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학교에서 배운 것들 - 임영균의 사진과 삶의 대한 단상
임영균 지음 / 브리즈(토네이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혼자서 양주를 홀짝이며 읽은 책.  

사진에 대한 다양한 가르침을 담은 책이어서, 나처럼 사진집의 감상을 느끼려는 독자에게 적절한 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진에 담긴 의미를 반추해 볼만한 좋은 구절들이 많아 기록을 남겨 둔다.
디카 들고 사진 찍기에 몰입한 사람이라면 꼭 몇 번은 반복해서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다.

사진은 기록과 진실을 담은 예술이어야 한다. 사진은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표현해야 한다.
그섯이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참혹한 것이든... 임응식 선생 

사진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
그런 순간을 정확히 베어내 꽁꽁 얼려놓는 식으로,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수잔 손택) 

사진가는 호크아이를 가져야 한다.
어두운 밤 희미한 빛 아래서도 시야를 확보해 사물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매의 눈.  

숫자 8을 표현한 안경을 찍은 나의 사진과 클래스 메이트의 풍만한 가슴을 찍어낸 사진을 보면서... 과감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피사체를 탁월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질 것을 결심... 

좋은 사진은 피사체가 좋은 포즈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셔터만 누를 뿐이다.(살가도)
사진가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기심을 앞세우면 진실된 사진이 나올 수 없음.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쟌 모리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말할 나위 없이 유명한 말이다. 
<브레송, 생 라자르역 뒤편>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을 비교하자면, 유리와 거울.
유리로 된 창문 앞에 서면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는 나무가 보이고
햇볕이 내리쬐는 교회가 보인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서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리는 빛을 투과하고 거울을 빛을 반사한다.
아날로그 사진은 유리처럼 렌즈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볼 수 있고,
디지털 사진은 거울처럼 렌즈가 반사한 것을 보는 듯 느껴진다.
나는 피사체의 표면만 아니라
그 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을 얻는 사진,
그리고 그 속에 사진가의 영혼을 채워줄 수 있는 사진을 만나고 싶다.(69) 

 최근 몇 년 사이, 디카가 확산되면서
예쁘고 감각적인 사진은 수없이 등장하지만,
살가도의 사진처럼 목마른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사진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사진이란 작가의 끊임없는 관찰과 정신력을 렌즈 한 곳에 집중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결정체다.
이것이 사진, 즉 영혼이 담긴 사진에 대한 내 생각이다.(아마존에서 제자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 확인하기 전까지 무엇이든 외부의 해석을 믿어서는 안 된다.(체스터 히긴스)

저는 결코 유럽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다다이스트였기 대문이죠.
그래서 다다이즘의 기본 개념이라고 하는 기존의 관습과 관념, 그리고 체제도 거부하는 작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었습니다.(만 레이) 

빈티지 : 경작이 좋은 해. 낡은 것이라도 어느 해에 나온 것이 품질이 좋다는 ... 오래되어 좋은 게 아니라, 제조 연도에 따라 일조량이 달라, 포도주의 질이 다르다는 어원.  

고칠 곳 몇 군데...

54, 55쪽의 6.8 혁명은... 점이 없어야 옳을 듯 싶다.

136, 몇 번이나 '유셉 카쉬, 와 유서프 카쉬'를 섞어 쓰고있다. 통일이 필요한 고유 명사. 

142. 국립문화제청... 문화재청이 옳은 표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제12회 '천상병 시상' 수상작 창비시선 310
송경동 지음 / 창비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제목만으로도 숨이 컥, 막힌다.
사소한 물음.
1. 용산 철거민들은 왜 좋은 집에서 편하게 안 쉬고 거기 올라가 불타 죽은 거야?
2.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왜 전자제품 조립 안 하고 데모나 하는 거야?
3. 이경해 씨는 왜 멕시코까지 가서 배를 가르고 죽은 거야?
4. 평택 대추리 사람들은 왜 욕심도 많게 땅 안팔고 개기는 거야?
5. 택시 운전수가 뭘 안다고 FTA 반대해서 분신하는 거야?
6. 왜 민중의 대통령이 핵폐기장,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국민 목을 조르는 거야? 

왜왜왜??? 

용산4가 철거민 참사 현장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카메라탑을 점거하고
광장에서 불법 텐트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퇴거 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

그런 내 삶처럼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이 세상 전체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무허가, 전문)

 

허가받아야 사는 인생.
세상은 허가 받아야 사는 곳인데...
도대체 누가 무엇을 허가받고 사는 곳인지... 그 사소한 질문에 답할 자, 누군가... 

