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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아만 - <호동거실> 평설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2009년 11월
평점 :
虞裳(우상) 이언진. 고전 문학에서도 워낙 다뤄지지 않는 시인이라 아는 이가 흔치 않은 이다.
그렇지만, 그의 행적을 읽어 보면, 조선의 한계가 빤히 보여 슬프다.
박지원은 문제적 지식인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1의 벌열에 속해있던 사람이고,
이언진은 역관에 불과한 슬픈 지식인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한어 역관 이 언진의 활약상(허경진 연세대 교수 설명)
http://cafe.daum.net/philrand/Kpu6/818?docid=Ov5F|Kpu6|818|20091114113036&srchid=IIMB6ASA200
박지원 해설로 낯익던 박희병 선생이 이번엔 이언진 옹호에 나섰다.
170수가 남아있다는 <동호거실> 이란 문집을 풀이한 것이다.
도대체 이언진의 시들이 왜 그런 문제작이었는지를 상세히 풀고 있다.
<유교적 질서의 공고화>를 국가 경륜의 모토로 삼았던 조선 왕조.
이 질서에 정면으로 도낏날을 세워들고 '당랑거철'의 모험을 감행한 화제인이 바로 이언진이란다.
이 책은 1. 동호거실을 읽는 법, 2. 동호거실 읽기, 3. 동호거실을 읽고... 이렇게 3부로 이뤄져 있다.
해제를 1부에 실어, 이언진의 글의 포인트를 감상하기 좋게 풀어 주었고,
본문인 2부에서는 170편의 6언 시들을 찬찬히 풀이하고 있으며,
독후감인 3부에서는 간단한 정리의 글을 남기고 있다. 깔끔한 책이다.
이전의 5언과 7언의 형식에 대항하여 6언의 시체를 사용한 시학적, 미학적 형식의 파괴와 전복, 이탈을 보여준 그의 시들은
한시에는 쓰지 않았던 백화어(구어체)를 도입하였고, 모순되는 양면의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형식적 내용적 틀을 마련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호동'이란 '누항'과 마찬가지로 '골목길'이란 뜻인데, 우매한 백성들이 사는 곳을 뜻한다.
동시대 서얼들도 자신들은 지식인이며, '누항'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호동'을 자신의 호로 삼아버린 이언진.
13. 한 그릇 밥 먹고 배 부르면 쉬고/ 큰길 가에서 웅크리고 자는/ 저 거지아이 승지보고 불쌍타 하네/ 눈 내린 새벽 매일 출근한다고
14. 머리 허연 저 늙은 귀인/ 이불 끼고 누웠다 이불 끼고 앉았다/ 5대손 생계를 걱정하누나/ 밭도 적고 집도 작다며
15. 조정에서 누차 불러도 응하지 않는 건/ 범 안고 자고 뱀 품고 달리듯 위태하기 때문/ 용퇴하면 화 적고 복 많을 텐데/ 뭣 땜에 사주 보고 점을 치는지
이런 시들을 통하여 누항의 평민들의 삶 속에도 의미가 있음을 드러내고,
출세에 목을 매단 이들의 고난한 삶, 그들의 '배드-빙'을 풍자하고 있다.
불교적이고 도가적이다. 색즉시공이며, 텅 빈 것이 가득 찬 것임을 너희는 왜 모르는가... 이렇게.
21. 욕하거나 깔보면 받지 않으니/ 거지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대의에 맞게 훔쳐 공평히 나누니/ 도둑에게도 어짊과 지혜가 있다.
'호동'의 인물을 자처하면서도, 오연함과 비굴종의 모습으로 고개는 오히려 꼿꼿하다.
사대부 위정자에 대하여 오히려 혹독한 야유를 보내는 기개는 사뭇 서릿발과 같다.
장자와 이탁오를 본받은 계열로도 보이고, 부처와 노자를 본딴 것으로도 보인다.
암튼, 조선의 시대 정신인 '유교'에는 딴지를 걸고, 야유를 퍼붓는 이언진의 시는 아주 보는 이가 다 위태위태하다.
