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잉복 천재시인 이언진의 글향기
강순애 외 지음 / 아세아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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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진의 우상잉복의 해람편과 간찰(편지) 몇 편을 발견하여, 학자들이 논문을 써 모은 책이다. 

강순애의 논문은 2007년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한글, 한자 병기를 하지 않고 한자만으로 표기한 부분이 많다.
학자들의 잰체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책의 제목도 좀 우습다. 

이 책은 결코, 이언진의 글향기를 느낄 수 없는 책이다. 

차라리, 처음 부분에 이언진의 해람편과 간찰을 풀이하고, 그 뒤에 좀 부드럽게 그 글의 의미를 해석해 주고, 이 글의 의의를 적어 두었더라면 나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불친절하고 딱딱한 책이다. 학자로서 우상잉복이란 귀한 책을 얻어 흥분된 마음이야 이해가 가지 않는 바 아니나,
그럴수록 책으로 엮을 때는 독자를 생각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박희병의 '저항과 아만'에서 독자는 진정한 '글향기'를 느낄 수 있다.
좋은 학자를 만나는 일의 행복함을 그런 책에서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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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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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편견으로, 사서라고 하면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아주 우아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사서가 되어 책 속에 풍덩 빠져 들고 싶은 생각도 많았더랬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도서관을 이용할 때 본 사서들의 모습은 내가 바라던 우아한 직업이 아니었던 것 같다
늘 무슨 일로 바쁘게 오가고, 컴퓨터로 작업을 하며, 이런저런 분류와 지시들로 해골이 복잡해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도서관이 지역 문화 센터 역할을 떠맡게 되면, 온갖 행사 준비로 바쁘게 될 것이고,
우리 나라 도서관은 취업 준비생들의 고시원 내지는 중고생들의 시험 준비실의 역할을 하는 열람실도 많으므로 도서관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 같기도 했다. 

책을 읽는 일이 곧 공부다.
공부란 것은,
어떤 단어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고, 
책이란 것은,
그 단어에 얽힌 생각과 사건들을 주절거리고 늘어놓는 것이니깐,
책을 제대로 읽을 줄 알면 공부를 잘 하게 된다. 

그러니, 도서관에서 사서가 해야할 최고 우선의 사업은 '책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내가 본 사서들의 삶은 그것과는 동떨어진 사업이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로 우연히 발을 들여놓은 도서관에서 좌충우돌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건에 부딪히기도 하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적은 책이다. 

유쾌한 희극을 한 편 읽은 것 같은 느낌이면서도, 책에 관한,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이니 재미도 있다.
구연동화를 해본 적도 없는 저자가 아이들 앞에서 책 읽어주기를 했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다.
무엇이든 부딪쳐보기 전까지는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삶의 경험인데, 모든 일은 예상되로 굴러가지 않으며 그러므로 더욱 충실히 지금을 사는 일이 중요하다. 

어떤 직업이든,
이러이러한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쉽게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 일이다. 

"난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야. 시간도 없고."
"사서인데도요?"
"사서인데도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대화다.
사람들 중 자기 직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프로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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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5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6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10-1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서라서 책을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한답니다^*^
도서관학을 전공하면서부터 열심히 읽었어요. 이 정도면 준 프로?
이 책 읽다가 중간에 멈췄는데 님 글 읽으니 다시 읽고 싶네요.

언제까지 혼자 떠들어야 되는건지....
요즘 이곳은 시즌이더라구요.

글샘 2010-10-16 22:01   좋아요 0 | URL
세실님 열독하시는 거야 제가 알죠. ㅎㅎ
책을 열심히 읽는 사서 샘보다 프로가 어디있겠습니까. ^^
이 책은 뭐 얻는 거는 없어도 재미는 있더군요.
실망이 많았지만... 뭐, 어떤 직업이든 그 안에서 보면 좀 우스운 광경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즌이라뇨???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
최수연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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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교육청과 시민도서관 등에서 협동하여 '원 북 원 부산 스타트'라는 독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해마다 한 권의 책을 정하고, 그 책 읽기를 홍보하는 것으로, 몇 년 전 '책을 읽자' 캠페인을 벌이던 느낌표! 에서 삘을 받은 프로그램 같아 보이는데, 해마다 가을이면 그 독후감 대회가 열린다. 

