은
전방위로 쏟아졌다 그리고 적막이
찾아왔다가 토끼풀 위로 기는
개미 한 마리와 함께 사라졌다
잠자리 두 마리가 교미하며 날았다
어린 메뚜기 세 마리가 차례로
뛰었다 사마귀 한 마리가 잔디밭
구석의 돌 위로 기어올랐다
그 사이에 동쪽의 자작나무 잎들이
와르르 바람에 쏟아졌다 순간
검은 나비 한 마리 서쪽 울타리를
넘다가 되넘어 잠복하고 이 우주는
오로지 텅 빈다 와르르 쏟아지던
자작나무 잎들이 멈추고 웃자란
잔디의 끝만 몇개 솟아오른다 (뜰의 호흡, 전문)


뜰의 호흡, 이라.
화자는 뜰을 망연히 응시하고 있었겠지.
그러면서 자신의 호흡을 상념 속에 담아 두었던 걸까?
거기, 나비, 새, 사마귀, 개미, 메뚜기...
온갖 존재들이 움직이고 날고 기고 뛰고, 아무튼 존재했겠지.
한 호흡 안에. 

이렇게 '뜰 앞에 잣나무' 심고 호흡에 마음을 얹어 두고 있다 보면, 

이 우주는
오로지 텅 빈다 와르르 쏟아지던
자작나무 잎들이 멈추고  

이런 마음의 상태를 만나기도 하는 모양.

나는 하늘과 구름과 공기와
언덕과 나무와 바람을 모두
안고 거울 밖의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방, 부분)

그의 이 시집에서 만나는 시들에서 유독 '공간'과 '시간'을 자주 느끼게 되는 것은,
시인이 그만큼 거기 몰두하고 시를 썼단 이야기겠다.

아파트 단지의 작은 연못에
비단잉어가 꼬리를 흔들며
졸고 있다 더럽지만 그러나
하늘과 한몸이 된 물은 잔잔하고
하늘과 한몸인 물을 몸에 넣고
비단잉어의 몸이 둥글둥글
부풀어있다 (민화 3, 부분)

비단 잉어.
하늘과 한 몸이 된 비단 잉어.
더럽지만 잔잔한 물.
잉어와 물이
같이 더럽고 함께 잔잔하게...
둥글둥글... 사는 삶. 그런 존재. 존재감.

나는 해변의 모래밭에 지금 있다
바다는 하나이고 모래는 헤아릴 길 없다
모래가 사랑이라면 아니 절망이라면 꿈이라면
모래는 또한 반동, 혁명, 폭력, 사기, 공갈이다

수사적으로, 비유적으로, 존재적으로,
모래(사물)와 사랑, 절망(관념)....은
동격이다 우리는 이를
원관념=보조관념의 등식으로 표시한다
그래서 모래는 끝없이 다른 그 무엇이다
오, 그래서 모래는 끝없이, 빌어먹을

나는 사랑을 발로 밟는다 밟아도 사랑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든다 그래 사랑은 간지럽다
나는 절망을 짓뭉갠다 짓뭉개지는 절망이 발의 뒤꿈치에서 간지럽다
나는 꿈을 파헤친다 아니다 아니다 꿈의 속을 더듬는다 마른 꿈 밑의 젖은 꿈에 내 손이 젖는다
나는 죽음을 깔고 앉는다 엉덩이만큼 푹 죽음이 들어간다 앉은 사타구니 사이에는 그러나
죽음이 그대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나는 모순을
나는 허위를
나는 공포를 움켜쥔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나는 자유를 다시 움켜쥔다 손가락 사이로 역시 빠져나간다 손바닥을 탁탁 터니 붙어 있던
자유가 날려떨어진다 자유는 정말 가볍다
나는 반동을 쓰다듬는다 손이 지나간 자리에 반동의 매끈한 길이 생긴다
나는 혁명을 밝고 나아간다 혁명은 뒤에 발자국을 팍팍 파놓는다
나는 앉아서 두 손으로 사기를 친다 튕겨나가는 사기와 밀려 쌓이는 사기에 손이 아프다
나는 공갈을 친다 폭력과 공갈이 나를 휩싸며 뿌옇게 나의 눈과 귀와 코와 입을 사정없이 덮친다
나는 반동을
나는 혁명을
나는 사기를
나는 폭력을
나는 공갈을 움켜쥔다 움켜쥐는 순간은 감미롭다

