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설법 창비시선 133
이동순 지음 / 창비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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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마당에 오줌 누러 나갔더니
개가 흙바닥에 엎드려 꼬리만 흔듭니다
비라도 한줄기 지나갔는지
개밥그릇엔 물이 조금 고여 있습니다
그 고인 물 위에
초롱초롱한 별 하나가 비칩니다
하늘을 보니
나처럼 새벽잠에 깬 별 하나가
빈 개밥그릇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별, 전문) 

경산에 있는 대학으로 출근하는 시인은 인근 마을로 가서 살기로 했다.
낯선 곳,
외로운 곳에서 만난 별 하나.
새벽에도 시인을 내려다보고,
빈 개밥그릇에도 비친다. 
별의 시인답게, 별로 시작한다.
그의 별 노래는 참 서정적이기도 하고, 삶의 그늘에 살포시 빛을 뿌려주기도 한다. 

시집의 제목은 '봄의 설법'
봄은 '보는 계절'이다.
겨울에는 볼 것이 없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봄이면 꽃을 피운다. 나 좀 보라고...

이 시집에 실리진 않은, 그의 별 노래 몇 편, 옮겨 둔다.

바람속에 태어난
저 어린 별은
제 어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오늘도 캄캄한 우주 벌판에서 외롭게 반짝인다

어린 별이 땅 위의
가난한 나라 아이들과 밤새도록
서로 눈 맞추고 용기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의 한 생을 살아온
늙은 별은
흐뭇한 얼굴로 그 광경 지켜보다

우주의 한쪽 구석에서
혼자 조용한 임종 맞이한다

자욱한 눈보라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서
영영 되돌아오지 않는
저 북극 에스키모 노인처럼 (별의 생애, 전문)

그대가 별이라면
저는 그대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습니다
그대가 노을이라면
저는 그대 뒷모습을 비추어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습니다
그대가 나무라면
저는 그대의 발들에 덮인
흙이고자 합니다
오, 그대가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라면
저는 그대가 앉아 쉬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습니다 (그대가 별이라면)

개가 짖고
추수 끝난 들판에서
밤바람은 말을 달립니다.
달이 밝습니다.
나는 뜨락에 서서 달빛에 젖습니다.
초롱초롱한 별 하나가
나를 봅니다.
나는 방으로 들어옵니다.
들어와서 다시 생각하니
그 별이 그대인 것을 알았습니다.
황급히 나가 하늘을 보니
이미 그 별은 사라지고
보이질 않았습니다. (별 하나, 전문)



1995년, 마흔 다섯의 나이.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다들 복잡할 때,
모두들 제 마음 속 들여다보기 바쁘던 그 때,
그는 자연 속에서 자신을 비춰보며,
이치를 찾는다. 자연의 이치가 곧 사람 사는 이치임을...
'묵언' 같은 시에서도 삶의 느낌이 짙게 풍긴다.

대추나무를
전지하면서 살펴보니
나무의 가지와 가지들은
결코 서로 다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 가지가 위로
혹은 옆으로 내벋어가다가
다른 가지와 마주칠 때
반드시 제 몸을 휘어서 감돌아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나무들을 보니
나무란 나무는 모두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무의 이치를 알고서 세상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고
차고 꺾고 심지어는
제 살기 위해서 남까지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 중에서도
풀과 나무를 만지고 살거나
마음속에 풀과 나무를 가꾸고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무의 겸양과
조화로움을 조금은 닮아 있는 것이었다 (나무에 대하여, 전문)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쇠똥 거름을
퍼담아 마당 곳곳에 부었다.
부어놓은 쇠똥 거름을
또 다음날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골고루 흩어서 깔았다.
이러기를 여러 날 했다.
끼때 되면 부엌에 들어가 홀로 밥 챙겨 먹고
밥 먹고 나면 다시 뜨락에 잠시 앉아
물끄러미 앞산 자락을 보았다.
오는 이 가는 이 없고
나는 혼자였다.
말하기 위해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그대로 묵언 수행이었다. (묵언, 전문)