오늘 그 본선 심사가 열려서 고딩들의 독후감 170편을 읽고 덤으로 책까지 얻어서 읽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만, 도서관 사서 샘들이 부탁한다고 이쁜 목소리로 전화를 하면 나는 뿌리치질 못한다. 그래서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시민도서관에서 부탁하는 심사는 대충 참석하는 편이다. 리뷰 읽는 즐거움도 한몫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치만 수고비도 얼마 안 주면서 가혹하게 부려먹는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ㅠㅜ)

170명의 고딩들이 쓴 독후감을 읽노라니, 읽지 않은 책의 줄거리나 세부까지 머릿속에 콕콕 박혔다.
어쩌면, 감상문들도 내 뇌리에 흐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감천동은 어렸을 적, 친척들이 살고 있어서 자주 갔던 동네다.
지금은 이쁘게 지붕을 색칠하여 원경 사진을 찍으러 전국에서 몰려드는 동네이기도 하지만,
그 동네의 살림 살이는 여전히 열악하다.

  

이런 동네의 특징은,
정상 부모는 맞벌이하느라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많은 부모는 싸움 끝에 정상인 어머니는 가출하고 비정상 아버지가 아이에게 폭행을 일삼는 동네이며,
그 끝은 조손가정에서 희망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이 가득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이 동네에서 산너머 학교인 토성 중학교(현 경남 중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그 동네 사정을 잘 안다. 

책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최수연 씨는 서른이 좀 넘은 나이에 수녀가 되는 대신에 가난한 사람들의 옆에서 살기로 작정을 하고 근거지도 아닌 부산의 감천동이란 산동네에 쳐들어온다.
그래서 우여곡절끝에 험악한 동네에 일곱 평(휴, 일반 교실이 스무 평이다.) 짜리 공부방을 열었는데,
불행중 다행인지, 다행중 불행인지 아이들은 미어터지고, 아이들이 들이닥치면서 고민과 즐거움은 아우성을 친다.
물론 공부방을 통해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만 적었으리란 이해는 하지만, 글의 틈새에서 놓쳐버린 아쉬움이 가득한 최수연 님의 마음을 교사인 나는 놓칠 수 없다.
원래 재미있는 척 너스레를 떨어도,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느낄 수 있는 직감이란 게 있는 법이다.
아마도... 저자가 그간 놓쳐버린 아이들, 더 마음써주지 못해 마음 터지게 아픈 아이들 이야기를 생각해서 쓰기 시작하면 공부방 문 닫아야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범위가 넓어져 동네 아줌마 아저씨, 노인들도 학생이 되는 곳,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 되는 곳으로 성장한 공부방.
한방 진료도 넣고, 내킨 김에 주례도 서는 처녀 원장님. ^^
천사가 따로 없지만,
역시 천사의 존재에 필수적인 것은 <지옥도>다.
지옥이 없는 곳에 천사의 존재는 빛나지 않는 법.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으면서,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교사가 되고 싶어하던 아이들이, 과연 이런 훌륭한 사랑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을 만났던 것인데,
나의 대학 시절, 그런 고민들로 대학원 공부를 접고 졸업 후 바로 발령을 받았던 것을 상기하게 된다.
치열하게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며,
방학 중에도 아이들 생각에 뒤척거리게 되고,
늘상 아이들에 둘러싸여 살았고,
개학하는 날이면 아이들 만날 꿈에 잠도 못 이루던 교사 시절을 시작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는 나는...
이제 22년차 교사가 되어가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초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인지...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처음의 그 마음을 지니고 사는 일이라는데...  

집안 어렵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그렇고 그런 사정으로 맨날 지각하고, 도망가고, 사고 뭉치가 되어버린 아이들을 벌레 보듯 보고 있는 교사가 되어버린 나를 응시하는 일은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두렵다.
이런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나를 바라보는 일이...
열심히 일하여 땀방울 흘리는 일은,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가혹하게 몰아치는 일이 아닌가 하는 반성에 마음이 쓰려 술잔을 몇 잔 삼킨다. 