하나의 공갈은
하나의 폭력은
하나의 사기는
하나의 혁명은
하나의 반동은 너무 작아 움켜쥐어지지 않는다
너무 작아 간지럽다
나는 해변의 모래밭에 지금 있다
모래는 하나이고 관념은 너무 많다
모래는 너무 작고
모래는 너무 많다 아니다
관념은 너무 작고
모래는 너무 크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존재적으로,
모래(사물)는 사랑, 절망....에
복무한다 우리는 이것을 인본주의라는
말로 표현한다 오, 빌어먹을 시인들이여
그래서 모래는 대체 관념이다 끝없이
모래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을 반짝이고

모래가 사랑이라면 아니 절망이라면 꿈이라면
모래는 또한 가가호호, 가당, 가혹, 간혹, 갈망, 걸귀, 경멸, 고의, 과실, 기서, 내연, 노스탤지어, 노스 카운트,
다다, 다신교, 독선, 마마, 망극, 모의, 모정, 무명, 무모, 무상, 백수, 불화, 빈궁, 빈약, 사디즘,
사탄, 선교, 섭리, 속죄, 순례, 숭고, 숭고미, 숭고추, 시, 그리고 또 시, 신성, 인티, 앙가주망,애흘, 양가,
양태, 언감생심, 여념, 우울, 유예, 융합, 인종, 입신, 자생, 자멸, 적, 전락, 전생, 정실, 정조, 주
종, 주화론, 천상, 천하, 추잡, 추태, 커닝, 컨디션, 코뮈니케, 쾌락, 통한, 퇴락, 파멸, 평화, 풍요, 프로그램, 프로세스, 하세, 할거, 해방, 호모, 혼돈, 환멸, 흥청, 흥청망청....
모래야 너는
모래야 너는
모래야 너는 어디에 (나와 모래, 전문)

그렇지만, 살아있는 일은, 세상을 살아내는 일은,
편안하고 마음처럼 곱게 지나가지 않는다.
온갖 추악함이 마음을 괴롭히고, 온갖  시공간을 뒤흔들어 버리는 것이 세상이다.
풍요 속에서,
흥청망청 속에서,
앙가주망을 생각하는 시인에게,
모래와
자신은
어디에서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인지... 고뇌가 시리게 읽힌다.

버스가 언제 오느냐는 단지 시간의 문제 (외곽, 부분) 

그의 시 '외곽'에서 단지에 윗점을 쾅쾅 찍어 두었지만,
버스가 언제 오느냐는 시간의 문제가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잘난 놈들의 리무진은 획획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공연히 나무 밑둥만 걷어차는 청년에게 '단지' 기다리면 버스는 온다는 위안은, 지나가는 리무진 버스를 속절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열패감을 안겨줄 뿐.
기다리면 온다는 버스는, 교과서에서나, 공자님 말씀에서나 존재하는 것임을,
현실 속의 청년은 알기에,
단지,
나무 밑둥이나 걷어찰 뿐. 

오규원과 함께 시간과 공간 여행을 떠나는 일은,
많은 사물과, 존재를 만나는 일이고,
그 사물과 존재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한 호흡' 속에서 느끼는 일이다.
힘겹지만, 즐겁다. 등산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정리 편지 창비아동문고 229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은 '왕조'였다. 
근대적 '국가'의 개념과 '왕조'를 동일시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국가'는 사회적 계약체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반면, '왕조'는 대물림되는 자리에 따른 왕권신수의 결과로 모든 권력은 왕에게 있다. 

그래서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국민이 나서서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왕조'에 위기가 닥치면 '왕족'이 나서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조선 말, 순헌철 3대 60년간의 폭정으로 온갖 정치가 문란해지자 동학 농민군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 동학 농민군을 말살하기 위해 '이씨 왕조'는 일본의 '외인부대' 천여명을 동원하여 신식 소총으로 수만 명의 농민군을 우금치 전투에서 말살하고 만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종의 '한글 창제'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훈민정음 서문에서 '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자가 많아서,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라고 한 정치적 수사를 곧이곧대로 믿고, 세종은 성군이다. <세종 대왕>이다. 이렇게 믿는 것은 참 순진한 말씀이다. 