이웃과 함께 밥 한 그릇 할 줄 아는 시골 인심과,
경북의 사투리 '장카 밥카 뿐'이라는 가난 속의 넉넉함이 살아있는 시다.
경행 씨와 봉도 씨는 어머니와 함께 시의 모티프로 강렬하다.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려
받고보니 허경행씨다
간밤이 선친의 입젯날이라 아침이나 같이 하잔다
늘 하던 경행씨의 말투처럼
차린 것 별 것 없고 '장카 밥카' 뿐이란다
된장하고 밥 뿐이라는 그의 이 말엔
천 년이 넘도록 내려오는
우리 조상님들의 인정과 겸양이 묻어 있다
각색 나물에 탕국에
돔배기와 고등어찜에 떡과 과일
마을 이장이 맨먼저 와 있고
뒤이어 초동영감님과 남진씨가 들어온다
집집마다 모두 기별했건만
온 사람은 모두 다섯
주인과 객이 서로 술을 권하며 둘러 앉아 아침을 먹는다
어제 과음했다는 남진씨는
배가 아파 들락날락
이장은 아침 초대에 오지 않은
몇 몇 사람을 나무란다
조촐한 동네 음복일망정
벽에 걸린 경행씨 부모님의 흑백사진이
흐뭇한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다( 함께먹는 밥, 전문)

(퇴근 길 자기집을 지나 안마을까지 할머니를 태워드리고 돌아오는 시인)
고죽 안동네에서 그는 내리며
‘이렇게 생광스러울 수가...’라고 말했다
나는 돌아오면서 이젠 거의 잊혀진
‘생광스럽다’라는 우리말의 은근한 여운을
한참 생각해 보았다 (퇴근길, 부분) 

'아쉬운 때에 요긴하게 쓰여 보람있다'는 뜻이라는 '생광스럽다'는 말.
이런 말 하나 주워듣는 것이 곧 시가 된다.
나중에 이런 시가 없다면, 사라져버릴 말들이니... 

시인의 삶은 그대로 기록문학이자 구비문학의 문화 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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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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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나가는 순서를 잘못 잡았다. 

처음에, 이 책을 읽는 안내자로서 '옮긴이의 말'을 읽어두는 것이 도움이 되겠고,
그리고, 2부의 오웰의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을 읽는 것이 낫겠고,
1부의 위건 부두 르포는 나중에 읽었어도 될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이 엮인 동기가 1부였기 때문에 가장 중심부이긴 하지만,
80년 전의 영국의 부두노동자나 탄광 노동자의 삶이 현재의 제3세계 노동자들의 삶과 대비하여 본다면, 특별하게 비참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다.  

사회주의가 러시아에서 혁명의 불길을 일으킨 지 20년 되었던 1930년대에도 이미 독재의 흐름이 감지되었고,
많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에 대하여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던 시기이기도 했단다. 

오웰은 '모든 억압에 반대하는 사람'을 사회주의자로 보고 있다.
그리고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그르다'는 단순한 말이 진리임은 이미 증명이 되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의 깃발을 들었던 자들의 면면에서 존경받지 못할 구석들이 있었고, 문화적 비중을 높이치던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서 사회주의란 생경한 문화파탄자들 내지는 저질문화 옹호자들이 소외당하던 시기,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의 파탄을 예기하면서 동물농장과 1984로 이어지게 된다.  

무의미하게 정체되어 썩어들어간다는 느낌, 사람들이 지하에 갇혀 바퀴벌레처럼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기어다니며 비열한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다는 느낌(26)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싸구려 커피'를 노래부르는 21세기 한국의 88만원 세대나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빈궁한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가족 제도가 깨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긴축 재정을 하여, 생활 수준을 낮추면서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든 것(119)으로 바라본다.
21세기의 한국 사회보다 낫다면 낫다. 한국 사회는 빈궁하지 않으면서도 가족 제도가 깨어지고 있으므로...
긴축 재정을 하는 것보다 견디기 힘든 생활을 인정하고 자식을 낳지 않는 어두운 사회. 

옛날을 바라보는 시선은 미래를 바라보기 두렵게 만든다. 