무허가 주택, 그리고 허락된 폭력. 그것이 국가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라면 국가를 부정할진저... 

어떤 그럴듯한 표현으로 그려줄까
어떤 그럴듯한 은유로 보여줄까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 그 밤을 형상화해줄까
어떤 상징으로 그 아침을 새겨줄까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줄까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
어떻게 그럴듯하게 문학적으로 미학적으로 그려줄까
그러나 나는, 이 더러운 세상
이 엿같은 세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무슨 시를 쓸까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보다 잔인하진 않았으리
이렇게 일상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평범하지는 않았으리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부분)

고양시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좌판을 벌인 아저씨의 붕어빵 틀을 빼앗기고 목매 죽은 사건을 듣고 쓴 시다.
이 시를 읽은 네티즌들이 시청 홈피를 다운시켰고, 노점상들이 시청 입구를 불태웠고, 결국 전국빈민연합 사무처장이 감옥살이를 했다.   

일상적으로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정말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줄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그의 시 작법은 고통 속에 오롯이 놓여있다.
그의 묘사는 <대상의 내부보다는 외부에 있는 시선의 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득한 거리>를 만든다고 한다.
루카치 왈, 전망을 상실한 사람들이 묘사의 언어를 선택한다고...
고통 앞에서 어떤 전망을 서사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지...   

한때 선진 노동자로 여름 볕처럼 짱짱했지만
이젠 갈 곳 없이 변두리 운짱으로...
기억나지 않는 노래들을 꿰맞추며
우린 다시 어떤 사랑을 깁고 싶은 걸까...
변혁의 주인이라는 노동자의 꿈도
탈탈 턴 호주머니처럼 스산해지고...
우리는 개인이 아니었는데
개인이 되고 말았다는 서글픔만 (가리봉 오거리 연가) 

노동자 대투쟁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시대도 있었지만,
세계화를 떠들던 김영삼 정부 이래로,
IMF에서 권고한 것처럼 구조조정이 비정규직을 만드는 이어서는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비정규직화는 꾸준히 실천되고 있고,
노동자는 파편화되고, 무기력해지는 현실.
다들 배부른 자본가 탓은 못하고,
노동자들, 노조들 탓이나 하고 있는 못난 현실.
노동자가 노조를 탓하면, 웃는 것은? 자본가와 매판 정권임은 당연지사. 

잊고 싶었던 어떤 유령들의 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내 영혼의 방직소, 부분)

공산주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고 있다던 공산당 선언의 말을 비틀어버린 구절이 슬프고 애잔하다. 

문득, 주름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흔 넘다보니 나도 참 많은 주름이 졌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고여 있는
골도 있다 왜 그랬을까?
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첩첩한 고랑도 있다

여름 볕처럼 쨍쨍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지만
생은 수많은 슬픔과 아픔들이 접히는
주름산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주름의 수만큼
나는 패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도 많았고
주름이 늘어버린 만큼 알아서 접은 그리움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주름들이
내 삶의 나이테였다 하나하나의 굴곡이
때론 나를 키우는 굳건한 성장통, 더 넓게
나를 밀어가는 물결무늬들이었다 주름이
참 곱다라는 말뜻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수많은 아픔의 고랑과 슬픔의 이랑들을 모아
어떤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보는 것이다 (주름, 전문) 

요즘 나보다 한 해 뒤 태어난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송경동이 그렇고, 이병률이 그렇고, 요즘 한창 인기인 박칼린도 그렇다.
우연히 그 연배들이 나이 운운하는 글들을 읽노라면,
문득, 나의 주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일이다. 

패배의 주름조차도 나이테, 곧 연륜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는 일은
패배에서도 지혜의 밭을 일구는 힘을 얻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고통 속에서 혼자 생각해 보는 일이다. 

아이 성화에 못이겨
청계천 시장에서 데려온 스무 마리 열대어가
이틀 만에 열두 마리로 줄어 있다
저들끼리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먹힌 것이라 한다 

관계라니,
살아남은 것들만 남은 수조 안이 평화롭다
난 이 투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다 (수조 앞에서, 전문) 

아아, 송경동이 견딜 수 없어하는 이 세상은 너무 평화로웠던 것이다.
적절한 관계 유지를 위하여 투쟁에서 이긴 것들만 살아남아 누리는 평화.
비정규직과 일용직과 빈민들을 이겨낸 자들의 평,화.로운 관계.
견딜 수 없이 슬픈,
그러나 평화롭기만 한 세상.
답답해 소리치지 못하고,
나즉한 목소리로 '견딜 수 없다' 고 쓰고 있는 송경동이 나는 아프다.