전두환 각하께서 '정의 사회 구현'을 외치신 <민주 정의당> 대빵이었다는데, 과연 그랑 정의, 민주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걸 믿는 것은 순진하든지, 멍청하든지... 그런 것이다.
문어 각하께서 정의, 민주, 를 부르짖은 이후에 하신 짓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모순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함을. 

세종 실록을 보면, 세종 때, 합법적인 사형 집행이 가장 많았다고도 하고,
명 재상으로 소문난 황희 정승이 뇌물 수수 사건으로 조사받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
세상에 난 소문은 모두 믿을 게 못 된다.
특히 정치가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더하고...
정말 훈민정음이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글이라면, 그것으로 어떤 책을 지었어야 할까?
농사직설이나 농가월령가 같은 것들을 널리 펼쳤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훈민정음으로 처음 만든 책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오버액션으로  펼친 '용비어천가'다.
요즘에도 '아부의 문학'으로 꼽는 그 책. 음, 역시 조선 건국은 찜찜했던 모양이다.
제 아비와 할아비가 모두 연쇄살인범임을 그 자신 잘 알고 있었던 세종이었음에랴. 오죽하면 첫째, 둘째 형들이 세자자리 버리고 도망을 다 갔을까. 

그리고 훈민정음으로 열라 펼친 책들은 모두 <유교의 공고화>를 위한 책이었다. 한결같다.
<소학 언해> <삼강 행실도> 등은 훈민정음으로 엄청 찍어 돌렸다.
임금을 위해, 남편을 위해, 아비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고, 허벅다리를 자르고, 목을 매고' 완전 호러엽기쑈가 따로 없다. 그걸 국민에게 강요하듯 먹이기 위해 만든 글이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간편하게 문자 생활을 하고 있는 오늘날, 세종 임금에게 감사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당시 백성들이 '세종'을 '성군'으로 모셨을 거라는 생각은 오버액션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태조, 태종에 이은 세종 역시 '성계육'을 씹던 기분으로 씹어돌리기는 쉬웠을지언정, 세종의 정책을 쌍수들고 감사하는 시대가 아니었을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인데... 다들 세종 엄청 좋아한다 싶다. 

이 책은 훈민정음의 반포 목적을 정말 충실히 믿고 있다.
그래서 인자하신 성군 세종께서 반포하신 훈민정음으로 편리한 문자 생활을 하는 백성의 이야기는 행복하기까지 하다.
세종대왕께서는 돌깨는 석수의 꼬마 하나에까지 사랑 가득한 마음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는
글쎄,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뭔가 찜찜하게 이건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 가득하다. 

추석에 물폭탄이 쏟아졌다는 서울에서,
공무원이 늦게 출동했다는 뉴스는 나와도, 서울 시장이나 구청장이란 인간들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나오는 뉴스를 만나지 못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드는 건, 뭔가.
주소를 잘못찾아 전가하는 것이 늘상 권력이 일반 백성에게 펼치는 연막 전술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어쩌다 내 독서는 이런 쪽으로 돌아가는 겐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0-09-2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만길<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도 한글창제는 애민사상과는 거리가 있다는 내용이 있지요.제가 본 가장 격한 세종비판은 박노자 것입니다.세종비판자 중 글샘 님의 기억에 남는 것은 누가 쓴 것이었는지요?

글샘 2010-09-26 23:20   좋아요 0 | URL
뭐, 세종비판자가 몇 되지도 않지만, 누가 쓴 건지는 별로 모르겠구요. 조선이란 왕조가 워낙 저런 성향의 국가였으니, 문제의식을 가져 본 겁니다.

2010-09-25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6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9
패트리샤 맥코믹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농담삼아,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란 이야기를 하곤 한다.
농담 속에 뼈가 있는 말인데, 꼭 자신에게 큰 행운이 따를 때 행복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될 때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네팔의 시골에 살던 라크슈미라는 평범한 아이는 열세살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팔려서 이런저런 루트를 거쳐 인도의 어느 마을 홍등가로 넘어간다.
온갖 폭력과 감금, 성매매로 이어지는 비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치를 떨며,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조건에 놓이게 된다.