사회주의는 반대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자는 반대한다.(232)
많이 들어본 말이다.
개혁의 깃발을 든 이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그 깃발을 든 자들의 인품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이런 것이 모든 운동의 한계다.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의 일선에 나서는 이들의 많은 활동가들이 인격적으로 존경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불평분자일 뿐인 활동가와 전심전력을 다하는 사상가 간에 분간이 가지 않아 운동의 핵심에 분열을 일으켜 왔다는 점은 80년 전에 쓴 오웰의 글이나 최근 사회운동과 진보를 논하는 글이나 다른 점보다 유사한 점이 많아 보인다. 

사회주의 문학은 따분하고 시시하고 조야하다... 이런 느낌으로 어떻게 혁명이 성공하겠는가.
그렇지만,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고상한 것들을 모두 갖출 수는 없는 법이다. 
'클래식' 이란 말이 원래 '전쟁이 나면 배 한 척 정도 희사할 수 있는 계층'이란 말에서 나온 것이라 하니,
가진 자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이 클래식이고 고전이고, 우아한 것이니 말이다. 

조지 오웰의 이 책을 만나면,
반드시 마지막에 덧붙인 옮긴이의 말부터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2부,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부터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 책은, 사회가 어떻게든 바뀌어야  할텐데... 하고 고민하면서도,
민주당 저것들은 참 한심해 죽겠고,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저것들도 뭔가 수준미달이라 고민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읽기를 권하고 싶다. 

김규항의 'B급 좌파'의 시선보다도 더욱 형형한 눈으로 바라보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이 책에 가득하니 말이다.
김규항도 '잡문 모음' 말고, 제대로 된 책을 한 권 더 내주기 바란다. 예수전에 버금가는 멋진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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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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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러시아 사람들 이름은 나름대로 입에서 침을 튀기는 맛이 느껴진다. 

러시아 문학은 제법 읽은 셈인데,
톨스토이나 토스토예프스키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고딩, 대학 시절부터 읽었던 것이고(지금은 줄거리조차 다 잊고 말았지만, 읽었는지도 모를 제목들도 많고) 고골이나 투르게네프, 체호프 등의 단편도 읽긴 했는데, 로쟈의 독서를 읽다 보니 다시 러시아 문학에 관심을 조금 갖게 된 셈이다. 

그러다보니 도서관에서 체호프를 만났을 때 선뜻 한 권 들고 왔다.(그 아래 칸에 토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가 묵지근하게 있었지만, 지금 내가 장편을 읽을 심리적 상태가 아니므로 나중을 기약한다.) 

수능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섰다.
아이들은 쥐죽은 듯 자습하고 있는 동안에 빙 둘러보고 책읽을 시간이 많고, 거의 매주 모의고사를 치르니 그 시간에 책을 읽게도 된다. 오랜 시간 집중할 순 없지만, 계속 읽기엔 단편 소설이 딱이다. 어쩌면, 현대인의 삶의 사이클에 단편 소설이 어울리게 된 것인지도... 

1860년에 태어난 체홉은 1904년에 죽었다.
내 나이에 죽어간 것이다.
그 시절엔 내 나이면 죽은 모양이다.  

체홉의 이 단편선에서 유머러스하면서도 단편의 '반전'이랄까, 묘미를 보여주는 것은 '관리의 죽음'과 '드라마'다.
그리고... 죽었다. 로 끝나는 관리의 죽음과,
배심원들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로 끝나는 드라마의 허탈함. 

체홉의 이런 소설은 오 헨리의 반전과도 흡사한데, 체홉의 글맛은 또 다른 데서 찾을 수 있다. 

체홉이 그려내는 인물들이 특정한 군상이 아니라, 드라마의 작가처럼 독특한 사람부터, 베짱이의 올가처럼 완전 무개념을 장착한 사람, 융통성이라곤 파리 눈곱만큼도 없던 관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체홉의 관심의 폭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의 '거울'은 마치 '장자의 나비'와도 같다.
인생에서 고통스런 순간들의 기억이 과연 진짜일까? 인간에게 그렇게 참혹한 삶이란 것이 다가선다고 해도, 과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는 판국에 그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좀 웃긴 거 아니겠어? 이런 시니컬이 보이기도 한다. 

