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신화 - 그림에 깃든 신화의 꿈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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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전문가 조지프 캠벨(신화와 인생, 신화의 이미지, 세계 신화 시리즈 등)은 신화를 이렇게 말한다.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고,
'인간의 거대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원형적인 꿈'이라고... 

이윤기가 그리스 신화를 읽어주었듯, 황경신의 자기 나름의 여성적 감각을 한껏 살리고,
아름다운 그림들을 듬뿍 집어 넣어 멋진 레시피로 훌륭한 요리법을 선보인다. 

우선 그가 잡은 아우트라인은 봄,여름,가을,겨울에 어울리는 단어들이었다.
봄에 사랑,
여름에 욕망,
가을에 슬픔,
겨울에 외로움...을 배당해 주었다. 일리가 있는 배당이다.
그리고, 각각의 계절과 상징에 또 어울리는 신화속 이야기들을 배치한다. 

봄의 사랑에 '아리아드네, 프시케, 프로크리스, 세멜레'를,
여름의 욕망에 '갈라테이아, 아프로디테, 다프네, 엔디미온'을,
가을의 슬픔에 '에우리디케, 페르세포네, 메두사, 메데이아'를
겨울의 외로움에 '미노타우루스, 에코, 판도라, 시빌레'를 배치했다. 

독특한 것은 성별을 구별하기 힘든 미노스의 황소를 빼고는 모두 여성들을 주된 신화의 해석 열쇠로 맞춘 것인데,
그가 일하고 있는 여성지의 패턴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라 하겠다. 

나리키소스를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지만, 에코를 전경화시키는 방식 말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숱한 이름들은 들었다가도 또 까먹고 만다.
그것이 신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읽을 때마다 신선한 느낌이랄까. 

어리석게도 상자를 열어 인간을 재앙으로 몰아 넣은 '판도라'같은 여성도 저자는 적극 변호한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정황에 대한 이해와, '희망'을 가두어 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해석.
희망이란 것은 바라고 바라는 마음,
모든 욕망이 흘러나오는 곳, 우리를 눈멀게 하는 마음의 감옥,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불행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희망이란 것은, 그곳에 그것이 있다, 정도로만 족한 것.(282)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야기 역시, 갈라테이아를 중심에 놓는다.
피그말리온의 끝없는 욕심. 신화는 해피엔딩이지만, 버나드 쇼의 희곡은 야릇한 맛을 느끼게 해 준다.(104)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이 아폴론을 쏘아 다프네를 쫓았다는 이야기, 월계수 이야기.
저자는 이것도 재미있게 해석한다. 

당신이 죽었다 깨나도 모르는 사실 하나.
그 시절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을 때, 나는 당신의 품속으로 곧장 뛰어들고 싶었지만, 나는 달아나기 시작했죠.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야말로 사랑을 잃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느꼈어요.
나는 순간 당신이 소유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야 했어요. 그래서 나무가 된 거죠.
만약 내가 그 날 순순히 당신에게 나를 맡겼다면,
저항을 포기하고 당신의 것이 되었다면,
당신은 나를 벌써 잊어버렸을 거예요.
당신은 나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잊을 수 없었던 거예요.(135) 

신화를 읽고, 또 그림도 찾아 보고,
그 신화 속 인물들에게로 마음을 투영하여 글을 쓰는 작가의 투명한 심사게 연못에 비치기라도 할 듯 하다. 

자식을 죽이는 걸로 잔인한 어머니로 일컬어지는 메데이아.
그도 변호해 준다. 

일생 사랑에 관해 배우지 못한 한 여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나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조건없는 사랑을 할 수 없었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여자.
마법으로 사랑을 사려고 했던 여자.
그리하여 죽는 날까지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여자.
그를 동정해 줄 수는 없나요.
당신에게는 아마 연민이라는 감정이 있겠죠.
누군가에게 연민과 동정을 받아본 적이 있을 테니까요.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그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이에요.(228) 

신화 속 여성들에 대한 변호는 신선하면서도 경쾌하다. 