인간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나 '세계대전'의 공포를 이야기하긴 쉽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구석에선가 폭행, 납치, 감금, 살해가 일어날 수 있고,
'서부 전선 이상없다'는 보고가 흘러나오는 그 시간에도, 누군가는 피살될 수 있는 것이다.

꼭 치안이 불안하거나 여자아이들을 얕잡아보는 동네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으로 몇백 만원에 팔려오는 동남아시아 여인들 이야기를 한 사람 한 사람 들어보면, 라크슈미보다 더한 조건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한국에서도 그 흔한 술집 아가씨들의 이야기들을 엮어 보면, 라크슈미보다 낫다고 할 것도 없는 삶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미국 사람이 미화되고 있는 점은 좀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성매매가 흔하디 흔한 한국 사회에서 문제시되지도 않는 청소년 문제를 생각한다면, 좀더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만한 소재가 담겨있는 소설이긴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 a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 - 신미식 포토에세이
신미식 지음 / 푸른솔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제목은 I'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 이렇다.
'-쟁이'란 접미사와 '-장이'란 접미사는 구별해서 쓰는데, 전자가 속성, 특성에 쓴다면, 후자는 전문적 기술과 직업에 쓴다.
멋쟁이, 욕심쟁이와 석수장이, 미장이... 이런 차이.
사진을 찍기 좋아하는 정도라면, 사진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걸 전문적 기술로 기예를 닦고 싶을 땐 장이라고 써야 옳다. 

신미식이란 이름은 이 책에서 처음 만났다.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 '떠나지 않으면 만남도 없다' 이런 책들이 제법 검색된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과 산비탈 다락 염전의 사진도 인상적이다.
페루의 쿠스코와 알파카, 만년설 사진도 숨이 컥 막히게 아름답다. 

좋은 카메라와 여행, 그리고 멋진 사진...
그걸 내가 꼭 하고 싶은 생각이 내겐 없다. 이런 사람의 책을 만나면 되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보고 싶은 생각은 간혹 나지만...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의 사진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표지 사진이 된, 횟가루가 묻은 남자의 억센 발 사진.
그의 발이 원래 처음부터 그렇게 억세었던 것은 아니리라.
아이들의 웃음은 천진난만 그 자체지만,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의 고단한 삶이 오버랩되면, 그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 고일 우울이 슬프기도 하다.
그렇든 말든, 바라나시의 금빛 물결을 대신 응시하게 해 주는 사진, 고대의 사원을 찍으려 목발을 짚고 선 외다리 여인의 사진,
삶이란 어디서든 그렇게 치열하게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삶의 스승이다.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나무들은 인간의 자질구레한 욕심을 비웃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섬의 바위들의 절리는 '만물상' 운운하는 금강산을 금세라도 비웃을 듯...
사는 거 뭐 있어? 이렇게 미끈하게 생긴 나무들. 곁을 주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금세 친숙해지는 그림들...
뉴 칼레도니아의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황금빛 노을...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운운하며 국수주의적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이런 사진집은 세계 시민으로서의 열린 마음을 말없이 전달해주는 기능도 할 것이다. 

수십 번 숨을 참아가며, 한 순간, 결정적 순간을 포획하려는 사진가의 노력은
휙휙 책장 넘기는 성의없는 독자조차도 한 순간 그림을 한참 바라보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멋진 사진장이의 사진은 독자를 사로잡고, 열린 세계로 나아가게 만든다.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강명관 지음 / 길(도서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야구에서,
'공격에서의 실수를 수비까지 가져오지 마라'는 말이 있다.
공격할 때, 병살타를 치거나, 득점이 필요한 중요한 시점에 아웃이 되는 아쉬운 마음이 수비에서 에러를 발생시킨다는 이야기다.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이어지기 쉽다는 말이겠다. 

책을 읽거나 연구를 할 때도 '공격에서의 실수를 수비까지 가져오는 오류'를 범하기 쉽단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우리 심리 속에서 거부하기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꼽는 사람들>에게 의문을 품는 일도 쉽지 않다.
다시 말해, 공격에서의 실수를, 수비할 때 완전히 지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강명관은 공격에서의 실수를 수비까지 가져오지 않은 학자다.
그는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것들이나, 훌륭하다고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의 시야는 넓고, 시선은 툭 트였다. 시원스럽다.
그 시원스러움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오는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버둥에서 나온 것일 게다.