체홉의 소설로는 좀 의외의 작품이 '내기'다. 좀 톨스토이 연한 작품 같기도 한데, 인생에 대한 고찰이 체홉 식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서 재미를 준다. 

사형과 종신형 중 어느 것이 나은지 토론하던 사람들 중 둘이 내기를 한다.
15년의 감금과 큰 재산을 걸고...
15년간 감금된 사람은 책을 읽고 음악을 연주하더니 외국어를 배우고 종교를 연구한다.
재산가가 15년이 마치기 전날, 돈이 아까워 그 방에 침입해서 읽게 되는 글은 상당히 종교적이다.
체홉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반전이 물론 그 안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주제가 제법 묵직하다. 

수능 마치고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 체홉의 '벚꽃 동산' 같은 희곡도 찾아 보고 싶다. 그의 '귀여운 여인'이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같은 글도 더 읽고 싶고... 

로쟈의 '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나서 자유롭게 책을 읽지 못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거 같기도 하고, 괜스레 욕망에 불만 지피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책을 읽을 자유'가 허여된 시간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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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 아빠 백점 엄마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 동시집, 6학년 2학기 읽기 수록도서 동심원 14
이장근 외 지음, 성영란 외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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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상파 방송을 탄 초딩 2학년 시가 아빠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냉장고는 맛있는 걸 줘서 좋고, 엄마는 포근하게 안아 줘서 좋고, 집은 편히 쉴 수 있어 좋은데..
아빠는 왜 있냐고?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아이를 기른 건, 부모이고, 세상이다.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아이는, 할머니, 부모, 여동생이 자는 집에다가 휘발유를 뿌리고 도망가기도 하고,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엄마는, 아이가 공부 안 한다고 열받아서 목을 매고,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애비, 삼촌, 할애비, 고모부는 제 딸, 손녀, 조카를 성폭행한다. 

빵점아빠 백점엄마란 제목을 읽고 저 기분 나쁜 시가 생각나면서, 기분이 별로였다. 
물론 그 시의 아빠도 왜 있냐는 소리를 들을 법 하다.
그치만, 억울한 건 엄마만이 아니다. 

엄마가 편찮으셔서
오랜만에 가게 문을 닫은 날 

엄마가 흰죽을 쑤고
후륵후륵 아빠는 드시고
엄마가 핼쑥한 얼굴로
보글보글 육개장을 끓이고
아빠는 쩝쩝 한 대접이나 드시고 

"설거지는 조금 있다 내가 할 테니
건드리지 말고 푹 쉬어요!"
뻥뻥 큰소리치고는
쿨쿨 푸푸 낮잠 주무시는 아빠 

코고는 아빠 보며
피식 웃다가
수화기 살짝 내려놓고 걸레질하는 엄마
달그락달그락 설거지하는 나 

엄마가 편찮으신 건지
아빠가 편찮으신 건지 (빵점 아빠 백점 엄마, 이정인)

 이 시는 얼핏 아이의 목소리를 띠지만, 
엄마의 시선으로 본 시임이 느껴지면, 씁쓸하다.
물론 낮잠 주무시는 아빠가 야속할 수도 있지만,
몸살이 났으면 집이야 좀 어수선해도 쉬면 되련만...
어쩜, 이런 시는 '동시'가 아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쓴 시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쓴 시도 아니다.
내가 보기엔 이 시는 '바가지 시'다. ^^ 

같은 작가의 '긴말 짧은 말'을 보면,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서로 오해를 풀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 둔다. 

당신은 회사일만 하면 되지만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 해서 먹이고 학교 보내고 설거지 하고 빨래 모아서 세탁기 돌리고 큰방 작은방 거실 베란다까지 쓸고 닦고 세제 풀어 욕실 청소하고 빨래 털어서 널고 아침 겸 점심 먹고 휴, 애들 오면 간식해 먹이고 학원 보내고 숙제 시키고 씻기고 시장 봐 와서 저녁밥 해 먹이고 또 설거지하고 빨래 걷어 개고......
나, 무척 피곤해요 정말 힘들어요.  