은유는 순간적인 의미의 솟아오름이고
상징은 그 의미를 고정시키는 언어 방식
(143)이란 박수연의 해설도 그럴듯 하다.
그만큼 은유의 힘이 큰 것이고, 활용 가능성도 넓은 것이다.
송경동 시의 힘 중의 하나가 순간적인 의미의 포착과, 거기서 걷어올리는 은유의 성공이다.

시인의 실수 하나
111. 황새울 가는 길, 에서
아홉살 아이가
폐가 할 때 폐자가 한자로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닫을 폐, 집 가 해서
닫힌 집, 즉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라고 하자
아이가 아하 대추리에 많은 집들이라고 한다
그래그래 하다가 씁쓸해진다 

이렇게 쓰고 있는데, 폐가는 닫을 폐 閉를 쓰지 않고, 폐할 폐 廢를 쓴다. 그만두다, 부서지다, 할 때 쓰는 글자다.
문을 열어뒀어도, 부서진 집을 폐가라고 한다.
문을 닫아놨어도, 사람사는 집은 폐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꿀잠 삶의 시선 17
송경동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송경동의 시를 읽는 일은,
찔리는 일이다.
내게 아직도 양심이란 것이 남아있다면, 양심이 찔리는 일이고,
내게도 일말의 양식이란 것이 있다면, 양식에 찔리는 일이다.
모두들 제 눈 앞의 밥그릇 하나 움켜쥐고 딴데 한눈 팔지 않으려 굳이 잊고 살려하는 세상에서,
아직도 노동 현장의 그는 '삶의 현장'을 살아 간다.
살고 있고 살아 있다.
그래서 나는 몹시 부끄러워하며 그를 읽는 일을 미뤄두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는 운동권이었다고 그 무용담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맞아 죽고, 떨어져 죽고, 목매 죽고, 배갈라 죽고, 불타 죽어갔다.
'혁명'이란 유령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시대에...
이제 '람보'란 정신병자에 빙의해 좀 불쌍하게 보이려했던 미국이,
슈퍼맨처럼 세계를 구한다고 오버하다가 그것도 안 먹혀 들자,
드디어 "슈퍼 배드"가 되어 나타났다.

그래 난 나쁜 넘이다. 그래서, 너는 뭐 좀 다르냐? 피식~
징그러운 세상이다. 

양철지붕 두드리며 
밤새 내리는 비 

나도 누군가의 영혼을 밤새 두드리는
겨울 찬비가 될 수 있다면
하지만 난 아직도
세상의 음계에 맞춰
내 노래 조율하는 법을 몰라  

내 노래는 내가 죽어도
내 목 밖에서 객처럼 서성일 것인가
밤새 내 영혼을 두드리는
하얀 비 (하얀 비, 전문)

 

양철지붕, 함석지붕 아래서 웅크려본 사람은 안다.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얼마나 크게 울리는지... 

모두들 맛집찾아 드라이브 떠나는 걸로 소일거릴 삼고,
비정규직 투쟁 따위, 용산참사 따위는 기억 속에서 굳이 지우려는 노력까지 할 것도 없이 눈감고 사는 세상. 

그는 양철지붕 아래서
오롯이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지 못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삶을 사는 사람이다. 

태백산 자락 인적 끊긴 국유림도
터벅터벅 또 한 산굽이 돌자
세 명의 산림청 하급직원들이
순한 포클레인과 트럭 한 대를
천길 낭떠러지 위에 묵화처럼 걸어두고
식은 찬합밥을 먹고 있다. 

사람이 아니고서는 만들지 못할 풍경! 

지지난날 태풍으로
깎이고 패인 길을 손질하던 참이라는데
그들이 간지럼 태우면
산도 계곡도 그만 모공 서늘해져
있는 손 없는 손 모두 손사래질치며
킬킬킬거리며 온 산 한번 더 싱그러워질 것만 같아
태풍에 씻긴 나뭇잎마냥
푸릇푸릇 좋았다 (깨끗한 풍경, 전문)

노동의 싱그러움을 동양화 한폭에 담았다.
전통적 동양화에는 자연을 크게, 사람을 작게 그렸는데,
송경동의 동양화 화폭엔 인부들과 포클레인이 굵직한 선으로 들어앉았다. 풍부한 먹빛으로...  