아이들의 편이 되지 않는 교사는 교사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게 내 초심이었는데,
과연, 나는 아이들의 편이 되는 교사 생활을 하고 있기나 한 것인지... 

내일은, 오늘 심사비 포함하여, 후원금으로 몇 푼 기부를 하고 차근차근 생각해 볼 일이다.

 

혹시 이 글 보신 분이라면,  

요기로 후원금 좀 보내주시길...
천사에게 후원금 보내주시면, 복이 돌아올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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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아만 - <호동거실> 평설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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虞裳(우상) 이언진. 고전 문학에서도 워낙 다뤄지지 않는 시인이라 아는 이가 흔치 않은 이다.
그렇지만, 그의 행적을 읽어 보면, 조선의 한계가 빤히 보여 슬프다.
박지원은 문제적 지식인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1의 벌열에 속해있던 사람이고,
이언진은 역관에 불과한 슬픈 지식인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한어 역관 이 언진의 활약상(허경진 연세대 교수 설명)
http://cafe.daum.net/philrand/Kpu6/818?docid=Ov5F|Kpu6|818|20091114113036&srchid=IIMB6ASA200 

박지원 해설로 낯익던 박희병 선생이 이번엔 이언진 옹호에 나섰다.
170수가 남아있다는 <동호거실> 이란 문집을 풀이한 것이다.
도대체 이언진의 시들이 왜 그런 문제작이었는지를 상세히 풀고 있다. 

<유교적 질서의 공고화>를 국가 경륜의 모토로 삼았던 조선 왕조.
이 질서에 정면으로 도낏날을 세워들고 '당랑거철'의 모험을 감행한 화제인이 바로 이언진이란다. 

이 책은 1. 동호거실을 읽는 법, 2. 동호거실 읽기, 3. 동호거실을 읽고... 이렇게 3부로 이뤄져 있다.
해제를 1부에 실어, 이언진의 글의 포인트를 감상하기 좋게 풀어 주었고,
본문인 2부에서는 170편의 6언 시들을 찬찬히 풀이하고 있으며,
독후감인 3부에서는 간단한 정리의 글을 남기고 있다. 깔끔한 책이다. 

이전의 5언과 7언의 형식에 대항하여 6언의 시체를 사용한 시학적, 미학적 형식의 파괴와 전복, 이탈을 보여준 그의 시들은
한시에는 쓰지 않았던 백화어(구어체)를 도입하였고, 모순되는 양면의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형식적 내용적 틀을 마련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호동'이란 '누항'과 마찬가지로 '골목길'이란 뜻인데, 우매한 백성들이 사는 곳을 뜻한다.
동시대 서얼들도 자신들은 지식인이며, '누항'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호동'을 자신의 호로 삼아버린 이언진. 

13. 한 그릇 밥 먹고 배 부르면 쉬고/ 큰길 가에서 웅크리고 자는/ 저 거지아이 승지보고 불쌍타 하네/ 눈 내린 새벽 매일 출근한다고 

14. 머리 허연 저 늙은 귀인/ 이불 끼고 누웠다 이불 끼고 앉았다/ 5대손 생계를 걱정하누나/ 밭도 적고 집도 작다며 

15. 조정에서 누차 불러도 응하지 않는 건/ 범 안고 자고 뱀 품고 달리듯 위태하기 때문/ 용퇴하면 화 적고 복 많을 텐데/ 뭣 땜에 사주 보고 점을 치는지 

이런 시들을 통하여 누항의 평민들의 삶 속에도 의미가 있음을 드러내고,
출세에 목을 매단 이들의 고난한 삶, 그들의 '배드-빙'을 풍자하고 있다.
불교적이고 도가적이다. 색즉시공이며, 텅 빈 것이 가득 찬 것임을 너희는 왜 모르는가... 이렇게. 