엄마 말 다 듣고 난 아빠
"그럼 당신도 집안일만 해." 

엄마는 짧은 얘길 참 길게도 하시고
아빠는 긴 얘기를 참 짧게도 하신다. (긴 말 짧은 말, 이정인) 

사람 사는 거,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안 보이고, 저쪽에서 보면 이쪽이 안 보인다. 
보려고 눈 뜨면,
별게 다 보인다. 

비 그친 뒤
나무 잎사귀 끝에서
굵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툭,
툭,
툭! 

흙 위에 생긴 
동그랗고 오목한
물방울 무덤 

바람에 날려 온
풀씨 하나 

물방울 무덤에 안겨 

꼭 감고 있던
눈을 뜬다. (물방울 무덤, 이정인) 

세상은 바람에 날리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눈도 우리에게 틔워 주지만,
사노라면, 교장 선생님이 제 학교 아이를 치어 숨지게 하는 두려운 일도 생기는 법이다.
사는 일은 늘 두려운 일이다.
예쁜 것만 보고, 아름다운 일만 만나고 살고 싶은 거야 인지상정이지만,
사람은 제 뜻에 부합하지 않게 더러운 일도 만나고 더러운 사람도 만나는 법이다.
작은 것들의 눈뜸에도 예민하게 산다면, 더러운 일 덜 만날 수 있으려나. 

큰 감나무 한 그루
주렁주렁 감들이 달렸는데
푸른색도 아니고
노란색도 아니고
주황색도 아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 예쁘다
무슨 색깔이라고 해야 하나? 

엄마는 익어 가는 색깔이라고 했다 

이제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익어 가는 색깔이다 (익어 가는 색깔, 안오일) 

'익어 가는 색깔' 낱말 엮은 하나로 바로 시가 되었다. 그 마음이 곱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주로 동시를 쓰신다.
아이들 곁에 계시니 마음도 아이들과 같이 곱게 구르시는 경우도 많지만,
그 꼬맹이들 속도 많이 썩이시리라.
속 썩이는 녀석의 시가 적은 것이 좀 아쉽긴 하다.
속 썩이는 녀석이 주인공인 시가 더러 있으면, 속 썩이는 녀석들도 세상에 한 움큼 몫을 할 수 있을 거란 말을 들려줄 수 있으련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세상엔 다 필요한 존재일 수 있음을 가르칠 수 있으련만... 

초등학교 선생님도 다들 여선생님인데,
아빠 입장 대변하는 시가 드묾에 조금 아쉽다. 아니, 많이 아쉽다.
나야 가족이랑 남남처럼 지내는 사이 아니라 치더라도,
정말, 아빠는 왜 있냐고 물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남성의 활동 영역은 보여지지 않는 그림자 영역이기 쉽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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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리운 사람은 창비시선 57
이동순 지음 / 창비 /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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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물물만 긷들 않소
가문 날 웅덩이의 물을 퍼 날라
언덕진 비탈밭 천둥지기로도 대지요
쾅쾅 박은 말뚝 틈에 대나무를 세우고
장대 끝을 한껏 휘어
놋줄 매달아 드리우면
당겼다 놓을 적에 손바닥에 오는 팽팽한 힘
이 힘으로 가문 여름을 버팅기오
한 번 두레질에 서너 되를 길어 올리지만
자주 곱돌도 한 움큼 끌려 오고
깜짝 놀란 송사리의 은빛 배때기도
두레박 속에서 반짝이지요
누구 말마따나 죄 없이 목맨 놈이 바로 나요
왜냐 내려갈 땐 벽장구 치며 내려가서
올라올 땐 눈물 뚝뚝 떨구니까
그래도 옛 고담책에나 나올
선녀 기다리는 나무꾼 따위를 태우긴 싫소
한참 가물 때면 온 마슬 두레꾼들이
횃불 바꾸어가며 긴 밤을 밝히는데
지치면 노래 한마디 내지르지요
낮은 데 가서 깊은 데 고르고
두 발 버티어 손끝 서로 모도아 잡고
기운차게 기운차게 당겨보세
별빛 또랑또랑 여름밤이 깊어갈수록
당기고 놓고 당기고 놓을 적에
손바닥에 와 닿는 팽팽한 그 힘으로
더욱 우리는 신명나오 (두레 - 농구노래 14, 전문) 