강명관은 옛글을 읽는 학자다. 옛글 속에는 아무래도 고루한 지식이 들었을 거리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강명관의 글을 읽는 일은, 쨍, 소리 나는 쇳소리를 듣는 일과도 같다.
김소연은 마음 사전에서 '상식'을 <가장 많은 사람이 본 유령>이라고 했다.
신선한 표현이다.
상식은 객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기기 쉬우나,
사실은 실상이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유령>이란 비유로 표현했다.
그 유령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기에,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여기기 쉬우나, 유령은 어디까지나 허상인 것. 

조선시대 600년은 참으로 긴 기간이었다. 그만큼 조선은 탄탄한 국가였다.
그러나, 그 탄탄한 기반에 <성리학>이 있었고, 유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훈민정음이 탄생했고, 현재 통용되는 지폐에 들어간 이황과 이이가 사상의 중심축에 서게 되었다.
성리학의 기틀을 다지는 일이 조선을 세우는 일과 동의어였기 때문이다. 

성리학으로 버티어진 조선 시대에 쓰여진 글들을 보면, 고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겠지만,
유령을 유령으로 볼 줄 아는 강명관의 눈에 띄는 글들은 신선한 글들이 많다.
논문 좋아하는 학자들이 보면 잡문에 불과한 강명관의 글들.
잰체하는 학자들의 고루한 글들에 비하면 강명관의 글은 줏대가 서 있어서 시원스럽다. 

동심은 사람의 최초의 마음이다. 동심은 듣고 보는 것이 귀와 눈으로 들어와 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면 동심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다 자라면서 도리가 견문으로부터 들어와 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면 동심은 또 사라지게 된다. 이탁오.

도리와 견문이 나를 구성하는 주인, 곧 주체가 되어있다는 말... 16 

도리라는 것은 인간 사회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일 뿐인데,
그 도리가 오히려 사람을 잡고 있다.
현대의 결혼, 상례, 제례, 명절 풍속 등에서도 도리가 사람잡는 일은 흔하고 흔하다.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가 이런 말 하기 쉽지 않다. 하긴, 유학자들이 빨갱이라고 하는 이탁오의 이야기를 주워섬기는 학자임에랴~
사람의 주체는 사람인 세상이 얼마나 좋으냐.
그렇지만, '학생 인권 조례'가 통과된 것을 보고, 애들을 안 패고 어떻게 가르치냐는 선생들이 아직도 많으니...
도리는 길고 인권은 짧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코귀입이 달려 있어 남들이 앉을 때 따라 앉고 남들이 설 때 따라 선다. 그러고도 사람이라고 하니, 이 어찌 불쌍한 노릇이 아닌가. 꼭 요즘 유행처럼 기초학문을 기피하는 현상을 지적한 말 같아서 통쾌하기도 하고 씁쓸하도 하다. 60년 바닷가에서 조수를 연구한 사람, 조귀명 (27)

고전을 잘 읽기 위해선 고전이 완벽하고 어려운 책이란 잘못된 상식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그 어떤 사유도 저작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33)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학자들의 행태를 보면 참 하품날 일 많을 게다.
나처럼 얄궂은 석사 논문 하나 쓰는데도, 학자연 하는 인종들의 충고에 구역질날 뻔 한 일이 많았으니 말이다.
한글 맞춤법에 대해서, 또는 한글 전용에 대해서 아직도 국수주의적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과 말을 섞는 일은 참 두려운 일이었다.

상것들이 재산을 모으지 못하게 하여 가난에 찌들게 하고, 그 결과 하는 수없이 양반에게 의지하게 만들며, 아무리 가혹한 린치를 가해도 자신이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르도록 상것들을 무식하게 만든 것이 조선조 양반들의 통치술. (60)

그런 조선을 '전통' 운운하며 섬기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강교수의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재앙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소경이나 귀머거리처럼 더욱 독서하고 더욱 겸손하라. (75) 이덕무, 갑신제석기