21. 욕하거나 깔보면 받지 않으니/ 거지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대의에 맞게 훔쳐 공평히 나누니/ 도둑에게도 어짊과 지혜가 있다. 

'호동'의 인물을 자처하면서도, 오연함과 비굴종의 모습으로 고개는 오히려 꼿꼿하다.
사대부 위정자에 대하여 오히려 혹독한 야유를 보내는 기개는 사뭇 서릿발과 같다. 

장자와 이탁오를 본받은 계열로도 보이고, 부처와 노자를 본딴 것으로도 보인다.
암튼, 조선의 시대 정신인 '유교'에는 딴지를 걸고, 야유를 퍼붓는 이언진의 시는 아주 보는 이가 다 위태위태하다. 

26. 자기 집의 닭과 오리는/ 살진 놈 마른 놈 훤히 알면서/ 원숭이 같은 이 마음은/ 이리저리 날뛰어도 내버려 두네

'마음'에 관심을 돌리는 그의 모습은 양명학 쪽과도 긴밀하다고 한다. 

30. 떵떵거리는 고관대작들/ 재주며 팔자랑 뭔 상관이람/ 길 위의 행상과 거간꾼들은/ 칭찬과 비난에 개의치 않네. 

기존의 틀에 대한 전복이며, 관습에서 이탈하는 그의 생각들은 시원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맛을 느끼게 한다.
이러니, 다 불지르려 했을 밖에...
스물 일곱에 죽은 그가 태우려 했던,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던 글들...
남은 글들만으로도 이렇게 시린 시대 정신을 느낄 수 있는데, 전체를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 나는 나를 벗으로 삼을 뿐, 남은 벗으로 삼지 않는다. 我友我不友人 

오만한 그는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펼친다. 요절하고 만 것도 그런 상황과 관계 깊으리라. 

45. 갑자기 이런 생각 떠오르누나/ 내 눈을 남에게 줘 버렸다는/ 눈에 정신이 있다면 이리 하소연하리/ "내 눈 찾아 내 몸에 되돌려 주오!" 

내 눈 찾기의 긴 여정은 현대시의 김수영에게로 이어진다는 박희병의 해석은 탁월하다. 
박희병이 들이미는 김수영의 "孔子의 生活難"도 함께 읽음직하다. 

공자(孔子)의 생활난(生活難)/    김수영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作戰)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이태리어(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이 시의 중심 축은 4연에 있다.
이제 나는 세상을 바로 보겠다.
이제까지는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무엇을 잘못 보았는가.
1연에서, 꽃은 열매와 공존할 수 없다.
그렇지만, 깨달은 내가 바라본 어리석은 '너'는 모순된 상황을 두고 장난을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2연에서, 퍼져나가는 발전을 꾀하려 하였지만 그 작전이 늘 성공한다고 보기에는 참으로 어렵더란 회한과,
3연에서, 반란성은 '다르게 보기', '내 눈 찾기'의 과정의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르기 쉽고 먹기 쉬운 국수를 이태리어로 마카로니라고 보는... 제 눈의 반란성을 인식하기.
4연에서, 이제 어리석음과 회한과 반성적 인식을 통하여 <세상 이치의 생리와 한계를 명석>하게 보고자 한다.
그리고,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으니, 이제 죽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적 작품의 제목이 '공자의 생활난'이다. 김훈 류로 말하자면, "밥벌이의 지겨움을 공자도 겪었네" 이런 걸까?
공자도 살기가 어렵다는데, 김수영도 먹고 살기 어려웠으리라.
그런데도 맨날 사물을 '반란적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김훈 류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누리는 쪽과도 더 멀어진다. 

그렇지만, 먹고 사는 데 얽매이진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에 나오는 것으로 나는 읽겠다.
공자도 먹고 살기 힘들었다지만,
그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으니...
김수영도, 통크게 허세를 부려 보는 것이다. 

나도 이제 바로 보겠다. <진리와 한계를 명석하게 보겠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러고 나면, 죽어도 좋겠다. 먹고 사는, 생활난에 죽도록 집착하진 않겠다>... 이런 것이겠다.  