990년을 살게 된 시빌레.
그는 한 가지 실수를 한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살게 해 달라는 부탁을 잊어버린 것.
사망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대, 시빌레의 비극은 남의 것이 아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기회주의자이며 도덕적 가치관은 없이 재주만 뛰어났던 다이달로스 이야기.
그래서 신화는 우리 사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오래 잊히지 않는다.
신화는 인생에 대한 교훈이나 대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삶에 선행된 경험이며,
인생에 대한 사소하고 거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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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275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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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금산(1986.7) 
그 여름의 끝(1990. 6)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92. 1 재간행)
호랑가시나무의 기억(1993. 5) 
정든 유곽에서(1996. 12)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2001. 11) - 이성복 아포리즘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2001. 12) - 이성복 산문집 

아, 입이 없는 것들(2003. 6)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2003. 10) 

오름 오르다(2004. 11) - 이성복 사진 에세이
타오르는 물(2009. 12) - 이성복 사진 에세이

대학교 2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계집애가, 이 시인 참 시 잘 쓴다~면서 보여준 시집이 '남해 금산'이었다.
이성복이란 시인이 누군지도 전혀 모르는 내게, 그 계집애는 시를 한두 편 읽어준 것도 같다.
아직도 시를 쓰고 있을까? 그 아이는? 

이성복의 시를 몇 권 읽기도 했지만, 이 시집을 읽고 나서, 이성복 글의 흐름을 정리해본 데 이유가 있다.
이 시집의 독특한 형식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궁금해 한 것이다.
아니, 먼젓번에 읽은 <달의 이마~>란 시집에서 이미 그런 의문을 가졌었지만... 게으른 나는 답을 못 찾았었다.
이제 보니... 이성복은, 시쓰기를 상당기간 접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한 작업들이 아포리즘, 산문집(뭐, 그게 그거니깐, ), 사진 에세이 2권(이것도 역시 그런 거니깐...)
그리고 이 시집과 달의 이마~라는 '시집'이라고 일컫기에 좀 애매한... 그런 책이다. 

우선 125편의 글이 적혀 있다. 시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다.
시라고 보기엔 좀 그런 이유는... 표제가 하나씩 붙어 있고, 넘버링도 함께 굴러가는데... 

어떤 시들은 서로 연결되어있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시들은 낱낱의 감상이 떠다니기도 한다. 

그래도, 문학에 있어서는 졸라 권위가 있는
(또는 권위적인)
문학과 지성사에서 찍어낸 이 책에 <이성복 시집>이라고 콱,
박아 놨으니, 시집이라 일컬어야겠다. 

5. 그 어둡고 추운, 푸른... 이런 시는 말의 맛이 참 좋다.
이성복의 시는 대체로 춥고 푸른 이미지를 많이 함축하는데, 이 시도 그렇다. 

이성복의 다른 시집 <그 여름의 끝>에 실렸던 '꽃피는 시절'과도 유사한 자연과 화자의 융합체로서의 감각을 그리는 시들도 꽤나 많다.
아포리즘과 산문과 '시'의 간격을 나는 모르겠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아포리즘'을 지향하며
'산문'적으로 씌었지만,
권위적인 출판사에 의하여 '시'라고 명명되었다.
그러니 이 책은 <시집>인 것이다. 

강정이 해설을 붙였는데, '오, 마라가 없었으면 없었을'을 읽어보면 아리까리, 알쏭달쏭, 애매모호하긴 마찬가지다.
마라, 를 '하지 마라'는 뜻으로도 보고, 그래서 '욕구의 원천'으로도 본다. 