뉴스에 가끔씩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추락사한 소식을 듣기는 어렵지 않다.
얼마 전엔 용광로에 인부가 빠져 흔적도 없이 죽기도 했다.  

의지가지 없는 철골 공사장
수십 미터 허공 외빔 위에서 만나면
번갈아 길 터주며 목숨을 나누던 우리...잘 가시라
가서라도 이 추운 겨울 새벽 7시 같은 날
다시 수십 미터 허공 위 얼어붙은 빔을 타라 한다면
그가 옥황상제라도 면상을 걷어차 버리시길
잘 가시라 (저 하늘 위에 눈물샘자리, 부분) 

 

안전장치라곤 '안전제일' 표지뿐인 공사장. 슬픈 일은 드물지 않다.
의지가지 없는 철골 공사장의 수십 미터 허공 외빔 위를 번갈아가며 목숨걸고 번 돈.
이제 그 돈도 벌 길 없어진 이들의 한숨이 그대로 하늘 위에 눈물샘자리가 되어 별빛으로 반짝댄다.  

어둠에 깔린 가리봉 오거리
버스 정류장 앞 꽉 막힌 도로에
12인승 봉고차 한대가 와 선다
날일 마친 용역잡부들이 빼곡히 앉아
닭장차 안 죄수들처럼
무표정하게 창밖을 보고 있다

셋 앉는 좌석에 다섯씩 앉고
엔진룸 위에 한 줄이 더 앉았다
육십이 훨 넘은 노인네부터
서른 초반의 사내
이국의 푸른 눈동자까지
한결같이 머리칼이 누렇게 새었다

어떤 빼어난 은유와 상징으로도
그들을 그릴 수가 없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문) 

송경동의 시는 보통 '삶'을 그대로 옮기거나,
생각을 적는 일기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묘사가 치밀한 시는 드문 경우인데, 
송경동의 묘사 속에서 <어떤 빼어난 은유와 상징>도 먹히지 않는 경지를 만난다. 

말 그대로 기가 막히는 상황이랄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담긴
케테  콜비츠의 굵은 선이거나 고흐의 거친 터치로 그려낸 슬픔의 결정체를 보는 듯 하다. 

정말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시다. 

 

<고흐, 감자먹는 사람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9-27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7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0-09-28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의 시 감상은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 시집 참 오래도록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경동선배가 '창비'에서 낸 두번째 시집보다 이 첫번째 시집이 훨씬 더 좋더라구요. ^^

글샘 2010-09-28 08:41   좋아요 0 | URL
두 번째 시집은 긁어모은 시들이 좀 많죠. ^^
아무래도 첫~ 시집이 더 짠한 거 같습니다.
시 감상의 제 몫이 아니라, 읽는 사람 몫이죠. ㅎㅎ
 
경계에서 춤추다 - 서울-베를린, 언어의 집을 부수고 떠난 유랑자들
서경식 & 타와다 요오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고 나서도, 제목에 대하여 딱떨어지는 느낌이 생기지 않을 때,
번역서일 경우엔 원제목을 찾아보게 된다. 

이 책의 원제는 Soulu-Berurin tamatuki syokan 우리말로 옮기자면 서울-베를린 당구 편지, 정도. 
당구 이야기가 읽다 보면 나오니깐, 주거니 받거니 한 편지를 '타마츠키 쇼칸'으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는 표현이겠다.
한국어 표현이라면 핑퐁 편지 정도 되겠다.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은 멋지긴 한데, 내용과 딱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서경식과 타와다 요오꼬가 집, 이름, 여행, 놀이, 빛, 목소리, 번역, 순교, 고향, 동물 등의 주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의 왕복 서한을 모은 것이다.
서경식이 먼저 쓴 경우도 있고, 타와다 요오꼬가 먼저 쓴 것도 있는데, 자유롭게 주제를 펼치는 것으로 보아,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처럼 자유로운 형식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자신을 어떤 경계 안에 가두는 일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인생,
경계지음,
이런 전혀 달라보이는 두 어휘가 서로 패러프레이즈를 이루는 또다른 의미 구조를 갖게 되기도 한다.
두 사람은 그런 면을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그 경계지음의 불가피함과 경계지음에 대한 경계함을 자유롭게 풀어내기도 한다. 