1980년대, 홍일선, 김용택 등의 시들이 이른바 '농민 문학'의 한 축을 형성하던 시기의 시다.
1980년대면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농촌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시기였는데,
그때는 아직도 '부자되세요~' 같은 덕담이나,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같은 4가지 없는 말들이 유행하진 않던 시기다.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였고, 독재 정권에 맞서기 위하여 노동자, 농민과 학생, 인텔리가 대동단결해야 한다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의 농구 노래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건강한 문화를 남기려는 노력이기도 했을 것이다. 

따비
종다래끼
오줌장군
개똥삼태기
무자위
도리깨
돌확
뒤웅박
소죽바가지
물풀매

거적
연자매
두레
똥바가지
멍석
쇠스랑

책력
또아리(똬리가 표준어로 바뀜) 
작두
지게
길마
도래방석
곰방메
호미 

이런 농구들의 역할을 의인화하기도 하고, 쓸모를 그려내기도 하여 기록으로 남기려 한 데는,
농촌에서 사라져가는 소중한 문화를 말로 남기려한 그의 마음 쓰임이 작용한 탓일 게다.
나야 어려서 시골에 자주 가서 대부분 보던 것이지만, 요즘 사람들이 과연 몇 가지나 알 것인지... 
맨 뒷부분에 저 농구들의 삽화를 첨부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 

아이들 양민네 사랑으로 놀러 가고
내가 조용히 뒷방문 열어놓고 시를 쓸 때 그는 온다
곧장 산으로 연해 있는 집 뒤란
우씨네 집 황소가 자주 와서 등 부벼대는
우뚝한 아름드리 추자나무 위
나는 붓을 든 채 녀석과 눈겨룸을 한다
어느 틈에 놈은 호도 한 알 따서 물고
와삭와삭 껍질을 벗기다가 나를 빠안히 내려다본다
지금은 홀로 된 청풍댁 할머니가
첫살림나던 당년에 심었다는 추자나무
털벌레가 파먹고
마슬 아이들이 거쳐가고
태풍 끝에 몇 알 안 남은 것을
그나마 줄창 훔쳐간 녀석이 바로 너였구나
나는 슬그머니 돌멩이를 집어
잽싸게 홱 던진다
그러나 놈은 돌멩이보다 한 걸음 앞서
콩밭으로 몸을 던지며 달아났다
양민네 할아버지가 저놈 털로 붓 만드는 게 소원이신
날다람쥐라고도 불리는 청설모 (청설모, 전문)

 

추자나무 하면 모르는 사람도 많으리라.
추자나무 열매의 속씨가 호두라고 불리는 것 역시도...
추자의 '추'자가 楸 '호두나무 추'인데, 가래나무(산추자나무) 열매와 조금 닮았다. 가래 속씨는 길쭘하다. 

<호두나무와 호두><가래나무와 가래> 

아침에 어디서 호두 열매 깨진 사진을 주워다 올렸는데, 이래저래 호두를 많이 만나는 날이다. 

민중언어를 살려 쓰려던 이동순의 시들을 읽으면,
옛날 충주댐 아래 수몰되어버린 큰집의 비탈길이 오롯이 떠오른다. 
뒤란의 감나무와 자그만 텃밭, 계명산 오르던 길에 있던 붉은 산딸기, 시원하던 절터의 계곡물까지...
자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가진 나도 여지없이 늙어가는 모양.
그래선지, 이동순의 이런 옛날 글도 만나면 반갑다.
시골 장터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돈 마냥... 

그립다...는 말은,
눈 앞에 없어서 '그리다'는 뜻과 통하는 말이 아닐까...
보고 싶어 그리고 그리다 보니, 그립다는 마음과 하나가 되어버린...
눈에 선한 사라져버린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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