내가 보기엔 그저 '마라(도)'를 부른 것 같은데 말이다. 뭐, 중의적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이성복이 <오름 오르다>를 쓴 것도 그렇고,
25번. 남국의 붉은 죽도화...가 만장굴 입구의 그 붉은 꽃무더기를 뜻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산굼부리 파헤쳐진 네 젖가슴
검은 돌, 검은 돌로 쌓은 네 어깨
검은 팔, 내 허리를 감는 네 검은 팔...
왜, 어떻게, 너는 이곳에 와서 꽃피었니?
초록 잎새 속에 뿌려진 핏방울,
내 살 속의 살, 살보다 연한 뼈(25. 남국의 붉은 죽도화, 부분) 

그리고 바로 '마라'가 연타석으로 등장하신다.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잎을 핏물 들게 하는가
마라, 생각해 보라...
배반 아닌 사랑은 없었다.
솟구치는 것은 토하는 것이었다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26.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부분) 

마라,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
가로등 불빛에 떠는 희부연 길 위에,
마라, 네가 어떻게 왜 여기에
대낮처럼 환한 갈치잡이 배 불빛, 불빛에...
마라, 네가 왜, 어떻게 여기에 (27.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 부분)

 

멸치잡이 갈치잡이 배들이 부옇게 뜬 마라도 앞바다... 갈치가 제주의 특산물임은 무식한 나도 안다. 

마라, 네 눈 속에 내가 뛴다
내 다리를 묶어 다오
내 부리가 네 눈 마구 파먹어도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마라(28. 내 몸 전체가 독이라면, 부분) 

지금 검은 산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은
흘러내린다 옷만 있고 몸뚱이가 없다
마라, 나는 너의 허리를 감는다
살아 있느냐고, 살아 있었느냐고 (29.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부분) 

바닷가 언덕 위 이름 모를 꽃들,
제 뺨을 잎새에 부비며 어두워진다
발 밑에 제 이름을 묻고, 그림자를
묻고, 몸 버리려 몸부림하는 꽃들,
눈먼 파도에 시달리다 물거품이 되는
꽃들, 마라, 눈을 떠라, 지금 네가 내
얼굴을 보지 않으면 난 시들고 말거야 (30. 몸 버리려 몸부림하는, 부분) 

밤인가, 캄캄한 몸인가, 마라
네 몸 여러 군데 뚫린 상처는
현무암 절벽의 해식 동굴, 실서안
꽃들과 불안한 날벌레들 술래잡기하는
네 눈은 터지기 직전의 양수막 같은
희멀건 경이, 마라, 지난밤 너는 어디서
잠들었던가 불빛에 시달리는 갈치잡이
배들은 네 거친 잠자리였던가 오, 파도치는
운명, 늙은 달의 장력에 끄달리며 오늘
밤 너는 얼마나 더 뒹굴어야 하는가(31. 밤인가, 캄캄한 몸인가, 부분) 

그렇다고, '마라'를 재발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저 발견의 기쁨에 몇 줄 베낀 것 뿐. 

그의 삶은 삼월의 바람에 지쳤다. 

삼월의 바람은 순하지 않다/
다만 삭은 발래집게의 풀어진
힘으로 우리를 이곳에 묶어두는
삶, 여러 번 살아도 다시 그리운, (41. 삼월의 바람은, 부분) 

시라고 하기엔 산문스럽고, 산문이라고 하기엔 시적 내용을 채운 아포리즘이 어울리는, 시인의 책. 

그러나, 지친 그에게, 삶은 '여러번 살아도 다시 그리운' 것이고,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다. 정확히 뭐라고 말할 순 없어도... 

아침마다 꽃들은 피어났어요//
밤새 옆구리가 결리거나/ 겨드랑이가 쑤시거나//
밤새 아픈 것들은/ 뜬눈으로 잠 한숨 못 자고//
아침엔 손을 뻗쳐/ 무심코 만져지는 것이//
무언가 아름다운 것인 줄 몰랐어요 (49, 무언가 아름다운 것, 전문) 

그의 앓는 어머니가 그렇게 하시듯,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들여다 보는' 나이.  

하루 종일 토하고 밤에는
잠 못 이루는 어머니,
찬물 속에 떠 있는 도토리묵처럼
말슴 없으시다가,
인제 겁 안 난다, 살 만큼 살았으니...... 

