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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 신경림 시집 ㅣ 창비시선 218
신경림 지음 / 창비 / 2002년 7월
평점 :
신경림의 시 중 유명한 것이 무엇 있을까?
아마도 고은 다음의 다작 시인이 신경림일지도 모른다.
갈대, 농무, 가난한 사랑노래, 목계 장터, 최근의 낙타까지... 숱한 노래들 속에서 그의 시들은
외롭고, 쓸쓸하면서도, 사회 문제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운명적 삶을 생각하며 살다 보니, 이제 터벅터벅 낙타처럼 늙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 시집에서 가장 관심있게 읽은 글은, 마지막의 '시론'이다.
80년대 시들이 30년대 카프 시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의 아쉬움에 대한 의견 피력도 좋았고,
80년대 시들이 물러간 자리에서 가벼운 시들이, 사회의 목소리 뺀 시들이 설치는 데 대한 문제의식도 좋았다.
기뻐서 소리지르고, 힘들어 탄식하는 목소리가 '시'일진대 독자가 알아먹지 못하는 시들,
또는 혼자서 골방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시들이 지나친 세태도 비판받을 만 하다.
시는 이상주의자의 길에 피는 꽃,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왔다.
누구나 삶의 길을 가지만, 누구나 이상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많이는 현실주의자가 되고, 또 많이는 비관주의자가 되고, 더러는 염세주의자 내지는 퇴폐주의자까지 되는 법인데,
이상주의자가 되어 끝끝내 놓지 않는 희망의 눈길을 끄는 것이 '시'라는 꽃이란 말이렷다.
신경림의 이 시집에서 가장 나를 끈 것은 '걸인행 1 - 손'이었다.
이 시는 소설처럼 시점이 있고,
장르 소설을 읽는 것처럼 판타지가 있다.
그 속에서 '사회'에 대한 애정의 눈길을 놓치지 않는 것은 신경림의 시가 가진 힘인데, 이런 방식을 쓰니 신선하다.
완강히 거부하다가 너는 마침내 눈을 벌리고 나는
그 눈을 통해 너의 내부 깊숙이 들어간다
그리고는 너의 과거 속을 유유히 헤엄친다
환한 보름달빛이 드러내는 끈끈한 정사도 엿보고
푸른 이슬에 함빡 젖은 이별도 구경한다
뜨겁고 치열했던 장바닥에서의 삶도 따라가 보고
갑자기 닥친 나락으로의 추락도 함께 경험한다
그만 밖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 더듬어 문을 찾지만
눈은 철문처럼 닫혀 있구나 네가 죽었으므로
손으로 두드리고 발로 차도 감긴 눈은 꼼짝 않는다
나는 단념하고 너의 내부에서 살아갈 궁리를 하지만
이 안타까운 구걸의 소리는 아직도 너의 것이리
한장의 구겨진 지폐를 위해 내밀어진
꼬질꼬질 때묻은 손도 너의 것이리 (乞人行 1 - 손, 전문)
걸인으로 누웠거나 쭈그리고 앉았을 '너'의 눈을 바라보며,
너의 인생으로 들어간다.
너의 과거를 상상해 보노라니,
도저히 너의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너는 죽어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네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데, 너는 아직 네 손의 지폐와 때묻은 손으로 거기 있다.
네 존재의 나락은 내 존재의 나락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
한 송이 꽃을 보면서, 그의 마음은 아프고 저리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픈 마음을 걸인의 손으로 쓴다. 역시 시인의 눈이다.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 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눈밭까지 고삐를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면서도
저쪽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쟁기를 끌면서도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서면 된다
콩깍지 여물에 배가 부르면
큰 눈을 끔벅이며 식식 새김질을 할 뿐이다
도살장 앞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두어 방울 눈물을 떨구기도 하지만 이내
살과 가죽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뿔, 전문)
시인이 바라본 쇠뿔은 또 마음에 애리도록 새겨진다.
누구도 해친 적 없고,
주인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던 소.
그 뿔의 힘으로 말하자면 주인의 명령도 물거품이 될 수 있으련만,
그저 살과 가죽으로, 뿔로 쓰레기통에 버려질 존재감.
민중의 삶은 그런 것이지만,
시인의 눈은 그걸 놓치지 않고 읽어낸다.
이쯤에서 길을 잃어야겠다
돌아가길 단념하고 낯선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들리는 말 뜻 몰라 얼마나 자유스러우냐
지나는 행인에게 두 손 벌려 구걸도 하마
동전 몇닢 떨어질 검은 손바닥
그 손바닥에 그어진 굵은 손금
그 뜻을 모른들 무슨 상관이랴 (내가 살고 싶은 땅에 가서, 전문)
좌절이나 단념보다는 자유를 향한 시선이 느껴진다.
손바닥에 그어진 굵은 손금,
그 운명의 길을
모른들 무슨 상관이랴,
제 살고 싶은 땅에 가서 살 수 있다면... 가장 이상주의자의 현실 비탄이 깊은 시가 아닐까?
강은 가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가르지 않고
마을과 마을을 가르지 않는다
제 몸 위에 작은 나무토막이며
쪽배를 띄워 서로 뒤섞이게 하고,
도움을 주고 시련을 주면서
다른 마음 다른 말을 가지고도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친다.
건넛마을을 남의 나라
남의 땅이라 생각하게
버려두지 않는다
한 물을 마시고 한 물속에 뒹굴어
이웃으로 살게 한다.
강은 막지 않는다
건너서 이웃 땅으로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
짐짓 몸을 낮추어 쉽게 건너게도 하고,
몸 위로 높이 철길이며 다리를 놓아,
꿈 많은 사람의 앞길을 기려도 준다.
그래서 제가 사는 땅이 좁다는 사람은
기차로 건너 멀리 가서 꿈을 이루고,
척박한 땅밖에 갖지 못한 사람은
강 건너에 농막을 짓고 오가며
농사를 짓다가, 아예
농막을 초가로 바꾸고
다시 기와집으로 바꾸어,
새 터전으로 눌러 앉기도 한다.
강은 뿌리치지 않는다.
전쟁과 분단으로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제 고장 사람들이
뒤늦게 찾아와 바라보는
아픔과 회한의 눈물 젖은 눈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제 조상들이 쌓은 성이며 저자를
페허로 버려둔 채
탕아처럼 떠돌다 돌아온
메마른 그 손길을 따듯이 잡아준다.
조상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수없이 건너가고 건너온
이 강을 잊지 말란다.
강은 열어준다. 대륙으로
세계로 가는 길을,
분단과 전쟁이 만든 상처를
제 몸으로 씻어내면서
강은 보여준다
평화롭게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어두웠던 지난날들을
제 몸 속에 깊이 묻으면서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전문)
여행 자유화 이후, 중국이나 백두산 등을 뜨거운 마음으로 갔던 시절의 시들이 많다.
그 때의 감격을 쓴 것이니, 이제 좀 식었을 법도 하다.
신경림의 시를 읽노라면,
깊어가는 가을 강의 서늘함을 가진 시인의 눈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좋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