26. 자기 집의 닭과 오리는/ 살진 놈 마른 놈 훤히 알면서/ 원숭이 같은 이 마음은/ 이리저리 날뛰어도 내버려 두네
'마음'에 관심을 돌리는 그의 모습은 양명학 쪽과도 긴밀하다고 한다.
30. 떵떵거리는 고관대작들/ 재주며 팔자랑 뭔 상관이람/ 길 위의 행상과 거간꾼들은/ 칭찬과 비난에 개의치 않네.
기존의 틀에 대한 전복이며, 관습에서 이탈하는 그의 생각들은 시원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맛을 느끼게 한다.
이러니, 다 불지르려 했을 밖에...
스물 일곱에 죽은 그가 태우려 했던,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던 글들...
남은 글들만으로도 이렇게 시린 시대 정신을 느낄 수 있는데, 전체를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 나는 나를 벗으로 삼을 뿐, 남은 벗으로 삼지 않는다. 我友我不友人
오만한 그는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펼친다. 요절하고 만 것도 그런 상황과 관계 깊으리라.
45. 갑자기 이런 생각 떠오르누나/ 내 눈을 남에게 줘 버렸다는/ 눈에 정신이 있다면 이리 하소연하리/ "내 눈 찾아 내 몸에 되돌려 주오!"
내 눈 찾기의 긴 여정은 현대시의 김수영에게로 이어진다는 박희병의 해석은 탁월하다.
박희병이 들이미는 김수영의 "孔子의 生活難"도 함께 읽음직하다.
공자(孔子)의 생활난(生活難)/ 김수영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作戰)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이태리어(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이 시의 중심 축은 4연에 있다.
이제 나는 세상을 바로 보겠다.
이제까지는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무엇을 잘못 보았는가.
1연에서, 꽃은 열매와 공존할 수 없다.
그렇지만, 깨달은 내가 바라본 어리석은 '너'는 모순된 상황을 두고 장난을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2연에서, 퍼져나가는 발전을 꾀하려 하였지만 그 작전이 늘 성공한다고 보기에는 참으로 어렵더란 회한과,
3연에서, 반란성은 '다르게 보기', '내 눈 찾기'의 과정의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르기 쉽고 먹기 쉬운 국수를 이태리어로 마카로니라고 보는... 제 눈의 반란성을 인식하기.
4연에서, 이제 어리석음과 회한과 반성적 인식을 통하여 <세상 이치의 생리와 한계를 명석>하게 보고자 한다.
그리고,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으니, 이제 죽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적 작품의 제목이 '공자의 생활난'이다. 김훈 류로 말하자면, "밥벌이의 지겨움을 공자도 겪었네" 이런 걸까?
공자도 살기가 어렵다는데, 김수영도 먹고 살기 어려웠으리라.
그런데도 맨날 사물을 '반란적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김훈 류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누리는 쪽과도 더 멀어진다.
그렇지만, 먹고 사는 데 얽매이진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에 나오는 것으로 나는 읽겠다.
공자도 먹고 살기 힘들었다지만,
그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으니...
김수영도, 통크게 허세를 부려 보는 것이다.
나도 이제 바로 보겠다. <진리와 한계를 명석하게 보겠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러고 나면, 죽어도 좋겠다. 먹고 사는, 생활난에 죽도록 집착하진 않겠다>... 이런 것이겠다.
박희병이, 호동 이언진의 글에다가 <김수영의 생활난>을 집어넣은 의도가 이런 것 아닐까? 혼자서 머리를 굴려 본다.
51. 콧구멍 치들고 주인 뒤를 졸졸 따르니/ 종이라 불리고 하인이라 불리지/ 천한 이름 뒤집어 쓰고도 고치려 않으니/ 정말 노예군 정말 노예야.
62. 추한 종놈 온다, 추한 종놈 온다./ 아이들 짱돌 줍고 흙을 던지네/ 내 들으니 참 괴이한 일도 있지/ 길에 떨어진 칼을 주인에게 돌려주다니.
이런 시들은 노예의 굴종성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는데, 그 과격함으로 삭제를 당한다.
길에 떨어진 칼을 주인에게 돌려주다니... 븅신~ 헐~ 그럼, 어쩌라고... 그 칼로 살주라도 하란 말씀?