살얼음 낀 우물을 들여다보듯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들여다본다 (87. 찬물 속에 떠 있는 도토리묵처럼, 부분) 

'꽃피는 시절'을 떠나보낸 그는, 이제 국밥집 담벽 아래서, 그만, 얼굴 폭 가리고
울고 싶어진다. 

겨울 오후 국밥집 먼지 앉은
비닐 장판에 미끄러져 들어온
햇빛, 선팅한 유리 창살 격자를
죽은 듯이 눕혀 놓는다 아침부터
테니스 치고 땀에 쩔어 들어온
국밥집, 오늘 하루도 벌건 국밥에
썰어 넣은 대파같이 잘도 익었구나
소주 한 병에 여섯이 달라붙어,
구이집 마담의 무성한 거웃이나
재혼한 친구 마누라 탱탱한 궁뎅이
감탄하다가, 비틀거리며 국밥집
나올 때면 부끄러워라 국밥집 담벽
아래 바르르 떠는 참대나무 앞에서
그만, 얼굴 폭 가리고 울고 싶어라 (116. 국밥집 담벽 아래, 전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대에 '마흔'의 어정쩡함을 만난 그는 참으로 당황하였던 모양이다.
시라는 물건 안에서 쎅쓰가 나오고, 씨벌, 이런 곰삭지 않은 언어들이 난무하며 침튀기는 현장에서,
그는 견딜 용기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멀끔한 눈으로 보지 못하고, 뷰파인더를 거쳐서 본 그의 망막에 비친 것들은
시가 되어 안착하지 못하고, 활주로를 날며 비틀거리는 나비의 날갯짓마냥, 사진으로, 아포리즘으로 떠도는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성복의 시집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좋긴 한데, 쪼끔 부끄럽다고"


이게 그의 시집에 대한 변이 아닐까? 스스로의 시에 대한 변명.   

시인의 말, 로 맨 앞에 붙인 그의 몇 줄 글을 통하여, 그의 이런저런 심사를 엿볼 수 있다. 

  지난 세월 씌어진 것들을 하나의 플롯으로 
엮어 읽으면서, 해묵은 강박관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길은 돌아나올 수 없는 길. 시는
스스로 만든 뱀이니 어서 시의 독이 온몸에
퍼졌으면 좋겠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은
곤혹의 지지부진이다. 

자신의 시들을 돌아본다는 말이 한 구절.
자신의 시들이 '자동화'되고 있음을 본다는 말이 한 구절.
그러나 한번 들어선 이상 돌아노올 수 없는 길이란 말이 한 구절.
스스로 선택한 시의 독이 온몸에 퍼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말이 한 구절.
그러나... 곤혹스럽게도, 지지부진함을 털어놓은 아쉬움이 한 구절.
이렇다. 

다시, 그가 <꽃피는 시절>처럼 열렬한 시를 쓸 수는 없는 것일까?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이성복, 꽃피는 시절>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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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10-10-1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에 관한 페이퍼를 간만에 읽습니다.
나도 한때 열심히 시를 읽었는데, 요즘은 시에 관해서는 상실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사람들은 시를 잃어버렸고, 시인은 언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도종환 시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사회운동하지 않고 시를 열심히 썼다면 어땠을까 하며 여운을 남겼죠.
그때 사람들은 그 여운이 뜻하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이성복은 그 여운이 떠올릴 만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근데 그 사람은 자동화된 시의 플롯을 보면서 도종환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서 여운을 남기고 있군요.

시에 대한 치열함, 현실에 대한 치열함.. 언어는 곧 시이며 시는 곧 언어인 물아일체의 시인을 만나본지가
참으로 오래된 것 같아요. 백석이 그랬고 김수영이 그랬고 이전의 박노해가 그랬었죠.
시의 문제만이 아니라 문학 전반의 문제가 된 것 같아요.
우리의 문학은 더 이상 힘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조정래 선생의 <허수아비춤>이 참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고..
주저리주저리~~

글샘 2010-10-12 23:14   좋아요 0 | URL
삶의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죠.
허술하게 입고, 담뱃곽은 공유하면서 언제든 만나면 한잔, 하면서 세상의 부패에 소금을 뿌리듯, 비판의 침을 튀기던 시대와...
깔끔한 옷을 입고 담배는 끊었으며, 반갑게 만나도 차때문에, 하면서 가볍게 원두 커피나 한잔 하면서, 세련되게 시대를 잊어버리는 삶의 문제 말입니다.