박희병이, 호동 이언진의 글에다가 <김수영의 생활난>을 집어넣은 의도가 이런 것 아닐까? 혼자서 머리를 굴려 본다. 

51. 콧구멍 치들고 주인 뒤를 졸졸 따르니/ 종이라 불리고 하인이라 불리지/ 천한 이름 뒤집어 쓰고도 고치려 않으니/ 정말 노예군 정말 노예야. 

62. 추한 종놈 온다, 추한 종놈 온다./ 아이들 짱돌 줍고 흙을 던지네/ 내 들으니 참 괴이한 일도 있지/ 길에 떨어진 칼을 주인에게 돌려주다니. 

이런 시들은 노예의 굴종성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는데, 그 과격함으로 삭제를 당한다. 
길에 떨어진 칼을 주인에게 돌려주다니... 븅신~ 헐~ 그럼, 어쩌라고... 그 칼로 살주라도 하란 말씀?

78. 밥은 하루 지나면 쉬었는가 싶고/ 옷은 해 지나면 낡았는가 싶지/ 문장가의 난숙한 문투/ 한당 이래 어찌 안 썩을 리 있나 

그의 호연지기는 '우상'이란 호에서도 드러나듯이, 순임금(성이 虞)의 치맛폭(裳) 오지랖 넓게 세상을 평정하겠다는 포부가 얼마나 큰가.
조선 왕조가 지식인 통제 수단으로 삼은 과거가 '과거체'로 불릴 정도로 치졸한 공부였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은 만나기 어렵다. 예나 오늘날이나 그릇이 크면, 시샘을 받아 깨지기 쉽다.

82. 재주는 관한경 같으면 됐지/ 사마천, 반고, 두보, 이백이 될 건 없지./ 글은 수호전을 읽으면됐지/ 시경, 서경, 중용, 대학을 읽을 건 없지

관한경은 원나라 문학가이며, 수호전도 백화문학의 하나로 통속문학이다.
이제까지 '고전'으로 틀잡혀온 지적 패러다임에 정식 도전하는 불온한 유교 비판이 드러난다.  

또한 우상의 많은 시들에서 삶의 정취와 운치를 느낄 수 있다.
'호동'이란 시정, 누항에서 캐치한 스틸 컷들을 읽고 있으면,
그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순간을 재치있게 포착하는 멋진 사진가가 될 수도 있었겠고,
그의 사진과 어울린 단문들은 멋진 포토 에세이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시대를 잘못타고 난 우상 이언진에게 한 잔 권한다.
That's too bad!! 

126. 자리에 앉혀서는 안될 사람은/ 좋은 옷 입은 하얀 얼굴의 명사/ 입에 올려서는 안될 셋은/ 규방, 저자, 조정 

벌열 계층과 규방의 비밀, 이윤의 탐닉, 조정의 부패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한 시로 읽는다. 

132. 천하엔 본래 일이 없는데/ 유식한 이가 만들어 내지/ 책을 태워 버린 건 정말 큰 안목/ 그 죄도 으뜸이요, 그 공도 으뜸 

146. 어디서 문신 새기는 사람을 구해/ 얼굴에 이런 죄명 써 넣을는지/ 가짜 글, 거짓 학문으로/ 세상속이고 이름을 도적질한 자! 

곡학하세하고 혹세무민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차가운 비판의 글발은 서늘하다. 

154. 구양수는 제 서재를 아름다운 배라 했고/ 육유는 책 둥지라 이름했지/ 비록 기문 같은 건 안 지었지만/ 호동이라는 내 집 이름 둘과 닮았네

'아름다운 배'와 '책 둥지'와 필적할 만한 자신의 서재에 대한 자부심, <호동>
시장통 골목길, 거기에 삶의 냄새가 담겼고, 진리를 발견하는 제 눈을 바라보는 진리에 대한 우월감이 느껴진다.
김종삼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가 떠오르는 구절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전문) 

시란, 진리란, '남대문 시장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고생하면서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 넘치게 사는 그런 것'이라고. 