우리의 이름만 해도, 한국식 이름이 가지는 독특함을 느낄 수 있다.
집에 대하여 <역사를 조망하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고 정리하면서,
이름은 적어도 디아스포라에게 있어서는 '역사가 할퀴어놓은 상처'같은 것이 된다고 한다.(56)
디아스포라에게 상처 아닌 것이 무엇 있으랴마는... 

도시에서 살아온 나에게도 고향이란 것은 없지만,
아버지가 태어나 살아온 시골, 지금은 충주댐 시퍼런 호수 수면 아래로 잠기어간 그 집이 나도 가끔 그립다.
큰길에서 가파른 비탈길 올라,
자그마한 샘터를 지나고,
한 십여 미터 올라가면, 손바닥만 하던 마당 위에 우뚝 솟은 담배 건조장과 초가 삼간으로 놓였던 그 집.
할아버지 환갑을 하고, 사촌 형 결혼식을 하던 그 청국장 삭는 내 담뿍 배인 옛날 집.
그 시골집에서 내려다보이던 한강물이 이젠 집을 삼켜버리고 말았지만, 왠지 삼십 년 전 그 집터가 강물 아래로 유지되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간혹 든다. 

이렇게 서울의 임시 거처에서 일년 반이나 살다보면 때로는 무심결에 '슬슬 돌아가야지' 하는 기분이 솟아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아도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돌아가고 싶은 곳, 돌아가야 할 장소 따위는 없다는 결론에 언제나처럼 이르게 됩니다. (204) 

이런 생각이 이 편지글들의 중심 주제를 꿰뚫는다. 
모든 것들은 닫힌 범주 안에서 정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경계에서는 끊임없이 활발한 경계허물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그런 생각.
프리모 레비가 <주기율표>의 '비활성 기체, 아르곤'에서 다룬 것처럼, 아르곤은 귀한 기체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귀하지 않으며, '움직임 없는 것'으로 이름붙여졌지만,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경계>의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이 왕복서한에서 정치적 경계로서의 국경뿐 아니라 문화나 언어의 경계 등 갖가지 경계들에 대해 ... 이야기를 나눈 것이라고 적고 있다. (233)
서경식은 사고방식이나 이야기 진행 방식이 세로 방향, 그것도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구멍을 파는(천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타와다 요오코는 그것을 가로방향으로 열어간다. '모으기'에 응하는 '흩어놓기'라고나 할까.
세로 대 가로, 모으기 대 흩어놓기라고 하는 어긋남 같은 것이 이 책이라고 서경식은 맺는 글에서 정리하고 있다. (238)

서경식의 비유는 신선하면서 그럴듯하다.
서경식 글을 읽는 맛은 이런 것이다. 미술 작품에서, 프리모 레비로, 두 형 이야기와 자이니치 이야기로 넘나드는 속에서 읽히는 진한 상념의 맛, 그 페이소스를 서경식의 글에서 늘 바라는 것이고, 그의 글에서는 어김없이 그 진한 에스프레소의 느낌을 혀끝과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 책을 번역한 이가 지나치게 직역에 가깝게 번역을 해 놓아서 나처럼 일본어에 좀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런 느낌도 나쁘지 않지만,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좀 낯선 번역이 아닐까 싶은 구석이 많은 점이 좀 아쉽다. 