요즘 시나 소설들 보면, 딱, 그래요.
번들거리는 자동차, 멋드러진 가을 코트에 손에 들린 건 국밥보다 훨 비싼 별다방, 콩다방 커피잔 하나... 잔치는 끝났을지도...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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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징가가 말한 바,
교회는 ‘생활의 모든 소요를 지배하고 모든 것을 고요와 질서로 감싸는’ 중세사회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소요를 생활로부터 충당하고, 모든 것에 시비와 무질서를 떠메는' 현대사회의 한국 교회의 특징적 돌출에 대하여 한 마디로 정리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아니, 한국이란 사회의 현대는 한 마디로 정리될 수 없는 <문명의 모순>, <이념의 모순>, <권력의 모순>, <학자의 모순>, <경제의 모순>등이 총체적으로 총망라된 곳이기때문에, 모순의 도가니 내지는 모순의 샐러드 보울이라 할 이 사회에서,
교회란 것 하나라고 '고요와 질서'에 봉사하고, '생활의 모든 소요를 지배'하는 위치에 놓이기를 바랄 수는 없으리라.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와 아줌마가 있다는 농담도 있고,
어떤 세상엔 남자와 여자와 군바리가 있다는 농담도 있다.
세상의 교회에는 가톨릭과 개신교와 '한국 교회'가 있다는 말도 들었을 정도로 한국 교회의 발전상은 독특함이 넘친다.
은마 아파트 상가 건물 하나에 십여 개의 교회가 있었다는 전설로부터, 일요일이면 노선버스의 노선을 재획정할 정도로 인파의 흐름이 큰 '순복음 교회'같은 거대 교회들의 소식도 그렇다. 

한국 교회엔 '믿음'은 없고 '신도'만 득실거리는 건 아닐까?
'예수'는 없고 '예수 믿쓥니다'하는 환자들만 바글거리는 건 아닐까?
왜 예수님의 후예를 자처하면서, 십자가진 면류관의 자리에는 서지 않으려 하고, '돈'과 '권력'이 선 자리에는 출첵 100%를 자랑하는 것일까? 
그리고, 한국 교회를 다니는 일은 왜 그다지도 힘들어서 못다니게 하는가... 

이런 의문을 가슴에 품고 있을 수는 있어도, 그걸 입밖에 꺼내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가 발화자를 지목하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이런 외침을 내지를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헌법의 풍경'과 '불멸의 신성가족'같은 서적으로 유명한 법학자 김두식이 이번엔, 예수의 제자로서 바라본 '교회 속 한국'과 '한국 속 교회'를 적은 책이다.
외부자로서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내부자로서 교회를 까발기는 것은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드는 것과 같아서,
이런 책자는 10년 대한에 단비처럼 여겨진다.
내가 교회 관련 서적에 무심하여 덜 찾아본 것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종교, 특기 기독교 교회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불경스런 일이었으므로, 더욱 신선했던 것이리라. 

김두식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은 부분과, 쉽지 않은 부분이 섞여 있다.
특히 4,5장처럼 중세의 역사를 거론하는 부분은 성경은 여러 번 읽었지만(문학 서적 독서와 유사한 것이었다.) 교회 역사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나같은 얕은 독자에겐 완독이 가능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교회라는 공동체가 한국에서 주는 '심리적 위로'와 '경제적 위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피지 못하는 나로서는 교회에 대한 섣부른 비판은 하기 쉬워도, 내막을 자세히 알기는 어려운 부분이었기에 작가의 '고해성사'와도 같은, 또는 애정으로 가득하여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걱정하는 이런 글을 읽는 일은 한 마디로 황송한 일이었다. 