169.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빠져 나올 어떤 방법도 없네/ 팔십 되면 모두 죽여 버리니./백성도 임금도 똑같은 신세 

왕조 시대에 이런 시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평등 세계의 본질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에서 왕의 모가지가 필요했다.
백성도 임금도 똑같은 신세임을,같은 시대, 프랑스 혁명기에 함께 살았던 이언진(1740-66)의 허파에도 그 자유와 혁명의 공기가 감지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희명의 일촌평은 <조선문학사 유일의 괴물>이었다.
유교와 신분제에 기초한 조선과 정면에서 마주섰을 뿐만 아니라, 전망까지도 모색할 수 있었던 그의 시를 탐색하는 이런 책을 만나는 일은, 우상 이언진에게나, 박희병 선생에게나, 나에게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우상 이언진이 가슴 터지게 담아 둘 수밖에 없었던 시들을, 급기야 불지를 뻔했던 시들을 읽는 일들은 또한 살떨리게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발언의 자유가 없었던 시대를 살았고,
아직도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있는 개인으로서 그렇다. 

그의 '저항'과 '아만(자부심)'으로 가득한 시집의 해설을 읽는 일... 즐거움과 두려움의 공동경비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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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곳으로부터 - 지하철 1호선 첫번째 이야기
김수박 지음 / 새만화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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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수박의 만화는 따뜻하다.
그의 복잡하게 얽힌 부정형의 선들은,
가난한 사람들, 그래서 주름이 가득 진 시름으로 터져넘칠 것 같은 얼굴들을 그리는 데 적합하다.
그렇지만, 만화의 칸과 칸 사이를 건너뛰는 마법에 사로잡히다 보면,
김수박이 전하려고 하는 따스한 온기가 맥스웰 캔커피 없이도 전달된다. 

지하철 1호선은 가장 오래된, 그래서 가장 낡은,
그리고, 서울의 외곽에서 서울 안으로 미어지게 타고 들어오는 노선이다.
숨을 쉰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선 사람들이 서로 눈길을 마주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운 곳이다. 

그 곳,
사람이 있는 곳,
거기에 사람들의 마음이 오가는 일도 없고, 무심한 모습들이다. 

그렇지만, 한강을 건널 때, 한강 저 하류 바다를 향한 쪽에서 이따만큼 크게 비치는 해를 보면,
찌글한 군상들이 모두 고개를 돌린다.
그러면서, 사람은 본래 착할지도 모른다... 이런 만화를 김수박은 그린다. 

순대국밥 한그릇...을 앞에 둔 건강한 젊은이들의 만남과 헤어짐도 짜릿하고,
안 미친년의 미친 행보도 슬프다. 

왕눈이와 나의 만남과 헤어짐은,
모든 사람의 삶이 그렇듯,
필요하면 따르고 무심하게 또 헤어지는 반복 속에서 굳이 짠한 감정을 자아내는 그런 이야기다. 

김수박의 만화를 읽는 일. 

그의 선들은 유들유들하기보다는 뻐들뻐들한 덜 익은 우동 면발같지만,
그 선들이 빚어내는 인간사는 그래서 푸들푸들한 부적응 투성이지만,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들의 그 곳에서 일어나는 만남과 헤어짐을 통하여 그가 드러내려는 안간힘은
따스하고, 다감하다. 

가을이다.
따스한 햇살 등에 지고, 다감한 사람이랑 속삭이기 좋은 계절이다. 

보이지 않는 하늘에도, 별은 있을 것이다. 

 

별의 생애

                  이동순(제1회 김삿갓 문학상)

바람속에 태어난
저 어린 별은
제 어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오늘도 캄캄한 우주 벌판에서 외롭게 반짝인다

어린 별이 땅 위의
가난한 나라 아이들과 밤새도록
서로 눈 맞추고 용기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의 한 생을 살아온
늙은 별은
흐뭇한 얼굴로 그 광경 지켜보다

우주의 한쪽 구석에서
혼자 조용한 임종 맞이한다

자욱한 눈보라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서
영영 되돌아오지 않는
저 북극 에스키모 노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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