78. 밥은 하루 지나면 쉬었는가 싶고/ 옷은 해 지나면 낡았는가 싶지/ 문장가의 난숙한 문투/ 한당 이래 어찌 안 썩을 리 있나
그의 호연지기는 '우상'이란 호에서도 드러나듯이, 순임금(성이 虞)의 치맛폭(裳) 오지랖 넓게 세상을 평정하겠다는 포부가 얼마나 큰가.
조선 왕조가 지식인 통제 수단으로 삼은 과거가 '과거체'로 불릴 정도로 치졸한 공부였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은 만나기 어렵다. 예나 오늘날이나 그릇이 크면, 시샘을 받아 깨지기 쉽다.
82. 재주는 관한경 같으면 됐지/ 사마천, 반고, 두보, 이백이 될 건 없지./ 글은 수호전을 읽으면됐지/ 시경, 서경, 중용, 대학을 읽을 건 없지
관한경은 원나라 문학가이며, 수호전도 백화문학의 하나로 통속문학이다.
이제까지 '고전'으로 틀잡혀온 지적 패러다임에 정식 도전하는 불온한 유교 비판이 드러난다.
또한 우상의 많은 시들에서 삶의 정취와 운치를 느낄 수 있다.
'호동'이란 시정, 누항에서 캐치한 스틸 컷들을 읽고 있으면,
그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순간을 재치있게 포착하는 멋진 사진가가 될 수도 있었겠고,
그의 사진과 어울린 단문들은 멋진 포토 에세이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시대를 잘못타고 난 우상 이언진에게 한 잔 권한다.
That's too bad!!
126. 자리에 앉혀서는 안될 사람은/ 좋은 옷 입은 하얀 얼굴의 명사/ 입에 올려서는 안될 셋은/ 규방, 저자, 조정
벌열 계층과 규방의 비밀, 이윤의 탐닉, 조정의 부패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한 시로 읽는다.
132. 천하엔 본래 일이 없는데/ 유식한 이가 만들어 내지/ 책을 태워 버린 건 정말 큰 안목/ 그 죄도 으뜸이요, 그 공도 으뜸
146. 어디서 문신 새기는 사람을 구해/ 얼굴에 이런 죄명 써 넣을는지/ 가짜 글, 거짓 학문으로/ 세상속이고 이름을 도적질한 자!
곡학하세하고 혹세무민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차가운 비판의 글발은 서늘하다.
154. 구양수는 제 서재를 아름다운 배라 했고/ 육유는 책 둥지라 이름했지/ 비록 기문 같은 건 안 지었지만/ 호동이라는 내 집 이름 둘과 닮았네
'아름다운 배'와 '책 둥지'와 필적할 만한 자신의 서재에 대한 자부심, <호동>
시장통 골목길, 거기에 삶의 냄새가 담겼고, 진리를 발견하는 제 눈을 바라보는 진리에 대한 우월감이 느껴진다.
김종삼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가 떠오르는 구절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전문)
시란, 진리란, '남대문 시장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고생하면서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 넘치게 사는 그런 것'이라고.
169.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빠져 나올 어떤 방법도 없네/ 팔십 되면 모두 죽여 버리니./백성도 임금도 똑같은 신세
왕조 시대에 이런 시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평등 세계의 본질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에서 왕의 모가지가 필요했다.
백성도 임금도 똑같은 신세임을,같은 시대, 프랑스 혁명기에 함께 살았던 이언진(1740-66)의 허파에도 그 자유와 혁명의 공기가 감지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희명의 일촌평은 <조선문학사 유일의 괴물>이었다.
유교와 신분제에 기초한 조선과 정면에서 마주섰을 뿐만 아니라, 전망까지도 모색할 수 있었던 그의 시를 탐색하는 이런 책을 만나는 일은, 우상 이언진에게나, 박희병 선생에게나, 나에게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우상 이언진이 가슴 터지게 담아 둘 수밖에 없었던 시들을, 급기야 불지를 뻔했던 시들을 읽는 일들은 또한 살떨리게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발언의 자유가 없었던 시대를 살았고,
아직도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있는 개인으로서 그렇다.
그의 '저항'과 '아만(자부심)'으로 가득한 시집의 해설을 읽는 일... 즐거움과 두려움의 공동경비구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