더 높이 올라가야 많이 베풀 수 있다는 '한국 교회'의 모순.
20년 전 국가 권력자에게 복종하라던 교회가 '사학법', '국보법' 투쟁의 일선에 서게 된 모순.
정말 시민을 사랑하여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서'를 올리신 어느 시장님의 기도문(154)
동성애자에게 돌을 던지는 데 열성적인 한국 교회.
이런 감동의 스토리가 짬뽕되어 덕지덕지 슬러그 덩어리 진 곳이 그곳인데,
자신의 구제 사역의 업무를 <보험 회사>에 넘겨준 교회에 신도들은 모이지 않는다는데,
한국의 교회는 오늘도 번창 일로에 있으니, 진정한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나같은 교회 인근에 몇 번 발걸음을 떼려다 만 인간이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소일거리지만,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예수님의 눈물을 아직도 어루만지며 나날을 기도하는 이에게 이런 책은 한국 교회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주는 희망봉이 될 지도 모르겠다.
교회에서 나올 수도 없고, 주일마다 빠질 수도 없는 딜레마에서 자신을 구원하여주는 책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기총에서 이 책을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다는 소문을 못 들은 걸로 보아, 그 정도로는 가치없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외부자인 나로서야 예수님의 사랑을 알 리 없지만,
교무실 창틀 너머에서 바람타고 넘어드는 금목서의 은은한 향 속에서도 예수님 사랑하라는 목소리는 들을 수 있을 듯 하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나 사찰에는 다니지 않지만,
오늘 하루도 아이들을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라는 예수님 말씀을 듣는 듯 하다.
아이들을 예수로 보고, 가장 낮아보이는 넘, 가장 보기 싫은 넘을 예수님 보듯 하라던 말씀을 기억하는 일로도 나는 어느 정도 예수님의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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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첫 글자를 모으면 헬라어러 물고기를 뜻하는 '익투스'가 되었더라는 이야기는 물고기가 왜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재미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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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전문>

떠나는 글…저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여기저기 몸에서 경계경보가 울렸습니다.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배터리가 방전된 거래요.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추석 전주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 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렸고 또 한 번의 절망적인 선고였어요.

그리고 또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더 이상 입원에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마을 가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남편이 119신고, 추적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또 용서를 구합니다.

너무 착한 남편,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그 동안 저를 신뢰해 주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2010.10.7

&

인생에, 완전이란 없다.
흔들려본 사람들은 안다.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 때는 흔들린다.

사람들은, 그가 말한 <행복>의 사전적 의미에 집착하는 모양인가?
그가 말한 <행복>은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세상 살이에서 '행복이나 불행 따위' 생각하며 살지 말아야 한다.
다만,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의 중량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 

암벽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無明)의 벌레처럼 무명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벼랑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 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 <오세영, 등산, 전문>

발 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인,
그런 것이 등산인 것이다. 

결코 쉬지 않는
빛을 모르는 벌레처럼
더듬으며
조금씩 기어올라가는 등산. 

호텔에서 완전 건강한 남편이 죽음에 이르게 도와 주었고,
그 또한 "나 이제 세상을 버리려네. 그대 없음은 삶의 의미가 없는 것이니..."
이렇게 따라 여행을 떠났음은,
그들이 행복하게 떠났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같이 죽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마도, 어쩌면... 그 남편되는 이는,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지...
안도현의, 겨울 강가에서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 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전문>
 

 

그놈의 눈발이
애처롭게도,
자꾸 제 품에 뛰어들어 사라지는 걸 보고,
피해보려고 왜 노력하지 않았겠는가.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큰 용기를 낸다. 

눈을 제 몸으로 받기로 작정하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하는 강물의 포용력, 그 큰 사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을 이렇게 찬양하면, 그것도 죄가 되는 걸까?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죽음을 이해하고 싶고,
그들의 마지막 길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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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0-0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글샘님!
우리도 오늘 독서모임 하면서 이 부부 이야기를 많이들 했어요.
남겨진 자녀들은 어떨지 몰라도, 두분은 행복한 마무리를 했을거라고...비난하지 말자고 했죠.
살아서 추레해진 육신의 고통을 감당하는 건 정말 행복하지 않은 일일테니까요.