예를 든다면,
~인지도 몰라 하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같은 경우, 한국어라면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도가 부드럽다.(27)
자기 작품을 집이라고 느끼는 작가도 있는 모양이고, 저도 그렇게 느끼는 일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그래도 완성되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니 자신의 책이라는 것은 그다지 편안한 집은 아니죠... 이런 구절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이해가 가지만, 온전한 번역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학생 정도가 과제로 일본어 문장을 거칠게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102쪽. 人在リヌ를 사람 있었네...로 번역해 놓았다. 물론 문맥으로야 사고가 나서 '머리가 깨지고, 한쪽 다리 잘린, 사람 있었다'...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지만, 올바른 번역은 '사람은 없고'... 정도가 아닐까 싶다. ヌ의 의미가 부정이니깐...
그리고 앞의 두 구절은 '두개골 후두부 깨지고, 한다리 잘려' 이렇게 피해상을 묘사한 것이고,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의 감상을 표현한 것이니,  
<기차와 부딪힌 그 사람은 사람몸뚱이 같지 않아보였다>는 의미로 '사람은 없고...' 정도가 더 알맞은 표현이 아닌가 싶다.
전공자가 아니니 이 정도만 의심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떠나든 머물든, 이란 책을 읽었기에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행적에 대한 개략적인 이야기는 읽었던 셈이다.
때로는 거꾸로 독서를 하는 재미도 있다. 예를 들면 소설이나 만화의 뒷권을 읽으면서, 뭔가 좀 이상한데? 이야기가 왜 이렇게 훌쩍 건너뛰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비로소 앞권을 들고서야 그 빈 칸을 메우는 재미를 느끼는 경우처럼...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걷기 시작한 은퇴한 기자출신 도보여행자.
환갑이 넘은 그가 그 먼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일단, 인간이 걸어서 몇백 킬로미터를 가는 일도 거의 없어진 시대에, 안락한 여행길도 아닌 길을,
그것도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지역을 통과해야하는 코스를...
단지, 옛날 비단길의 향수에 젖기 위해, 특히 카라반(대상 隊商)들의 행로를 걷기 위해 온몸으로 걷는 길을 선택하겠다는 그의 결정은 나처럼 나약한 사람으로서는 결코 같이 하기로 손들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용기에 과연 단순한 호기심만 작용했을까?
걷기 대장 김남희나 바람의 딸 한비야도 결코 이 길을 걸을 생각을 낼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이 책을 읽을수록 슬프게 든다.
그의 용기는 '프랑스'라는 강대국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는 남자였기에 이런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만일 그의 자리에 한국이라는 듣보잡 국가의 조그마한 일원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계속 든다. 

걷기란, 몸의 단련을 통한 영혼의 고양에 목적이 있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영혼은 신을 향해 하늘로 치솟는 경험.
이런 생활과 먼 도시인의 삶은, 바퀴들에게 영혼을 맡기고 '기심 機心'으로 가득차서 산다.
좀 더 긁어 모으는 데에 영혼을 파는 것은 아닌지... 
신을 향해야 할 영혼이 오로지 '물질'로 향하기만 하는 삶이 아닌지... 

작가의 걸음이 즐겁고 행복할 때는 독서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양떼 속에서 튀어나온 캉갈의 날카로운 이빨과 맞서거나,
트럭과 함께 계속 쫓아오는 시골 사나이들,
또는 말도 통하지 않는 군인들과 함께 어딘지도 모르는 골짜기로 들어갈 때,
이 책을 확 집어 던지고 싶은 생각이 열 번도 넘게 났다.
이 책이 2권, 3권까지 있는 것을 도서관에서 보고 왔지만,
아마도 나는 그 책들을 읽을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다.
그 책들이 저요~ 하고 손 들 용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개그콘서트에 '남하당'이라는 남자는 하늘 이야기가 나온다.
농담으로 점철되는 속에서 뼈가 든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슬람 권의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아직도 여성으로 사는 일의 지난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그럼 딸들은 대학에 안 가나요?
  계집아이들은 농사일을 해야죠.
그 아이들은 공부를 아예 안 시키나요?
  왜요. 일곱 살에서 열한 살까지 기본적인 교육을 받죠.
내가 사진을 찍자, 소녀들은 마치 악마가 자기들 앞에 나타나기라도 한 듯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숨었다. (230) 

정말 성폭행당하고 들어온 딸을 가문의 이름에 먹칠했다고 살해하고도 남을 분위기다.
개콘에서처럼, 여자들은 소를 돌봐야지~~하는 우스갯소리가 실생활인 곳이 아직도 많다.
세상은 참 웃긴 곳이다. 

그의 느린 걸음을 통하여 '탐욕으로 가득한 세상'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은퇴 후에도 '문턱 Seuil 쇠이유'이란 단체로 청소년 바로잡기에 힘쓰는 작가의 느리면서 탄탄한 걸음을 통해,
삶의 걸음을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비록 그의 여행기는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의 연속선처럼 보이지만,
그의 여행기에서 보여주는 변곡점들은 삶의 지난한 시간을 충분히 음미하며 걸어 가라는 충고를 주는 것이기도 했다. 

삶이 너무도 환멸스럽고, 공포스러울 때,
세상은 전체가 추악함 그 자체라고 여겨질 때,
다시 이 걷기이야기의 두번째 권을 집게될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고통을 통해서 삶의 고통을 이겨보기 위해서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