이덕무처럼 소경이나 귀머거리처럼 독서하고 겸손할 것을 권하는 글을 읽어야 한다.
자기들은 군대에 안 가면서, 국익 운운 하는 자들의 힘센 말은 사람을 겁주지만, 따지고 보면 사기성이 농후한 것이라고 날카롭게 꼬집는 글을 읽는 일은 통쾌하지만, 역시 지적 주류가 아님을 생각하면, 한국 사회의 편가르기가 진보적 생각을 언제나 받아들일는지... 한숨만 난다. 어쩌면, 향후 100년 동안, 이런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구양수, 추성부 秋聲賦 를 읽자니, 가을이 왔다. 곧 추석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호들갑들을 떨지만, 난 누구에게 최대인지, 어떤 점에서 전통 명절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들의 민족이 따로 있는 것이나 아닌지...
종일 차 막히는 걸로 뉴스를 때우는 희한한 방송국을 볼 때, 그들의 민족이 아닌 이주 노동자들이나 결혼 이주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스트레스 투성이인 <명절 건너뛰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가을이 왔고... 차츰 깊어지리라...

구양자가 한밤중 책을 읽노라니, 서남쪽에서 웬 소리가 들린다.
섬뜩한 느낌이다. 이상도 하지.
처음에는 뭔가 우수수 쓸쓸한 바람 소리 같더니,
갑자기 내달리고 뛰어오르고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듯하더니,
난데없이 한밤중에 파도가 치는듯, 비바람이 몰아치는 듯하고,
물건에 부닥치자 쟁강쟁강 쇠조각이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적진으로 내달리는 군대가 재갈을 입에 물어 호령소리는 들리지 않고 다만 사람과 말이 행군하는 소리만 들리는 듯도 하구나.
구양수는 동자에게 묻는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나가서 알아보아라.”
“별빛과 달빛이 환히 비치구요. 하늘에는 은하수가 걸려 있어요.
사방에 사람 소리는 도무지 없구요. 숲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데요.”
“슬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니라.” <구양수, 추성부>

 

<김홍도, 추성부도>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slmo 2010-09-19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는 잘 되세여?
수행 중이셔도 이 정도 댓글은 괜찮겠죠~

보름달 처럼 풍성한 추석 되세요.
보름달이 안 뜨면 절 달 본 듯 여기셔도~~~^^

글샘 2010-09-20 13:02   좋아요 0 | URL
누가 수행 중이셔요? ㅎㅎㅎ
그냥 공부하는 중입니다.

양철님이 달달 둥근 달이신 모양이네요. 전에 마시마로라고 하시더니...
추석 잘 쇠십시오. 저는 정상근무입니다. ^^ 대한민국 고3은 수능 50일 전이거든요.

노이에자이트 2010-09-2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명관 씨의 우상 깨기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요즘처럼 정조를 숭배하는 시대에 정조의 사상통제를 비판했지요.이덕일의 정조관과는 전혀 달라서 독서가들도 비교해서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그외에 국문학이란 단어를 없애자는 등 국수주의와 거리두는 것도 괜찮더라구요.

글샘 2010-09-27 17:42   좋아요 0 | URL
정조 이후가 심하게 기울어진 시대가 되다보니 정조숭배가 나올 법도 하죠.
저는 정조 생각하면, 노무현 생각이 납니다. 고집스럽고, 여당과 불화를 일으키고, 수도를 옮기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의문사 한 것까지... 정조의 사상통제를 그냥 까는 것보다는, 그 시대의 <왕조 사관>으로 본다면, 당연한 생각이 아닐까 싶네요.
김탁환의 '천둥소리' 같은데 보면, 허균의 민본사상을 인정하면서도 광해군은 허균을 능지처참할 수밖에 없는 '왕'이었음을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저도 강명관의 연구는 관심을 갖고 보는데, 좀 외로운 공부같기도 해요. 패거리가 없어서...

노이에자이트 2010-09-2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정희 지지자들 중의 일부는 정조를 박정희와 비슷하다고 해석하더라구요.근대화를 완성 못하고 죽었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그리고...김주영<천둥소리>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김탁환<천둥소리>와는 무관합니다.

글샘 2010-09-27 17:42   좋아요 0 | URL
왕조와 계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김주영 소설은 김탁환과는 무관한 거였군요. 왜 그렇게 혼동하고 살았는지... 안 읽어본 탓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