글샘 2010-10-11 13:17   좋아요 0 | URL
너무 형식에 치우친 '예법'을 강요당한 국가에 살다보니, 별걸로 다 시시비비를 하더라구요.
초상 중에 호상은 없고 마무리에 행복한 건 없겠지만, 본인의 의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lanca 2010-10-08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시려요. 안도현의 시가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 이 구절이 참. 자살이라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글샘님 말씀처럼 그냥 그렇게 또 아들이 얘기한 것처럼 그 분들이 생전에 했던 얘기들을 있는 그래도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어요.

글샘 2010-10-11 13:20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저도 가슴이 시려서 몇 자 남긴 겁니다.
마침 아이들 가르치는데, 이 시가 확 달려들더라구요.
생전에 했던 이야기를 잘은 모르지만,
행복 전도사라는 말에 너무 초점을 맞추진 않았음 좋겠더란 생각입니다.

혜덕화 2010-10-0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0가지의 고통에 시달려보지 않아도,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고통이 느껴져 마음 아픕니다.
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_()()()_

글샘 2010-10-11 13:21   좋아요 0 | URL
700가지 고통이란 말에도 매달릴 거 없겠지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부부의 정이 고통보다 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주말에 명복을 많이 빌었습니다.

gimssim 2010-10-09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분의 강의를 참 좋아했어요.
어렵지 않고 자신감 있고, 무엇보다도 재미있었지요.
그런데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그의 고통을 짐작할 길이 없지만 그래도 안타깝습니다.
고 장영희 교수와의 죽음과 대비되어 보여서...

글샘 2010-10-11 13:22   좋아요 0 | URL
강의야 원래 자신감있고 재밌게 하는 거구요.
코미디언들이 행복할 거라 생각하는 거나, 행복전도사란 사람이 행복할 거라 생각하는 거나...
장영희 교수님의 글을 또 액면대로 믿어서는 안되지 않을까요?
얼마나 속으로 아프고 시린 날들이었을까... 그래서 긍정하는 그이의 글들이 더욱 빛나는 것이니 말입니다.
살수록... 남의 말 함부로 해선 안되겠더라구요.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 - Tears in the Congo
정은진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정은진, 포토저널리스트...
난 그에게 한 가지 사과할 것이 있다.
그의 전작이었던 '카불의 사진사'를 두고 혹평을 했던 일이있었는데, 뭐, 종이가 아깝다고 욕을 막 했더랬다. 

이 책을 읽노라니, 아프가니스탄이나 콩고나 사진을 찍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작가 자신이 아프간의 사진 작업이 훨씬 쉽다고 했으니, 나의 혹평에도 수긍을 해 줄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카불에서 콩고로 옮겨간 그의 글들은 주제 면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고, 사진도 감정이 짙어졌다.
사진 속에서 사진가의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라이온 킹의 대륙, 아프리카.
라이온 킹의 후예들은 마치 초원위의 얼룩말들이나 국립공원 속의 동물들로 남은 지루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 대륙의 생생한 삶을 잃어버리고,
그 아름다운 원색의 옷들을 상실한 채로...
찢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르완다의 인접국, 콩고 민주공화국. 

그 여성들의 삶은 죽음만도 못한 것이었다. 

피스툴라 수술.
전쟁으로 인한 강간 뿐 아니라, 성기 훼손에 이르는
이런 무자비한 경험을 겪은 여성들의 삶에 바치는 정은진의 사진이 따뜻하다.
그들의 검은 피부 아래로 흐르는 따뜻한 피는 흰 피부의 그들과 같은 것인데,
난민들에 대한 지원 역시 부족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국제 사회란 것 순 뻥인 모양이다. 

정은진이 콩고를 통해 상도 받고, 더 깊은 사진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렇지만, 남자들도 험해서 고개를 젓는 동네를 오가는 그에게 우선은 안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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